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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만났던 부산 YMCA 사무총장 최성묵, 임동규 목사
    ▲ 좌로부터 고 최성묵 목사, 임동규 목사 고 최성묵 목사는 포항 흥해 출신으로 서울대학 수학을 전공하다가 3년 중퇴하고 한국 신학대학 신학과 연세신학대학원 석사을 마치고 부산 미문화원 프로그램 인턴 간사로 근무하다가 부산YMCA가 부산 중구 광복동 시대인 1972년부터 1975년 8월까지 딱 3년 4개월간 부산YMCA총무로 들어가 근무를 했다. Y에 들어간 것도 과히 개혁 드라이브로 요즘 말하면 혁명적 내부개혁을 주도하다 싶이한 성공한 개혁운동이었다. 그 당시 이사장은 부산초량교회 시무장로로 성장기업 총수인 故 정태성 장로와 그 기업 그늘에 있는 수족과 다름이 없는 김정식 성창기업 총무 이사, 한국요업 대표이사 서석호 장로 등 이사를 몰아내는데 일등공신이 최성묵 목사였다. 함께 도왔던 여해룡, 이직형, 이관동, 김인수 젊은인사들이 중앙동에 있던 Y건물을 팔았던 기금일부 2천만원상당액을 정태성 이사 사돈인 백흥섬유(주) 백남조 부전교회 장로에게 차용해 주었다가 회사가 부도로 낭패를 당하자 이 문제를 걸고1차 개혁을 감행하여 이사장퇴진과 아울려 개혁을 주도하여 일괄 이사진 완전 물갈이하였고, 그 성공으로 최성묵 목사가 총무로 들어가게 되었다. 1972년 2월, YMCA정기총회를 보름 앞두고 미문화원에서 모의를 하였다. 부산YMCA총회 시 정태성 이사장 주류이사들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그 당시 부산 교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故 김길창 목사가 설립 한 남성학교 계열 학교 경성대 교수 교직원 다수를 Y정회원으로 가입시켜 인원 동원에 활용한 것이다. 부산Y가 광복동에서 더부살이로 또다시 부산 역전 앞건물에 전세 신세를 지게 된 몇 년 사이 최성묵 총무는 지금의 초량동 Y로 가기위한 전초 기지로 건물신축에 따른 설계이며 건축을 위해 죽을 고생을 한 시기였다. 입에 겨우 풀 칠할 정도로 가난한 기독교 대표기관이었다. 서울 유명 반 체제인사 강원룡 목사, 한완상 교수, 서남동 교수, 문익환 목사, 문동환 목사, 김동길 교수 등 유수한 민주인사들이 방문해 강연과 세미나를 열어 6월 민주항쟁의 씨앗을 심기시작하면서 민주열기를 서서히 지피기 시작했다. 우연의 계기가 된 장소에 방화사건이 된 미문화원, YMCA의 개혁모의를 했던 곳이 미문화원이고 1980년 광주민주화사태에 미군이 전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왜 광주사태에 군을 파송하여 억울한 민중을 죽게했느냐라고 미군에 대한 항거표시로 미문화원에 방화한 문부식, 김은숙 고신대학생들이 그 당시 최성묵 목사가 시무하던 부산 중부교회에 교회학교 교사로 출석하고 있었던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임동규 사무총장 12년간 1년간 김정광 목사(7대)에 이어 김봉배 총무(8대)가 3년 간 헌 신 하 였 고 , 제 9대(1996-2008) 임동규 사무총장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과 사업, 부산Y에 길이 남을 업적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임 목사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원래 부산영도중앙교회, 지금의 땅끝교회 다녔던 청년 임동규씨는 일찍이 부산대 정외과를 나와 통합교단 청년연합회 전국회장과 부산 초교파청년연합운동체인 Eyc기독청년협의회 부산회장 등 청년운동으로 뛰어들었던연고로 부산Y 사무총장에 잘맞는 시민운동체의 리더로 발휘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부산Y가 초량동 현 위치에 지상19층 지하5층 연면적 2502평, 신축회관빌딩을 짓고 나서 건축빚에 앉게된 것이다. 175억 5천만원의 막대한 부채를 갚을 길이 희박하고 거리로 쫓겨 앉게되자 Y이사로 그리고 시민중계실 법률자문인사로 가깝게 지낸 노무현, 문재인 쪽에 줄을 서 시공사인 금호건설회사 오너에게 빚 탕감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호남기업인 금호쪽에 영‧호남 관계개선으로 부산 유일한 시민의 대표기관인 부산Y를 살려야 한다는 일간지 신문방송의 언론플레이로 여론이 확산되자 금호도 부담을 앉고 있었던 상황. 이 일을 다름 아닌 임동규 사무총장이 해 낸 것이다. 금호그룹 오너를 만나 협상하면서 빚 탕감을 받아냈다. 협상한 결과 Y건물 19개 층에서 4개 층만 Y소유 분양으로 하고, 나머지는 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매듭지었다. 그 많았던 170억원의 건축 부채를 마무리 한 것은 순전히 임동규 사무총장의 피나는 노력과 활동덕분으로 길이길이Y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최근 2017년 9월 28일 자갈치 오아제뷔페에서 만나, 언젠가 앓기 시작한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임 목사는 필자에게 자기가 겪어 온 부산Y비화를 신문에 밝혀 연제를 부탁했다. 인간 임동규는 파킨스병에 걸려 있어도 그의 정신은 영롱하게 과거를 기억하며 후세에 역사의 한 부분을 남기고 싶어했다. 임 목사의 쾌유를 기원한다. Y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친 후 필자의 소개로 필리핀 두마케티에 이문선 선교사가 세운 장로신학대학교 총장으로 1년간 헌신하고, 부산에서 손자들과 오손도손 지내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임 목사는 YMCA 시무 중 12년간 빚 갚는데 4년간 저력했다. 그리고 통합 측 장로회신학대학원에 35세 나이에 77기로 졸업하고 목사안수 후 인명진 목사가 시무 개척한 호주한인교회에 4년간 목회를 하고 돌아와서 부산Y에 사무총장 12년간 헌신한 입지적 인물로 부산 Y역사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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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6
  • 시무장로가 은퇴하면 반듯이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오래 가는 듯 했다. 매서운 겨울이라 해도 봄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들의 살아하는 삶의 여정이 마치 계절과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시무장로들은 거의 평생을 섬기는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주님을 섬겨왔는데 65세 조기은퇴이고, 거의 70세에 은퇴를 한다. 내 나이 70세면 요즘 말로하면 끝 늙은이 노인 청년에 속하고 80세쯤 되야 노인 대접을 받는다. 이런 고령화 시대에 살다보니 은퇴 후에는 한낱 사회 제도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제 2의 인생 이모작을 개척해야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는 늙어가는 새 출발점으로 느껴지며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나이가 어때?라고 반론을 하면서 이제부터 좀 자유로운 행동과 활동을 영위 할 수가 있다. 필자의 경우는 섬기는 교회에 매 주 1부 예배와 수요예배 1부 예배에 나가 경건하게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 날 2부 11시 예배는 변두리 작은 교회에 출석한다. 공 예배에 자리를 채워 주는 것은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서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 본 교회에서 은퇴하고 왕따 당하는 것 보다 개척하는 기분으로 빈 자리를 채워 주고, 헌금도 십일조·감사헌금을 나눠 내고, 새벽기도는 언제나 집 가까운 어느 교회를 가도 개의치 않는다. 한국교회 은퇴한 장로들이 각기 작은 교회에 가서 도와주게 되면 작은 교회는 몇 년 안 되어 자립 할 기틀을 마련할 뿐더러 기울어져가는 미자립교회, 개척교회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의 실천 중 하나라 본다. 부산교계만 해도 은퇴한 장로들이 무려 2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작은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교회는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은사를 발휘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재능 기부를 할 수가 있다. 가령 사회복지자격증을 소지 한 분은 주변에 널려 있는 요양병원이나 노인 요양원에 가서 자원하면 큰 도움이 된다.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뜻)가 있어 크게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보다는 건강도 유지 할 수 있도록 지역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알맞은 일자리를 얻거나 여가를 누리는 것이 좋다. 건강을 필수로 생각한다면 집 주변 헬스장에 가서 1시간 러닝머신으로 걷기와 가벼운 운동을 한 후에 사워하면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출발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은퇴 후 열심히 활동을 하게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나이 연령보다 10년은 훨씬 젊게 살아 갈 수가 있다. 그리고는 다양한 취미활동이나 배움 가령, 색소폰이나 다른 악기로 취미 생활을 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색소폰은 심호흡에 유익을 줄뿐더러 심폐기능에 보탬이 되고, 음치라 하더라도 노래교실같은 곳을 찾아 노래를 배우며 발성 연습도 하면 좋다. 이런 취미생활은 지금까지 삶보다 더 윤택하고 생기있는 삶을 지낼 수 있다. 재능 기부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다문화 가족들을 모집하여 교회 공간에 이들을 향한 한글과 우리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권장 할 수가 있다. 교육관이 있는 교회는 소 공간을 활용해 이들에게 배움의 길과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해 상담과 그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면 전도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노인대학이나 경로학교 학생을 위해 선생으로 자원 봉사를 하면 노인들의 삶이 더욱 밝아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재능 기부나 자원 봉사는 우리들에게 육체적, 영적 엔돌핀을 가져다준다는 의학 보고서가 있다.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남을 섬기고, 나눌 때 바로 성경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라 하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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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3-12
  • 총신대, 회복의 방법은?
    3월, 모든 대학생들의 새학기 캠퍼스가 시작되는 가운데 총신대학교(원)학생들은 캠퍼스가 폐쇄되고, 아직도 개강을 하지 못한 상태다. 김영우 총장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과 버티고 있는 김영우 총장 및 재단이사들의 대치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학교는 정상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지 못하는 상황. 특히 2월25일 김영우 총장 면담 요구를 위해 72시간 대치하는 상황에서 20명의 용역이 들어와 몸싸움이 일어나는 사태까지 퍼지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총신대학교는 현재 학교시스템이 정지되있는 상태이며 더 나아가 1600명의 학부생 중 800명은 수강신청을 거부한 상태까지 나아갔다.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 교수들이 김영우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3월 6일 전계현 목사(예장합동 총회 총회장)는 재단이사회와 김영우 총장은 총신이 정상화가 되도록 정관을 원 상태로 개정해놓고, 다시 돌려놓길 바란다고 전국 교회에 목회서신을 발송하기도 했다. 김영우 총장이 스스로 사퇴하지 않고서는 뚜렷한 답이 없는 가운데 예장합동의 대표 신학대학인 총신대학교가 하루빨리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한국 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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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12
  • 신천지, 또 다시 전국 동시다발적 시위
    2월 27일, 강제 개종 희생자 故구지인양의 49재 추모식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이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총회장 이만희, 이하 신천지)은 3월 4일 서울을 비롯한 부산, 강원, 화순 등 7개 도시에서 총 1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강제 개종’을 벌이는 강제 개종목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위 주체를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라 표기했지만, 사실상 이들은 대부분 신천지 신도들이다. 서울 목동 CBS 본사 앞에만 1만5천여 명이 참석한 것을 비롯해 서울 광화문과 종로 등 서울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부산에서도 부산CBS 앞에서 6천여 명이 동원된 가운데 '인권유린 한기총 강제개종사업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반대 구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CBS를 '살인마'라고 주장하며 폐쇄하라는 규탄의 구호도 이어갔다. 이들은 모두 검은 옷으로 맞춰 입고, 앞에 있는 사람들의 구호와 동작에 맞춰 마치 북한의 카드 섹션을 방불케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49재는 사람이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인데 신천지가 그 기간에 맞춰 시위를 한다는 것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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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12
  • 문재인 대통령,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
    50회째를 맞은 국가조찬기도회(채의웅 회장)가 3월8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됐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김진표의원(민주당), 안상수 의원(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인사들과 김삼환, 소강석, 이영훈 목사 등 교계지도자 5000여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대에 올라 50주년을 맞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성경에서 희년은 죄인과 노예, 빚진 사람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방과 안식의 해”라며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희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기도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30여 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대한민국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길을 걸어왔고, 부당한 침략과 지배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고 불평등과 억압으로부터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숭고한 여정이었다”며“그 길에서 한국교회는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가 시작됐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배움과 치료의 기회가 열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학교·교회·병원,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사회를 깨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고, 대한민국 근대화와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좀 더 관심과 기도를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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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2
  • 부산일신 여학교와 3·1만세운동 재현
    ▲ 부산진일신여학교 -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 금년 2018년은 3·1만세운동이 일어 난지 꼭 99년이 되는 해이며, 내년 2019년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부산의 3·1만세운동 시발점은 부산진교회 교우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것은 부산진교회에 다녔던 일신여학교 교사 박시연 선생이 부산 만세운동의 주요한 배후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부산의 첫 시위는 기독교인들로 특히 부산진교회 교인 100여명이 시위를 함으로써 점화되었고 그 후 3월 11일 일신여학교 학생들과 교사 등 50여명이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부산민주운동사, 부산진교회 100년사 참조). 이렇게 시작 된 부산의 3·1만세운동 시위는 부산 구포시장과 경남 거제, 통영, 그리고 황해도를 이어 전국 3위의 만세운동 참여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부산에서는 이미 1916년 9월에 있었던 전차사고로 수 천여명의 시민들이 봉기하여 전차를 전복시킴으로서 누적된 일제에 대한 울분의 감정을 분출시킨 바 있다. 부산은 그 당시 전체 인구 중 한국인 62,846명, 외국인 187명, 일본인 28,012명으로 일본의 토지 수탈과 횡포가 부산지역 민족의식을 강하게 자극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1919년 3월 2일 독립선언서가 부산지역에 비밀리에 배포가 됐다. 부산에 연고가 있는 서울로 유학 간 학생들이 내려와 부산 상고(현 개성고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독립운동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때 일신여학교 이명시(일신여학교 고등과 재학 1922년 3월 10회 졸업생)가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3월1일 새벽,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하여 시내 동구 지역 시장가 주변과 거리로 격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 고등과 4학년 김응수가 격문을 주워 들고 주경애 선생에게 보여 주었고 주경애 선생은 부산 상업학교 학생들과 만세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3월11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와서는 김응수, 김순이, 박정수, 김반수, 심순의, 김봉애(전 부산YWCA 회장 역임, 부산 중앙교회 권사), 이명시 등의 학생들이 기숙사로 뛰쳐나와 동구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일본 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일신여학교 교장인 캐나다인 데이비스와 주경애 선생이 주동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위참여를 독려 했으며, 3월 10일 고등과 전 학생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제작하도록 하고 시위 당일에는 데이비스 교장과 호킹 선생이 학생들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앞장서서 지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부산시사). 이런 연고로 데이비스 교장과 호킹 선생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자 시민들도 이에 합세하여 동참하기 시작했다. 점점 숫자가 불어나더니 수 백·여명이 시위에 합세했다. 시위꾼들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이 대거 출동하여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신 여학생 전원과 여교사 2명이 연행됐다. 일본 경찰들이 시위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했으나 체포된 여학생들은 구타와 폭행을 당하면서도 일체 발설하지 않았다. 어느 여학생은 발가벗겨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검거 학생 11명과 교사 2명 전원을 부산 감옥으로 이송했으며 학생들은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99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최근 동구청에서 3‧1만세운동과 일신여학교의 3·1정신을 재현하는 행사가 부산광역시 동구의 주도로 2월 28일(수) 오전 좌천동 소재 일신여학교에서 거리퍼레이드 및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이에 먼저 앞장서지 못한 부산 1800여 교회와 관련 통합 측 교단 노회 그리고 부산 교계를 대표한다는 부기총 관계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기독교계가 해야 할 일을 관이 주도하니 매우 안타깝다.이밖에도 초량교회에 다녔던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와의 독립자금 공급전달책이었던 자매여숙 설립자이자 일신여학교 출신 양한나 여사(부산YWCA 회장 역임, 부산진교회)의 역할도 3·1독립운동과 관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인물 중에 과거 민주당총재를 역임한 박순천 여사도 대표적인 졸업 동문이다. 부산에 이런 기독여학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져 지금은 부산시 문화재로 남아 있지만 이곳을 관리하고 이름을 빛나게 해야 할 교계는 잠자고 있으니 한심할 수 밖에 없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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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6
  • 부산교계 성범죄 잇따라
    최근 한국 목회자의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목사들의 성추행 범죄 기사는 언론매체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소재다. 목사 성범죄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 양상이다. 최근 언론에 알려진 부산지역 목회자 성범죄 관련 사건으로 부산의 한 작은 교회 목회자이며 청소년 사역·상담으로 알려진 이 아무개 목사가 상담학 박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성 청년 3명을 성추행한 사건(뉴스앤조이), 또 부산 해운대구 모 교회의 목회자 이며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으로 알려진 A씨와 그의 아들이 센터 내 여성 청소년들을 성추행한 사건(부산일보) 등이 있다. 성범죄는 형법에서도 중범죄로 다스리는 범죄다. 게다가 성(聖)직 종사자들의 성(性)범죄는 피해자의 육체와 함께 정신까지 파괴할 수 있기에 더더욱 심각하다. 목회자 성범죄, 또 교회 내 성범죄 파문으로 교회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현재 성폭력 피해고발 캠페인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교계에도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교계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제기됐고,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어 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영향 때문인지 현재 교계 내에서도 미투 운동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며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방교육이 꼭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기독교계 안에서 목회자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성범죄 피해자의 치유를 전담할 기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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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2-26
  • ‘연합’은 말뿐인건가?
    지난 20일 부산NCC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으로 연합예배를 개최했다. 그리스도교 연합을 위한 모임이라 했지만 너무 작은 숫자의 참석으로 연합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되는지 무색할 정도 … 25명 정도의 참석자 중 3분의 1은 장신대 학생이었고, 3분의 1은 관계자 및 언론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연합을 위한 마음으로 참석한 사람은 몇 명인가 의문이 든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말씀처럼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합과 일치를 위한 모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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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2-26
  • 정정 및 반론보도문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해 12월 9일자 10면 기자수첩 <광야의 소리> 란 「장로 임직 때 시무장로 안수 배제시킨 교회 말썽」 제하의 기사에서 D교회 장로 임직식 순서와 관련하여 당회장이 원로 장로에게 “실세 장로로 알려진 N 장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결과 당회장은 “당회원 장로들과 의논하십시오”라고 말했을 뿐 N 장로를 거명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한 위 기사에 대해 N 장로는 본인이 교회 실세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임직 당일날 위임목사에게 수석 선물을 주러 나온 N 장로가 “목사님이 20년 안에 원로가 안 될 경우는 이 돌을 자신에게 돌려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사실은 “목사님이 20년후 원로목사가 되면 이 돌을 자신에게 돌려주고, 만일 20년간 사역을 못하시면 돌려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 져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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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8-02-23
  • 공중 전파 미디어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부산지역 전파방송사
    지금시대는 ‘매스미디어시대’라고해도 틀린 소리는 아니다 . 과 거 1960년도에서 1970년 그간교계 언론 매체는 불과 CBS, 극동방송과 각 교단지가 대변하고 홍보해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고 대북 및 공산국가를 향한 복음방송을 위한 극동방송은 지금 국내 한국교회 성도들을 상대하며 김장환 이사장이 전국 12개 네트국으로 확장하여 국내선교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각 지방방송에 지역유지 인사들을 등용시켜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자체사옥을 건립 한 곳이 한 둘이 아니다. 그만큼 국내선교와 복음에 전력해 온 것이다. 이는 극동방송을 설립한 김장환 이사장의 피눈물나는 각고 의 노력 결과이고, 1인 감독체 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어느 언론계 인사의 말에 수긍이 간다. 그만큼 파워와 카리스마의 장악이 성공의 길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럼 CBS는 어떠한가? 방송기능적인면은 극동보다 월등히 우세하다. CBS는 TV를 송출하고 문자미디어격인 노컷뉴스로 인터넷뉴스를 장식하는 그야말로 종합매스미디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CBS는 한국교회 유수한 교단으로부터 이사파송을 받는 유일한 한국교회 대표 미디어이다. 인정받는 만큼 재정이 건실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극동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고 있다. 극동은 순수복음방송이라서 교계의 사랑과 재정후원 받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CBS는 그렇지 않다. 마치 남의 자식처럼 먼 산 구경하듯 일반 기업으로부터 상업광고를 받기 때문에 별 애착이 없어보인다. 여기에 틈바구니로 들어 온 미디어공중전파가 1995년 창립한 CTS방송이다. 처음에는 감 모 장로의 개인운영체였으나 운영의 주체에서 벗어나 초교파로 탈바꿈하여 각 교단에서 이사 파송을 받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 명성교회가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C채널 공중전파 매체가 존재하고 서서히 한국교회안에 자리 잡아가고있다. 이렇게 영향권을 행사 할 수 있는 TV매체에 대형교회는 한 교회만 해도 연간 방송전파 시간 얻는 금액의 예산이 억대를 넘는다. 그러면 부산지방의 전파방송 실태를 살펴보자. 극동방송국의 부산지역 지부장은 본사 부사장을 역임했던 강창헌 목사가 최근 부임했다. 그것도 부산에 고신대 학부를 나온 부산에 연고있는 현직 목사를 부산국으로 파송해 부산교계의 지경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CBS 이번 부산 본부장에는 본사 노조 전 직원들이 신뢰하여 본사 보도 미디어국장을 역임한 거물급 인사를 금년 2018년 1월부로 파격적으로 부산국에 내려보냈다. 부산 교계는 아직 전파 공중방송에는 그렇게 적극 호응하는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풍부한 어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부산 1800여 교회, 40만 가량 성도들의 후원과 도움을 받기 위한 전략적으로 부산에 두 분을 내려보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얼마있으면 부산출신 천영호 장로가 C채널 사장으로 픽업됐기 때문에 부산교계를 그냥 잠식시키도록 둘 분이 아니다. 이렇게 부산교계는 이런 전파공중방송에 둘려 쌓인 채, 서로 주도권을 누가 쥐는가 누가 교계에 어필하는가? 벌써부터 불이 붙었다. 이 와중에 종이 신문과 인터넷으로 버티고 있는 본지 한국기독신문과 교회복음신문 양대 산맥이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지만 또 다른 교계신문 두개 정도가 더 있다. 이렇게 ‘매스미디어시대’가 될 것을 내다 본 분이 살아 생전에 고 장성만 목사이다. 부산에 발행하는 교계 신문 사장들을 한 자리에 초대해 ‘서로 합치야 살아난다’고 역설한 세미한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산교계에 침투하는 이단들의 독버섯을 방지하고, 적그리스도를 방어하고, 응징하는 건전한 비판 언론은 필요하다. 파수꾼이라면 너무 돋보이는 그늘에 가린 화려한 디자인 모습으로 치장하는데 되지 말라고 할찌라도 감시하고 감시해도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리와 온갖 술수들을 그냥 보아 지나 치기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한 세례 요한의 외침에 따라, 침묵할 수는 없지않느냐고 한 사도바울도 결국 목이 잘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해서 멈춰서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래도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고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데 교계 언론이 앞장을 서야한다. 교회가 잘못나가면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하는 사명이 교계 언론에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송매체든지, 인쇄매체든지,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세우는데 진실적인 어록을 가지고 나아가야한다. 오늘날 교계언론이 때로는 욕을 먹고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교회를 위해 총대를 메고 교회의 거룩성을 세우려하는 의협심이 있어야 그것이 언론의 가는 길이 아닌가 사료된다. 행 20장28절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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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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