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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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법률상식]합동총회 유령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에 없는 위원회는 활동 못해-종결된 사건에 “화해수습처리위원회”는 어불성설 제98회 총회가 황해노회 동산교회 건으로 최성용 씨가 상소한 상소 건에 대하여 “제98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2013)” p.85에 “특별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가결하다.”라고 결의하고 다시 재판하여 보고하도록 위탁하였다(제98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pp.229-230 참조). 특별재판국은 총회가 다시 재판하여 보고하라고 맡긴 최성용 씨의 상소 건을 판결하고, 제99회 총회에 보고하니 총회는 “주문(최성용 씨와 최정환 씨가 황해노회 원심재판국을 상대로 상소한 상소 건은 기각한다.)대로 받기로 가결하다(제99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p.63).”로 채용하여 종결하였다. 그런데 제99회 총회 중에 박창복 목사 외 117명이 “황해노회 소속 동산교회 건 특별재판국 불법 설치 및 결의에 대한 조사처리위원회 설치의 건”이라는 긴급동의 안을 서기에게 교부한 후 서기와 일부 총대들이 “긴급동의 안!”이라고 세 번이나 회장에게 제안하였으나 회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받아들이지 아니하였고 결국 총회가 파회됨으로 긴급동의 안은 자동 폐기되어버렸다. 그러나 총회임원회는 “잔무는 임원회에 맡기고 파회하기로”하였음을 빙자하여 이미 폐기된 긴급동의안도 잔무라고 하면서 2014.11.25일에 대전중앙교회당에서 임원회를 개최하여 여러 건의 긴급동의 안을 다루는 중에 동산교회 관련 긴급동의 안에 대하여 “박창복 목사 외 117명이 긴급 동의한 황해노회 소속 동산교회 건 특별재판국 불법 설치 및 결의에 대한 조사처리위원회 설치의 건은 이미 본 총회가 특별재판국의 판결을 채용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황해노회 동산교회 화해조정위원으로 부총회장 2인과 회계를 선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결의대로 2015.12.8일에 모임을 갖고 위원장 박무용 목사, 서기 이호영 장로, 회계 서병호 장로로 조직하고 임원회에서는 “화해 조정위원회”라 명명하여 결의하였는데 위원회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화해수습처리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둔갑하여 출석 요구서까지 발송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본 사건은 최종심인 총회가 특별재판국의 판결을 만장일치로 채용하였고, 사회법에 소송을 제기한 24건도 모두 승소하여 종결되었으니 더 이상 수습, 처리 등이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화해조정위원회”니 “화해수습처리위원회”니 하는 잠꼬대 같은 일을 꾸미려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총회임원회가 잔무를 처리하면 반드시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에 기록하는 것이 법인데 제99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2014)에는 “긴급동의안 처리”에 대한 결의 항목도 없고, 요람에 광명 동산교회 관련 “화해조정위원회”이든 “화해수습처리위원회”이든 간에 아무런 위원회도 없다. 그런데 “화해수습처리위원회”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와 같은 행태를 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또한 그 귀추가 어떻게 될지 자못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총회 결의 내용에도 없고 총회 조직에 대한 요람에도 없는데 활동은 하고 있으니 “유령 위원회의 활동”이라고 함이 적절해 보인다. 그럼 이에 관련한 최근의 역대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을 비교하여 살펴보자. 제97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2012) p.80의 “19. 조사처리”부터 p.83의 “23. 기타 가-라”까지는 정치부가 보고하지 못하고 남겨둔 채 “잔무는 임원회에 맡기기로 결의”하고 파회되었으므로 위의 정치부 보고서 PP.80-83에 기록되어 있는 잔무에 속한 그 안건을 임원회가 처리한 후에 제97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에 빠짐없이 기록하였고 p.89에는 “긴급동의안 처리” 항목을 기록하였으며 제98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2013) p.86에도 역시 “긴급동의안 처리” 항목이 기록되어 있다. 결론으로 제99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에 회의 결의 내용에 긴급동의안 항목이 기록되지 않았고 요람에도 역시 소위 3인의 “화해수습처리위원회”라는 조직도 없으며 교회법으로나 사회법으로도 완벽하게 종결된 사건이므로 수습할 일도 없고 처리할 사안도 없으며 수습이나 처리에 응해 줄 상대도 없으니 시간과 재정만 낭비하지 말고 유령 위원회의 활동을 중단하고 해산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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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성공칼럼] 나(Ego) 전쟁
    보스니아에 모스타르라는 다리가 있다. 이 지역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이슬람, 한 쪽은 가톨릭이 함께 산다. 그런데 1993년에 이웃끼리 전쟁이 벌어져서 이 다리가 로켓포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아직도 가정집의 담에는 수 백, 수천의 총알이 박혔던 흔적이 남아있다. 함께 웃고, 함께 음식을 나누던 이웃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30만 명이 죽은 것이다. 이런 전쟁이 왜 벌어졌을까? 누구 때문인가? 바로 나 즉 에고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곳에서 살았다면 나의 종교는 가톨릭 아니면 이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도 나의 옳음을 주장하면서 나와 종교가 상대방을 향해서 총구를 겨누었을 것이다. 민족과 종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말이다. 모스타르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은 내 속에서, 우리 가정에서,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전쟁은 나(Ego)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갈등과 전쟁은 나(Ego)를 없게 할 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갈등과 서운함과 싸움 속에 에고가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갈등도 나(Ego)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음으로 나(Ego)가 태어난다. 나는 아버지다. 나는 남편이다. 나는 누구다. 내가 했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옳다. 나만 옳다. 상대방이 나(Ego)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화가 나고 서운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죽일 것이다. 등등의 나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나(Ego) 때문에 나와 함께 있는 가족은 참아야 했으며 고통당해야 했다. 그들이 참지 않았으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이런 나 때문에 오랜 세월 참아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30년 된 친구들끼리 13일 동안 옛날 유고슬라비아 지역이었던 발칸지역으로 선교여행을 하고 왔다. 여행 중에 내 생각을 표현했는데 친구 한명이 내 생각을 공감하지도 않고 무시했다. 나는 불쑥 화가 났다. 나는 나를 무시한 친구가 밉고 꼴도 보기 싫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옳다. 내가 최고다, 나를 알아 달라...’ 이런 생각이 내 속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생각을 잡지 않으면 여행이고 뭐고 끝이 날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나(Ego) 때문에 본성을 잃고 있으며 상대방을 미워하며 제외시키고 있었다. 이런 에고 전쟁이 커져서 모스타르의 전쟁, 부부간의 전쟁, 종교전쟁,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에고)는 허상이다. 모든 종교는 종교보다 종교성을 드러내야 한다.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며 기쁨이며 빛이며 생명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 속에서 사랑이 나오고 빛이 나와야 종교성이 있는 것이며, 누구든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최고를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종교성을 갖고 있으면 상대방의 종교가 다르거나 나라와 민족이 다르더라도 본질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종교 때문에 갈등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종교는 있지만 종교성은 잃어버린 종교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Ego)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사랑하는 것으로 커진다. 나(Ego)라는 것은 세상의 것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Ego)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반대가 된다. 모든 생명과 힘과 능력과 부의 근원은 나(Ego)가 아니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Ego)가 근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Ego)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도 반대가 된다. 나(Ego)를 사랑하는 것은 내 생각, 내 이익, 내 권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나(Ego)가 악의 근원이며, 그 악 속에 악마가 있는 것이다. 내(Ego)가 없을 때 나는 주를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Ego)가 없기로 결정한다. 내(Ego)가 없으면 내 속에서 그 어떤 갈등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속에 전쟁이 없으면 그 어떤 전쟁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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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은혜의 말씀]이제 가라(출애굽기3:9~12)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을 쓰실 때는 반드시 메시지, 명령(order),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말씀은 모세에게 ‘이제는 가라’는 명령(order)을 주십니다. 이제 가라는 말씀이 모세에게는 80년 만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모세를 모세답게 만드는데 80년이 걸린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찼으니 애굽 땅으로 가 바로에게서 내 백성을 데리고 나와 가나안땅으로 가라는 액션(action.행동)을 명한 것입니다.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전환점이 ‘이제는 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감독하시면서 명령(order)이 떨어졌고 행동(action)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 한 사람에게 계속 집중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보게 됩니다. 시대마다 쓰실 때 닮은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창세기12장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며 가야할 바를 알지 못하지만 떠나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디메오를 부르실 때에도 마가복음10장에서 자기를 지탱해온 유일한 재산목록1호인 겉옷을 벗어버리고 난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그 들판(현장)에서 지극정성으로 양을 돌보았고 들판에서 다져진 전투적 근성이 전쟁터에서 승군 다윗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모세도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칠 때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명령(order)을 주시고 그 사람의 소박한 일터에서 큰 사역을 부탁하시고 지도자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주실 때 보험도 같이 들어 주십니다. 모세에게 이제가라는 명령을 주신 후에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있으리라’(출3:12)고 하십니다. 모세가 죽고 난 후, 여호수아를 부르실 때도 같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여호수아1:9)고 하십니다. 소명이 사명이고, 사명이 수명이며, 부르심과 부담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보증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주와 함께 하는 것이 내 보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라’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도전이 있습니다. 그 시절 최강의 민족이 포진해 있는 가나안땅에 가라고 하십니다. 현실의 한복판으로 쑥 들어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6:1)고 하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마5:13)고 하십니다. 이제는 가십시오. 행동(action)으로 옮길 때입니다. 부딪히십시오. 이것이 오늘말씀의 핵심입니다. 모세가 보디가드나 군인이나 무기가 있어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마법의 지팡이도 아닙니다. 그저 막대기 하나 들고 나갔습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최고 리더십의 시작은 하나님의 명령(order)에 순종한 것에서 부터였습니다.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 붙들고 어둠을 떨쳐버리고 일어나서 빛을 발하여 보석처럼 영롱하게 현실의 한복판으로 나가 당당한 하나님 사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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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부산월드휴먼브리지, 장대현학교 지원
    국제구호개발기구 부산월드휴먼브리지는 지난 2월 26일(목) 장대현학교에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비 지원사업인 ‘드림에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교과서 및 문제집 지원금 500만원을 전달했다.‘드림에듀 프로젝트’는 중소기업중앙회 사랑나눔재단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부산월드휴먼브리지의 저소득·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교육비 지원사업으로 지난 2월 16일(월) ‘9988 설맞이 사랑 나눔’ 전달식에서 기탁 받은 후원금으로 진행된 사업이다.장대현학교 임창호 교장은 “월드휴먼브리지의 지원금으로 한해동안 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와 문제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월드휴먼브리지와의 교류 사업을 통해 학생들이 감사를 배워가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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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부산성시화, 12번째 ‘사랑의 쌀’ 전달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안용운 목사)가 지난 2월 13일(금) 오후 2시, 홈플러스해운대점에서 제12회 ‘사랑의 쌀 나누기’를 개최했다. 사랑의 쌀을 전달하기에 앞서 박현수 목사(부산성시화운동본부 사회복지위원장)의 사회로 감사예배를 가지고, 최병석 목사(부위원장)가 기도, 안용운 목사가 ‘하나님의 구제명령’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축도했다. 이날 전달된 사랑의 쌀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실시한 캠페인을 통해 부산지역 300여개 교회와 기관의 참여로 모금된 1억원으로 구입했다. 구입한 5000포대의 쌀은 작은교회, 독거노인, 노숙자와 장애인 단체, 외국인 근로자, 선교단체 등에 전달됐다. 이날 부산성시화 관계자는 “내년에는 김해, 울산 등 영남지역의 교회에도 전달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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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마산동광교회, 지역 학생 10명 선정 ‘지역사랑 너나울카페 장학금’ 수여
    ▲ 마산동광교회 부설 너나울카페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장학금을 수여했다. 인근 지역 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 교회와 지역사회가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산동광교회(강영구 목사)는 지난 2월 25일(수) ‘지역사랑 너나울카페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다.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섬김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설립된 마산동광교회 부설 너나울카페에서는, 마산합포구청의 추천을 받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교회 인근 5개동의 학생 10명을 선정해 각 50만원씩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이날 수여식은 임성택 장로(마산동광교회)의 사회로 너나울카페 장학금의 취지 설명, 장학금 수여, 박춘우 마산합포구청장의 축사, 강영구 목사의 격려사 및 기도, 다과회로 진행됐다. 강영구 목사는 격려사에서 “이런 행사를 통해 교회와 지역사회가 소통하고 어려운 학생들이 자기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교회가 더욱 지역사회를 섬기는데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경남지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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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부기장총, 제96회 3·1절 기념예배 가져
    ▲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는 제96회 3·1절 기념예배 가졌다. 이날 독립정신을 계승해 성명서를 낭독하고, 참석자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만세삼창을 했다.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대표회장 문윤수 장로)는 지난 2월 27일(금) 오전 7시 이비스앰배서더호텔에서 제96회 3·1절 기념예배를 가졌다. 이날 예배는 이춘만 장로(차기대표회장)의 인도로 김진욱 장로(명예대표회장)가 기도, 이성구 목사(부기총 상임회장)가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성구 목사는 설교에서 “역사의 원동력은 탁월한 지도자도, 그 지도자를 키운 부모도 아니다.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간절한 기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임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3·1절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정부영 장로(공동회장)가, ‘한국교회의 부흥과 영적 대각성을 위하여’ 박성업 장로(공동회장)가, ‘부산시와 부기총의 발전을 위하여’ 서일권 장로(공동회장)가 각각 특별기도했으며, 이인건 목사(부기총 대표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2부 행사는 김항재 장로(증경회장)가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참석자들과 함께 성명서를 낭독했다. 참석자들은 성명서에서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해 우리 민족의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하에 있음을 확신하면서 위정자들은 지혜롭고 의롭게, 공평하고 정직하게 통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병수 부산시장,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이 축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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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성경인물탐구]감옥 속에서 꿈을 해석한 요셉(4)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갇힌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는데, 이는 요셉이 바로의 총리대신이 될 준비 단계였습니다. 그 곳에서 요셉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여 줌으로써 옥에서 나갈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전옥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그에게 맡긴 것은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의 결과였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이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의 범사를 형통케 하신 것처럼 옥살이 하는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사 모든 일에 형통케 하셨던 것입니다. 전옥이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는 것은 요셉에 대하여 조그마한 의심도 없이 전적으로 신뢰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옥에 갇힌 자에게 다른 죄수를 맡기는 것은 탈옥이라는 불상사에 대한 위험 부담이 따라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곧 전옥은 자신의 생명을 요셉에게 맡긴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요셉은 그 정도까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신뢰는 인간의 마음으로 갖기 어려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전옥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어 지켜 보호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셔서 형통케 하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 나이다'(시 23:3-4). 요셉이 갇혀 있던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는데, 요셉이 갇혀 있을 때에 바로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시위 대장은 요셉에게 그들을 위하여 수종을 들도록 시켰고 요셉이 그들을 수일 동안 섬겼습니다. 하루는 그들 둘 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뜻을 알 수가 없어 근심에 싸였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말하면서 자신에게 꿈을 고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먼저 요셉에게 꿈을 말하였고 그 다음에는 술 맡은 관원 장이 꿈을 말하였습니다. 요셉은 그 꿈에 대한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사흘 안에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어 바로 앞에서 술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또 떡 맡은 관원 장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사흘 안에 바로가 그의 머리를 끊고 그를 나무에 달 것이요, 새들이 그의 고기를 뜯어먹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해석은 삼 일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이와 같이 어려운 꿈 해석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지혜와 총명을 더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 장 그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자신을 옥에서 구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무런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었기에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술 맡은 관원 장을 통하여 바로에게 호소하려 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예언대로 술 맡은 관원 장은 삼 일 후에 옥에서 나가 복직되어 바로 앞에서 술 따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리고 바로에게 요셉을 위하여 고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옥에서 나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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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가정칼럼]유머에 At & T
    유머에 At&T 이론이 있습니다. A란 appropriate 즉, ‘상황, 분위기에 알맞게’다. T는 timely, ‘시간을 맞추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T는 tasteful, ‘관계, 취향을 고려하여’가 됩니다.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는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가난하게 살 것을 알았다. 부잣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오지만, 부자가 죽으면 상가가 썰렁한 법이다. 그는 자신의 사후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 우맹을 찾아가라고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과연 그대로 되었다. 손숙오의 아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우맹을 찾아간다. 우맹은 자초지종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곁에서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일 년간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행동과 말투도 흉내 내어, 왕이 우맹을 보고 손숙오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 손 숙오를 그리워한 왕은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때 우맹은 아내와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다시 왕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가 재상을 하지 마십시오. 초나라의 재상은 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손숙오 같은 분은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청렴하게 초나라를 다스려 초나라 왕을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손숙오가 죽자 그의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만한 땅도 없고 가난하여 땔나무를 져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손숙오처럼 될 바에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지어 불렀다. 노래를 다 듣고 난 왕은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이후 10대가 잘살 만큼의 재산을 내려주었다. 사마천은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진실로 말해야 할 시기를 알았다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초나라의 재상 숙오와 우맹의 이야기를 시인 원재훈은 이렇게 분석해 냈습니다. “우맹은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왕에게 한마디를 하기 위해 궁리하고 행동했다. 즉 일 년 동안 손숙오의 흉내를 내어 왕이 자신을 볼 때 손숙오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사람은 죽고 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고 난 후에 얼마나 그를 기억할 것인가? 국정에 바쁜 왕의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맹은 일 년을 기다려 왕에게 다가갔다. 이 절묘한 타임은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풍자에 뛰어나 우맹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즉 자신 아내의 입을 빌려 직언을 피하고 풍자를 하였으며, 더불어 시를 지어 불렀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을지 눈에 선하다.”완벽한 <At & T>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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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시사칼럼]신학기를 맞이하며
    신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생각하며 설레던 신학기는 옛말이 된지 오래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을 둔 어느 예비 학부모 얘기인즉슨, 극성스러운 엄마들은 영어, 한자, 피아노, 미술, 수영의 취학 전 5종 세트를 끝내고 입학시킨다는 겁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 겨우 내내 학원에 다니며 중학교 수학 전 과정을 배우느라 씨름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습니다. 하기야 기상천외한 ‘선행학습금지법’이 또 어떤 나라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 끝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와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웜홀(wormhole)과 블랙홀(blackhole)과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킵 손(Kip Thorne, 75) 명예교수가 과학 자문을 맡았는데, 그는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의 실제 주인공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74) 박사에 버금가는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각색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그레이엄 무어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stay weird, stay different)으로 더 화제가 되었던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이라는 영화는 2차 대전의 숨은 영웅이자 천재적인 괴짜 과학자였던 알란 튜링(Alan Turing, 1912-1954)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뜨거운 교육 열기나 또 실제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고려하면 문자 그대로 한 편의 영화 주인공 같은 이런 인물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배출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하버드 이공계 학부를 다니는 학생들이 한국 학교를 방문해서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푸는 수준의 수학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쩔쩔 매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노벨상쯤은 우습게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는 전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여기에 한국 교육의 아이러니와 미스테리가 존재합니다. ‘인구론’이란 신종어가 있습니다. ‘인문계 구직자의 90%가 논다’를 줄인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취업에 그리 유리하지 않은 학과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전국 초중고교생 18만 명을 대상으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실시한 2014 학교진로교육 실태 조사에서는 중고교생 10명 가운데 3명이 장래 희망하는 직업이 없다고 답했으며 그나마 응답한 학생 중 절대 다수가 교사나 공무원을 1순위로 꼽았습니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과학고·영재고 진학 현황’을 보면 조사 대상 19개교 졸업생 전체의 17%가 의대로 진학했는데, 결국 이 수치는 최상위층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현실을 방증합니다. 교사나 의사는 훌륭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적성이나 비전이 아니라 안정성과 수익성만이 학생과 부모와 사회의 일률적인 잣대가 되어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어디서부터인가 잘못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몇 개의 학원을 전전하며 밤 10시, 11시가 되어서야 귀가해서 또 과제하고 공부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드는 현실은 인권유린수준입니다. 마땅히 창의적이어야 할 글쓰기까지 기계처럼 주입하고 제작하는 현실 속에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적 사고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교육에 관한 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합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도 좋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대다수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취학과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그리스도인 부모들이시여, 더 이상 돈과 물질과 세속적 가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배하도록 좌시하고 동조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창조적 마인드와 꿈을 발견하도록 길을 열어줍시다. “의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자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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