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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장성만 목사를 추모하며
    보름 간격으로 대한민국에 그것도 한국교회 안에 큰 별이 두 개가 떨어졌다. 故 김영삼 장로(전 대통령)와 故 장성만 목사(동서대 설립자, 1932~2015) 모두 80대까지 살았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풍운아요, 큰 인물들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풍미했던 큰 인물임은 틀림없다. 故 김영삼 장로는 정치적 인물이지만, 장성만 목사는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교육자로, 때로는 문필가로, 때로는 목회자로 이름을 날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입지적 인물이고 큰 바위 얼굴 같은 다정다감한 친구같은 친근한 이미지의 인물이었다. 장 목사와의 인연 2010년 4월 어느 날, 동서대 안의 민석(民石, 장 목사의 아호)도서관 개관 커팅을 하는 날이었다. 행사가 있기 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서관 개관식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취재하러 오라고 하는 줄 알아서 그 때 갔더니만, 민석도서관 개관 커팅하기 전 교목이 기도한 후 장 목사님이 필자와 강판녕 장로를 즉석에서 앞으로 불러, 나갔더니 하는 말씀이 “여기 신 사장은 처음으로 부산실업전문학교로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1974년 교회연합신보 기자가 찾아와 취재하며 학교를 소개해 준 기억이 있다”고. 그래서 뜻 깊은 날에 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판녕 장로는 이 허언 벌판 산중턱 언덕 아래로 도로를 내고 길을 넓히는데 북구청장 재직시 구청 예산으로 이 길을 넓혀 주는 큰 도움을 받아 이렇게 초청 했다고 설명했다. 이 두 분에게 기념선물과 커팅을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적 있다. 전혀 생각도 못한 이벤트에 초청 된 상황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장성만 목사와의 첫 만남은 그보다 5년 전이었다. 필자가 처음 장성만 목사를 만난 것은 1969년 8월 여름 지인의 소개로 장 목사를 찾아가 서울 대한일보 기자 채용시에 추천장을 받은 것이 처음의 인연이었다. 물론 대한일보 발행인이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장로로 그가 발행한 신문이 일간지 대한일보와 주간지 교회연합신보였다. 한달간의 수습기자로 있을 때 소위 수방사령관 윤필용 사건이 터졌다. 그때 김연준 장로도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대한일보가 폐간되었다. 직원들도 뿔뿔이 헤어지는 마당에 나는 주간지 교계신문 교회연합신보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인연으로 오늘날까지 교계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첫 만남이 글을 쓰는데서 출발된 장성만 목사, 그가 민주신보(국제신문의 전신) 시절 문화면에 글도 썼던 계기로 수필가로 알려졌다. 그리고 부산기독문화 월간지 단행본을 발행한 적도 있었다. 장성만 목사의 칼럼은 독자에게 어필 본보 발행 20년 동안 한국기독신문에 칼럼을 써왔다. <장성만 목사 칼럼>은 A4 1장 내용의 글이 지면을 장식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워낙 유명한 집필과 명성이 있는 관계로 그의 글은 독자와 한국교회에 심금을 울려주기엔 충분한 감동적인 메시지였다. 이런 글들이 모아져 ‘피리는 불어도’라는 소책자가 출간되기도 했다.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을 잊을 수 없어 장 목사가 소천하기 7일전 11월 29일 주일 오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이건 장로 폰입니까? 여긴 장성만 목사님 집인데, 장 목사님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장 목사를 바꾸어 준 전화에 “신 장로, 이번 21세기포럼 기독문화대상을 받게 되어 축하합니다. 진작부터 주고 싶었는데 늦게 주게 되어 한편 미안하고 내가 몸이 아파 시상식에 못 갈 것 같아 미안합니다. 꼭 나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전화로 인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필자와 마지막 통화였다. 전화를 바꿔 준 분이 장 목사의 사모 박동순 이사장이었다. 이 육성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생과 사, 이생과 저생 이런 갈림길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장 목사는 황무지와 같은 사과밭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땅을 일궜고 기적의 땅,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만든 신앙의 선구자인 어른이었다. 목회자로,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때론 문필가로 25권의 저서를 남긴 그의 주옥같은 명언과 메시지가 우리의 가슴에 찾아들곤 했다. 장 목사가 간 하늘나라는 천국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가득하고 예수님의 보좌 곁에 계실 장 목사의 빛나는 영광의 환희가 선하게 비쳐지길 원하고 있는 것은 나만의 기대와 환상은 아닐 것이다. 평안히 잠드십시오. 평소 가난한 자의 편에서 아껴 주시고, 도움을 주신 장 목사님, 편하게 아프지도 않고 찬양소리에 영광 돌릴 천국의 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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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12-21
  • “고3을 지켜라”
    이단들이 수능이 끝난 고3을 대상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어 교회와 가정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신천지의 경우 각종 설문지를 통해 학교 앞, 지하철, 번화가 등에서 선물공세를 펼치며 학생들에게 접근한다. 이때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파악 한 후 포교활동에 착수한다. JMS도 각종 오디션이나, 연극, 영화 등 예능쪽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이단들도 각종 취미활동이나 진로, 각종 상담을 통해 고3 학생들에게 접근한다. 고3의 경우 수능이 끝난 뒤 시간이 많고, 다양한 여가 활동을 펼치고 싶은 욕구가 높다. 이점을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단전문가들은 “교회 내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고3 학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인지시켜 줘야 한다. 그리고 크리스천 가정에서도 자녀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특히 교회 밖 성경공부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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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1
  • 북한 억류 임현수 목사 ‘종신노역형’
    북한에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에게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종신노역형을 선고했다. 1986년 캐나다로 이민간 뒤 토론토에 큰빛교회를 설립하고 28년 동안 목회를 해 온 임 목사는 1997년부터 북한을 방문하며 탁아소와 교육기관 등을 설립하면서 북한지원활동을 해 왔다. 하지만 금년 1월 북한 방문에서 억류를 당했고, 북한은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 이번에 종신노역형을 선고했다. 임 목사 가족들은 정부와 교계를 통해 다각적으로 구명운동을 펼쳐 왔지만, 사실상 북한이 임 목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있어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계내에서도 임 목사 사건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누가 자발적으로 북한을 돕겠느냐”며 이 문제로 교계차원의 대북지원도 냉각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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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1
  • 김삼환 목사, 후임자 청빙없이 은퇴
    이달 말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삼환 목사가 최근 열린 당회에서 “아들에게 교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세습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청빙위원회는 김삼환 목사 아들 김하나 목사를 유력한 후임자 중 한명으로 거론해 왔지만, 김삼환 목사가 사실상 거부해 청빙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삼환 목사는 지난 달 26일 청빙위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며 “한국교회의 본이 되고 귀감이 돼야 한다. 총회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명성교회는 오는 20일 공동의회를 거쳐 김삼환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할 예정이다. 당회는 김삼환 목사 후임 청빙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잡고 후임자 선정 작업을 서두르지 않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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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12-21
  • 부산장신대 이사회 소식
    지난 12월 7일 부산장신대학교 이사회(이사장 민영란 목사)가 정기이사회를 열고 심창근 이사의 후임으로 이교헌 장로를 참석인원(13명) 만장일치로 임기 4년의 교육경력 이사로 선임했다. 권정호 이사의 후임은 다음 회기로 연기하기로 했다. 이날 이사회인사위원회에서 사전심의한 직원근무실적규정, 직원복무규정, 계약직원인사규정, 사무분장규정을 원안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또 조교수 재임용 및 부교수 승진자로 김정훈 교수와 김주혜 교수를, 정교수 승진자로 왕인성 교수를, 부교수재임용 및 정교수승진자로 제청된 최무열 부교수에 대해서는 부교수는 재임용하고 정교수 승진은 2016년 2월말까지 논문이 게재된 논문집을 이사회에 제출하는 조건으로 정교수 승진을 하기로 하고, 2월 말까지 제출하지 않을 시 승진을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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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1
  • 오랜 축사 끝에 밝혀진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부산의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자리 잡은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지난 달 28일 개막했다.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다양한 장식의 조형물들이 설치돼 부산시민들과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점등식이 있던 28일,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점등식에 앞서 가진 개회예배가 오후 6시에 진행됐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예배에 동참했다. 예배를 마치며 점등식은 예배 직후가 아니라 30분이 지난 오후 7시에 시작된다는 광고가 있었다.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7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광복로를 가득 메웠다. 부기총 상임회장 박성호 목사의 개막선언으로 시작된 점등식에서는 부산극동방송어린이합창단 공연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이성구 목사의 환영사와 이어진 축사와 격려사 순서에서 시민들의 불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트리에 불이 켜지기를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계속된 축사 순서에 지쳤던 것이다. 날씨가 풀렸지만 겨울날씨였다. 축사와 격려사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박수소리와 탄식하는 소리도 나왔다. 축사내용은 대부분 참석한 인사들을 거론하는 말들로 불편의 목소리를 부추겼다. 한 시민은 “한 사람이 축사 글을 똑같이 만들어 준 것 아니냐, 추운데 같은 내용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느냐”며 불평했고, 다른 시민은 “어디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관광객은 “밥을 먼저 먹고 올 걸 그랬다. 불이 켜진 다음에 구경해도 됐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지만 불편을 쏟아내던 시민들은 트리에 불이 켜지자 지난해 보다 좋다는 반응과 함께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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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2
  • 또다시 불거지는 교회세습 문제
    최근 인천순복음교회가 교회 세습을 단행했다. 인천순복음교회는 담임 최성규 목사 후임으로 큰아들 최용호 목사를 선임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등이 항의 방문을 하는 등 교계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교회측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12월) 중 ○○교회(김○○ 목사) 후임목사 발표가 예고되고 있다. 교계 일각에서는 김○○ 목사의 아들 김○○ 목사가 후임자로 유력하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소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2000년 전 후 논란이 되었던 교회세습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더 추락할 곳도 없는 한국교회 신뢰도라고 하지만, 교회세습문제로 더 큰 홍역을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있다. 대형교회가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력, 대형교회라서 감당해야 될 책임감은 왜 그렇게 모르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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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2
  • 성급한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지혜가 필요해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기사가 있었다. 모 인터넷신문에 난 기사가 한국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난 후 지난 11월 24일(화) 장로회신학대학교 재학생 65명의 이름으로 “김○○ 목사에게 65명의 후배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글의 핵심내용은 ○○교회와 ○○○○○교회의 합병소식을 두고 변칙세습인 합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소문에 대해 당당히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한국교회 제2의 한경직 목사와 같이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후배들이 글을 올렸다는데는 이해가 되나, 아직까지 김 목사나 교회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짐작만으로 선을 그어 언급하는 것은 의도된 정치적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금 이 교회는 김 목사의 결단을 한달 남겨두고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어떤 윤곽이 드러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교회가 신중히 판단해서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미리 짐작으로 추측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판을 깨더라도 합병쪽으로 몰아가도록 부추기는 것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신중히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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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2
  •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故 김영삼 장로(89세)는 거제시 장목면에서 故 김옹조 장로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거제 장목에서 최연소로 제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부산 서구에서만 제4대부터 7번 국회의원에 당선돼 부산 서구가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경남 중학교가 있는 서구지역에 적을 두고, 서구에 있는 교회를 수요일, 주일 낮, 저녁예배를 순방하며 기도하고 성도들과 인사를 하면서 신앙적인 삶속에서 정치적 담력을 길러냈다. 일찍이 어머니를 좌익계통의 청년에게 피살당해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의식은 그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가 국회의원 제명을 당한 것은 부마사태의 원인제공이 됐다. 서구지역에 있는 고신 동일교회를 시무했던 故 김창인 목사가 서울로 옮겨 충현교회를 개척했을 때 故 김영삼 장로도 충현교회에 출석하여 20년 넘게 교회를 섬기며 헌신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충현교회에서 원로장로가 안 되는 이변이 있자 김 장로를 지지하는 몇몇 성도들이 김창인 원로목사 후임으로 온 아들을 세습을 이유로 반대하는 등 갈등을 빚었고, 신성종 목사가 담임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故 김영삼 장로의 장례에서도 충현교회는 완전 배제된 배경에는 이런 숨은 사유가 내재해 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부산 동양관광호텔에 투숙, 밥은 진주식당에서 늘 부산에 내려오면 부산 중구 광복동 입구에 있었던 동양관광호텔에서 유숙했다. 중구에는 CBS부산방송국이 광복동 농협건물 7층에 있었고, 미화당백화점 인근에는 부산YMCA 임시 사무실이 있었다. 그리고 중구 대청동에는 부산YWCA회관이 자리 잡아 중구지역이 기독교의 메카를 연상시켰다. 부산 기독교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중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구 지역의 이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했다. 중구의 용두산공원을 한 바퀴 돌거나 서구 암남동 해변가를 뛰었다. 조깅 후 돌아와서는 호텔 식사보다 중구 광복교회 옆 진주비빔밥 식당에 들려 지인들과 식사를 하곤 했다. 가끔 동양관광호텔 스카이라운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교계인사들과 식사하곤 했다. 故 손창희 장로가 손명순 여사와의 가까운 외숙관계로, 교계연락은 손 장로에 의해 모이곤 했다. 한때 야당시절 수중에 노잣돈이 떨어졌을 때였다. 유신말기쯤 자택연금을 당했을 때 익혀 두었던 붓글씨 수십 장을 표구로 해서 광복동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어 자금을 조달했다. 그때 당시 홍인길, 문정수 씨가 비서로 있을 때 매우 가깝게 접촉한 사람들이 교계인사였다. 이성만 장로(은성교회)는 같은 거제 출신으로 꼭 써야할 자금을 지원한 숨은 헌신자로 지목되어 때로는 국세청의 세금조사까지 받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훗날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선축하예배의 경비 일부는 이성만 장로에 돌아와 지원하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성만 장로는 부산장신대가 인가받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 시절에 김해시청에 전화하여 건축 관계 등 도움을 받는 보은도 받았다. 은혜를 주면 은혜를 갚았던 것이 그, 김영삼 장로의 의리 있는 인간성이 이를 말해주었다. △부산 서구에 김영삼 장로 기념관 설립 움직임 서구는 그야말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서구민들에게는 가장 신세를 많이 진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구지역에 故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매우 현실적인 반가운 일이고 이를 추진하는데 서구청에서 적극돕겠다”고 말했다. 사실 서구지역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렇다 하게 기여한 업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인 훌륭한 지도자를 길러낸 서구민들의 자긍심은 높이 살만하다. 서구민들의 의리와 자존심이 씨를 뿌리고 거둔 결과이다. 그가 남긴 것은 이 나라의 민주화의 나무에 꽃이 열매를 맺게 한 것이고, 그 열매가 바로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나라에 제사장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 헌신한 신앙이 남긴 흔적은 별로였다는 평가가 있지 않을까.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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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2
  • 故 김영삼 장로와 한국교회에 얽힌 일화들
    김영삼 장로와 손명순 권사의 결혼식은 마산문창교회 돌벽교회당에서 가졌다. 김영삼 장로는 일찍이 할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故 김홍조 장로(2008년 작고)도 경남 거제 장목에서 신명교회를 세웠다. 평생 5곳(마산 수정교회 등)의 교회를 설립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적 유산을 이어 받은 김영삼 장로는 이화여대 약학과에 재학 중인 손명순 여사와 1951년 3월 경남 마산 추산동 마산문창교회(故 김석찬 목사)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손명순 여사가 다니던 이화여대는 재학 중 결혼 금지라는 학교 규칙이 있었지만 이를 어기고 몰래 졸업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영삼 장로는 부산 경남중·고교에 재학 시는 고신 부산남교회(故 한명동 목사)에 출석했다. ▲서울 충현교회에서 장로 장립 받아 김 전 대통령이 가장 오래 출석한 교회는 예장합동 서울 충현교회(故이 김창인 목사)다. 1965년부터 출석하여 1972년에 집사안수를 받고, 5년 뒤 장로 직분을 받았다. 김창인 목사와는 평소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신성종 목사 담임시절인 1992년 대통령 당선 취임식 전인 2월 25일 자택에서 가족 및 지인들과 감사예배를 가졌다. 또 취임식에 가기 전 신 목사에게 안수기도까지 받았다. 신 목사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손을 성경 위에 얹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의 신앙의 동료인 충현교회 김차생 장로를 종교 담당 특보로 세워 초교파적으로 목사님을 모시고 주일날 청와대 안가에서 예배를 가졌다. ▲영·호남 나라를 위한 기도회와 나사본 사람들 6공말기부터 1990~1993년 사이 교계 인사와 크리스천 정치인들이 나라를 걱정한 나머지, 동서화합을 접목하는 뜻에서 이루어져 만든 나라사랑운동본부(일명 나사본)를 만들어 ‘영·호남 나라를 위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가졌다. 하나님도 하나이시고 주님과 성령님도 하나이시기에 동서 교계 지도자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다. 김영삼 장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1991년 4월 1일 대구 금호호텔에서 1천여 교계인사가 모였다. 2차는 91년 7월 1일 광주 무등산관광호텔에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모여 예배를 가졌다. 3차인 93년 8월 30일 부산 허심청에서 두 전 대통령은 불참하고 김영삼 장로의 부친 김홍조 장로와 김덕룡 장관이 참석했다. 부산에서는 손상률 목사, 故 손창희 장로, 정금출 장로, 이성만 장로와 김태동 목사, 장차남 목사가 주축이 되었다. 대구는 권영식 장로, 김용구 목사, 우성기 장로, 광주는 최평우 장로, 최기석 목사, 한완석 목사가 각각 역할 분담을 했다. 주최측은 동서화합을 위한 역사적 선언문도 나왔다. 우리 기독교의 교파를 초월한 모든 성도들은 우리를 분열시키는 모든 간판을 즉시 내리고 국가의 번영과 민주발전을 그리고 동서 일치와 7천만 겨레의 하나됨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다짐한다고 적시했다. 무엇보다 김영삼 장로는 부산 서구지역을 사랑하고, 이곳을 제2정치적 고향으로 삼았다. 부산 서구에서 중고교를 다녔고 서구 지역민의 도움으로 8선까지(거제 장목에서 첫 국회의원 당선 제외) 가능했다. 늘 주일이 되면 지역 교회를 순방하면서 기도하거나 인사를 하는 등 서구지역 교회의 예방이 잦았다. 김영삼 장로는 "하나님 아버지 나라와 대한민국을 위해 학실이(확실히의 경상도 발음) 기도하오니 이 기도를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故 김광일 장로를 비서실장으로 발탁 1993년 초대 박관용 비서실장 이후 두 번째로 故 김광일 장로(변호사)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해 교계와 소통하며 김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게 했다. 대통령 특보시절까지 김 전 대통령을 모시면서 한국교회에 신세진 분들을 일일이 청와대로 불러 함께 식사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아마 김 전 대통령이 김광일 장로를 발탁한 것은 중고대학 선후배이긴 하지만 기독교 장로로서 더 친밀한 정을 두어 왔었다고 훗날 김광일 장로가 청와대에 찾아간 필자에게 말한 적 있다. 김광일 장로는 “김 전 대통령의 신앙은 나도 놀랄 정도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잘 챙겨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무실에 앉으면 조용히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고 들려줬다. 신이건 장로 ▲ 2003년 10월 21일(화) 부산롯데호텔에서 부산교계 지도자들이 김영삼 장로 부부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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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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