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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림 유계준 장로 가문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2)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2019년도, 유계준 장로가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고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 등 기독 인사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분단이 일어났던 100년 전 평양 땅이었다면, 그 당시 30대 청년 고 유기선(유계준장로의 3남) 장로는 그의 선친의 조국에 대한 독립을 위한 애착이었던,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 안에 일어났던, 유신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자유 민주 국가로 만들기 위해 한 몸을 던졌던 유기선 장로가 행동했던 1970년~1980년 사이에 부산 민주 항쟁의 밑거름과 영양분을 제공한 어른이다. 바로 부산에 뜻있는 기독교 목사, 장로들이 자장분에 기름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그 중심에는 부산시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끼고 있는 중부교회와 교회 바로 앞 도로변에 위치한 “유기선 소아과의원” 간판아래 부산교계 뜻있는 민주인사 ‘故최성묵 목사, 송기인 신부, 故오수영 신부, 故김광일 장로 변호사, 故임기윤목사, 故우창웅 교수, 故심응섭 목사, 박광선 목사, 박효섭 목사’등 불과 10여명 미만의 민주인사들이 모여 1974년 5월 24일 ‘부산 인권 선교 협의회’란 부산 최초 저항 조직을 신·구교를 초월하여 조직한 범 민주 인사들의 레스탕 운동의 효시가 되어 결성 한 장소가 아무도 모르게 유기선소아과 원장 집무실에서 결성이 이루어졌다. 그때만 해도 주·야로 정보과 형사와 중앙정보부 부산 분실, 보안사 부산 지부 관계하는 인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살폈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필자인 교계 기자한테도 무엇을 하는 회합인지 모르게 단순히 그저 친목모임으로 모이는데 행여나 이상하게 방해 할까봐 필자보고 밖에서 동태를 좀 살피라고 일러 주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의논하는지를 전혀 모르게 비밀에 붙여진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교회 출석하는 집사인 필자보고 별거 아니고 하도 방해를 하니 시선을 따돌리기 위해 “이날 유기선 장로 생일 초청 자리”라고만 알려 주고는 비밀에 붙여진 것이다. 한 2~3일 지나서야 모임의 성격과 이름, 행동 지침을 알 수 있었다. 귀신도 모르게 결성한 이 모임 때문에 정보기관에서는 관계 출입하는 인사들에게 시말서를 쓰게 하여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들었다. 이 모임을 통해 주 목요기도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전국 곳곳에서 초청된 중요 강사로는 ‘문익환 목사, 그의 동생 문동환 목사, 한완상 장로, 서남동 교수, 김동길 교수 등 수도권에서 유신독재 정권과 투쟁하는 민주인사 거의 대부분이 부산 중부교회에서 매주 목요, 금요기도회에 학생, 청년, 평신도들이 줄을 이어 참석하여 민주 항쟁의 불을 붙여 나갔다. 집회하는 날에는 교회 주변 길목에는 각 대학 학생처장, 과장들이 누가 들어가나 하고 일일이 대학마다 체크를 하는 바람에 여기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옷이며 머리와 마스크를 하는 변장으로 출입하는 광경이 눈에 띄어 누구인 줄 몰라 학생 주임, 과장들이 확인하느라고 쩔쩔 매는 것도 목격 할 수 있었다. ▲유기선 장로 결혼식 비화 고인이 된 유기선 장로와 그의 부인 박화선 권사(부산영락교회)와의 결혼식날 일화가 유명했던 사실이 있다. 부인 박화선 권사는 일본 동지사대학을 나왔던 여성 엘리트 규수였다. 기선은 아버지한테 “제가 하는 결혼이니 제 뜻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결혼하겠습니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의 생각이 중심이 되고 저는 그저 따라야만 하는 결혼이라면 저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겠습니다”, “도대체 네 생각이 무엇이냐? 네 뜻대로 하겠다는 말이 무엇인가?”,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완강히 버티었다. 기선의 결혼식날이 왔다. 1)예물 보내는 허례와 낭비는 일체 배제하고 2)결혼식날 신랑, 신부 승용차 일체 거부 3)축하금 사절 4)결혼식 날짜는 1938년 9월 29일 오후 5시(이유는 9월 29일은 기선의 생일, 오후 5시는 큰 형님이 계시는 평양 기독병원 내과과장이 환자 돌보는 4시까지 돌보고 올 수 있도록) 5)신혼여행은 없음. 그들 두 부부는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하여 축사, 축하는 없었는데 하객 중에 손을 높이 들고 나오는 분이 “나는 조만식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결혼식은 처음보고 정말 모범적인 결혼식입니다”고 즉석에서 멘트 하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신부와 마주 앉아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조국을 위해 애국가 4절을 틀리지 않고 부르는게 아닌가? 그때는 애국가를 부르면 구속되는 때에도 아랑곳 않고 신혼 초야를 이렇게 보내게 된 것이다. 마칠 때 즈음 애국가 4절까지 불렸던 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조국을 사랑하라는 뜻을 심어주었다는 특이한 결혼식이었다. 유기선 장로는 평양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 유계준 장로를 도와 약국(반도제약회사)을 경영 종사을 하여 월남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법조 길을 걷지 않고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결국 의사로의 한 평생을 보낸 것이다. 어느 날 필자가 만난 자리에서 “장로님은 왜 법 전공을 하면서 판·검사 길을 걷지 않고 의사 에 종사 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유 장로 왈 “하도 대한민국 국내 정치하는 분들 대부분들 인사들이 유명 대학 법대 출신들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이따위 정치하는 분들 보고 구역질이 나서 이래 안되겠다하여 의사자격 시험에 도전하였다”고 사연을 들려 주었다. 그럴 것이 이 나라에 중요 정치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유명 대학 법대 출신이고 판·검사, 변호사 사법계인사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유기선 장로의 가훈은 ‘기도하고 노력하여 순교의 피를 빛내 보자’ 그의 이미지는 카이저 수염을 하고 다녔다. 키는 162센티이고 마치 등소평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늘 아침 새벽기도하고 오면 멀지 않는 용두산공원에 올라가 한 바퀴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시켰다. 하루는 우연하게 필자와 마주 앉은 점심시간에 부산영락교회가 분규로 매우 혼란스럽던 시절이었다. “장로님 고현봉 목사님이 고명자 집사와의 그런 이상한 소문을 믿습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그는 “나는 그런 소문에는 관심이 없고, 고 목사님이 월남하여 양딸로 입양한 사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홀로 있는 목사님께 딸이 봉양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이상한 관계는 추호도, 생각도, 그런 짓은 절대 안 할 어른으로 존경한다. 좀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교인들의 소리에 현혹 된 것이 탈이었지 그만한 목사님이 별로 없지 않는가? 너무 부정적으로 여기지 마시오”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 듣고는 대인다운 어른으로 여겼다. 결국 유기선 장로는 훗날 고 목사와 결별하고 통합 부산노회 산하 부산영락교회 하단에 있는 교회에서 부인 박화선 권사와 함께 원로 은퇴로 하늘나라로 소풍 갔다. 신이건 장로 <대동강의 십자가 책>(저자 김호민 목사)에서 참조하고 70년대 후반은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 본 팩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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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2
  • 부산장신대는 행정 공백 상태(?)
    부산장신대 김임권 이사장의 유지이사 임기가 완료되는 시점이 금년 1월15일. 작년 10월 취임했기 때문에 4개월짜리 이사장이 된 셈이다. 여기에 탁지일 총장 직무대행도 사표를 제출해 2019학년도 졸업식과 입학식에 대한 행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 2019년 신입생도 미달 상태라 학교에 대한 걱정이 큰 상황이다. 이사장 김임권 장로에 대한 유지이사직이 이사회가 정한 정년 70세에 해당 된 상황이다. 이사회가 총회에 질의 한 결과 총회 규칙부가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 장신대의 경우 유지이사직에 대해 고시영 목사도 은퇴한 후로도 직무하는 관례가 있었으나, 이 경우 이사회가 법 이전 만장일치로 가결 할 때는 가능 했지만, 부산장신대 이사회는 “법이요”를 들고 나와 이사장 임기 문제는 결국 무산 되고 말았다. 그런 과정에 김임권 이사장한테 모 중진 목사가 지난 토요일 중재안을 가지고 나와 빅딜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중재안은 ‘민경진 교수를 총장으로’, ‘김임권 이사장은 각서를 쓰고 연말까지 근무’, ‘공개사과하고 약속한 기부금 2억원 공탁’이다. 그러하면 총회질의 한 것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김 이사장은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하고 총회 결정을 따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연말 일부 이사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사들이 말장난 하면서 흥정하는데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 불쾌한 말을 하고 이사회 장소를 떠났다”고 했다. 또 “일부 이사들이 일부 교수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각종 고소 고발 사건의 주체들이며, 책임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지금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 이사장은 “권 처장을 이유 없이 해고하라고 하고, 손 교수 해임 건을 반대하라고 한다”며 “이사들이 이사회의 결정 사항을 반대하는 일들이 자행되는 마당에 어찌 이사장 직무를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가?”라고 분개했다. 이사장 임기 문제에 대해서는 “이사장 임기문제 가지고 총회 질의 한다고 해서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떠날 명분이 주어졌는데, 어떻게 안나올 수 있는가”라며 부산장신대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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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9-01-22
  • 미림 유계준 장로 가문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1)
    한국교회 130년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물량주의에 물이 들어 기복주의에 메몰 되어 버린 지가 그 여태였으며, 허울 좋은 명예와 자리다툼에서 분쟁의 씨앗이 번져 오염된 지가 여태였던가, 무조건 교회만 부흥시켜 대형교회로 만들어 권좌에 앉으면 그만이란 착각에 빠져 버린 지가 그 얼마였던가. 이제 초대교회 흔적이 차츰 지워가는 이때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진 한 가문이 있어 한국교회 자존심을 살리게 하고, 한국교회 순교의 정체성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평양 산정현교회 출신 유계준 장로 가문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가 평양 대동강에서 이 땅의 첫 순교의 피를 뿌렸다면 84년이 흘러 산정현교회 유계준 장로가 대동강에 다시 순교의 십자가가 우리 영혼 속에 길이 유산으로 남아 흐르고 있다. 유계준 장로는 1905년 마포삼열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유계준 장로는 죽음도 불사했다. 그는 독립운동 및 임시정부의 연통제 요원으로 일제에 항거하였으며 독립신문 평남 지역 반포 책임을 맡아 나라 사랑에 뜨거운 신앙을 불 태웠다. 예수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는가?(눅18:8)”라고 탄식했던 그 모습대로 행동하며 살았던 믿음을 지켜 왔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한결같이 복을 받고 뛰어난 자랑스런 믿음의 가문으로 남아 있다는 점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필자는 2018년 2월에 편찬한 ‘대동강의 십자가’란 집필을 한 서울 산정현교회 김호민 목사가 보내 준 책을 틈나는대로 읽다가 부산영락교회 고 유기선 장로(유계준 장로의 셋째 아들)와 70-80년대 박정희 유신 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배후에서 협력한 유기선 장로의 행적과 그의 자손에 대해 알게 되어 2019년 새해 첫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려 한다. 유계준 장로는 8남매를 두었다. 1남 기원은 하버드대학교 의학박사로 국립의료원장을 지냈고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는데 차녀 정혜(이화여대 졸업)씨는 이한빈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과 결혼했다. 2남 기형씨는 의학박사로 부산대학교 교수로 오래동안 봉직하다가 정년 은퇴하였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는데 의사, 교수 집안이고, 3남 기선 장로는 의학 박사로 부산 유기선의원 원장으로 헌신했다. 부인 박화선 권사(부산YWCA 회장 역임)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사, 차남 정근 장로는 서울 법대를 나와 동원자원 개발 사장이고, 맏딸 정은 씨는 윤승연 서울 고법원장을 지낸 분이고 차녀도 강형욱 서울 나우병원장과 결혼했다. 4남 기천은 하버드대, 예일대학 법학박사로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부인 헬린 실빙 박사와 국제 결혼으로 슬하에 자녀가 없다. 5남 기진은 미국 시카고 외과의사로 봉직했다. 6남 기묵은 미국 캘리포니아 의학대학 내과 교수로 슬하에 딸이 소아과 의사다. 그리고 장녀 기욱은 동경여자의대를 나와 서울 누가의원 원장으로 봉직했다. 슬하에 아들 차한이는 서울의대를 나와 가천의대교수로 있고 딸 차송이도 서울 여대 교수로 있다. 차녀 기숙은 동경공립약대를 나와 뉴욕 생화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인 플리처의대 교수와 결혼, 아들 미로가 미국 프린스턴 교수로 있다. 하나님은 유계준 순교자의 가문에 의료계,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정치계 등 말할 수 없도록 풍성한 믿음의 가문으로 이어가는 일꾼으로, 그것도 국제적인 믿음의 유산으로 계승한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미국에는 신앙의 명문가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이 있다면 한국엔 신앙의 명문가로 꼽는다면 바로 유계준 장로 가문을 첫째로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아브라함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신 것처럼 순교자의 가문에도 이렇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신다는 교훈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고 놀랍도다.(계속)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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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7
  • 탄식소리뿐인 한국 교회여 어이할꼬!
    2018년 예수님이 오실 대강절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주여 어서 오소서”라고 기도하며 주의 재림을 희망과 기도 속에서 기다리는 절기를 보내고 있다. 이 기다림과 성탄은 세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과 둘째, 오늘도 우리 삶속으로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것은 인간 각자가 맺힌 것을 풀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랑의 미로를 보여 주는 것이며 셋째는 마지막 때인 종말에 심판의 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어서 빨리 이 땅에 평화의 온누리가 되도록 기도하며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맑고 순수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바라는 기다림은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성탄절의 소란스러움 속에 묻혀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 것이다. 특별히 금년 한국교회 10대 뉴스에 첫째와 둘째가 서울 명성교회 세습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편목 관련해 세상법정에서의 판결이 문제라는데 자성하며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집안 싸움하는 가운데 밖에서는 이를 비웃으며 이단들이 주인 노릇해 가며 일간지 전면 광고로 한국교회를 비웃고 비난하고 있는 지경이다. 매주 한 차례씩 전면광고로 공격적으로 시도하는데 한국교회 주요 대표기관들은 서로들 싸움박질 한데서야 되겠는가? 서울에는 한기총이 둘, 셋으로 분열되고 제2의 도시라 불리던 부산지역 교계는 부기총이 둘로 갈라져 정상화를 위한 부기총 바로세우기에 몰두하는 가운데 있다. 선배 원로 목사들을 후배들이 무더기 징계로 축출시키는 보복적 행태로 치닫고 있다. 볼썽사나운 징벌적 작태에 대항하여 검찰에 집단적 고발 사태로 대응하며 싸우는 사태를 보면서 주님 오시는 성탄을 맞이할 수가 있을까? 진정한 그리스도께 성탄예배드린다고 해도 주님은 외면할 것이다. 이번 주간에 안신이 장로와 김태동 목사가 덧없이 하늘 나라로 가셧다. 천국 가시는 길에 순서가 없듯이 우리 서로가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하며 아웅 다웅 싸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려놓고 주님 오실 대강절 마지막 주일 안으로 아니면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무조건 하나로 화해하며 서로 용서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것이다. 부기총의 지난 40년 동안 한번도 이렇게 분열되거나 갈라서는 일 없이 서로 의견 차이는 있어도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그때마다 서로 양해하고 잘 넘어 갔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이 되고 대립되는 그 근본 원인을 분석해 볼 때 바로 부산시로 부터 거액의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기부금 3억5천만원과 중구청으로 부터 1억원의 기부지원금으로 오는 잿밥에 관심이 있는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서울의 밥퍼 최일도 목사는 20년 동안 한푼도 정부 지자체로부터 트리문화축제 돈을 받지 않고 순수 독지가들로 부터 도움을 받고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의 투명성에 초점을 맞추어 깨끗한 재정 운영이 기본 핵심의 윤활유가 되었다는 것에 교훈을 삼아야 되지 않을까? 부기총은 10년 전 부터 지자제의 기부금 지원금을 받기위해 만든 사단법인의 운영과 갈등 그리고 이원 구조로 운영되는 부기총의 정관 등이 이번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는데 서로가 자성해야 할 것이다. 맘모니즘 이것이 문제의 핵심 키라면 이제 전문성이 있는 광복동 포럼 등과 중구청에 돌려주고 부기총 본래의 사업인 부활절 연합 예배와 신년하례회에만 열성을 보인다면 1800여 부산 교회들이 도와주고 지원하며 주님의 오실 대강절과 성탄절에 최대의 성탄 선물이 될 것이다. 제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여 정신 차리고 하나가 되어 수많은 이단, 적그리스도와 싸울 준비를 해야 주님이 즐겁게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될 것이다. 탄식소리뿐인 이 땅의 한국교회여 어이하겠는가?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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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6
  • 새에덴교회 담임 소강석 목사가 폭발적인 목회 성공을 이룬 원인은?
    ▲내가 만난 소강석 목사 얼굴에는 껌어 쩨쩨하고 마치 레슬린 선수 같기도 하고 작은체구에어떻게 보면 시골 촌사람 같아 보이는 그를 만난 것은 아마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 주최로 2013년 4월 부산 벡스코에서 부산 부활절 연합 집회 주강사로 초청하기위해 의전을 갖춘 벤즈 외제 승용차로 이성만 장로와 함께 김해 공항에서 부터 행사 장소까지 같이 동승했던 기억이 난다. 승용차 안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동정 인사를 나눈 소강석 목사의 첫 대면에서 그의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진솔한 느낌을 받아 퍽 재미있게 농담도 잘하시는 목회자로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필자가 출석하는 은성교회에 부흥회 강사로 초청한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물론 함께 동승한 이성만 장로 아들이 단국대 교수로 있으면서 새에덴교회에 갓 출석한 총각 교수가 이 장로에게 바짝 다가서는 소 목사의 친절한 화술에도 감탄도 했지만 끈득지게 파고 드는 그의 접근성에 모두 다 손발 들었다. 반드시 자기교회 교인으로 잡아 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파고들어 교수에 대한 정보를 아비로부터 얻어려는 집념에는 과히 고개를 숙일 지경이었다. 이 날 차안에서의 전도 전락은 100%성공에 가깝게 느껴졌다. 소위 동물의 세계에서 "한번 물면 목숨이 다하도록 놓지않는 동물세계 마냥 교인 전도는 바로 이것이다고 자타가 인정할 정도였다. 그 날 집회에 선 첫 말이 “어이엿 어리둥어엿이”하며 장례 새의 나가는 것에 종까지 흔드는 모습에 청중을 휘어잡는 화술에 녹을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날 새에덴교회는 30년 전 신학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 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88년 가락동 건물 지하에 세들어 첫 개척한 것이 오늘의 새에덴교회 시작이었다. 지하 단칸 공간에서 분당을 거쳐 현재 용인 죽전으로 세번씩이나 옮겨 오늘에 이른 것이 등록교인 4만 5천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4만5천명 출석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로 자리잡아 과거 전도사 시절에는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첫 사역지로 부임한 백함교회 교인 불과 10여명 남짓, 이곳에서 1981년 당시 광주신학교 2학년 초년 전도사였던 그는 겁도 없이 이곳 백암 마을은 "모두가 전도를 포기 한 곳"으로 알려진 불신의 사각지대에 들어왔으니 분명 젊은 전도사는 일주일도 견디지 못해 쫓겨날 것이다는 입소문에도 겁없이 달려 들었으니 패기만만한 신초라기 신핑 소 전도사가 300호 남짓한 마을에 들어와 전도할 때마다 '나가라고'고 뗏자을 놓아도 마다하지않고 먼저 어린 아이들에 다가가 웃기기도 하는 원멘 쇼로 꼬마 아이들을 불려 모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욕을 하면 '제가 소 씨이니 이왕이면 소 새끼'라고 불러 달라"며 그들 곁으로 다가 갔다, 마을 어른들이 필요없다"해도 모내기며 타작할 때가 되면 다가가 몸으로 떼우고 마을 애경사에도 빠지지않고 다닌 결과로 그를 마을 이웃 친구로 받아드리게 됐다, 그리하여 1984년 12월에 현재의 자리에 백암교회 헌당식을 올릴 수가 있었다, 이것이 고난 뒤에는 반듯이 기쁨과 영광이 온다는 신념과 믿음이 있어던 관계로 목회 인턴 과정을 경험한 곳이 바로 백암교회 사역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대형교회로 부흥시킬 수가 있을가? 물론 그의 장모님 권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나 소 목사는 설교를 할 경우 온 몸과 영혼을 다 바친다. 설교 중에 시인이 되어 시 낭송을 하는가 하며 때론 복음가수가 되어 한 곡조 부르고는 마음에 안차면 이선희 가수의 "J에게" 한 소절을 구설프게 댕긴다. 그래서 그의 전도 전락 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그야말로 국내 이름이 있는 대형가수 "남진, 송대관" 등 많는 가수들을 영입하여 교인으로 만들어 주변 불신자들이 유명 가수들 보려 오게 되게 연예인들 보려 온 전도 전락이 맞아 떨어진 최고의 설교 전락이 성공한 결실이다, 그뿐아니라 국내 유명 정치인들도 전도하여 이곳으로 예배드려는 바람이 불어 물결처럼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몰려 오기도 한다. 시인이자 문학도 였던 그의 열정은 기존 문인들을 능가할만큼 세련된 글 재능이 있다. 그리고 소 목사는 교회예산의 상당 부분을 나라를 위해 받친 소영웅들 해외에서 파병한 해외전우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보은 보답을 잊지 않게 예산을 투자하게 되니 내이웃을 내 몸과 같이 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실천하는 교회로 잡아가다 보니 이 교회야 말로 강당에서 외치는 말씀과 일치하는 행동을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오는 것이다. 다음세대의 희망이 새에덴교회을 보고 새 소망이 한국교회가 있다는 것을 희망의 메세지을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을 많은 젊은이들이 본 것이다. 사회와 국가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따뜻한 겨울 나기 나눔 축제를 열고 이웃에게로 다가가기 때문에 수많는 교인들과 불신자들이 이곳 새에덴교회로 몰려 든 이유이기도 한다는 교회사 연구 학자들이 나름대로 분석을 할 수가 있었다. 설교시간엔 웃음과 위트가 장내를 감동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기술이 있다.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소탈한 설교 내용이 모든 교인이 공감하는데 매력이 넘친다. 소 목사는 "대형교회라해서 교만에 빠지지않고 늘 백암교회 시절의 사역 초심처럼 겸손하게 교인들에게 다가가는 한국교회 롤 모델의 전형적인 순수한 목회자로 남기를 소원하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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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2
  • 이사장 이사 임기, 총회 헌법위에 질의키로
    지난 11월 20일 부산장신대 이사회 회의실에서 이사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임권 이사장 주재로 회의를 가졌다. 공석 중인 총장 직에 대해 총장청빙위원회 3명(이수부 목사, 이기주 목사, 이교현 장로)으로 하여금 총장 인선 선출을 위해 빠른 기일 안에 총장 청빙 후보를 내도록 결의했다. 이번 이사회 최대의 쟁점은 김임권 이사 임기가 2019년 1월 15일로 다가옴에 따라 유지이사인 김임권 이사의 임기 연장이 가능한지를 놓고 1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 총회 헌법위에 질의하기로 하여 이 문제는 질의에 답변을 받은 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유보했다. 만일 연령 70세 정년에 저촉되거나 총회파송 이사로 규정된다고 할 경우 김임권 이사장은 6개월짜리 이사장으로 물러나게 되는 초유의 단명되는 이사장이 되고 만다. 그러나 총회 파송 이사는 유지이사나 동문이사 외 이사만 총회가 파송하는 총회 교육부 학교 시행 규정에 정해놓고 있어 이 문제는 총회 헌법위가 어떻게 해석을 내어 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부산장신대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 제한 대학으로 학생 모집에 위축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사장 취임 불과 3개월만에 이런 문제로 난관에 봉착될 경우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김임권 이사장은 지인을 통해 “내가 6개월만 하기위해 이사장 취임 했겠는가?”라고 상당히 불쾌한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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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6
  • 이재록 목사 징역 15년
    이단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20대 여성 교인 8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록 목사는 징역 15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26부는 11월22일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들은 어려서부터 만민중앙성결교회에 다니며 이 목사를 신적 존재로 여기고 복종하는 것이 천국에 갈 길이라 믿었다. 이 목사는 지시에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장기간 상습적으로 추행하고 간음했다”며 성폭력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가장 행복하게 기억돼야 할 20대가 지우고 싶은 순간이 된 데 고통스러워하며 엄벌을 원하고 있다”며 “이 목사는 범행을 일체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의 회개편지 내용 등 내밀한 사생활까지 들춰 비난해 더 큰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한편, 만민중앙교회측은 “당회장님의 무고함을 믿기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바로 항소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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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11-26
  • 할아버지의 DNA가 손자에까지 이어진 가족 이야기
    한국의 전형적인 바보 같은 의사, 장기려 박사(1911~1995)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가 23년이 흘렀다. 4대에 걸친 의사 가문에 얽힌 가족 이야기를 언급할까 한다. 장기려 박사의 성품은 늘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인자한 얼굴을 지닌 채 호감을 느끼게 했다. 복음병원 원장을 재직하면서 직원들에게 얼굴 붉히게 큰 소리 한번 치거나 화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직원들의 한결같은 여론이다. 김동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같은 분은 “수많은 사람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중에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표정에 나타내며, 그의 성품과 인자하며 말씨 또한 어린아이 같고 그의 행동이 바보 같은 것을 두고 모두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할아버지 의사로 신실하고 다정 다감한 친구로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이 땅에 ‘작은 예수’라 일컫는다. 땅 한평 없는 그야말로 무소유로 평생을 살다가 1995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그토록 사모하던 아내가 있는 저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천진난만 한 미소에서 우리는 평화를 배웠고그의 잔잔한 미소는 사랑과 화평이 있는 이 땅의 하늘나라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 장기려 장로(산정현교회 원로)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에서 부유한 농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40년대 평양의 기독병원 외과과장으로 젊은 의사 세계에서는 ‘외과 수술의 명의’라는 소문이 널리 알려 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일성 맹장수술을 집도했다는 소문에 있어 필자가 어느날 정식으로 물어 보니 다른 동료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옆에서 도왔다는 것이 와전이 된 것 같다고 솔직한 대답을 해 주었다. 월남할 11월 가을 날 아내와 첫째아들과 딸 하나을 남겨 둔 채 둘째 아들 장가용의 손목을 잡고 단 둘이서 미군 짚차를 타고 내려 온 것이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독신으로 늘 부인과 두고 온 자녀를 그리며 살아왔다. 둘째 아들 가용씨는 서울 대학교 <해부학>의사에 이어 친 손자 장여구 교수(54세, 인재대 서울 백병원 외과 교수)도 평생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 온 할아버지처럼 인제대 백병원 의사, 간호사 50여명으로 구성된 블루크로 의료봉사단을 1997년 창단하여 ‘장기려 무료 진료소’를 만들어 노숙인과 노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 봉사를 해 오고 있다. 2001년부터 1년에 세 차례씩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찾아 지금까지 해외 빈민층 1만2000여 명을 무료로 진료해 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장 교수는 지난 1월 국민 추천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장 교수의 아들도 현재 중앙대 의대에 재학 중인 아들 까지 4대에 걸 친 의사 가문이다. 평소 장가용 교수 아들 집에는 잘 가지 않고 그렇게 잘 지내는 편이 아니었는가를 알고 있다. 장기원 교수(연세대 수학교수)가 그의 사촌이고 미국에는 사촌 장 교수의 딸 장혜원씨를 통해 이북에 있는 그의 아내로부터 그리운 안부 편지를 한 통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이북에 있는 딸도 의사로 재직하고 아들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다. 월남하여 온 이후로 복음병원을 거창고교 교장이었던 전영찬씨와 더불어 설립하는 과정에서 박영훈 그의 제자가 경북대 의대 학생으로 방학 때를 기해서 장 박사를 도와 왔던 계기가 평생을 장 박사 제자로 삼아왔다. 장 박사는 평소 그의 고향 용천 출신 함석헌옹을 데리고 한달씩 ‘부산모임’ 교회없는 ‘종들의 모임’으로 한때 무교회주의자였던 “내촌 우찌무라 간조선생의 정신에 심취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로 청십자 의료 보험조합을 창설하여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여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였다가 훗날에는 청십자복지회 법인으로 전환하여 그의 제자 양덕호 장로와 산정현교회 박영규 장로가 지금은 모라동에 이웃 주민들을 위한 모라 복지관등을 운영한 이시대의 숨은 의료계의 영웅으로 자리 매김했다. 어느 날 자기가 집도한 결핵 척추환자인 이동기씨를 일어서지도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를 위해 간병인을 붙여 간호 뿐아니라 아미동 골짜기에 조그만 한 집을 사 드려 기거케 하면서 훗날 그의 배후자를 중매까지 하여 결혼식에 주례를 직접하여 평생을 돌보는데 물질적으로 때론 손 수 쌀 포대를 들고 그의 생활에 보탬이 된 행동은 과연 이 시대의 작은 예수와 같은 행동을 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가 그의 뒤를 따라가 보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부산일보에 미담으로 크게 보도 된 적이 있다. 이동기씨 슬하에는 1남은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조종사가 되었고, 딸은 간호대학에 들어 가 훌륭한 나이팅게일을 받은 간호사가 된 사실을 본보에 보도 한 사실이 있다. 훗날 장박사에게 “왜 이토록 이 분한테 헌신하느냐?” 물었듯이 “내가 잘못 수술하여 이렇게 된 가난한 이웃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가운데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이동기씨는 누워서 “시”를 쓰고 “수필”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렇게 장박사는 의료인으로써 “책임”을 질 줄 아는 이 시대의 참 사도요 전도자이자 바보의사이다. 복음병원 옥탑 거실에는 그의 이북에 두고 온 처 자식 사진을 탁자위에 걸 쳐 놓고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오늘 나는 무엇 무엇을 하러 가요 오늘도 하나님 은혜로 잘 계신는 지요?”라고 안부로 영혼과 사랑의 대화를 나눠는 사실을 직접 듣고 적십자 로 통해 이산가족 찾는데 신청을 왜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였듯이 “나보다 더 급한 분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 말로 대화하고 있지 않느냐? 하늘 나라에 가면 영원히 만날 건데”라고 말을 들을 때 뭉클 하는 감정을 겨우 억제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한완상 통일부 장관이 직접 옥탑 방에 있는 장박사을 찿아 와서 이산가족 신청을 하면 꼭 가족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도 정중히 거절 한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바보’ 같기도 한편으론 숭고한 ‘성직자’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고 장기려 장로는 평화로운 하늘 보좌 옆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손 도순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그가 평소 즐겨 부르는 찬송 419장 “주 날개 및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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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6
  •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왜 침묵하고 있을까?(2)
    (이어서)둘째는, 1600억 가랑 되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교회부동산 건은 적어도 교회 당회 허락으로 시골 어려운 목회자 자녀들의 학사관 설치를 위해 전국 대도시에 ‘무료학사관’을 매입한 것이다. 학사관을 사들여 관리한 교회명의 부동산과 제주도 지역의 이기풍 목사 수양관이 너무 빚이 많아 경매 직전까지 간 역사관의 부채 탕감과 더불어 제주노회에 이양하는 동시에 바로 인접에 명성수양관 단층 규모의 수양관을 운영하고 있다. 김 목사가 38년 동안 허연 벌판과 같은 서울 명일동 버스주차장 근방에 명성교회를 개척한 이래로 한국교회 크고 작은 행사 특히 WCC부산 세계대회 유치 준비위원장으로 막대한 비용 경비이며 한국교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하루에 수십통의 도움을 요청하는 어려운 목회자 가족을 지금도 2백여 곳에 크고 작은 물질로 알게 모르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모르게 돕고 있는 후원처에 나가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금액이 김 목사의 지시로 지출되는 경우다. 한 실례로 부산에 어느 자립된 교회가 경매로 이단에 넘어 갈 위기가 있자 경매 입찰가로 2억원을 그냥 주어 교회를 구한 사건이 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일일이 당회와 제직회를 거쳐 결의하여 지출하기엔 긴급히 지급해야 할 한국교회 어려운 교회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단으로부터 교회가 경매로 넘어 가는 일일이 말 못하고 상의 없이 긴급을 요하는 사건 사고 때문에 담임목사 재량으로 재정 상당한 액수를 임의로 사용하도록 허용한 금전적인 액수를 ‘비자금’이라고 한다는 것은 특수한 한국교회 이면을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상황이 너무나 많다고 김 목사는 하루에 수십통의 구제 내용이 담긴 호소문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해외로 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해외 선교사들의 도움을 해결하려면 여러 교인들이 공항을 입출입 할 때에 일정한 금액을 잠시 지참했다가 어려운 선교사 돕는데 협력한 사례를 보고 해외 밀반출로 몰아세웠다는 것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는 점이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이 있듯이 때론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져 주어야 잠잠하고 평안해 지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시편 37장 11절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 하리로다” 더 큰 것을 소유하는 원리를 성경에서 배웠다는 말을 했다. 말년에 왜 자녀 세습에 얽매이게 할까 싶어 던진 질문에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김하나 목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으면서 본인도 반대하고 나섰고, 대중 앞에 공언한 사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목회 대물림이 이루어져야만이 교회가 평온하게 계승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교회 안의 중진 장로 대부분과 많은 교인들의 주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로지 교회를 지키기 위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떠나면 쪼개질 것으로 보느냐고 질문했더니 “대형교회의 경우 대개 담임목사 은퇴 후엔 분열되어 나눠지는 경우가 용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는 기우와 염려도 없지는 않다는 심정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고린도교회에 바울파, 아굴라파, 게바파 등 4파가 교회문제를 분파하듯이 명성교회 안에서의 분열도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는가는 기우도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풍겼다. 교회 대물림이 이젠 노회, 총회까지 비화된 마당에 일반 사회법정으로까지 갈 경우 또 한번 한국교회가 큰 수모를 당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총회 재판이 재심하기 전에 화해, 타협이 최상의 판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전망해 본다. 특별히 금년 종교개혁 101년 되는 해 종교개혁 달 10월에 교단 총회가 결의한 것은 존중되어져야 하지만, 법 이전에 협상과 타협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이 판결 못지 않는 최상의 판결이 아닐까 사료된다. 반드시 세상법으로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또 한번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게 될 것이 때문이다. 총회가 수습전권위를 내어서 교회측과 상생하는 타협안을 돌출하는 길만이 한국교회 101년 종교개혁의 달에 주는 최상의 선물이라 할 것이다. 시편 147편 2~3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간음한 여인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처럼.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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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2
  • 들통난 거짓말
    부기총 비상총회가 열리기 전날인 30일. 전권위원장 이성구 목사가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상총회가 불법이며, 법원 가처분신청까지 받아냈다는 것. 그리고 김종후 목사는 40회 총회에서 수석으로 결의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정기총회개최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소갑 제4호증’으로 ‘제40회 정기총회 회의록’을 제출하면서 김종후 목사가 수석상임회장이라는 내용이 교계에 공개됐다. 제40회기 정기총회 회의록에는 “임원선거 : 전형위원회 위원장 박성호 목사가 임원을 추천하니, 그대로 받기로 하고 미 선임된 임원은 대표회장, 목사상임회장, 장로상임회장, 사무총장에게 일임하여 전체임원회에 보고하고 추인 받기로 가결하다”는 내용 뒤 ‘대표회장 : 정성훈 목사(통합)’, ‘목사상임회장 : 김종후 목사(수석, 합동)’, ‘장로상임회장 : 한길윤 장로(고신)’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돈봉투도 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기자들은 받을 수 없다고 뛰쳐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총회 관계자는 “(돈봉투 살포)증거도 갖고 있다.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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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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