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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드리지 않는 교인이 교인인가?
    목회데이터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아예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과 7월을 비교한 통계에서는 수치로 고작 5%이지만, 교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더욱 크다. 분명히 교회 출석도 잘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던 성도들이 보이지 않는다. ‘믿는 가정’이라 생각했던 가정의 아이들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고 머리로 이해하지만, ‘다른 생활은 다 하면서 왜?’라는 의문이 마음에 남는다. 이미 매일 학교를 등교하고 학원도 다니고, 그 외 체육관, 수영장 등 다른 시설은 다 이용하면서 교회 주일학교만 보내지 않는 가정들을 보며 새삼 의아한 생각이 든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보내고 그 외 학원이나 모든 방과 후 이용하던 시설을 다 끊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조금씩 회복해가는 장년 성도들과 달리 주일학교 회복은 더뎌 보여 안타깝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발표를 보면 주일예배를 아예 드리지 않은 개신교인은 40대 이하 젊은 층과 직분 없는 성도, 신앙이 약한 기독교 입문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교회출석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교회와의 관계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할 때다. 나의 믿음은 어떤지 반성하게 되는 때이다. 주일날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이때, 평일에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돌아봐야 하는 시기이다. 우리의 삶을 뒤흔든 2020년이 끝나가고 있다. 예배드리지 않는 교인을 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연말을 맞아 우리의 삶을 점검하고 신앙을 점검하여 더 후회하기 전에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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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1-20
  •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아 먼저 우리를 돌아보자.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신교의 슬로건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개혁교회의 모토다. 종교개혁은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만,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났던 사건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늘 있어왔던 것이고 인간의 죄악으로 삐뚤어져 가는 믿음을 성경으로 되돌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지 질문해 보고 싶다. 교회 내 부패한 모습을 보면서 묵인하고 있지 않은지? 진실되게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최근 한국 교회의 상황은 개혁정신이 사라져 버리고 이미 얻은 것들을 지키고 그 가운데 안주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곧 교회의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실로 절망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얼마 전 모 리서치 조사에서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싶은’, ‘이중적인’, ‘사기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응답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추락했다.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세상)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도 있고, 억울한 하소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개혁기념을 맞아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변하고 우리가 더 낮아지고, 우리의 잘못을 회개해야 하는게 먼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때보다 종교개혁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아 개신교의 슬로건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개혁을 일궜던 개혁교회는 과거적, 일회적으로 개혁을 마친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개혁(reformanda)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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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1-06
  • 헌금이 더 오른 것이 성공한 목회인가?
    C 교회 사건과 관련해 참사모(담임목사를 지지하는)라는 임의단체가 특별재판국 설치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호소문을 총대들에게 수차례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증경총회장인 J 목사의 글을 첨부해 총대들에게 담임목사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J 목사의 글이 총회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나름 교단안에서 존경과 덕망을 받고 있던 J 목사가 한때 자신이 데리고 있던 후배목사(담임목사)를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J 목사와 담임목사는 한때 A 교회에서 4년간 ‘담임-부교역자’로 함께 사역한 바 있다. J 목사는 “(담임목사를) 만나서 교제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최근의 설교 1편이라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며 인간적인 친밀감을 나타내면서 총회재판국 판결이 편파적이고 불법적인 판결로 치부했다. 반면 노회 기소위에 대해서는 “A 노회(기소위)가 두 달에 걸쳐서 면밀히 조사해서 담임목사 사건에 대해서 ‘혐의없음’, ‘기소유예처분’으로 결론을 내리고 오히려 그 조사의 결과로 원로목사를 총회재판국에 기소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기소위 결정을 주목했다. 최상위 치리 기관인 총회재판국 판결은 인정할 수 없으면서 노회 기소위 결정을 주목하는 이상한 논리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런데 A 노회 기소위는 설치 문제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법적인 부분과 편파적 진행을 제외하더라도, 재판국 없는 기소위 자체는 불법이라는게 교단내 중론이다. 총회 재판국도 입장문을 통해 “A 노회 기소위원회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바 있다. J 목사는 “(원로목사는)자기가 은퇴하면 교인 2, 3백명이 빠질 것이라고 자주 말했지만, 오히려 (원로목사)목회 때보다 짧은 기간에 놀랍게 더 성장하고 올 2월까지는 헌금도 더 늘어났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과거 원로 목사는 “후임이 오지 않는 상태에서 은퇴하면 2, 3백명이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후임 목사 선임을 독려했던 말인데, 지금은 이 말이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다. 또 단순히 헌금이 더 늘어났다는 말도 늘어난 배경에 대한 정확한 팩트체크 없이 주장하고 있다. C 교회측은 “단순히 헌금으로 수입이 늘은 건 아니다. 다른 이유로 약 9억원이 더 결산되었다”고 확인해 줬다. 문제는 “새로운 교회에 부임해서 시무 첫 해에 결산 35억에서 44억으로 결산 9억을 더 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늘의 목회 현실을 가지고 말하면, 10년을 잡아 그런 변화가 와도 소위 성공적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과연 헌금이 더 오른 것이 성공한 목회인지, 헌금이 오르면 다른 부분에서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신앙의 순결을 우선시하는 순교자의 교단인 고신의 증경총회장이 한 말이라고 믿기에는 충격적인 발언이다. 현재 고신총회 임원회에 담임목사측에서 화해조정 신청을 접수했다. 일부에서는 분리개척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화해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져, 담임목사가 분리개척을 할 경우, 고신은 역사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다. 총회재판국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며, 담임목사와 여전도사가 사적으로 만남을 가져도 큰 문제가 없으며, 교회에 분쟁이 발생해도 선배찬스, 동기찬스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선례 말이다. 평신도들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 사건을 왜 교회 지도자인 목사, 장로들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지 한국교회 현실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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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0-19
  • 각 교단 ‘온라인 총회’ 결정을 바라보며
    한국교회 대다수 교단이 9월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총회를 앞두고 선거, 정책 등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이번엔 총회 개최여부와 진행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한 장소에, 많은 인원이 모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합, 고신, 합신, 백석, 기장 등 다수의 교단들이 온라인 총회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 수도권의 경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실내 50인 이상이 모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했다. 전국 노회 및 지역별로 50인 이하로 소집하게 하고, 중앙본부를 둬서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방식을 대다수 교단이 선택했다. 온라인 총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비상사태라는데 크게 공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을 겪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고 있다.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길을 걸어가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다. 고신총회 법제위원회는 “총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모여야 하고 총회 규칙도 대면회의를 전제로 정해졌다. 그러므로 총회를 분산해서 모이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국가재난사태 수준의 비상사태이며 50인 이상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도 금지된 상황이다. 교회가 목숨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여론을 고려해서 대부분의 교회가 50인 이상은 비대면(영상)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국가의 행정명령에 협조하고 있다”면서 “헌법과 규칙 등의 원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해서 50인 미만으로 분산해서 온라인회의로 모이는 것이 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통합총회 역시 처음 규칙부에서 화상회의는 불가하다고 밝혔으나 헌법위원회는 “이와 관련한 총회 헌법이나 규칙 등이 없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초유의 재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밝혀, 통합총회는 현장 및 온라인을 겸한 총회 개최를 하게 됐다. ‘온라인 총회’를 처음 시행하기 때문에 진행이 원만하지 못할 수도 있고, 기계적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그로인해 피해 입는 교회나 성도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부디 성(聖) 총회를 개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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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이 시점에 꼭 퀴어축제를 해야 하는가?
    지난 달 17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한국퀴어영화제와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중심으로 오는 9월 18일부터 29일까지 12일간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퀴어축제는 지난 6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이 9월로 연기 된 바 있다. 그러나 전 국민이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는 이때, 굳이 퀴어축제를 개최해야 하는지 의문과 따가운 시선은 피할 수 없다. 조직위의 축제 강행에 급기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합니다'는 청원이 등장, 6일 현재 12만 명이 돌파했다. 청원인은 "코로나19 사태로 기관과 단체가 공식적 모든 모임을 취소하고 있는데 조직위는 변함없이 축제를 강행한다"며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동성애 축제를 발표하는 것은 정부나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이기적 과시욕"이라고 비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여부는 해마다 논란이 됐다. 행사장 인근에서 반대집회가 열리는 등 계속해서 분란이 일어왔다. 지난해에는 퀴어축제 반대측에서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를 열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법원은 이를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보장'을 근거로 기각했다. 작년 5월에는 서울시 공무원 17명이 “서울시 다수 공무원들은 서울광장 퀴어행사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퀴어 측의 광장 사용 신고를 반드시 불수리해야 한다”고 요구 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수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매년 퀴어축제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금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인권’과 ‘표현의 자유’의 뒤에 숨어 있기에는 코로나 19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축제 때문에 전염병 확산이 될 경우 이를 막지 못한 정부와 서울시, 방역당국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지난 7월 8일 ‘예배 외 모든 교회 행사, 소모임 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 시 종사자와 이용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교회 발 확진자가 간간이 나온다고 해서 교회를 특정해서 제한조치를 취하고 모든 교회를 집단 감염지로 몰아갔던 정부다. 그렇게 단호했던 정부가 퀴어축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국교회는 지켜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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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은혜로운 여름 보내자
    폭우와 폭염으로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 기상악화에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하는 여름이다. 더구나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에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의 문이 닫히자 국내 여행이 증가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 과제로 꼽히는 것이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 전체가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사회는 교회를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일부 기독교 단체마저 이 법안을 찬성하며 함께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거스르는 행동에 이해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교회는 차별금지법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최근 모 집회에 참석한 목회자가 코로나19로 여행도 가지 못하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위해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평소 정치적 의견을 내지 않던 대형교회 목사들조차 이번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강력한 우려를 표하면서 성도들에게 반대해 줄 것을 설명했다. 때 아닌 영적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휴가를 보내면서 몸과 마음도 쉬고 재충전할 필요도 있지만, 한국교회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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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슬기로운 ‘여름’ 위해 머리 맞대자
    교회 핵심 사역이라 불리는 여름사역에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여름사역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지난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한 전국교회 핵심 방역수칙 의무화에 충격과 함께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특히 여름사역을 준비하던 교회들의 고충은 더 깊어졌다. 한국교회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어느 교회는 여름사역을 모두 취소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름사역을 취소하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되고, 교회가 여름사역을 진행할까 전전긍긍하는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의 마음도 이해된다. 그러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다음세대 사역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아이들이 즐거운 여름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하면 어렵지만 여럿의 의견이 합쳐지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 교회의 사역으로 그치지 않고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나눔터가 있길 바란다. 최근 교회학교 사역자들을 만나면 이번 여름사역에 대해 서로 묻는다. 이런 고민과 대안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이번 여름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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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침묵이 언론의 역할인가?
    최근 기독교 인터넷 언론 개혁정론이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결과 화평을 무너뜨리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본보가 지난 5월 22일자 보도한 고신 경남(법통)노회 부정선거 사건에 대한 의견이다. 개혁정론 사설을 보면 “이 사건이 경남노회 내부로 그치지 않고 한국기독신문에 제보가 되고 실림으로 전국교회와 초교파적으로 해당 지역에 알려진 것은 한마디로 교회의 질서와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본보가 보도하여 교회의 질서와 성결, 화평을 무너뜨렸다는 듯한 뉘앙스다. 한 교단의 질서가 그리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같은 언론으로서 ‘침묵’을 당연한 듯 강요하는 것도 의문이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되고 끝난 다음에 사실을 알린다면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보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 개혁정론 홈페이지에 버젓이 경남노회 임시노회 기사를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개혁정론이 소설을 쓰는데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본보가 ‘익명의 제보’로 기사를 보도했다고 하는데, 본보 기사 중 제보를 받았다고 하는 내용이 어디에 있는가? 기자가 다른 취재 과정 중 알게 되었고, 한쪽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의견을 듣고 ‘취재’라는 과정을 거쳐 보도했다. 기자가 언급하지도 않은 ‘제보’라는 이야기를 추측해서 글을 써서 되겠는가. 또 이번 사건을 ‘개인적인 그릇된 행동’이라고 표현하면서 한 사람의 잘못으로 언급했다. 노회에 참석한 목사, 장로들은 교회를 대표하는 총대로 참석한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대표성을 갖고 공회의에 참석한 사람을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공인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교회와 나아가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발 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을 신속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언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드러나야 한다. 덕스럽지 않다고 그냥 못본체 한다면 그게 진정한 사랑일까?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언론의 보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보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들이 문제 아닌가? 사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길 바란다. 또 이번 사건이 개인의 이탈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판단하는가? 한국교회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는 고신교단의 그것도 법통노회에서 발생한 사건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가? 어느 타 교단 목회자는 “고신이 이 정도라면 정말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신의 도덕성은 높아야 하고, 한국교회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가 왜 대사회적으로 신뢰도가 추락했는가? 자정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교계 언론이 언론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언론이라면 (언론사 입장에서)대수롭지 않더라도 좀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좀 더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는게 언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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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6-19
  • 긴장 늦출 때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도 기승인데 더위는 성큼 다가왔다. 조금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데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숨이 턱 막힌다. 장시간 마스크 사용으로 귀도 아프고 피부에 트러블도 나고 땀이 송골송골 맺혀 곤혹스럽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마스크 착용을 느슨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마스크를 내리기도 하고, 땀 흘리는 학생들에게 괜찮다며 마스크를 내려도 된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직 끝난 게 아닌데도 말이다. 지금 ‘교회발 감염’으로 수도권이 비상이다. 특히 인천 개척교회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사흘 만에 50명을 넘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5월 이후 수도권 내에서 종교 모임・활동 등을 통해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례가 1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예배를 멈출 수 없다는 목회자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더 이상의 찬반 논란은 의미가 없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와 함께 다각적 측면에서 충분히 논의해 왔다고 본다. 이제 각 교회 목회자들의 선택만이 남았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면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마스크를 벗을 때는 아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영유아들도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마스크를 하루 종일 착용한 채 생활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였다는 성도들이 잠깐의 불편함을 못 참고 마스크를 벗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있고, 이웃을 향한 사랑은 없는지 묻고 싶다. 학교의 순차적인 등교가 진행되면서 부모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역사회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뛰어놀지도 못하고 대화도 자제하며 생활하는데,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교회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말고 방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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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
    한국기독교총연회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전광훈은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를 집행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 동안 교계 내에서도 무성했던 한기총 대표회장의 자격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사회적, 교계적으로 의미가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 들어 한기총 대표회장 자격으로 전광훈 목사가 걸어온 행보는 사회적으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물의를 빚어왔다. 광화문에서 험한 말들을 쏟아내며 정부를 비판한 것을 비롯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에 집회를 열며 불안을 조성한 행위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며 원성을 샀다. 또한 교계 내에서도 전광훈 목사의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특히 그가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고 통합, 고신 등 주요 교단들도 한기총을 탈퇴해서 한교총이 세워지는 등 전광훈 목사로 인해 한국 기독교 대표기관이 쪼개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전광훈 목사에게 집무 정지를 내린 것은 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판이 거세지고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좋은 이미지들이 무너지면서 교회는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나락에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코로나라는 대재앙 앞에 피해갈 수 없는 위치에 교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비판의 수위를 보면 오래 전부터 교회에 가져온 반감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광훈 목사의 사건을 통해 결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목회자가 가르쳐야 할 것은 본질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교회가 세상에 바른 복음을 전하고 목회자가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선포하는 것, 이것이 뿌리가 되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세상은 다시 교회에 마음을 열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 교회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고민한다.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 때, 교회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전도의 문은 막히고,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며 소명을 묵묵히 감당할 때 다시 희망의 싹이 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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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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