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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부산장신대 총장 선임 스타트
    9월 18~19일 제주도에서 부산장신대 이사, 교수, 총동문회 임원 등 35명이 모여 워크샵을 가졌다. 총동문회측은 차기총장은 목회 경험이 있으면서 덕망과 열정이 있는 분을 강력히 추천 건의했다고 한다. 이사장 김임권 장로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학대학 총장 선출은 달라야 한다. 세상 CEO 선출하듯 해서는 안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세상적인 스펙보다 인성과 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선출방법과 선출기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교계 안팎에서 벌써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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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9-20
  • ‘만국회의’는 신천지 행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대표 이만희 교주, HWPL) 주최로 소위 지구촌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염원한다는 ‘만국회의’가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2018년 9월 17일~19일 개최됐다. 이 행사는 표면적으로 ‘세계평화’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이만희 교주 신격화와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세력과시용 행사라는 것이 기독교계 내 평가다. 인천교계와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이하 전피연) 회원들이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끝내 행사는 강행됐다. 인천시설공단측은 “관련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허가된 사항을 취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피연은 “HWPL과 ‘신천지’는 별도의 등록 단체이나 ‘이만희’라는 주최 책임자가 동일인이며, 그동안 진행된 만국회의 행사 내용을 보면 △일사불란한 카드섹션 △북한군을 능가하는 열병식 △신천지 전국 지파별 참석 △성인 기저귀 착용 △이만희 교주 등 신천지 주요 인사 참석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평화를 사칭한 교주 신격화 및 내부결속 행사’라는 분석이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소 권남궤 실장은 “만국회의를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가지로 분석된다. 자신들이 사교집단이라는 지적에 대해 ‘대외적인 공신력’을 얻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내부결속을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평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지만, 사실상 이만희와 신천지를 위한 행사”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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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0
  • 신천지와 흡사한 동방번개
    이단 동방번개(전능신교)에 대한 경계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장 진용식 목사는 “신천지처럼 퍼져가기 전에 전능신교를 막아야 한다. 신천지처럼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능신교는 동방번개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마태복음 24:27절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에서 나온 명칭. 재림주가 동편에서 온다는 것으로 왜곡해 동방번개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동방번개의 포교방법이 신천지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신천지가 추수꾼을 정통교회에 보내 교인을 빼내는 방법을 사용해 왔던 것처럼 동방번개도 내부정탐꾼을 정통교회에 들여보내 교인들을 빼가기 때문이다. 이들도 성경공부를 시키는데, 신천지처럼 교회밖에서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다. 진용식 목사는 “신천지와 흡사하다. 공격적인 포교방법으로 분명 한국교회에 큰 피해를 줄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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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0
  • “먼저 사과부터 해라”
    부기총 사태와 관련해서 교계 언론사들이 양쪽(임원회-자문단)을 합동인터뷰 하기 위해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자문단쪽 관계자는 “좋다. 이번 기회에 누가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명백히 밝혀 보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론사 쪽에서 토론회도 제안해 줬으면 좋겠다. 교계 지도자를 모아 놓고, 양쪽 몇분이 나와서 진지한 토론을 펼쳤으면 좋겠다. 꼭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임원진 쪽은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 모 기자가 A임원에게 합동인터뷰를 요청하자, A 임원은 “먼저 사과부터 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기자가 “무슨 사과를 하라는 것이냐?”고 묻자 “기사 쓰지 말라고 했는데 기사 썼잖아. 거기에 대한 사과부터 하세요”라고 전해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계기자들은 “목사에게 목회하지 말라는 말하고 무엇이 다른가?”, “교계 언론사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다음에 다시 인터뷰 한다면, 그 말한 부분에 대한 사과부터 받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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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0
  • 명성교회, 총신대 문제 가장 큰 이슈
    10일 총회가 시작되는 장자교단 통합과 합동 교단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명성교회와 총신대 문제다. 예장통합은 명성교회 문제로 첫날부터 혼란스러울 전망이다. 장신대 학생들과 세습을 반대하는 기관과 관계자들이 대거 총회장소로 몰려올 예정이다. 총대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합동측은 총신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교육부로부터 승인 취소 처분을 받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임시이사를 선임한 상태다. 하지만 김영우 전 총장, 안명환 전 재단이사장직무대행등 법인 이사들은 지난 8월 27일 서울행정법원에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반면 총신대 학생들은 소송 기각을 위한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학생들은 “전 이사회가 다시 총신대에 들어온다면 그동안 학교 구성원, 총회, 동문이 노력해 온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며 반대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합동측 총대들이 이번 총신대 사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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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0
  • 고 박영훈 장로(명예원장)의 서거 1주기 맞이하여(2)
    2.인재를 모우고 양성하는 일이다 박영훈 원장은 항상 앞날을 멀리 바라보고 인재를 모우고 양성하여야 하다고 역설하였다. 이 때부터 의과대학을 염두에 두고 구상을 한 것이다. 유능한 진료의사 초빙을 위해 전국을 다니고 미국 재미교포 의사와 접촉도 하였다. 암센터를 개원하기 위하여 연세암센터 방사선치료 전문의사인 김 교수를 주 2회 진료하게 한 일, 미국에서 방사선 치료의사인 염하룡 교수를 초빙 채용하여 근무, 이 일은 고인과 미국 벤하파운데이숀 재단의 故 하병국 목사를 현지의 해외부장으로 임명 활동하였다. 1981년 이후 의과대학 설립이후에 기초와 임상의 여러 분야의 교수를 서울, 대전, 대구 등 초빙 채용과 미국, 유럽에서도 기초, 임상교수를 초빙 채용하였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행정직으로 서판수 장로로 하여금 미국의 병원에 3개월간 연수 교육을 실시해 병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서판수 장로는 “고인이 인재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3. 의료인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설립과 고신대학 육성과 신학대학원 수도권 이전으로 교단에 기여하는 일이다. 1) 먼저 의과대학의 설립은 고신교단과 고신대학의 변화를 주는 시발점이다. 박영훈 원장은 1976년 다시 병원에 부임 하면서부터 병원이 살길은 의과대학의 설립 뿐이다는 것을 강조했다. 1978년도부터 교단과 대학의 반대에도 의과대학 인가 신청을 이사회를 설득하여 신청 하였으나 기각 되었다. 교단의 일부 경북노회 인사들과 대학의 구성원 일부가 교육부에 진정과 민원을 제기한 일로 인하여 문제가 되었다. 박 원장은 1980년 1월부터 의과대학 설립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여 고려학원 이사장 故 박두욱 목사와 학장인 故 이근삼 목사를 설득하여 교육부에 신청을 접수하였다. 이 때에도 교단의 경북노회 일부 인사들과 대학의 일부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어려움이 예상 되었다. 이 당시 정부는 국보위의 임시 정부 체제였다. 문공 분과위원회에서 심의가 되고 교육부를 통하여 대통령 권한 대행이 결정한다. 박 원장과 병원의 간부와 서판수 장로는 3월부터 10월초까지 월 3회 서울을 방문, 해당 위원과 교육부를 방문해 인가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수집하여 방안을 강구하는 일을 하였다. 이 당시 국보위 문공분과 위원장은 기독교인 오모 장군, 간사는 서모 장군, 청와대 문공비서가 이모 장관(박 원장의 친구)이다. 이 세 분은 고신 교단이 일본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단이고, 정치성이 없는 교단이며, 병원의 설립목적에 부합하여 사회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980년 10월 2일 드디어 박 원장의 숙원인 의과대학 인가가 방송을 통하여 교육부에서 발표 되었다. 조건은 고신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여 결정한 것이다. 이 때에 고신교단 총회가 서울에서 개회 중에 의과대학 허가로 교명 변경에 대한 총회 승인 절차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어 하루 종일 의사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회의가 진행되지 않자 김경래 장로(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유명한 말을 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총대 여러분 애굽 군사가 뒤에 추격해 오는데 모세가 언제 의논하고 허락받아 홍해를 건널 수 있습니까? 일단 건너고 볼 일이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결국은 이사장과 학장의 사과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 일은 고신 역사의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인가 과정에서 박 원장과 서판수 장로는 서울 출장 시에 식사 및 교통비 외는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고한 두 분의 집에 냉방기구가 없는 것을 보고, 에어컨 두 대를 구입해 기증 한 것이 전부의 의과대학 인가 경비이므로 서 장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도우심으로 역사하신 것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후에도 고신대학의 인문, 자연계 학과 증설에도 기여한 것은 교단과 고신대학교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의과대학의 신설로 기독교인 의사 배출은 해외 선교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독의사로 인하여 주님의 사명인 가난한 자와 고통 받는 환자를 위하여 전국에서 헌신하는 고신대학 의과대학 출신들은 박 원장의 순고한 설립정신을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계속)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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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0
  • 총신대 재단이사 승인 취소
    교육부가 총신대 재단이사회 전원에 대해 승인취소를 단행하고 지난 22일 총신대에 통보했다. 김영우 총장 등 이사 15명은 앞으로 5년 동안 학교 임원을 맡을 수 없다. 교육부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임시이사를 총신대에 파송할 예정이다. 이번 교육부 조치에 대해 현 재단측은 법적 대응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학생들은 재단 이사들과 보직교수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교육부가 지난 4월에 내린 김영우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재단이사들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면서 법원에 ‘교육부 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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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8-29
  • ‘대학진단평가’ 기독대학들 희비
    23일 오후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최종 결과 발표가 있었다. 지난 6월 1차 발표에서 ‘자율개선대학’에 포함되지 못한 동서대와 부산장신대가 이번 최종결과발표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동서대는 ‘역량강화대학’에 포함된 반면, 부산장신대는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II’에 포함됐다. 지난 1차 발표에서 ‘자율개선대학’에 포함된 고신대, 경성대, 부산외대의 경우 정원감축 권고가 제외되고 일반재정 지원과 특수목적 재정지원사업 참여가 가능하다. 또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이 지원된다. 반면 ‘역량강화대학’은 정원감축이 권고되고, 조건부 일반재정 지원이 이뤄진다.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II'에 포함된 부산장신대의 경우 정원감축권고와 일반재정 및 특수목적 재정지원이 제한되고,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도 전면 제한된다. 일부에서는 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되면 사실상 폐교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부산장신대의 경우 통합측 7개 대학 중 유일하게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학사운영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장신대, 영남신대, 한일장신 등 통합측 나머지 대학의 경우 역량평가에 지원하지 않아 진단제외 대학에 포함됐다. 진단제외대학들은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평균수준의 정원 감축을 해야 한다. 사실상 재정지원제한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대학은 교단과 교회의 지원과 후원으로 학사운영을 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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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08-29
  • 고 박영훈 장로(명예원장)의 서거 1주기 맞이하여(1)
    유은 박영훈 장로는 1930년 8월 23일에 때어난 2017년 8월 31일 88세에 서거했다. 고인은 평생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근면하고, 겸손함과 복음병원, 교단, 대학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다. 고 장기려 원장은 복음병원의 시작에 공헌하였다면, 고 박영훈 원장은 교단, 대학, 병원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했다. 근 40년을 모셨던 서판수 장로(전 병원 행정처장)는 고인이 된 박영훈 장로의 1주기를 맞이하여 고인이 고신교단과 고신대학, 복음병원을 위하여 회생과 헌신과 봉사하신 삶을 회고한다며,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서 장로는 거창창남교회 출신으로 1968년 10월28일에 당시 서무과장인 이재술 장로의 소개로 복음병원에 경리담당자로 입사했다. 이 때 고인은 미국 하버드 대학병원에서 연수 중이므로 뵙지 못했고 병원장인 고 장기려 원장을 만났다. 이날 오후 5시경 사택에서 입사 인사를 드릴 때 서 장로의 손을 잡고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때 서 장로는 역시 장기려 원장은 겸손하고 존경을 받을 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 장로의 병원 업무는 병원의 살림을 사는 경리업무와 야간 당직 등 일인 2역을 해야 할 상황으로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 당시 병원의 재정은 좋은 편이다. 부산시내 병원 중 유일하게 보너스 200%을 주는 병원이고, 유능한 외과계 의료인이 모이는 병원이었다. 고인의 미국 하버드 대학병원 연수는 1968년부터 1월부터 1969년 2월까지였다. 연수의 경비로 병원에서는 가족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국의 체류경비는 부산 국제시장에 소재한 비니루상사(주) 고 양재원 사장(전 거창대성고등학교 이사장)이 월 1,000불을 부담했다. 또한 고 장기려 원장의 사택 건축비와 현 복음병원 1동 3층 병동 특실의 공사비를 기증했다. 이 분은 당시 서무과장 이재술 장로의 고향 친구이다. 서 장로와 고 박영훈 장로의 만남은 1969년 3월이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병원에 외과부장 겸 외과과장으로 근무하며 병원의 살림살이를 관여하는 자리였다. 고인이 미국 연수 기간 동안에 가정의 여러가지 일들을 보살핀 것에 감사하며, 귀국 후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면서 병원의 현안에 대한 일들을 나눈 일이 있다. 이 때 고인의 생각은 병원이 현재의 상황에서 안주하지 말고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인재를 모으고 양성하는 일, 병원의 암센터 건립과 시설 장비를 보완하는 일, 의료인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설립과 고신대학육성, 신학대학원 수도권 이전으로 교단에 기여하기 위해 병원의 경영을 이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그러나 1971년 후반기에 병원에 시련이 다가왔다. 이재술 서무과장의 사직과 이사회 이사간의 분쟁이 시작하여 법정 고소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희생자가 생겨 고인이 괴로워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사회의 분쟁과 1972년 부산대와 경북대 출신 의사간의 소소한 일로 고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병원을 떠나 침례병원 외과부장으로 이동해 좋은 조건으로 근무했다. 이사회의 새로운 구성과 행정처장(B장로)이 밖에서 부임하여 1975년 1월에 서 장로는 경리계장에서 원무과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근무했다. 병원의 내분 이후 경영의 악순환으로 어렵고 사채를 이용하여 자금 조달을 하는 실정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사회(이사장 H 목사)에서는 병원의 경영진단을 실시해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고인 박영훈 장로를 다시 모시는 것을 결의 하였다. 결의 내용은 고 장기려 원장은 61세 정년 명예원장으로 하고, 고인을 2대 병원장으로 70세까지 평생의 신분보장하고 경영권, 인사권 등의 전권을 주는 조건이었다. 1975년 11월에 서 장로는 고인과 시내 모처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병원의 현안과 앞으로의 대안 등을 논의하였다. 1976년 1월 1일로 고인이 진료부장으로 취임, 6월 21일에 병원장으로 취임하고 고 장기려 병원장은 명예원장으로 추대하여 평생을 사택과 급여를 드리는 것으로 하여 이 약속은 고인이 돌아가기 전까지 이행하였다. 고인이 취임하면서 서 장로는 1976년 1월 1일부로 총무(경리)과장으로 발령, 다시 병원의 살림살이를 맡게 되었다. 고인이 계획해 추진한 일들을 정리하여 보면 1. 암센터 건립하는 일을 먼저 추진하였다. 고인은 미국에서 연수 중에 연구한 간 이식수술을 개의 시험으로 성공한 후 간암 환자의 간 절제 수술 등을 시술하였고, 이후에 치료 시설이 없을 환자가 서울 연세 암센터로 이전하는 현실을 보고 암 센터의 건립이 시급함을 인지했다. 이 당시 전임자가 병원 2동 건물을 건립하다가 중단한 곳에 암 센터로 용도 변경하여 재추진하기로 하고 병원사정이 어려우므로 건축은 부민교회 이모 장로에게 병원 형편대로 건축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착공하여 완공하였다. 장비는 고인 정기상 장로가 스펙을 작성하였고, 서 장로는 자금조달을 위하여 한국개발리스(주)와 절충하였다. 이때 한국개발리스(주)에 고인 남영환 원목실장의 자녀가 근무하여 도움을 받았고 암치료기구의 제작사가 일본 NEC사로 리스회사는 일본이 출자한 회사이므로 2백만불의 장비를 구입하여 암센터를 1978년에 개원하였다. 이 암센터의 개원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고인 집념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당시 복음병원이 암센터를 개원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복음병원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노후화된 시설과 장비 보완에 고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인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는 고 정기상 장로와 미국의 고 하병국 목사이다. 이를 실행한 이는 서 장로였다. 건물의 증축과 개축은 1.2.3.5동은 고인의 생각으로 이루어졌고 주요 장비인 CT는 부산에서는 최초로 1978년에 암센터의 개원과 동시에 설치 가동하여 영호남 지역의 주민의 진별 진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할 수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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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8-08-27
  • 부산의 한 건물에 임대했던 곳에 대통령 두 명이 탄생되다
    세상에 이런 일도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부산의 어느 한 건물에서 일국의 대통령 2명이나 탄생 된 곳이 있어 지금도 화젯거리다. 부산시 서구 부민동 동아대(구 부산지방법원) 입구에서 부민소방서 바로 옆 4층짜리 건물에는 1층은 남경복국집 간판이 있고 2층부터 변호사 노문현, 권혁권, 최성주, 김외숙, 정재성, 문재인, 허진호 변호사의 간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1976년부터 10여 년간 이 건물에서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탄압 받았던 재야 세력, 노동자, 학생들의 정의로운 변호를 위해 힘썼던 민주 변호사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건물에서 2명의 대통령이 나온 것은 보기 드문 사실이다. 지금도 이 건물에는 ‘바보 밀면’이라는 음식점이 영업하고 있다. 그곳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故 노무현 대통령의 합동 법률 사무실’이라는 표시판을 세워놓고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영화 ‘변호인’에서 보여주듯이 부림사건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변호를 실천했던 분들이 이제는 빛을 보게 되었다. 허진호 변호사는 일찍이 수영로교회 장로로 시무하면서 민주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노무현정권 시절엔 법률구조 공단 이사장으로 있었다. 정재영 변호사는 故 노무현 변호사의 조카사위다. 한 때 고려학원 관선 시절 이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변호사 개업을 시작하기 전 김광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문재인, 노무현 변호사가 김 변호사에게 연수(사사)를 배워 따로 독립해 나갔다. ▲미 문화원 방화 사건에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 1982년 3월 18일은 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부산이라는 항구 도시에 집중되었다. 부산 중구 대청동 중심거리 광복동과 대청동, 중앙동을 연결한 중심에 미국 문화 봉사 단체인 미문화원(USIS)에 학생들이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한 학생이 사망하고 여러 사람이 부상을 입어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의 학교에 다니는 고신대학의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저지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교계와 사회에 충격의 파장이 매우 컸다. 주범 문부식은 그 당시 고신대 신학과 3학년에 재학하다 휴학 중이었고, 그를 도와 공동 행동했던 김은숙은 같은 대학 기독교교육학과 2학년 재학생, 그리고 신설된 의예과에 처음으로 입학한 최중원, 이미옥도 함께 공모 했던 사건이었다. 이들은 광주사태에 대한 주한 미군이 군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했다는 의미에서 우방 미국에 대한 분노의 화살이 미문화원이라는 과녁을 향해 맞혀졌던 것이다. 아마도 전국 대학 가운데서 고신대라는 학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이가 많았을 당시, 이 사건으로 전 매스컴이 고신대라는 이름을 거론하여 본의 아니게 홍보가 된 것이었다. 진보교단의 대학이라면 몰라도 고신대라는 부산의 보수교단 직영학교가 전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의예과 첫 1회 재학생 80명 중 그런 역사의식에 눈을 뜬 것은 흔치않은 학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어느덧 고신대복음병원 병원장 자리에 제1회 입학생인 임학 원장의 뒤를 이어 2회 최영식 원장이 자리에 앉았다. 역사와 함께 자리를 잡아 가는 고신대 의예과는 2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입지가 높아가고 있다. 그 당시만해도 의예과 입학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20대 1의 경쟁을 제치고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했다. 故 김은숙은 한신대학 학장을 역임한 김정준 학장의 조카로 매우 영리한 엘리트였다. 아마도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요직에 있었을 것이다. 문부식은 출판업 대표를 하다가 야당에서 보수여당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요직도 없이 평범한 출판업자로 되었다. 그리고 의예과에서 퇴학당한 최중원과 이미옥은 5년 뒤 YS정권시절 다시 복학하여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무료변호에 나섰던 故 김광일, 故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가 소외되고 힘 없었던 이들의 친구가 되고 도와주었던 것이다. 부림사건의 시국사건에 관련 되었던 이상경씨는 부산대 대학병원 상임감사가 되고, 2018년도 와서야 부산대학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고 이주학 감리교 목사이다. 조태원씨도 부산 도시철도의 감사로 한 때 근무했다. 재야인사 대부분 곤혹을 치루었던 부산의 시국사범들 대부분이 문재인 정부의 요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은 인사라 할까 옛 동지들을 보답하는 것에는 의리가 있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故 유기선 장로(유기선소아과의원, 부산영락교회)도 보수동 책방골목 앞에서 병원을 하면서 재야인사들을 병원원장실에서 비밀회합 장소로 제공하면서 지원했던 병원 구석진 방에서 이 나라 민족동지들을 모아 의논하고 재정적 뒷받침을 한 것은 과거 故 유계준 장로가 평양 산정현교회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도와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던 그 피가 아들 유기선 장로에게도 스며들어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것은 부전자전이 현실화된 것이다. 신이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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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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