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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불편했던 부활절연합예배
    4월1일 부산지역 부활절연합예배가 열렸던 부산시민공원. 많은 사람들이 주차문제로 불편함을 겪었다. 그리고 인근 시민공원을 지나가는 차량들까지 교통정체로 불평을 호소했다. 무엇보다 이날 가족과 함께 시민공원에 휴식을 취하러 왔던 사람들이 시끄러운 소음으로 인해 휴식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고 간다고 불평을 했다. 또 휴일 오후 낮잠을 청하던 시민공원 주변 주택가들도 소음 때문에 부산시청 상황실이나, 부산진구청 당직실에 민원을 호소할 정도. 소음과 주차시설의 불편상황 속에 예배만 위해 다른 시민들을 배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정치인들은 무대위로 불러 인사를 시키면서 왜 나이 많은 증경회장들 좌석하나 마련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모 증경회장은 좌석이 없는 것을 알자 바로 발걸음을 돌렸고, 다른 모 증경회장은 경로석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A 증경회장은 “지금까지 내가 참석한 부활절연합예배 가운데 가장 불편했던 자리”라고 말했다. 조금만이라도 배려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활절연합예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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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4-09
  • 한국교회는 제주 4.3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나는 해방 전 해 1944년에 태어났기에 1947~1954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잘 아는바가없다.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사회적 관심에서 배제되었던 제주 4.3사건이 이제야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등장 한 것에 대해 매우 관심거리로 볼 수밖에 없고 정확한 이해를 구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화롭고 아늑하며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제1의 큰 섬인 제주도가 그런 아픈 역사를 남겨 두고 있었던 것이 내가 동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인지 나의 뇌리에 더욱 다가 왔다. 여기 저기 언론에서 보도 한 내용을 보고 생각 한 것은 그 수많은 약3만 여명의 양민들을 우리 군경이 미군정의 협조아래 토벌작전으로 학살된 배경에 관심을 더 갖게 된 것이 나만의 의문만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4.3사건에 관한 논란을 눈여겨보면서 드는 의문은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제주4.3사건을 주도한 인사들이 남로당의 무장반란에서 모든 사태가 출발되었다는 점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하는 것과 이승만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내려오면서 일체 말없이 숨 쉬고 있다가 김대중 정부가 진상을 규명하기 시작하여 2000년 노무현 정권에 와서야 직접 대통령이 사과하고 4.3문제 해결을 위해 4.3특별법이 만들어지고 2003년 4.3보고서가 일방적으로 작성되고 내용도 일부 왜곡됐다는 등 사회적 비판이 끊이지 않은 점이다. △사건의 시발점, 항쟁인가 폭등인가 그 핵심 논쟁은 다름 아닌 그 당시 남로당 주도세력들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기위해 경찰을 무장공격 했고 제주주민들을 선동하여 5.10유일한 남한정부수립을 위한 민주선거를 저지하기위해 방해까지 한 저의는 그들만의 공산주의국가를 만들기 위함이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멋모르고 있던 무고한 양민들은 토벌진압에 살아 남기위해 한라산 지하 동굴에 숨어살아야만 했다. 주동인사들은 양민을 버리고 월북해 북한 정권에 참여해 그들만 살겠다는 공산정권의 심보가 들어 났는데 그것을 일찍이 파악 못한 것도 아쉽지만 이념에 물이 들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사상이라면 그 당시 제주도 첫 선교의 전도자로 나선 이기풍 목사에 의해 신자가 된 양민들도 그들의 뜻에 동조 하지 않았던 관계로 폭도들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부분의 진상은 덮어 두고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사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것이나 좌익 폭도에 의해 희생된 분도 다 피해자고 피해 희생자 모두를 위해 진상 규명과 화해와 치유를 위해 정부가 보듬어야 할 것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성격규명을 놓고 서로 상반된 논란은 아직 미완성이고 진행형인 것이다. 정부의 진상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의 무장봉기를 거쳐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 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항쟁으로, 보수진영은 폭동으로 서로 맞서고 있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름을 짓지 못 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 교계와 희생자 가족, 처음으로 연합예배 참여 제주 4.3사건당시 3000여명 정도 넘게 경찰에 자수시켜 목숨을 구하게 해서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리고 있는 조남수 목사는 1987년 펴낸 4.3진상이란 책에서 4.3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누구이며 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4.3사건은 제주도를 공산화하려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정의했다. 역사적 자료에 의해 정확히 진상이 규명되어 4.3사건의 실제모습대로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 모두를 놓고 그들을 위해 추모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고 해야 할 과제이다. 한편 70년이 흐르는 동안 제주도 교계는 처음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지난 3월 30일 제주 성안교회에서 500여명이 교인들과 4.3희생자규명대책위원장과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 4.3 70주년 연합예배가 뜨겁게 드려졌다. 기독교의 화해와 치유 그리고 용서의 장이되었다는 참 다운 모임을 손수보였다. 제주 기독교교단연합협의회가 주최한 연합예배에서 김인주 제주NCC 총무는 “4.3사건은 한국전쟁 직전의 시대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놓고 봐야 할 사건이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피해자 가해자 모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넘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제주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아픈 상처를 봉합하는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총무 이홍정 목사가 직접 제주도로 가서 4.3평화 재단 및 유족회 대표를 만나 깊은 상처를 봉합하기위해 부활절을 맞아 4.3평화기행을 실시하고 돌아왔다. 그 당시 학살에 희생된 서북청년회 중 기독교인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함께 공감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깊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지금 제주도 땅은 축복의 산지이고 천예의 관광지로 추앙받고 있는 이 땅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시며 많은 분들이 이 곳에 한번이라도 오기를 소원하는 귀중한 우리나라 보물섬과 같은 축복의 땅이 되어가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편149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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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4-09
  • 퇴직금과 퇴직위로금 합쳐서 5억원을 고스란히 받지않고 떠난 어느 목사의 이야기
    한 교회에서 28년간 목회하고 다른 교회 임지로 가면서 교회가 제직회와 의논하여 주겠다는 법정 퇴직금과 퇴직 위로금을(약 5억원) 한 푼도 받지 않고 떠난 흐뭇한 미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울 영락교회로 간 김운성 목사이다. 설혹 준다고 해도 교회에 다시 헌금하겠다고 말하는 김운성 목사는 땅끝교회에서 젊은 청춘을 바쳐 28년간을 시무하면서 300여명의 교인을 10배 달하는 3000여 교인으로 부흥시켰다. 교회를 성장시키고도 떠날 때에는 말없이 타고 다닌 중형 승용차만 갖고 유유히 말없이 떠나 가버린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가 한국교회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희망이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최근 외아들은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사회에 큰 재목이 될 조짐이 있어‘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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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26
  • 미투(Me,too)운동, 교회에도 상륙할까?
    ‘미투(Me,too)운동’ 바람이 어디로 번질지 한국사회전체가 주목하는 가운데, 한국교회도 미투운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여러 매체들이 목회자와 교회내 미투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아직은 잔잔한 바람이고, 이 바람이 여기서 가라앉길 기대를 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한번 강하게 불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1년전 김해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 교회의 미투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교회 모 관계자는 “만일 지금당시 일이 터졌다면 정말 심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조용히 교통정리 해주셔서 이제는 후임 목사를 청빙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투 바람이 불고 있는 현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지금 터졌다면 교회가 더 큰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K 목사가 미투 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빈민운동가인 K 목사는 2016년 5월경 00재개발지구 철거민 투쟁 현장에서 여성을 성추행 한 혐의다. K목사는 공개사과문을 올렸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밖에 미투사건과는 별개로 A, B 교회에 대한 부적절한 소문들이 교계를 떠다니고 있다. 두 교회의 당회는 이 문제를 덥기로 했다는 말이 있지만, 미투 바람을 타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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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26
  • 내가 만났던 부산 YMCA 사무총장 최성묵, 임동규 목사
    ▲ 좌로부터 고 최성묵 목사, 임동규 목사 고 최성묵 목사는 포항 흥해 출신으로 서울대학 수학을 전공하다가 3년 중퇴하고 한국 신학대학 신학과 연세신학대학원 석사을 마치고 부산 미문화원 프로그램 인턴 간사로 근무하다가 부산YMCA가 부산 중구 광복동 시대인 1972년부터 1975년 8월까지 딱 3년 4개월간 부산YMCA총무로 들어가 근무를 했다. Y에 들어간 것도 과히 개혁 드라이브로 요즘 말하면 혁명적 내부개혁을 주도하다 싶이한 성공한 개혁운동이었다. 그 당시 이사장은 부산초량교회 시무장로로 성장기업 총수인 故 정태성 장로와 그 기업 그늘에 있는 수족과 다름이 없는 김정식 성창기업 총무 이사, 한국요업 대표이사 서석호 장로 등 이사를 몰아내는데 일등공신이 최성묵 목사였다. 함께 도왔던 여해룡, 이직형, 이관동, 김인수 젊은인사들이 중앙동에 있던 Y건물을 팔았던 기금일부 2천만원상당액을 정태성 이사 사돈인 백흥섬유(주) 백남조 부전교회 장로에게 차용해 주었다가 회사가 부도로 낭패를 당하자 이 문제를 걸고1차 개혁을 감행하여 이사장퇴진과 아울려 개혁을 주도하여 일괄 이사진 완전 물갈이하였고, 그 성공으로 최성묵 목사가 총무로 들어가게 되었다. 1972년 2월, YMCA정기총회를 보름 앞두고 미문화원에서 모의를 하였다. 부산YMCA총회 시 정태성 이사장 주류이사들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그 당시 부산 교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故 김길창 목사가 설립 한 남성학교 계열 학교 경성대 교수 교직원 다수를 Y정회원으로 가입시켜 인원 동원에 활용한 것이다. 부산Y가 광복동에서 더부살이로 또다시 부산 역전 앞건물에 전세 신세를 지게 된 몇 년 사이 최성묵 총무는 지금의 초량동 Y로 가기위한 전초 기지로 건물신축에 따른 설계이며 건축을 위해 죽을 고생을 한 시기였다. 입에 겨우 풀 칠할 정도로 가난한 기독교 대표기관이었다. 서울 유명 반 체제인사 강원룡 목사, 한완상 교수, 서남동 교수, 문익환 목사, 문동환 목사, 김동길 교수 등 유수한 민주인사들이 방문해 강연과 세미나를 열어 6월 민주항쟁의 씨앗을 심기시작하면서 민주열기를 서서히 지피기 시작했다. 우연의 계기가 된 장소에 방화사건이 된 미문화원, YMCA의 개혁모의를 했던 곳이 미문화원이고 1980년 광주민주화사태에 미군이 전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왜 광주사태에 군을 파송하여 억울한 민중을 죽게했느냐라고 미군에 대한 항거표시로 미문화원에 방화한 문부식, 김은숙 고신대학생들이 그 당시 최성묵 목사가 시무하던 부산 중부교회에 교회학교 교사로 출석하고 있었던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임동규 사무총장 12년간 1년간 김정광 목사(7대)에 이어 김봉배 총무(8대)가 3년 간 헌 신 하 였 고 , 제 9대(1996-2008) 임동규 사무총장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과 사업, 부산Y에 길이 남을 업적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임 목사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원래 부산영도중앙교회, 지금의 땅끝교회 다녔던 청년 임동규씨는 일찍이 부산대 정외과를 나와 통합교단 청년연합회 전국회장과 부산 초교파청년연합운동체인 Eyc기독청년협의회 부산회장 등 청년운동으로 뛰어들었던연고로 부산Y 사무총장에 잘맞는 시민운동체의 리더로 발휘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부산Y가 초량동 현 위치에 지상19층 지하5층 연면적 2502평, 신축회관빌딩을 짓고 나서 건축빚에 앉게된 것이다. 175억 5천만원의 막대한 부채를 갚을 길이 희박하고 거리로 쫓겨 앉게되자 Y이사로 그리고 시민중계실 법률자문인사로 가깝게 지낸 노무현, 문재인 쪽에 줄을 서 시공사인 금호건설회사 오너에게 빚 탕감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호남기업인 금호쪽에 영‧호남 관계개선으로 부산 유일한 시민의 대표기관인 부산Y를 살려야 한다는 일간지 신문방송의 언론플레이로 여론이 확산되자 금호도 부담을 앉고 있었던 상황. 이 일을 다름 아닌 임동규 사무총장이 해 낸 것이다. 금호그룹 오너를 만나 협상하면서 빚 탕감을 받아냈다. 협상한 결과 Y건물 19개 층에서 4개 층만 Y소유 분양으로 하고, 나머지는 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매듭지었다. 그 많았던 170억원의 건축 부채를 마무리 한 것은 순전히 임동규 사무총장의 피나는 노력과 활동덕분으로 길이길이Y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최근 2017년 9월 28일 자갈치 오아제뷔페에서 만나, 언젠가 앓기 시작한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임 목사는 필자에게 자기가 겪어 온 부산Y비화를 신문에 밝혀 연제를 부탁했다. 인간 임동규는 파킨스병에 걸려 있어도 그의 정신은 영롱하게 과거를 기억하며 후세에 역사의 한 부분을 남기고 싶어했다. 임 목사의 쾌유를 기원한다. Y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친 후 필자의 소개로 필리핀 두마케티에 이문선 선교사가 세운 장로신학대학교 총장으로 1년간 헌신하고, 부산에서 손자들과 오손도손 지내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임 목사는 YMCA 시무 중 12년간 빚 갚는데 4년간 저력했다. 그리고 통합 측 장로회신학대학원에 35세 나이에 77기로 졸업하고 목사안수 후 인명진 목사가 시무 개척한 호주한인교회에 4년간 목회를 하고 돌아와서 부산Y에 사무총장 12년간 헌신한 입지적 인물로 부산 Y역사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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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6
  • 시무장로가 은퇴하면 반듯이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오래 가는 듯 했다. 매서운 겨울이라 해도 봄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들의 살아하는 삶의 여정이 마치 계절과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시무장로들은 거의 평생을 섬기는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주님을 섬겨왔는데 65세 조기은퇴이고, 거의 70세에 은퇴를 한다. 내 나이 70세면 요즘 말로하면 끝 늙은이 노인 청년에 속하고 80세쯤 되야 노인 대접을 받는다. 이런 고령화 시대에 살다보니 은퇴 후에는 한낱 사회 제도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제 2의 인생 이모작을 개척해야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는 늙어가는 새 출발점으로 느껴지며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나이가 어때?라고 반론을 하면서 이제부터 좀 자유로운 행동과 활동을 영위 할 수가 있다. 필자의 경우는 섬기는 교회에 매 주 1부 예배와 수요예배 1부 예배에 나가 경건하게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 날 2부 11시 예배는 변두리 작은 교회에 출석한다. 공 예배에 자리를 채워 주는 것은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서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 본 교회에서 은퇴하고 왕따 당하는 것 보다 개척하는 기분으로 빈 자리를 채워 주고, 헌금도 십일조·감사헌금을 나눠 내고, 새벽기도는 언제나 집 가까운 어느 교회를 가도 개의치 않는다. 한국교회 은퇴한 장로들이 각기 작은 교회에 가서 도와주게 되면 작은 교회는 몇 년 안 되어 자립 할 기틀을 마련할 뿐더러 기울어져가는 미자립교회, 개척교회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의 실천 중 하나라 본다. 부산교계만 해도 은퇴한 장로들이 무려 2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작은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교회는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은사를 발휘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재능 기부를 할 수가 있다. 가령 사회복지자격증을 소지 한 분은 주변에 널려 있는 요양병원이나 노인 요양원에 가서 자원하면 큰 도움이 된다.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뜻)가 있어 크게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보다는 건강도 유지 할 수 있도록 지역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알맞은 일자리를 얻거나 여가를 누리는 것이 좋다. 건강을 필수로 생각한다면 집 주변 헬스장에 가서 1시간 러닝머신으로 걷기와 가벼운 운동을 한 후에 사워하면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출발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은퇴 후 열심히 활동을 하게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나이 연령보다 10년은 훨씬 젊게 살아 갈 수가 있다. 그리고는 다양한 취미활동이나 배움 가령, 색소폰이나 다른 악기로 취미 생활을 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색소폰은 심호흡에 유익을 줄뿐더러 심폐기능에 보탬이 되고, 음치라 하더라도 노래교실같은 곳을 찾아 노래를 배우며 발성 연습도 하면 좋다. 이런 취미생활은 지금까지 삶보다 더 윤택하고 생기있는 삶을 지낼 수 있다. 재능 기부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다문화 가족들을 모집하여 교회 공간에 이들을 향한 한글과 우리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권장 할 수가 있다. 교육관이 있는 교회는 소 공간을 활용해 이들에게 배움의 길과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해 상담과 그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면 전도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노인대학이나 경로학교 학생을 위해 선생으로 자원 봉사를 하면 노인들의 삶이 더욱 밝아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재능 기부나 자원 봉사는 우리들에게 육체적, 영적 엔돌핀을 가져다준다는 의학 보고서가 있다.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남을 섬기고, 나눌 때 바로 성경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라 하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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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2
  • 총신대, 회복의 방법은?
    3월, 모든 대학생들의 새학기 캠퍼스가 시작되는 가운데 총신대학교(원)학생들은 캠퍼스가 폐쇄되고, 아직도 개강을 하지 못한 상태다. 김영우 총장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과 버티고 있는 김영우 총장 및 재단이사들의 대치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학교는 정상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지 못하는 상황. 특히 2월25일 김영우 총장 면담 요구를 위해 72시간 대치하는 상황에서 20명의 용역이 들어와 몸싸움이 일어나는 사태까지 퍼지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총신대학교는 현재 학교시스템이 정지되있는 상태이며 더 나아가 1600명의 학부생 중 800명은 수강신청을 거부한 상태까지 나아갔다.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 교수들이 김영우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3월 6일 전계현 목사(예장합동 총회 총회장)는 재단이사회와 김영우 총장은 총신이 정상화가 되도록 정관을 원 상태로 개정해놓고, 다시 돌려놓길 바란다고 전국 교회에 목회서신을 발송하기도 했다. 김영우 총장이 스스로 사퇴하지 않고서는 뚜렷한 답이 없는 가운데 예장합동의 대표 신학대학인 총신대학교가 하루빨리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한국 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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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12
  • 신천지, 또 다시 전국 동시다발적 시위
    2월 27일, 강제 개종 희생자 故구지인양의 49재 추모식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이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총회장 이만희, 이하 신천지)은 3월 4일 서울을 비롯한 부산, 강원, 화순 등 7개 도시에서 총 1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강제 개종’을 벌이는 강제 개종목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위 주체를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라 표기했지만, 사실상 이들은 대부분 신천지 신도들이다. 서울 목동 CBS 본사 앞에만 1만5천여 명이 참석한 것을 비롯해 서울 광화문과 종로 등 서울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부산에서도 부산CBS 앞에서 6천여 명이 동원된 가운데 '인권유린 한기총 강제개종사업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반대 구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CBS를 '살인마'라고 주장하며 폐쇄하라는 규탄의 구호도 이어갔다. 이들은 모두 검은 옷으로 맞춰 입고, 앞에 있는 사람들의 구호와 동작에 맞춰 마치 북한의 카드 섹션을 방불케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49재는 사람이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인데 신천지가 그 기간에 맞춰 시위를 한다는 것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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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3-12
  • 문재인 대통령,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
    50회째를 맞은 국가조찬기도회(채의웅 회장)가 3월8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됐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김진표의원(민주당), 안상수 의원(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인사들과 김삼환, 소강석, 이영훈 목사 등 교계지도자 5000여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대에 올라 50주년을 맞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성경에서 희년은 죄인과 노예, 빚진 사람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방과 안식의 해”라며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희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기도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30여 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대한민국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길을 걸어왔고, 부당한 침략과 지배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고 불평등과 억압으로부터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숭고한 여정이었다”며“그 길에서 한국교회는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가 시작됐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배움과 치료의 기회가 열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학교·교회·병원,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사회를 깨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고, 대한민국 근대화와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좀 더 관심과 기도를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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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2
  • 부산일신 여학교와 3·1만세운동 재현
    ▲ 부산진일신여학교 -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 금년 2018년은 3·1만세운동이 일어 난지 꼭 99년이 되는 해이며, 내년 2019년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부산의 3·1만세운동 시발점은 부산진교회 교우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것은 부산진교회에 다녔던 일신여학교 교사 박시연 선생이 부산 만세운동의 주요한 배후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부산의 첫 시위는 기독교인들로 특히 부산진교회 교인 100여명이 시위를 함으로써 점화되었고 그 후 3월 11일 일신여학교 학생들과 교사 등 50여명이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부산민주운동사, 부산진교회 100년사 참조). 이렇게 시작 된 부산의 3·1만세운동 시위는 부산 구포시장과 경남 거제, 통영, 그리고 황해도를 이어 전국 3위의 만세운동 참여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부산에서는 이미 1916년 9월에 있었던 전차사고로 수 천여명의 시민들이 봉기하여 전차를 전복시킴으로서 누적된 일제에 대한 울분의 감정을 분출시킨 바 있다. 부산은 그 당시 전체 인구 중 한국인 62,846명, 외국인 187명, 일본인 28,012명으로 일본의 토지 수탈과 횡포가 부산지역 민족의식을 강하게 자극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1919년 3월 2일 독립선언서가 부산지역에 비밀리에 배포가 됐다. 부산에 연고가 있는 서울로 유학 간 학생들이 내려와 부산 상고(현 개성고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독립운동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때 일신여학교 이명시(일신여학교 고등과 재학 1922년 3월 10회 졸업생)가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3월1일 새벽,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하여 시내 동구 지역 시장가 주변과 거리로 격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 고등과 4학년 김응수가 격문을 주워 들고 주경애 선생에게 보여 주었고 주경애 선생은 부산 상업학교 학생들과 만세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3월11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와서는 김응수, 김순이, 박정수, 김반수, 심순의, 김봉애(전 부산YWCA 회장 역임, 부산 중앙교회 권사), 이명시 등의 학생들이 기숙사로 뛰쳐나와 동구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일본 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일신여학교 교장인 캐나다인 데이비스와 주경애 선생이 주동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위참여를 독려 했으며, 3월 10일 고등과 전 학생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제작하도록 하고 시위 당일에는 데이비스 교장과 호킹 선생이 학생들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앞장서서 지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부산시사). 이런 연고로 데이비스 교장과 호킹 선생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자 시민들도 이에 합세하여 동참하기 시작했다. 점점 숫자가 불어나더니 수 백·여명이 시위에 합세했다. 시위꾼들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이 대거 출동하여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신 여학생 전원과 여교사 2명이 연행됐다. 일본 경찰들이 시위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했으나 체포된 여학생들은 구타와 폭행을 당하면서도 일체 발설하지 않았다. 어느 여학생은 발가벗겨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검거 학생 11명과 교사 2명 전원을 부산 감옥으로 이송했으며 학생들은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99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최근 동구청에서 3‧1만세운동과 일신여학교의 3·1정신을 재현하는 행사가 부산광역시 동구의 주도로 2월 28일(수) 오전 좌천동 소재 일신여학교에서 거리퍼레이드 및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이에 먼저 앞장서지 못한 부산 1800여 교회와 관련 통합 측 교단 노회 그리고 부산 교계를 대표한다는 부기총 관계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기독교계가 해야 할 일을 관이 주도하니 매우 안타깝다.이밖에도 초량교회에 다녔던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와의 독립자금 공급전달책이었던 자매여숙 설립자이자 일신여학교 출신 양한나 여사(부산YWCA 회장 역임, 부산진교회)의 역할도 3·1독립운동과 관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인물 중에 과거 민주당총재를 역임한 박순천 여사도 대표적인 졸업 동문이다. 부산에 이런 기독여학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져 지금은 부산시 문화재로 남아 있지만 이곳을 관리하고 이름을 빛나게 해야 할 교계는 잠자고 있으니 한심할 수 밖에 없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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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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