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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에 얽힌 이야기
    2018년 6월 말 쯤 되는 어느 날 춘천인가 하는 곳에서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투병 생활하던 부산 YMCA 사무총장을 지낸 임동규 목사의 반가운 음성이었다. 뜻하지 않던 파킨슨을 앓고 치료와 재활을 하기위해 재활 요양병원에서 한달간 재활하고 부산에서 만나 1979년 10월 부마민주화운동을 실제 몸으로 가담하여 활동 한 내용들을 인증 받으려고 그 당시 교계 현장 기자로 있었던 사실들을 자료로 모았으면 하는 당부를 잊지 아니했다. 부마항쟁의 뿌리와 역사적 배경을 진단하고 1979년 10월 부산지역의 민주화의 꽃을 피운 교계 인사 주역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부산 민주화 운동의 첫 불씨를 제공해 주었던 곳은 다름아닌 기독교장로회 부산 중부교회(중구 보수동 헌 책방 골목 입구) 지금은 고인이 된 최성묵 목사, 故 김광일 변호사(전 김영삼정부 시절 비서실장), 故 임기윤 목사(제일 감리교회 담임 역임), 가톨릭에 송기인 신부, 故 오수영 신부, 그 지도자의 배후 실무 행동을 옮긴 인물들은 임동규(부산 YMCA 사무총장), 박상도(부산YMCA 이사장과 간사역임), 김형기 목사(당시 김광일 변호사 사무간사), 조태원*중부교회 당시 대학생), 김영일(당시 부산대학생), 조점삼 교사, 차선각 목사, 박광선 목사(산정현교회) 등 외 다수 교계민주인사가 직, 간접으로 암암리에 협력랬다. 중부교회는 민권운동의 정치 일번지로 의식 있는 민주인사들이 이곳에서 금요기도회를 통해 중앙의 유명 민주 인사들이 강사로 힘을 북돋아주고 불을 붙인 것은 하늘이 알고 땅도 알았던 사실이다. 한국교회 기독 청년 초교파(소위 NCC가맹교단 기독 청년집단 모임) 기구가 바로 한국 교회 EYC의 부산 조직의 초대 회장이 임현모 장로이고 2대가 임동규 목사, 3대가 박상도로 그야말로 기독 청년 단체 조직으로서 가장 강성한 단체로 활동 하였다. 부산 EYC 회장을 하기 전 임동규 목사는 통합교단인 전국청년연합회 회장으로서 당시 1981년 8월 여름 수련회를 부산 수안교회에서 열어 유신반대 성명서를 발표 한 용기있는 기독청년단체로 경찰, 정보부, 기무사기관원들이 제일 껄끄럽고 두려워하는 단체로 지목하기도 했다. 임동규 회장을 수배하기위해 백방으로 경찰이 숨바꼭질을 하는 날이 많았다. 일찍이 부산 영도중앙교회(지금의 땅끝교회) 학생으로 부산대학 정외과를 나와 전국 기독청년회 연합회로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사회에서 감시와 사찰을 받던 차에 통합 츨 교단이 운영하는 장로회신학대학원 제77기로 졸업한 인사로는 부산에는 차선각(수산대학을 졸업), 안유환 당시 부산일보기자, 서울 경실련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 한 서경석 목사, 고무송 목사(기독공보 편집국장) 부산진교회를 담임했던 이종윤 목사, 지금 통합총회 부 총회장 림형천 목사(평촌교회), 한재엽 목사(장유대성교회담임), 임대식 목사(연세대, 평화교회담임), 한영수 목사(구포교회담임), 문순원 목사(총회규칙부장역임), 박성화 목사(새생명교회담임) 한때 해직되었다가 복직된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 임영천 목사, 송재천 목사(크리스찬신문 편집부장) 등 77기 129명은 지금도 통합 교단을 이끌어 간다는 속설이 소문으로 돌고있다. 아마 부마항쟁의 불씨는 중부교회에서 늘 금요 혹은 목요기도회로 통해 서울에서 온 박형규 목사, 문익환 목사, 문동환 교수, 김동길 연세대교수, 한완상 서울대교수, 서남동 한신대교수, 김성재 한신대교수들이 와서 한국적 유신독재 권력의 이모저모를 폭로하고 탄압받던 이들과 함께 저항운동의 피난처가 된 곳이 바로 중부교회였다. 필자느 바로 중부교회에서 주일학교 부장과 집사로서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산 증인이다. 물론 교계 기자로서 70~80년도까지 10년간 중부교회 출석하다가 친동생이 육사27기로 나와 대령 진급시절에 기무사의 압력에 동생이 진급 탈락한다는 소리에 최성묵 목사에게 사실 직고하고 지금의 통합측 은성교회로 옮겼던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 부마항쟁의 민주인사로 자처하는 요즘 뉴스를 접하면 고생은 부산교계인사들이 따로 하고 영광과 감투는 다른 비신자인사분이 받아 서로 투사로 자처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늘나라에 사 있는 민주인사 목사, 장로 분들이 웃음치지 않을가 싶다. 부마 민주화 운동의 진실의 역사를 분명히 알아 둘 교훈이 있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은 이 땅의 자유민주화를 위해 사심없이 투쟁하고 몸으로 고통당한 댓가를 결코 바라지 않고 작은 예수로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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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7-09
  • 기독대학들마다 희비교차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결과가 나오자 대학들마다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고신대는 1차 자율개선대학(상위 60%)에 포함되자, 안민 총장이 행정 각부서를 돌면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자율개선대학에 포함된 경성대와 부산외대도 대학내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1차 통과를 못하고 2차 준비를 해야 하는 동서대와 부산장신대의 경우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동서대 모관계자는 “윗선에서 함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현재 심각하게 대책을 논의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타 대학에서도 동서대의 탈락을 놀라는 분위기다. 그만큼 지금까지 승승장구 해 왔기 때문이다. 부산장신대 관계자도 “그동안 우리의 지표는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최근들어 입학률과 재학생 충원률이 떨어졌다.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며 8월 말 최종 결과에서는 꼭 통과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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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6-25
  • 서울고법, 예장백석·예장대신 통합 무효
    예장백석과 예장대신 총회의 통합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예장대신(구 백석)이 항소한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기각을 판결했다. 예장대신총회가 통합을 결의할 당시(2015년 9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고, 총회 참석인원도 과반이 안됐다고 인정했다. 처음 소송을 제기한 예장대신 관계자들은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가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예장대신(구 백석) 관계자들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 며 임원회가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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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6-25
  • 부산 장신대학교 차기총장 누가 출마하나
    이미 서류 마감 한 6월 2일, 총장 출마 후보자 서류 세통이 접수됐다. 11일 월요일 총장인선청빙위(위원장 양봉호 목사)의 인선위원들이 모여 서류 심사를 하였다, 위원장 양봉호목사는 7월 초에 곧 후보자의 면접을 실시하여 인선 원칙 기준대로 첫째 대학 현실상황을 보고 어떻게 신학대학을 이끌고 갈 것인지 총장으로서의 소신과 포부를 듣는 한편 학교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모금과 재정 타결을 어떻게 극복 할 것인지 묻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신학대학의 정체성에 적합한 신학적 성향을 질의하고 응답하는 기초적인 면접을 보고 적합 여부에 따라 이사회에 보고하여 적합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만약 자질이 부적격하면 이사회가 다시 2차 청빙 공고를 낼 것인지는 이사회 고유의 권한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익명의 인사의 코멘트다. 현재 총장 출마 한 후보는 당초 예상했던 인사와는 무관한 세 분이 서류를 냈다. 박만 교수는 이미 교수회의 추천으로 후보에 올랐고, 다른 분은 특수 목회하는 이상호 목사이고 또 다른 분은 부산노회 평안교회에서 개척하는 오동욱 목사로 알려졌다. 동문 및 학교 주변에서는 최무열 전 총장이 출마 할 것 이다는 풍문은 풍문으로 끝나고 대지교회 공석중인 담임목사 청빙을 받아 일선 목회로 방향을 유턴 하였다. 그 외 예상 인물은 현 김용관 총장의 출마가 당연시 했던 결과도 빗나갔다. 현 총장 김용관 목사는 이에 대해 일절 노코멘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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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5
  • 의료계 외과 칼잡이 의사 고 박영훈 장로와 양덕호 장로
    1970~1990년대 한강 이남에서 외과 의사로서 외과부분 명의 칼잡이는 장기려 박사가 인정 한 고 박영훈 전 고신의료원 원장과 양덕호 선생(전복음병원외과 2과장)으로 의료계에서 인정 하는 분이다. 박영훈 의사는 장 박사 밑에서 간이식 수술을 배우며 실험 을 위해 개의 배를 개봉하여 큼직한 손으로 오장육부를 살피고 생각지 못한 장기를 꺼내 수술하는 등 손 감각이 수술하기엔 타고 난 외과 의사였다. 장 박사는 평소에 자신의 제자로 경북의대 출신 박영훈 선생과 부산의대 출신의 양덕호 선생을 영원한 외과 의사 제자로 양성하고 자랑해 왔다. 혹자는 말하기를 큰 아들이 박영훈 선생(송도제일교회원로), 둘 째 아들이 양덕호 선생(산정현교회원로)이라 말했다. 박영훈 선생은 장 박사 말년에 고신 교단 장로로 남아 복음병원 원장 바턴을 이어 받은 관계로 장 박사와 다소 소원해져 통합 교단 부산노회 소속 산정현교회 시무장로로 있었던 양덕호 장로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박영훈 원장을 병원 후계자로 삼았지만, 영적 후계자는 양덕호 장로를 삼아 같이 교회생활을 했다. 하지만 장 박사의 신앙은 말년에 함석헌 선생과 함께 내촌 우찌무라 간조선생의 무교회주의 일명 ‘퀘이커교’에 심취되었다. 그로인해 장 박사는 산정현교회에서의 십일조생활을 무시했고 결국 가정교회 형태의 신앙으로 일관해 교회를 나와 버렸다. 1975년 8월 여름 부산 모임을 복음병원 원장 사택에서 성경공부 식으로 하다가 산정현교회에서 때로는 예식장에서 함석헌 선생을 한 달 한 번씩 초청하여 부산모임 성서 연구를 하는 가운데 장 박사는 장로교의 헌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말을 했고, 함석헌 선생이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세월에 따라 신앙도 변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부산 성서연구 모임이 말년에 무교회주의로 간 함 옹의 퀘이커교로 인식하였다. 당시 산정현교회 담임했던 박광선 목사는 매우 당황했으나 장 박사의 고귀한 명성과 인격 때문에 당회에서는 거론조차 못 한 채 넘어갔다. ▲박영훈 전 원장 박영훈 전 원장은 말년에 외롭게 세월을 보내면서 오전에는 부평교회 옆에 있는 명성다방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우리가 명성캠프로 이름을 정하고 이곳에 모이는 인사로는 부민교회 원로 윤은조 장로, 고 정기상 장로, 그리고 황규제 전 병원 재정부장장로와 필 자가 만나 식사와 다과를 나누며 지나간 역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느 날 하루 박원장 왈 “신사장 한국기독신문에 연재했던 기획물 뉴스초점 글을 한권의 책으로 만들면 얼마나 비용이 나오나”고 해서 한 몇백 만원 소요된다고 했다. 그 이틀 날 병원 신협에서 신용대출로 돈을 주면서 이것가지고 출판을 해 보라고 했다. 한 두 달이 지난 후 신협에 이자연체가 되어 박 원장 집에 이자연체 지불등기를 받아 본 사모 목 권사가 전화가 와서 “이것이 어찌 된 것인가”라고 물어 사실대로 이야기 하고서야 안심 했다는 것 이었다. 행여 영감이 못된 도박이나 주식 투자를 하는가라고 의심을 했던 것이다. 명성캠프에 모인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 병원장 수 십 년간 하면서 어찌 비자금 하나 모아 둔 것이 없어 신용대출을 얻었나”고 했다. 박 원장이 정말 정직하고 깨끗하게 병원장 재직을 했다는 증명을 저절로 입증했다. ▲양덕호 장로 한편 양덕호 장로는 장 박사의 청십자병원에 남아 병원이 해체하고 복지재단 청십자복지회 이사장으로 유업을 계승하며 장 박사의 못다 이룬 가난한 이웃 섬김을 가업으로 모라복지관 등 복지 사업을 지금까지 산정현교회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 박사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일등 양아들답게 농어촌 의료봉사도 부산노회 남선교회연합회와 공동으로 해마다 농촌 미자립 지역을 돌며 노구를 불문하고 무료진료를 해 오고 있다. 장기려 박사의 인재 양성은 이 두 분의 외과 칼잡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재는 예수 정신으로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빛 이 나고, 소금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두 분은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만 양덕호 장로는 지금도 노인 요양병원에서 진료하며 건강한 강의로 노인학교에 무료 강의하는 아름다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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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6-25
  • 선교 여행 떠난 시찰 목사 장로들
    선교여행 떠난 고신 부산노회 서부 시찰 목사 7명과 3명의 장로가 지난 6월 4일 김해공항에서 출발 하여 9박10일의 북 유럽 선교 지로여행 장도에 올랐다. 일선 목회자들은 한번쯤 사도 바울의 전도현장을 보고 오면 설교에 보탬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송 도제일교회 주준태 목사의 은퇴기념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제 본인 당사자는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남의 핑계로 여행에 몸담은 실세 장로 세 분은 그리 마음만은 편치 않을 것 이다는 후문이다. 근 4년 동안 모아 온 시찰회 공금, 수 천 만원을 10여명 목사 장로가 여행경비로 사용한다는 내부 시찰원들의 결의가 있었다고 하나 10개 교회 시찰 교회 가운데 7개 교회만이 여행에 참여 하게 되었다. 성도의 헌금의 소중함을 모르는 교회 지도자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노회 안에서 행해지는 불필요한 모습들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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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6-11
  • 장대현 학교에 관심을..
    지난 7일 장대현 학교 운영이사장에 취임한 김남식 목사는 “노(老) 목사가 할 수 있는게 얼마나 있겠나. 하지만 장대현 학교는 통일시대 중요한 역할을 할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다. 그런 학생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갖는 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며 교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숙사가 문제로 학생이 20여명이라고 들었다. 현재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학생만 80여명이다. 빨리 기숙사를 완공해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기숙사는 큰 교회들이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일선교회와 1:1 자매결연을 통해 기도와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며 자신도 일선교회 강연 사례비 전액을 장대현교회 후원으로 기부하겠다고 학생들 앞에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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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6-11
  • 물밑에서는 영적 전쟁이...
    연산동 이마트 옆 부지에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건물 이전이 무산된지 2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분명 신천지 안드레지파쪽은 다른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데, 그동안 교계는 손을 놓고 있었다. 최근 들어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소를 통해 안드레지파 본부이전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고, 상담소 측의 노력으로 유력한(?) 건물까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전 할 본부건물은 이만희와 안드레지파장만 알고 있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속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건물의 경우 00산업이라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의 연수원으로 건축이 거의 마무리 된 상황이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가 왜 도심 한복판에 만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건물(연수원)을 짓는 것인지 강하게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 한쪽은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한쪽은 찾아내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모 이단전문가는 “그래도 안드레지파는 의심건물이라도 찾아내서 다행이지만, 동시에 본부건물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야고보지파의 경우 의심건물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교계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단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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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6-11
  •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한 달포 전 서울에서 목회하는 김운성 목사로부터 필자가 살이 많이 빠져 어디 아프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부산노회 훈련원 주최로 다녀 온 건강한 한국교회 몇 군데 탐방 투어 하고 다녀온 은성교회 담임목사로부터 들었다. 은성교회 담임목사는 김운성 목사가 필자의 건강에 대해 걱정 된다며 직접 전화하는 등 염려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비단 김운성 목사 뿐만 아니라 몇몇 주위 사람들로부터 건강은 괜찮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위에서 걱정하는 것이 은근 겁이 나기도 한다. 건강은 자기보다 남이 먼저 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시간을 내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후 안심 할 수가 있었다. 최근 주변에 부고가 자주 들려온다. 언젠가 나도 부고를 내고 죽음의 행렬에 들 것이라 생각을 하니 불현 듯 남은 생의 애착이 생기고 동시에 나의 인생 마지막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하게 되었다. 현재 74세, 앞으로 살면 길게 잡아도 10~20년, 최대 94살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삶의 질이 높아지는 인생이 아니라 병원에서 수명을 연장하는데 급급할 것이니 차라리 삶을 마감하는 존엄사법에 준해 연명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길을 선택 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 된다. 지금부터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죽음을 어떤 방법으로 준비할 것인가’라고 생각해보고 먼저, 죽음 이후에 장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자연에 묻힐 생각으로 수목원 나무 아래에 흙으로 온 몸이 돌아가는 것이 성경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 산을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서서히 알아보고 준비할 생각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또한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더 많은 집중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최근에 일간지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더욱 아름다운 죽음의 준비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고인은 95세로 하늘나라에 간 윤보희 전 이화여대 음악과 교수, 독립협회의 창립 주역인 윤치호의 딸이자, 한국 민중 신학을 개척하고 이화여대 인문과 학장을 지낸 현영학 (1921~2004)목사의 아내이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을 설득해 수많은 피난민들을 구한 현봉학과 멕시코 대사를 지낸 현시학, 저널리스트 피터 현 등이 현영학 목사의 친동생들이다. 15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노 교수 피아니스트인 윤 전 사모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연명 치료를 사양하고 병원 문을 스스로 나온 그녀는 퇴원 당일 미용실로 가서 예쁘게 머리단장을 곱게 하고 그에겐 보물 1호였던 피아노를 조카에게 주었다. 그 피아노는 친오빠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던 윤기선과 함께 쳤던 피아노 다. 더구나 남에게 패 끼치기 싫어 한 윤 교수는 피아노 옮길 차량 운송비와 기사 품삯을 봉투에 넣어 따로 준비 한 깔끔한 성격이었다. 말년까지 자신을 돌봐주었던 손아래 동서의 친아들에게 자기가 살던 집을 고스란히 이전 등기까지 하고 집안에 자기가 사용한 물건 들은 깨끗이 정리해 집을 비워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삶을 조용히 잠자듯이 마감했다. 고인이 남긴 유언은 세 가지 첫째, 부의금은 절대 받지 마라. 둘째, 염을 할 때 신체를 끈으로 묶지 마라. 셋째, 얼굴에는 보자기를 덮지 마라. 스스로 선택한 존엄한 죽음의 모습이 가히 아름답지 않는가? 나도 이런 죽음을 닮아 가고 싶다. 단지 수목 나무 밑 팻말에 적는다면 ‘여기 예수 믿고 평생 글 쓰다가 하늘나라로 간사람 신이건’으로 남기고 싶다. 이런 죽음을 실천하고 싶지 않는가 성경에 므두셀라는 인류 중 오래 산 사람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현시대는 100살 되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미국의 글 쓰는 의사 아툴가완다의 책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말이 있다. ‘평소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가진 재물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고 가장 현명한 결단이다’고 했다. 아옹다옹 부모 재산 가지고 싸우지 말고 서로 가난한 형제에겐 좀 더 나눠주고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가 정신을 보면 밝은 사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70부터는 덤으로 산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우리들의 삶이 아름답게 보여 질것이다. 100살이 된 연세대 원로 교수인 김형석 교수는 그의 저서 ‘백년을 살아 보니’ 책에서 “죽음의 그림자가가 살며시 내게 다가오고 있는데 본인은 애써 ‘나는 아직 일러’ 라고 생각을 덮어 버리기가 싶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어김없이 세월과 건강에 반비례해서 우리 곁으로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그는 또한 이제 “삶을 어떻게 하면 마무리 할 수가 있을까”하고 “죽음은 결국 두렵지가 않다”고 말하면서 “뭔가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고, 내가 있어서 행복 한 사람이 있었고, 내가 있어서 인생을 아름답게 한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있어서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이 있었다면 그게 저한테는 행복한 것 이지요”라고 깔끔하게 인생 100년의 삶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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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6-11
  • [역사현장]故 김길창 목사의 사학 설립과 형제 간의 불화음?
    ▲ 故김길창목사(1892~1977) 전국에 사립학교를 가장 많이 설립 한 인사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故 김길창 목사를 지목할 수 있다. 경성대학교를 위시하여 남성학원, 훈성학원, 그리고 국성학원 안에 무려 중고, 합쳐 7개나 갖고 있는 유일 한 기독교 학교 아성의 금자탑을 쌓은 어른이 김 길창 목사다. 경남 고성을 고향을 두고 일찍이 후학 교육만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는‘교육 없이는 전도도 없고, 교육 없이는 애국 없으며, 교육 없이는 소망없다’는 교육 절대주의 신념에 찬 결과로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워 학원 선교에 눈을 떤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시대에 친일 인사로 몰려 해방 후엔 통합 총회에서 부총회장이 총회장에 못 올라 간 유일한 목사이기도 한 역사의 아픈 상처도 남겼다. 그러나 그런 불명예는 뒤로 하고 오로지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학원 선교에 매진하면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고 하여 부산에 남이 이루지 못한 남성여자 중 고교를 세웠고, 남성초등학교, 대동중‧고교, 경성전자고, 계성정보고교, 그리고 한성학원인 경성대학교까지 세운 사학설립의 공로자로 자타가 인정한 특출한 이시대의 목회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가문은 어떠한가? 지난 5월18일 동구 범일동 소재 일본식음식점에서 오랜만에 만난 교계 인사는 다름 아닌 경성대학교의 부총장을 역임하고 설립자 김길창 목사의 기념사업 후원회이사장이자 부산 경실련 상임고문을 역임하고 지금도 여전히 부산 시민사회단체 총연합 상임대표, 건강한 부산만들기 시민연합 상임대표, 공명 선거실천 부산 협의회 상임대표 등 부산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운동의 대부인 이종석 회장 (수영로교회 은퇴안수집사)을 만났다. 최근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하여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서 교원노조운동으로 강제 퇴직 및 6개월간 감금당해 옥살이로 재심 판결이 무죄가 되어 50년이 지난 이때에 비로소 누명을 벗게 되어서 2년 전에 하늘나라에 간 사모 김 권사 (수영로교회)가 이 기쁜 소식을 못 본 것이 매우 한스럽다고 했다. 그 당시 6개월 동안 군사 수사요원들에 의해 끌려 간 뒤 6개월 만에 서울 중앙 법원에서 남편과 면회도 허용이 안돼 법원에 출정하는 그 시간 멀리서 얼굴만 바라보고 부산으로 돌아 간 아내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 무죄선고 받는 중에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아내가 이 사실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며 마음이 징하고 눈물이 났다고 노년이 다 된 어른이 애써 그때를 떠올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이종석회장의 사모는 김길창 목사의 외아들 고 김근제 선생의 사모와 친 형제 동생이어서 지금의 설립자 손자로 있는 고 김대성 전 총장, 김대륙 장로(수영로교회 은퇴장로), 그리고 그의 동생 김대호 장로(항서교회 선임장로) 남자 삼형제의 이모이고 이모부이다. 외가 쪽에서 제일 연장자인 가까운 친족관계이다. 지금도 해마다 김길창 설립자 기념사업 후원회에서 교회 당회장 추천을 받은 건실한 청소년 20명에게 각각 100만원 씩 장학금 2천만 원을 수여 하여 설립자의 사랑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설립자의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을 이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불화음이 싹트고있는 고귀한 집안의 형제간의 갈등에 매우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조용히 사정을 물었다. 그래도 친척 가운데 가장 어른이신 이종석회장이 가족 형제간의 교통정리를 왜 안하고 계시는가? 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뜻밖에도 사실 얼마 전 김대륙 장로가 아들 문제로 법원으로 부터 학교 이사장을 할수 없는 상황아래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 앉았을 때 이종석회장이 직접 찾아가 “동생 대호한테 이사장 자리를 물러 주었으면 한다”고 간청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제간의 사소한 갈등과 불화로 도무지 화해가 안 된다”며 지금은 아들 친구에게 이사장 자리를 주고 있는 안타가운 집안 사정에 가슴이 아팠다는 것 이었다. 남은 세 형제가 교회 장로이고 한 분 형님 대륙은 은퇴를 했지만 여동생(미국 체류)동생 대호는 95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건실 한 동생인데도 서로 좀 싸웠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세운 학교 과업을 친 동생을 배제하고 남한테 이사장 자리를 주었다는 소식에 의아했다. 물론 형 입장에서는 동생의 아들이 형을 모욕하는 언사와 행동을 해서 동생한테는 절대 물려줄 수 없다는 간접 관계자의 소리를 들었다. 이종석회장은 대학은 그렇다 해도 다른 남성이나 훈성, 국성 학원 등 다른 학교마저도 서로 나눠 줄 수가 있거늘 이것마저 배제 할 경우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라고 매우 우려 하시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필자에게 말했다. 설립자가 만일 살아있거나 큰 형인 김대성 이사장이 살아 계셨다면 이러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의아심을 갖게 된다. 필자는 살아생전 김길창 목사가 같은 고향이라서 영도 사택에 가서 자서전을 이정실 학교 교목과 함께 서술하고 마지막 기독교 연합총회 교단을 만들 때에 교계 신문에 교단 설립 배경과 성명서 초안을 한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던 팩트가 생각난다. “여보게 신기자! 별일 없으면 우리집에 좀 올 수 없겠나” 라고 불러 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 흘렀다. 설립자는 재산 모으려고 학교 설립한 것이 아니고 이 나라 젊은 이들이 깨어 일어나 배워서 나라를 지키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학원 복음화를 위해 매진해 왔던 그 어른의 높은 뜻이 손자들에 의해 꽃 피고 열매맺는 것을 원하는 소망을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故 김길창 목사는 “내가 죽기 전에, 찬송과 유언도 녹음해 놓겠다.”고 말한 내용을 후대 손자들은 새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신이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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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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