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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
    ‘내가 잘한다는 착각, 내가 서툴다는 착각, 내가 소중하지 않다는 착각, 내가 이쁘다는 착각’ ‘인생은 착각의 역사다’는 말이 있듯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 하나가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무심하게 대하는 내 모습을 본다. 항상 내 옆에 있기에 편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아내, 오랜 시간 한 교회를 섬기며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동역자들과 교인들. 편한 친구들과 동생들. 모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잘 안다고 여겼는데, 문득 생각하니 나 중심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 형님이 “너 자신을 알라”고 했으니, 익숙함으로 인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첫째, 마음 속 우월감, 열등감을 돌아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란 언제 생길까? 나의 정체성이 약해질 때,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시선이 나에게서 타인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내게 있는 좋은 점들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에 시선이 멈추며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월감, 열등감이 물밀 듯 밀려오는 시점이다. 분명, 나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녀인데, 그 정체성은 사라지고 비교의 함정에 빠진게 된다. 토끼가 거북이와 비교할 때 빠르지, 기린과 비교하면 빠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상대적인 비교에 빠지만 착각의 늪에 헤매고 만다. 둘째,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보자. 나는 장년부 사역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청소년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38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한다고 청소년들을 만나고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지만 과연 나는 청소년을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혹시, 내가 오랫동안 청소년 사역을 해왔기에 청소년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고민, 아픔, 갈등, 내면의 생각을 깊게 알고 있기는 한건지 나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본다. 셋째, 나의 내면을 자세히 보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에 나의 내면을 자세하게 볼 여유가 없다. 마음을 잡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나의 자아를 특정할 수 없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조차 일관성있지 않는 모습, 나와 타인을 수용하지 못해 요동치는 내 마음.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실제로 나의 내면을 직면하면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착각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 뿐이다. 넷째, 내 생각의 뿌리를 살펴보자. 예수님의 제자라면 삶 속에서 예수님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말로는 믿음, 사랑, 소망, 섬김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철저하게 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크고 작은 결정을 할 때, 타인과 관계할 때, 어떤 일에 진행할 때, 예수님의 생각이, 성경적 생각이 먼저 떠올라야 하는데 오늘도 나는 내 생각이 무의식으로 흘러나온다. 익숙함에 착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로 말이다. 살다보면,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들, 나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착각을 멈춘 후에, 내가 존재적으로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인인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우리가 은혜스럽게 부르는 이 찬양의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자.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란 이 표현이 삶으로 동의가 되는지. 내 삶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아픔과 꺾임이 있는지 자문해보자. 사랑하는 동역자, 성도님들과 이같은 고민, 갈등을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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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대구와 거제도에서 봉사한 존 시블리 의사
    의료선교사 존 로슨 시블리(John Rawson Sibley, 1926-2012)는 최근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는 대구 동산병원(1961-68)에서 그리고 거제도(1969-1977)에서 8년간 의료사업을 펼쳤던 인물이지만 거제도 주민조차도 그의 봉사를 모르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부산 늘빛교회 시무장로였던 정태산 의사를 통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는 그의 봉사를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앞선 시대의 봉사자를 기억하는 것은 후대 사람의 도덕이기도 하다.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에는 ‘전사불망 후사사야’(前事不忘 後事師也), 곧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후일의 스승이라’고 했는데 시블리의 헌신은 오늘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존 시블리는 1926년 10월 7일 미국 뉴저지주 메일플우드에서 노만 시블리(Norman Sibley)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43년 앰허스트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재학 중인 1945년 2월 육군에 입대하여 일본에서 복무하였다. 이때 만난 의료선교사 토핑(Dr Topping) 여사의 영향으로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48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만난 진 버틀러(손진희, Jean Lee Butler, 1926-?)와 그해 7월 2일 혼인했다. 부인은 교육학을 전공한 영어교사였다. 시블리는 의학 공부를 위해 노스웨스턴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리과 2년, 일반외과학 4년의 수련의 과정을 이수하고, 1960년 부인과 함께 미국북장로교선교사로 내한하였다. 1961년 대구지부로 배속되어 대구동산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게 된다. 마펫 원장의 안식년 기간에는 원장 서리로 일했다. 동산병원에서 일하는 한편 대구 한센병 전문병원인 애락원에서 외과진료를 병행했다. 특히 그는 병원신축이 필요하다고 보아 미국에서 모금활동을 벌려 애락원에 3층의 현대식 건물을 신축했는데, 국내에서 유일한 정형외과 수술관이 되었다. 이 애락원이 1968년에는 대구애락보건병원으로 개칭되었다. 시블리는 정형외과 김익동 과장과 더불어 한센병 환자 수술을 시행했는데, 한센병의 이차 증상으로 오는 안면 마비 환자에게 근전이술과 안면 현수 고정술, 또 눈썹이 사라진 자리에 두피 머리카락을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하는 등 한센병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1963년 동산병원의 이철 외과 과장이 3년간 미국 연수를 가고 없을 때는 다른 의료선교사인 존 해밀턴 다우슨(John Hamilton Dawson)과 함께 외과과장으로 일하면서 미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전수하였다. 1964년에는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성형외과 및 일반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다시 이수하는 등 의료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다시 내한한 1969년에는 거제도로 가서 의료활동을 재개하였다. 그가 거제도로 간 것은 그곳의 의료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시블리 의사는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기독교의료위원회(CMC)에서 ‘거제지역사회보건시범사업’(Jojedo Community Health and Development Pilot Project) 승인을 받아 거제군 하청면 실전리에서 시범사업을 위해 ‘거제건강원’이라는 기관을 개설하고 전통적인 병원 중심의 의료가 아닌 예방 등 더 넓은 의미의 지역사회 보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거제 주민들은 이곳을 ‘실전병원’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시블리 의사는 우리나라 공중보건 역사상 중요한 ‘지역사회의학’을 도입한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시블리는 치료의학의 한계점을 발견하고 차츰 병원 중심의 치료의학으로부터 지역사회 보건교육 및 일차보건의료접근법을 활용한 지역사회의학을 개척한 것이다. 이것은 저비용 고효율의 1차 의료보건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제도에서 첫 사역은 대구동산병원 간호학교를 졸업한 고수자, 김정남, 문태임, 유시영 등 네 간호사가 동참하였다. 유승흠 의사도 약 1년간 시블리 의사와 동역했다. 그 후 시블리 의사는 부산 복음병원 장기려 박사에게 자신의 의료사업을 도울 한국인 의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 때 장기려 박사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복음병원 내과에서 일하던 정태산 의사를 천거하였다. 그래서 정태산 의사가 거제도로 가서 시블리 의사와 같이 오랜 기간 동역하였다. 시블리 선교사는 거제도에서 8년간 일했는데 ‘섬 주민을 돌보는 선교사’라는 제목으로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거제도에서의 사역을 마감하고 1977년 51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거제도에서의 경험을 기초로 보건학에 대한 논문으로 1979년 하바드대학교로부터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0년에는 태국의 피난민 켐프에서 보건사업을 전개하였다. 1981년에는 다시 내한하여 연세대학교에서 지역사회의학 교수로 활동했다. 1983년에는 네팔로 가서 의료선교사로 3년간 봉사했다. 의료선교사직에서 은퇴한 그는 미국에서 의사와 교수로 활동하고 2012년 6월 24일 8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거제도 주민들은 시블리의 공적을 기념하여 공적기념비를 세웠다. 슬하에 4자녀를 두었는데, 차남 노만(손용만, Norman Sibley)는 마삼락 박사와 더불어 1982년 한국이 풍물 사진을 엮어 First Encounters라는 영문 책을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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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5-17
  • [성서연구] 이 말씀이 여기 있는 이유
    본문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은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세우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본문 열두 절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선 이 말씀은 없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은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4절이 이를 보여줍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셨습니다. 2장 1~4절입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므로 1장 14절에서 오늘의 본문 없이 곧바로 2장 1절로 이어지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세워진 맛디아가 그 후 복음 전파 과정에 바울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본문이 의미가 있겠지만, 본문 이후에는 맛디아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열두 절을 그 사이에 배치하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베드로가 유다의 죽음과 그 직분을 다른 이가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주님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맛디아가 세워진 과정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본문을 근거로 교회에서도 장로, 권사, 집사 등을 세울 때, 혹은 심지어 담임목사를 세울 때, 혹은 노회장, 총회장 등을 세울 때도 제비뽑기로 하자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왜 요셉과 맛디아만 후보가 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3의 후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비뽑기를 할 때 베드로가 했는지, 혹은 두 후보가 직접 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본문의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 때문에 본문 열두 절을 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주신 핵심 이유는 22절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이때 베드로와 성도들의 관심은 유다의 빈자리를 채워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여기 두 가지 중요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도 제자들이 부활의 기쁨에 충만했고, 부활의 메시지를 이어 나가려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활주일이 지나면 그것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다음 주제로 넘어가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365일 내내, 우리 가슴에 있어야 합니다. 또 이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6~48절입니다.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사명에 몰두했고, 이를 위해 맛디아를 보선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와 모임에서 어떤 이를 세우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세우는 자나 세움받는 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목적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이 일 다음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기록된 것은 성령님 강림의 목적이 부활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승리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기쁨으로 살고, 부활의 증인이 되는 목적에 의해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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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소강석칼럼] 우리들만의 아주 특별한 밤
    저는 故 이어령 교수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누구십니까? 천의무봉의 필력으로 끝없는 지식을 거대한 산맥처럼 이어가셨고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명이 자본이다> 등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는 창조적 신지식의 세계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저의 문학세계를 인정해 주시고 시집 ‘꽃씨’ 추천사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 시사의 첫장으로 알려진 육당 최남선의 ‘바다에서 소년에게’에서는 파도가 네까짓께 뭐야 라고 바위와 뭍을 몰아세우며 우르르 쾅 덤벼들지만, 소강석 목사의 그리움에서는 오히려 파도와 뭍의 절벽은 서로 친화의 사랑과 그리움으로 어울린다. (중략) 불교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이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 지도자들도 시를 쓰는 계기를 마련해 주시기를 빌면서 이만 말을 거두려 한다.” 특별히 이어령 교수님께서는 저의 시에 대해 애착심이 많으셨습니다. 언젠가 전화를 주셔서 “내가 하늘나라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내가 뭐 추천서 쓸 거 없습니까? 작품 있으면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집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를 썼을 때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소강석 목사는 예향(藝鄕)의 마을 남원 출신으로 목회자인 동시에 시문(詩文)에 능하고 풍류와 흥이 있으며 거친 남도 사내의 야성도 있다. 그의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 사람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풍모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나의 언어를 마지막 선물처럼 주고 이 시집의 추천사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도움의 말이 될지 모른다. (중략) 나는 그가 그리울 것이다. 그의 시가 그리울 것이다. 그와 나누었던 추억과 순간들이 그리울 것이다. 소년 같은 그의 웃음과 미소도….” 결국 이어령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저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 분의 장례식에 직접 가서 조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께서 저의 시를 인정해 주시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목사들의 시가 문단에서 잘 인정을 못 받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도 잘 팔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시가 이미지나 낯설게 하기, 은유와 함축, 반전 같은 것들이 없고 그냥 고백적이고 서사적으로 드러나게 쓰다 보니 논외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종회 교수님께서는 저의 시를 접하시더니 목회자 시의 테두리를 넘어서 문학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시집 원고를 보내 드렸더니 “몇 군데 좀 수정하면 안 되겠느냐” 하셔서 다시 표현을 했더니, 확실히 더 돋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년에 한강 세빛섬에서 북콘서트를 했을 때도 직접 참석하셔서 시 토크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우리 교인들 가운데 그때 세빛섬에 초청받지 못한 분들이 정말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예상을 초월한 북 콘서트였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파는 북콘서트가 아니라 봄을 맞아 꽃과 관련된 저의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느끼는 ‘꽃소리 들리는 밤’의 시 콘서트입니다. 물론 김종회 교수님을 초청하지 않고 우리끼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게도 문단에서 가장 위대한 평론가 중에 한 분이신 김종회 교수님을 모시고 시 콘서트를 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먼저 짧게 1부 예배를 드린 후, 우리 교인들과 함께 시 낭송과 노래, 연주, 토크를 진행하며 꽃향기가 보이고 꽃소리가 들리는 특별한 밤을 갖는 것은 우리들만 누리는 특권입니다. 저녁에 오신 분들을 정말 예의를 갖춰 모시겠습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꽃소리 들리는 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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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시사칼럼] 봄을 사는 이들이여, 메멘토 모르툼!
    유행병이 한창이던 수년 전 4월의 어느 날, 박지훈 목사가 「봄을 사는 이들에게」란 노래를 발표합니다. 제목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가사가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소개합니다. “봄을 사는 이들에게 오래 전에 이미 도착한 봄의 온기가 아직 다다르지 않은 이곳엔 사월에도 눈이 옵니다, 봄을 아는 이들에게 날카롭게 오는 눈발에 높은 하늘을 바라보기 무척 힘든 이곳엔 사월에도 눈이 옵니다, 큰 지붕 위에도 작은 지붕 위에도 멈춘 차에도 달리는 차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곳에는 사월에도 눈이 옵니다, 그곳에는 벌써 도착한 봄이 아직도 배달되지 않은 이곳에서는 4월에도 눈이 옵니다. 나에겐 겨울이 더 어울린다 하며 그런 따뜻함이 있을 수 있냐며 봄을 잃은 사람에도 봄을 모르는 사람에도 이곳에는 사월에도 눈이 옵니다, 그곳에는 벌써 도착한 봄이 아직도 배달되지 않은 이곳에서는 사월에도 눈이 옵니다.” 모두가 봄기운을 만끽할 때 여전히 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향기 날리고 분분한 낙화 대신 사월에도 온통 마음속 거리마다 눈이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 세상에서 그런 인생들이 어찌 한둘뿐이겠습니까마는, 특히 여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며 여전히 사월의 겨울을 살고 있는 세월호의 다섯 가족을 생각해 보세요. 이와 같이 누군가를 우리는 잊을지언정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법입니다. 아니, 우리도 그래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벌써 십년 전의 그 날 우리 모두는 뭐라고 외쳤습니까?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얘들아, 우리는 절대 너희를 잊지 않을게!’ 하지 않았던가요? 키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은 죽은 자를 기억한다’며 죽은 자를 향한 사랑이야말로 아무 보답도 해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비이기적인 사랑이고, 동정을 유발한다든지 해서 어떤 식으로든 강요할 수도 없는 짝을 향한 가장 자유로운 사랑이며, 도대체 변화할 수가 없는 존재를 향한 가장 신실한 사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죽은 자를 기억하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죽은 자를 향한 사랑은 죽은 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을 필수불가결한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잊은 자를 어찌 사랑하겠습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위해 어찌 기도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는, 지금 그들을 어떻게 얼마만큼 기억하고 있는지요? 예로부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유명했습니다. 라틴어로 이루어진 이 문구는 로마 시대 개선식을 거행할 때 승리한 장군 옆에 둔 노예가 끊임없이 속삭였던 말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승리에 안주하거나 도취하지 말고 ‘나도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고 되뇌며 겸손하란 취지에서 비롯된 일종의 잠언이었겠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차츰 기독교의 세계에도 들어와서, 중세 시대 수도승들은 만나면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고 전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경에 드러난 헤벨 사상 곧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전 1:2)라는 의미의 중세식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도 이 말을 간접적으로 암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일종의 기독교적 허무주의에 대해 살짝 비틀기를 시전하면서 ‘죽음을 기억하라’ 대신 ‘죽은 자를 기억하라’를 말했습니다. 기존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대신 “메멘토 모르툼(memento mortuum)”을 주창하고 나섰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메멘토 모리”, 좋은 교훈이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숭고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했던 자기 겸손의 발로(發露)였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메멘토 모르툼”은 이타적인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죽은 자는 도무지 갚을 길이 없을 테니 그를 향한 사랑은 순수하게 이타적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사월에도 겨울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봄을 가져다주려면 필요한 말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앞서 소개한 「봄을 사는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노랫말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봄이여 오라 봄을 떠나 온 이로 인해, 꽃이 피어라 꽃을 품고 온 이로 인해, 겨울에 사니 내 안 봄 더욱 만개합니다, 보내진 곳을 사는 이로부터.” 작가는 보스턴에 머물면서 어느 해 4월에 내린 눈을 보며 이 노래를 구상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도달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겨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봄을 전하기 위해 많은 눈물과 땀을 흘리고 있는 분들도 있답니다. 봄의 왕국을 떠나서 겨울왕국과 같았던 이 땅에 처음 꽃을 품고 온 배달의 시초, 배달부 중의 배달부이신 예수님을 따라 더 많은 봄이 배달되기를 소망해봅니다”(박지훈). 봄을 사는 이들이여, 아직도 겨울을 사는 이들에게, 이제는 겨울 대신 봄을 전해주지 않겠습니까? 눈 대신 꽃을 피워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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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은혜의말씀]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삼상 8:1-7)
    사무엘도 점점 늙게 되고, 그의 아들들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자 다시 이스라엘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믿음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처럼 믿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익에 따라 뇌물을 받고, 돈에 무너졌을까요? 믿음이란 자동적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향력도 중요하지만, 본인 자신이 믿음의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은 자기 몫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를 위한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순위이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도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믿음으로, 기도로 키워야 합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한 기도와 신앙 계승에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아와 ‘다른 나라처럼,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요구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무엘은 기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왕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블레셋, 모압, 암몬 같은 나라들이 모두 왕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멋져 보였던 모양입니다. 세상의 왕들이 왕관을 쓰고, 멋진 옷을 입고, 주위에 호위 군대를 거느린 모습이 대단해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더 좋은 것에 눈길이 가고, 다른 사람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고, 나타난 것을 전부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면, 오늘 현실에 당장 뭐가 나타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의심하지는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세상과 물질과 힘을 더 의지하려고 하시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사람은 자기중심적 교만의 성향이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요구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으로는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보호해 줄 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계획과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욕심, 불신, 자기중심적 교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나를 위한 세속의 보호가 필요하고, 방패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교만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왕의 제도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 불안한 현실을 통하여, 더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영적으로 어려서, 이방인처럼 왕이 없이 지내는 것을 불안해 하기 때문에 허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을 억지로 가려고 할 때 그대로 두십니다. 그래서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뒤로 제치고, 눈에 보이는 왕을 구함으로 결국 어떤 어려움을 갖게 될 것인가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위기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이 더 좋아 보이는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내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먼저 기도하고, 행동하는 원칙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주인이시오, 왕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세상이 왕이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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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위드애] 하나 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요한복음 17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 제자들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이다. 이 기도는 무엇보다 남겨질 무리들, 즉 예수를 믿고 그의 제자가 된 신자들을 위해 드려졌다. 얼마 후면 이들 곁을 떠나실 예수께서 남겨질 무리들을 위해 드려진 이 기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이 기도에서 두드러지는 줄거리는, 이 땅에 남겨질 무리들의 성격이다. 즉, 이 무리들은 고난 가운데서 진리로 보전되어 거룩하게 구별될 것이고, 예수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광을 이들이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사실이 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의 실체이다. 요컨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해지고 다시 신자들의 무리에게 계승되어진 그 영광은, ‘하나 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교리를 통해서 ‘하나 된 교회’를 ‘우주적 교회’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 된 교회를 특정한 어떤 지역 교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하나 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갖고 살다가 한 교회에서 만났다. 물론 우리는 하나의 구주와 하나의 아버지를 고백하였기에 교회에 모여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생각이 어떤 주제와 관점에서도 ‘하나’가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무리이다. 차라리,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하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무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의견, 다른 생각, 다른 배경을 한 교회 안에 용납하지 않으려 해왔다. 동일한 취향, 동일한 배경, 동일한 계급, 심지어 비슷한 학력과 직업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그것을 하나 됨의 증표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는 결과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아도 좋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새 신자가 교회로 들어오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사도는 설교에 전념하고 행정은 비유대인을 포함한 일곱 집사를 세워 처리하게 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혈통과 문화를 갖고 교회로 들어온 교인의 다양한 문제들을 유대교적 사고에 주로 익숙한 사도들에게만 맡기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즉, 교회의 다양성을 고려한 조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교회에 이견이 없다는 말이 사실은 자랑이 아니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 예배당에 모여 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며, 한 구주로 말미암아 구원받음 사실을 찬양하며, 다양한 삶의 정황 가운데 동일한 은혜로 승리케 하시는 성령님을 고백하는 일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장엄한 예배 가운데 나와 다른 내 옆의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고자 해도 사랑할 수 없는 내 보잘 것 없음에 한탄하며, 어느 구석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면서도 같은 사랑을 받은 형제와 자매 가운데서 그만큼 사랑할 이유를 볼 수 없음으로 인해 통곡하고 부르짖는 처절함이 우리 가운데 없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끝으로 묻고 싶다. 혹시 나의 그 거북함 때문에, 그 불편함 때문에 나의 교회에 장애인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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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목회자칼럼] 사람을 찾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사노페에서 추방되어 그리스로 망명하였다. 아테네에서 거지처럼 구걸하면서 삶을 이어가던 그가 어느 날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번화가를 누비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런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제자들이 물었다.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아테네에 사람은 많아도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정말 요즘 시대 상황과 세대들의 삶을 보면서 디오게네스의 마음을 자주 느낀다. 담임목사들은 쓸만한 부교역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부교역자들은 가고 싶은 교회나 존경하는 담임목사가 없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신실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을 만나기 어렵다고 말하고 목회자들은 좋은 교회나 순종하는 성도들을 만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해서 청빙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녀들이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는 교회 리더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대우에는 인색하면서 좋은 목회자들을 찾고, 대우는 요구하면서 영성이 풍성한 교역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채 모두가 다 좋은 사람들을 찾고 있다.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죽이는 자였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음성을 들었다. 눈이 멀었으나 밝아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 후에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성경을 기록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일꾼을 양성했다. 바울이 없는 신약성경, 초대교회, 기독교 역사는 생각할 수도 없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위대한 출애굽의 여정에는 부름 받은 사명자, 모세의 헌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역사는 대단하지도, 유명하지도 않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로부터 시작되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진 자들에 의해 200만명이 자유를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겼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셨다.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백성들이 다 살았다. 한 사람의 기도가 민족의 역사를 바꾸었다. 엘리야가 기도했다. 850:1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것을 거짓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기도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멈추었던 땅에 비가 내렸다. 모든 백성들과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 선거의 결과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나라가 남북, 동서, 좌우, 진보보수, 남녀, 노소로 완전히 분열되었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의 부흥은 멈추었고 다음세대는 소멸 직전에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의인 10명이 도시의 생명줄이다. 10명만 있으면 가정, 교회, 도시가 산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셨다. 예레미야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기도했고 말씀을 선포했다. 우리도 도시와 자녀와 교회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기도의 사람이 필요하다. 15년 전에 6명 여성이 부산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여성기도국 마마클럽의 시작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30개 도시에 지회가 세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역하고 있다. 성도는 은혜를 사모하고 풍성하게 받아야 한다.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은혜를 받으면 변화 된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 요셉은 민족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했고,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이런 은혜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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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소록도에서 일생을 헌신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öger), 한국명 고지선)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 한국명 백수선)의 아름다운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마리안느 스퇴거는 1934년 4월 24일, 2남 5녀 중 셋째로 오스트리아 마트라이에서 출생했고, 마가렛 피사렉은 1935년 6월 9일, 2남 2녀 중 셋째로 폴란드 출생했는데, 1945년 부모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였다. 마가렛은 1950년부터 의사인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간호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마리안느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간호 견습생으로 만난 이들은 간호사로 남을 섬기는 삶을 다짐하고 1952년에는 인스부르크 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수학 기간인 1954년에는 가톨릭 평신도 재속회 ‘그리스도왕 시녀회’에서 종신서원을 했다. ‘재속회’(在俗會)는 고유한 의미의 수도회는 아니지만, 사제나 평신도로서 속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회헌에 따라 일상적인 조건에서 생활하는 수도 공동체를 말한다. ‘종신서원’(終身誓願)이란 일단 한 번 서원하면 그 효력이 일생 동안 미치는 서원을 의미하는데, 일생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톨릭 의식에 따라 종신서원을 한 마리안느는 광주대교구장 헨리(Harold Henry) 대주교의 초청으로 1962년 2월 24일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28세 때였다. 첫 임무는 소록도 영아원에서 0~3세 사이 영아들을 보살피는 보모 역할이었다. 반면 마가렛은 프랑스 한센인 정착촌에서 6개월 봉사하고 1959년 12월 경북 왜관 한센인 정착촌에서, 그리고 1961년에는 한센인 병원인 동해원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1966년에는 이 두 간호사가 한센병 전문 구호단체인 다미안 재단의 지원으로 인도에서 6개월 간 한센병 간호교육을 받았다. 그해 10월부터는 다시 소록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한세인들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두 이국 여성들은 환자들을 맨손으로 치료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환자들의 상처를 맨손으로 만졌고, 자신의 무릎 위에 환부(팔, 다리)를 올려두고 치료했다고 한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다. 이들은 상한 몸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주는 고결한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다미안 재단은 5년의 계약기간 후 철수하였으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남아 2005년까지 변함없이 봉사했다. 이렇게 볼 때 이 두 사람은 1950년 이후 일생동안 함께 지내며 소록도의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소록도에서의 자기희생적인 봉사로 1994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을 수상했고, 1996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름 없이 섬기고 봉사하고자 했으나 이들의 헌신이 알려지게 되자 이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43년간 헌신했던 이 두 간호사는 2005년 11월 22일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 마리안느가 71세, 마가렛이 70세 때였다. 자신이 늙어 다른 이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한국으로 올 때 들고 왔던 가방 하나만 들고 평생을 몸담아왔던 소록도를 떠난 것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결코 자기를 드러내거나 그것을 희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뿐, 남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이들의 활동을 듣고 있던 나는 1997년 말 마리안느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의 활동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개신교의 손양원 목사 이상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이들의 사적을 정리하고 싶었기때문이다. 약 2주일이 지난 후 마리안느 스퇴거는 1998년 1월 12일자로 나에게 이렇게 회신했다. 그것도 예쁜 한글로. “주님의 평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 전하며 복된 새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마는 저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고 싶기에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고 함께 기도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98. 1, 12. 마리안느.”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도록 무명의 의지로 살았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고결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아낌없는 봉사를 잊지 않고 2016년 이들에게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지내던 중 마가렛 피사렉은 오랜 투병을 끝내고 2023년 9월 29일 선종했고, 마리안느는 생애 마지막 부분을 살고 있다. 주님의 평화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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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4-19
  • [서임중칼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도 가까워 온다. 나라 안팎은 최근 들어 더욱 어둠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무엇보다 빛으로 충만해야 할 종교계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방에 전달되는 정치권 소식에서는 밝은 내용을 접할 수가 없다. 백화점이든 재래시장이든 경제상황도 여전히 시린 겨울 소리를 내고 있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봄을 맞아 펴는 기지개를 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귀에 잡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진 것 같지만 기어코 어두움이 빛으로 전환되는 부활의 아침은 오고 있다. 사순절의 절정인 고난주간은 영적으로 깊은 어두움의 시간이다. 동시에 부활의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은총을 체득하는 깊은 영성의 크로노스다. 부활신앙이란 부활절 중심의 몇 날 동안 하는 축하가 아니다. 오히려 1년 365일을 부활의 은총을 연주하는 삶이 곧 부활신앙이다. 바로 세상에 살면서 빛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의 은총을 입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빛은 비췸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본래적 사명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생명이며 빛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소금과 빛의 차이점을 보면 소금은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며,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한복음 9:5절).” 여기서 ‘세상’에 해당되는 Cosmo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바올람’이다. 원래 이 단어는 ‘영원’ ‘불변’ 등의 의미를 나타냈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고통의 현세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고통의 세상에 오심으로 이 세상은 구원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빛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빛의 의미는 3가지로 조명할 수 있다. 첫째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생명체를 의미한다. 둘째 윤리적인 관계에서는 善을 의미한다. 셋째는 영적인 관계에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빛의 반대인 어두움의 3가지 의미로는 첫째, 자연계와의 관계에서 생명이 상실된 죽음이다. 둘째 윤리적인 관계에서는 악을 의미한다. 셋째 영적인 관계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어두움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다(요1:5). 그것이 부활의 은총이고 부활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세상에서 빛으로서 삶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의미를 역설하면서 삶으로 이를 증거한 사도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8-9).” 바로 이것이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전에는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제 어두움이 아니라 빛이 되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한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삶이다.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의미가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즉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Doing이 아니라 Being, 다시 말하면 무엇을 행하느냐 보다는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되어 있지 못하면서 되려고 하는 것을 ‘행동주의적 기독교(behavioristic Christianity)’라 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21:23).” 하고 책망하신 일이 있었다. 전형적인 Being이 아닌 Doing의 사건이다. 카오스현상이 되어가는 교회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기쁨을 위해 많은 사람이 아파하는 일을 행하는 것을 정당하고 의롭다고 항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를 공동체에 맞추는 삶을 살아가는 Being의 사람이 아닌, 나에게 모든 사람이 맞추어 주기를 바람하는 Doing의 사람이다. Being의 사람은 무엇이 되었다고 다르지 않다. 변함없이 항상 그대로 주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데 Doing의 사람은 무엇이 되고 나면 변한다. 어제와 동일하지 않다. 모든 기준이 자기가 되어 간다. 중요한 것은 “주여 나는 빛입니다.”라고 할 때 그는 이미 어두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할 때 그는 이미 죄인의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빛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할 때 실제는 빛이 되어지는 것이며,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할 때 그 순간 이미 그는 의인으로 칭함받는(Justification) 은총을 입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빛이 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이 아닌 자신을 높이려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참 빛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무엇이 되겠습니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Doing이 아닌 Being의 의미를 깨달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부활 신앙인의 삶이다.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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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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