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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또 물타기 시도(?)
    부산장신대 A교수의 연구실적물 허위 제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의 화살이 또 권성혁 행정처장을 향하고 있다. 과거 부산장신대는 학내 분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배후 인물로 권 처장을 지목해 왔지만, 어떤 증거나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 소문들이 사실이었다면, 권 처장은 실형을 받고, 현재 감옥에 있어야 할 상황. 하지만 소문들은 다 추측에 불과했고, 조사결과 사실과 달랐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비화시켜 사건 본질만 흐려왔다는 비난만 받아왔다. 이번에도 사건의 본질보다, 이 문제를 정치화 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부산장신대 모 이사는 “고발(교육부에 진정)한 놈이 더 나쁘지 않느냐”, “배후에 권 처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권 처장과 관계가 좋지 않은 일부 교수들도 교육부 진정을 권 처장이 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권 처장은 “한두 번 겪어 본 일도 아니다. 일일이 대응하기 싫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사장 민영란 목사도 권 처장의 배후 의혹에 대해 “과거 내가 그들(일부 교수들)의 말만 믿고, 권 처장을 (학교에서)쫓아 내려고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내가 법인 이사가 되면 제일 먼저 권 처장의 문제를 조사해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의혹들은 사실과 달랐고, 그들의 거짓말만 드러났다. 그들의 말만 믿고 행동으로 나섰던 내가 부끄러웠다”며 “이제는 그런 정치쇼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절대 물타기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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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5-04
  • 부산이 낳은 인물 윤인구 박사 (1)
    청년기에는 부흥목사로, 장년기에는 농촌과 농민을 위한 계몽자로 그리고 후진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 노년에는 신학교 교장직과 사회봉사자로 활동한 윤인구 목사는 1903년 11월 1일 부산 북구 구포에서 태어났다. 부친 윤상은씨는 일제 때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한 금융인었으며, 동래 부윤을 지낸 백부 윤필은 독립투사였던 종형 윤현진 등에서 보듯 그의 집안은 꽤 잘 나가는 부유한 유지 집안이었다. ▲기독교와 만남 일찍이 부산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래고보에 다니던 중 3.1운동에 가담했던 윤인구는 중도 퇴학 후 서울YMCA청년회학관에 다녔다. 그의 인생 항로를 정해준 기독교와의 만남은 일본 유학시절, 1920년 메이지학원 중학부에 입학해 성경과 톨스토이, 사회사업가의 체험론 등을 접하면서 기독교교육에 뜻을 두고 청교도적 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로 기독교에 심취했다. 명치학원에서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신앙사상에 잠시 열정했으나 뒷날 그는 내촌 선생의 신앙사상을 사회 진보적인 면에서 머물고 있다고 해서 보수주의의 요람 대학인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학사, 영국 에딘버러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1931년 평생 동지인 동갑내기 방덕수씨와 28세 늦은 나이에 결혼, 첫 전도사로 부임한 곳이 진주 옥봉교회에서 교역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4년간의 목회 생활 끝에 교회는 사회 특히 비참한 농촌을 향해 좀 더 나아가야함을 깨닫고 그는 35년 마산 복음녹업실업전수학교로 부임, 농촌교회 사역자와 농촌 지도자양성을 꾀한 것은 나라가 사는 길은 젊은 인재를 기르고 양성하는 농촌 인재 육성에 기인함을 느낀 나머지 농촌 계몽운동에 젊은 나이로 전개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미 군정하에 경남도 학무과장을 맡았다. 일본인 교사들이 떠나버린 국교, 중학교를 다시 열고 교사양성에 온 힘을 쏟았다. 지금의 교육대학으로 발전한 부산사범학교도 이때 설립했고, 이화여전을 나온 부인이 영어교사를 맡아 수고했다. 이때 학무에 관여한 5년간 그가 길러낸 교사가 무려 15000여명에 달했다. ▲부산대학교 설립에 꿈을 펼치다 한편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 설립 기성회를 구성하여 마침내 부산대의 설립인가를 문교부로부터 받아냈다. 마땅한 교사(校舍)가 없어 수산대, 대신동의 청년학술원 등을 전전해야 했다. 그것마저 군에 뺏기고 대신동 운동장 뒤 종묘원을 매입, 천막교사를 짓게 되었다. 이곳에 유엔한국지원단 등과 후원회의 도움으로 목조 교사를 지었다. 그런 중 1953년 4월 종합대학 승격을 받아 낸 윤인구는 이해 11월 초대 부산대 총장에 추대되었다. (…계속)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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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6-05-04
  • 고린도교회로 되어가는 K교회, 안수집사 9명 집단 보직 사임 압박
    부산에 있는 K교회는 임시목사가 3년 당회에서 계속 청원이 거부되자 제직회 핵심멤버인 안수집사 9명이 당회에 항의하는 표시로 지난 4월 17일 주일 집단 보직 사임을 하고 말았다. K교회 Y목사는 이미 이번 4월 노회에 시무종료 사임서를 내어 임지가 없는 상태에서 개척을 하던지 해외에 유학을 가든지 양자 기로에 놓여 있게 되었다. K교회 당회원 9명 가운데 유일하게 2명만이 Y목사 계속 청원에 찬성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반대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임시목사 재청원과 연계하는 L장로의 복직을 전제로 허락하면 재청원에도 동의할 수 있다는 일부 재청원과는 무관한 당회원 내의 세력 갈등이 사태를 악화되게 말들었다고 한다. 이에 반발한 안수집사들이 보직 사임을 촉발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미 K교회는 부산지역에서 65년이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있는 중형교회로서 30여 년간 목회를 마무리하고 은퇴한 원로B목사의 후임자가 임시목사로 4년전부터 온 이후로 2번째 바뀐 임시목사가 지금의 Y목사이다. 문제의 L장로는 교회 공금유용과 배임 의혹이 불거져 제직들로부터 심한 항의 끝에 이 문제가 L장로 스스로가 장로 3년 휴무에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자숙 근신하여 재복직을 동료장로가 요구하였다가 반대 장로의 의견에 부딪혀 Y목사 재청빙과 빅딜로 연결되는 모양새로 안수집사 9명의 집단 보직사임을 불러오고 말았다. 안수집사 모씨는 “당회원들의 동료 구하기에 매진한다면 우리도 Y목사 구하기에 뜻을 두고 향방을 결정하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Y목사는 3월 제직회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3년 만에 100여 명의 교인을 늘게 한 죄 밖에 없습니다”라면서 “내가 왜 그만두어야 합니까?”라고 항의하는 뜻을 밝혔는데 지난 3월 당회에서 4월 10일자로 정기노회에 사임을 밝혀 4월 노회에 정식 사임서를 제출했다. 당회 서기인 장로는 지난 20일 전화로 확인한 내용에서 “이미 Y목사는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유학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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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21
  • 당회 중 성경책을 던지는 장로를 보았는가?
    정식 당회를 하는 과정에서 담임목사가 못마땅한 말을 했다고 해서 모교회 K장로가 담임목사를 향해 성경책을 던진 사건이 교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의 교회 당회라 하지만 기분 언짢은 소리에 시무장로가 성경책을 던지는 행위는 불경죄 뿐아니라 당연히 치리감인데도 당회록에만 삽입해놓고는 그냥 넘어간 사실에 대해 뜻있는 교회 장로들은 ‘창피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B노회 K교회 당회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골치아픈 일만 있으니 교회 성장은 뒷걸음질하고 잘나가던 교회는 서서히 뒤처지고 있다. 노회 안에서 예산집행 규모로 보았을 때 3, 4위 하던 교회가 지금은 11위로 처져있는 교회가 되어 안타까워 했다. 이 사건은 오래된 사건이긴 하지만 지금도 목하 진행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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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21
  • P노회 춘계노회에서 본 총대선출 이변
    D교단 P노회 춘계노회에서 비춰진 총대투표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장로 총대에서 늘 서열 1-2위로 섰던 D장로가 10위 꼴찌로 밀려 난 것이 이변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마치 새누리당에서 잘나가던 다선위원인 이인제, 이재오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한 것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금년 가을 노회는 4년 만에 다가오는 장로노회장 세력 판도에 시금석이 아닌가라는 뉘앙스를 표출했다고, 항상 잘나갈 때 겸손해야 하는 것이 교계정치의 미학이다. 향후 K, J장로 2명이 경합으로 결정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총대들의 여론으로 가늠할 수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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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21
  • 성산 장기려 장로의 신앙 사상과 그의 역사 의식 (2)
    ▲장기려 박사의 25년 시대를 마감하고 박영훈 새 원장 시대에 들어가 1976년 6월 25일 박영훈 장로의 제2대 원장 취임과 장기려 박사가 퇴임하는 그 날 장 박사는 인사말을 통해 “박영훈 전문의사가 저의 후임으로 원장에 취임하는 것은 무한한 기쁨이요 또한 여호와이레(하나님이 준비 하셨음)라고 믿는 바입니다. 그래서 이 병원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수년 전부터 이 병원에 불화가 생겨서 인사문제가 어려워졌고 또 작년에는 경리상 부채가 생겨서 이 모든 책임을 느끼고 두어 번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그때마다 사표를 반려해 주셨고 오늘까지 만 25년간을 근속하게 해 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요, 불명예로 가득 찬 저를 명예원장으로 추대해 주신 총회와 이사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새로 취임하는 원장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시고 병원 발전에 사명을 다하실 것을 믿으면서 이것으로 저의 퇴임사를 드립니다”라고 고별사를 대신하고 떠났다. ▲장 박사의 신앙정신은 보수적이었으나 훗날 무교회로 기울어 장 박사가 젊었을 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의 신앙은 그야말로 보수적인 신앙에서 배워 교회장로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월남하여 부산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있던 약 10년간에는 한국교회가 분열과 분쟁으로 교권이 활개를 칠 때였다. “아, 이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한국교회를 한탄하시지 않겠냐”며 1970년대부터 우찌무라 간조와 김교신, 그리고 함석헌 선생을 초청하여 무교회주의적인 신앙사상을 주입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장 박사는 그 당시 분열로 망신창이가 된 한국교회를 보고 최초로 교회를 세웠다. 중구 부평동 소재한 신성교회는 어느 교파에 가입 된 적이 없는 독립 교단으로 몇 년간 있다가 박광선 목사가 시무 할 당시 사하구 괴정동으로 대광교회와 합병해 통합 부산노회 부산 산정현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새로 출발 한 것이다. 장 박사는 보수적 신앙을 가졌지만 중간에는 무교회주의적인 작은 종들의 모임으로 가정에서 주일날 예배 드리고 십일조는 아예 삭제하여 스스로 헌금하는 퀘이커 신앙으로 탈바꿈 했다고 볼 수 있다. 부산모임에 나가 보면 거의 우찌무라 선생의 강의나 주석을 가지고 성경공부 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함석헌 선생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곤 했다. 함 선생도 장 박사는 교파를 멀리하고 순수 복음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교회가 다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한다고 역설했다. 장 박사가 부산 산정현교회 원로장로로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떠나고 말았을 때에 담임목사였던 박광선 목사가 가장 괴로워하며 안타까워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장 박사 혼자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손동길 안수집사 등 몇몇 교인들도 장 박사를 따라 교회를 떠나는 상황이 되었다. ▲장 박사는 왜 기존 교회를 떠나가게 됐을까?…평화주의자로 발돋움 그것은 분열로 얼룩진 한국교회에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며 종종 말씀 가운데 강조했다. “이 땅의 불쌍한 동포들의 살 길은 하나님의 나라 곧 평화, <샬롬>”이라고 설파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장 박사가 한반도의 분단을 걱정한 나머지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주러 왔노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장 박사는 평화주의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장 박사는 한시도 이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잊지를 못했다. 그 심정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찾아오는 남북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고 늘 강조해 왔다.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오로지 복음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같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그의 차원 높은 신앙을 읽을 수가 있었다. ▲장기려 박사의 신앙과 소명의식은? 장 박사는 1972년부터 복음병원 내 불화를 보고 ‘나의 생애와 헌신’이란 부산모임 회지에 이렇게 그의 심정을 적었다. “그때 나는 나의 책임이 가난한 환자의 진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음을 절감했다. 환자 진료보다는 평화에 대하여 더 힘써야겠다고 느꼈다. 원내의 평화뿐만 아니라 이 민족의 평화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살아야하겠다”는 소명의식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 박사의 신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1965년 즈음에 일본 야나이하라 타다오 선생의 히브리서 11장 1~4절까지를 해석한 <기독교 이상주의>라는 글을 읽고 난 뒤 그 사상 정신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교회정신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신앙에 심취한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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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6-04-21
  • 교계 연합기관 및 지도자들 기독자유당 지지 호소
    4.13 총선을 앞두고 한기총과 한교연 등 연합기관과 교계 지도자들이 기독자유당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지난 5일 오전 7시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목회자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동성애 합법화와 국내 이슬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기독자유당의 여의도 입성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기독자유당은 이날 결의문을 발표하고 4.13 총선에 한국교회가 하나 될 것, 한국교회 전 성도가 투표에 적극 참여할 것,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을 저지할 것, 이번 총선을 제2의 3.1절 운동으로 전개할 것, 개인적 목적을 위해 만든 다른 기독정당은 인정하지 않을 것, 8일과 9일 사전 투표에 100% 투표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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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07
  • 부산에는 누가 나오나?
    4.13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지역구가 개편되면서 예비후보로 이름 올린 인사가 많았지만, 뚜껑을 열고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기독교인 선거후보자가 별로 없다. 이번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기독교인 후보는 부산 해운대갑 하태경(새누리당) 후보, 사하구 을 조경태(새누리당) 후보, 사상구 장제원(무소속) 후보로 알려져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는 기독교인 후보가 많은 반면 부산에서는 드물어 아쉽기만 하다. 지역 복음률이 낮은 것을 반영하듯 기독교인 후보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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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07
  • 그렇게도 시끄러운가요? 청빙문제로
    부산에 있는 K교단 B교회는 담임목사 후임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다. 결국 몇몇 권사와 은퇴장로들이 노회에 고발장을 최근 제출하고 말았다. 내용인즉 후임자 후보로 들어 온 34명 가운데 1차 심사를 거쳐 11명으로 압축하고, 2차 심사를 통해 5명의 후보자를 가려냈다. 그런데 그 중 J목사가 2차 합격자 5명 안에 든 것이다. 문제는 J목사는 1차 합격자인 11명 중에 없었는데, 2차 합격자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청빙위원 누군가에 의해 이름이 올라있었다. J목사는 정규 박사학위도 아니고, 교단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에 태클을 걸고 청빙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내용이다. 한편 고발장 내용은 청빙 이외 개척교회를 하다가 목회자가 다른 곳으로 가는 차제에 그 교회를 1억원에 매매하였다고 부동산 중개비 800만원을 포함한 1천만원 가량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교단 총회장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공은 노회재판국에 넘어가게 된 것을 노회 안 중진들은 공석 중인 교회에 사탄이 시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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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07
  • 재정 어려움 호소
    부활절연합예배 헌금이 1천 3백여만원이 거둬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작년 1천 9백여만원보다 6백만원이 적은 것이다. 문제는 광고수입인데, 작년에 비해 2천7백여만원이 덜 거둬졌다고 모 관계자는 말했다. 부기총 모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약 3천만원 정도 적자가 났다.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참석률이 좋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다음 회기 넘겨줄 돈이 부족할 것 같다”며 걱정했다. 교계 모 인사는 “일련의 부기총 문제들 때문에 지역 성도들이 외면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시끄러운 모습만 보여주니, 찾고 싶겠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부산의 대표기관이기 때문에 하루속히 위상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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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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