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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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내산] 한국교회와 CCM
    가을이 왔다. 이곳 저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꼬리를 물고 있다. 교회 축제도 계절에 관계없이 집회 형태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교회 축제 모임에 약방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CCM이다.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음악만큼 유용한 매개가 없기 때문이다. 야외 집회나 일반 비신자들을 위한 모임에서 CCM은 선교적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순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CCM이 이제는 교회의 공식 예배에 중심적인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젊은 학생들과 청년들의 예배에는 전통적인 찬송가는 사라지고 오직 CCM만이 예배찬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교회음악사의 발전으로만 생각하고, 이를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사실 현대교회음악의 역사로 보면, CCM이 활성화되기 전에 복음 성가(gospel song)가 유행했다. 흑인 영가와 재즈가 혼합된 복음 성가는 흑인 영가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수난과 신약성서의 복음에 관계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원래 흑인 영가는 흑인들이 부르던 5음 음계의 단순한 음계와 다성적인 경향과 흑인 특유의 리듬감에 미국 프로테스탄트 교회 찬송가의 영향이 곁들어져 성립되었다. 그런데 흑인 영가에서 복음 성가로 나아오면서, 노래가 지니는 영성이 더욱 강화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복음 성가 모두를 도매금으로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노래에 따라서는 영성이 더 강화된 것도 있고, 그렇게 느끼기 힘든 것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복음성가들은 비신자들에게도 친근감이 드는 민요풍과 통속적인 멜로디를 지니고 있어,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좀은 쉽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복음송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복음성가 자체를 두고도 이를 예배용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사안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복음성가까지 그렇게 따질 필요가 있느냐 하는 반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왜냐 하면 지금은 교회 예배에까지 일반적인 CCM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CCM은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해서 1970년대 이후 세계로 확산되었다. CCM의 특징은 현대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에 있어 신앙적이고 성서적인 내용을 담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음악의 형식은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가사 내용만 기독교적인 것이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1990년 이후에는 포풀러 뮤직, 록뮤직, 메탈, 힙합 등 모든 대중음악에 접목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CCM의 특징은 앞서 논한 복음 성가가 지닌 특징처럼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적인 찬송가를 대신하여 예배시간에도 그대로 사용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들을 많이 남겨두고 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모든 예술 장르의 특징은 형식과 내용을 지니고 있다. 완성도가 높은 그리고 생명력을 지니는 예술은 이 형식과 내용이 따로 존재할 수도 없고, 언제나 합일된 정합성을 지니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형식에 내용을 가지고 올 때는 내용과 형식이 서로 맞물려 갈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하고, 이 단계에서 수 없는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단순히 CCM을 세속화된 형식과 성스러운 복음의 내용이 결합된 것이라고 단순화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많은 CCM은 이 세속의 대중음악 형식들을 복음의 내용과 어떻게 하나로 융합시켜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없이 탄생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세상 문화의 본질과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나 안이하게 기존의 문화형식을 활용한 결과이다. 기독교 복음의 본질은 형식과 내용 전체를 변혁시켜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나가는데 있다.
    • 오피니언
    2016-09-29
  • [목회자 칼럼] “부산 시민의 애국심을 보라!”
    요즘 우리나라는 또 다시 지역이기주의가 심각하게 확산돼나가고 있다. 북한이 파괴력 강한 미사일 공격을 해 올 경우를 대비하여 최소한의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마땅히 여길 것인데, 설치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집단이 북한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울타리 보호망을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모두가 찬성하고 더 나아가서 헌신과 희생을 서로 먼저 하겠다고 자원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저 이스라엘을 보라! 강력한 적대국들인 아랍 계통 20여 나라에 둘러싸여 있다. 아랍 국가들의 총 인구는 대략 2억에 이르는데 이스라엘은 겨우 450만 인구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스라엘은 조금도 위축됨 없이 당당하게 나라를 보위하면서 활기차게 살아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 국토가 요새화 되어 있다. 자신들의 국토와 하늘을 지켜내기 위하여 전 국토에는 하늘을 방어하는 지대공 미사일, 땅을 지키는 지대지 미사일 기지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설치돼있다. 실로 독수리 한 마리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완벽한 국토 방어망이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국민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지역이 “우리 마을, 우리 지역에는 첨단 군사기지 설치 절대 불가하다.”라면서 반대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너무나 작은 나라, 적은 인구지만 온 나라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주변의 극단적인 적대국들은 감히 이스라엘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1950. 6. 25~1953. 7. 27 만 3년 간 우리나라는 북한 공산주의의 남침전쟁으로 말미암아 5천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파괴를 맛보았다.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전쟁 난민’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전국에서 부산으로 부산으로 밀려왔다.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임에도 부산은 이들 피난민을 다 받아들였다. 6.25 전쟁 3년간만 아니라 전쟁 이후 극심한 혼돈과 가난의 세월에서도 오갈 데 없는 전쟁 난민들을 고스란히 품어주었다. 그 시절의 여파로 부산은 지금도 전쟁의 상처와 흔적을 제대로 지우지 못하여 도시의 기반 시설이나 도시계획, 미관이 매우 저조하고 열악하다. 부산은 또한 1979. 9~10월의 ‘부마항쟁’을 통하여 1945. 8. 15 조국 해방이후 40여 년간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혼미를 거듭하고 있던 이 나라를 단숨에 민주주의가 꽃 피우는 나라로 출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해내었다. 실로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배경에는 부산 시민들의 ‘단순하면서도 용기 있는 헌신과 희생’이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부산 경남 울산 경주 울진 지역에는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량의 80%가 설치 가동 중이거나 현재 계속 확장 중에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80%가 우리 지역에 집중 설치돼 있다. 원자력 발전을 가동하는데 어찌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편함과 염려가 왜 없겠는가마는)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삶을 위해서는 어딘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이를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사생결단식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정말 답답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제주도 앞 바다를 일본, 중국 함대들이 자기네 바다처럼 휘젓고 다니는데 정작 주인 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군사기지 건설마저 지역이기주의에 막혀 6년, 10년씩이나 공사가 지연되었다니 오히려 이웃 나라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가지겠는가? 우리의 국가 수호의지를 의심하거나 비웃지 않을까? 해방 이후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큰 헌신과 희생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도시가 ‘부산’이다. 하나님께서 부산을 지켜주시고 부산의 시민들에게 평강과 위로를 많이 내려 주시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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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목회자칼럼
    2016-09-29
  • “발언권 달라(?)”
    복음병원 민주노총 지도부(지부장 노귀영)가 고신 총회가 열리고 있는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을 찾아와 총회장 배굉호 목사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배 총회장은 “그런 전례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거절하자, 이번에는 “유인물을 돌리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총회장이 거절했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부는 총대 일부에게 자신들의 유인물을 배포했고, 결국 이 유인물을 대부분의 총대들이 보게 됐다. 유인물에는 자신들은 병원행정권자들에 대항하여 부당한 경영간섭을 한 일이 없다는 것과 최근의 병원 사태와 관련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A 총대는 “자신들이 선한 양 같이 표현했던데, 말에 대해 인정하고 싶어도, 행동(배포하지 말라고 했는데) 때문에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고, B 총대는 “여기가 자신들이 마음 놓고 들어가는 법인 이사회 수준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라며 발언권 요구를 했다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학교법인 A 이사는 “유인물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그 유인물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고, B 이사도 “병원경영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자가)직접 병원장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물을 읽은 몇몇 총대들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고신총회에 찾아와 발언권과 유인물 배포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고신총회를 아주 우습게 보는 것 같다”며 “고신총회가 복음병원의 주인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왜 총회 석상까지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다양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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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9-29
  • 고신대복음병원 '위식도 역류질환, 소화불량증' 공개건강강좌 개최
    고신대학교복음병원(병원장 임학) 소화기내시경센터는 9월 30일 오후 3시 고신대학교복음병원 6동 7층 회의실에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위식도 역류질환, 소화불량증 공개강좌'를 개최한다.이번 강연은 위·식도 역류질환의 원인, 증상, 치료 방법은 물론 평소 위·식도 역류질환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예방과 생활습관까지 폭넓게 취급한다.강좌는 소화기내과 박무인 교수가 위식도 역류질환에 대해 그리고 소화기내과 김성은·정경원 교수가 소화불량증에 대한 설명과 함께 치료 방법을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박무인 교수는 "위식도 역류질환의 증상은 가슴 쓰림, 역류 등의 전형적인 증상과 목의 이물감, 목 통증과 같은 비전형적 증상으로 나누며 약물로도 치료할 수 있다."며 "식생활 습관을 통해 증상을 호전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번 공개강좌는 위·식도 역류질환과 소화불량증 대국민 홍보 주간을 맞이해 전국 17개 대학병원에서 9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소화기질환에 관심있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강좌로 진행한다.고신대복음병원은 오는 10월 7일 금요일에는 ‘대장앎 바로알기’ 무료시민강좌를 개최한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9-29
  • 고(故) 최태민 목사가 남긴 그림자
    22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故) 최태민 목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 그의 그림자가 사위와 자식들, 정치계에서 나풀거리고 있다. 최근 그에 관한 가족사의 얽힌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성하게 되살아나고 있어 교계차원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故 최태민 목사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그의 딸 최순실(59세) 씨의 미르재단와 K스포츠 재단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면서이다. 그가 승려에서 목사로 변신하기 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을 말할 것 같으면 대개 이러하다. △故 최태민 목사의 정체는? 지난 40년 가까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과거 1974년을 거슬려 올라간다.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쓰러진 후 퍼스트 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을 봉사단’ 명예총재라는 직함이 제기될 때부터 줄곤 따라붙어 다녔다. 혜성과 같이 교계에 나타난 최태민 목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비주류 계통의 종합교단이라는 곳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최태민은 구국봉사단 총재 이름으로, 그리고 박근혜는 명예총재라는 타이틀 때문에 교계에 어필되었다. 구국봉사단이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새마음운동으로 개명되고 그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려 일반 대중속에서 무료 의료치료 등의 봉사활동을 펼친 것이 국민들에는 신뢰를 얻어 회자 되기도 했다. 그당시 박근령과 대립됐던 육영재단과의 분란의 배경의 요인도 1990년도 신문 지면까지 보도되었다. 1998년 박근혜가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최순실의 남편)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 할 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에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중심에 있었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최태민은 1975년 4월 29일 대한구국선교회<1976.12.10> 구국봉사단 1979년 5월 1일 새마음봉사단의 총재에 나선다. 1963년 5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첫 정계에 발을 디딛고, 전국불교 청년회 부회장, 1951년 3월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1947년 4월 인천경찰서 사찰 주임 경위 등이 그의 과거 이력 전부이다. 최태민의 교계이력은 194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은 뒤부터 목사라는 호칭이 그때부터 따라 붙는다. 그의 수사 자료를 보면 한때 불교 승려가 되었고 천주교 영세까지 받았다. 태민이란 이름도 7번째 쓴 가명이기도 했다. 그는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42~1945년까지는 황해도 도경의 순사였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에 의하면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 6녀의 자녀을 둔 그의 가계도를 제시 한 바 있다, 1970년대에 들어 와서는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교주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워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권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도 쓰고 다녔다. △박근혜와의 첫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보낸 ‘김형욱 회고록’에 공개된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신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는 것을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을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해 항상 들을 수 있다’ 故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는 내용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른바 ‘현몽’으로 전하는 그의 본심은 한번 만나 주길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1975년 3월 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눈 것이 첫 만남이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 박정희도 동석해서 만났다. 1993년 11월 월간중앙지에 목사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의 주론이나 이 사실은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목사안수는 그 당시 종합총회교단(합동비주류 100여개가 넘어)에서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다. 다만 그가 신학교 에서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봉사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했고 5월 임진강에서 구국기도회를 열면서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그 자리에서 즉시 제안하여 추대가 된다. 그리고 전국 중요 도시에 구국봉사단, 구국의료봉사단을 조직하여 부산에서도 그 지부가 동구 초량동 어느 폐교에 간판을 걸고 부산교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이 나오고 부산지부장에는 변창남 목사가 나섰다. 지금까지 인연으로 발을 딛고 내려온 것이 사단법인 한국경로복지회로 노인들을 상대로 재가복지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이다. 그 뒤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았고, 당시 전두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은 강원도 어느 군부대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자숙하도록 했고,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 해산 당했다고 했다. 그의 딸인 최순실 이사장이 지금 정치계에 등장한 것도 다 이런 그의 아버지의 배경일지는 몰라도 소문에 꼬리를 물고 아버지의 망령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서 칩거한 후 1994년 노환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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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고신대 의대 임수진 학생,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제1저자로 논문 발표
    ▲ (좌)임수진 (우)지도교수 이형신(이비인후과학교실) 고신대학교(총장 전광식) 의과대학(학장 김우미) 임수진 학생(4학년)이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학술진흥재단 등재지에 실렸다. 임수진 학생은 이비인후과학교실 이형신 교수의 지도로 기도협착에 대한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치료법 및 예방법을 개발하고 그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기도협착 동물모델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진흥재단 등재지인 Korean Journal of Otorhinolaryngology-Head and Neck Surgery(Vol. 59)에 게재됐다. 이외에도 임수진 학생은 Eur Arch Otorhinolaryngol(IF 1.627, Vol.273)와 International Journal of Clinical Oncology(IF 1.806)에 게재된 2편의 논문에서 공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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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교회법률상식] 비상 정회는 치리회 회장의 고유한 특권 (1)
    ■위원회의 위원장은 비상 정회 선언권 없어 ■위원회 위원장의 비상 정회 선언은 전례도 없는 불법행위 [질의] 총회를 1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총회선거관리위원회로 모여 임원 후보 결정에 대하여 투표로써 최종 결정하기로 하고 위원장이 선거관리위원회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원장은 임원 후보자를 투표로써 결정하겠다고 소집한 최종 회의에서 투표는 하지 않고 시간을 소진하다가 “나는 다른 모임이 있어서 정회했다가 속회하여 투표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말에 위원들이 “그러면 부위원장에게 사회권을 위임하고 다녀오시라”고 하니 위원장이 비상정회를 선언하고 퇴장해버렸습니다. 그 후 위원들 중 위원장을 포함하여 5명은 퇴장하였으나 10명은 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위원장이 퇴장한 것을 불법으로 판단하고 위원들 중에 최고 연장자 목사님을 사회자로 추대하였으며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인 10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위원장 해임안을 결의하고 위원회 서기를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결의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①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비상 정회를 선언하고 퇴장하는 것이 합법인지요? ② 위원장이 퇴장한 후 재적 위원 중 3분의 2 이상의 위원들이 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회의를 계속 진행하여 위원장 해임을 결의하고 서기를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결의한 것이 잘못인지요? ③ 서기가 제101회 총회 총대로 천서가 되지 않았는데도 위원장 직무 대행을 할 수 있는지요? 목사님의 법리적 답변을 바랍니다.(합동 K목사) [답] 질의자가 합동 총회 소속 목사이므로 합동 총회 헌법으로 답한다. 1.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비상 정회 선언에 대하여 비상 정회는 누구나 아무데서나 선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교회 각 치리회 회장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특권으로 장로교 헌법은 규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교회 헌법 정치 제19장 제1조(회장)에 “교회 각 치리회는 모든 사무를 질서 있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회장을 선택할 것이요 그 임기는 그 회의 규칙대로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동 제19장 제2조의 “치리회 회장의 직권”에는 “ … 회장은 매 사건에 결정을 공포할 것이요 특별한 일로 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회장이 비상 정회를 선언할 수 있다”고 명백히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본건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은 위원회 심사의 원칙에 의하여 본회가 위탁한 안건을 심의하여 본회가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심의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일 뿐이요, 비상 정회라는 권한을 부여한 법적 근거는 헌법, 규칙, 결의 등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기독교 100여년 역사에도 상비부 부장이나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비상 정회를 선언한 전례도 없다. 따라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총회를 한 주간도 채 남지 않은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마지막 회의를 소집했으나 회의소집 시에 약속으로 전제한 투표는 하지도 않고 시간만 소진하다가 자기가 다른 모임이 있으니 거기 참석하기 위하여 정회를 하겠다고 할 때에 위원들 다수가 부위원장에게 사회권을 위임하고 다녀오라고 함에 대하여 이를 거부하면서 권원 없는 비상 정회를 선언하고 퇴장하였다고 하니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불법 행위이다. 2. 위원장 해임과 서기를 직무대행으로 결의함에 대하여 “법의 정의는 상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비추어 보건대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다가 다른 모임 참석 운운하면서 정회를 하겠다는 유치하고 무책임한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위원들이 사회권을 부위원장에게 위임하고 다녀오라는 요청을 거부하면서 권원 없는 비상 정회를 선언하고 급기야 퇴장까지 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상황에서 총회 준비에 중대한 직무를 유기한 위원장에 대하여 위원회 자체로 그 직무를 불신임하고 해임 결의함은 상식에 속한 사안이요, 위원장 직무 대행자를 선정한 후속 조치는 당연한 순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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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성공칼럼] 사랑이 신이다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를 지배하고 군림하고 요구하는 분이 신이 아니라 신적 사랑이 신이며 근원이며 생명인 것이다. 이 사랑에서 지혜와 능력과 힘이 나오는 것이다. 이 사랑은 진리의 그릇에 담겨야 하며 선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에 내가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나는 살아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십계명의 핵심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며 천국의 핵심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에 두는 것은 모든 거짓과 두려움과 분노와 비난과 악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약속을 계속 바꾸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약속을 바꿀 때마다 화가 나는가? 사랑과 선을 목적으로 하면 약속이 바뀔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어떻게 선을 행할까를 찾으면 약속 어김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거짓과 악의 세계에서 나오게 하는 비결이다. 그리고 삶이 내 생각대로 되거나 안 되거나, 환경이 쉽거나 어렵거나, 가진 것이 있거나 없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과 선을 목적으로 살면 사는 것이 참 행복하고 자유롭고 모든 것이 부유해지는 것 같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사랑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선을 행하면서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을 지내면 삶은 고차원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높이 올라갔다 할지라도 사랑과 선을 잃으면 그 즉시 수렁으로 떨어지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이 생명인데 생명이 없어지면 아무리 높은 곳에 올랐을지라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육체’속에 사랑과 선을 잃으면 육체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남녀 간에도 사랑이 사라지고 서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성적 쾌락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감각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도 이런 쾌락적인 수준으로 전락하여 멸망을 당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감각을 사용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마음이 사랑과 선을 잃게 되면 그 합리적 지식이 거짓과 악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예를 들면 판사, 검사, 학자, 선생, 목사들이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독재와 권력과 돈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거짓과 악을 옳다고 주장하며 타락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참 나’를 발견한 후 사랑과 선을 잃으면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내가 근원이다.’ ‘내가 신이다.’라고 주장하며 자기 숭배로 떨어지게 된다. 구약에 나오는 이집트의 바로왕은 사랑과 선이 있었을 때는 7년 가뭄에서 전 세계를 구원하는 왕이 되었지만 요셉을 모르고 “여호와가 누구냐? 나는 여호와를 모른다.”라고 하며 사랑과 선을 잃었을 때는 백성을 괴롭히고 이용하고 지배하는 폭군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육체와 마음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를 발견하면 그 삶은 신적인 사랑 속에 있게 되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권세와 칭송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영적진리’ 속에 사랑과 선을 잃게 되면 그 즉시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에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스올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권력욕과 물질욕 등의 시체의 뼈들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 생명이다! 내가 어떤 위치와 상황에 처해 있든지 사랑과 선을 잃어버리고 자기 사랑과 세상의 소유를 위해 사랑과 선을 이용하는 삶을 살면 내 삶은 그 즉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임을 알고 자신을 잘 살피며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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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동서대 수시모집 부울경 사립대학 최고 경쟁률
    ▲ 동서대학교 동서대(총장 장제국)는 지난 21일 마감한 수시모집 결과 1788명 모집(정원내)에 15279명이 지원해 8.5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1792명 모집(정원내)에 16522명이 지원해 9.22대1 경쟁률을 보인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수시모집에서 부울경 사립대학 중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번 동서대 수시모집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은 5명 모집에 285명 지원한 치위생학과(교사추천자 전형)로 57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다음으로 ▲간호학과(교사추천자 전형) 11명 모집에 446명 지원해 40.55대1 ▲경찰행정학과(자기추천자 전형) 3명 모집에 118명이 지원해 39.33대1 등 보건의료계열 전공과 경찰행정학과 에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장제국 총장은 “동서대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력, 끼와 열정을 극대화하는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동서대는 한명의 학생도 낙오 없이 BDAD를 성취하는 기회의 통로가 되는 대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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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은혜의 말씀] 히스기야의 눈물 (열하 18장 1~6절)
    남왕국 유다에서 BC739년 제4대 왕이 될 히스기야가 태어납니다. 히스기야의 뜻은 ‘하나님으로 강해지다’입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여러 일들을 겪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이전 왕들과는 다른 전무후무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는 하나님께 연합하여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오랫동안 잘못되어온 민족의 신앙을 바로잡습니다.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기 위해 찾던 산당들을 모두 제거하고 바알 산당과 아세라 목상도 부수었습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재정비하고 레위인들을 세워 성전 일을 하게 하였고 유월절의 전통을 회복시킵니다. 당시 그 지역의 강국 앗수르를 섬기고 있던 남유다는 사르곤이 죽고 그의 아들 산헤립이 즉위하는 혼란을 틈타 이집트와 동맹을 맺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앗수르는 유다의 성읍들을 쳐서 점령 하였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게 됩니다.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려도 앗수르의 침입이 계속되자 하나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루살렘성을 보호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진영에 천사들을 보내셨고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몰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산헤립은 앗수를 땅으로 돌아갔고 그의 아들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대제국 앗수르에 맞서 승리한 유다의 소식은 급속히 주변 나라들로 퍼져 나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히스기야의 병문안을 구실 삼아 사절단을 보내며 편지와 선물을 선사합니다. 남유다의 모든 전략과 정보를 수집하게 된 바벨론은 동맹을 뒤로 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앞으로 유다는 바벨론의 침입을 받아 모든 것을 바벨론에 빼앗기고 히스기야의 아들 중 바벨론에 사로잡혀 환관이 될 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히스기야의 죽음 이후 80년 뒤 BC606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이 귀한 시대에 히스기야는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거룩히 구별하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린 전무후무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알아 순종했고 하나님께선 그런 그와 함께 하사 그의 하는 일에 형통함을 주셨습니다. 위기의 순간은 찾아 왔고 또 찾아왔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너무 커서일까 그는 하나님 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며 세상적인 방법을 쫓아갔습니다. 뒤늦게나마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의 실수에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사 구원해 주셨습니다. 위기가 해소되자 교만해진 마음을 회개하며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살아생전에는 어려움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세상적인 방법을 쫓고 근심하며 우리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꼭 히스기와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짧은 세월, 한 번 뿐인 인생 어떠한 위기가 찾아오고 또 찾아오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를 잃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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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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