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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선한 삶의 역사를
    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암살범의 총에 의해 피격을 당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국민 약 1천 200명이 사망했다. 그날 이후,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팔레스타인 국민 3만 5000명이 사망했고, 8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충격과 아픔 그리고 슬픔과 분노의 현장들이다. 1916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코파 아메리카 2024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196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 2024 대회에서 스페인이 우승했다. 1877년 영국에서 시작된 2024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가 남녀 단식경기에서 우승했다. 기쁨과 환희 그리고 감격과 감동의 현장들이다. 슬픔과 분노의 현장이든지 기쁨과 환희의 현장이든지 그곳에는 항상 그 현장을 목도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여러 가지의 매체들을 통해서 그 현장의 소식들을 전해 듣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들이 일어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과 현장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정서적 충격 여파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목격하고 경험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 후자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1. 선한 삶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심상사상(心想事成),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 했다. 지성이면 감천과 유사한 의미다. 세상과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은, 간절하게 사모하는 자가 얻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부귀와 영화, 출세와 성공, 건강과 명예, 관계의 회복과 심신의 평안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에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복권도 구매해야 당첨될 수 있다. 선한 삶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악함을 원하면 삶의 자리로 그러하다. 2. 선한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선한 삶을 추구하고, 계획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리의 길도 첫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고, 천자문도 하늘 천(天)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선한 삶의 현장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이 진행되고, 축제가 열려도 자신이 그 현장에 없으면 현장이 주는 기쁨은 결코 누릴 수가 없다. 현장의 기쁨과 감격은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열매이며 축복이다. 3. 선한 삶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인생에서 받아야 할 가장 큰 축복이 만남의 복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 했다. 곁에 있으면 물드는 것이 상식이다. 생선을 만지면 비린내가 나고 꽃을 만지면 향기가 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인격자가 되고, 사기꾼을 만나면 인생을 망친다. 동일한 선상에서 비판적이고 호전적인 사람을 만나면 삶이 거칠어지고,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어그러지기가 쉽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선한 삶의 자리와 선한 삶을 향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한다. 기독교에 대한 대사회적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고, 무신론과 탈종교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먼저 선한 삶을 추구하고, 선한 삶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선한 삶의 모델이 되어 주고,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선한 삶의 현장을 접하게 해주는 통로와 동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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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6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부산경남지방에서의 서양음악
    부산경남지방에서 서양음악, 곧 양악(洋樂)은 언제 어떻게 소개되었을까? 필자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무심하게 지냈는데 최근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대강이라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어떤 음악교사가 이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가 서양음악이라할 때 우선 동양음악이 아닌 것으로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된 때는 1780년이라고 말한다. 박지원이 청나라 사절로 다녀온 후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는데, 이 책에 언급된 풍금기(風琴記)가 첫 언급이라고 한다(유덕희, 세계음악교육사. 406). 그후 천주교의 전파와 더불어 코랄이나 그레고리안 찬트 등 교회 음악을 통해 서양음악이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784년 이승훈의 영세 이후 천주교는 백여년 간 금압된 종교였음으로 천주교회 음악이 대중화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실제적으로 한국에 양악이 소개된 개신교의 전파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상우는 한국에 서양음악이 소개된 시점을 1885년으로 보고 있다. 기독교는 서양문화의 옷을 입고 전파되었으므로 1884년 이후 서양 음악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통해 유입된 것이다. 첫 선교 학교라고 볼 수 있는 1885년에 설립된 배재학당에서는 처음부터 ‘창가’(唱歌)를 가르쳤는데, 서양음악의 보급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창가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이화 경신, 인천의 영화여학교 등 선교학교와 교회에서 찬송가를 통해 서양음악이 소개 된다. 북감리교의 존스와 로드와일러의 ‘찬미가’(1892), 장로교 첫 선교사 원두우의 사성부(四聲部) 곡과 가사로 된 찬양가(1894), 북장로교 그라함 리와 기포드 부인의 찬셩시(1895)를 시작으로 여러 찬송가가 발간되면서 서양음악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최남선의 ‘소년’이 창간된 1908년 당시 찬송가 발행 부수가 6만 부, 1910년 당시 22만5천부, 1911년에 다시 5만 부, 그래서 찬송가 첫 발간 이후 22년간 87만4천5백 부가 발간되어 양악이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20년대까지 서양음악은 사실상 찬송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한말 왕실이 군악대를 조직하고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를 초빙하여 군악대의 육성을 맡긴 일(1900)도 양악 소개의 한 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부산경남에서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서양음악이 소개되었을까? 이 지방에서의 양악의 소개도 개신교 선교 및 선교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891년 내한하여 부산에 정주하게 된 윌리엄 베어드는 영선현에 자신이 주택을 건립하고 예배용으로 서양 악기를 준비했는데 그것이 일본 요꼬하마에서 1892년에 수입한 풍금이었다. 이 풍금이 부산경남 지방 두 번째 서양식 악기였다고 한다. 베어드의 부인 애니(Annie)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1859년 미국인 와너(A. B. Warner)가 쓴 가사에 브레드버리(W. B. Bradbury)가 곡을 붙인 “예수 사랑하심”(Jesus Love Me this I Know)을 우리말로 번역했고 풍금을 타며 이 노래를 가르쳤는데 애니가 번역은 이 가사는 1898년에 편찬된 찬송가 「찬성시」에 게재되었다. 1895년에 설립된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처음부터 성경, 가사, 조선말, 한문 등과 창가(음악)을 가르쳤다. 창가는 사실상 찬송을 가르친 것인데 여 선교사들의 몫이었다. 1914년 이후에는 교장인 대마가례(M. Davies)가 음악을 가르쳤다. 이런 음악교육이 서양음악의 전파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는 예배음악을 통해 양악을 소개했다. 부산에 처음 소개된 피아노는 선교사 사보담(William Sidebotham) 부인 에피(Effie)의 것이었다. 이들은 1899년 11월 내한하여 대구지부에서 일하게 되는데, 태평양을 건너 온 피아노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대구 달성이 사문진 나루에서 16km 거리인 대구시 중구 종로(현재의 약전골목)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운반했는데 이것이 대구지방 첫 피아노였다. 1900년 3월 말의 일이었다. 그런데 사보담 선교사가 1900년 11월 부산선교부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소유 피아노도 부산으로 이동하여 부산과 경남지방 첫 피아노가 된다. 부산에서 8년간 일한 사보담 부부는 안식년을 맞아 1907년 말 미국으로 돌아갔고 1908년 12월 3일 사보담은 가스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그후 에피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8년간 부산을 지켰던 그 피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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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7-26
  • [시사칼럼] 심슨 가족의 예언
    연일 미국 대통령선거전 관련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그런데 외신을 통해 아주 흥미로운 보도 하나가 전해졌지요. “심슨 가족의 예언”이라는 촌평입니다. 22일(현지) 미국 CNN과 CBS 방송은 최근 온라인에서 24년 전 방영된 심슨 가족(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최상수 TV 시트콤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 내용을 현재 상황과 비교하며 작성한 글이 퍼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회차는 극중 주인공 이름을 따서 “바트 투 더 퓨처(Bart to the future)”(1985년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패러디)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심슨 가족의 자녀 중 한 명인 리사 심슨이 성장해서 2030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바이든이 사퇴하면서 여성 부통령인 해리스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급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나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이 사람들 주목을 끌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만화는 비슷한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내보냈는데, 2016년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만화 속에서도 그 다음에 리사 심슨이 등장하는데, 이번에 트럼프의 대항마로 여성이 최초의 대통령 후보자가 되기 직전이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 너무나 신기해서 사람들이 예언 아니냐고들 그럽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이 아니라 세부적인 묘사까지 예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일치했는데,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장면은 놀랍게도 17년 전 만화 속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켰더랬습니다. 그리고 데자뷰(déjà-vu) 같은 사건이 이번에 또 다시 벌어진 건데, 급부상한 해리스 부통령 사진이 온 세상에 퍼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또한 이십 여 년 전 리사 심슨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해리스도 심슨도 똑같이 보라색 자켓을 입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게다가 둘 다 귀에는 진주귀걸이를, 목에는 진주목걸이를 장신구로 착용했는데, 마치 해리스가 만화 속 주인공을 모델로 했다 여길 정도로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예언 운운 하지는 않겠지요. 2012년의 심슨 가족 판에서는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공연하는 장면을 실었었는데, 2017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가가는 만화 그대로를 재현하고 말았습니다. 만화가 공연이 되고 공상이 현실이 되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1990년대에 지금은 상용화된 휴대전화나 가상현실 같은 류(類)를 벌써 예측하여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CNN은 “심슨 가족이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로 찬사를 받고 있다”며, “복권 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야 할 판”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논평을 남겼습니다. 심슨 가족만 예언자로 일컬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월드컵 문어를 아십니까? “파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의 문어 한 마리가 UEFA 유로 2008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패 여부를 높은 확률로 맞춰 일약 유명해져서 죽을 때까지 점쟁이 문어, 족집게 문어 등의 별명을 갖고 유명세를 떨치며 살았습니다. 문어가 그럴진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유튜브를 보면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자칭 예언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 중에는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로부터 한국의 탄허 스님 그리고 9.11테러부터 오바마 당선과 코로나 창궐까지를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바바 반가, 역시 코로나 등 사건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인도의 소년 예언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언가들이 갑자기 많이 등장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만큼 예언과 같은 이야기에 솔깃한 세상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기야 손에 왕(王)자를 새기게 하고 당신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다는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되어 나아가 정치계까지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진 무슨 스승이나 법사 같은 이들이 있다지요? 점술가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각종 점쟁이와 자칭 예언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이 그만큼 미신과 무속과 풍수와 도참에 빠져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러한 풍조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몹시 슬픕니다. 성경적 관점에 설 때 기독교인들은 특히 예언이라고 하는 개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정통적인 교리에서 이르는 바와 같이 이미 구원에 관한 예언은 다 이루어졌고(충분함),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은 그렇게 큰 실익도 없다(무익함)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분별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월터 모벌리는 『예언과 분별』에서 그 동안 예언의 주장과는 달리 예언의 분별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전문가들조차 논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반인 신자들이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예언이 미래의 종말이나 새로운 세상에 관한 즉 묵시(黙示)에 해당한다면 한층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스티븐 쿡은 『예언과 묵시』에서 묵시에 관한 새롭게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묵시에 관해서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하거나 박탈 이론으로써만 이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한층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손바닥 글자나 무덤을 이장하거나 예언이라는 말에 의지하여 인생을 변화시키려는 작태를 그만두어야 할 때입니다. 헛된 예언이 아니라 참된 계시의 말씀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일에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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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6
  • (은혜의말씀) 들러리의 기쁨 (요한복음 3:29~30)
    역사를 보고, 시대의 정치현실을 보면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질리게 된다. 성경을 보면 강한 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들이 쓰임 받았다. 복 있는 사람은 거친 인생길에서도 사방팔방에서 돕는 자들이 나타난다. 만남의 복,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처럼 위로부터 오는 것이 큰 복이고, 조그만 복은 사람이 오두방정을 떨어 챙길 뿐이다.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할 때 천지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이 온다고 하였다(시121:1~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돕는 것이다. 최초에 가정을 만드실 때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창2:18).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 돕는다는 것은 굉장히 힘 있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이며 베푸는 자가 부자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성령님은 내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도 나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친히 간구하심으로 보혜사, 위로자, 중보자, 대언자, 상담자가 되시며 도우미역할을 자처하신다. 성령은 예수님을 높이지만 악령은 자기를 자랑한다. 교회 안에도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 자랑에 빠져있는 자들이 많다. 다윗은 아들에게 배신을 당해 맨발로 야반도주하는 서글프고 비참한 상황에서,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에게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골리앗을 향해서는 의분을 가지고 일어나 물맷돌로 쳐 죽였다. 갈렙은 성경에서 여호수아보다 먼저 언급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출애굽노상에서 다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약속의 땅에 들어간 갈렙과 여호수아다.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기득권, 특권, 대권은 여호수아에게 양보하고, 험한 산지를 달라고 자원하며 팔십대에 특공대로 선뜻 나섰다. 세례 요한의 인생주제가 ‘나는 쇠하고 그는 흥하리라’다. 잔치의 주인공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들러리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너무나 단출하게 살며 그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는 도우미 역할에 기뻐하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칭함을 받았다. 구약성경에서는 팔자 사나운 두 과부가 가문의 영광을 이루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 태생적으로 아웃사이더였던 모압 여인 룻과, 객지에서 남편과 아들 둘을 다 잃고 쪽박을 찬 나오미가 예수님이 오시는 다윗의 왕가를 열었다. 며느리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결단을 내리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신앙고백을 했다.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삭을 주워 먹는 거지같은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설 때, 주께서 유력한 자, 기업 무를 자, 회복자인 보아스를 붙여주셨다. 초대교회 최초의 선교사, 가장 성경적인 안디옥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바나바다. 자기가 스카웃해서 키운 부교역자가 적극적으로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섬기며 바울이 주도하는 선교사역에 마중물이 되었다. 넉넉한 인품과 영성을 갖춘 바나바가 없이는 사도 바울도 없다. 이렇듯 성경의 역사는 똑똑한 자, 힘 센 사람, 일 잘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컨드 리더십, 조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세의 여호수아, 다윗의 솔로몬, 엘리야의 엘리사, 바울의 디모데, 이들은 조연으로 감칠맛 나는 삶을 살았다. 역사가 단절되거나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면서 두 사람이 원 팀을 이루는 팀 사역이 되었다. 지나온 역사를 계승했다. 화려한 장미꽃은 아니지만 장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은 안개꽃 같은 존재였다. 부담을 지는 주인보다 단순한 종이 기쁘듯이, 장남보다 막내가 즐겁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잘난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평생에 주의 미천한 종이라 고백했던 다윗처럼, 자기 자리를 잘 감당하는 자세가 복되다. 세컨드 리더십과 돕는 자, 조연으로 만족하는 자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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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8
  • [서임중칼럼] 배신의 정치
    요즈음 뜬금없이 여의도 발 ‘배신의 정치’가 무더운 날씨보다 더 핫하게 국민의 일상을 달군다. 너나없이 모이면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가운데서 회자하는 말이다. 당권을 가지려는 후보들이야 무슨 말을 안 하겠는가만 그래도 후보들은 상대방 공략의 수단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드는 듯한 말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배신은 인간사에 더 없는 추한 용어다. 배신의 몰락은 역사가 정의한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배신의 정치 종말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어쩌면 국민의힘 당원들은 듣고 보노라면 이맛살 찌푸리게 하는 말일 것이다. 배신이라는 용어를 입에 올리는 것은 정치권의 막판 어법이다. 더더욱 한솥밥을 먹으면서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함께 한 밥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어야 할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런 말은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생각으로 삼켜야지 입으로 내뱉으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된다. 하기야 우리 정치사에서 20세기 최고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 같은 정제된 어법을 사용하는 지도자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여의도 1번지는 난장판이다. 국민은 정책대결을 원하고 품격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성경에서 배신의 정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다. 구약에서는 아히도벨이고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가 배신의 아이콘이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정책보좌관이었다. 그의 모략은 가히 신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뛰어난 모사(謀士)였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 반란의 주모자가 되어 다윗을 배신하고, 자신의 모략으로 압살롬을 세우려 하다가 실패하게 되므로 고향 성읍으로 돌아가 목매어 자살한 성경 최초의 고의적 자살의 주인공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하나로 재정책무를 맡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제자였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되어져가는 상황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의리를 버리고 은 30에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고 후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목매어 죽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판자 가룟 유다’로 기록되었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죄인이자 악마의 하수인,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배신 정치의 몰락을 역사에 거울처럼 남겼다. 대한민국의 배신 아이콘은 이완용이다. 조선왕조 말기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이완용은 친미파의 주동 인물이 되었다. 소련이 국제정세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러시아어를 익혀 친소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노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게 되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우리나라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때는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매국노라고 말한다. 배신(背信)이 무엇인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믿음과 의리를 저버림이다. 배신의 정치가 회자하는 여의도 1번지의 소위 선량(選良)들에게 묻고 싶었다. 국회의원 선서를 한 그 내용을 지키고 있는가? 예라고 답할 수 없다면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파편 같은 말이지만 “사심의 정치가 배신의 정치” “차별화와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 “배신의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 “배신 말아야 할 대상은 국민” 등 당권 후보들의 배신의 정의를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위한 사심(私心)의 수사(修辭)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나무 한 그루를 간과하지 않고 언제나 숲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성찰을 통해 배신 하지 않아야 할 대상을 생각한다. 국민은 그런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모세가 그랬다. 다윗과 사도바울이 그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본이 되었다. 혜안(慧眼)이 있어야 통관(通觀)이 되고 통감(通鑑)의 지혜를 갖게 된다. 조급하면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다 보면 낭패를 보기 쉽다. 어느 날 은퇴를 앞둔 후배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한 마디로 배신의 상처를 안고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성직을 내려놓으려 하는 아픈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 목사님 손을 내 손으로 감싸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하는 것 다 아시면서도 생애 마지막 만찬석까지 가셨는데 목사는 거기까지는 가야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나를 바라보는 목사님의 얼굴은 지칠 대로 지친 아픔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 목사를 지치게 하는가?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나는 잘 표출하지 않았던 나의 삶 한 부분을 들려주었다. 은퇴 10년이 된 오늘도 나는 뇌신경암과 투병하면서도 한 주도 쉼 없이 전국 방방곡곡 초교파적으로 말씀 사역을 하면서 포항중앙교회 원로 목사로 오늘을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와 중앙교회 성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여정에서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하고 슬프고 치욕적인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슬프고 아파서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배신이라는 단어를 내 입에 단 한 번도 올리지 않고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더 나아가 여전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분명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사도바울이 그토록 배신을 당하면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중심에는 포항중앙교회에 대한 나의 믿음과 의리를 지켜야 할 원로목사로서의 절체절명의 사명 때문이다. 네가 배신했다고 나도 배신하는 삶은 똑같은 배신의 몰락자가 된다. 어쩌면 화나고 속상한 아픔이 더 많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감사한 것 한 가지를 붙잡고 오늘을 살아간다. 그것이 믿음의 정도(正道)를 정행(正行)하는 것이다. 새로운 결단의 각오를 하고 일어서는 목사를 내 품에 안아주면서 눈도 젖고 마음도 젖어 들었다. 아름다움은 我에 접미사 ‘답다’의 합성어다. ‘나’다울 때 아름다운 것이다. 추하다는 것은 酉(닭유-술병을 뜻함)와 鬼(귀신귀-가면을 뜻함)의 합성어 醜(추할 추)다. 술병을 들고 가면을 쓰고 헛소리하면서 비틀거린다는 뜻이다.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국민은 아름다운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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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성서연구] 무엇을 나타낼 것인가
    사회생활은 남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과정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악수하고 인사하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명함입니다. 가능한 대로 명함에 많은 것을 적어 자신을 나타냅니다. 명함이 없는 저는 종종 명함을 원하는 이를 만나면 죄송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건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단순히 말하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마음도 섞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이런 마음은 옳은 것일까요? 모세는 나타낼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애굽의 궁궐에서 사십 년을 보냈으니, 자신을 소개할 만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학벌도 최고였을 것입니다. 여러 기관에서 일도 했을 것입니다. 군대 경력도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을 때, 그는 이런 내용을 백성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강에서 건져져서 공주의 아들이 된 신비롭기까지 한 일, 애굽 궁궐에서의 일을 말했다면 훨씬 더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만 했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것만 나타내셨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면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애굽 궁궐에서 배운 것 때문이라는 말씀 따위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친구처럼 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세가 특별한 것은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특별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모세로 보였던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이 광채가 났는데, 그 광채를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 광채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나타내려 합니다. 모세가 숨긴 것을 우리는 드러내려 합니다. 가문, 학벌, 재산, 지식, 경력, 지위 등으로 우리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나타내야 할 것은 그게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길 원했습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예수님의 생명을 보길 소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늘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졌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바울도 기꺼이 죽음의 고난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11절에 다음 말씀이 있습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믿음으로 살게 하는 복음의 직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 배어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가진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면, 어찌 복음을 가진 성도의 얼굴에 빛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7~8절입니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성도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 생명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새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진 인본주의자가 되곤 합니다. 이제 우리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주님의 광채만 나타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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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시사칼럼] 탄핵과 성경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현안은 “탄핵”입니다. 화제성에서나 대중성에서나 필적할만한 소재가 전무합니다. 다양성이라는 요건도 충족하였습니다. 비록 자진 사퇴하여 무산되고 말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향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야당대표를 수사하던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 해도 압권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움직임입니다. 지난 달 20일에 국회의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 대통령탄핵청원이 올라왔고, 공개된 지 사흘 만에 5만이 넘는 동의가 이어지며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뜨거운 7월을 들어서자마자 그 숫자가 100만을 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가치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여기서 탄핵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의사를 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탄핵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탄핵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탄핵제도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편추방제도, 키케로의 탄핵 연설), 근대적 의미의 탄핵은 14세기 말 영국의 에드워드 3세(1327-1377) 시대에 발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권영성, 헌법학원론(2002), 855). 주로 고위공직자들의 비행과 부정을 통제하기 위해 법제화된 이후 영국에서는 1805년 멜빌(Melville) 사건(하원 가결, 상원 부결)에 이르기까지 70여 건에 달하는 탄핵소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헌법 시행 이후 20건 가까이 탄핵소추가 이루어져서 유죄의 결정으로 파면 당한 공직자도 4명이나 있었고, 특히 1868년 앤드류 존슨과 1974년의 리처드 닉슨, 그리고 1998년의 빌 클린튼과 2019년과 2021년의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절차도 진행되었는데 국회에서 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 사퇴한 닉슨을 제외하고 세 명에 대한 탄핵안은 하원에서는 가결되었으나 상원에서 부결되는 전례를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5년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이 의정원(오늘날 국회)의 결의로 탄핵되어 면직되는 일이 있었고,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으며, 20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최종적으로 인용되어 대통령이 현직에서 또 다시 파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탄핵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구 간에 힘의 균형과 권력의 견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탄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박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공안검사 출신으로 보수 성향이면서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안창호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성경을 인용하여 교회를 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그는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 안전을 제고하여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다(이사야 32장 16절-17절 참조). 따라서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 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 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라는 표현과 함께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성경 말씀이다. 불법과 불의를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라 하여 성경 구절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보충의견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와 공의”(사 32:16-17)와 “공법과 정의”(암 5:24)라는 개념과 그 가치는 헌법에서도 성경에서도 동일하게 중요시하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유래를 따질 것 같으면 성경에서 헌법으로 흘러갔다고 해야 하고, 또한 포섭과 적용의 범위도 더 넓다고 해야 합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비록 현행법으로 다스리지 못해도 하나님의 법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가 법으로는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탄핵이 가능하다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 또한 사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의와 불순종으로 일관하던 그를 향해 다윗을 비롯한 신하들은 행동을 개시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탄핵하시고(삼상 15:23)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시지 않았습니까?(삼상 16:12) 그러므로 악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이 땅의 권세들이여, 설령 실정법의 심판을 모면한다 하더라도 절대자의 탄핵만은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돌이켜 공정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선과 정의를 이 땅 가운데 물 흐르듯 해주기를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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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은혜의말씀] 종말론적 삶 (고린도후서 6:1~2)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는 ①지금 ②여기 ③당신이다. 금은 세 가지가 있는데 소금, 황금, 지금이다. 소금은 간을 맞추고 맛을 내고, 황금은 변하지 않으며 비싸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금 중에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고, 바로 오늘 현실에 충실한 것이 가장 지혜롭다. 순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세월이 되고, 세월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인생이라는 시간여행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기억을 쌓아가면서 오래오래, 길게 지낸 사람은 그 시간이 추억이고, 행복이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과 아픈 기억을 남기면서 오랜 시간을 버틴 사람은, 그 시간이 상처가 되고 내면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사탄 마귀는 시간차 공격을 한다. 성도가 잠시 막간이라도 방심할 때는 어김없이 빈틈을 파고 든다. 호시탐탐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광명한 천사처럼 화장을 하고 분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환장을 하고 덤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다. 미루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현대적인 죄악이라고 한다. 게을러 터져서 미루다 보면 결국은 거짓말하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고 결국은 죄를 짓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에 보자는 사람 안 무섭고 다음에 잘 해준다는 사람 별 볼 일 없다고 한다. 성경의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에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칭찬 받은 이유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생은 풀과 꽃같이 시들고 마르고, 아침안개와 같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때를 분별하며 살아가라. 인생에서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당신 중에 여기이다. 바로 필드, 현장이 중요하다. 선교현장에 가면 거기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생한 성령의 역사가 있다. 기도의 현장, 사역의 현장을 확보하라, 확대하라, 확신하라. 모세의 호렙산, 세례 요한의 광야가 현장이다.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야 답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위치선정이 탁월하다.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지금 여기, 어려운 골짜기, 징글징글한 현실, 현장을 떠나지 마라. 현장이 혼란하고, 신통찮다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야 한다. 고약한 현장, 징글징글한 현장을 뚫고 나가면 그때 노하우가 생기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시험을 감당케 해주시고, 자신감이 붙게 된다. 살아계셔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신앙이 쌓이는 것이다. 죄인의 길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는 가지도 말고, 서지도 말고, 복 있는 자리를 찾아서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 축복의 자리를 지킴으로 복의 길목을 지키게 된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그 땅 가운데 그 사람을 들어 쓰신다. 오늘이라 일컫는 지금 하루를 은혜의 때, 절정의 날로 삼아서 베스티스트, 모스티스트한 삶을 이 땅에 건설하고 주인 닮은 정원을 조성하고 아름다운 신망애인 공동체를 만들어라. 세 번째는 당신이 소중하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 다 복을 받아도 내가 망한다면 의미가 없다. 우선순위에서 예수님이 첫 번째(Jesus first), 다른 이웃은 두 번째(Other second), 당신은 세 번째(You third)일 때 기쁨(Joy)이 찾아온다. 이 사람 말을 듣고 이리가고, 저 사람 말을 듣고 저리가고, 다른 사람들 말 때문에 내 마음을 어지럽힐 이유가 없다. 마음을 챙겨서, 마음을 다하여서 오직 주만 따라가리라.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시고, 나의 집안을 아시고, 나의 체질을 아시고, 내게 맞춤형, 주문제작형, 기능성 복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것처럼 주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당신이 딛고 서 있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바로 당신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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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목회자칼럼] 효율지상주의에 물든 나의 사고 방식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다.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이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경영 철학이다.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기업의 경영을 밝게 하고, 미래를 준비한는 핵심 가치이다. 기업 경영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효율성’을 그대로 가정으로 데려 와보자. 가정의 목적이 이윤이 될 수 있을까?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남기는 것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너도나도 가성비를 중심으로 한 효율성을 따질 때, 가정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관계, 가성비가 좋은 양육, 가성비가 좋은 부부사이가 가능할까?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아기에게는 온통 소비하는 일만 발생한다. 경제적 소비, 정서적 소비, 심리적 소비 등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다. 그러나 아이는 온 가족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조건없는 기쁨, 무한한 사랑, 경외로운 생명을 선물한다. 이건 효율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효율을 넘어선 가족 관계, 사랑의 가치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물질만능주의가 사회 속에 자리잡으면서 어느덧 효율지상주의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 일이 경제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냐, 되지 않느냐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버린 것이다.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나의 재능, 직업으로 인한 사회의 기여도 등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연봉, 휴가 등을 고려하는 풍조, 가정을 섬기고 돌보아야 할 언약 공동체로 보는 것이 아닌 기능적인 부분만 하고 살아가는 현상 등이 모두 효율지상주의에 갇힌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여기, 효율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효율적인 측면으로 따지자면 평생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 효율성으로 보자면 완전 말도 안되는 선택이다. 경제적으로 따지자면 이익될 것이 하나도 없는 행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이게 바로 최고의 효율,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온 몸으로 보여주듯 말이다. 성경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 전체가 인생 최고의 효율이자 가치인 사랑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기독교 사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효율지상주의에서 최고로 꼽는 검사와 의사들의 갈등이 종종 드러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검사와 의사의 민낯을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어두운 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있는 그들을 선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효율지상주의에 찌들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내가 먼저 나누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돈을 낭비하고 마음대로 살다 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를 포함한 온 공동체가 송아지를 잡으며 함께 기뻐하는 장면이 주 내용이다. 세상의 논리라면 효율성이 전혀 없지만, 성경의 논리로 힘든 사람을 품고 내가 먼저 나누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나누는 것이 바로 효율지상주의를 넘어 한걸음 나아가야 할 실천이다. 둘째, 기쁨에 이어 잔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가진 것을 내어놓고 이웃과 함께 잔치함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가 살아있는 사회이다. 내가 내어놓아야 할 잔치 비용이 아까워 기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퍼할 수도 없는 상태. 이런 모습은 어쩌면 하나님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마음을 개혁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회, 함께 나누며 기뻐하고 잔치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선한 일’을 ‘함께’하지 않는다. 주로 이익이 되는 일을 혼자 한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내는 언약 공동체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내가 먼저 낮아지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세상에 불고 있는 맹목적인 경쟁의 광풍에 저항하며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관계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품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되돌아보자. 우리 공동체는 과연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효율을 추구하는 집단인지, 아니면 진정 형제 자매가 하나가 되어 ‘사랑’이라는 가치를 살아내는 언약 공동체인지 말이다. 이 언약 공동체를 내가 먼저 세워나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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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교회
    6.25전쟁기 부산지방의 기독교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부산에서 기독교회는 1892년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혹 1893년) 설립이후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설립되는데, 1896년에는 영도교회(현 제일영도교회), 1904년에는 엄궁교회(현 은혜로교회)와 하단교회, 1905년에는 항서교회, 수안교회, 금성교회, 기장교회, 구포교회가 설립되고, 이어 두구동교회(1906, 소실됨), 대연교회(1907), 초읍교회(1909), 사상교회(1909), 상애원교회(감만동, 1910) 등이 설립된다. 또 수영교회(1919), 부전교회(1932), 남부민정교회(현 항남교회, 1936), 해운대교회(1937) 등이 설립된다. 이렇게 되어 1940년 당시 부산 지역의 장로교회는 23개 처였고, 다른 교파 교회로는 부산성공회(대청동, 1903), 수정동성결교회(1918. 4), 온천중앙성결교회(1918. 9) 그리고 구세군부산중앙교회(1935) 등 몇 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당시 부산지역 인구는 28만 정도였고 30-35개의 교회가 있었다. 해방이 되자 여러 교회가 설립되는데, 은혜교회(현 새부산진교회, 1946), 성산교회(1947), 성경교회(현 충일교회, 1948), 거제교회(1948), 거성교회(1948), 온천교회(1948), 항도교회(1948), 복음교회(현 신평로교회, 1949), 부민교회(1949), 부산남교회(1949), 제2영도교회(1949), 제3영도교회(1949), 서문교회(1950) 등이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교회당을 접수하여 시작된 교회도 있었다. 그것이 광복교회(1945. 11)와 부산중앙교회(1945. 12)였다. 일제 통치기 부산에서 일본인 교회가 가장 많았을 때는 7개 교회가 있었는데, 해방 당시 대표적인 두 일본인 교회가 광복교회와 부산중앙교회로 개편된 것이다. 전자는 윤인구 목사에 의해, 후자는 노진현 목사에 의해서였다. 해방 후 부산에는 여러 교회가 신설되는데, 1949년에는 장로교회만 31개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19개 교회는 부산부에, 12개 교회는 동래부에 소재하고 있었다. 해방 이전까지 부산지방 교회는 교파적으로 볼 때 장로교 중심이었고, 해방 이전 부산에는 성공회 1개처, 구세군 2개처, 성결교회 2개 처뿐이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부산에도 장로교 아닌 타 종파 교회가 설립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성결교의 경우, 동광성결교회(1945. 12)와 영도성결교회(1951. 11)가 설립된다. 감리교의 경우, 1948년 7월 부산제일교회가 설립되는데, 이 교회가 부산지방 최초의 감리교회였다. 이 교회는 1949년 4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 1가 49번지의 적산 가옥을 매입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이어서 부암감리교회(1951.1), 해운대감리교회(1951.1), 수정교회(현 성일교회), 대교교회(1951. 3), 시온중앙교회(1951. 9), 보수교회(1952. 1), 영도중앙교회, 온천교회 등이 설립된다. 1950년 말에는 부산의 장로교회는 41개 처에 지나지 않았고, 목사 10명, 전도사 23명으로 교역자는 33명으로 보고되어 있다. 다른 교파의 교회는 10여 개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부산지방의 교회는 50개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1950년 말 통계라고 하지만 6.25 전쟁 발발 당시 부산의 교회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기간 중 부산의 교회수는 급증하게 된다. 기존교회로부터의 개척(설립)도 없지 않았으나 교회분규나 내분, 특히 고려신학측(현 고신총회)을 따르는 신앙노선 문제로 기존 교회로부터 분리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쟁기 설립된 다수의 교회는 월남한 피난민들이 세운 피난민교회였다. 6.25 전쟁 전후 부산지방으로 월남 피난민들이 유입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두고 온 북한 지역의 교회를 부사에 재건하는 등 피난민 교회가 설립되는데, 약 50여개 처로 파악되는데 장로교계가 40여개 처에 달한다. 이들 장로교계 피난민 교회를 설립 년 중심으로 정리하면, 북성교회(현 대성교회, 1950. 2), 성도교회(1950. 12), 구덕교회(1951), 영락교회(1951. 1. 7), 서북교회(1951. 2), 철산교회(현 산성교회, 1951.3), 선천교회(현 산성교회, 1951.3), 우암교회(1951.3), 영도교회(1951), 평광교회(1951. 6), 수정동교회(1951. 7), 평북교회(현 산성교회, 1951. 8), 평동교회 (1951), 남성교회(1951. 10), 산정현교회(1951.10), 평양교회(1951.6.10, 평광교회와 대청교회로 분리된다), 모라교회(1951), 양정중앙교회(1951), 연산제일교회(1951), 원산제일교회(현 성덕교회, 1951. 12), 서북교회(현 동광교회, 1952.1. 6), 거양교회(1952. 1), 한양교회(1952. 3. 2. 이 교회에서 그해 6월 남부민교회가 분리되었으나 1973년 은성교회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삼성교회(1952), 영도중앙교회(1952), 부산서교회(1952. 4. 27), 감만교회(1952. 6), 신암교회(1952. 10), 양정교회(1953. 7), 영주교회(1953. 8), 명신교회(1954. 5) 등이다. 그리고 감리교회로는, 원산지역 피난민 중심의 부산제2교회(현 충무로교회), 해주 출신 교인들로 구성된 일신교회, 평양 출신 중심의 시온중앙교회, 그리고 서울아현교회 성도들 중심의 보수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되어 1953년 당시 부산에는 160여개의 교회가 있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부산을 방문한 호주빅토리아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였던 조지 앤더슨(안다손, George Anderson)은 당시 부산교계인사들의 정보를 종합하여 당시 부산에는 156개 교회가 있다고 보고했는데 상당힌 신뢰할 만 하다. 그때로부터 10년 지난 1965년 당시 부산에는 300여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당시 920-950개 교회가 있었고, 현재 부산에는 1800-1850여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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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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