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전체기사보기

  • 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기념행사
    ▲ 지난 6일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 강당에서 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예장고신 부산노회(노회장 양승기 목사)가 주최하고 한상동서거기념행사준비위원회가 주관하는 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기념행사가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 강당에서 지난 6일 오후 1시 개최됐다. 1부 기념예배와 2부 기념행사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배굉호 부총회장(남천교회)의 사회로 증경총회장 조재태 목사의 기도, 박희천 목사(내수동교회 원로)의 ‘레갑 족속’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박 목사는 “한상동 목사님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한 목사님만의 목회 철학 11가지를 보았습니다. 레갑 족속들이 그들의 조상 요나답의 교훈을 290년 동안이나 철저하게 지켰듯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한상동 목사님의 목회 철학을 그대로 지켜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렘35:19)’고 하신 축복이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부 기념행사에서는 김철봉 목사(직전총회장), 강영안 이사장(고려학원), 전광식 총장(고신대), 변종길 원장(고려신학대학원)의 기념사가 있었고, 최덕성 박사의 ‘한상동과 주기철의 교회론’와 손성은 목사의 ‘한상동 목사의 신앙 체험과 개혁 신앙’ 학술강연이 있었다. 한상동 목사는 1941년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루고,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다가 모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남쪽으로 남하해 주남선 목사와 함께 평양신학교를 계승하는 신학교를 설립하고자 고려신학교를 설립했다(1946년). 이후 1952년 신사참배 반대자들이 중심이 돼 지금의 고신총회인 고려파 총로회를 구성하고, 4대·5대 고려파 총회장을 역임했다. 1969년 고려신학교 교장, 1971년 고려신학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화란 개혁교회에 도움을 청해 지금의 고려신학대학원 교사를 부산시 송도 암남동 34번지에 신축하기도 했다. 1972년 자신이 세운 삼일교회에서 은퇴 한 뒤 1976년 1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1-07
  • 기윤실, 위안부 협상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합의’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대표 홍정길 목사)가 지난 12월28일 한,일 정부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협상 타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합의’라고 성명서를 통해 발표했다. 기윤실은 “과거에 비해 진전된 협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한일 간 오래된 갈등요인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히면서 “이번 협상에서 이 문제의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법적인 배상책임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점, 또한 향후 위안부 문제를 재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등 협상이 아닌 한일 간 담합이라는 비판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상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명백하지 않은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리하여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일본 정부와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윤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합의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협상 타결에 대한 기윤실의 입장 - 1. 지난 12월 28일, 한국 정부는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번 협상이 과거에 비해 진전된 협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한일 간 오래된 갈등요인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2. 우선 이번 협상에서 이 문제의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법적인 배상책임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또한 향후 위안부 문제를 재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등 협상이 아닌 한일 간 담합이라는 비판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피해자들과의 협의 없이 진행된 이번 협상에 대한 비판을 도리어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발목잡기로 호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점입니다. 3. 피해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1211회 동안 시위를 지속하면서 요구했던 것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입니다. 4. 이번 협상이 피해자들과 긴밀한 협의 하에 진행되지 않았고, 그들의 요구 또한 반영되지 않으면서 이번 결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합의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에 요구합니다. 이번 협상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명백하지 않은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리하여 어떤 간섭도 개의치 말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일본 정부와 재협상해야 합니다. 5. 우리는 또한 한국과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피해자들을 위로해 주시길, 피해자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서 기뻐하게 될 그날을 고대합니다.(예레미야 31:13) 2015년 12월 31일(목)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뉴스
    • 뉴스종합
    2016-01-05
  • 제7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폐막
    지난 3일(주일) 제7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폐막했다. 트리문화축제 측에서는 축제기간 약 800만 명의 국내외 방문객이 찾았다고 전했다. 지난 3일(주일) 제7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37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평화의 성탄 화해의 성탄 다함께 미래로’라는 주제로 지난해 11월 28일(토)에 개최돼 축제기간동안 70여팀의 문화공연팀과 1700여명의 공연 참가자들이 어우러져 성탄문화축제로서 자리매김했다. 이번 트리문화축제는 해방70년·분단70을 기념하는 ‘한일 우호의 날’ 행사를 특별마련하고 40여명의 일본 인사들이 참석해 함께 축복하며 화해와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북한 사역팀의 북한 음식체험과 사진전, 탈북과정을 다룬 뮤지컬공연 등 축제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호응을 얻었다. 부산이 낳은 대표적인 인물 장기려 박사의 서거 20주기를 기념하는 ‘Love 장기려 기념 위크(Week)’, 기념전시회, 토크콘서트, 무대공연 등 뜻 깊은 행사를 통해 평생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 장기려 박사의 삶을 재조명하며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관계자는 “주님의 은혜로 마치게 됨을 감사드리며, 매일 정해진 요일에 나와서 따뜻한 사랑의 차 나누기를 맡아준 교회와 통역과 안내로, 또 여러 섬김의 모습을 보여준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섬김에 감사한다”면서 “유난히 힘든 경제 여건 속에서도 축제기간 약 800만 명의 국내외 방문객이 찾았다. 놀라운 수치가 말해주듯 아시아 대표 겨울축제로서 이미 자리 잡은 축제임을 실감하며 앞으로도 아시아 최고의 성탄축제가 되기 위해 부산교계와 성도들의 많은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1-05
  • [시사칼럼] ‘ㅎ’이 득세하는 ‘ㅎ’ㅐ
    지난 을미년(乙未年)은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이라는 영화(1991년) 제목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 테러(terror)는 문자 그대로 공포(恐怖)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불어권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프랑스 본토에서는 정월 샤를르 엡도 잡지사 테러 사건과 11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리아는 일 년 내내 이어진 난민 사태로 인해 지구촌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동시에 자극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메르스가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는 간통제가 폐지되었고 미국에서는 동성애가 합법화되었습니다. 모랄 해저드(moral hazard)에다 섹슈얼 해저드(sexual hazard)까지 가미될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단정 지을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이 문제들 때문에 앞으로 무척 시끄럽겠다는 전망 정도일 듯합니다. 지금부터 꼭 한 갑자(甲子) 전인 1955년 을미년(乙未年),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 목사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라브리(L’Abri)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라브리(L’Abri)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은신처,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유럽에 여행 차 들렀던 쉐퍼 박사는 유럽의 영적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고 아예 거처를 스위스로 옮겨 일종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과 문명과 사회에 대한 공공의 신뢰가 무너지고 영적으로 지독한 방황에 빠졌던 신앙인들뿐 아니라 학자, 예술가, 엔지니어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쉐퍼 목사와 함께 모여 쉼과 회복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통해 치유와 자유의 은총을 나누었고, 그 결과 유럽 사회가 영적으로 회개하고 회복하고 화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이보다 앞선 1940년에는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 남부 손 에 로와르(Saone-et-Loire)에 위치한 떼제(Taize)에 스위스 출신의 개신교 수도자인 로제 수사(Brother Roger, 1915-2005)가 테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를 세웠습니다. 이곳은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초교파 단체로, 1950년대부터 매주 이곳 떼제(Taize)에는 특히 전세계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와 자발적인 예배와 기도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대전(world war)과 냉전(cold war)으로 인해 피멍이 들고 정신적인 여유와 신앙적인 공간을 잃어가던 청춘들이 이곳에서 진정한 휴식과 회개와 화해와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소 철학적이면서 학구풍이 강한 라브리 공동체와 달리 자유분방한 떼제(Taize)는 어느덧 한국의 젊은이들도 알음알음으로 많이 찾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0년 전 창설자인 로제 수사가 한 여인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테제는 더욱 회복과 화해를 외치며 오늘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아노미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마저 그 부패와 타락상이 세상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신앙의 공동체들 또한 기나긴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2~14). 새해는 회개와 화해와 회복이 득세하는 ‘ㅎㅎㅎ’의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15-12-31
  • [소강석 칼럼] 네트워크 교회론으로 다시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교회가 부흥하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부흥 할 것이라는 막연한 장밋빛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주의와 속도주의에 편승하여 물량화, 자본주의화, 세속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상실해 버렸다. 또한 교회의 내부 기득권 싸움과 몇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부도덕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비춰지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불신이 최고조로 달하면서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정체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이유는 한국교회가 21세기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세기와 21세기는 똑같은 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도 달랐다. 시대와 사람, 목회 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무엇보다 교회 스타일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 세계교회, 특히 미국교회의 변화적 흐름을 보면 1970년대까지는 교단 중심의 전통적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는 커뮤니티 교회가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도자 중심과 문화적인 예배와 공동체 중심의 교회를 이루며 부흥 코드로 성장을 해 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교단이나 다른 교회와는 별 상관없는 개교회 중심의 교회가 되었고 대형교회 목회자들 간의 영향력 전쟁이나 스타플레이를 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천년을 맞은 어느 때부턴가 커뮤니티 교회에서 네트워크 교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구도자 중심보다는 처치 플랜터(church planter) 중심의 교회가 되고 문화 중심보다는 복음적 중심, 혹은 래디컬(radical)한 신앙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 구조보다는 네트워크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부흥 코드보다는 플랜팅(Planting) 코드로 바뀌었다. 미국교회를 보면 하나의 대형교회가 아니라 코드가 맞는 교회끼리 서로 네트워크를 하며 세움형 교회로 확장해 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미국교회가 아무리 네트워크형으로 간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볼 땐 여전히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자기 코드나 성향에 맞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할 뿐이지, 미국 전역에 교회 생태계를 살리고 미국교회를 전방위적으로 지키기 위한 네트워크는 아직도 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대형교회도 많고 큰 교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렸지 않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는 부흥이 침체되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 공격을 받으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기존의 조직과 매뉴얼만 유지하며 안주하고 있다.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면 화석화되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교회를 다시 세우는 마음으로 개교회 내부에서부터 먼저 처치 플랜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끼리 주 안에서 유기적으로 거룩한 네트워킹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힘으로 이웃교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가 네트워킹을 하며 서로를 세워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네트워크이고 세움이며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신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네트워크 교회로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 그 견고한 네트워크 교회 위에 부흥의 불씨를 살리고 사회적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특별히 반기독교적 정서와 세력을 막고 다시 목회 생태계를 복원하여 비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한국교회여, 다시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네트워크 교회론의 토대 위에 제2의 부흥 시대를 일으켜보자.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15-12-31
  • [김영곤 교수] 창조 질서와 때
    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성인의 몸속에는 약 100조 개의 세포가 있으며 각 세포에는 칸막이 방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세포소기관들이 있다. 각 세포에는 단백질 분자가 약 10억 개 정도 들어 있으며 화학적으로 암호화된 DNA의 명령을 따라서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꾸준히 만들어낸다.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은 적절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소코드가 달려있다. 단백질은 이 코드를 따라서 세포 내의 다른 소기관으로 이동하거나 세포 밖으로 분비되어 혈관을 타고 필요한 장소로 이동하여 제 기능을 수행한다. 세포들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설계도를 따라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조직을 재형성하고 조직들은 모여 장기를 구성하고 장기들은 연결되어 인체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인체조직은 주변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도 재형성 과정이 조절된다. 인체의 경우 1초에 약 50만개의 세포가 새로 만들어지며 동시에 비슷한 수의 세포가 소멸된다. 살아있는 세포는 지속적으로 분열하고 성장하지만 무한정 반복하여 분화되지는 않는다. 인체 세포는 복제되는 과정에서 염색체 말단에 부착된 텔로미어가 점차 소실되기 때문에 약 60회 정도만 정상적인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나이가 들 수 록 새롭게 생성되는 세포수보다 소멸되는 세포수가 많아져서 노화가 진행되며 생체조직은 약해진다. 궁극적으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어 생명활동의 마지막 때가 이른다. 이와 같이 오묘한 창조 질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들과 범사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도 다 때가 있을 수밖에 없음이 명백하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생활을 하였던 솔로몬 왕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떠나서 사람 중심의 삶을 살다가 돌이킨 후에 모든 것들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전도서를 기록하였다. 전도서 3장을 보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로 시작하여 14가지 좋은 때와 14가지 안 좋은 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를 미루어 유추하면 좋은 때는 사람이 하나님께 접붙여져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며 축복을 누리는 시간들이고 안 좋은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사는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도자 솔로몬은 이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기록하였다. 사람의 육체는 세포와 조직의 재형성 과정에 의하여 때가 차면 아름답게 변화되지만 한 사람 아담의 죄로부터 전수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는 이를 수가 없고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셔서 내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 주로 오실 것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 때를 보시면서 택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경고도 하면서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늘 간섭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허락하신 창조질서 회복의 때를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2016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 천하만사에 때가 있음을 깨달아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믿음의 유산을 잘 계승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15-12-31
  • [성경인물탐구]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서 베드로와 같이 갈릴리 해변 벳새다의 어부였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고 자기 형 베드로를 전도한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예수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하시면서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의 부름을 받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안드레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은 단순하게 기록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함을 뜻합니다. 실제로 안드레의 삶은 예수께 부름 받은 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안드레는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물속에 있는 고기를 잡는 자가 아니라 죄악의 물결 속에 떠내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건져내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의 오심을 보고 안드레와 또 한사람의 제자에게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였고 안드레는 예수를 쫓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가 계신 곳에 방문하여 예수와 함께 거하면서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후 제일 먼저 그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서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구약 예언의 말씀을 믿고 고대하였기에,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이 최대의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복음을 베드로에게 전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자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복음을 증거 하실 때 무리가 기진하여 곤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광야인지라 음식을 살 수도 없었으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고 물으셨을 때 빌립은 계산을 통해 그것이 불가능함을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예수께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말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사람들이 굶주려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방도를 다 찾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안드레의 모습에서 그의 인정이 풍부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 사람을 구한 사마리아인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만일 안드레가 사람들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별로 효용성도 없어 보이는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드레의 인정 많음은 주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시는 데 있어서 한 도구로 사용 받았습니다. 성도는 이웃의 고통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사랑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십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12-31
  • [교회회계] 교회와 세금
    지난 12월 2일, 종교인 과세를 명문화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목회자 사례비를 기타 근로소득으로 간주하여, 2018년부터 6∼38%의 세금을 부과하는 세법이 확정된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음으로, 교단의 유지재단에 소속되어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고유번호증(606-82-XXXXX)를 부여 받고 일정한 부분의 조세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종교인 과세를 포함, 최근 언론을 보면 학사관과 교육사업, 쉼터 공간 등 선한 취지로 시작한 교회사역이 수익목적으로 분류되어 과세대상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복음전도에 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본 교회회계 칼럼 제11호에서는 교회와 세금문제에 대해 다룬다. 조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경비충당에 필요한 재정수입을 조달할 목적으로 과세요건을 충족한 모든 자에게 직접적 반대급부 없이 부과하는 것으로, 교회의 경우 주로 다음 사항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 소득세(법인세)는 개인의 소득과 법인의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교회 고유의 예배와 목적을 위해 발생하는 헌금수입은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교회건물에 카페를 운영하며 금액을 받거나, 학사관을 운영하며 시설유지를 위해 최소 임대료를 받는 경우 수익사업으로 간주되어 과세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 경우 과거년도 분까지 소급되어 과세될 수 경우 교회재정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취득세와 등록세는 교회 부동산 및 비품 등의 취득시에 부과하는 것으로, 교회의 종교용 재산, 예배당, 교육관, 담임목사 선교용 사택(1주택) 및 교회와 인접한 주차장(연건평 약1/4의 면적이하)은 비과세된다. 그러나 부목사 및 사찰집사 가족의 주택, 차량, 공원묘지의 취득 등록은 과세대상이다. 기도원은 종교목적으로 온전히 사용될 때 비과세된다. 또한 교회재정을 통한 부동산 취득은 모두 교회명의로 소유권 등기가 되어져야 하며, 위반시 부동산 실명제법에 의해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셋째 재산세와 양도세는 교회재산의 보유 또는 처분시에 발생하는 세금으로, 취득 및 등록세와 동일하게 고유 목적에 관련된 예배당, 담임목사 사택, 주차장 등의 보유는 비과세되나, 그 이외는 과세 대상이 된다. 또한 담임목사 명의로 등기가 된 경우 재산세와 종합토지세가 과세될 수 있다. 또한 교회 고유목적을 위해 재산을 취득하였더라도 3년 이상 동 목적에 사용되지 않을 경우 재산세와 양도세가 부가될 수 있다. 넷째 부가가치세는 재화와 용역의 소비행위에 대해 부과되는 소비세로 보통 매출세액의 10%가 부과된다. 그러나 교회는 면세사업자로 고유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실비 또는 무상으로 공급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며, 부동산 임대 등 수익사업을 위해 계속적으로 공급하는 경우 과세대상이 된다. 또한 교회가 건축, 건물수리, 비품구입 등을 할 때 납품업자에게 지급하는 부가가치세액 환급은 매출세액이 없는 면세사업자이므로 없다. 다섯째 종교인 과세는 기존 교회직원의 근로소득 원천징수에 추가해, 목회자 사례비를 기타소득 중 종교인 소득으로 규정해 세금을 부과한다. 일반적으로 원천징수 대상은 ①이자소득과 배당소득, ②봉급, 상여금 등의 근로소득, ③퇴직소득, ④상금 및 강연료 등 ⑤인적용역소득, ⑥공급가액의 20%를 초과하는 봉사료 등이다. 또한 징수세액은 연말정산 시 소득자에 따라 보험료, 의료비, 연금, 신용카드 등을 추가로 공제하여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 경우는 다음연도 5월까지 종합소득세를 납부한다. 그리고 과세당국에 의한 종교단체 장부 확인은 종교인 소득 관련 부분에 한정하도록 되어 있다. 즉 교회는 영리는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도의 예배 공동체로서, 고유목적 사업에 대해서는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대부분이 과세가 면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를 포함해 교회사역의 지경이 넓혀지고, 또 수익사업에 대한 경계선과 판단해석이 모호해짐에 따라 과세범위를 확대하려는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나 과세당국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일련의 종교인 과세문제가 이 시대 한국교회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교회가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국가는 교회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스스로 세상을 향해 더 거룩해 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가는 희망찬 한국교회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문의 sblee6@hanmail.net>
    • 오피니언
    • 칼럼
    2015-12-31
  • [교회법률상식] 은퇴장로는 원로장로 될 수 없다
    [질의] 대구중노회 산하 S교회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당회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난 P장로님을 원로장로로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을 하였습니다. 노회에서 이 사실을 알고 “법적으로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총회에 질의를 하였는데 총회에서는 노회가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법에 적합한지 답변을 바랍니다. (합동 대구 평신도) [답]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질의 내용의 문장에 따라 합동측 헌법으로 답한다. 1. 원로장로의 추대 절차에 대하여 정치 제5장 제5조(원로장로)에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던 장로가 연로하여 시무를 사임할 때 그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공동의회의 결의로 원로장로로 추대할 수 있다. 단, 당회의 언권회원이 된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 원로장로에 대한 규정 안에 질의자가 요구하는 해답이 다 들어 있다고 본다. (1) 원로장로의 추대 구비 조건 ① 시무장로로서 시무 사임이 전제되어야 하고 ② 원로장로로 추대 시기는 시무 사임을 제출할 때이어야 하고 ③ 시무 기간은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자이어야 하고 ④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2) 원로장로 추대 절차 ① 장로로 시무 기간이 20년 이상이 된 자로서 사임서를 제출할 때 교회가 그의 명예를 유지하고자 하면 ②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③ 투표수 과반수의 찬성으로 원로장로로 추대한다. 2. S교회 당회와 P장로에 대하여 S교회 당회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난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하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과연 S교회 당회는 은퇴한지 5년이나 지난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산하의 목사와 장로들이라면 이와 같은 법리 정도는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이는 P장로의 과욕에 의하여 S교회의 당회가 고의적인 불법을 행함으로 교회와 노회를 어지럽게 함에 다름 아니다. 3. 대구중노회와 총회에 대하여 대구중노회가 S교회의 불법행위로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한 공동의회까지 한 것을 인지하고 “법적으로 안 된다.”라고 S교회 당회에 지도했으면 일관성 있게 하회를 지도해야지 총회에 질의를 했다고 하니 법리를 몰라서인 것은 아닐 터인데 총회에 떠넘기려는 것 같아 보이고, 총회 역시도(혹 임원회?) 불법인 사실을 알면서도 법리적인 답변을 하지 아니하고 “노회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노회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 등은 노회 행정이나, 총회 행정의 흠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결론 원로장로의 추대는 노회의 허락이나 총회의 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요 당회의 직무에 속한 것이므로 당회 자체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원로장로의 추대 사항이 당회의 직무에 규정되지 아니한 것은 1993년도 헌법 개정에 의하여 원로장로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당회 직무에 원로장로 추대 업무를 추가하여 규정하지 아니한 연유이다. 본건 S교회 당회는 은퇴장로가 된지 5년이나 경과한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하여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를 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한 것을 무효로 하고, 대구중노회는 하회인 S교회 당회에 법리적으로 한결같은 지도를 해야 한다. 만일 이를 방치하여 S교회 당회가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는 전예를 남긴다면 전국 교회에 확산되는 것은 물론이요 전국 교회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혹 S교회 당회가 교회 헌법을 어기고 무리하게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한다면 상회인 대구중노회는 S교회 당회와 당회장에 대하여 그 책임을 추궁하여 교회의 법적인 질서를 철저히 바로 잡아야 한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12-31
  • [탐방] 부산 장대현학교에서 통일한국을 꿈꾼다
    탈북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TV에서 탈북민들을 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됐다. 통일한국의 염원이 한국 사회에 퍼지고 있지만 그래도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얼마 전 인권위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탈북민 25%가 차별과 무시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부산에 탈북민의 안정적인 남한 정착을 돕고 통일한국의 시대를 준비하는 기관이 있다. 기독교 정신을 기초로 통일한국의 소망이 될 탈북민청소년을 기독인재로 양성하는 대안학교, 부산 장대현학교다. 그동안 서울, 경기지역에 편중됐던 탈북민청소년 대안학교가 2014년 부산에서 개교하면서 영호남지역 최초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됐다. 하나님이 주신 일,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부산장대현학교는 교장인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임창호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임창호 교수가 2006년 미국에서의 목회를 마치고 고신대학교 교수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미국에서 했던 북한과 탈북자들을 위한 통곡기도회의 한국대표를 맡게 됐다. 한국에서 사직동교회 협동목사로 섬기면서 탈북자들을 상담하기 시작했고, 주일을 온전히 탈북민들을 위한 시간으로 섬겼다. 2007년 1월 한 식당을 빌려 첫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이것이 탈북민 교회, 장대현교회의 첫 예배였다. 자녀교육은 전 세계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장대현교회의 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창호 교수는 “약 30%의 탈북민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학교를 안 가는 아이들도 생긴다. 일반학교는 물론 대안학교도 적응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 부모의 고충을 들으면서 자녀교육의 절실함을 알았다. 고민 끝에 재단을 만들고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싶어 주위에 말을 하고 다녔다. 그때, 뜻있는 분이 10억이 넘는 4층 건물을 기증해주셨다.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구조 변경을 하고 통일부 소속 법인을 만들어 2013년 말에 학생들을 모집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학교를 시작하면서 3억이라는 돈이 들었고, 임 교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기도하면서 준비했다. 학교 운영을 위해 우선적으로 교사가 필요했다. 장대현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사자격증 소지자로 교사 경험이 있는 기독교인,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자격에 충족하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창호 교수는 옛 제자가 떠올라 그에게 연락을 했고 흔쾌히 응해준 제자는 동료 교사와 함께 장대현학교로 와주었다. 임 교수는 “영어교사도 필요했다. 그때 학교 고문으로 계신 분이 딸이 얼마 전 미국에서 왔는데 탈북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소개를 해주셨다. 그렇게 교사들이 한둘씩 채워졌다. 여러 곳의 도움이 있었다. 학교에 대해 듣게 된 디자인 회사 사장님의 재능기부로 학교 로고와 교복 등이 제작됐고, 한예종 교수님의 제의로 설립 후원음악회도 개최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나를 믿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교복과 신발을 후원해주신 분, 학교 카페를 열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신 분 등 그분들 덕분에 그렇게 3억이라는 돈이 채워졌고 2014년 3월 13일 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학생 전담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장대현학교는 2014년 부산시교육청으로부터 탈북학생 전담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임창호 교수는 학교 인가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100% 교사자격증이 있는 교사들과 눈높이에 맞는 교육, 그리고 커리큘럼을 꼽았다. 장대현학교는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교육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체득케 하고, 통일한국을 위한 기독인재로서 세계 인류평화를 위한 국제 감각과 능력 함양 고취를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 중등과정으로 기숙이라는 공동체 생활 경험을 통한 전인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원어민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기숙생활을 하면서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또 풀타임 전임교사와 파트타임 교사들이 탈북청소년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면서 치유적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과정으로는 보통교과, 대안(특성화)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토요프로그램으로 나눠, 일반교과수업, 특성화수업, 영성수업, 체험학습 및 해외 이동식 수업, 통일수업, 지역사회와 연계한 교육활동 등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재학생 전원 장학생제도를 실시,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통일시대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부터 시와 구청에서 후원금이 지급되고 있고, 올해부터 교생 실습이 가능한 학교가 됐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국무부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장대현학교를 사례로 강연해달라는 요청들이 많다. 이번 1월 중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에서 세미나를 가질 예정”이라는 임창호 교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기적의 연속이다. 부산에서 5번째로 인가받은 대안학교다. 2년밖에 안 된 학교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좋은 사역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학교는 100% 시민운동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30여 교회가 장대현학교를 돕고 있다. 내적 회복을 위한 눈높이 맞춤교육장대현학교가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내적치유다. 다른 학습 능력보다 내적치유, 자존감 회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이 같이 기숙생활을 하면서 신앙과 눈높이 교육으로 빠른 회복을 돕고 있다. 학생수가 18명인데 자원봉사자는 50여명이다. 그만큼 학생 한명 한명을 더 집중할 수 있다. 집중된 교육과 치유를 받은 아이들은 내적인 회복과 학업에서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8명의 아이들이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2015년에 브니엘고등학교와의 협약으로 한 달에 한 번, 두 학교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또 지역의 각 교회 중고등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남한의 아이들과 자연스러운 사귐을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임창호 교수는 “아이들은 자신들, 탈북한 사람들을 남한에서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탈북한 부모, 그들 스스로 탈북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한국에 와서도 그렇다. 이 아이들을 회복시켜 한국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이 학교가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탈북청소년을 위한 장대현학교에는 좀 특별한 학생이 있다. 임 교수는 “유일한 남한 출신 여학생이 있다. 특별한 케이스다”면서 “그만큼 입학할 때 조건이 있다. 이 아이가 남한의 대표 친구가 된다. 그래서 책임감이 필요하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관심, 그리고 편견없이 탈북한 친구들을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창호 교수는 장대현학교의 학생들이 통일한국시대 복음의 전도사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은 각자 사명이 있다. 통일이 됐을 때, 탈북 했던 이 아이들이 본인들의 사명을 가지고 다시 북한에 갈 것이다. 통일이 가까이 왔다. UN을 비롯한 전 세계가 북한과 통일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그 당사자다. 왜 교회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살아남으면서 다시 위로 올라 갈 수 있었다. 통일도 부산에서 시작되어 위로 올라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청소년은 꿈나무다. 부산과 경남 일대의 교회들이 통일을 준비하는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꼭 필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 뉴스
    • 탐방
    2015-12-3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