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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렌탈 인생의 마감 시한
    미국인들의 인생에 대해 정의한 명제 중에 “렌탈 인생”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인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갚아야 할 할부금과 대여료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계부채도 결국은 빌린 것이다. 불교는 생의 윤회를 말한다. 이것은 현재의 삶은 과거의 자신이 뿌린 씨앗에 대한 열매이고, 미래에 주어질 삶을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유교는 삶의 근원이 부모라고 말한다. 이것은 조상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지금의 내가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나의 삶이 후손들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에 실상은 후손들의 삶을 빌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명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삶이 마감되는 그날,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란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허락된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내가 영위하는 것이다.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인들의 권력도, 기업 총수의 권한도, 선생님의 권위도, 법관들의 위엄도 실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대상자들로부터 위임받은 것, 즉 부여받은, 빌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객전도의 모습으로 채무자가 채권자를 윽박지르는 형국이 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불쌍하기 그지없다. 총선의 정국에서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지도자들에게로 향하는 아주 작은 마음으로의 인정이 있다면 사실 그것도 신앙을 가진 자들과 일반적 양식을 가진 자들에 의해 주어진 것, 즉 빌려진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절대 권력과 능력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는 성직자들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지도자들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는데 착각하며 산 것은 아닐까? 지위와 자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이 잠시 맡겨준 사명의 자리다. 때가 차면 그 짐과 무게 그리고 아주 작은 권위를 다시 돌려줘야 한다. 채무변제에는 정해진 시한이 있기에 빌린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자원해서 돌려주지 않으면 강제로 차압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빌린 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라면 마감 시한을 선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유익과 영향을 남겨야 한다. 또한 빌린 것에는 본질에 대한 댓가 즉 이자가 부과된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을 때는 파생과 소멸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끝이 나지만 빌린 것에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끝날 때 계산의 시간이 찾아온다. 내 인생의 유예기간은 언제까지일까? 부채와 이자를 갚을 만큼의 삶의 흔적은 가졌는가? LIFE,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남용하거나 탕진해서도 안 된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여길 때 그것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 부활주일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사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부산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함께 달려가기를 소원해 본다. 나의 인생이 마감되고 내가 가진 자리의 유한성이 소멸되기 전에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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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우광복(禹光福, George Zur Williams) 의사
    앞에서 우리암 선교사에 대해 소개했는데 사실은 그의 아들 조지 윌리암스, 곧 한국이름 우광복(禹光福)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우광복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잘못된 정보가 퍼져 있고, 그의 활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 못 알려진 점들도 있기 때문에 바로 잡을 의무도 있다. 우광복은 우리암으로 불린 프랭크 윌리암스(Frank Earl Cranston Williams)의 장남으로 1907년 4월 7일 제물포항 부둣가 언덕에 있는 선교사 집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선교지는 공주였으나 아기를 출산하거나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 곳이 인천이기에 인천의 선교사집에서 출생한 것이다. 얼마 후 공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그의 한국어 이름이 ‘광복(光福)’인데, ‘광복(光復)’으로 오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조선이 광복을 꿈꾸며 작명했다고 말하지만 아들이 출생한 1907년 당시는 일제의 조선 병탄이전이었으므로 광복을 꿈꾸며 작명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아버지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하고 15살 때 미국으로 가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생활하던 조부모의 보호 아래 고등학교를 마치고 덴버대학에 입학했다. 의가가 되기 원했던 그는 화학을 전공하였고, 물리학이나 동물학도 공부했다. 1928년에는 덴버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까지 수학하고 의사가 되었고, 덴버와 메리랜드 주 리치몬드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 군의관이 되어 참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승선한 군함이 인천에 정박하게 되어 그는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방 이후 미군정이 통치할 때 우광복 의사는 군정 책임자인 하지(John Reed Hodge, 1893-2963) 사령관의 특별 보좌관으로 발탁된다. 군의관(중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가운데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광복 의사는 하지 중장의 통역은 물론, 미 군정기 인사 및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가 특별보좌관으로 일한 기간은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에 의하면 약 3개월 정도였다고 하지만 공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서만철 박사에 의하면 약 5개월 정도였는데, 아놀드 군정장관의 요청에 따라 군정에 참여하고 후에 한국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여러 사람을 추천하게 되었고, 초기 미 군정기 정치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즉 미군정의 한국인 관료구성과 이승만의 귀국에도 영향을 발휘한 것이다. 예컨대, 영명학교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미치고 귀국한 조병옥 박사는 치안 책임자인 경무부장으로, 영명학교 교사였던 이묘묵은 하지의 통역관으로, 황인식은 초대 충남도지사로 추천했다. 이런 활동으로 초기 미군정에서 일한 한국인 50명 중 35인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정병준 교수에 의하면 우광복은 주로 선교사 인맥을 통해 두 달 동안에 한국인 관리 7만5천명을 선발하게 했다고 말한다. 서만철 박사에 의하면 우광복은 이승만의 귀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중도좌파로 인식되던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공화국(人共)을 미군정에서 부인하게 함으로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수립하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간 우광복은 버지니아의과대학 교수와 보건연구기관장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큰 의학적 업적은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자신도 흡연을 했는데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고 흡연을 중단했다고 한다. 버지니아의대에서 암연구를 계속했던 우광복은 그 후 메릴랜드주의 베데스다로 가서 국립보건연구원(NIH)의 요청으로 암연구센터를 세웠다. 이 기간 최대의 업적은 살아있는 암세포에서 대사과정의 자외선 흡수를 미세하게 측정할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 현미경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또 그는 버지니아종양의과대학을 설립하여 교수와 총장으로 일했고, 그 후에는 샌프란시스커의 태평양의료센터에 새로운 건강연구기관인 의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런 연구 기관의 설립 외에도 의학적 연구를 통한 기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출생하여 한국과 미국에서의 긴 봉사의 여정을 마치고 1994년 11월 22일 87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티뷰론의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자신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 일부는 누이동생 올리브가 묻혀 있는 공주 영명동산의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나머지 유골은 아버지가 묻혀 있는 글린데일에 있는 포레스트 론 기념공원 군인 묘지 자유의 뜰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이 글의 중요 정보는 기독교역사연구소의 ‘내한 선교사 사전’과 서만철의 ‘우리암과 우광복 이야기’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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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3-04
  • [서임중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목회
    나의 목회병법 10가지 가운데 망원경 목회병법과 현미경 목회병법이 있다. 문자 그대로 멀리 보는 것과 가까이 보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안동을 떠나 포항으로 임지를 옮기던 날, 예배당 마당을 가득 메우고 들어선 성도들의 얼굴에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과 슬픔들, 아니 절박하고 처절하다는 표현이 맞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들……. 그날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아니 결코 지울 수 없는 목회 여정 중의 한 날이었다. 그날 새삼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8년을 섬겨오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더욱 확연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달랐지만, 포항중앙교회를 떠날 때도 그랬다. 함께 울고 웃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무덤덤한 표정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저만치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재대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이 내게 없었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내게 없었다는 것. 서 목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듯했던 사람들은 저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었고, 서 목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던 교인들은 여기저기 서서 울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주저앉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소리 없는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던 그날, 아직도 그날은 멀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고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이 후로 나의 목회병법에 망원경 목회와 현미경 목회를 추가했다. 먼 곳만 보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가까운 곳만 보는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경영리더십의 교훈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과 현미경 가운데 하나만을 갖고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 성공을 하고 한 가지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목회 현장 또한 다를 바가 없다. “곤충의 눈으로 발밑을 보고, 매의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라.”는 교훈도 있다. 곤충의 눈은 현미경과 같고 매의 눈은 망원경과 같다. 곤충의 눈으로는 가까운 곳 나의 발밑을 보아야 하고, 동시에 매의 눈으로 먼 곳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나무와 숲을 모두 본다는 뜻이다. 기업경영이나 정치 현장에서도 가까운 곳만 보고 있어서는 트렌드의 변화나 외부의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고, 반대로 먼 곳만 보고 있어서는 내부의 균열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교훈한다. 그래서 성공자의 삶에는 반드시 곤충의 눈과 매의 눈을 확보한 시야가 있다. 1982년에 발매된 조용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에 ‘비련’이라는 제목이 있다. 당시 매니저 최동규 씨는 이와 관련된 감동 이야기를 남겼다. <4집 발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시골의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4살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녀가 한 번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비련이라는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하는 돈을 드릴 테니 직접 와서 노래를 불러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는 것이다. 행사 하나만 나가도 엄청난 돈을 받던 가수왕 조용필 씨는 예정된 4개의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그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지적 장애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불러주었다. 아무 표정도 없던 아이가 펑펑 울었고 부모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마친 조용필은 소녀를 안아주며 사인한 CD를 선물했다. 부모가 사례를 한다고 하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순을 넘기면서도 국민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조용필 씨의 현미경 철학을 통해 그의 망원경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은퇴 10년이 되었다. 함께 했던 많은 동역자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교회를 섬겼던 교인들이 새삼 조명된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을 통한 배신과 아픔, 가슴 치며 통곡했던 시간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았던 사람들의 외면을 경험하면서 쓰라린 고통으로 잠 못 이룬 날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했다. 그것은 망원경으로 보고자 하는 나의 인간관계관의 실천이었다. 조금은 멀리서 보는 것이 아름답기에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아름답게 다듬어 가고 싶은 관계개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곁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이해하고 관용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행과 동역을 경험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연다. 그 아름다운 관계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현미경으로 보는 인간관계가 일상이 되었다. 멀어져간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어서 현미경으로 본다. 걸어나온 내 인생의 모든 삶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본다. 그리고 이즈음 새삼 삶의 여정에 正視, 正思, 正心, 正言, 正道, 正行을 다짐한다. 동시에 유다서 11~13절 말씀을 묵상한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인간관계는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나를 지키시고 돌아보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간다면 너와 나의 관계는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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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성서연구] 우리가 믿는 하나님
    인식론에 있어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경험론 철학자들은 오감으로 경험한 것에 의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한 추론으로 지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인식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경험되지 않고, 이성으로도 추론이 불가능한 세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은 믿는 것입니다. 10세기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1033~1109)은 그의 책 『프로스로기온, Proslogion』에서 <믿음은 지식을 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4세기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알기 위해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와 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알려면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천국, 영원한 생명의 구원 등은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는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이성적으로 추론하면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기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이렇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믿었습니다.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이신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믿는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늙은 아브라함 부부는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비통했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1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보다 조금 뛰어난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으로 죽은 자도 살리는 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어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위대하게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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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시사칼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해도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Repoters Without Borders, RSF)가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7위였습니다. 지난해보다도 4계단 하락한 수치에 해당하지만 가장 높았을 때인 지난 2019년에도 41위에 불과했으니 크게 유의미한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자랑스러워할만한 위상도 아닙니다. 티모르(10위)와 같은 태평양의 섬나라보다도, 대만(35위)과 같이 다소 권위적인 체제보다도 여전히 동떨어진 순위이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최근 언론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한국기자협회 인용). “TV 조선 기자들, ‘언론 윤리 저버린 신동욱, 박정훈 부끄럽다”, “박민 KBS 사장, 임명동의제 무시하고 보도국장 임명 강행”, “공영방송 복구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이 정부의 목적”(2024. 1. 26). TBS 출연금 지원 중단,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연합뉴스 정부구독료 82% 삭감에 정부 지분 매각까지, 이런 흐름을 두고 정준희 교수는 현 정부의 언론관을 전근대를 넘어 초현실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언론의 자유만큼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존중하고 보호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금방 자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정부 시절 뉴욕포스트는 대통령을 총 맞아 죽은 침팬지로 묘사하며 경찰관 두 명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만평(Sean Delonas)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한 경찰관이 죽은 침팬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다음번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할 누군가를 찾게 되겠군,” 읊조리는 장면을 두고 인권단체는 물론 많은 네티즌들은 인종차별적인 몰상식한 만평이라 비난하고 나섰고(Al Sharpton), 일부 시민들은 뉴욕포스트 구독중단과 광고게재 거부 운동을 전개하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Barbara Ciara). 만평에서 침팬지가 등장한 것은 여성을 공격해 경찰에 사살된 침팬지 ‘트래비스(Travis)’가 화제였기 때문입니다. 뉴욕포스트 편집국장(Col Allan)은 “오늘자 만평은 침팬지 난동 관련 뉴스를 패러디한 것이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경기부양법안 등 경제회복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을 조롱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한 칼럼니스트(Sam Stein)는 “이 만평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여성을 공격해 사살된 침팬지같이 경기부양법안도 나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만평이 우리 언론에 등장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지난 2023년 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건을 보도했던 MBC 방송국을 상대로 외교부가 제기했던 정정보도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방송사측이 허위보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의 첫 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고, 낭독하는 동안 위 정정보도문의 제목과 본문을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과 같은 글자체 및 크기로 계속 표시하라”며 “이 같은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할 때까지 하루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얼마 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달리해야 한다”며 직언하던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전주을)을 경호원들이 강제로 제압해 입을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몰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경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이제 이 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언론이나 국회의원까지도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상당한 불이익과 처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사건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미가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그는 “모레셋 사람”이라 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선지자들이 사마리아나 예루살렘 등 대도시에서 활동했던 반변 미가는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낮은 자,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미가서는 다른 어떤 선지서보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특별하기로 유명합니다. 베들레헴 탄생을 예언(5:2)한 유일무이한 성경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미가서에 유명한 구절이 하나 더 있는데,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가에게 그랬습니다.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1:6). 그래서 그가 입을 닫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부디 오늘 이 시대에 일종의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언론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언론보다 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성직자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마찬가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 정치 제1장 제1조의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가 잘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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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은혜의말씀] 사람을 세우는 교회(사도행전 6: 1-7)
    초대 교회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놀라운 성장을 거듭할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교인들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그들을 돕는, 구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제 대상에 헬라파 과부들이 자주 빠지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즉각 나섰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일곱 명의 일꾼, 일곱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 이제는 교회가 조직을 갖추고 제 기능을 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이 사람을 세울 때 제시한 ‘선정 기준’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세우는 일꾼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첫째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교회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교회는 개인의 능력이나, 학력, 경력을 우선시하기보다, 영적 성숙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 사로잡힌 사람이라야 합니다. 성령께 사로잡히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고집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열심도, 그 헌신도 인간적인 계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모든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지혜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분별력 있는 사람,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바로 이런 지혜로운 사람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덮이고, 조용하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많이 지적합니다.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해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일꾼으로 뽑은 뒤로부터 불평과 불만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안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수습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이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믿음이 좋다든지,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칭찬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도들이 일꾼들을 세워서 요소요소에서 사역하게 했더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지요?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놀랍게 확장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져 함께 주의 일을 하므로,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하나님의 꿈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바로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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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목회자칼럼] 자기장에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처럼
    저의 어린 시절 기억속에 자동차 운전사 옆에는 항상 지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동차도 워낙 귀한 시대라 차를 타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기호, 숫자 모형으로만 되어 있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운전사도 놀라웠습니다. 요즘은 어떠한가요? 자동차 앞쪽에 있는 네비게이션 화면이 지시하는대로 따가 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전처럼 일일이 고속도로 번호를 위우지 않아도, 지도에 표시된 휴게소를 기억하지 않아도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길을 인도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지만, 이제는 네비게이션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기술과 경험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지도든 네비게이션이든, 그것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티브 도나휴의 모래로 덮힌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 에서는 사막에서는 큰 바람이 한 번 불면, 길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지도보다는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막을 건너듯 우리의 삶에서도 나침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막에서 길은 바뀔 수 있지만, 나침반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행착오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굳건한 신념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과 일관적으로 순종하는 자세가 유진 피터슨이 말한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기준, 교리가 확실하다는 틀에 갇혀 말씀을 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실제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할 때, 나의 해석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말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삶에서 마주합니다. 이 때, 우리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질문, 새로운 삶으로 다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만나를 먹어야 살 수 있듯, 하나님의 백성은 매일 말씀과 함께 해야 살아낼 수 있습니다. 목적을 향해 분명한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도 심하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주위 환경이 강한 자장(磁場)이 만들어 질 때입니다. 주위에 강한 자장이 생기면 나침반은 자기도 모르게 흔들리며 방향을 잃게 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마치 자장에 흔들림을 받는 나침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과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일반 성도들도 세상의 유혹과 흐름이라는 자장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때,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거룩한 희망”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희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희망은 세상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영원하고 변함없는 희망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희망은 유한합니다. 직장, 결혼, 출산이라는 희망을 쫓으며 살다 그 희망이 눈 앞에서 사라질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영원한 줄 알았던 희망이 신기루처럼 사라저 버럽니다. 그리나 기독교가 말하는 희망은 인간의 틀로 한정짓는 고지론의 희망이 아닌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의 희망이자,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과도 같은 희망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신앙, 이 거룩한 소망은 이땅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거룩한 희망으로 작용되어 집니다. 섭리의 신앙은 우리의 삶을 흔들리지 않는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동역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거룩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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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우리암 (Frank Williams) 선교사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했던 프랑크 윌리암스, 곧 우리암(禹利岩, Frank Earl Cranston Williams, 1883-1962)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했던 선교사였다. 1883년 8월 4일 미국 콜로라도 주 뉴윈저(New Windsor)에서 출생한 그는 1906년 덴버대학에서 화학과 농업을 전공하고 졸업하였고, 그해 7월 2일에는 학생자원운동(SVM)을 통해 알게 된 엘리스, 곧 우애리시(禹愛理施, Alice Lavinia Barton, 1884-1980)와 결혼했다. 5월에 선교사로 인준을 받은 그는 8월 14일 부인과 함께 미국을 출발하여 9월 29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주선교부로 배속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1940년 11월 23일까지 34년간 공주(公州)지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전임자인 로버트 샤프(Robert A. Sharp, 1872-1906)가 공주에서 시작한 명선(明宣)학당 책임자로 임명되었는데, 명선학당은 샤프가 1905년 설립한 학교였다. 샤프의 부인 사애리시(史愛利施, Mrs. Alice H. Sharp)는 두 명의 여학생으로 명선여학당(후일 영명여학교)를 설립했는데 어린 한국 아이를 수양딸로 삼아 영명학교에 입학시켜 공부하게 했고, 1916년에는 그를 이화학당에 추천하여 보통과 3학년 편입하게 했다. 1919년에는 이화학당 고등과에 진학했는데, 그가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순국했던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였다. 그런데 로버트 사프가 순회전도 중 발지티푸스에 감염되어 1906년 3월 5일 34세의 나이로 급서하게 되자 후임인 우리암이 이 학교를 맡게 된 것이다. 우리암 선교사는 1909년 이 학교를 영명(永明)학교로 개칭하고 교육선교를 시작하였는데 이 학교가 충청남도 최초의 근대학교가 되었다. 우리암은 1907년 미감리회 한국연회에서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고, 감리교 공주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 1902년 설립된 이 교회는 수원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회로서 지금은 공주제일교회로 불리고 있다. 부산의 기독 의료인 양덕호 박사가 이 교회 출신이고 그의 선친이 양재순 장로(공주 양의사 1호로 공제의원 원장)였고, 그의 조부가 양두현 장로였는데, 1928년 논 18,282평과 밭 2,681평을 봉헌하여 교회 발전에 큰 양향을 끼친 가문이다. 우리암 선교사는 공주 천안 아산 홍성 연기 음성 등지의 교회를 관리하는 감리사로 활동하는 등 공주를 거점으로 충청남도 지방 교회를 순회하고 감독했다. 학교 교육 책임자로서 활동하는 한편, 농업 전문가로서 농촌 개발사업도 추진하였다. 농업 강좌를 실시하였고, 농한기에는 공주 천안 청주 경성 인천 서울 원주 안동 대구 부산 진주 그리고 개성 해주 등 전국을 순회하면서 사경회와 함께 농촌 강습회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특히 1919년 전후 시기, 민족운동 혹은 애국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고,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는 1940년 11월 교장으로 있던 영명학교에서 추방되었고, 영명학교는 1942년 33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1940년 전운(戰雲)이 감돌게 되자 선교사들의 철수기 시작되었는데, 우리암도 이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안전지대에서 휴식하지 않고 아내와 막내 아들 로버트(Robert Leroy)와 함께 다시 인도로 갔다.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이곳에서 힌두어를 공부하면서 인도 뉴델리 근처 가지아바드(Ghaziabad)에 있던 인그라함(Ingraham)농업학교를 이어받아 농업기술을 가르치며 자조정신을 고취하는 등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이곳에서 버마 전선에 투입하기 위해 광복군에서 파견한 인면전구공작대(印綿戰區工作隊)대원 9명이 1943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간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인(印)은 인도를 면(綿)은 버마를 가리킨다. 우리암은 광복군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게 되자 맥아더 사령부는 우리암을 1945년 9월 24일자로 미군정 농업고문으로 초청하였다. 그래서 그해 11월 10일 다시 내한하게 된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미군정청은 농업기술자인 그를 필요로 했고, 다시 한국선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까지 농업고문으로 농촌경제를 일으키는 일에 기여하였다. 부인 엘리스는 다시 개교한 공주 영명학교에서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이화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인 성악가 이인선과 함께 오페라 ‘춘희’(La Traviata)를 공연하였다. 그런데 1950년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암 선교사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갔고, 1951년 9월 일본 나가사끼의 진제이 학원(鎭西學院)에 교육선교사로 파송되어 1954년까지 일하고 은퇴하였고 미국으로 영구 귀국하였다. 정리하면 우리암 선교사는 한국에서 34년, 인도에서 5년, 해방 후 한국에서 다시 5년, 일본에서 3년, 곧 47년간의 선교여정을 마감한 것이다. 그후 켈리포니아 샌디 에고에서 지내던 중 1962년 6월 7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LA인근의 글렌데일(Glendale)의 포레스트 론(Forest Lawn)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부인은 1980년 2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우리암 선교사는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5남매를 낳았는데, 셋째로 출생한 딸 올리브(Olive Gertrude, 1909-1917)와 넷째로 출생한 아들 얼(Earl Barton, 1911-1913)이 여덟살과 두 살 때 사망했고 아들 셋만 성장했는데, 장남이 광복(George Zur, 1907-1994), 차남이 흥복(William Howard, 1908-?), 그리고 막내가 규복(Robert Leroy, 1929-201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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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소강석칼럼] 내일은 새 태양이 뜨리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을 아는가. 이 소설을 쓴 마거릿 미첼은 원래 소설가가 아니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던 신문 기자였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쳐 큰 수술을 받고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해 남북전쟁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명작가인 까닭에 선뜻 책을 출간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무려 32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서 제일 큰 맥밀란출판사에서 그녀의 책이 출간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7년 퓰리처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고 책도 수백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진 운명은 그들의 목을 부러뜨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꺾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모든 것이 사라진 뒤 조용히 되뇐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나는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 거야.” 2024년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바다는 거친 파도를 일렁이며 과거의 어둠과 혼란으로 다시 발목을 되잡으려 하지만 그 어찌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의 희망과 꿈의 잉태를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는 역사의 강물에 보내버리자. 물론 천체 과학적인 면에서 볼 때 태양은 똑같다. 그러나 아무리 동일한 태양이라 하더라도 그 태양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바라보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2023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24년도라는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태양 중의 태양이요, 영원한 태양, 절대 무한자 되시는 태양이 있다. 그 태양은 정의 희망 생명의 태양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공의로운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 않았는가.(말 4:2) 이 태양은 우리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희망의 언어가 투사된 그런 태양과는 다르다. 우리의 희망과 비전과 가치로 다시 보고 해석하는 태양도 아니다. 이 태양은 본래의 태양이시고 영원한 태양이시며 태양 중의 태양이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무리 온 천지가 흑암의 세계라 하더라도 저 동녘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떠오르면 온 세상이 광명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다윗 역시 인생 석양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하나님을 높이면 돋는 해의 아침 빛같이 된다고 고백했다.(삼하 23:3~4) 요즘으로 말하면 다윗이 인생 황혼 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후손들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고백하며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베들레헴 촌 동네 목동 출신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높여 주셔서 사울에게 씌워진 왕관을 자신에게 빼앗아 주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아침에 돋는 빛 같게 하신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만을 높이며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연합하고 전진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교회 연합을 반대하던 분들까지도 돌이키고 있는 좋은 상황이다. 편 가르기와 분열과 다툼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 되어야 한다. 특별히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반기독교 악법을 막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후, 저출산 등 인간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할 때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미스터 션샤인’으로서 빛을 비추어야 한다. 돋는 해의 아침 빛 같이 찬란한 빛을 발해야 한다. 2024년, 한국교회의 들녘에도 새 태양이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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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성서연구]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종종 지방에 출타하곤 했습니다. 섬 지역에 교회를 건축하거나 돕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또 어머니는 심방 등의 목적으로 온종일 집을 비우시는 일도 잦았습니다. 저는 주변 정리를 잘 하지 못해서 사방에 널어놓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저도 때로는 갑자기 정리정돈에 매달리곤 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온종일, 혹은 여러 날 집을 비우실 때,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깜짝 놀라게 해 드릴 목적으로 정리정돈을 하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제 물건과 책상만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온 집안을 다 청소하고, 심지어는 부엌살림까지 정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지방에 출타했다가 영등포역에 내릴 무렵 역으로 마중 가서 같이 집에 옵니다. 대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께서 깜짝 놀랍니다. 누가 집을 정리했는지 제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른다고 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인가, 아니면 저희 집에 자주 와서 일을 돕던 주변의 여러 사람인가 궁금해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정리한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깜짝 쇼였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런 깜짝 쇼를 언제나 기쁨으로 하십니다. 며칠 전에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그 안에 사는 생명체들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에게 먹거리가 될 각종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성된 후에 맨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에서 맨 마지막에 사람이 등장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공식 모임에 가 보면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맨 마지막에 도착하여 착석하면 행사가 시작됩니다. 국가기념행사에 대통령이 가장 늦게 도착하고, 그때 행사가 시작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이 막을 올리는 숨 막힐 정도로 놀라운 순간에 사람을 가장 늦게, 가장 존귀하게 등장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배려였습니다. 만약 사람이 먼저 창조되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벽한 공간에, 완벽한 터전에 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홀로 이루셨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의 이러한 놀라운 창조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준비하신 하나님의 깜짝 쇼입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가 아기 요람과 이불과 요, 옷과 신발, 장난감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만 그렇게 하신 게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손길은 멈춤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준비하고 사랑하고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산하를 둘러보세요.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영적 환경, 그리고 먹고 입고 살아가도록 준비하신 것들,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갈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올해도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비를 주실 것이고, 농작물이 자라서 먹거리가 될 것이고, 우리 자녀들의 키와 몸무게가 자랄 것이고, 올해도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중에도 한국 사회와 교회를 지키실 것입니다. 어려움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온 것이지, 결코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언제나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경외한다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걷는 2024년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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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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