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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정체가 뭐지...?
    부기총 내 유일한 집사 임원이 있다. 과거 부기총은 목사, 장로들의 집합체였지만, 정관을 변경해서 지금은 집사도 임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집사임원에 대해 논란이 무성하다. 그 중 하나가 출석교회가 어디냐는 것이다. 2019년 12월 26일 부기총 ‘제42회 정기총회 참석자 명부’를 살펴보면 집사임원은 고신측 A 교회를 소속교회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2020년 12월 28일 ‘부기총 제43회 정기 총회 참석자 명단’에도 소속교회명이 A교회로 나와있다. 누가 봐도 A교회 집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보가 확인한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A교회 담임목사는 “그 분은 10년 전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뒤로 우리교회에 출석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담임목사는 “안수집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부모님은 아직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은 (10년 전 이후로)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헌법 제28조(교인의 자격)에는 ‘자격정지 : 교인이 신고 없이 교회를 떠나 의무를 행치 않고, 6개월을 경과하면 회원권이 정지되고, 1년을 경과하면 실종교인이 된다’고 나와 있고, 81조(무임집사)에는 ‘집사가 시무한 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이거하고, 그 교회에서 취임 받지 않았을 때, 이를 무임집사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부기총 정관 제3장 제8조(구성)에는 “본회는 회원, 대의원, 임원, 이사로 구성한다. 임원은 70세 이전의 시무 중인 자로 한다”고 나와 있다. 또 제5조(회원)에는 ‘본회의 회원은 본회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찬동하는 정통 기독교 교단에 소속된 교회와 기독교 단체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문제의 ‘집사임원’이 부기총 임원이나 법인 이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집사임원’이 부기총 법인 이사와 임원이 될 당시 명부에 기록되어 있던 A교회는 허위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이 부산의 기독교 대표기관의 임원을 맡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정도. 최근 부기총 문제를 검찰과 검찰에 고발한 증경회장단협의회 모 관계자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부기총 정관에 위배(시무 중인 자)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법인 이사직과 임원직을 사임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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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1-12-17
  • 한 교회에서 7년 목회한 목회자를 망신 주어 보내야 하는가?
    2021년 12월, 올해 마지막을 보내면서 매우 유쾌하지 못한 사건 사고가 코로나처럼 번져나가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한 해 마무리는 먹구름이 피어나서 한줄기 소나기로 변할 모양이다. 부산 어느 A교회에 실제 있었던 답답한 사건이다. 이 교회는 설립 70주년을 불과 2개월 남겨두고 있는 6.25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이다. 누구나 은퇴하면 목사 장로 할 것 없이 천대 꾸러기 신세가 된다. 이 교회 장로 은퇴자들 6명의 명의로 당회에 올린 공문 내용은 사건의 진실을 가려달라는 조사 진정서를 올렸다. 당회는 아예 이를 없던 것으로 철회시켰다. 조사 진정한 공문을 취하나 철회하는 절차조차 무시하고 말았던 것이다. 공문서나 진정서는 철회나 취하할 경우 절차가 있는 법이다. 6명의 서명자 중 한분의 은퇴장로가 시무장로들과 사건내용을 두고 주일날 대예배 들어가기 10분 전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그러면 철회하지”라고 한 마디 던진 것을 보고 아예 철회했다고 당회에서 일거에 없던 것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공식 문서나 진정서 공문의 문서를 한명의 은퇴장로가 던진 말을 그대로 받아 전체 서명한 은퇴장로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엄연한 당회원의 실수나 잘못이고 만일 이 문서를 아예 무시했다면 당회에서의 당회 직무를 소홀히 한 ‘직무태만’으로 볼 수가 있다. 불과 8년전 담임목사로부터 장로 안수 받은 분 중 3분이 장로 안수 준 담임목사를 사임하라고 앞장서고 있는 것이 참 이상하다. 이번 사건도 음해성의 이상한 여성관계 꼬리표를 붙여 사임하라고 압박하니 순순히 나갈 목회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시무장로들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교회에 함께 있을 수 없으니 나가 달라고 하면 말없이 떠나가는 목사가 있을까? 그래도 그 담임목사는 사임 압박을 받고 제직회 석상에서 까지 시무권사가 공개로 이상한 여성과 관련한 루머를 폭로하는 상황에서 이 교회는 희망도 미래도 없는 교회이구나 생각하여 일주일동안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 보고 거취를 밝히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 정식 당회에서 본인의 거취를 밝혔다. 최소한의 기간인 내년 10월까지 시무하면서 나갈 곳이 생기면 그 안에 나가고 만일 생기지 않는다면 개척할 준비 밖에 없다고 당회에 본인의 신상 거취를 밝혔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또 다른 목양지를 구하면 되지만 나이가 50대 후반인 목회자를 청빙하는 곳은 별로 없다. 이번 루머와 관련해 어느 유원지에서 목격했다는 집사와 당회에서 3자가 대질하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 목격자로부터 들은 시무장로 한 분이 참관 한다면 목사 측의 은퇴장로 두분을 입회 시키도록 담임 목사가 오라고 해서 간 대질심문자리 시무장로는 “왜 당회 허락도 없이 은퇴장로가 여기에 왔는가?”라며 항의하고 거부하는 바람에 퇴장 당하고 말았다. 결국 시무장로 한 명과 목격자, 담임목사 3명이 이 내용의 진위를 듣게 되었다. 문제는 목격했다고만 말했지 아무런 사진이나 증거는 내어 놓지 못하고 교회 담임목사 차량 번호만 밝힌 채 증거 될 만한 물증은 없었다고 한다. 교회 담임목사의 차량은 앞과 옆 모두 썬팅을 했기에 밖에서는 차량 안의 사람은 볼 수 없는 차량이었다. 무조건 목격했다고 우기는 그것도 증거 불충분에 지나지 않다고 목사는 말하고 있다. 그런 음해성 꼬리표를 달고 그냥 사임 할 수가 없는데 본인 거취를 밝혔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 지지하는 시무장로 3분과 반대하는 장로 4분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에서 지지교인도 있을 것이고 반대교인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외 유원지에 담임목사가 사모도 아닌 모르는 여인과 차 안에 있더라, 소위 “카더라” 말을 믿고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것도 사진도 찍은 것도 아닌 단순히 어느 집사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마치 ‘팩트’라고 우기는 상황이다. 차량 유리를 썬팅했기에 밖에서 차 안을 자세히 보지 않고는 전혀 분간 못하는데도 팩트라고 우기는 장로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금은 또 다른 대안으로 내년 1월부터 9월까지 안식년을 줄 테니 그 다음 스스로 사임하라는 선임장로 외 한명이 협상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 황당한 것은 당회에 올린 조사 진정서를 정기 제직회 석상에서 선임장로 한 분이 이 내용을 완전 공개하는 망신을 주었다고 한다. 정식 당회에 올린 공문을 정식 제직들 있는 자리에서 읽었다니 이것 또한 목사 망신 줘 사임 압박용으로 써 먹은 선임장로를 보고 항의하니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말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엄연히 목사 개인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법죄행위로 볼 수 있다. 선임장로는 교회가 어려울 때는 분별하여 중도에서 화해나 수습은 커녕 오히려 화약고에 불을 붙여 버렸다. 이런 사건이 있으면, 여러 선배들한테 문의해야 옳다. 교회 설립70년이 바로 코 앞인데 이제 좀 교회도 성숙해 질 때도 되었고 신중히 목회자의 진퇴문제를 결정할 경우는 성숙한 모습으로 외부에 말이 나가지 않고 일반 교인들도 모르게 처리하는 것이 시무장로들의 책무가 아닌가? 이 글을 꼭 써야 하는 것도 가슴 아픔 일이지만. 필자가 말로 아닌 글로 써는 것도 옳은 도리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언론이란 말이 아니고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글로 대신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으니 어쩌겠나? “그들에게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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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6
  •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부기총 증경회장단협의회와 부산자유기독인총연합회(이하 증경회장단)가 부기총에 공개 권고안을 발송 한 뒤 여기에 대한 답변을 30일까지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30일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자, “더 이상 대화는 없다. 이제는 부기총 개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때”라고 강공을 선언했다. 반면 부기총 모 임원은 “우리 입장은 지난번 교회복음신문을 통해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증경회장단은 “우리의 답변은 대표회장에게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신문에 나온 인물은 대표회장이 아닌 상임회장이다. 그리고 권고안을 통해 질의한 내용이 무척 많은데, (신문에는)대략 몇 개 정도만 포괄적으로 답변을 하고 있다”며 답변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증경회장단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지만, 현재로서는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된다. 이제는 부기총 개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기총은 최근 법인 이사회를 통해 그동안 트리축제 실행위원장으로 일해 왔던 S 장로에 대해 이사선임 당시 이사회 결의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사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며, 트리축제 실행위원장직도 함께 박탈했다. S 장로와 함께 일해 왔던 실행팀들도 아웃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트리축제 개막 5일을 남겨놓고 그동안 일해 왔던 사람들을 쫒아내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비판의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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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 안민 총장은 왜 후보 사퇴를 했을까?
    고신대 총장 후보 접수기간(22일부터 25일)이 끝난 다음날(26일) 오후 고신대 안민 총장이 후보 사퇴 의사를 법인이사들에게 밝혔다. 이보다 앞서 26일 오후 2시경 기자와 만난 안 총장은 사퇴 의사를 먼저 내비췄다. 안 총장은 “연임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이라면 소신껏 총장직을 수행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중대한 결심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퇴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고, 다만 “사퇴한다면, 총장직 이후(내년 1월 21일 이후) 사퇴하는 배경과 그 이유에 대해 솔직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이후 몇시간 뒤 문자로 법인 이사들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종철 이사장은 “나는 그날 오전에 사퇴 의사를 받았다. 참아 달라고 말했지만, 오후에 법인 이사들에게 문자로 사퇴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안다. 안타깝다”고 전했다. 최근 안 총장에 대한 불법 유인물이 법인 이사들에게 전해졌다. 고신의 고질병 중 하나인 기관장 선거때마다 불법 유인물이 이번에도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관계자는 “(유인물이)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유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 다만 다른 이유가 있으신 것 같다”며 “저 분의 성품으로는 재임 중에 (언론에)절대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다. 퇴임 이후 대학과 후임자(차기총장),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말씀은 있으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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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1-12-03
  • 교회 목회자도 역전 드라마가 될 수 있다
    과거 2002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로 인해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시했다. 410g의 축구공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때가 새삼 기억에 떠오른다. 후반전이 있다. 전반전에 아무리 잘 뛰어도 후반전에 잘 뛰지 않으면 승리 할 수 없다. 그러나 전반전에 잘 뛰지 못했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감독의 새로운 전략으로 후반전에 열심히 뛰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것이 축구 경기다. 그리고 전반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후반전에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도 있다. 일본과 호주 경기는 역전의 드라마였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는 전반전에 일본에 한 골을 내주었다. 이대로 끝나면 호주는 16강 첫 경기에서 지고 만다. 그러나 호주의 반격은 10분을 남겨 놓고 3골이나 넣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호주는 일본을 3대 1로 대승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도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전반전에 한 골을 먼저 내주었다. 전반전을 보고 있던 국민들은 허탈했다. 그러나 후반전의 경기는 달랐다. 결국 후반전에 두골을 추가하여 구사일생으로 16강을 바라보게 되었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후반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배우게 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 브리즈니츠 박사는 “어려움이나 편안함 보다는 희망과 절망이 인간에게나 모든 삶을 통해 중요한 문제이며 인간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어려울 때가 아니라 희망이 없을 때”라고 분석했다. 그 대표적인 목회자가 고 조용기 목사이다. 그는 조그마한 곳에서 돗자리 깔고서 몇 안되는 교인과 최자실 장모 신학동기와 가족 데리고 교회를 개척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도 시골에서 개척하여 울기도 많이 울었고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는 고신의대 교목으로 출발하여 하단 근처에 새소망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분립된 교회에서 불과 4~50명의 교인들이 모여 오늘의 3개의 성전, 1만명의 성도를 목회하는 목회자로 성공했다. 인생의 연습이 없는 것과 같이 교회 목회자도 대본도 각본도 없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걸어가는 사막과 같다. 오아시스를 만날 것인지 모르는 미로와 같다.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는 주어진다. 너무 경솔하여 실수를 해도 후반전에 잘 목회하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목회자를 자주 바꾸는 교회는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목회자라 할지라도 이를 당회원들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 교회 부흥은 커녕 교회가 분리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고 반토막이 나고 만다. 그리고 목회자가 자만과 교만에 빠져 교회를 무풍지대로 끌고 가는 목회자 역시 중도에서 하차하고 만다. 야밤에 장로 권사 부부가 번갈아 담임목회자 집에 전화해서 목회를 간섭했다가 목사는 당장 떠날 준비를 했다. 이런 목회자와 당회원은 오래 못가고 만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좋은 동반자 관계이다. 서로 도와주고 할 때만이 교회가 부흥한다. ▲목회자이든 사람이든 무엇으로 변화 될까? 우는 아이를 때려 보라. 절대 안 그친다. 그러나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젖을 물리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목회자는 무엇으로 변화 되는가? 잔소리도 아니고 교회를 떠나라고 아무리 다그쳐 보라. 위임목사인데 내가 왜 나가? 나이도 있고 다른데 오라고 하면 몰라도. 그래서 홧김에 뛰쳐 나간 목사는 지금 오갈데가 없어 서울에서 택시운전하며 생계를 꾸려 가고 있는 목사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교육도 설교도 협박도 아니다. 몽둥이를 들어서도 안된다. 제직회나 공개적으로 비난을 해도 절대 안 나간다. 나는 노회 소속이고 노회로부터 허락 받은 몸인데 교회 반토막 안 내는 것만해도 감사해야지 하고 버티고 만다. 부드러운 빗자루가 더러운 집안을 청소하게 만들지 나갈 곳을 만들어 주든지 피할 곳을 열어 주는 것이 기다림 뿐이다. 나가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개척할 자금을 주든지 부드럽게 사랑을 주고 관심을 베풀 때 감동을 느끼게 해서 나가게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욕강, 필이유수지(欲剛,必以柔守之), 욕강,필이약보지(欲强,必以弱保之), 굳세어지려면 부드러움으로 지켜야 하고, 강해지려면 약함으로 보존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방법은 무력이나 강제가 아니라 용서와 이해라는 사랑의 힘이다. 목회자도 인생 후반전에서야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비록 목회 일선에서 나가게 되었어도 후반전 목회의 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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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 대구 동일교회의 불가피한 선택(?)
    고신측 대구 동일교회(오현기 목사)가 지난 10월 31일 주일 공동의회를 열고 대구동부노회와 고신총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했다. 동일교회가 교단을 탈퇴한 배경은 교단법 문제와 관련이 있다. 현재 동일교회가 소재한 지역은 35층 지상복합단지가 들어서는 재개발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내년 2월까지 교회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대구시 동구쪽 부지 2,280평을 구입한 상황인데, 문제는 이 부지에서 직선거리 160m 인근에 고신측 A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고신 헌법적규칙 제3장 교회정치 제2조(개체교회의 설립)에는 ‘교회 설립시에는 부근교회와 직선거리 300미터 이상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A 교회측의 반발로 소속 노회인 대구동부노회가 이전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동일교회측은 답답하기만 하다. 동일교회 모 관계자는 “교단 탈퇴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교회는 어린이 집, 복지센터 같은 법인을 운영하기 때문에 대구시 동구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동구쪽에서)유일하게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땅은 거기 뿐인데, 노회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법 조문에는 개체교회의 ‘설립’에 관한 규정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설립이 아니라 ‘이전’이고, 재개발이라는 특수한 상황인데, 노회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교단을 탈퇴하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일부 노회어른들이 중재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금전적 보상’만 요구하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동일교회가 교단을 탈퇴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주일 전 공동의회 안건을 공지해야 하는데, 동일교회 한 주 전 주보에는 아무런 공지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구성원의 이의 제기가 없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동일교회 관계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당회와 성도들 모두 하나로 뭉쳐 있다. 내부적으로 문제제기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동일교회 교단탈퇴와 관련해 다시 조명되는 사건이 있다. 최근 참빛교회에서 분립개척한 행복한 교회의 경우 분립 개척한 바로 옆 건물(3m 거리)에 고신측 교회(하나교회)가 있지만, 경기서부노회가 분립개척을 허락한 바 있다. 같은 교단 안에서 어떤 노회는 되고, 어떤 노회는 왜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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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1-11-04
  • 호산나교회 개척 당시의 비화 - 새중앙교회 개척
    1979년 8월 어느 날 부산에서 발행하는 국제신문 <국제춘추 칼럼>난에 ‘가룟유다 예찬론’이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전국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칼럼을 직접 쓴 김광일 집사(변호사)는 판사의 법복을 벗고 첫 변호사 개업을 부산 부민동 당시 부산지방법원 정문 앞에 개업을 한 지 불과 6개월 가량 된 시기였다. 그가 출석한 교회는 부산중앙교회(중구 대청동 미문화원 뒤편)였고, 교회 내부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김상권 집사는 장년부 부장으로 “우리는 가룟유다 예찬론을 절대 반대한다”며 김광일 집사를 즉시 권징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김광일 집사를 동조한 쪽과 선명하게 갈라졌다. 김광일 집사는 가룟유다가 좋아서 예찬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 한국교회 시대상을 보아 너무 교계가 혼탁하고 교단은 교단대로 분열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어 이제는 구제불능이라고 느낀 나머지 교계를 정화하자는 차원에서 시의적절하게 역설적으로 풍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대쪽은 “한국교회와 합동교단과 부산중앙교회에 완전 먹칠을 한 것”이라며 교계와 교회 앞에 사과를 하지 않으면 당회가 즉시 징계를 요구하고 나셨다. 반대쪽 100여명과 원로목사 고 노진현 목사, 시무장로 3명이 “우리는 같이 신앙생활 할 수가 없다”면서 김상권 집사 자택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리고 둘째 주일은 지금의 부산 중부경찰서 바로 옆 건물 2층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중앙교회 담임은 강귀봉 목사였고 분립당시 시무장로 3명(정용수, 박현태, 신현덕 장로)였다. 김상권 집사는 장년회 임원회 결의로 김광일 집사를 권징할 것을 당회에 건의하도록 결의했지만 김광일 집사는 교계신문에 전면 해명광고를 게재했다. 그러나 여론은 사그라들지 못했다. 소문은 서울대 법대 출신 김광일과 경북대 법대 김상권 집사 대결이라고 회자되기도 했다. 교회를 분리해 나간 쪽은 새 담임목사를 청빙하기로 하여 김형대 목사를 선택하고 부산에서 처음으로 담임목사에게 자가용 승용차를 제공하고 47평 맨션아파트를 제공했다. 부산중앙교회는 그래도 분립해 나간 쪽에 개척 자금으로 3억 원과 묘지 대지 7만평을 줄 의사를 밝혔으나 반대측은 정중히 거절했다. 뜻밖에도 개척 소식을 들은 하단 반석교회 백준호 장로가 교회 성전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혀 흔쾌히 받아 그 부지위에 새중앙교회로 교회 신축을 하게 됐다. 그 자리에 짓는 성전은 방주형식으로 서울에서 붉은 벽돌 한 트럭을 실고 와서 벽돌 하나하나를 설탕물을 담가서 벽돌이 희게 피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쌓았다. 건축위원장은 담임목사가 맡고 총무를 김상권 집사에 맡겼다. 김상권 집사는 자기 재산 3분지 1을 교회 신축 헌금으로 헌납했다. 이후 헌당식과 더불어 김상권 장로 장립을 거창하게 거행했다. 김형대 목사는 새 성전 강당벽에 ‘7000명의 권솔들을 주옵소서’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새벽기도를 했지만 일반 성도들은 기가 차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김 목사의 기도 제목이 오늘날의 호산나교회를 있게 한 것”이라며 김상권 장로는 그 때를 회상했다. 성전건축이 완료되고 나서 반석교회 새중앙교회와 합병하자는 뜻에 동의하여 합병에 이르렀고 7년이 지난 후 김형대 목사를 내보내자는 측의 백준호 장로의 주장에 김상권 장로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또다시 백 장로와 싸울 수가 없어 교회를 조용히 떠나기로 했다. 한 달 간 시외 교회를 전전하다가 부산시내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오는 교회에 간다고 부부가 뜻을 모았는데 남부산교회 염원식 목사가 제일 먼저 함께 교회를 섬기자는 요청에 남부산교회에 등록하고 정착했다. 그런데 남부산교회 역시 신축 중에서 건축위원장 유 모 장로가 사업 부도가 났다. 위원장은 담임이 맡고 김상권 장로가 권한 대행을 맡아 실무의 모든 완공까지 헌신했다. 한편 새중앙교회는 김형대 목사가 사임하고 새 담임목사에 서울 사랑의교회(옥한흠 목사)의 부목으로 있었던 최홍준 목사를 청빙하게 됐다. 최 목사의 새로운 원대한 목회 비전이 펼쳐진 것이 강서구 명지동 매립지이지만 약 2만평의 종교부지를 불하받아 그 곳에 새 성전을 짓게 된 것이 오늘날 호산나교회가 된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하고 넘어 갈 것은 호산나교회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창기 개척 당시에 어려운 곤란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견디어 온 역사의 발자취를 반드시 교회 요람에 기록해 두고 다음세대들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기억하도록 새겨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산 증인은 91세의 교육가 출신 진도영 장로와 윤병양 장로(고인), 박현태 장로, 정용수 장로(고인), 신현덕 장로(고인) 그리고 김상권 장로(남부산교회 원로)가 1세대이다. 지금 살아남은 1세대 장로는 단 3명뿐이다. 고 김광일 장로의 부산중앙교회는 KBS 뒤 황령산 중턱에 크게 교회를 신축하여 교회를 부흥시켰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김광일 장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2대 비서실장을 지내 국가적 인물이 되고 나중에 지병으로 투병할 시절 양산 조그마한 거처에 있는 김 장로를 문안차 간 필자에게 “내가 교회와 사회에 짓은 죄 값을 받고 있다”고 고백한 김 장로를 보고 많이 울었다. 한편 김상권 장로는 고향 군위에 교회를 세우고 국내외 합쳐 14개 교회를 세웠다. ‘한국찬송가공회’의 재단 실무 편집 책임자로, 지금의 21세기 찬송가로 만드는데 주도하며 한국교회 교회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부산중앙교회하면 고 노진현 원로 목사, 김광일 원로 장로(고인), 김상권 원로장로를 배출한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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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1-10-28
  • 3가지 개악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개악’이라는 표현은 노동조합이 자주 쓰는 단어다. 뜻은 ‘고쳐서 도리어 더 나쁘게 함’이다. 최근 이 ‘개악’이라는 표현이 복음병원 노동조합이 발행하는 소식지 ‘그루터기’에 등장했다. 여기에는 “병원은 (임단협 합의)조인식 전날 잠정합의안을 보내면서 교섭 내내 거론 한 번 없었던 3가지 단협개악안을 보내왔고, 내용을 확인한 노동조합 전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며 “임의로 개악(추가)안을 내는 몰상식한 짓을 저질렀다”며 사측을 비난했다. 그렇치만 병원이 추가로 제안한 3가지 개악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 3가지 개악안은 무엇일까? 임단협 제15조(조합전임자 상근의 처우) 3항과 7항에 대한 삭제를 병원이 주장하고 나왔다. 3항은 ‘전임해제와 동시에 병원은 1호봉 승급하여 원직에 복귀시킨다’와 7항 ‘지부장의 대우는 부장급으로 하고, 기타 전임자는 과장급으로 한다’는 내용을 삭제하자는 내용이다. 또 마지막 한 가지는 이번 단협에서 양측이 합의한 것이 ‘노조전임자’라는 문구를 ‘유급 근로시간 면제자’로 명칭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노조전임자는 병원에서 임금을 받을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근로시간 면제자’로 고치자는 것이다. 반면 유급근로시간 면제자의 경우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통의 이해관계에 있는 활동’(노사교섭, 산업안전, 고충처리, 단체교섭 준비 등)에 관해서 근무시간으로 인정하여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근로시간면제자가 전임자와 구별되는 것은 사용발생시마다 사용자의 승인을 받거나, 연간단위 또는 일정기간 단위로 사용자에게 통보를 하고 근로시간면제 대상 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면제시간을 초과할 경우 원래 보직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도 전임자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병원(사측)이 앞으로 활동에 대한 보고와 승인을 받을 것을 요청한 것이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마지막 ‘개악’이다. 이번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3가지 개악’은 ‘과도한 처우를 제자리로 되돌리자는 것’과 ‘법에 나와 있는 것을 규정대로 하자는 것’을 ‘개악’(고쳐서 도리어 더 나쁘게 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쳐서 무엇이 더 나쁘다는 것인지 노동조합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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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1-10-22
  • 부끄러운 노회
    부산 장로교단 모 가을 정기 노회를 앞두고 일부 인사들이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들은 장로대로 임원을 하겠다고 금전살포, 음식제공(치킨 돌리기) 등 그야말로 유례가 없는 타락 선거를 했다고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무성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두어 선거관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선교부는 임원하겠다는 모 회원이 와서 금전살포로 매표행위를 했고, 이 같은 모 노회답지 못한 타락 선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에 항의 및 제보를 하고 있다. 하늘에 부끄럽지도 않는지 묻고 싶다. 그대 임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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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1-10-22
  • 한국교회 최초의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131년의 역사, 어제와 오늘
    1890년 10월 17일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연합기관이자 잡지사, 출판사로 처음 세워진 ‘대한기독교서회’는 올해로 131년,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 사상’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창립131주년 기념하며 특별한 이벤트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모금을 펼쳐 서회 직원들의 적은 정성들을 함께 모아 430여만 원을 NCCK를 통해 보냈다. 한국교회 신학사상을 논하는 자리라면 ‘기독교 사상’ 월간지를 뺄 수없는 독보적인 광장이다. 여기에서 한국교회 신학자와 신학교수들이 진보와 보수의 열띤 신학 논쟁을 펼쳐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던 여성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왔으며 여성들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써 왔다. 교회와 신학교의 가교역할은 물론 우리말 보급에도 기여하여 왔으며 일반인들의 가치관, 기독교의 가치관과 정체성에 남다르게 고취해 온 기독교서회의 공헌이 크다. 이때까지 책을 출판해 온 숫자만 해도무려 1만 5천여 권, 우리들에게 생소한 ‘새벗’이라든지 ‘다락방’ 등의 잡지도 여기에서 출판했고, 1951년 첫 교계신문인 ‘기독신보’도 발행하여 왔다. 처음 선교사들의 공헌도 컸지만 그 뒤 보조역할은 한국인 조사가 한글 보급과 공헌도 무시 못 한다. 이제 기독교서회는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 앞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영상 시대라고 하지만 종이로 만든 잡지와 신문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글자(활자)를 인쇄한 잡지나 교계신문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영원한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과거 서회 총무로 헌신한 고 조선출 목사나 KNCC총무를 지낸 고 김소영 목사들의 활약은 지대하다. 그들이 넘어져가는 기독교 서회를 일으켜 세웠다. “내 손 안에서 꿈틀 거리고 살아 움직인다”는 말과 같이 책 출판은 여전히 발행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업적과 행적이 고스란히 기록해서 후대에 남아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전자정보시대이지만 종이로 인쇄된 책이 출판되지 않는다면 다음세대들과 줄어드는 교회 청년들에게는 희망이 없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다. 문화의 영역에서의 책이나 신문의 영역은 실로 역사의 현장에서 다음세대들에게 유업으로 남겨주는 위대한 유산이다. 필자는 1970년~80년대에 교계기자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서회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으로 올바른 한국교회 신학사상을 보급하고 전하는 문서사역기관으로서 위대한 공헌을 한 것을 눈으로, 또 피부로 느낀 산증인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교계신문을 26년간 발행하고 40년간 교계신문에 종사하며 한 우물 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종이 미디어의 매력 속에 빠진 것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교계신문이나 기독교 잡지가 없었다면 이만큼 한국교회가 성장의 깃발을 휘날릴 수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교계의 문서선교와 한국교회개혁과 파수꾼으로 조그마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살아남을 신문은 살아남고, 폐간되는 신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련과 역경은 하나님께서 만든 기간이고 시험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수많은 교계신문도 이 기간 동안 스스로 자성하는 시간으로 삼아 한국교회에 보탬과 섬김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남은 여생동안 늘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살아간다”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서회 창간 131년을 축하하면서 교계신문을 발행하는 입장에서 뒤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로 삼고 싶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언16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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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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