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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 영적장자교회를 지향하는 연산중앙교회
    △연산중앙교회 출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한상동 목사가 총회에 의해 초량교회를 명도하고 나와 삼일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1958년 초량동 45번지 가난한 판자촌에서 살던 성도들이 철길을 넘어 새벽기도회에 가기 어려운 사정과 교회 출석의 불편을 호소해 1958년 삼일교회로부터 삼성교회가 분리 개척했다. 그것이 연산중앙교회의 시작이다. 연산중앙교회의 전신인 삼성교회는 1958년 12월 7일 주영문 장로의 사회와 박희천 전도사(서울 내수동교회 원로목사)가 설교를 전한 창립예배를 드리며 시작됐다. 그 후 1964년 부산시의 도시 계획에 따라 연산동으로 이주했고, 같은 해 초대 목사로 박병호 목사가 부임했다. 이듬해인 1967년 연산중앙교회로 개명했다. 1대 박병호 목사가 1985년 은퇴한 후 2대 김성복 목사가 부임해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다. ▲ 김성복 목사 김성복 목사는 “영적장자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라고 교회를 소개했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가 초량교회다. 초량교회 6대 담임이셨던 한상동 목사님이 초량교회를 떠나 삼일교회를 개척했다. 삼일교회는 우리 교단(고신)의 모체가 되는 교회다. 그곳에 분리 개척된 연산중앙교회가 영적장자교회를 지향하자는 것이 우리 교회의 모토”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 내년 교회 설립 60주년을 앞두고 있는 연산중앙교회는 올해 첫 예배를 에스겔서의 말씀으로 시작하며 교회 표어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로 정했다. “매년 교회의 표어는 바뀌지만 그 가운데 변하지 않는 평생표어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다. 연산중앙교회에서 32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 교회 내 분쟁이 없었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매년 표어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년 표어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표어는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교회의 표어에 따라 김성복 목사는 교회가 천국이 돼야 하며 가정이 천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교회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이어야 한다”면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교회 안의 우리의 모습, 생활이 신앙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길 꿈꾸는 교회는 지역사회에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다. 매년 동사무소를 통해 경로잔치와 연말 이웃돕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기아대책, 월드비전 등에 후원하거나 직접 참여하고 있다. 김 목사는 “기독교 NGO 단체와 함께 청년, 대학부 등 교회 성도들이 수년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월드비전 연제사회복지관을 통해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지원하고, 도시락 배달과 불우이웃돕기 등에 직접 나서고 있다”면서 “또 지난 2008년 교회를 이전, 신축하는 과정에서 옛 성전 부지를 연제구청에 매도했는데, 지역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신뢰가 쌓여 어렵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2010년 입당감사예배 ▲ 월드림어린이집 개원감사예배 ▲ 새신자 환영회 ▲ 경로잔치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고 후원하는 것이 기본 사명이라고 말하는 김성복 목사는 노회와 총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연산중앙교회는 신흥교회, 부산북교회, 가야성안교회와 연합해 지금까지 중국과 필리핀, 미국 등 4개 교회를 순차적으로 개척했다. 김성복 목사는 “1980년대에 대전지역에 개척교회가 설립되는데 전적으로 지원했지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도하며 교회들을 지원하고 있다. 같은 노회의 나드림교회, 나드림국제미션스쿨이 설립되는데 교회가 후원하며 지원했다. 보람 있게 생각한다. 초반에는 독자적으로 교회 개척에 나섰지만 뜻이 맞는 교회와 연합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동부산노회가 일본기독교개혁파교회 중부중회와 자매결연 등 협력을 위한 3인 위원회로 활동하며 교류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양 교단이 협력해 일본에 교회를 개척했다. 양 교단 노회와 중회는 양국에서 번갈아가며 세미나를 개최해오고 있다. 김성복 목사는 고신 동부산노회장과 총회 섭외위원장, 신학위원장, 재판국 서기, 고려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김 목사는 “총회와 노회에서도 활동하면서 보람된 일들도 많았는데, 특히 고려학원 이사로 있을 때 복음병원 장례식장이 완공된 것에 보람 있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총회의 유익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바른 신앙을 전수, 계승, 실천하는 교회 김성복 목사는 “60년이 되는 교회의 2대 목사로 지금까지 시무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교회 내 분쟁으로 분열되는 교회가 많다. 교회가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바른 신앙을 전수 받고 바른 신앙을 계승하고 바른 신앙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장자의 영권을 가진 교회는 사업적인 의미의 장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말씀을 가진 교회다”면서 “교회의 부흥은 스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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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12
  • [탐방] ‘여주동행’, 설립 50주년 희년 맞은 백양로교회
    백양로교회가 교회설립 50주년을 맞으며 희년감사예배를 가졌다. 교회가 시작된 50년 전과 똑같은 날짜인 4월 23일(주일)에 가진 희년감사예배에는 백양로교회 제4대 담임 김태영 목사가 설교하고 2부에서는 제3대 담임 신동작 목사가 회고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어진 3부에서 초대 담임인 이영백 목사가 축사를 전했다. 이날 예배에는 지금의 백양로교회가 있기 까지 헌신해온 목회자들과 초기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지난 50년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양로교회는 1967년 4월 23일 14명의 성도와 함께 부산 범천동 미원창고에서 보은교회로 시작했다. 초대 이영백 목사가 부임하며 보은교회로 교회를 창립했고 같은 해 12월 24일 범천동 1059-29번지에 신축예배당에 입당했다. 이영백 목사는 백양로교회에서 18년간 시무하며 교회의 기초를 다졌다. 이 목사의 후임으로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있던 故김평일 목사가 2대 담임으로 부임했다. 김평일 목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2년여 만에 사임하고 1987년 신동작 목사가 부임했다. 신동작 목사가 시무하던 1994년 지금의 당감동으로 교회를 이전하며 백양로교회로 개명했다. 신 목사가 2005년 부산장신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현재 담임인 김태영 목사가 부임했다. 김태영 목사는 “이영백 목사님이 계실 때 교회 행정적 기반이 갖춰졌다. 그리고 신동작 목사님께서 부임하시고 교회명을 백양로교회로 개명하며 당감동 시대를 여셨다”고 말했다. 백양로교회는 올해 설립50주년 희년의 주제를 ‘여주동행(與主同行)-함께하신 50년! 함께하실 50년!’으로 정했다. 교인들은 주님이 동행하신 50년을 감사하고 또 주님과 동행할 삶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 희년감사예배 김태영 목사는 “희년을 맞아 주님과 동행한 50년 동안 교회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편, 교인들에게 교회의 역사를 알리며 긍지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면서 희년 주요 행사로 홈커밍데이(4월 30일), 십자가전시회(3월 20일~4월 20일), 르완다 성경보내기(5월 14일), 초대 교인 돌봄사역,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기념음악회(5월 30일) 등을 진행했으며, 교회50년간 발간, 실버세대 수련회, 30~40대 글램핑 수련회, 희년 심령부흥회, 희년기념사진 전시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르완다 성경보내기’는 아직 자국 언어로 된 성경이 없는 르완다에 성경을 보내려고 하는 대한성서공회를 위해 교회가 협력에 나선 행사다. 처음 6000권 가량을 보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감사하게도 헌금이 7176만 9000원이 모여 6000권보다 2배 많은 1만 2000권의 성경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제자 되어 제자 삼는 교회 백양로교회는 ‘제자 되어 제자 삼는 교회’라는 비전 아래 4가지 미션을 가지고 있다. ‘다음세대 신앙계승’, ‘실버세대 천국소망’, ‘지역사회섬김’, ‘세계선교헌신’이 그것으로, 첫 번째가 ‘다음세대’다. 그만큼 김태영 목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다음세대 사역이다. 부임 후 다음세대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주일학교를 위한 비전센터를 건립했다. 두 번째, 교육부서 전담 교역자를 배치해 현재 백양로교회의 교육부서에는 6명의 목사가 있다. 세 번째로 교육부서에서 사용하는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특별헌금을 만들었다. 또 교육부장 등 명칭을 다음세대위원장으로 변경하고, 1년에 3차례 전세대가 모이는 3세대 예배를 드리고 있다. ▲ 김태영 목사 김태영 목사는 “올해 행자부에서 14세 이하 인구는 줄고 65세 이상 인구는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노인이 더 많은 어린이주일을 맞은 것이다”면서 “다음세대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어르신 세대도 귀하다. 그러나 세대를 이어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10년, 20년 후 교회 청년들이 없을 수 있다”면서 다음세대에 투자하고 신앙계승훈련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영 목사는 교회의 자랑으로 ‘좋은이웃팀’을 소개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좋은이웃팀은 매달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도배, 장판, 페인트칠, 연탈 배달 등 지금까지 90회의 집수리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목사는 “50년 된 교회가 지역을 떠날 때 주민들이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고 좋아한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역과 함께하라고 지어주셨다. 지역주민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양로교회는 결혼예식장, 문화교실, 노인센터 등 지역주민들에게 교회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진구청소년오케스트라 (사)디아코니아를 창립해 청소년들의 재능 개발과 문화활동을 돕고 있다. ▲ 진구청소년오케스트라 연주회 △ 50년간 분쟁 없던 교회 14명의 교인으로 시작한 교회는 50년이 지난 지금 3000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가 됐다. 긴 세월 속에 교회가 다툼이 있거나 갈라지는 곳이 많지만 백양로교회는 그러한 분쟁 없이 50년을 지내왔다. 김태영 목사는 “지금까지 도우시고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어려운 시대에 헌신해주신 교인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 “나는 평범한, 정통적인 목회자다. 특별한 목회를 하기보다 교회의 비전처럼 제자 되어 제자 삼는 교회로, 앞으로도 주님과 동행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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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탐방] 지난 70년을 기억하고, 10년 후를 준비하는 광주은광교회
    지난 3월 11일 광주은광교회가 설립 70주년 기념예배를 가졌다. ‘HIStory 70, 10년 후 우리교회’라는 표어 아래, 지금의 광주은광교회가 있기까지 헌신한 이선 목사(8대), 조재태 목사(9대) 그리고 현재 담임인 전원호 목사(10대)가 나란히 단상에 올라 말씀을 전했다. 이들은 광주은광교회의 지난날의 이야기와 현재, 그리고 10년 후의 광주은광교회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 광주은광교회 70주년 기념예배 △‘HIStory 70, 10년 후’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아 ‘HIStory 70, 10년 후 우리 교회’를 기념행사 표어로 정하고 지난달 11일 기념예배 및 칸타타를 개최했다. ‘HIS’를 대문자로 써서 그(하나님)의 이야기가 지난 70년 광주은광교회의 역사라는 것을 표현했다. 기념예배는 이선 목사, 조재태 목사가 각각 ‘은혜의 빛이 있으라’(창1:3~5),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5~39)는 제목으로 15분씩 설교했다. 또 이날 칸타타는 광주은광교회의 두 명의 은퇴장로와 광주은광교회를 사랑하는 다른 교회 장로 한 분이 자원해 작사로 참여하고 광주은광교회 찬양대 지휘자가 작곡한 곡으로 연주됐다. 연주 사이사이 내레이션을 통해서 교회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진행됐다. 이외에도 70주년기념행사준비위원회에서는 그림과 인형극, 영상 등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했으며, 역사골든벨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으로 전 성도들이 70년 역사를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전원호 목사는 “70년 못지않게 ‘10년 후 우리 교회’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보자는 것입니다. 100주년이라고 하면 30년 후가 되니 현실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리 멀지 않은 10년 후의 교회를 그려보자고 했습니다. 이때를 책임지게 될 30대, 40대 젊은 교인들을 기획위원으로 세워 계획을 하도록 과제를 주었습니다. 행사 준비위원장과 분과장만 장로님이고 모든 임원과 실행위원들은 평신도로 배치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므로 ‘10년 후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려가야 할 과제입니다”고 이번 행사에 대해 설명했다. ▲ 70주년 기념음악회 ▲ 70주년 기념비 제막식 △호남지역 대표 고신 교회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교회들이 많은 호남지역은 70년 전 광주은광교회가 세워질 당시만 해도 고신교단은 이단이냐는 말을 들을 만큼 교세가 약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호남지역 대표 고신 교회라고 하면 광주은광교회를 꼽을 만큼 지역 교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주은광교회는 1947년 3월 10일 누문교회로 출발했다. 1970년 8대 담임으로 부임한 이선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있으라’는 뜻을 담아 교회명을 광주은광교회로 바꿨고,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교회당 신축과 증축을 계속했고 은광평신도신학교와 은광유치원을 이때 개설했다. 전원호 목사는 “이선 목사님 이전까지 일곱 분의 훌륭한 목회자가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선 목사님의 사역으로 교회는 획기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백 명도 되지 않던 회집숫자가 천명에 육박하게 됐고, 주일학교도 천명이 모였습니다”며 “호남에서 고신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옛날에는 이단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이선 목사님과 조재태 목사님 두분의 사역이 교계와 지역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1983년 9대 담임목사인 조재태 목사는 호남지역에서 고신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가 시무했던 23년동안 국내 12개처, 해외 3개처 교회를 개척 혹은 분립개척했다. 동운, 연동은광, 신가은광, 곡성은광, 무안은광, 장산은광, 오치은광, 목포은광, 용산중앙, 하남은광, 새울림, 서부은광, 경신교회 등이 개척했거나 분립개척한 교회들이다. 전 목사는 “조 목사님이 추구했던 연장성장(Extension Growth)은 대성공을 이루었습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호남의 고신교회는 33개밖에 되지 않았으나 조 목사님이 은퇴하실 때에는 세 개 노회에 백 개가 넘는 교회로 헤아릴 정도였으니 조 목사님의 공로는 지대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 목사님은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광주CBS 출범 등에도 기여하셨습니다. 두 분의 사역을 다시 정리한다면, 이선 목사님은 광주은광교회를 튼튼한 교회로 세우셨고, 조재태 목사님은 호남지역에 고신교회를 확장시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며 앞선 두 선배 목회자의 사역이 교계와 지역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고신 교회를 굳건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조재태 목사에 이어 2005년 전원호 목사가 10대 담임으로 부임했다. 전 목사는 교회 목회와 교육에 전념했고 말씀 중심의 교회, 다음세대 교육에 힘을 쏟는 교회라는 평을 받게 됐다. ▲ 전원호 목사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 양성 전원호 목사는 교회를 ‘성도의 모임’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키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명공동체라고 것입니다. 그래서 광주은광교회의 표어를 ‘사람을 키워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다’고 정해놓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교회를 좋아지는 교회라고 정의하면서 지금보다 5년 후, 5년 후보다 10년후가 더 좋아져야 한다고 덧붙였고, 다음세대가 우리보다 믿음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신앙생활하기가 더 힘들어질 다음 시대를 감당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우리보다 더 나은 다음 세대를 키워내야 합니다. 신앙과 실력을 겸비한 자녀들을 키워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키워내어서 세계복음화의 한 모퉁이를 담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 목회철학의 핵심은 사람 키우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 목사는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 양성’이라는 비전으로 ‘세품’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교회의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의 눈을 틔게 해주고, 이들의 생각과 비전의 용량을 키워주기 위해서 언어훈련과 선교훈련으로 이루어진 세품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원어민교사를 교회에 상주시켰고, 유럽과 미국 등지로 비전트립을 보냈고, 동남아시아나 영국, 터키 등에서 선교훈련을 시켰다. 이를 위해 교회는 첫 해에 1억 예산을 세워야 했다. 아이들의 용량은 커졌고 참여인원이 600명이 훨씬 넘어 투입된 경비가 17억 정도가 됐다. 전 목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학교 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Sunday School에서 Everyday School로 전환했고, 그렇게 해서 세품국제크리스천스쿨이라는 기독교 대안학교가 시작됐다. 전 목사는 “교회건축이 시작되면서 세품프로젝트 사역이 많이 위축된 점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세품국제크리스천스쿨을 통해 신앙과 실력을 겸비한 인물을 키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인물을 키우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광주은광교회의 새 교회당 건물의 교육공간은 주중에 학교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6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 중고등부 행사 때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전원호 목사 △특별한 교회사랑 광주은광교회가 수완성전을 건축하기까지 긴 시간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건축과정에서 3번의 공사 중단 등의 어려움으로 건축을 시작한지 만 5년 8개월 만인 지난 2015년 3월 24일 입당예배를 가졌다. 전원호 목사는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마음을 사로잡은 두 가지가 있는데 ‘기도’와 ‘성도들의 교회사랑’이라고 말했다. “동고동락을 한 모든 성도들에게 각자의 간증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몇 차례 금식도 하고 여러 달 탈진도 경험하면서 힘겹게 지나왔지만 성도들의 기도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건축을 하는 수많은 교회와 목사님들이 기도의 힘으로 난관을 돌파하고 있을 겁니다. 힘내시라고, 기도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어려우면 교인 3분의 1정도는 교회를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조금씩 부흥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오래 된 성도들이 꿈쩍하지 않고 교회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광주은광교회 성도들의 특별한 교회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 교역자 부엌봉사 △기본으로 돌아가자 광주은광교회의 올해 표어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와 말씀 그리고...’이다. 표어에 담긴 의미에 대해 “교회 설립 70주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한 일생을 살면서 무언가의 5백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큰 특권이며, 특히 그것이 우리 신앙 정신의 본류라고 하면 더 가슴 뛰는 일이 됩니다”라면서 모든 것의 기본은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축으로, 기도와 말씀을 공유하고 개인, 혹은 각 기관이 그 뒤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라고 열어놓은 표어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삶에서 열매를 맺을 때 종교개혁의 그림이 완성된다고 덧붙여 말하고, 모든 성도들이 개혁자들의 신앙을 이어가기 위해서 교리학당과 역사학당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원호 목사는 광주은광교회가 100주년을 향한 그 길을 닦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100주년은 제 사역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다만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100주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광주은광교회가 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 길을 조금이라도 더 닦아 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저보다 훨씬 훌륭한 목회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계획이요 기도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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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 [탐방] 재활중점 요양병원, 온천사랑의요양병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이상이면 고령사회, 20%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고령인구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곧 고령사회에 진입, 2030년 경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4%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요양병원들이 생겼고, 그 가운데 방만한 운영과 환자보다는 이익을 위한 운영을 하는 병원들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요양병원은 인생의 말로에서 결정하는 곳, 수용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양병원은 특성상 장기입원, 장기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이 치료받고 충분한 요양을 한 후 퇴원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개선을 위해 많은 요양병원들이 노력하고 있다. 부산 동래 온천장 소재의 의료법인강혜의료재단 온천사랑의요양병원(이사장 이강호 목사. 병원장 조광현 장로)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병원’을 목표로 지난 1월 개원했다. ▲ 온천사랑의요양병원 △환자 중심, 쾌적한 병원 온천사랑의요양병원은 로비부터 복도, 병실까지 병원이라기보다 리조트에서 느낄 법한 쾌적함을 준다. 요양병원으로는 크다고 할 수 있는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건평 4,200평, 주차수용 150대)로 400병상을 갖추고 재활치료와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부산 온천장 중심지에 세워진 만큼 온천을 이용한 수(水)치료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샤워실 등을 뒀다. 특히 수치료실은 편백나무로 꾸며진 족욕시스템, 산소샤워실, 원적외선실을 두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 병원로비 ▲ 족욕탕 병원은 재활전문치료센터를 개설해 중추신경계질환(뇌졸증, 척수손상), 교통사고, 산업재해, 골절 및 관절 수술 후 전문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특수장비를 두고 체계적인 치료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리고 고령화시대에 맞는 만성노인질환, 치매, 심장 및 호흡기 질환 등 장기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에게 전문가를 구성해 맞춤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각 층마다 금정산이 보이는 쉼터, 야외테라스, 하늘공원 등 편의시설을 갖춰 요양환자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 병원개원과 함께 설립예배를 가진 온천푸른초장교회가 지하1층에 위치하고 있어 환자들이 언제든지 예배와 기도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했다. 또 예배당 한 켠에 다락방을 만들어 선교사들이 방문했을 때 숙박을 제공한다. 쾌적하고 쉼이 있는 병원이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병원 건물 외부 전후에 전국 최초로 나선형 안전 피난 미끄럼틀 소방시스템과 비상계단에는 안전바를 설치했다. ▲ 재활치료센터 ▲ 하늘공원 ▲ 하늘공원 ▲ 금강공원 전경의 쉼터 조광현 병원장(가야성안교회 장로)은 “요양병원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부분, 시설적인 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열악한 환경은 건강에 더 안 좋다. 그래서 환기시설을 통해 쾌적한 분위기에 현대식 휴식공간을 마련했고, 무엇보다 안전에 특히 신경 썼다. 피난 미끄럼 탈출 장치는 위급상황 시 15층에서 2분 만에 내려올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보호자가 안고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험에 시험을 거듭한 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이 복음의 현장으로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 병원은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병원은 복음을 전하며 몸의 치료뿐 아니라 마음을 보듬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 예배를 드린다. 환자들도 거동이 불편하지 않으면 지하1층 예배당을 찾는다. ▲ 조광현 원장 조 병원장은 “우리는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최고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다. 의료진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개원한지 두 달 정도 됐다. 조금씩 좋은 입소문이 나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 하루 일과는 예배로 시작한다. 이사장인 이강호 목사님은 항상 병원은 돈벌이가 아니라, 섬기는 자세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안식처고, 천국으로 향하는 건널목이 되도록 운영해야한다고 강조하신다. 요양병원에서 회복되어 퇴원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여기고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1000명을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병원 교회 내에 걸어 놨다”고 말했다. ▲ 병원 내 지하1층에 위치한 온천푸른초장교회 조광현 병원장은 인제대 부산백병원 흉부심장혈관외과 교수로 재직했다. 부산백병원장과 대한 흉부외과 학회장을 역임했고 지난 2014년 8월 정년퇴임했다. 퇴임 후를 고민하는 가운데 사회적 이슈인 노인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 이강호 목사의 제안이 있었고 이 목사의 병원을 운영하는 기독교적 경영철학이 조 원장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 병원장을 맡게 됐다. “심장수술을 5천명 가까이 했다. 부산에서는 기록을 세웠다고 할 수 있지만 퇴임 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여러 제안들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질환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도 노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노인병에 대해 공부했다. 앞으로 맞게 될 고령사회에서 노인병 전문가가 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병을 공부하고 노인병학 인정의 자격을 취득했다”는 조 원장은 “그때 이강호 목사님이 기독교적 운영 마인드가 저와 맞았다. 이제 시작한 병원이다. 크리스천, 넌크리스천 환자들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병원으로, 이곳에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를 위한 준비 조광현 원장은 운영에 있어서 ‘4가지의 만족’을 강조한다. 첫째는 신앙공동체, 두 번째는 병원 운영진, 직원, 환자들이 해피(Happy)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지역의 모범이 되는 병원, 네 번째는 보금자리같은 병원, 다섯 번째로는 의료진의 노력이다. “병원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분쟁이 있다. 신앙공동체라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으로 도우면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3분야(운영자, 직원, 환자)의 사람들이 즐거워야 한다. 특히 직원복지가 잘 이뤄져야 한다. 요양병원을 두고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한다. 직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하도록 복지를 증진시키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다른 병원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병원이 되길 바란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요양병원이라는 생각보다 집 같이 안락함을 주는 보금자리로 느껴지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그를 위해 우리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의사들의 노력이다. 노인에 대해 잘알야하는 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신앙적인 면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노인은 우리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노인에 대한 준비는 곧 나에 대한 준비로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미래가 쓸쓸하지 않으려면 노인들의 쓸쓸함이 없어야 한다”며 “지금 우리 세대가 모범이 돼야 한다. 개척자 마인드를 가지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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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16
  • [탐방] 기독교의 역사와 의미를 한 눈에... 부산 이스라엘 문화유물 특별전
    ▲ 지난 2월 1일 부산시민공원 시민사랑채에서 부산 이스라엘 문화유물 특별전 개막식이 진행됐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성경 속 유물들을 부산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기독교의 역사와 의미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이스라엘 문화유물 1300여 점을 전시한 ‘이스라엘 문화유물 특별전’이 부산에서 개최됐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와 부산극동방송이 주최한 이번 전시회는 지난 1일(수)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3월 30일(목)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부산시민공원 백산홀과 미로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주최 측은 “성경 속 물건들을 직접 보면서 고대 중동 지방의 역사를 체험하고 당시 이스라엘의 문화와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람, 체험, 해설이 있는 전시회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전시회 중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세계기독교박물관(관장 김종식)이 소장하고 있는 4천년 전 아브라함 시대의 항아리, 다윗 시대의 물매, 강보, 두루마리 양피지에 기록된 토라, 에스더서 두루마리, 흉패, 이스라엘 방패, 일곱촛대, 옥합, 무교병, 할례도구, 데니리온, 세겔, 쥐엄열매, 소고와 수금 등 1300여 점을 2개의 전시실(350여 평)에 전시했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들은 김종식 관장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등 성경 배경 지역에서 수집한 1만 3천 점의 유물 중 주로 이스라엘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사무국장 성창민 목사는 “이스라엘 유물전 자체가 개인적으로 목회자인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면서 “부산의 10만 교인들이 성경 속 물건을 실제로 보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원하지만 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면 좋겠다고 느끼고 부산성시화에서 이 일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인 부산시민공원 백산홀에서는 해설을 통한 관람, 미로전시관에서는 물매 던지기, 무교병 맛보기, 영각나팔 불어보기, 나드, 유향, 몰약 냄새 맡기 등 주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 세계기독교박물관 김종식 관장 김종식 관장은 “달란트가 얼마가 무거운지, 여섯 규빗 한 뼘이라는 골리앗의 키는 얼마나 되며 내 키는 몇 규빗인지, 나드와 유향, 몰약의 냄새는 각각 어떤지 등 직접 눈으로 보면서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번 전시회에서는 물매 던지기, 달란트 들어보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주일 방문객을 위한 특별체험도 진행한다. 부산 이스라엘하우스 금원 크로니쉬 관장과 함께하는 이스라엘 절기 행사 체험으로 부림절,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초막절, 수전절, 안식일 의식을 체험할 수 있다. 매주일 오후 3시부터 15분간 진행된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해설이다. 40여명의 해설사들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 관람하는 경우 대략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김종식 관장은 “전시품 중요도 49%, 해설 51%”라면서 해설을 반드시 들을 것을 강조했다. 김 관장은 “전시품을 봐도 어떤 물건인지,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해설사가 필요하다. 전시회에 앞서 해설사 교육을 3일간 실시했는데, 해설사들에게 성경지식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설사로 참여하는 이들 가운데는 울산지역 성도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울산에서 가진 전시회를 통해 감동을 받아 이번 부산 전시회에서 해설사로 봉사하겠다고 참여한 것이다. 김종식 관장은 “이분들이 받은 감동이 부산 전시회를 찾는 분들에게도 전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 관람객은 해설사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전시장의 입장권은 성인 1만원, 학생(초·중·고) 7천원, 아동(36개월 이상 미취학아동) 2천원이며, 성인과 학생 10인 이상 단체관람 시 30% 할인된다. 이스라엘에서 직수입한 기념품 구매도 가능하다. △전시회의 주제 ‘믿음과 거룩’ 김종식 관장은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며 ‘믿음과 거룩’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많은 사람들이 믿음은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겨자씨가 그렇듯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다. 달란트를 재능이라고만 이해하는데, 달란트를 받았다는 것은 복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대로 살면서 믿음이 성장한다”며 “그 믿음을 유물들이 증명한다. 그래서 믿음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제인 거룩에 대해서 김 관장은 “지금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심지어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거룩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거룩은 성경에 있고 여기에 나오는 유물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정결컵을 전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시된 유물을 보고 이해하면서 거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교회 안에서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생활자체가 거룩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성경이 살아있다 부산 이스라엘 문화유물 특별전시회의 표어는 ‘성경이 살아있다’이다. 김종식 관장은 전시회의 효과로 성경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성시화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나온 물건들을 보면서 성경이 살아있다,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개인 신앙에 도움이 된다. 성경이 살아있다는 것에 은혜 받고,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 일이 함께 즐기는 기독교 축제가 되길 바란다”면서 “전도하고 성시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식 관장은 “울산 전시회 이후 부산 전시회를 위해 매일 기도해왔다. 이번 전시회도 성령님의 인도하셨지만 전시 후에도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부산, 경남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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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탐방] 소포장 반찬·도시락 전문기업 (주)해피락
    △‘혼밥’의 시대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27.2%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싱글족, 나홀로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혼자 뭔가를 하며 눈치를 보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혼자 활동하는 모습, 이른바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마시기), 혼행(혼자 여행가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등 젊은 층에서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이 유행이 됐다. 1인 가구, 나홀로 문화가 트렌드가 되면서 소비 시장도 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솔로 이코노미,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 시장이 블루칩으로 급부상했다. 식품에서 가전, 주거 공간까지 소비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른 나홀로족을 겨냥한 상품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특히 소포장식품, 편의점과 도시락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 통계청은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하면서 대표성이 있는 품목 19개를 조사대상에 새롭게 추가했는데, 그 가운데 도시락이 포함된 것을 보면 소비패턴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반찬, 도시락소포장 상품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소포장 반찬 및 도시락사업 전문 기업인 (주)해피락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며 매년 20~30%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7년 전, 마트형 소포장 반찬 사업으로 시작한 해피락은 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중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반찬을 판매해왔다. 1가구 1~2인 가정이 확산되면서 해피락의 판매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위생적이고 안전하고 맛있는 소량의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반찬 사업이 정착되면서 야외행사나 교회, 사무실, 장례식장 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락 사업을 시작했고, 최근 마트형 4종류의 도시락을 출범했다. 더불어 출장 뷔페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 (주)해피락 고문 하호종 장로(왼쪽), 대표 박금렬 장로 해피락 대표 박금열 장로(장대현교회)는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소분반찬이 인기를 얻고 있다. 계절상품을 포함해서 170여 종의 반찬을 천연 조미료를 사용해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맛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맛있고 다양한 종류의 반찬을 안전하게 드실 수 있도록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특히, 도시락은 매일 반찬과 국 메뉴가 달라진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는 직장인들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내년에는 서울지역에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소포장 반찬들 해피락 고문인 하호종 장로(사직동교회)는 “과거 서원유통에서 전무로 근무했었다. 그때 반찬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해피락은 맛은 기본이고 가격, 편이성, 안전을 가장 고려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많은 양을 원하지 않고, 가정에서 해먹기보다는 퇴근길에 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상품을 원하는데 그것에 부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피락에는 3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박금열 장로는 가족 같은 회사를 목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박 장로는 “가족 같은 회사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고, 회사 운영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회사들이 가족 같은 회사라고 구호처럼 외치지만 어렵다. 그래서 직원들도 마찬가지지만 운영하는 사람들도 희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회사를 잘 되어야 하는데,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내가 교회의 장로이긴 하지만 직원들에게 기독교적인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최근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이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하기보다는 기독교 철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믿는 사람들이 바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나부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자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해피락은 지역 노인복지관을 통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반찬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박금열 장로는 향후 탈북민을 위한 지원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교회나 사무실, 병원 등에 배달되고 있는 도시락 △반전의 은혜지금의 해피락으로 정착하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업초기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거기다 박금열 장로는 교회분쟁을 두차례를 겪으면서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박 장로는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시다. 고난의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장대현교회를 가게 된 것도 그때였다”고 말했다. 교회를 떠나게 됐을 때 우연히 장대현교회를 알게 됐다는 박금열 장로는 "기성교회를 다니기가 어려웠는데, 탈북민들이 모이는 예배처라고 듣게 됐다. 오래전부터 마음의 빚으로 선교사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선교지가 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처음 장대현교회에 갔을 때, 담임이신 임창호 목사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첫 예배를 드리면서 눈물이 나면서 내 교회라고 느꼈다. 항상 마음속에 소년시절에 다녔던 교회는 어디 있을까 생각했는데 장대현교회가 그런 곳이었다. 탈북민들의 순수하고 사심 없이 서로 아껴주는 마음, 마음과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으로 느껴졌다. 하나님께서 그때의 내 상황을 반전시켜주셨다. 갈렙처럼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하셨고, 그래서 해피락을 통해 탈북민을 돕는 사업을 꼭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박금열 장로는 “하나님은 항상 반전의 카드를 들고 계신다. 그 반전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때 반전시켜주신다. 그러니 많은 분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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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2
  • [탐방] 목사·장로 ‘본질’ 회복을 이끄는 국제목양사역원
    ▲ 국제목양사역원 원장 최홍준 목사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목사와 장로의 본질 회복을 위해 국제목양사역원(원장 최홍준 목사)이 설립됐다. 지난 10월 제31차 컨퍼런스까지 진행되는 동안 국내 356개 교회, 국외 226개 교회가 참석했고, 목사와 장로 3258명이 수료했다. ▲ 지난 10월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에서 열린 31차 목양사역컨퍼런스 목양장로사역은 최홍준 목사가 호산나교회에서 은퇴를 3년 앞둔 2007년 시작됐다. 최 목사는 장로가 목사와 같이 목양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본질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한국교회에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교회 내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이 목사와 장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성도와 청년,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지적되고 있다. 최홍준 목사는 “가정은 확대한 교회고, 교회는 축소시킨 가정과 같다.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역할은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과 같다. 자녀가 가정을 떠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 잘못됐기 때문이다”고 지적하면서 목사와 장로가 성경대로 본질을 회복할 때 교회가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은퇴 후 호산나교회 부설로 국제목양사역원을 설립해 장로들을 변화시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데 주력했고, 2015년 호산나교회 부설기관에서 벗어나 부산 암남동에 독립기관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 2009년에 열린 제1회 목양장로사역 컨퍼러스 △장로의 본질은 목양목양장로사역에서 장로 본질의 회복은 목회자와 장로 사이의 갈등, 장로와 성도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교회에서 목양의 동역자로, 성도들과 인격적인 관계 회복을 통해 성도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의 인도자로서 장로 고유의 직분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최홍준 목사는 “목양은 목사와 장로가 성도를 ‘양’을 돌보듯, 자녀를 돌보듯 참고 인내하고, 항상 그들을 생각해야 한다. 자녀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싸우지 말아야 한다. 내 감정, 내 자존심을 내세울 수는 없다. 이것이 목양사역에서 가르치는 핵심이다”고 설명했다. 또 장로가 행정에만 집중하면서 본질에서 떠났고 거기서 생긴 교회 안의 분쟁, 갈등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 목사는 “‘나도 저 장로님처럼 되고 싶다’는 롤모델이 있다면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만 생활을 한다. 장로님들은 다르다. 성도들처럼 세상에서 똑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목회자가 조언을 하는 것보다 장로님들이 조언할 때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청년들에게도 실질적인 인생 상담을 해줄 수 있다. 성도들과 같은 상황에서 말씀대로 사는 장로를 보면서 변화가 생긴다. 장로를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역자로 만드는 것이 목양사역이다”고 설명했다. ▲ 최홍준 목사는 "장로의 본질은 목양"이라고 강조하며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홍준 목사는 “본질의 회복은 한국교회가 다시금 부흥의 파도를 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열심히 전도를 한다고 해도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 사역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생애를 걸었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양제도가 종교개혁한국교회에서도 목사와 장로가 성도들을 자녀와 같이 돌보며 훈련을 통해 성장하도록 돕는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최홍준 목사가 목양장로제도를 실시하기 전에는 이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사역하는 기관이 전무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호산나교회에서 실시한 목양장로제도를 바탕으로 국제목양사역원을 개원했다. 최홍준 목사는 “지금까지 목회자들이 장로가 목양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회자들도 그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훌륭하신 선배 목사님들조차 장로에게 목양을 가르치지 않았다. 장로들도 ‘왜 우리가 목양을 해야 하느냐’며 목양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장로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은 두 가지를 회복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해 평신도들 품에 안겨줬고, 사역을 장로들에게 나눠준 것”이라고 말했다. ▲ 2013년에 진행된 세미나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사역국제목양사역원은 내년 3월, 32차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다. 담임목사 부부, 장로(은퇴장로 가능), 부목사, 피택장로 등을 대상으로 하는 컨퍼런스는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는 목사와 장로의 본질 회복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3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울산교회(정근두 목사 시무)에서 열린다. 강사로는 최홍준 목사를 비롯해 안인섭 교수(총신대신대원), 선량욱 대표(팻머스문화선교회), 이동근 목사(국제목양사역원)가 나서며 9번의 주제강의와 목양장로사역을 위한 워크샵 등으로 진행된다. 이번 컨퍼런스는 온라인(www.pastoralministry21.com)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 목양장로사역 시스템(사역흐름도) 그동안 국제목양사역컨퍼런스에 참여했던 교회의 재등록률이 높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교회는 있어도 한번만 참석한 교회는 없다고 말할 정도다. 국제목양사역원의 홈페이지에는 컨퍼런스에 참석 한 후 ‘목회자와 장로들의 명찰에 ‘섬기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했다’는 교회, ‘지금까지 장로로서 기득권을 누리려고 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장로, ‘목양 장로로서의 확신을 가지고 행정 장로 직을 사임했다’는 장로 등 수많은 후기가 올라와 있다.최홍준 목사는 “교회에서 목양사역이 시스템화되면 지속성을 갖추게 되는데, 담임목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시스템화된 사역은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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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24
  • [탐방] 교정선교기관 (사)기독교세진회 부산지회
    - 법무부 인가 제1호 법인 교정선교 전문기관-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사법정의로의 접근- 갇힌 자들을 돌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 ▲ (사)기독교세진회 부산지회 회장 최훈조 목사(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와 봉사자들 △법무부인가 교정 복지 전문기관(사)기독교세진회는 재소자 및 재소자 가족 선교, 교정교화, 출소자 갱생 및 사회적응을 위한 단체로 1968년 7월 발족했다. 법무부 인가 제1호 법인으로 교정선교 전문기관으로 ‘갇힌자를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사역한다. 서울 본부를 중심으로 대전, 부산, 전주 등 전국 8개의 지역에 지회를 둔 기독교세진회는 재소자가정보호와 회복적 정의 실현, 교정 네트워크 구축 등 사업을 통해 집회와 위기상담 소그룹 모임, 집단 상담 등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교정사역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수용자들과 그 가족들이 회복되고 치료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기독교세진회 부산지회 회장 최훈조 목사는 “세진회 사역은 교정복지사역, 수용자가족 돌봄사역, 교육교화 사역, 홍보 및 기념사역 등을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갇힌 자들에게 가족과 사회공동체를 대신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또 부모의 한시적 부재로 무너진 가정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범죄 피해자의 상처 회복과 범죄자 교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바뀌어 나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교도소(구치소) 순회예배 △ 갇힌 이들에게 복음을1991년 1월 31일 설립된 기독교세진회 부산지회(회장 최훈조 목사)는 영남지역 14개 교정기관과 오륜정보산업학교(소년원)를 중심으로 순회집회, 자매결연, 사랑의편지나누기, 무의탁 청소년을 위한 교정사역을 하고 있다. 부산세진회는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해 예배를 가지는데, 항상 문화예술인들과 동행한다. 최훈조 목사는 “재소자들은 오직 복음으로만 변화될 수 있다. 말씀을 통해 새 삶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배를 드린 후 2부 순서로 시 낭송, 성악, 악기 연주 등 공연을 한다. 말씀에 이어 문화예술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10여명의 봉사자들이 재능기부를 해주시고 계신다”고 말했다. ▲ 재능기부 봉사자들이 최 목사와 함께 교도소를 방문한다. 교도소 선교는 인내와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사역이다. 최 목사는 “재소자들 중에 면회 오는 사람이 전혀 없는 무연고자들이 많다. 매달 1번씩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수감자들을 돌보는 사역에 힘쓰고 있다. 어느 재소자는 제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면회를 온 사람이라며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 교도소 선교가 당장 열매를 볼 수 없어 실망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씨를 뿌릴 뿐이다. 열매를 거두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인내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느리지만 작은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사역을 멈출 수 없다고 덧붙이는 최 목사는 “출소 후에 재범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시작된 신앙생활을 계속 이어가며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한 출소자는 직장에서 받은 월급을 재소자들에게 영치금으로 사용해 달라고 전해왔다. 그리고 저는 소년원에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는 사람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데, 얼마 전,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인사를 건네 왔다. 그 청년은 자신이 소년원에 있을 때 제가 한 강의를 듣고 출소 후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가 지금 대학생이 됐다고 말했다. 너무 감사했고 힘이 났다”고 말했다. ▲ 오륜정보산업학교(소년원) 신앙수련회 최훈조 목사는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들킨’죄인과 ‘안 들킨’죄인으로 사는 것 뿐이다. 예수님도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이 곧 나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교도소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최 목사는 “기도와 재정적 후원이 많이 필요하다. 무연고 재소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생활할 때 영치금이 필요하다. 세진회에서 한 사람에게 1만원을 영치금으로 전하는데, 어느 재소자는 그 1만원으로 한 달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 동참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다. 기도와 재정후원뿐 아니라 재능기부로 또 신앙서적 기증 등으로 사역에 참여하실 수 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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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0
  • [탐방] 나눔의 실천, 삶으로 보여주는 전도 (사)나눔플러스 부산지역본부
    -나눔 실천을 통한 삶으로 복음 증거 하는 공동체-청소년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큰바위얼굴장학회 설립-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교수, 천종호 판사 등 각계각층 인사 참여 ▲ (사)나눔플러스 부산지역본부장 김성우 장로 ㆍ조건 없는 사랑, 실천을 통한 복음 증거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공동체를 형성했다. 지역의 유지들로부터 십시일반 후원을 받아 실제적 혜택을 주는 지역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을 전개했다. 이 나눔공동체는 나눔을 함께 노력해야할 사회적 과제요, 이 시대의 새로운 희망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의 실천을 위해 지난 1999년 설립됐다. 이 공동체가 (사)나눔플러스(총재 강지원 변호사, 이사장 이현식)다.‘다함께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비전으로 내세운 (사)나눔플러스의 목적은 나눔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이 더하게 하고, 나눔으로 사랑을 보여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전국 16개의 지역본부와 센터는 지역사회의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자발적 나눔을 통해 조건 없이 활동으로 반찬나눔, 무료급식, 청소년멘토링, 지역아동센터, 노인요양원 및 방문요양, 교도소교화활동 등 각 센터 마다 고유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지난 2014년 소정교회(채규웅 목사)에서 부산지역본부 발대식을 가졌다. ㆍ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큰바위얼굴장학회부산지역본부장 김성우 장로(기쁨교회)는 지난해 12월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해 ‘큰바위얼굴 장학회’를 설립했다. 장학회는 부산지역본부 주관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부산 극동방송국의 추천을 받아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는 희망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성우 장로는 “지역사회에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장학금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장학회를 만들었다. 이 장학회는 부산에만 있다”며 “장학금은 청소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모아진 후원금은 오로지 장학금으로만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 지난해 12월에 가진 큰바위얼굴장학회 출범식. 천종호 부장판사, 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교수가 참석해 축하했다. 큰바위얼굴장학회는 임미영 운영위원장(센텀조은병원 원장)과 송홍안 심시위원장(동아대 교수)을 중심으로 대학 교수와 의사, 기업가 등 지역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청소년들을 위한 연2회 4천여만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계획, 추진하고 있다. 부산지역본부는 비행청소년의 대부라 불리는 천종호 부장판사와 사역을 함께하고 있다. 천 판사가 지원하는 쉼터에 생필품과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사역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천종호 부장판사가 지원하는 쉼터에 장학금과 생필품을 지원한 계기로 장학지원 사업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 부산지역 인지중학교와 부산전자 공고에서 각각 8명과 5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최근 부산국제금융학교에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부산가정법원을 통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오는 11월에도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성우 장로는 다양한 곳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후원시스템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부산가정법원을 통해 국제금융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ㆍ하나님이 하시는 대로전국에서 처음으로 평신도 본부장을 맡았다는 김성우 장로는 “세상에서 방황하다 예수님을 만나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소망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수를 만나기 전 세상에서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김성우 장로는 “예수님을 믿기 전 사도바울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다. 누가 전도를 하거나 식사기도를 하면 예수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며 너희나 잘 먹고 잘 살라고, 재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IMF 때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굉장히 어려워졌는데, 그때 나쁜 마음을 먹고 수면제 수십 알을 먹었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이틀 만에 깨어난 김 장로는 갑자기 교회를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1980년대에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때 어머니가 교회를 나가시며 예수를 믿게 됐는데, 늘 전화통화에서 교회를 가라고 하셨다. 한국에 나오셨을 때 내 차에 성경책을 두고 가셨는데 그 책을 들고 교회를 찾아갔다”는 김 장로는 정작 교회를 가고 싶어도 어떻게 가는 건지 몰랐다고 한다. 김 장로는 “오래전 교회를 다니던 부하직원이 생각나 그 친구에게 교회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며 기쁨교회를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척교회로 작은 교회였지만 처음 교회를 들어갔을 때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맨 앞자리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가슴이 떨렸고 소름이 돋았다”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김 장로는 그때부터 그저 목사님만 붙잡았다. 말씀을 배우면서 하루 3~4갑씩 피우던 담배와 술을 끊었다. “담배가 독가스처럼, 술이 휘발유처럼 느껴졌다. 집에 쌀도 없을 만큼 힘든 형편이었지만 예수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다 포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전도했다”고 말했다. 주위에서는 예수를 믿더니 제정신이 아니라며 비난했다. “당시 사업의 부도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냉동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때 고3이던 아들이 사고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대학을 못 갔다. 군대도 갈 수 없을 만큼 다쳐서 폐인처럼 살았다. 딸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꿈을 제대로 펼치질 못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감사한 것은 그때 교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전도도 많이 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돈을 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길을 선택할 것 같아 포기했다. “주위에서 막노동이라도 하라고 했지만 직장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담임목사님이 봉사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며 요양보호사를 알려주셨다는데 마음에 이끌림이 있었다”면서 가진 것이 몸 밖에 없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게 됐다. 첫 월급을 받아 난생 처음으로 십일조를 냈다. 수입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고 2008년 기쁨방문요양센터를 시작했다.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되길 기도하며 일했다. 김 장로는 로마서 8장을 암송하면서 “육신의 생각대로 따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현재의 처지와 형편대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신다. 작은 것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크게 갚아 주셨다. 자녀들을 잘 되게 하셨고 사업장을 확장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실천 방법을 찾으면서 나눔플러스 부산지역본부장을 맡게 됐다.김성우 장로는 “믿지 않는 사람, 교회에서 상처받고 실족한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믿는 우리의 삶이 변하고 또 지역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나라를 이루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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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7
  • 창립 40주년 ‘늘노래’ 이제 다음세대 디딤돌로
    한국 최초 전업 음악전도 보컬 그룹으로 시작한 늘노래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문화전도를 위해 헌신해온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장 유의신 목사(믿음찬교회)에게 지난 40년과 문화전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Q.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이하 늘노래) 창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늘노래 역사와 현재의 사역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는 사실 음악으로 전도하는 순회전도팀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사역입니다. 음악처럼 다양한 문화장르로 전도해야 한다는 연구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늘노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음악전도 사역은 1976년 11월이었습니다. 사실 그전에 제가 1973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이사벨여고(그 당시) 교사로 복귀하면서 평신도 청년운동 ‘목견들’(1974)이라는 제자훈련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1976년 이사벨복음학원에서 무궁화관을 개관하면서 관장직을 맡았는데, 그것이 또 다른 사역의 시작이 됐습니다. 바로 ‘늘노래음악전도단’이었습니다. 제가 1971년 도미하기 전에 평신도 청소년사역자로 양정복음교회(현 양정중앙교회)에 섬길 때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노문환 형제를 만나면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다녀오고 노문환 형제는 군복무를 한 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재회하면서 제가 인도하고 있는 목견운동에 가담하게 됐고, 자연히 같이 일하던 동료 이광무 형제와 서영식 형제를 인도했습니다. 말씀 가운데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으로 전도하는 전업팀(full time)으로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창단된 후 1978년 동래중앙교회(당시 신동혁 목사)와 동광교회(당시 김정광 목사) 그리고 부산진시장선교회 중심으로 부산노래선교회라는 후원단체를 창립하면서 첫 단원들의 헌신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늘노래’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고 후원회와 선교단, 이원화된 조직으로 이어가면서 보내는 자들과 가는 자들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단체가 됐습니다. 1987년 5월에는 공식적으로 한 달 동안 69회의 집회를 기록하게 될 정도로 사역이 왕성해졌습니다. 1995년 이사장 신동혁 목사님의 소천과 갑작스런 노문환 단장의 사임 후 고광삼 단장 중심으로 늘노래 I, 늘노래 II, 김영국 단장(2000-2003)팀 그리고 늘노래뉴젠(NewGen) 김일영 단장(2004-2007)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노래의 정신과 그 사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후원하시는 손길들이 있어 기도하는 중에 음악으로 전도해온 노하우를 나누고 2008년 다양한 문화장르로 전도하는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4차에 걸쳐 격월로 문화전도 아카데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1986년부터 정기간행물로 등록해 월보로 발행하는 소식지 ‘작은터 큰나라’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Q. 기독교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에서 문화사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A. 먼저 불모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산은 제법 괜찮은 문화 도시입니다. 사실 한국전쟁으로 팔도의 문화와 일본 문화가 비빔밥처럼 한데 어우러져서 지금의 부산문화가 되었습니다. 어느 도시도 가지지 못하는 특유의 문화입니다. 가장 확실한 예로 ‘늘노래’가 여기서 탄생한 것입니다. 기독문화라는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보수적인 분위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노래의 음악형태가 기존 교회문화와 일부 충돌이 있었기는 하지만 늘노래 음악은 교회의 예배음악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전도를 위한 음악을 하는 팀이기에 차별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역을 거절 당하기도하고 교회의 후원과 지지를 받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노래 사역은 한국교회를 위해 사심 없이 사역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체 부동산이나 동산을 가지거나 단체 자체를 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단원들이 흩어질 때입니다. 평생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자고 뭉쳤지만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개인 사역자로 흩어질 때는 마음으로 많이 아플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흩어져 더 큰 사역들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흩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문화계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문화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또 대안을 제시해주신다면. A. 문화이야기만 나오면 용어부터 신경이 쓰입니다. 기독문화냐 기독교문화냐. 쉽게 말하면 기독인 삶으로 드러내는 문화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산하는 문화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문화라는 용어로 통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삶이 종교라는 틀에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라고 하면 예수님을 교주로 하는 종교 중의 하나로 전락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와 경쟁하며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비교하며 우월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화라고 하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가 쉬워집니다. 말하자면 경제에 함몰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현실가운데 전반적인 사회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 현상 속에서 함몰되기 보다는 초연하게 문화에 기름부음을 받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하위개념입니다. 자본을 포기하고도 얼마든지 기독문화는 왕성할 수 있습니다. 기독문화는 자본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지배 받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포함하여 기독문화는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택하는 순발력을 가지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A. 기독문화의 뿌리는 기독인이라고 할 때 기독인이 속한 지역교회가 베이스캠프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역교회에서 양육하고 세운 기독문화사역자들을 세상에 파송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해외선교사들을 지원하듯이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 보면 문화사역자들이 교회 밖에서 자생한 것 같이 교회와의 연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독문화는 교회에서 만들어져서 세상에 내보내져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가는 유기적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를 통해 교회는 세상을 만나고 세상은 문화를 통해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문화를 교회가 세워가야 하며 기독문화사역자는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긴밀한 생명력이 살아있으면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생(共生)관계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Q. 최근 청소년 사역 단체 대표의 성 스캔들 등 한국교회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일 발생하면서, 비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기독교문화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문화사역이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학원복음화에 앞장서신 다음세대 사역자로서 지금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기독문화도 사람이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최근 벌어지는 일말의 사건들은 이미 있어 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된다든지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바뀌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그대로 있는데 직무와 사명이 달라지는 것뿐이지요. 그러니까 본인도 그 점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높은 기준으로 그들을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사역을 하는가입니다. 그동안 기독문화는 번영신학과 맞물려서 유명해지고 커지고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면 세칭 성공이라고 하는 잘못된 의식과 동기에 함몰돼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젊은이들은 예수님처럼 죽는 사람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공하면 그 뒤를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 시대(마지막 때)에 더 험한 일을 겪게 되고 희귀하고 훼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가는 넒은 길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들 보다는 아무도 안 가려는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 결국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게 되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야 하는 원리는 지금도 유효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지상주의로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는 자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대로 예수 믿는 자라면 제대로 된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역자로 마지막에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Q. 창립 40주년을 맞아 8월 1일부터 전도노래를 공모하고 있습니다. 전도노래 공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최근 기독문화에서 사용하는 언어들 가운데 잘못 사용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찬양사역이라는 말입니다. 찬양은 찬양이지 사역은 아닙니다. 또 하나는 워십콘서트(worship concert)입니다. 예배를 공연하다니요. 웃기는 일입니다. 한 가지만 더 부언 한다면 예배음악과 생활음악과를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찬송가 공회에서 출판한 찬송가에도 100% 예배음악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찬송가에 있는 곡은 예배에서 사용하고 그 외의 노래는 안 된다고 하는 분도 있더군요. 사실 늘노래는 생활음악(전도노래)을 해 왔습니다. 어떤 교회음악지도자는 우리나라 교회음악을 늘노래가 많이 망가뜨렸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교회가 분별을 못해서이지 늘노래 책임은 아니지요. 다시 말하지만 늘노래음악은 전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편곡하고 연주하고 프로그램과 설교를 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음악전도가 다음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애절함이 있어서 이런 공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전도노래 공모 외 창립 40주년 기념행사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작년부터 부쩍 늘노래 노래에 관심을 보이며 그 당시 감동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인터넷과 SNS 등 연결되는 길이 많아져서 더 그런가봅니다. 자연히 늘노래 곡을 다시 듣고 싶어 하고 음원과 악보를 구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스스로 늘노래 키즈(Kids)라거나 늘노래 왕팬이라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작년에 이미 11월 7일(월)을 정하고 늘노래가 시작됐던 무궁화관에 예약했습니다. 이날 창단 멤버와 옛 단원들이 홈커밍으로 모이고 그때 그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선호하는 곡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날 홈커밍데이에서는 탑5곡들을 부르고 관객과 단원들이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Q. 늘노래 향후 사역과 목사님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늘노래가 음악을 통해 전도에 진력해왔기 때문에 다음세대에도 계속해서 음악전도팀이 전국에서 새롭게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제는 교회가 전도팀을 만들어서 파송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문화장르에서 기독문화에 헌신하는 분들이 자신의 문화영역을 가지고 복음전하는 청춘이 많이 나서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런 분들을 위하여 코칭과 지원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번 기회에 다음세대에 좀 밟히자고 합니다.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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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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