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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부총회장 후보 부산·경남지역 후보 소견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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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월) 부산 소정교회에서 열린 예장통합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 부산ㆍ경남지역 소견발표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 제101회 부총회장 후보 부산·경남지역 소견발표회가 지난 8월 29일(월) 오후 1시 소정교회(채규웅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후보 소견발표회는 기호순번에 따라 목사부총회장 후보 정헌교 목사(기호 1번), 최기학 목사(기호 2번), 장로부총회장 후보 손학중 장로 순으로 진행됐다.
정헌교 목사는 “각종 이권에 개입, 금권선거, 지역갈등 조장 등 총회를 망치는 이런 악의 고리를 끊겠다”고 강조하면서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부총회장이 되면 3가지를 힘쓰겠다면서 “총회의 재판을 멈추고, 연금재단의 자산을 3천 700억 시대에서 5000억의 시대로 진입하게 하겠다. 그리고 교회 연합 사업의 주도권을 찾아와 16개 교회 연합사업의 중심에 서게 하겠다”고 말했다.
최기학 목사는 “교회를 다시 세우고 목회를 다시 일으킬 희망이 필요하다”면서 “부총회장이 되면 정치적인 총회가 아니라 목회적인 총회로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이 살아있는 총회로 만들어 가겠다. 또 다음세대와 3040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설 자리를 만들고, 목회자들의 노후 생존권이 달려있는 연금을 총회가 책임을 지고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로부총회장 후보 손학중 장로는 “101회기 총회장과 협력해서 총회가 지향하는 방침에 따라 총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겠다”면서 장로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손 장로는 “연금재단, 각종 소송문제, 주일학교 문제 등 장로부총회장으로서 지혜롭게 풀어가고, 더 나은 동반성장정책으로 지원대상교회, 농어촌교회를 적극 돌보겠다. 또 이단 등의 문제에 대해 연합기관과 협력해서 교회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소견발표회에 앞서 가진 예배는 총회 선거관리위원 서상원 목사의 인도로 이종윤 목사(부산진교회)가 ‘산돌같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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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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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교회 8년째 ‘조건 없는 이웃사랑’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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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교회가 8년째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건없는 무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부산 동래구 안락교회(담임목사 윤동일)는 9월 10일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해 무료로 생필품 등을 제공하는 ‘제8회 사랑나눔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안락교회 주차장과 유치부실, 유년부실, 식당 등에서 열리는 축제에 동래구 안락1·2동, 명장1·2동의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장애우 등 주민 2000여 가정이 초청된다.
교회는 초청 가정당 1만5000원 상당의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쿠폰으로는 라면, 설탕, 식용유, 계란, 김, 화장지, 간장, 참기름, 밀가루, 고추장, 세제류 등 20여종의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김밥, 순대, 떡볶이, 어묵, 국수, 감주 등 푸짐한 먹거리도 저렴하게 제공된다.
또 사물놀이와 마술, 색소폰·기타 연주, 노래자랑 등 풍성한 문화공연과 볼거리도 제공된다. 이와 함께 한방·내과·정형외과·정신과 등 무료진료와 구두닦이, 이·미용 등 무료봉사가 펼쳐진다. 참석자들에게는 행운권 추첨을 통해 푸짐한 경품도 제공된다. 교회는 이날 참석 전원에게 점심으로 국밥을 무료로 제공한다.
남선교회와 여전도회, 청년회 등 3000여명의 전 교인들이 동참하는 이번 축제는 축제 준비위원회(위원장 박재학 장로) 산하 기획경영·구매·판매·주차·진료·먹거리·시설·안내·주방·이미용·데코·차량운송팀 등 17개 부서별로 준비를 마쳤다.
축제부장 허갑수 집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전 교인들이 정성껏 준비했다”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쁨을 주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지난 2009년부터 해마다 3000여만 원의 예산으로 2000여명의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해 사랑나눔축제를 열고 있다.
하광진 부목사는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을 아무 조건 없이 함께 나누고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축제가 부산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문의 051-521-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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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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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어머니금식기도회 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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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뜨겁게 기도
금년 8회째를 맞이하는 어머니금식기도회 발대식이 8월25일(목) 부전교회에서 개최됐다. 오전 10시 마마클럽 기도회를 시작으로 11시부터 본격적인 발대식을 거행했다. 발대식 선언과 부산지역 16개 구군 기수단 입장으로 문을 연 발대식은 참석한 어머니들이 마마클럽의 정체성을 말씀하는 주제성구를 함께 읽으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후 부산성시화여성기도국장 조금엽 권사가 나와 ‘제8회 어머니금식기도회 비전선포와 마마클럽 사명선언을 낭독했다. 조 권사는 6개의 사명선언문(1. 나를 주인삼은 우리 죄를 회개합니다. 2. 내가 한국교회라는 자각과 정체성이 회복되게 하소서. 3.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4. 성령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소서. 5. 우리의 아들, 딸들을 살려주시고, 믿음의 세대로 일어나게 하소서. 6. 희생과 수고와 헌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 통일을 준비하며 열방을 품는 교회로 서게 하소서)을 통해 “우리 어머니들이 먼저 기도하며 한국교회 회복을 부르짖자”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발대식에서는 약 600여명의 어머니들이 참석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기도하듯이 교회와 나라, 열방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강동현 목사는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기에는 어머니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다. 다시 뜨거운 기도의 열정이 회복되어 부산에서부터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축사로 나선 강흥식 장로(극동방송 부산지사장)도 “여기처럼 뜨겁게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머니금식기도회는 이날 발대식을 시작으로 9월8일 수영교회에서 1차기도회를 개최하고, 9월22일 부전교회에서 2차 기도회, 그리고 10월6일 수영로교회에서 제8회 어머니금식기도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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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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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일신기독병원 기공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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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수) 정관일신기독병원 건축현장에서 기공예배를 가졌다.
(재)한·호기독교선교회(이사장 인명진 목사)가 지난 24일(수) 오후 2시 정관일신기독병원 건축현장(부산시 정관면 매학리 720-7 소재)에서 정관일신기독병원 기공예배를 가졌다. 이날 기념예배에는 인명진 목사를 비롯한 법인 관계자와 법인 산하 병원 관계자, 김쌍우 시의원과 기장군의회 김대군 의장 등이 참석했다.
▲ 이날 유화준 목사가 '장막터를 넓혀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홍성신 목사의 사회로 가진 예배는 부이사장 홍순모 장로의 기도 후 이사 유화준 목사가 ‘장막터를 넓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유 목사는 “영리와 명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하고 선교의 정신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 (재)한ㆍ호기독교선교회 이사장 인명진 목사는 인사말을 통해 "내년 말 개원 예정인 정관일신기독병원이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기공식은 김범한 사무국장의 사회로 이상붕 목사(창대교회)와 김쌍수 시의원, 김대군 의원의 축사, 인명진 이사장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인명진 목사는 “일신기독병원은 60여 년간 원칙대로 진료해왔다. 정관에서도 원칙대로 하겠다”면서 “60여년의 전통과 최신 시설을 갖춘 명품병원으로 걱정 없이 출산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관일신기독병원은 대지면적 1.537m²(465평)에 지하 3층, 지상 10층, 연면적 15.372m²(4,650평) 건물로 2017년 건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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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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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찬송가 선구자 김이호 목사 특별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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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 특별전시실
동래중앙교회(정성훈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관장 안대영 장로)에서 고 김이호 목사의 특별 기증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김이호 목사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찬송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새찬송가와 21세기 찬송가 편찬 참여와 감수위원장을 역임했던 한국찬송가 선구자로 인정 받고 있는 인물이다.
▲ 지난 8일, 특별전시회<하나님의 위대한 유산-하늘의 말씀, 땅의 찬미>가 개막했다.
▲ 지난 8일 개막식 이후에 가진 심포지엄 '한국교회 찬송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번 전시회는 고 김이호 목사 가족들의 결단으로 김 목사의 고향(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가능하게 됐다. 김 목사는 1947년부터 기독교에 관한 수많은 유물들과 자료들을 수집해 오면서 진귀한 국내외 성경번역본을 비롯해 찬송학 도서와 자료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었다. 김 목사 스스로도 기독교 박물관 건립을 꿈꾸어 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고인이 된 후 그의 가족들의 의해 고향인 부산에서 자신의 소장 자료들이 빛을 보게 됐다.
고 김이호 목사는 1929년 11월 부산시 기장군 죽성리에서 태어나 1953년 서울음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새 찬송가 편집과 21세기 찬송가 가사 감수위원장을 역임했고, 헨델의 메시야를 최초 완역했고, 드보아 십자가상의 칠언을 번역하기도 했다. 1970년 뉴욕장로교회를 개척하고 1978년까지 시무했으며, 이후 뉴욕삼일교회를 개척하고 26년간 목회하다가 지난 2004년 원로 목사를 추대되어 은퇴했다. 이후에도 찬송가연구 활동을 펼쳐오다가 2014년 3월 8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찬송가 51장 ‘주님 주신 거룩한 날’을 직접 작사했다. 이번 특별전시회는 동래중앙교회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에서 8월8일부터 10월30일까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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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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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40주년 ‘늘노래’ 이제 다음세대 디딤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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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전업 음악전도 보컬 그룹으로 시작한 늘노래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문화전도를 위해 헌신해온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장 유의신 목사(믿음찬교회)에게 지난 40년과 문화전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Q.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이하 늘노래) 창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늘노래 역사와 현재의 사역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는 사실 음악으로 전도하는 순회전도팀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사역입니다. 음악처럼 다양한 문화장르로 전도해야 한다는 연구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늘노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음악전도 사역은 1976년 11월이었습니다. 사실 그전에 제가 1973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이사벨여고(그 당시) 교사로 복귀하면서 평신도 청년운동 ‘목견들’(1974)이라는 제자훈련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1976년 이사벨복음학원에서 무궁화관을 개관하면서 관장직을 맡았는데, 그것이 또 다른 사역의 시작이 됐습니다. 바로 ‘늘노래음악전도단’이었습니다. 제가 1971년 도미하기 전에 평신도 청소년사역자로 양정복음교회(현 양정중앙교회)에 섬길 때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노문환 형제를 만나면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다녀오고 노문환 형제는 군복무를 한 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재회하면서 제가 인도하고 있는 목견운동에 가담하게 됐고, 자연히 같이 일하던 동료 이광무 형제와 서영식 형제를 인도했습니다. 말씀 가운데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으로 전도하는 전업팀(full time)으로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창단된 후 1978년 동래중앙교회(당시 신동혁 목사)와 동광교회(당시 김정광 목사) 그리고 부산진시장선교회 중심으로 부산노래선교회라는 후원단체를 창립하면서 첫 단원들의 헌신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늘노래’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고 후원회와 선교단, 이원화된 조직으로 이어가면서 보내는 자들과 가는 자들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단체가 됐습니다. 1987년 5월에는 공식적으로 한 달 동안 69회의 집회를 기록하게 될 정도로 사역이 왕성해졌습니다.
1995년 이사장 신동혁 목사님의 소천과 갑작스런 노문환 단장의 사임 후 고광삼 단장 중심으로 늘노래 I, 늘노래 II, 김영국 단장(2000-2003)팀 그리고 늘노래뉴젠(NewGen) 김일영 단장(2004-2007)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노래의 정신과 그 사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후원하시는 손길들이 있어 기도하는 중에 음악으로 전도해온 노하우를 나누고 2008년 다양한 문화장르로 전도하는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4차에 걸쳐 격월로 문화전도 아카데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1986년부터 정기간행물로 등록해 월보로 발행하는 소식지 ‘작은터 큰나라’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Q. 기독교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에서 문화사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A. 먼저 불모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산은 제법 괜찮은 문화 도시입니다. 사실 한국전쟁으로 팔도의 문화와 일본 문화가 비빔밥처럼 한데 어우러져서 지금의 부산문화가 되었습니다. 어느 도시도 가지지 못하는 특유의 문화입니다. 가장 확실한 예로 ‘늘노래’가 여기서 탄생한 것입니다.
기독문화라는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보수적인 분위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노래의 음악형태가 기존 교회문화와 일부 충돌이 있었기는 하지만 늘노래 음악은 교회의 예배음악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전도를 위한 음악을 하는 팀이기에 차별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역을 거절 당하기도하고 교회의 후원과 지지를 받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노래 사역은 한국교회를 위해 사심 없이 사역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체 부동산이나 동산을 가지거나 단체 자체를 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단원들이 흩어질 때입니다. 평생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자고 뭉쳤지만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개인 사역자로 흩어질 때는 마음으로 많이 아플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흩어져 더 큰 사역들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흩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문화계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문화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또 대안을 제시해주신다면.
A. 문화이야기만 나오면 용어부터 신경이 쓰입니다. 기독문화냐 기독교문화냐. 쉽게 말하면 기독인 삶으로 드러내는 문화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산하는 문화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문화라는 용어로 통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삶이 종교라는 틀에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라고 하면 예수님을 교주로 하는 종교 중의 하나로 전락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와 경쟁하며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비교하며 우월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화라고 하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가 쉬워집니다. 말하자면 경제에 함몰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현실가운데 전반적인 사회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 현상 속에서 함몰되기 보다는 초연하게 문화에 기름부음을 받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하위개념입니다. 자본을 포기하고도 얼마든지 기독문화는 왕성할 수 있습니다. 기독문화는 자본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지배 받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포함하여 기독문화는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택하는 순발력을 가지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A. 기독문화의 뿌리는 기독인이라고 할 때 기독인이 속한 지역교회가 베이스캠프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역교회에서 양육하고 세운 기독문화사역자들을 세상에 파송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해외선교사들을 지원하듯이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 보면 문화사역자들이 교회 밖에서 자생한 것 같이 교회와의 연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독문화는 교회에서 만들어져서 세상에 내보내져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가는 유기적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를 통해 교회는 세상을 만나고 세상은 문화를 통해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문화를 교회가 세워가야 하며 기독문화사역자는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긴밀한 생명력이 살아있으면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생(共生)관계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Q. 최근 청소년 사역 단체 대표의 성 스캔들 등 한국교회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일 발생하면서, 비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기독교문화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문화사역이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학원복음화에 앞장서신 다음세대 사역자로서 지금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기독문화도 사람이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최근 벌어지는 일말의 사건들은 이미 있어 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된다든지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바뀌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그대로 있는데 직무와 사명이 달라지는 것뿐이지요. 그러니까 본인도 그 점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높은 기준으로 그들을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사역을 하는가입니다. 그동안 기독문화는 번영신학과 맞물려서 유명해지고 커지고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면 세칭 성공이라고 하는 잘못된 의식과 동기에 함몰돼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젊은이들은 예수님처럼 죽는 사람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공하면 그 뒤를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 시대(마지막 때)에 더 험한 일을 겪게 되고 희귀하고 훼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가는 넒은 길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들 보다는 아무도 안 가려는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 결국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게 되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야 하는 원리는 지금도 유효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지상주의로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는 자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대로 예수 믿는 자라면 제대로 된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역자로 마지막에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Q. 창립 40주년을 맞아 8월 1일부터 전도노래를 공모하고 있습니다. 전도노래 공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최근 기독문화에서 사용하는 언어들 가운데 잘못 사용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찬양사역이라는 말입니다. 찬양은 찬양이지 사역은 아닙니다. 또 하나는 워십콘서트(worship concert)입니다. 예배를 공연하다니요. 웃기는 일입니다.
한 가지만 더 부언 한다면 예배음악과 생활음악과를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찬송가 공회에서 출판한 찬송가에도 100% 예배음악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찬송가에 있는 곡은 예배에서 사용하고 그 외의 노래는 안 된다고 하는 분도 있더군요.
사실 늘노래는 생활음악(전도노래)을 해 왔습니다. 어떤 교회음악지도자는 우리나라 교회음악을 늘노래가 많이 망가뜨렸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교회가 분별을 못해서이지 늘노래 책임은 아니지요. 다시 말하지만 늘노래음악은 전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편곡하고 연주하고 프로그램과 설교를 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음악전도가 다음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애절함이 있어서 이런 공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전도노래 공모 외 창립 40주년 기념행사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작년부터 부쩍 늘노래 노래에 관심을 보이며 그 당시 감동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인터넷과 SNS 등 연결되는 길이 많아져서 더 그런가봅니다. 자연히 늘노래 곡을 다시 듣고 싶어 하고 음원과 악보를 구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스스로 늘노래 키즈(Kids)라거나 늘노래 왕팬이라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작년에 이미 11월 7일(월)을 정하고 늘노래가 시작됐던 무궁화관에 예약했습니다.
이날 창단 멤버와 옛 단원들이 홈커밍으로 모이고 그때 그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선호하는 곡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날 홈커밍데이에서는 탑5곡들을 부르고 관객과 단원들이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Q. 늘노래 향후 사역과 목사님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늘노래가 음악을 통해 전도에 진력해왔기 때문에 다음세대에도 계속해서 음악전도팀이 전국에서 새롭게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제는 교회가 전도팀을 만들어서 파송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문화장르에서 기독문화에 헌신하는 분들이 자신의 문화영역을 가지고 복음전하는 청춘이 많이 나서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런 분들을 위하여 코칭과 지원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번 기회에 다음세대에 좀 밟히자고 합니다.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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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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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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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비 영화와 좀비의 실체
좀비가 출몰하고 있다. 마니아층을 넘어 국내외 게임, 소설, 영화의 인기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공포영화나 문학의 하위 장르 주인공으로 여겨지던 좀비가 극장의 은막과 TV 채널, 서점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영화 <부산행>(2016)을 통해 이제 서울과 대전을 점령하고 부산을 향한다.
좀비 영화 장르를 처음 정립한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데뷔작이자 ‘시체 3부작’의 첫 영화 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 나오는 좀비들은 혐오감을 주는 외형과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물어뜯어먹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으로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비록 최근의 좀비처럼(2013년 작 <월드 워Z>와 <부산행>) 속도감은 없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이 흑백 영화의 좀비는 마냥 허구 속의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었다. 미국은 외부적으로 소련과 냉전 중이었고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는 등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흑인 민권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전쟁 반대 시위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따라서 좀비들은 공산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를 습격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좀비 영화는 영화 내적으로는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현실을 투영하고 비판하는 고도의 우화장치들을 보여줌으로 호러물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1)
로메로 감독의 두 번째 시체 3부작인 <시체들의 새벽>(1979)은 좀비 영화의 전설이다. 2)
첫 번째 흑백 영화와는 달리 두 번째 영화에서는 총천연색과 환한 조명을 통하여 도심 한가운데 대형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은 흡사 백화점을 쇼핑하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현대 소비 자본주의 체제와 중산층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읽을 수 있는 역작이다. 좀비를 통해 점점 더 난폭해지는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공포스러운 속성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3번째 시체 3부작인 <시체들의 낮>(1985)은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렬하고 복잡한 휴먼 드라마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캐리커처와 욕설, 살육만이 남았지만(가장 고어씬이 강한 작품), 좀비들을 학습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가령, ‘정중한 행동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라는). 사실 좀비는 주요 장기들을 다 제거했는데도(위가 없는데도) 먹을 것을 갈망한다. 따라서 문제는 뇌와 원초적인 본능인 것이다. 아무튼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가 잔혹한 취향의 공포 장르였다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28일 후>(2002), <월드워 Z> 등 최근 좀비 영화는 인류의 종말과 연결되는 바이러스 재앙 영화로 진화해 버렸다. 3)
한국의 좀비 영화라면 2010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오영두 감독 등)를 뺄 수 없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 전역에서 발생하자 좀비 색출을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정부와 ‘감염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서민들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부산행>처럼 좀비를 폭력의 대상으로, 마동석의 ‘슈퍼파워~ㄹ!’로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4)). 따라서 기존 헐리우드의 좀비처럼 무참히 찢겨지고,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긴 건 달라도 이웃사촌인 이웃집 좀비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맘몬숭배 시대에 대형정당(새누리, 더민주), 대형마트, 대형교회, 대형기업(재벌)이라는 골리앗이 존재하는 이때 좀비는 허구의 괴물이 아닌 실체를 가진 작은정당, 구멍가게, 미자립교회, 중소기업의 이름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은 ‘호모 사케르’이다.
2. 자본주의 좀비서사 : 호모 사케르
헤겔과 하이데거, 데리다로 부터 언어와 존재에 관해, 그리고 벤야민과 슈미트를 통해 역사와 법, 정치 신학을 수용하고, 아렌트와 푸코를 통해 전체주의와 생명정치를 사유한 조르지오 아감벤(G. Agamben)은 유기(遺棄)된 채로 존재를 드러내는 인간, 곧 호모 사케르(Homo Sacer)를 이야기 한다. 호모 사케르는 말 그대로의 성스런 인간(sacred man)이 아닌, 벌거벗겨진 생명(bare life)으로 살해는 가능해도 희생제로는 드릴 수 없는 것, 가령 소, 양과 달리 지렁이와 벌레 등을 뜻한다. 죽여버릴 수는 있어도 희생으로 쓸 수 없는 것.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벌거벗은 생명인 것이다. 물론 아감벤은 이 용어를 무젤만(Muselmann, 무슬림)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가령 용산에서 불에 타 죽은 존재들로부터 시작하여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아이들, 지하철 역 안의 노숙자들, 취업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 재래시장 상인들, 지체 장애우 등으로 확장된다. 자본주의가 창출한 좀비들이며, 예수께서 친구로 부르며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생명의 동지들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서양 정치의 근본적인 대당 범주는 ‘동지-적’(칼 슈미트의 구분처럼)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존재’, ‘조에(zoe)-비오스(bios) 5),‘배제-포함’이라는 범주쌍이다. 따라서 서양 정치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에게서 벌거벗은 생명을 분리해 내며, 그것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동시에 배제함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인간이 좀비를 배제하듯 자본주의가 창출한 좀비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은 대형 골리앗들(대형정당, 대형마트, 대형교회와 대형기업)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그들에게 좀비는 배제하고 제거해야 될 대상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가 노동자 계급출신으로 묘사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닮았기 때문이다.
3. 사라지는 매개자
영화 <이웃집 좀비>는 2010년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초토화된 서울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좀비 감염자를 찾아가 제거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감염될 위험도 무릅쓰고, 가족이었던 좀비들을 숨겨주고, 먹여주며, 오직 함께 살아남기 위해 온갖 지혜를 모은다. 가령 두 번째 에피소드 인 ‘도망가자’에서는 좀비가 되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을 보여주고 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자는 여자가 떠나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다. 좀비가 되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안타까움과 차라리 그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고결한 사랑을 보여준다. “Love Conquers All”
세 번째 에피소드인 ‘뼈를 깎는 사랑’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좀비가 되자 신고하지 않고 집에 가두어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여(특히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을 보라) 어머니의 생명을 부지하는 딸의 사랑을 보여준다. 피를 먹어야 하는 좀비가 되었지만, 딸에게는 그 좀비는 어머니였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이웃집 좀비>에서 인간들에게 좀비는 제거 대상이기 전에 사랑을 하고, 밥을 주고, 인정도 베풀어야 할 애인이며, 엄마이고, 이웃사촌이었다. 이웃집 좀비는 그렇게 탄생된다. 생긴 건 달라도 이웃사촌인 것이다.
레닌과 헤겔을 부활시키고 싶은 슬라보에 지젝(S. Zizek)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에서 헤겔의 도움을 받아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개념을 현실 분석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것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퇴장하는 개념을 뜻하는데, 지젝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때의 자코뱅이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코뱅은 구체제(Ancien Regime)를 부수어 새 체제의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산행>의 석우(공유 분)와 상화(마동석 분)가 그렇지 않은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주인공 벤을 죽임으로 정치적 현실과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었다면, <부산행>은 석우와 상화의 사라지는 매개 역할을 통해 모성과 순수성이라는 한국적 감성으로 이끌며 관객 천만을 (불행하게도) 돌파한다. 예수의 죽음 역시 그의 부활을 기리는 이들에게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성령의 등장을 이끄는 매개자였다. 대형들이 판치는 세상에 교회가, 교단 총회가, 교계의 어른들이, 소금이 짠맛을 음식에 남겨주고 사라지듯, 아니 상화가 그렇게 좀비가 되어가듯, 이웃집 좀비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3)”
----------------------------------------------------------------------- (각주)
1) 가령,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리더십이 있는 데다 잘 생기까지 한 주인공 벤(드웨인 존스 분)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안도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민병대원들에게 사살된다. 그들은 벤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벤을 좀비로 간주하여 사살한다. 왜냐하면 벤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아이와 임산부를 살려줌으로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현실을 순수성과 모성으로 봉합한다.
2)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4년 작 <새벽의 저주>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이며, 같은 해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도 이 작품의 오마주 영화이다.
3) 반면 좀비 영화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를 담아낸 영화로 1993년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리빙 데드 3>가 있다. 공포와 멜로 장르를 결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여성 좀비와 인간 남성의 사랑을 다룬 영화로 고어 영화의 잔혹함에 슬픈 로맨스를 결합하였다. 잔혹하고 노골적인 고어 취향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 대신 컬트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웜 바디스>(2012)가 있다.
4) <부산행>이 재미있는 3가지 이유에 관해 김세윤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첫째 마동석, 둘째 기차, 셋째 우리가 부산행 KTX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마동석은 관객의 한 줄 평, “<부산행>은 좀비가 마동석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가는 영화”라는 말처럼 ‘정의로운 근육’이었다.
5) 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생명을 뜻한다. 곧 생체활동을 통해 발현되는 생명이며 비오스는 한 사회 내에서 자신이 가진 정치적인 위치 혹은 태도를 통해 발현되는 생명을 말한다. 사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생명은 비오스로서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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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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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1994년 그리고 2016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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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월 10일 경북 경주가 38.2도, 다음 날인 11일 영천이 39도, 그리고 12일 경산이 40.3도, 문자 그대로 폭염(暴炎)으로 비공식 국내 최고 기온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이렇게 덥던 때가 또 있었나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1994년 여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2016년 여름과 1994년 여름은 마치 데자뷰(dejavu) 같다고들 합니다. 당시(1994) 기록에 따르면 폭염 일수는 29일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무려 35일 동안 열대야 현상이 이어졌습니다. 뜨거운 여름은 모든 것을 삼킵니다. 무더위 속에 사고 작용도 정지되고 일상적인 행동도 중단되고 정치도 사회도 모든 영역이 이글거리는 폭염 속으로 사라진 듯합니다. 불쾌지수가 증가하고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고 평범한 사람들조차 충동 조절에 애로를 겪게 됩니다. 고온으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면서 뇌와 심장으로 충분히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뇌경색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혈관계 질환이 갑작스레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여름 끝 후폭풍이 더 무서운 이유입니다. 1994년 전국적으로 무더위 관련해서 3,384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2016년 8월 14일 현재도 응급실로 직행한 무더위 환자가 벌써 1,500명이 넘었다고들 합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일 즈음 때마침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보다 훨씬 더 국민들의 가슴을 오싹하게 했던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9월 21일 세칭 ‘지존파’ 일당이 붙잡힌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뜨겁기만 했던 1994년의 여름을 분노와 적개심과 살의로 더욱 벌겋게 달구었습니다. 10월 21일에는 성수대교 한 가운데 부분 약 50m가 붕괴되면서 출근길 학생들과 시민들 32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0월 24일에는 충주호 유람선에서 화재가 일어나 3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유달리 뜨거웠던 1994년의 무더위는 그렇게 10월까지도 여파(餘波)를 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부디 무성한 녹음과 고개 숙인 알곡과 가지를 휘어지도록 달릴 열매에만 폭염의 흔적이 남아주기를 기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더위는 서민들과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입니다. 1994년 여름에는 가정집 옥상이나 강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디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가정마다 에어컨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2016년 현재에도 쪽방촌 독거노인들, 고시원이나 옥탑방에서 불볕더위를 그대로 안고 자는 청춘들, 요양원이나 병상에서 외롭게 화마(火魔)와 싸우고 있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누진세와 전기료 폭탄 때문에 마음대로 냉방장치를 쓸 수가 없어 화가 나는 서민들도 많겠습니다만, 그럴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을 여름은 폭염 속에 그대로 가두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인생의 연약한 상태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난과 고통입니다. 각기 해당되는 고대 헬라어 페네스(penes)와 포노스(ponos)는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들이었습니다.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페네스)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 9:9; 시 11:9).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포노스)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더울 때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의 은혜가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무더위가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임하기를, 교회는 주님의 서늘한 옷자락이 되어 폭염에 삼켜진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잠 못 드는 뜨거운 한여름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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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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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 부설 전문인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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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문인선교훈련원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A. 전문인선교훈련원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해 전방개척선교에 적합한 전문인선교사의 동원을 목적으로 헌신된 일꾼을 세워주고 훈련하여 선교에 적합하고 유용한 선교사 및 선교지도자로 양성하는 기관으로 세워졌습니다. 2003년 당시 고신대총장 정현기 박사(세계로병원장)와 이환봉 교수(선교대학원원장)과 김한중 선교사(당시 선교대학원초빙교수, 전KPM본부장) 3인이 여러 차례 협의하여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 부설 전문인선교훈련학교로 시작해 2003년 3월에 1기생 26명으로 개학했습니다. 부울경 지역의 유일한 초교파 전문인선교훈련기관입니다. 동문들의 열정으로 각 교회에서 시니어중심 전문인선교동원의 중추역할을 감당해오고 있습니다. 장소도 처음에는 지구촌고등학교 건물 4층을 3년간 빌렸습니다. 당시 부울경과 경북지역에서 야간에 오기 편리한 장소로, 또 초교파적으로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한 끝에 하게 됐습니다. 이환봉 교수님의 노력이 컸습니다. 이후 서면교회, 나드림국제학교 등에서 훈련을 해오다 8기부터는 거제교회 교육관으로 옮겨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설립이후 22기까지 한 학기 평균 23명의 학생으로, 총 638명의 수료자를 배출했습니다. 그중 18개국에 52명이 이미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되어 현지에서 사역을 마쳤거나 현재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케어하기 위해 ‘지구촌전문인선교회’(GPM: 회장 이복수, 본부장 박재봉)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6기부터 명칭을 고신대 선교목회대학원 부설 전문인선교훈련원으로 변경하면서 수료식을 고신대 졸업식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선교훈련원의 재정이사, 실행이사, 동원이사들이 운영제반에 관해 사명감으로 임해주고 있습니다.
Q. 훈련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A. 본원의 훈련과정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해 전방개척선교에 적합한 전문인 직업선교사로 세우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성경과 신학, 선교이론과 실제, 현장사역경험 이 3가지 방향으로 △선교일반, 성경과 신학과목 △전문인선교와 타문화권선교론 △성숙한 인격과 삶을 위한 자기개발 훈련 △현지 사역 경험 (선교지 현장 방문 △선교 우수 교회 탐방 등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한 한기 6개월 과정으로 13주간 토요일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거제교회 교육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졸업생과 훈련생의 현황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부산에서는 22기까지 524명이 수료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YKPTI)에서는 6기까지 114명으로 총 63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18개국에 52명이 이미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됐습니다.
Q. 이번에 훈련원장으로 새로 임명되신 김영산 선교사님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부산북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하나님 뜻이 계시어 1996년 고신총회선교부 소속 선교사로 북경으로 파송됐습니다. 그곳에서 가정교회지도자훈련을 중심으로 사역해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고신총회 선교부 훈련원장으로 섬기다 고신대학교 선교목회대학원 교수 선교사로 활동하게 됐고, 2016년 2학기부터 전문인선교훈련원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커리큘럼이 강의중심의 기초선교훈련에 한정되어 있어 훈련요소가 강화되고 차세대 전문인선교사양육을 위해 중급과정의 훈련커리큘럼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김영산 원장이 시대에 적합한 훈련과정을 잘 개발해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이번 가을 23기 훈련생을 모집하는데, 앞으로 훈련원의 일정과 계획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9월 24일 김철봉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개강예배를 시작으로 13주간 훈련과 영성을 강조하는 강의를 진행합니다. 김영산, 남후수, 이상규, 이은수, 최인기, 정규재, 이신철, 김동완, 전광식 등 훌륭한 분들이 강사로 나섭니다. 우수리(연해주) 해외선교훈련과 국내 교회 및 외국인선교단체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이번 23기는 10월 1일까지 등록을 마감합니다. 전문인선교훈련원의 인터넷카페(cafe.daum.net/KSTMF, www.전문인선교.kr)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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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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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회심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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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군은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매주일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했고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러나 귀찮다는 이유로 질문은 하지 않았다. C군이 고등학생이 될 때 가족과 함께 집근처 교회로 옮기게 됐다. C군과 같은 또래가 한 명도 없어 교회는 C군에게 너무 지루한 곳이 됐고 C군은 점점 신앙과는 멀어져 갔다. 대학생이 된 C군은 길거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다가와 영화제 관련 설문조사를 요청했다. C군은 망설이다 설문조사하는 사람이 안쓰러워 전화번호를 적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하면서 C군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었다. C군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몇 번의 상담 끝에 예전에 귀찮아서 질문하지 않았던 신앙의 궁금증을 이야기했고, 그 사람은 그것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C군은 신천지인지 모른 채 복음방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C군의 궁금증이었던 ‘나는 누구인가?’, ‘신은 나를 왜 태어나게 했는가?’, ‘신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풀어주었고, 성경 속 예수님이 검을 주어 오셨다는 내용과 노아가 실존 했는가 등의 내용을 해결해 주었다. C군은 체계적으로 성경을 배우기 위해 센터에 들어가 수료했다. 군대를 연기하면서 신천지에 들어갔다. C군의 신천지 삶은 막힘이 없었다. 매일매일 노방전도을 나갔고, 신천지의 경호팀으로도 뽑혀 이만희 교주 또는 신천지 행사에 오는 외국인들을 공항에서 경호했다. 3일 동안 3시간 밖에 잠을 못 잤지만 제사장의 반열에 한 발 더 다가선 것 같아 행복하기만 했다. 그리고 동생까지 신천지로 전도를 했고,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전도하기에 나섰다. 우연만남, 꿈 모략, 억지 눈물작전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C군과 동생은 오히려 부모님께 신천지라는 것을 들키게 됐다. 매일 부모님과 성경을 가지고 논쟁했다. C군은 ‘살아야 한다. 내가 신천지를 나가면 부모님도 성령 훼방 죄로 지옥 간다’는 생각에 신천지의 셀 수 없는 많은 교육과 10번이 넘는 총회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계속되면서 C군은 점점 독해졌다. 최근 이단상담교육의 패턴, 인신공격, 교리 반증 등을 교육받았고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C군의 부모님이 “상담을 듣고도 신천지로 돌아가면 말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곡한 부탁에 C군은 아버지 부탁대로 상담을 듣기로 하고, 이기고 신천지로 돌아가서 멋지게 간증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100번 이상 기도하며 이기겠다고 하니 힘이 막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첫 상담에서 C군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맞네... 왜지... 신천지 주장이 더 억지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신천지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C군은 2년 반 만에 신천지에서 내려오는 지시나 교육내용이 아닌 스스로 생각을 했다. ‘이 교육을 동생도 꼭 듣도록 해야겠다.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 C군은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용해 저렇게 사기를 치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제 C군의 기도는 동생을 비롯해 신천지에 빠진 형제자매들이 하루 속히 나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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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