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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칼럼 기사

  • [위드애]장애와 노년은 그리 멀지 있지 않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어느새 꺾이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창문을 넘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 시기를 사람의 신체나이로 생각한다면 과연 몇 살쯤 될까? 정확히는 알 수 없겠지만 뜨거웠던 청년시기와 40, 50대를 지나 노년을 준비해야 하거나,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리고 삶이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뜨거웠던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시절을 맞이한다. 중년이 되면 영원히 젊을 것 같고 건강할 것 같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개인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신체 어딘가 하나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하여 삶의 영역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것을 장애라고 부른다. 장애는 장애인들에게만 적용되거나 쓰이는 말이 아니다. 또한 장애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장애는 나와 동떨어져 있거나,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며, 장애문제에 관심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2023년 12월 기준(보건복지부 장애인등록현황)으로 263만 명으로 대한민국 총인구수의 5.1%를 구성하고 있다.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장애인으로 등록한 숫자일 뿐이다. 여기에 장애인으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들과 이해관계자들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을 것이다. 또한 장애 발생 원인은 10명 중 8명이 태어난 이후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음을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장애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 본인 스스로가 장애인이 아니기에 멀리 있거나 상관없다고 여길 뿐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65세 노인 인구수는 2024년 12월 기준(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자료)으로 10,256,782명으로, 1년 전에 비해 526,371명이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전체인구수 대비 노인인구수 비율이 20%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도 의미하지만 장애 발생빈도는 오히려 높아질 것을 암시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실제 지표에서도 전체 등록장애인 중 55.3%인 144만5천782명이 65세 이상이며, 이는 1년 전(53.9%)보다 1.4%포인트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요즘 초중등학교로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나가고 있다. 두리발(부산광역시 장애인콜택시 명칭)을 이용하여 강의를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아직 드물기는 하지만 ‘어르신 유치원’이라는 곳이 존재함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장애인구 중에서도 65세 장애인이 절반이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니 이 땅에 교회들이 다음 세대라고 불리는 아이들이나 청년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 유치원’이 생긴 것처럼 노인과 장애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더 갖고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어 장애를 겪거나 사고나 질병으로 이른 시기에 장애를 겪기도 한다. 그러면 심하거나, 심하지 않음을 떠나서 불편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장애와 노년의 삶은 결코 나와 상관없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임을 인식하고 함께 준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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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애(with 愛)
    2025-09-26
  • [은혜의말씀]진정한 사랑
    얼마 전에 양산미션센터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저녁예배 4성전 출석이 궁금했다. 그런데 덕천성전, 화명성전, 금곡 드림센터 출석은 그대로였는데 양산미션센터에 별도로 800명이 출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대마다 때마다 부담을 주시는데, 그 미션을 수행하면 항상 깜짝 선물 같은 역사를 보여주신다. 이에 번개같이 드는 생각이 주께서 양산미션센터를 허락하심이 새로운 전도의 열심을 주심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현실에 안주하기가 쉽다. 그러나 포도원의 부흥역사를 보면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주셔서 덕천 찍고 화명 찍고 금곡 찍고 양산 찍고 아프리카 우간다에까지 이르도록 부담을 주셨다. 피곤이 능력이고 부담이 사명이니 이 또한 감사하다. 아이야의 축복을 보면, 마침내 아브라함이 왕성 창대하게 되었다가 끝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이어 이삭, 이삭의 이후로 야곱, 야곱 후에 요셉에게로 축복이 연결되고 이어진다는 것이 또한 큰 축복이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얼마나 큰 상실감에 빠졌겠는가? 이삭은 늦둥이요 허약한 아들로 마마보이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마마보이들의 약점은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의 원리는 창2:18을 볼 때 부모를 떠나는 것이 시작이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 정신병, 고착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은 어머니가 별세한 이후 외로운 나날을 들판에서 저물도록 하나님을 묵상하며 지냈다. 망연자실해서 술에 취하거나, 소일거리 취미, 유튜브에 중독이 되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신앙생활은 눈싸움이다. 바라봄의 법칙이다. 사울은 다윗을 묵상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했다. 혼란한 시절 속에서도 요게벳은 갓 낳은 모세의 준수함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담임목사 바나바는 볼썽사나운 관계들을 보지 않고 교회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하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유혹에 지고 말았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늙고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소통의 달인이었다. 어린 도련님에게 예를 갖추고 본분과 충성을 다하였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비로소 가장으로서 리더십이 생겼고 어머니를 떠나 리브가로 중심 이동이 되었다. 만남의 축복이 되어 리브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어머니 장례 후에 리브가가 큰 위로가 되었다. 반면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난 후에 들릴라를 만난 삼손은 실패했다. 외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이어받은 디모데는 초대교회의 리더십이 되었다. 아버지를 떠난 이후에 다시 돌아온 탕자는 회복되었다. 포도원의 첫사랑, 덕천성전 이후 청년 화명성전, 중년 드림센터를 지나 양산미션센터는 이삭이 어머니를 여읜 후 아내, 리브가를 만난 것과 같다. 어머니의 큰 사랑 이후에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사랑의 신비함으로 나아갔고, 그 리브가는 이후에 아들 야곱의 축복을 연출, 시나리오, 무대소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후에 리브가를 만났던 이삭처럼,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큰 상실감을 느낄 때에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이 채워지는 은혜를 맛보아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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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시사칼럼]정교분리와 종교탄압
    지금 세간의 화제는 뭐니 해도 ‘정치와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유사종교에서 불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정종유착(政宗癒着)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종교단체의 수장들이 압수수색을 받거나 심지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종교탄압(宗敎彈壓)이라는 말들이 안팎으로 터져 나오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종유착을 강조하는 측도 종교탄압을 강조하는 측도 똑같이 내세우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정교분리’입니다. 물론 양자가 이제야 새삼스러운 관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역사 속에서 둘은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그 결과 일종의 법적 결과물을 양산했는데, 현대 헌법들에 그 흔적과 자취를 또렷하게 남겼습니다. “의회는 종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미국수정헌법 1조, 1897년). 이를 두고 ‘정교분리’(the Sa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조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 원리를 제대로 명문화한 국가는 독일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헌법(1919)은 일찍이 “국교의 부존재와 종교단체의 설립”이라는 표제 하에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137조 1항)라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우리 헌법도 그 영향을 받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라는 조항을 두었는데, 거기다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문구를 더했습니다(헌법 20조 1, 2항). 왜 그랬을까요? 미국의 수정헌법과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이 국교(國敎)를 부인하는 배경에는 종교개혁에 이어진 종교탄압 및 종교전쟁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헌법태동기의 한국인들에게는 약간은 낯설었던 현상입니다. 따라서 한국헌법의 정교분리선언은 남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원래 정교분리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에 치중했다면, 우리는 ‘종교의 국가적 중립성’을 동일하게 강조한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제1회 국회속본회의 속기록 23호 참고). 그런데 ‘정치→종교’보다 ‘종교→정치’의 방향성에는 다음과 같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를 종교인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성정엽,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의 의미”, 「법학논고」, 경북대 로스쿨(2020))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교회에는 정교분리를 이유로 제국주의의 불법부당한 지배에 굴종하는 모습을 합리화했던 사적(史蹟)이 존재합니다. 일부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이유로 정치적 사건에 일제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 결과 개인적인 각성과 부흥에만 천착하는 한국교회의 비정치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비판하는 견해들도 있습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1988), 최영근, “한국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학사상」, 157호(201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단체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공적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민의를 호도하거나, 종교인이 국가적인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사적으로 개입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일에 관여한다든지,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의 본질을 유월하는 정치적 발언을 자의적으로 무제한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종교적 신앙(religious belief)뿐만 아니라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도 근거해야 합니다. 정치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래야만 비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정교분리는 ‘정치→종교’의 반작용에 해당했지요. 영국의 청교도 탄압과 프랑스의 위그노 학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종교→정치’의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종교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영역과 시민사회로부터 저항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하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라”(딤전 2:2)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불법불의한 권세나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게까지 그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시에 스스로도 불법불의나 권한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데(딤전 2:4)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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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소강석 칼럼]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
    얼마 전에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했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봤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신형 무기들이 등장하는 모습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JL)-3, 다탄두 탑재가 가능한 ICBM DF-5C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훙치(HQ)-19, HQ-29 등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최초로 공개된 DF-61 미사일은 DF-41의 개량형으로 추정됐으며, 이외에도 ‘괌 킬러’ DF-26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무력화할 무기로 꼽히는 DF-17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상공 비행을 통해선 J-20S·J-35A 등 중국이 최근 수년 사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과시됐고 YJ-17 등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로봇개 등 무인전투체계도 공개되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러시아의 푸틴도 내심으로는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대만을 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모습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지켜봤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분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은 실전 경험도 없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미국 항공모함의 역사는 1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경험과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입니다. 자꾸 평화만 주장하지 말고, 안보력과 국방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국방 안보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 중국의 열병식을 보고 나서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방위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입니다. 한미일 공조뿐만 아니라 대중, 대러, 대북과의 외교력도 잘 펼쳐 나가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폴란드에 FA-50 전투기를 수출하였고 동구 나라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구라파 나라들에도 전투기를 수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간곡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한국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나라였습니다. 새벽이면 차디찬 교회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기도원에서 구국기도의 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아리쳤습니다. “주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옵소서. 저 155 마일의 휴전선을 지켜주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더 확장시켜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 서해를 지켜주옵소서. 남해, 아니 동해도 지켜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전투기만 수출할 뿐 아니라 항공모함을 수출하게 하시고 세계 평화 질서를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뀐다고 할지라도 안보와 국방,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시종일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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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성서연구]지진 전 이년
    아모스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니라, 남 왕국 유다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예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아모스 7장 14~15절입니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마샤는 벧엘의 금송아지 신당 제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는 선지자도 아니고, 목동이요, 농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문성이 없는 아모스를 북 왕국에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업적 종교인보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을 통해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1장 1절이 이를 말씀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시 남 왕국에는 웃사야가 왕이었고, 북 왕국에는 여로보암 2세가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남북 왕국 모두 상당히 번성하던 때였습니다. 특히 여로보암 2세 당시의 북 왕국은 다윗 시대처럼 강했고,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런 면만 봅니다. 경제 지표, 정치적 상황만 고려하면서, 살기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줄을 대고, 경제적 번영을 위해 달리며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믿의 성도라면 1장 1절에서 다른 구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입니다.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지 2년 후에 거대한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지진 전 이년>이라고 한 것은 이 지진이 충격으로 새겨진 지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지진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은 앞의 웃시야 왕 시대,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번영과 대조됩니다. 후자가 번영을 의미한다면, 전자는 멸망을 의미합니다. 지진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격적이며 무서운 재난입니다. 성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와 징벌의 징조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는 번영의 때가 아니라, 멸망 직전입니다. 흥청댈 때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1절 이후에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예고가 이어집니다. 아람의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향하는 곳은 힘을 가진 지도자들입니다. 벤하닷의 궁궐, 규 잡은 자, 궁궐들, 보스라의 궁궐, 왕, 지도자들, 재판장 등이 이를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나라의 힘 있는 자들을 겨냥하십니다. 요즘 핫뉴스는 네팔 사태입니다. 시위로 총리가 사임 후 도피하고 각료들의 집이 불타고 심지어 도로에서 구타를 당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도자들을 향한 백성의 분노입니다. 지도자들은 책임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이들의 죄는 무엇일까요? 각 나라에 주신 책망의 내용은 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약탈하고 죽인 죄입니다. 그런데 유독 유다는 여호와의 율법을 떠나고 우상 숭배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유다의 다른 죄보다 가장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보시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했습니다. 2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일반적인 죄 외에도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죄룰 가장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아담과 하와 죄 이후 인류는 늘 <지진 전 이년>의 상황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도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주어지는 시간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라로 말하면 멸망하기 직전이요, 성읍으로 말하면 함락되기 직전이며, 개인으로 말하면 숨 거두기 직전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이렇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적 깨어 있음입니다. 이 깨어 있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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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교회법특강]말틴 루터(1483-1546)와 교회법
    말틴 루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교회의 부패를 잘 보여준 ‘면죄부’(면벌부)를 주제로 토론할 목적으로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 조항을 붙임으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이루어냈다. 루터가 쓴 여러 책 중에 <소교리문답>(1529년)이 있다. 십계명,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중심으로 해설했다. 그런데 루터눈 이 책 서문에서 자신이 왜 교리문답을 작성하는지 이유를 밝혔다. “근간에 내가 여러 곳의 교회를 시찰(視察)하고 신자들의 비참한 신앙생활을 목격한 나머지 극히 쉬운 문장과 적은 책자로써 준비된 교리문답서를 내놓아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도록 했다. 아! 불쌍하도다. 내가 직접 본 비참한 상태를 슬프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저들은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며 세례를 받았다고 하며 주의 성찬을 받으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무지한 가축과 이성적이지 않은 돼지처럼 살고 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 루터가 왜 저렇게 탄식할까? 대체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종교개혁은 복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중세교회에서 변질한 교회시찰을 회복했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루터다. 교회시찰은 본래 사무엘, 엘리야(삼상 7:17, 10:8; 11:14; 13:8; 15:1; 열왕기상 17-21장) 등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모범을 보이고, 고대교회도 이를 실행했다. ‘시찰’은 교회를 ‘두루 다니며’(‘시찰’) 상태를 살피고 돌보며 악을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행 15:36, 16:4, 18:23, 고전 4:19, 17:5-8 등).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 15:41). 그런데 이 시찰이 중세교회에서 크게 변질하고 부패했다. 루터와 지역 교회는 이 시찰을 다시 회복했다. 그런데 시찰을 시행한 결과는 처참했다. 신자들이 세례받았다고 하면서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을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짐승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고 개탄했다. 루터는 동역자 멜란흐톤을 통해 “선제후령의 삭슨지역에서 목사들에 대한 시찰위원 지침”(1528년)을 작성하도록 했다. 서문은 그가 직접 작성했다. 서문에서 루터는 시찰의 실례와 원리, 역사를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다시 우리에게 오게 되었지만, 이제 시찰과 감독의 관행이 다시 세워져야 할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교회시찰은 2-6년마다 시행되고, 교회재산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리, 당회의 규정, 각종 명부(교인, 성찬, 세례, 혼인, 장례, 성찬 참여자 등)을 살폈다. 목사, 당회, 회중을 시찰하기 위해 특별히 18개 항목을 작성했다. 거기에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세례, 회개, 성찬, 여러 기도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시찰에 앞서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소교리문답>이다. 소교리문답 내용은 시찰 내용과 흡사하다. 아마 교회시찰이 없었더라면 소교리문답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계속되는 교회개혁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교회개혁을 위해 성경과 사도의 본을 따라 루터가 앞장서 회복한 시찰, 오늘날 노회가 맡은 가장 중요한 기능인 교회시찰이 형식에 그치고 중단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1922년)부터 헌법에 부록으로 수록된 <시찰 위원 특별심방시 문답 실례>를 삭제한 교단도 많다. 노회 직무 중 하나는 시찰위원을 두어 관내 교회를 시찰하는 것이다. 교회개혁을 위해 시찰을 교회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회복한 말틴 루터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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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 [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5)
    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오늘까지 한미동맹의 든든한 조약이 되었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의 체결은 이승만 대통령의 끈기와 뚝심, 그리고 외교력으로 얻어낸 결실이었다. 조약이란 상호수혜의 가능성 혹은 잠재적 가능성이 있을 때 체결되지만 우리가 미국의 방위에 기여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이는 상황에서 체결된 것은 ‘새우와 고래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3월 이후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내외로부터 휴전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었다. 특히 1952년 8월 20일 김일성은 중공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를 통해 스탈린에게 휴전을 제안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스탈린은 미국을 한반도 문제에 묶어두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또 전쟁 종결을 공약했던 아이젠하워가 1953년 1월 20일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만일 중공군이 압록강 이남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휴전하면 국군이 단독으로라도 싸울 것이라고 엄포했다. 안전보장 없는 휴전을 반대한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사령관을 통해 이승만을 설득했는데, 이승만은 휴전 수락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성립 전에는 조약 체결은 불가하다고 단언했다. 휴전 협상의 최대의 난제가 포로송환문제였는데, 포로송환원칙에 대해서는 의견이 맞섰다. 북한은 강제송환을 요구했고, 유엔은자유송환을 주장했다. 유엔은 자발적 송환원칙, 곧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으나, 공산측은 포로의 의사와 관계없이 본국으로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강제적 송환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논란 끝에 유엔측이 야간 양보하여 강제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송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럴 경우 상당수 반공포로들이 자유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2만7천여 명 석방을 석방했다. 이를 통해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7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받았다. 휴전협정은 진척되어 7월 27일 조인됨으로서 3년 1개월간 계속되던 전쟁은 종식되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8월 8일 조약이 가조인 되었다. 10월 1일 공식적으로 체결된다. 이로서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한미군의 주둔을 공식화하였다. 오늘과 같은 좌파 정권의 안보관과 대북정책을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군은 국방 안보의 중요한 자신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가치는 3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조약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조약 체결을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 한국은 살아 남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앞에서 소개한 일곱가지 기적같은 일로 우리나라는 급격히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력을 처음으로 저지했다. 공산주의의 출현과 확산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을 통해 공산정권을 탄생시킨 후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가 창궐하여 한때는 세계의 3분지1을 점령하여 세상을 뒤흔들었다. 전제 군주국이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한 이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을 창설했고, 동유럽 국가들도 공산화된다. 이런 공산화의 물결 속에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어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쿠바, 북한 등이 잇따라 공산화된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과 중남미로 전파되어 공산주의는 전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마지막 남은 남한까지도 공산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저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변이 다 붉게 물들었으나 한국은 공산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미국과 같은 우방의 후원과 지원, 도움 덕분이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입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 4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5만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은혜받은 자가 은혜 베푼자를 기억하는 것은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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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 [목회자칼럼]교회가 세상을 이기는 법
    그리스 신화에는 세이렌(The Sirens)이라는 존재가 나옵니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바다의 요정이면서 동시에 독수리의 몸을 지닌 괴이한 존재였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세이렌은 시칠리아섬 근처에서 뇌쇄적인 목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했고,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배를 암초에 부딪혀 죽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치명적인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페우스(Orpheus)의 방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는 길에 세이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습니다.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유혹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배의 돛대에 단단히 묶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세이렌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자, 오디세우스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배를 돌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극심한 갈등 속에서 그는 고함을 지르고 몸부림쳤지만, 선원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관계는 깨지고 혼란만 남았습니다. 반면 오르페우스는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세이렌의 섬 근처를 지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하프로 더욱 아름답고 웅장한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는 세이렌의 유혹을 압도했고, 결국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유혹을 받지 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단순히 세상의 유혹을 막으려 애쓰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더 큰 소리, 곧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음성으로 세상의 소음을 덮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많은 성도와 교회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 세상의 언어가 교회 안으로 빠르게 스며들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디세우스처럼 유혹과 싸우면서도 갈등 속에 빠지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르페우스처럼 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덮어버릴 만큼 크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예수님은 세상을 칼로 이기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열두 군단의 천사를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주님께서 그 힘을 포기하고 오히려 죽음으로 세상을 이기신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세이렌의 소리와 같은 유혹을 피하려 애쓰는 대신, 주님의 음성으로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의 소음을 닮을 때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더욱 크게 울려 퍼지게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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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 [교회건축칼럼]교회공간의 주중 활용 극대화 계획
    교회시설은 주로 주일사용에 맞추어져있다. 따라서 평일은 텅비어 있게 되며 비경제적이며 비기능적이다. 이것은 기능의 유무보다 교회의 지속성장과 연계되어 있다. 교회 시설이 평일 지역사회와 연계되어야복음과 전도가 일상화 되는 것이며 지속성장의 토대가 된다. 주중사용을 위해서 건축의 계획방향이 이를 위해 설정되어야 한다. 그 유형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 1층과 저층부는 지역주민의 공용공간이다 키즈도서관 키즈카페는 지역사회의 젊은 엄마들을 교회로 오게 만든다. 아이와 와서 그림책을 보고 차도 마시고 교회의 여러 공간 머무르게 계획해야한다. 즉, 문화교실, 상담실, 애견카페, 갤러리, 문화공연등이 관련 기능이며 이런 기능이 배치되야 한다. 둘째, 교회 시설중에 본당다음으로 큰 공간이 식당이다 이 식당은 주일 몇 시간만 사용되도록 계획되어있다. 이 공간이 주중내내 사용되려면 주방이 가변적으로 되어 주중 사용시에 주방은 가변식문으로 차단되어야하며, 식당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벽쪽으로 소그룹실을 배치해야한다. 소그룹실은 문화교실, 실버휴게실, 상담실, 청소년 스터디 카페등으로 다목적홀로 사용할 수 있다 주일에는 룸식당, 새교우식사실이 된다. 셋째, 중고등부나 청년부등의 교육실들은 청소년 센터로 주중내내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책상과 의자 배치의 변형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이 공간은 청소년 탁구장 유튜브 콘텐츠 제작공간 방과휴 교실과 같은 청소년 커뮤니티 센터로 사용할 수 있다. 교회시설은 주중내내 개방되어 근린지역센터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해야한다. 내어줄때에 오히려 교회는 성장이라는 열매를 얻을수 있다. 교회공간은 교회 성장의 직접적 수단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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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 [은혜의말씀]은혜의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이다. 주께서 미천한 나를 동역자로 삼아 주심이 은혜이다. 큰 복은 사람이 애쓰고 노력한다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만 가지가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된다. 밑 빠진 독이 되지 말아야 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 구원의 날에 도움을 받아야 된다. 은혜 받을 만한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로다. 5현이 중요하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현’장에 달인이 되고 ‘현’재에 감사하고 ‘현’저한 클래스에 이르고 ‘현’역에 은퇴는 없다. 그러할 때 현찰도 많아진다. 미루거나 연기하지 않고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 가장 성령 충만하다. 부질없이 과거에 매여서 살지 말고 불안한 미래에 흔들리지 마라. 지금, 여기, 당신이 가장 소중하다. 세월을 아끼고 세월을 허송하지 말라. 하루를 천년같이 살라. 한날의 괴로움도 족한 줄로 알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지나온 순간들이 한 순간도 헛된 것이 없고 일마다 때마다 주의 사랑이 크셨다. 세월이 약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 후회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라. 사랑하며 존경하며 감사하며 축복하며 노래하라.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위치 선정이 남다르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 복 있는 자리에 있으면 축복의 콩고물이라도 떨어진다. 반면에 모진 놈 옆에 섰다가 벼락 맞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영광이고 축복이고 특권이다. 성령님이 머물러 있었던 여호수아는 대단한 사역을 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치유와 회복과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 45년간 포도원의 역사는 은혜와 기적의 시간들이었다. 포도원의 첫사랑 덕천성전에서는 기도회를 하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은혜가 넘쳤다. 아담한 사이즈의 성전에 기도와 찬양소리가 가득히 퍼지는 공명이 특히 감동이었다. 새벽기도가 뜨거웠고 앞자리부터 앉았고 대표기도가 짧다는 3대 자랑이 있는 성전이었다. 하나님의 깜짝 선물 화명성전에서는 일어나 건너가는 기적을 맛보았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 있었다. 일팔전도팀(행1:8)이 매일 전도를 나갔고 새 신자들이 몰려오고 외부집회와 방송선교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드림센터를 건축하며 그야말로 꿈의 현상소가 되었다. 엎드림, 두드림, 다 드림... 일만 가정, 삼만 성도, 십만 선교, 백만 전파라는 꿈의 공동체를 코로나 팬데믹 때 이루었다. 이제 발전소, 변전소, 충전소를 거치며 승압하여 성령 충만하고 더 선명한 뜻을 세우고 생생한 꿈이 실현되는 양산미션센터, 우간다포도원교회에 이르기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오늘, 지금이야말로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니, 최고의 전성기로 만들어가라.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서 잠시 쉬고 싶은 이때가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될 적기이다. 오히려 이열치열 힘을 내어 말씀을 자리를 사모하고, 사명의 현장을 지키고, 성령에 감동되어 눈앞의 홍해를 건너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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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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