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8(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사설

실시간 사설 기사

  •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서
    본격적인 여름 휴가절이다. 이번 여름휴가 장소를 결정하지 못했다면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를 추천하고자 한다. 부산에도 성지순례 코스길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소하다는 반응을 나타낸다. 인근 경남의 '주기철 목사기념관 - 호주선교사 기념묘원 - 손양원 목사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성지순례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아직까지 부산지역 성지순례길은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적인 가치나 접근성 면에서 부산지역 성지순례가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부산시 중구 광복동에는 ‘개신교 선교사 첫 기착지 표지석’이 만들어져 있다. 1994년 9월14일 알렌과 1885년 4월2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기착지다. 이들을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제물포(인천)로 떠났다. 여기서 차로 5분 거리인 부산시 중구 대청동에 소재한 복병산은 초기 선교사들의 묘지들이 안장된 곳이다. 이곳에는 호주선교사 묘지 7기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유실된 상태다. 여기서 영주동으로 차로 5분 거리에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초량교회(1891.4.15.)가 위치해 있다. 초량교회 역사관은 부산의 기독교 역사를 잘 증언해 주고 있다. 여기서 차로 10분 정도 더 가면 호주 선교사들이 설립한 부산진교회(1891.10.12.)가 소재해 있다. 두 교회 모두 12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부산진교회 맞은편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소재해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지역 3.1운동의 근원지로 유명하고, 건물자체로는 부산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될 정도로 호주선교사들이 지은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일신기독병원이 위치해 있다. 일신기독병원은 맥켄지 선교사의 딸 헬렌과 캐더린에 의해 1952년 설립됐다. 단일병원 중 출생아 숫자(296,000명)가 가장 많은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내에는 맥켄지 역사관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이처럼 부산지역 성지순례는 타 지역과 달리 도보로도 순례가 가능하다. 차로 이동 할 경우 4시간 이내 유적지들을 전부 돌아볼 수 있다. 이번 여름 아이들과 함께 부산지역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한번쯤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7-30
  • 교회에도 악플보다 락플을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악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악플은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갇히게 하고 우울증, 대인기피증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한다. 악플의 심각성이 나날이 심해지자 ‘락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즐거울 락(樂)을 써서, 사람에게 힘을 주고 들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댓글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이 내뱉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렇게 말이 무섭고 중요하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교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7월 한 달간 주일학교의 여름성경학교 및 수련회가 대부분 치러졌다. 매년 비슷하게 진행되는 수련회에 회의감이 들 수도 있고, 올해는 조금 다른 변화로 새로울 수도 있다. 2일이든 3일이든 몇 일간 진행되는 수련회를 위해 교역자와 교사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해왔다. 장소를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식사 및 간식을 고민하며 회의를 거듭 진행해 수련회를 마쳤다. 수련회를 하고 나면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부족함이 없을 수 없다. 미흡한 점이 눈에 띄게 된다. ‘이러면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다. 학생을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교우로서, 공동체를 책임져야할 리더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 순간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는 악플이다.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자극적이고 심한 악플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사람을 갇히게 하고 지치게 하는 악플이 될 수 있다. 피드백은 반드시 필요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거쳐야할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먼저 락플과 같은 말을 하자. 긴 시간 수련회를 하느라 피곤한 학생에게, 교사에게, 교역자에게 힘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락플을 해보자. 교회 내에서도 악플보다 락플이 많아 사람을 살리고,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말들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7-30
  • KBS 공영방송인가, 안티기독교방송인가?
    지난 6월 1일 사랑의교회는 그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수년 간 예배당을 지어 헌당식을 가졌다. KBS1은 이를 27일 저녁 메인 9시 뉴스에서, 뉴스 첫 꼭지로 사랑의교회 헌당(獻堂)을 부정적으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방송이 뉴스를 다룰 때에는 모든 뉴스가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뉴스의 첫머리에 두는 것은 상식적인 일. 그런데 KBS1 뉴스는 문 대통령이 G20 정상 회담에 참여하고 있으며, 각 나라의 정상들과 만나는 큰 뉴스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치고 사랑의교회에 관한 것을 보도했다. 그것도 26일 전에 헌당식을 했는데, 한참이 지난 뒤에 이를 보도하면서, 사랑의교회가 해당 구청에 허가를 받아 지은, 지하 점용에 대한 것을 크게 보도했다. 그것도 세 꼭지나 할애하는 파격(?)을 보이면서. 교회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 설정이다. 기독교를 공격해야만 하는, 어떤 조급증을 낼 일이 KBS에 있는 것인가? 이제는 공영방송인 KBS가 드러내 놓고 안티기독교 방송이 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KBS는 뉴스에서 사랑의교회 신도 수가 9만 명이라고 하면서, ‘공공시설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종교 생활과 수만 명이 이용하는 종교 시설은 공공성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교회건물이 관공서가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영업목적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인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대로, 종교 생활을 위해 수만 명이 모여서 사용하는 곳을 공공시설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또 KBS는 교회 철거 비용이 400억 원이 들어간다면서, 엄포를 놓고 있다. 사랑의교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예배당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방송이 이를 ‘철거비용’ 운운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랑의교회 건물은 이미 완공되었고, 또 헌당식까지 마쳤으며, KBS의 말대로 9만 명이 사용하는, 공적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KBS가 기독교 안티 방송이 아니고 공영방송이라면, 교회 헌당을 통하여 다른 문제점들이 없는 지를 짚어주는 것이 공영방송의 성격과 맞는다고 본다. 즉,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안전한가? 시민들의 실제적인 불편은 없는가를 살피고, 혹시 있다면, 이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방송을 하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써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영방송인 KBS가 파괴적인 보도에 치중하게 되는 것은,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뉴스의 중요성에서부터 갈피를 잃은 KBS는, 뉴스의 중대성부터 새롭게 인식하기를 바란다. 노골적으로 특정 종교를 죽이려는 공영방송의 엇나간 시도는 스스로 공영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됨을 잊지 말라.
    • 오피니언
    • 사설
    2019-07-09
  • 신천지만 이단인가?
    이단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국제청소년연합)가 금년에도 부산에서 월드문화캠프를 개최한다. 벌써 10년이 넘게 부산에서 이 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초창기보다 규모도 더 커져 현재 50개국 5천 여명의 전세계 청소년, 청년들이 참석하고 있고, 세계청소년부 장관포럼, 세계대학총장포럼, 대학생리더스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개최하고 있어서 지역의 정치 경제, 교육, 언론계가 주목하는 행사로 성장한 상황이다. 한마디로 매년 7월 초만 되면, 해운대 해수욕장 일대와 벡스코 등을 중심으로 부산일대가 들썩일 정도다. 하지만 이단이 주최하는 월드캠프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교계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치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모습이다. 일부 교계지도자들은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불가항력적이라고 목소리를 내어 보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무관심이 길어질수록 구원파는 부산을 자신들의 성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 교계 지도자는 “만약 이 행사를 신천지가 주최한다면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적 있다. 부산이 유독 신천지에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타 이단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산은 하나님의교회(안상홍 증인회)와 구원파(박옥수), JMS 등의 교세가 급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흔한 ‘1인 시위’라던지, 다음세대들이 이 행사에 빠지지 않도록 각 교회에 홍보하고, 이단세미나를 통해 예방하는 방법, 그리고 이단 행사에 참석하는 유명인이나 기업,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다양한 방법 등이 있지만, 지역교계가 월드캠프를 막기 위해 머리를 맞된 기억조차 없을 정도다. 지난 2013년 WCC 부산총회가 부산벡스코에서 개최됐다. 이때 WCC 총회를 반대하는 교계지도자와 성도들 약 1만 여명이 벡스코 앞에서 시위를 펼쳤다. 만약 구원파 박옥수의 월드캠프에 이 정도의 반대 시위를 펼쳤다면 과연 월드캠프가 부산에서 계속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이단에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들이 다시한번, 이단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7-09
  • 아동 학대와 ‘사랑의 매’는 구별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3일 ‘포용국가 아동 정책’을 발표하면서, 현행 민법에 있는 부모의 ‘훈육권’을 개정하기로 하였다. 민법 제915조에 보면 ‘친권자는 그 자(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징계’라는 말이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부모의 자녀에 대한 훈육을 말함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부당하게 학대를 가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정당하게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훈육함에 대해서도 무조건 국가에서 법률부터 ‘삭제’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훈육하는 것은, 자녀들이 아직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모르는데, 이에 반하여 잘못을 할 경우에는 그에 맞는 체벌과 교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정부에서는 해마다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을 고치기 위하여, 이런 발상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학대’와 ‘훈육’은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도 아동을 학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에서 법률로써 금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부모의 ‘훈육’에 대한 것은 인정하면서, 체벌의 정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녀들을 가장 잘 알고, 그들을 가까이에서 훈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2017년 복지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 체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8.3%가 나왔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26조 3항에 보면, ‘부모는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 지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여,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정부가 손 쉬운 방법을 선택하여, 무조건 자녀에 대한 부모의 훈육권을 법률에서 삭제하는 것부터 시행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하고, 국가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부모의 자녀 사랑과 훈육권에 대한 것을 일방적으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 미국 의회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적절한 방법으로 키울 수 있는 권한을 훼손 한다’는 이유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비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어린 아이들도 부당한 폭력이나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부모에 의한 훈육조차 국가가 근절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어린 아이들의 올바른 자람에 대한 방해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아동에 대한 복지는 강화해야 되지만, 부모에 의한 아동에 대한 교육과 훈계인 ‘사랑의 매’까지 근본적으로 막으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동에 대한 교육을 국가만이 전담하는 것은 아니며, 부모의 역할도 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아동정책을 새롭게 펼치는 것은 좋지만, 부모에 의한 자녀의 훈육 역할까지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자녀들의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성경에도 보면,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잠13:24) 또 ‘매와 꾸지람은 지혜를 얻게 만들어 주지만, 내버려 둔 자식은 그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고 말씀한다(잠29:15)
    • 오피니언
    • 사설
    2019-06-11
  • 신학대 기숙사의 새벽예배 규정을 고치라니...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모 신학대학의 기숙사 새벽예배 규정을 바꾸라는 권고 하였다. 신학대의 기숙사에는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 가운데, 목회자가 되기 위한 교역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을 비롯하여, 신학교 학부생 등 다양한 학생들이 입실하여 생활하고 있다. 신학대학의 기숙사는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 신학생 때부터 새벽예배를 통한 경건 훈련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숙사 입실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새벽예배 드리는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까지 받는다. 그런데 신학대학 기숙사에 입실한 한 학생이 ‘새벽 예배 참석을 강제하고, 불참 시 기숙사 퇴사를 조치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낸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 학생은 분명히 그런 사실을 알고 본인이 서명하고, 기숙사에 입실했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 학교는 신학대라는 특수한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곳으로 인지하고 갔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인권위가 기숙사의 규정을 바꾸라고 신학대학에 압력을 넣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인권’이란 아주 고상하고 아름다운 개념이, 무소불위의 국가 기관에 의하여 괴상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신학대학은 국민의 기본 권리인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헌법 20조)와 ‘교육의 자유’(헌법 31조)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며, 또한 기독교라는 종교의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그리고 신학대 기숙사에서의 새벽예배는 이런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신학생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권위가 이를 고치라는 것은, 결국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인권위의 지나친 월권이며, 한 학생의 진정을 듣는 척하며, 결국 한국 교회 전체를 허물려는 것은 아닌지, 한국교회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국가 기관이 의도를 가지고 교회를 허물려는 궤계(詭計)가 엿보인다면 한국 교회가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6-11
  • 서울시는 퀴어 축제를 불허해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서울 시민들과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5년부터 서울 광장에서 동성애 퀴어 축제를 허락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부당성과 서울광장 사용 목적에 위배된다는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 광장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서울 시민들의 재산이다. 그래서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이곳에 나와서 건전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에는 광장에 대한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가 있고, ‘시행규칙’이 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동성애자들이 벌인 퀴어 축제를 살펴보면, 음란성과 선정성, 음란물 등의 전시와 판매 행위, 모금 행위와 음주 행위, 그리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통행행위를 막고, 어린 자녀들과 동행하기 민망한 선정적인 모습까지 다양하고 지속적인 위반 행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시는 이를 묵인하고, 사용을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보면, 그 사용 목적을 정하고 있는데,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 공익적 행사 집회를 위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시장은 ‘광장의 조성 목적에 위배될 때’는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사용자가 ‘사용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불법행위가 난무했지만, 서울시장은 이런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난 8일 서울시의 20여명의 공무원들은 성명을 통해, ‘4년간 서울광장에서 시행된 퀴어축제가 그간 광장의 사용목적과 규칙을 위반하였으므로, 앞으로 퀴어행사 및 유사행사의 사용신고 시, 불수리할 것을 열린광장 운영시민위원회 및 서울시에 강력히 요청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만약 올해에도 서울시와 운영시민위원회가 시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외면한 채, 동성애 축제를 서울광장에서 열도록 허락한다면, 이는 권력의 남용이 되며, 시민들로부터 위임받는 운영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법과 기준이 무너지고, 원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는 서울 시민들의 광장이 아니라, ‘불법 광장’으로 둔갑할 것이다. 다시 한번 촉구하거니와 서울시는 2019년 동성애 퀴어축제를 서울광장에서 불허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음란의 분출구가 아니라, 일천만 서울시민들의 건전한 문화 활동의 건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5-27
  • 지자체의 ‘인권 조례’ 제정 문제는 없는가?
    최근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인권조례’ ‘시민(인권)교육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이런 조례들을 만드는 것은 합법적인가? 물론, 지자체들도 ‘헌법’과 ‘지방자치법’에서 정하는 대로 ‘조례’를 제정할 수는 있다. 헌법 제117조 제1항에서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지방자치법에도 제22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지자체가 ‘자치 사무’(주: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유 사무로 주민의 복리와 관련된 사무가 주가 된다)나 ‘단체위임사무’(주: 지자체가 법령에 의하여 국가 또는 다른 공공 단체로부터 위임받아 행하는 사무)에 관한 것은 가능하나, 국가사무에 관한 것은 원칙적으로 자치 조례의 제정 범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대법원 1992.7.28. 선고 92추31 판결, 1995.12.12. 선고 95추32 판결 등) 만약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위임 조례’로서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는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가 요구된다든지, 이에 관한 경비나 최종적인 책임 귀속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1999.9.17. 선고 99추30 판결, 2017.12.5. 선고 2016추5162 판결 등) 그러나 현재 각 지자체별로 만들어졌거나, 만들고 있는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시민인권조례’등은 문제점이 있다. ‘인권’에 관한 것은, 지자체의 사무가 아니라, 국가의 통일된 업무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을 다루는 기구는 국가인권위원회로, 국가의 독립적 기구이다. 그렇다면 국가기관에서 인권에 관한 것을 각 지자체에 위임한 법령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별로 ‘인권’에 관한 조례제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국가 사무에 대한 월권으로, 매우 위험하다. 이는 자칫하면 ‘조례’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을, 마치 지자체와 지자체장들이 업적 쌓기처럼 만들어서 시행하려 한다는 오해까지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의미가 있고 좋은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명백한 근거가 되는 법령이 없는데도, 이를 제정하고 주민들에게 강요하거나 학생들에게 권리를 주는 것은 ‘불법’일 수밖에 없다. 근거 없는 ‘위임 사무’로 지자체들이 주민들을 현혹하고 이를 잘 모르는 주민들에게 압력을 넣어서는 안 된다. 이는 법체계에 혼란을 주는 것이며, 지자체의 월권이며, 불법이다. 이제부터라도 각 지자체들은 어떤 ‘조례’를 제정함에 있어, 제대로 된 법령에 근거할 것이며, 만약 이를 어긴 것이라면 즉시 폐기하거나 중단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를 계속 이어간다면 사회적 혼란이 가속될 것이며, 자칫하면 반국가적 행위까지 되고 말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5-27
  • 부모를 신고하는 것이 인권이며 교육인가?
    자녀가 부모를 국가 기관에 신고하고, 서로 감시하는 체계가 있다면 그 가정은 과연 행복할까?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벌이려는 일이다. 최근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부모가 자녀의 E-메일을 열어본다든지, 여자아이에게 설거지를 시키면, 이를 인권 침해로 여겨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하든지, 지역 신문에 의견을 내라’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마치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 사회에서 벌어졌던 ‘5호 담당제’라는 제도를 연상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杞憂)인가? 해당 교과서는 동아출판사 중3 ‘사회2’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 이런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나친 인권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교과서에서마저 자신을 낳아 키워준 부모를 자녀가 국가기관에 신고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며 개인생활/가정생활/사회생활에서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며, 사회발전을 꾀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기성세대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람직한 경험을 전수시키는 것일 터인데, 그럼 자녀가 부모의 가정적 교육과 양육을 도외시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에 맞춰 부모를 국가기관에 신고하고 사회에 고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올바른 교육적 태도라는 말인가? 도대체 이런 교육을 시키라고 집필기준을 준 교육부와 이를 집필한 저자와 출판사는 뭔가? 진정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목적에 의하여, 부모와 자녀 세대를 불신하게 하고 부모에 의한 가정의 당연한 훈육까지도 불법으로 처벌하려 하는가? ‘이렇게 가르치라’는 이 같은 교과서 내용은 역사적인 가족전통과 보편적인 사회 구성원 등의 인식에도 부합할 수 없는 것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국가적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를 절대 반대 한다. 교육부는 이처럼 가족 내의 심각한 불신을 조장 할 수 있으며, 자녀들의 왜곡된 인권 인식을 가져올 수 있는 교육내용을 시정해야 할 것이며, 이 같은 교과서를 폐기할 것을 요청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5-13
  • 위기의 가정 교회가 마지막 보루다
    5월은 유독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날,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이 줄이어 있다. 여기에 5.18 민주화운동과 석가탄신일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기념하는 날’이 가장 많은 달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족과 가정을 위한 날이 유난히 많기 때문에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불리운다. 그런데 가정을 기념하는 날은 많지만, 현실은 가정 붕괴와 생명경시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미 자살율과 이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존속살인과 묻지마 살인 등이 증가하고 있으며,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일치를 선고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생명경시 풍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한해 110만 명에 가까운 생명들이 낙태에 의하여 사라져가고 있는데, 더 많은 생명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출산율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초부터 월별 신생아수가 2만 명대로 추락했고, 출산률 또한 부부당 1,00명이 붕괴되어 0.98명 전후에 이른다. 인구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젊은 층의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비혼(결혼을 하지 않고 미혼상태를 유지하는 것)상태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는 남보다 자신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기 만족의 삶으로 살아가려는 개인주의 사회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성애 문제와 차별금지법도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 동성애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사회 가족의 모습을 파괴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정하고 음란한 문화까지 조성하고 있다. 교회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영향력이 미비한 이때, 사탄 마귀는 ‘가정’을 파괴하고, 한국교회에 큰 도전을 던지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가정만큼은 한국교회가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05-1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