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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담을 쌓으면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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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촌에서 태어나고 촌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뒷집과 앞집은 그냥 우리 집과 마찬가지였다. 앞집에서 부침개를 하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따뜻한 부침개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뒷집에 손님들이 오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아주 맛있는 인절미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그래서 우리 집 앞뒤에 사는 분들의 모든 것들을 거의 다 알 수 있었다. 그 집 식구들과 그들이 그 날 저녁에 먹은 음식까지도 웬만하면 다 알았다. 심지어는 부부가 싸우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 싸움의 이유도 알았고, 깨어진 그릇의 개수나 종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유는 서로의 경계를 확인하는 담이 낮았기 때문이다. 키 작은 내가 발의 뒤축을 들지 않아도 충분히 넘나다볼 수 있을 만큼 담이 낮았다. 학업의 문제로 내 고향의 담장 낮은 집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앞뒷집은 공간적, 시각적, 후각적, 감정적, 관계적으로 그냥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학업을 따라 시작 된 도회지의 삶은 그렇지를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앞집에는 누가 사는지, 뒷집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담이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담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냥 벽이었다. 어느 곳 하나 소통 할 수 있는 틈이 없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언제나 굳게 닫힌 철문만이 우리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 앞집이나 뒷집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에도 아주 싸늘하고 감각 무딘 철문이 존재할 뿐이었다. 직장을 따라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내 집은 내 집, 앞집은 앞집, 뒷집은 그냥 뒷집이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그 집들의 식구와 그들이 즐겨 먹은 음식을. 높은 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높은 담보다 더 높은 벽이 사방팔방으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마 그들도 자기들의 옆집에 있었던 나를 인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은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다. 세상살이에 지혜(영악)로울수록 마음의 담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담은 단절의 벽이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스스로 만든 감옥의 철옹성 안에서 늙은 사자처럼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배회한다. 그로인해 점점 주변에 사람이 없고, 우정이 없고, 의리가 없고, 삶의 향기가 없어진다. 존재하는 낮은 담도 허물어야 우리가 있는데, 오히려 낮은 담을 높이고, 높은 담을 벽으로 만드니까 모두가 다 외롭다. 그렇게 하고서는 또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사람이니까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자위한다.
원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담이 없었다. 에덴에서 대화하고 동행했다. 서로를 완벽하게 알았고 허물없이 교제했다. 그런데 미혹과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인간이 스스로 나무 아래에 숨어 잎사귀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낮은 담을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대화할 때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제법 높은 담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피하였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벽을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굳은 벽을 파하셨다. 예수님께서 파담자, 파벽자가 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다.
파벽자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많은 담과 벽을 만들어서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 예수님은 담을 허셨는데 우리는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담을 쌓으면 안 된다. 그것은 모두에게 손해다. 시대는 예수님처럼 막힌 담을 허무는 자를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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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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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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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무엇을 남겻는가? 앞에서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례을 물리쳤다고 지적했는데, 둘째는 6.25전쟁은 공산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이념과 제도인가를 적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비록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수백만 명이 고통을 겪었지만 일인 일당 독제의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 반인륜적 집단인가를 깨닫게 한 것이다.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의 실상과 실체, 그리고 공산정권의 참혹한 살육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2017년까지 100년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자가 1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이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1억명의 사람이 죽음을 당한 것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반 인간적인 집단인가를 보여준다.
공산주의는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물론자들이니 인간은 한갓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니 인권, 인간의 가치, 생명의 소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살상을 합리화 한다. 주변에 사람이 죽어도 게이치 않는다. 전쟁을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체와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셋째, 6.25전쟁은 우리나라의 국제화의 계기기 되었다. 1945년 독립하고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가난한 저개발 국가이자 무명의 나라였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유엔의 지지를 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유엔 협약을 통해 직접적으로 군사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 이었고(참전군 인원 순으로 보면,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델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프랑스 에치오피아 벨기에 암아프리카 룰셈부르크), 물자지원국은 38개국에 달했다. 버바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쿠바 에콰도르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자메이카 라이베리아 멕시코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레바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이집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스위스 시리아 아이티 모나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일본 리히텐슈타인 바티칸시국 등이다. 그리고 의료지원국은 인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등 5개국에 달했다. 이렇게 볼 때 60개국이 한국을 도왔음을 알 수 있다. 전체국가의 72%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이들나라와 교류하게 되었고 아시아의 소국 한국이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전쟁은 한국의 국제화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넷째,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통해 반공주의가 심화되었고,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기 미국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연인원 1,789,000명의 군인을 파견하였고, 이중 3만6천 명이 전사했다. 알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또 휴전에 앞서 한국과 미국 간의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체결이 논의되어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조약이 발표됨에 따라 한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미관계는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다지게 된다.
다섯째, 6.25 전쟁은 국방력의 강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회발전과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었지만 전화의 아픔을 극복하고 폐허가 된 이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자강의지가 1960년대 이후 국가 재건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한미동맹의 결과로 국사력이 강화되었고 이를 기초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6.25 전쟁은 한국사회 발전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기적으로 살아남은 나라이고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를 지원해주고 후원해준 나라에 감사하고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피흘려 지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가고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더욱 자유, 민주, 정의, 평화, 복지가 이루어지는 건실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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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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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교회대수선 및 리모델링에 대한 건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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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건설경기 부진에의해 신축보다는 기존시설을 성능개선하여 교회공간을 재배치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성능개선에는 두가지 법적 사항이 다르게 적용된다 이 차이와 내용을 알면 대수선을 할지, 아니면 공간의 재배치를 할것인지가 결정된다. 대수선행위는 사전에 건축허가를 득해야된다 대수선 행위는 단순히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을 초함해서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재를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이다
그 내용은 주계단을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이며 구조벽체를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기둥의 이동이나 해체등이 대수선 행위이다. 또 기존의 층수를 더하거나 감하는 행위, 주요보를 이동하거나 변경하는 행위도 대수선에 포함된다. 대수선에 포함이되면 건축허가를 득하고 공사를 해야한다.
리모델링(공간재배치)은 노후화된 내부의 성능개선을 위해 마감과 비내력벽체등을 변경하거나 재배치하는 행위이며 이경우에는 인허가 행위 없이 신고사항이다 대수선 행위도 리모델링 범위에 들어가지만 건물의 주요구조체를 변경하는 차이이다. 대수선행위는 건축의 동선이나 내부공간을 전반적으로 고치는 행위이며 리모델링은 주요 구조부위는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대수선 행위시 주요 건축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물의 구조안전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었다. 내진기준이 과거와 달리 강화되었고 기둥과 기둥사이거리가 20m 이상일 경우 건축구조심의를 득해야한다. 또 건축물외벽에서 3미터 이상 돌출되어진 구조물도 구조심의 대상이 된다. 내력벽, 기둥, 피난계단. 지불틀변경등의 행위는 심의 대상은 아니고 허가 대상이다.
둘째, 소방법이 강화되었다. 화재시에 스프링쿨러가 과거보다 많이 설치하게 되어있다. 또 천정내부가 1.5미터 이상이면 상하향식 스프링쿨러를 설치해야한다. 이것을 만족시키려면 천정공사는 전체다 이루어 져야하며 소방용수의 증대로 저수로가 커져야한다. 이런 요인은 대수선 공사비가 증대되는 요인이 되고있다.
셋째, 피난기준이 강화되어있다. 교회내부에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될경우 일시에 많은 인원이 대피하려면 계단의 설치기준이 이에 대응하게 설치되어야한다. 최근 개정된 피난법은 주계단과 피난계단을 건물 대각선 길이의 1/3 이상 띄어서 설치하게 되어있다. 계단의 설치기준은 바닥면적이 60평이상일 경우 주계단과 피난계단을 설치해야한다. 그리고 계단과 계단사이를 이격하여 배치해야 되며 반드시 계단과 계단은 복도로 연결해야한다. 이 사항은 공간의 동선과 연계되는 내용으로 대수선 공사시 중요한 체크 사항이다.
넷째, 단열재의 설치기준과 에너지 절약설계 내용도 현행법기준에 맞게 설치해야한다. 과거 건축된 건축물은 지금에 비해 단열재가 효율이 많이 낮게 되어있어 외벽의 단열재 재배치 공사가 이루어져야한다. 에너지 절약설계의 경우 일정규모이상의 면적 대수선 행위시에는 대상이되며 별도의 전문 업체가 설계해야한다.
대수선, 리모델링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것에 따른 인허가나 설계의 내용이 다르다. 따라서 그범위부터 선정해야하며 대수선은 안전에 대한 사항이 수반되어지므로 진행전에 기준 건축물에 대한 구조안전진단을 선행해야한다. 구조기술사가 기둥이나 보등에 대한 안전진한후 대수선의 구체적볌위가 결정되어진다. 사전에 이런 내용들을 미리 전문가의 조언과 컨설팅을 받고 시행해야 리스크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단순히 인테리어의 개념뿐아니라 건축법과 인허가 안전진단등이 결부되어지므로 폭넓은 분석이 전제 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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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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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애]장애와 노년은 그리 멀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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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어느새 꺾이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창문을 넘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 시기를 사람의 신체나이로 생각한다면 과연 몇 살쯤 될까? 정확히는 알 수 없겠지만 뜨거웠던 청년시기와 40, 50대를 지나 노년을 준비해야 하거나,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리고 삶이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뜨거웠던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시절을 맞이한다. 중년이 되면 영원히 젊을 것 같고 건강할 것 같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개인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신체 어딘가 하나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하여 삶의 영역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것을 장애라고 부른다. 장애는 장애인들에게만 적용되거나 쓰이는 말이 아니다. 또한 장애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장애는 나와 동떨어져 있거나,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며, 장애문제에 관심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2023년 12월 기준(보건복지부 장애인등록현황)으로 263만 명으로 대한민국 총인구수의 5.1%를 구성하고 있다.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장애인으로 등록한 숫자일 뿐이다. 여기에 장애인으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들과 이해관계자들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을 것이다.
또한 장애 발생 원인은 10명 중 8명이 태어난 이후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음을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장애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 본인 스스로가 장애인이 아니기에 멀리 있거나 상관없다고 여길 뿐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65세 노인 인구수는 2024년 12월 기준(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자료)으로 10,256,782명으로, 1년 전에 비해 526,371명이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전체인구수 대비 노인인구수 비율이 20%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도 의미하지만 장애 발생빈도는 오히려 높아질 것을 암시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실제 지표에서도 전체 등록장애인 중 55.3%인 144만5천782명이 65세 이상이며, 이는 1년 전(53.9%)보다 1.4%포인트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요즘 초중등학교로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나가고 있다. 두리발(부산광역시 장애인콜택시 명칭)을 이용하여 강의를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아직 드물기는 하지만 ‘어르신 유치원’이라는 곳이 존재함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장애인구 중에서도 65세 장애인이 절반이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니 이 땅에 교회들이 다음 세대라고 불리는 아이들이나 청년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 유치원’이 생긴 것처럼 노인과 장애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더 갖고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어 장애를 겪거나 사고나 질병으로 이른 시기에 장애를 겪기도 한다. 그러면 심하거나, 심하지 않음을 떠나서 불편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장애와 노년의 삶은 결코 나와 상관없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임을 인식하고 함께 준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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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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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진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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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양산미션센터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저녁예배 4성전 출석이 궁금했다. 그런데 덕천성전, 화명성전, 금곡 드림센터 출석은 그대로였는데 양산미션센터에 별도로 800명이 출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대마다 때마다 부담을 주시는데, 그 미션을 수행하면 항상 깜짝 선물 같은 역사를 보여주신다. 이에 번개같이 드는 생각이 주께서 양산미션센터를 허락하심이 새로운 전도의 열심을 주심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현실에 안주하기가 쉽다. 그러나 포도원의 부흥역사를 보면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주셔서 덕천 찍고 화명 찍고 금곡 찍고 양산 찍고 아프리카 우간다에까지 이르도록 부담을 주셨다.
피곤이 능력이고 부담이 사명이니 이 또한 감사하다. 아이야의 축복을 보면, 마침내 아브라함이 왕성 창대하게 되었다가 끝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이어 이삭, 이삭의 이후로 야곱, 야곱 후에 요셉에게로 축복이 연결되고 이어진다는 것이 또한 큰 축복이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얼마나 큰 상실감에 빠졌겠는가? 이삭은 늦둥이요 허약한 아들로 마마보이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마마보이들의 약점은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의 원리는 창2:18을 볼 때 부모를 떠나는 것이 시작이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 정신병, 고착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은 어머니가 별세한 이후 외로운 나날을 들판에서 저물도록 하나님을 묵상하며 지냈다. 망연자실해서 술에 취하거나, 소일거리 취미, 유튜브에 중독이 되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신앙생활은 눈싸움이다. 바라봄의 법칙이다. 사울은 다윗을 묵상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했다. 혼란한 시절 속에서도 요게벳은 갓 낳은 모세의 준수함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담임목사 바나바는 볼썽사나운 관계들을 보지 않고 교회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하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유혹에 지고 말았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늙고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소통의 달인이었다. 어린 도련님에게 예를 갖추고 본분과 충성을 다하였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비로소 가장으로서 리더십이 생겼고 어머니를 떠나 리브가로 중심 이동이 되었다. 만남의 축복이 되어 리브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어머니 장례 후에 리브가가 큰 위로가 되었다. 반면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난 후에 들릴라를 만난 삼손은 실패했다.
외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이어받은 디모데는 초대교회의 리더십이 되었다. 아버지를 떠난 이후에 다시 돌아온 탕자는 회복되었다. 포도원의 첫사랑, 덕천성전 이후 청년 화명성전, 중년 드림센터를 지나 양산미션센터는 이삭이 어머니를 여읜 후 아내, 리브가를 만난 것과 같다. 어머니의 큰 사랑 이후에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사랑의 신비함으로 나아갔고, 그 리브가는 이후에 아들 야곱의 축복을 연출, 시나리오, 무대소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후에 리브가를 만났던 이삭처럼,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큰 상실감을 느낄 때에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이 채워지는 은혜를 맛보아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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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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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정교분리와 종교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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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간의 화제는 뭐니 해도 ‘정치와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유사종교에서 불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정종유착(政宗癒着)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종교단체의 수장들이 압수수색을 받거나 심지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종교탄압(宗敎彈壓)이라는 말들이 안팎으로 터져 나오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종유착을 강조하는 측도 종교탄압을 강조하는 측도 똑같이 내세우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정교분리’입니다.
물론 양자가 이제야 새삼스러운 관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역사 속에서 둘은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그 결과 일종의 법적 결과물을 양산했는데, 현대 헌법들에 그 흔적과 자취를 또렷하게 남겼습니다. “의회는 종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미국수정헌법 1조, 1897년). 이를 두고 ‘정교분리’(the Sa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조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 원리를 제대로 명문화한 국가는 독일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헌법(1919)은 일찍이 “국교의 부존재와 종교단체의 설립”이라는 표제 하에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137조 1항)라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우리 헌법도 그 영향을 받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라는 조항을 두었는데, 거기다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문구를 더했습니다(헌법 20조 1, 2항). 왜 그랬을까요?
미국의 수정헌법과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이 국교(國敎)를 부인하는 배경에는 종교개혁에 이어진 종교탄압 및 종교전쟁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헌법태동기의 한국인들에게는 약간은 낯설었던 현상입니다. 따라서 한국헌법의 정교분리선언은 남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원래 정교분리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에 치중했다면, 우리는 ‘종교의 국가적 중립성’을 동일하게 강조한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제1회 국회속본회의 속기록 23호 참고). 그런데 ‘정치→종교’보다 ‘종교→정치’의 방향성에는 다음과 같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를 종교인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성정엽,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의 의미”, 「법학논고」, 경북대 로스쿨(2020))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교회에는 정교분리를 이유로 제국주의의 불법부당한 지배에 굴종하는 모습을 합리화했던 사적(史蹟)이 존재합니다. 일부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이유로 정치적 사건에 일제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 결과 개인적인 각성과 부흥에만 천착하는 한국교회의 비정치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비판하는 견해들도 있습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1988), 최영근, “한국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학사상」, 157호(201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단체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공적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민의를 호도하거나, 종교인이 국가적인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사적으로 개입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일에 관여한다든지,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의 본질을 유월하는 정치적 발언을 자의적으로 무제한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종교적 신앙(religious belief)뿐만 아니라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도 근거해야 합니다. 정치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래야만 비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정교분리는 ‘정치→종교’의 반작용에 해당했지요. 영국의 청교도 탄압과 프랑스의 위그노 학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종교→정치’의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종교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영역과 시민사회로부터 저항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하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라”(딤전 2:2)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불법불의한 권세나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게까지 그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시에 스스로도 불법불의나 권한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데(딤전 2:4)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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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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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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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했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봤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신형 무기들이 등장하는 모습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JL)-3, 다탄두 탑재가 가능한 ICBM DF-5C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훙치(HQ)-19, HQ-29 등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최초로 공개된 DF-61 미사일은 DF-41의 개량형으로 추정됐으며, 이외에도 ‘괌 킬러’ DF-26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무력화할 무기로 꼽히는 DF-17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상공 비행을 통해선 J-20S·J-35A 등 중국이 최근 수년 사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과시됐고 YJ-17 등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로봇개 등 무인전투체계도 공개되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러시아의 푸틴도 내심으로는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대만을 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모습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지켜봤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분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은 실전 경험도 없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미국 항공모함의 역사는 1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경험과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입니다. 자꾸 평화만 주장하지 말고, 안보력과 국방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국방 안보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 중국의 열병식을 보고 나서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방위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입니다. 한미일 공조뿐만 아니라 대중, 대러, 대북과의 외교력도 잘 펼쳐 나가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폴란드에 FA-50 전투기를 수출하였고 동구 나라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구라파 나라들에도 전투기를 수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간곡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한국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나라였습니다. 새벽이면 차디찬 교회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기도원에서 구국기도의 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아리쳤습니다. “주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옵소서. 저 155
마일의 휴전선을 지켜주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더 확장시켜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 서해를 지켜주옵소서. 남해, 아니 동해도 지켜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전투기만 수출할 뿐 아니라 항공모함을 수출하게 하시고 세계 평화 질서를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뀐다고 할지라도 안보와 국방,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시종일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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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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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지진 전 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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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니라, 남 왕국 유다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예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아모스 7장 14~15절입니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마샤는 벧엘의 금송아지 신당 제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는 선지자도 아니고, 목동이요, 농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문성이 없는 아모스를 북 왕국에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업적 종교인보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을 통해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1장 1절이 이를 말씀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시 남 왕국에는 웃사야가 왕이었고, 북 왕국에는 여로보암 2세가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남북 왕국 모두 상당히 번성하던 때였습니다. 특히 여로보암 2세 당시의 북 왕국은 다윗 시대처럼 강했고,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런 면만 봅니다. 경제 지표, 정치적 상황만 고려하면서, 살기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줄을 대고, 경제적 번영을 위해 달리며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믿의 성도라면 1장 1절에서 다른 구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입니다.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지 2년 후에 거대한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지진 전 이년>이라고 한 것은 이 지진이 충격으로 새겨진 지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지진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은 앞의 웃시야 왕 시대,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번영과 대조됩니다. 후자가 번영을 의미한다면, 전자는 멸망을 의미합니다. 지진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격적이며 무서운 재난입니다. 성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와 징벌의 징조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는 번영의 때가 아니라, 멸망 직전입니다. 흥청댈 때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1절 이후에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예고가 이어집니다. 아람의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향하는 곳은 힘을 가진 지도자들입니다. 벤하닷의 궁궐, 규 잡은 자, 궁궐들, 보스라의 궁궐, 왕, 지도자들, 재판장 등이 이를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나라의 힘 있는 자들을 겨냥하십니다. 요즘 핫뉴스는 네팔 사태입니다. 시위로 총리가 사임 후 도피하고 각료들의 집이 불타고 심지어 도로에서 구타를 당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도자들을 향한 백성의 분노입니다. 지도자들은 책임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이들의 죄는 무엇일까요? 각 나라에 주신 책망의 내용은 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약탈하고 죽인 죄입니다. 그런데 유독 유다는 여호와의 율법을 떠나고 우상 숭배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유다의 다른 죄보다 가장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보시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했습니다. 2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일반적인 죄 외에도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죄룰 가장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아담과 하와 죄 이후 인류는 늘 <지진 전 이년>의 상황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도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주어지는 시간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라로 말하면 멸망하기 직전이요, 성읍으로 말하면 함락되기 직전이며, 개인으로 말하면 숨 거두기 직전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이렇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적 깨어 있음입니다. 이 깨어 있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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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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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말틴 루터(1483-1546)와 교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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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틴 루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교회의 부패를 잘 보여준 ‘면죄부’(면벌부)를 주제로 토론할 목적으로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 조항을 붙임으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이루어냈다.
루터가 쓴 여러 책 중에 <소교리문답>(1529년)이 있다. 십계명,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중심으로 해설했다. 그런데 루터눈 이 책 서문에서 자신이 왜 교리문답을 작성하는지 이유를 밝혔다. “근간에 내가 여러 곳의 교회를 시찰(視察)하고 신자들의 비참한 신앙생활을 목격한 나머지 극히 쉬운 문장과 적은 책자로써 준비된 교리문답서를 내놓아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도록 했다. 아! 불쌍하도다. 내가 직접 본 비참한 상태를 슬프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저들은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며 세례를 받았다고 하며 주의 성찬을 받으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무지한 가축과 이성적이지 않은 돼지처럼 살고 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
루터가 왜 저렇게 탄식할까? 대체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종교개혁은 복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중세교회에서 변질한 교회시찰을 회복했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루터다. 교회시찰은 본래 사무엘, 엘리야(삼상 7:17, 10:8; 11:14; 13:8; 15:1; 열왕기상 17-21장) 등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모범을 보이고, 고대교회도 이를 실행했다. ‘시찰’은 교회를 ‘두루 다니며’(‘시찰’) 상태를 살피고 돌보며 악을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행 15:36, 16:4, 18:23, 고전 4:19, 17:5-8 등).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 15:41). 그런데 이 시찰이 중세교회에서 크게 변질하고 부패했다.
루터와 지역 교회는 이 시찰을 다시 회복했다. 그런데 시찰을 시행한 결과는 처참했다. 신자들이 세례받았다고 하면서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을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짐승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고 개탄했다.
루터는 동역자 멜란흐톤을 통해 “선제후령의 삭슨지역에서 목사들에 대한 시찰위원 지침”(1528년)을 작성하도록 했다. 서문은 그가 직접 작성했다. 서문에서 루터는 시찰의 실례와 원리, 역사를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다시 우리에게 오게 되었지만, 이제 시찰과 감독의 관행이 다시 세워져야 할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교회시찰은 2-6년마다 시행되고, 교회재산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리, 당회의 규정, 각종 명부(교인, 성찬, 세례, 혼인, 장례, 성찬 참여자 등)을 살폈다. 목사, 당회, 회중을 시찰하기 위해 특별히 18개 항목을 작성했다. 거기에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세례, 회개, 성찬, 여러 기도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시찰에 앞서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소교리문답>이다. 소교리문답 내용은 시찰 내용과 흡사하다. 아마 교회시찰이 없었더라면 소교리문답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계속되는 교회개혁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교회개혁을 위해 성경과 사도의 본을 따라 루터가 앞장서 회복한 시찰, 오늘날 노회가 맡은 가장 중요한 기능인 교회시찰이 형식에 그치고 중단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1922년)부터 헌법에 부록으로 수록된 <시찰 위원 특별심방시 문답 실례>를 삭제한 교단도 많다. 노회 직무 중 하나는 시찰위원을 두어 관내 교회를 시찰하는 것이다.
교회개혁을 위해 시찰을 교회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회복한 말틴 루터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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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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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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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오늘까지 한미동맹의 든든한 조약이 되었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의 체결은 이승만 대통령의 끈기와 뚝심, 그리고 외교력으로 얻어낸 결실이었다. 조약이란 상호수혜의 가능성 혹은 잠재적 가능성이 있을 때 체결되지만 우리가 미국의 방위에 기여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이는 상황에서 체결된 것은 ‘새우와 고래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3월 이후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내외로부터 휴전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었다. 특히 1952년 8월 20일 김일성은 중공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를 통해 스탈린에게 휴전을 제안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스탈린은 미국을 한반도 문제에 묶어두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또 전쟁 종결을 공약했던 아이젠하워가 1953년 1월 20일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만일 중공군이 압록강 이남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휴전하면 국군이 단독으로라도 싸울 것이라고 엄포했다. 안전보장 없는 휴전을 반대한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사령관을 통해 이승만을 설득했는데, 이승만은 휴전 수락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성립 전에는 조약 체결은 불가하다고 단언했다.
휴전 협상의 최대의 난제가 포로송환문제였는데, 포로송환원칙에 대해서는 의견이 맞섰다. 북한은 강제송환을 요구했고, 유엔은자유송환을 주장했다. 유엔은 자발적 송환원칙, 곧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으나, 공산측은 포로의 의사와 관계없이 본국으로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강제적 송환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논란 끝에 유엔측이 야간 양보하여 강제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송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럴 경우 상당수 반공포로들이 자유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2만7천여 명 석방을 석방했다. 이를 통해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7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받았다.
휴전협정은 진척되어 7월 27일 조인됨으로서 3년 1개월간 계속되던 전쟁은 종식되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8월 8일 조약이 가조인 되었다. 10월 1일 공식적으로 체결된다. 이로서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한미군의 주둔을 공식화하였다. 오늘과 같은 좌파 정권의 안보관과 대북정책을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군은 국방 안보의 중요한 자신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가치는 3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조약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조약 체결을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 한국은 살아 남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앞에서 소개한 일곱가지 기적같은 일로 우리나라는 급격히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력을 처음으로 저지했다. 공산주의의 출현과 확산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을 통해 공산정권을 탄생시킨 후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가 창궐하여 한때는 세계의 3분지1을 점령하여 세상을 뒤흔들었다. 전제 군주국이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한 이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을 창설했고, 동유럽 국가들도 공산화된다. 이런 공산화의 물결 속에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어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쿠바, 북한 등이 잇따라 공산화된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과 중남미로 전파되어 공산주의는 전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마지막 남은 남한까지도 공산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저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변이 다 붉게 물들었으나 한국은 공산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미국과 같은 우방의 후원과 지원, 도움 덕분이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입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 4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5만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은혜받은 자가 은혜 베푼자를 기억하는 것은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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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