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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의 말씀] 말고와 분별(롬 12장 1 ~ 2절)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는 교리로써 복음의 이론을 다루고 있다면 12장부터는 그 이론과 교리에 입각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덮어 놓고 하지 말고 성경책을 펼쳐 놓고 해라’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과 기분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의 매뉴얼, 인생설명서인 성경책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과 실제, 신행,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연결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나눈 그들을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고 있기에 형제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믿음을 가진 그들을 마음으로 진정 사랑하기에 권면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마귀의 편에 속함으로써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죄로 죽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 하셨습니다. 죽어야 할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몸과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죄짓는 죄의 병기로 쓰지 말고 의의 도구로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머무는 전인 우리의 몸을 언제나 깨끗함과 거룩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고 예배에 집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공로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선하신 뜻을 좇아 충성됨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생각과 함께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우리의 삶이 예배로 하나님 기뻐 받으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유행이나 트렌드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변화 무쌍한 유행이나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위해 굳건히 바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세대의 풍조와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바쁘고 스트레스 많은 일상 가운데 우리의 마음은 강팍하거나 굳어지기가 쉽습니다. 마음의 동맥경화가 일어나고 고집불통인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마음의 근본부터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지금은 넘쳐 나는 정보와 새로운 사조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무엇을 받아 들여야 하고 버려야 하는지 그 어느 때 보다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단은 거짓 것을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할 수만 있다면 믿는 자들도 미혹하려고 온갖 수를 다 짜내고 있습니다. 분별하기 위해선 변치 않는 기준과 척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기준과 척도가 되어 줍니다. 말씀을 알아야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력과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 기뻐 받으실 만한 삶으로 예배드리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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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4
  • [성공칼럼] 깨끗한 그릇 만들기
    성경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등등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도, 복음을 믿을 수도,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회개는 씻는 것이며, 그릇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그릇 속에 오물 덩어리가 있는 채로는 그 어떤 좋은 음식을 담을 수 없다. 이처럼 내가 깨끗하지 않고는 천국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회개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양심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일들이 거짓과 악이라는 생각이 들면 거절해야하고, 옳고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옳다고 여기는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천국은 주의 나라이며, 사랑의 나라, 진리의 나라, 빛의 나라, 선의 나라, 자유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일상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고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모습을 나타내어야 한다. 이런 일상적인 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예수를 믿고 천국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한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자백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 후에 다시는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종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술기운에 으스대면서 취하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면서 운전을 한다. 어느 날도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그만 경찰에게 걸렸다. 이 때 이 운전자는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경찰에게 잘못을 빌고 다시는 음주 운전하지 않겠다고 울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한다.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있으나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없으며 다음에 술 마신 후에 음주운전을 하지 않아야 그 때 회개가 완성되는 것이다. 회개란 마음을 넘어서 의지까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밝고 따뜻한 말과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없는데서 누군가가 내 잘못을 근거로 험담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에 불이 나고 두려움과 분노와 미움이 생길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순간 내 마음이 어두워지며 악한 기운이 가득차서 가슴도 답답해지고 몸도 긴장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질문을 해 보려고 한다. “내가 없는데서 내 험담을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 물음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생각할 때 분노와 미움이 사라지게 된다. 그 후에 “내 험담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사람과 만나서 “내 험담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당신의 행동을 통해서 내 모습을 깨닫고 고치게 되었습니다. 아프기도 하지만 고맙네요.”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한 상황에서 마음도 깨끗해지고 행동도 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서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회개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던 세례요한도 회개를 선포하면서 “속으로 우리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등을 자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즉 옷 두벌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세리들은 정한 세외에는 받지 말고, 군인은 힘으로 강탈하지 말고 지금 받는 월급을 족한 줄 알고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나기 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보여줘야 할 회개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밝고 선한 행동을 할 때 내 그릇은 더 깨끗해지고 더 큰 사랑의 세계, 빛과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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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4
  • [교회법률상식] 만 70세 전 원로목사 총회 총대, 운영이사장 될 수 있다(1)
    모 인터넷 신문(2016.2.10. 입력)에 “정년 전 은퇴한 원로목사의 노회 회원권의 한계”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 중 헌법에 상충되는 위헌적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그 기사는 교회 헌법을 뿌리 채 흔들어 놓는 아연실색할만한 내용이기에 부득불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먼저 밝혀 둔다. 논점이 될 만한 기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만 70세 전에 은퇴하여 원로목사 된 자는 노회 회원권이 주어진다는 교단 헌법에 근거하여 총회 총대나 운영이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이사장 직무 대행은 법적으로 그 신분이 유지되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회 회원이면서 조직교회 위임목사가 아니라 미조직교회 임시목사라는 이유로 총회 총대가 될 수 없다는 총회 결의(제87회)가 있다. 정년 전 은퇴한 원로목사는 노회 회원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총회 총대가 될 수 있으므로 운영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조직교회 위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원로목사는 운영이사회 이사로 파송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운영이사회 규칙 제4조에 운영이사회 구성요건에 21당회 이상의 노회에서 파송한 이사로 구성한다. 원로목사는 운영이사로 파송할 수 없으며 이사 자격이 상실된다. 이같은 법리에 따라 당회가 구성된 위임목사가 아니면 운영이사회 이사가 될 수 없으며 위임목사직을 사임한 목사가 단지 정년 이전의 은퇴자로 노회회원권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운영이사 자격이 상실되므로 운영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을 수 없다. 이사장이 아닌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이 유지되지 못하므로 ‘현행 송춘현 목사가 운영이사회 소집권을 갖고 있으며 송춘현 목사가 소집하지 않는 운영이사회의 소집은 위법이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 해석은 총회의 몫이다.”라는 대목이다. 이상의 기사에서 송춘현 목사가 운영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옳지 않다”함이나 “설득력이 없다”함이나 “이 해석은 총회의 몫이다.”라는 주장은 교단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한 법리에 대하여 교단헌법에 상충된 반론을 제기하는 역풍에 다름 아니다. 1. 이사장 직무대행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만 70세 전의 원로목사는 교단 헌법에 근거하여 총회 총대나 운영이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이사장 직무대행은 법적으로 그 신분이 유지되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흠잡을 것이 전혀 없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정당한 법리이다. 또한 만 70세 전 원로목사인 “송춘현 목사가 운영이사회 소집권을 갖고 있으며 송춘현 목사가 소집하지 않는 운영이사회의 소집은 위법이다.”라는 주장 역시 교단 헌법이 보장한 지극히 합당한 법리이다. 그 이유는 교단 헌법 정치 제10장(노회) 제3조(회원 자격)에 “각 지교회 시무 목사와 정년 이전의 원로목사와 총회나 노회가 파송한 기관 사무를 위임한 목사는 회원권을 구비하고, 그 밖에 목사는 언권회원이 되며 총대권은 없다.”라고 규정하였고 본 조항은 노회의 회원 자격 규정으로 “정회원”(회원권을 구비 하고)과 “언권회원”으로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① 언권회원은 “그 밖에 목사는 언권 회원이 되며 총대권은 없다.”라는 문장에서 “그 밖에 목사”란 무임목사, 전도목사, 정년 후 원로목사, 은퇴목사를 의미하며(정치 제4장 제4조 참조) “총대권은 없다”란 총회총대 피선거권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총대권은 없다.”라는 필요치 않는 문장을 덧붙인 것은 개정되기 전의 옛 헌법이 노회에서 장로 총대가 아닐지라도 투표만 받으면 총회총대가 될 수 있었던 것과 무임목사도 위원회에서는 피선거권이 있었던 것을 삭제개정하면서 강조한 문장이고 언권 회원은 정회원 그 밖에 목사이므로 선거권, 피선거권, 결의권, 총회 총대권이 없는 노회 회원이다. ② 정회원은 지교회 시무 목사인 위임 목사, 임시목사, 부목사 와 정년 이전의 원로목사, 기관 목사로서 선거권, 피선거권, 결의권, 총회 총대권을 구비한 노회 회원이다. 따라서 언권회원이 아니고 정회원(회원권을 구비한)에 속한 정년 이전의 원로 목사는 노회와 총회가 투표만 해주면 총회총대, 운영이사, 운영이사로서의 운영이사장 또는 운영이사장 직무대행이 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바 정당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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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4
  •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
    그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부인하기가 시인하기 보다 어려워 예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니다. 전설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뜬소문은 더욱 아니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실제로 죽으신지 삼일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이 사실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한둘이 아니다. 첫째, 무덤의 문이 열렸고 예수의 시신이 없어졌다. 예수의 시신을 그를 죽인 자들이 훔쳐갔을 리가 없고 예수의 제자들은 파수꾼들 때문에 무덤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음, 천사들이 증언하기를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셨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그랬다. 다음,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제자들에게도 11번 나타나셨다. 한번은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셨다. (고전 15:6) 거기 보면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다”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인가. 내가 하는 말이 안 믿어지거든 그들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다음,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예수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전하다가 그의 순교한 것을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예수께서 잡히실 때에 자취를 감춘 자들 아닌가. 그랬던 그들이 목숨을 걸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한 것을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다음,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어 평생토록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다가 순교한 사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박멸하려던 자아닌가. 그는 자기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를 뵙지 않았으면 절대로 남의 말만 듣고 변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울의 변화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음, 예수의 교회가 그의 부활의 증거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그의 제자들이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고 교회가 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교회가 서고 교회가 온 세상에 확장된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알고보면 예수의 부활은 부인하기가 시인하기보다 어렵다. 믿기는 쉬우나 부인하려면 부인할 길이 없다. 저명한 학자 프랭크 모리슨을 보라. 그는 예수의 부활을 반박하기 위해 반증자료를 수집하여 연구하다가 되려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지 않았는가. 그가 펴낸 책 제목이 ‘돌을 누가 옮겼는가’ 이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고로 믿는 우리도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고보면 그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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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4
  • [목회자칼럼] 우리 안에 숨어있는 5가지 적(敵)
    세계 제2차 대전이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미국 국민들은 전쟁 피로감에 빠져 들고 있었다. 연합국 쪽에 필요한 엄청난 전쟁물자 보급을 미국이 거의 도맡다시피 해야 했으니 그럴 법도 하였으리라. 전쟁을 일으킨 주축국들인 독일, 이태리, 일본은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하였다. 그러므로 몇 년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물자를 충분히 비축해 두었다. 히틀러는 기습공격과 속전속결 전법으로 순식간에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서부지역 등 서유럽과 동유럽을 전격적으로 점령하였다. 가공할 힘을 가진 나치 독일군대를 그런대로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 뿐이었다. 그러나 영국역시 <전시 국민총동원령>을 내려 유럽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영웅적으로 나치 독일과 싸우느라고 온 나라가 극도의 피로감으로 빠져 들어갔다. 미국과 영국 국민들의 마음에는 차츰 불길한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가 전 유럽이 저 무지막지한 괴물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연합국이 패배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불길한 생각도 무리가 아니었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독일, 이태리, 일본에 비하여 여타 유럽 국가들과 미국 국민들은 난데없는 뜻밖의 침략을 당하였으므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안락하고 평화롭던 일상의 삶은 산산조각 파괴되고 불안과 공포가 쌓여가면서 마침내 미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그토록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던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싸움이든 전쟁이든 <두려움>에 빠져들면 이길 수가 없다. 무기가 많고 인원수가 많아도 <두려움>이 그 집단을 둘러싸버리면 그 구성원들은 전사(戰士)가 될 수 없다. 바로 이 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미국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격려하였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사악한 저 적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단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뿐입니다. 이것만 극복하면 우리는 능히 적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두려움>이야 말로 우리가 꼭 격퇴해야 할 나쁜 적(敵)이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에는 왜 두려움이 자리를 잡는가? (1) 하나님을 부정(不定)하거나 부인(否認)하면 오히려 두려움이 생긴다. (느부갓네살 왕, 페스토스 총독)(2)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생긴다. (아담, 가인, 가롯 유다)(3) 몸과 마음이 병들면 두려움이 일어난다. (히스기야 왕, 에바브로디도)(4) 인생을 성실하게 살지 않으면 항상 두려움에 쫓기게 된다.(5) 구원의 확신이 없이 죽음이 다가올 때 사람은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담대함과 평강>을 소유하는 것이다.다음의 성구들이 우리에게 <담대함과 평강>을 준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잠15:13, 17:22, 사41:10, 요16:33, 14:27, 20:19, 롬8:37~39, 빌4:6~7)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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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 [성공칼럼] 밝음과 따뜻함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빛과 열이 함께 있어야 한다. 빛이 있으면서 열이 없으면 차가운 한겨울 햇빛처럼 물을 얼게 만들고 나뭇잎을 떨어지게 하고 땅을 꽁꽁 얼게 만든다. 이렇게 생명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빛이 냉기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빛이 따뜻한 열과 결합할 때에만 봄 철, 여름철의 햇빛처럼 생명을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빛과 열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진리와 사랑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 진리는 빛, 총명, 능력, 힘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랑은 열, 따뜻함, 배려, 선함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아는 총명하고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속에는 사랑, 따뜻함, 열정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뛰어난 실력과 총명함으로 사람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며 사람을 두렵게 만들고 옥죄어서 자유와 기쁨을 사라지게 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은 사랑이 최고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 목적이고 시작이고 생명이라는 말이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랑을 이루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항상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과 주변을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이어야 하며 진리를 통해서 사랑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온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나 혹은 자신의 죄 때문이다.’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 그 속에는 따뜻함이 없었고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있었을 뿐이다. 날 때부터 맹인으로 살아야하는 불행처럼 보이는 이 삶을 보면서 원인을 찾고 책임질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모두의 삶을 더 불행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순간에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하시며 원인이나 책임질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맹인의 불행해 보이는 삶 속에서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을 말씀하신다. 눈이 보이지 상태에서도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선을 행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 불행의 원인과 원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삶은 생기를 얻으며 주변은 밝아지고 따뜻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으로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어두운 눈을 뜨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진리란 ‘이것이 옳다. 이것이 맞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세상을 밝게 만드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밝게 만든다. 불을 발견한 사람, 전구를 발명한 사람, 인체나 과학의 비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 영적인 비밀 등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 시대를 밝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힘 있는 자가 되며 권력과 부를 소유한 지배자로 살아간다. 진리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지고 사랑과 선을 행하며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와 비밀을 알아서 힘과 권력을 소유했다면 그것으로 다 이룬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속에 반드시 따뜻하고 선을 행하는 사랑이 있어야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생명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영적인 진리를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나 수많은 제자를 둔 선생이나 부자나 권력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따뜻함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생명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갖추어 밝으면서 따뜻하며 나로 인해 상대방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진리와 사랑을 모두 갖춘 균형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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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 [은혜의 말씀] 소자행진(마 25장 21절)
    우리는 한 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25장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의 말씀 속에 여덟 가지 답이 있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칭찬과 상급을 받고 면류관을 받아야 합니다.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 주실 것을 기대하며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둘째, 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성도의 사랑은 물처럼 촉촉하게 스며들고 향기처럼 퍼져나가게 됩니다. 셋째, 충성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쓰임 받고 충성된 자가 복을 받습니다. 충성은 헛된 마음 버리고 허탄한 자랑을 아니 하며 하나님께 성실함과 정직함 입니다. 넷째,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종이라는 존재는 자존심 같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종은 그저 주존심만 있으면 됩니다.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생각과 뜻대로 성경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종의 특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둘째, 현장에서 평생 일을 한 일꾼이기에 그 일만큼은 전문가요 고수이며 달인입니다. 셋째, 종은 즐겁다는 겁니다.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지만 종은 아무 걱정 안하고 시키는 일만 그저 열심히 합니다. 복잡할 것이 없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지요. 우리는 종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큰소리치지 말고 오로지 주인의 뜻을 쫓아 전문가가 되어 즐겁게 일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섭섭할 게 없습니다. 일복이 많은 일꾼은 섭섭할 틈도 아플 틈도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적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가하실 때 적은 일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십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크고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여섯째, 우리 스스로 역량을 키워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따라서 많은 것을 맡기십니다. 일곱째, 주님께서 맡기실 때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신뢰한다, 위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지가 되고 신뢰가 될 때 맡기십니다. 우리가 겸손을 감당하면 하나님이 존귀하게 해 주시고 거룩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으로 쓰기 때문에 거룩을 감당하게 됩니다. 여덟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 어린 양 혼인잔치가 열리는데 그 파티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누리는 것들은 순간의 찰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이 땅에서 서럽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것도 유한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장차 받을 축복,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있는 곳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언제나 웃을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빼앗기지 마시고 끝까지 충성되고 착하게 살아 복 있는 사람, 사랑 받는 사람, 원도 한도 없이 후회 없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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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 [성경인물탐구] 베드로에게 복음을 전한 안드레(3)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알고 그분을 좇았던 안드레는 자신의 형인 베드로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에 관해 정확하게 알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분을 만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가족을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가족이나 친척이 믿지 않는 것을 보며 심지어 부부라 할지라도 한쪽만 믿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의 책임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과 혀로서만 하는 사랑이 아닌 내 가족의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요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안드레는 자기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되는지를 알지 않고서는 그분을 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메시아이십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전하였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 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들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도가 전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현명한 것이 아닙니다. 안드레처럼 자신의 형인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면서 그 형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힘써 전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신앙이 성숙할 때까지 철저히 양육해야 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복음 전도의 원칙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불신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해야합니다.요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리라불신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의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해외 선교도 중요하고 국내 선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내 친족, 내 이웃부터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장차 내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시기에 있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회가 무르익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상관없이 항상 감당해야 할 일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해야 합니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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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 [교회법률상식] 원로장로는 당회장에게 당회소집 청원권 없다
    -시무장로 없고 원로장로만 있는 교회 행정은 당회장 단독 처결 -폐당회 당회장은 원로장로 동의 없이 모든 당회권 행사 가능 [질의] 대구동노회 H교회의 사건입니다. H교회는 시무장로 1인만 있는 조직교회였는데 시무장로가 원로장로로 추대됨으로 폐당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H교회 당회장이 노회에 장로 선택 허락을 받고 법이 정한 대로 1주일 전에 장로 선택을 위한 공동의회 광고를 하고 광고한 일시에 공동의회를 하여 피택 장로 1인을 선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로장로가 당회도 하지 않고 공동의회를 한 것이 불법이라고 하면서 노회에 소원장을 제출했고 노회 임원회 역시 원로장로의 동의 없이 공동의회를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여 교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원로장로의 주장과 임원회의 판단이 옳은 일인지 목사님의 법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합동 대구 K목사) [답] 질의자가 합동측 목사이므로 합동 헌법으로 답한다. 1. 당회 조직과 원로장로의 당회 회원권 정치 제9장 제1조(당회조직)에 “당회는 지교회 목사(필자 주 : 당회장)와 치리장로로 조직하되 세례교인 25인 이상을 요하고 장로의 증원도 이에 준한다.”라 하였고, 정치 제5장 제5조(원로장로)에 “ … 당회의 언권회원이 된다.”고 하였으며, 정치 제9장 제2조(당회의 성수)에 “당회에 장로 2인이 있으면 장로 1인과 목사(필자 주 : 당회장)의 출석으로 성수가 되고, 장로 3인 이상이 있으면 장로 과반수(필자 주 : 과반 수 이상)와 목사 1인이 출석하여야 성수가 된다. 장로 1인만 있는 경우에도 모든 당회 일을 행하되 그 장로 치리 문제나 다른 사건에 있어 장로가 반대할 때는 노회에 보고하여 처리한다.”고 규정하였다. 이상과 같은 헌법 규정을 종합하면 당회의 조직에서 당회장과 시무장로와 세례교인 25인 이상은 절대적인 당회 조직의 필수요건이다. 그러나 당회의 언권 회원인 원로장로는 당회 조직이나 당회 성수에 절대적 요건이 될 수는 없고 당회에서 언권 회원이다. 2. 폐당회 시의 위임목사와 원로장로 제60회 속회 총회(1976년 2월)에서 “2년 내에 당회 조직을 회복하면 위임식을 거행할 것 없이 여전히 위임목사로 시무함이 가하니라.”는 총회 결의에 근거하여 위임목사는 폐당회 후 2년까지는 계속하여 위임목사의 신분이 유지되므로 당연직 당회장으로서 시무장로가 없을지라도 미조직교회의 임시목사가 노회로부터 당회권을 위임 받아 재판 건을 제외한 모든 행정 건을 당회장 단독으로 행사하는 것과 같이 H교회의 당회장도 모든 행정 건을 당회장이 단독으로 처리한다. 그러므로 H교회의 당회장이 장로 선택을 위한 공동의회는 지극히 합법적인 행정 처리이다. 즉 원로장로는 시무장로가 있을 때에만 당회에서 언권 회원이 되고 시무장로가 사임을 하여 폐당회가 되었을 때에는 당회장이 원로장로와 둘이서 당회를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모든 회의는 의결 도출을 목적으로 하는데 반하여 의결권이 없는 언권 회원과는 그 어떤 안건도 결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당회는 당회장이 원로장로와는 당회를 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2년 내로 당회가 회복되면 원로장로도 역시 당회에 참석하여 언권 회원이 된다. 3. 원로장로의 소원장과 임원회의 판단에 대하여 원로장로는 당회에서 언권 회원일 뿐이요 의결권이 없으므로 사실상 폐당회가 된 위임목사가 원로장로와 독대하여 당회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언권 회원인 원로장로가 당회도 하지 않고 공동의회를 한 것이 불법이라고 하거나 원로장로의 동의 없이 공동의회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는 소원장을 제출할 수 없다. 혹 공동의회 시 절차상 잘못된 일이 있다면 원로장로나 세례교인이나 누구든지 공동의회 회원으로서 소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원로장로가 당회를 하지 않았다거나 원로장로의 동의가 없었다는 등의 사유로서는 소원 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회에 소원 건이 접수되면 노회 서기는 서류 형식의 적부를 심사하여 반려하거나 접수하여 노회에 상정하는 것이 그 직무이고 서기가 접수한 서류를 노회 임원회가 검토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은 서기의 고유한 직무를 월권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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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 [가정칼럼]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몇 번이나 할까? 누구든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그 분도 거짓말을 하셨다.“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세기 18:12-14)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찾아 와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만 은밀히 전했는데 사라가 엿들은 것이었다. 이에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성경은 ‘사라는 여성들만이 하는 월경이 이미 중단된 지 오래였다’고 말한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늙었고 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 내가 어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오?”이를 이중적 절망이라 부른다. 자신만 안 된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도 남의 이야기까지 끌어들인다. 사람의 본성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라의 구체적인 말과 달리 하나님은 중요한 말 한마디를 생략해 버린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했던 말(“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를 놓고 한 신학자는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라의 한마디를 생략해 거짓말(?)의 올가미를 써야 했을까? 해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 작은 한마디에라도 아브라함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통찰!어떤 목사님이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던 중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큰 목회를 하지 않았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원망한 일도 있노라고’ 목사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고 싶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픈 마음이었음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한 결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자에게는 엄청난 아픔이었고 깊은 상처였다. 사모는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결혼생활에서 가장 많은 갈등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화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화부족이 아니라 지혜로운 대화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거짓말” 옳고 그름의 신학적 논쟁을 떠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남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면 굳이 옮겨 놓지 않았던 하나님의 작은 ‘배려’가 사랑의 의미를 또 다시 깨우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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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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