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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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대생 부산·울산 열린 옥외광고공모전서 수상
    ▲ (왼쪽부터)박사라, 박가은 씨 동서대학교(총장 장제국)가 최근 재학생들이 부산과 울산에서 열린 옥외광고 공모전에서 연이어 수상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디자인대학 박가은(그래픽루트 3년)씨는 ‘2016울산옥외광고대상전’에서 대상(울산광역시장상, 상금200만원)을 거머쥐었다. 동서대는 이 공모전에서 3년 연속 대상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창작도안 학생부 대상을 차지한 박가은 씨의 작품 ‘굿잠’은 낮잠카페 굿잠의 브랜드 이미지와 사인계획을 제안한 것이다. 안대의 형태를 이용하여 편안한 잠을 연상시키는 컨셉트를 선보였다. 또 ‘2016부산사인엑스포’에서도 같은 전공 박사라(그래픽루트 3년)씨가 창작디자인광고물 부문 금상(부산광역시장상, 상금100만원)을 수상했다. 박사라 씨는 웰빙 견과류 브랜드 ‘오도독넛츠’의 브랜드이미지와 사인계획을 제안했다. 입 속에서 견과류가 씹힐 때 나는 소리를 본떠 네이밍을 설정했다. ‘오도독넛츠’는 다양한 견과류 식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춤추는 캐릭터를 보는 순간 견과류 브랜드를 연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번 부산사인엑스포에서 동서대재학생 천희정 씨(동상), 박수옥, 송지수, 한지은 씨(장려상)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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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9
  • 故 구봉서, 기아대책 필란트로피 클럽 위촉
    ▲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은 고 구봉서 장로를 필란트로피 클럽에 위촉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고 구봉서 씨의 아들 구원회, 구정회 씨, 고은아 행복한나눔 이사장, 아내 정계순 씨, 아들 구명회 씨,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은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원로 코미디언 故구봉서 원로장로(서울 예능교회)를 기아대책 고액 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에 위촉했다고 18일 밝혔다. 구 장로는 생전 IMF로 기부문화가 위축된 시기에 연예인선교회를 조직해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아대책은 후원금으로 교육시설이 전혀 없었던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시 은예로 지역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예배당을 건립했다. 고등학교에는 ‘구봉서 학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위촉식은 지난 13일, 구 씨의 아내 정계순 권사와 자녀들,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 고은아 행복한나눔 이사장 및 기아대책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기아대책 염창캠퍼스에서 진행됐다. 이날 아내 정계순 권사는 “나눔을 강조했던 남편의 뜻을 이 자리에서 함께 기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은 “고인의 헌신이 씨앗이 돼 현재 은예로 고등학교에선 1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며 “인류애를 실천한 고인과 가족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기아대책 필란트로피 클럽은 1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으로 2014년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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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9
  • 교계ㆍ시민단체,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건립 축구
    ▲ 교계 및 부산시민운동단체가 17일, 부산시의회 앞에서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건립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부산시가 동구 좌천동에 건립할 것으로 밝힌 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두고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7일(월) 부산시의회 앞에서 찬반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교계 및 부산시민운동단체 등으로 구성된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부산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산시에 10년 전 무료급식소 실내이전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부산진역 노숙인무료급식소의 시작은 부산역광장 노숙인무료급식소다. 2005년 APEC 정상회의 관련 등으로 부산역이 부산의 관문인 점을 들어 실내급식소를 마련하기로 하고 부산진역으로 이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책위는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실내급식소 건립을 이제 부산시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려는 중에 ‘님비현상’으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면서 “부산시는 님비현상에 굴복하지 말고 예정대로 조속히 건립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또 “동구지역은 노숙인지원센터가 있어서 노숙인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들이 있기 때문에 지원센터가 필요한 곳”이라고 강조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시설이 있어야 노숙인들이 줄어들고 동구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노숙인지원센터 건립 반대 측의 ‘자녀들의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해 “무료급식소와 지원센터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고귀한 섬김과 나눔의 품격을 배울 것이며, 참된 이웃 사랑을 체험하며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면서 눈앞의 이익만 집착하게 되면 동구는 지역사회의 핵심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같은 날, 맞은 편에서는 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한편, 이날 센터 건립을 촉구하는 시위 맞은편에서는 좌천동 지역 재개발조합과 주민단체 등이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시의회의 최종 결론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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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8
  • 트리축제 발대식및 설명회 ‘썰렁’
    ▲ 지난 14일에 진행된 부기총 제8회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설명회 및 발대식. 이날 부기총 관계자와 교계 기자들을 제외하면 참석인원은 20명도 되지 않았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성호 목사)가 개최하는 제8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설명회 및 발대식이 지난 14일(금) 오전 11시 동래중앙교회(정성훈 목사)에서 열렸다. 부산교계지도자를 초청해 금년 트리축제 일정과 운영계획, 디자인소개 등 지역 교회의 참여 및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는 주최 측의 예상과 달리 부산교계지도자 30여명만이 참석했다. 이마저도 부기총 인사와 교계기자를 제외하면 20명도 되지 않는 숫자에 불과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현 부기총에 대한 부산교계의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부기총 사무총장 임영문 목사는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으로 모 방송국 운영위원장과 큰 소리로 실랑이를 벌였고, 본보 기자에게는 “각오해라”는 협박까지 일삼았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교계인사는 “손님을 초대해 놓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오늘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부기총이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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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8
  • 한·호기독교선교회, 본격적인 미얀마 의료선교에 나서다
    재단법인 한·호기독교선교회(이사장 인명진)가 지난 해 미얀마 노동자병원에 10억원 상당의 의약품과 의료기자재를 기증한데 이어 법인산하 화명일신기독병원(병원장 정재혁) 의료선교팀이 지난 10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 간 의료선교를 하고 돌아 왔다. 화명일신기독병원 정재혁 병원장과 홍길표 산부인과 과장, 문길남 간호부장 등 10명의 해외 의료선교팀은 미얀마 양곤의 중심부에 위치한 노동자병원에서 복강경 수술 9명과 외래 환자200여명을 진료하면서 이 지역 의과대학 교수 4명에게 공개수술과 초음파 기기를 통한 진료 등을 공개해 한국의 최첨단 의료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현재 미얀마는 모자보건환경이 열악한 나라로 10만건의 출산 당 산모 사망률이 200명으로 한국보다 12배나 높으며 5세 미만 영아 사망률도 1000건의 출산 당 57명으로 한국 보다 11배 이상 높다. 한·호기독교선교회 2014년부터 미얀마 양곤 노동자 병원과 MOU를 체결하고 지난 2015년 2월부터 김정혜 산부인과 의사와 정민자 간호사를 의료선교사로 파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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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7
  • 고신 증경총회장 이금도 목사 소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증경총회장 이금도 목사가 14일 오전 9시 소천했다. 이금도 목사는 1923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1959년 고려신학교 제13회로 졸업, 의령마산교회, 함안 구혜교회, 마산동광교회, 거창교회, 부산 삼일교회, 마산제일문창교회 등에서 시무했으며, 1977년 예장고신 제27대 총회장을 역임했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7일(월) 오전 9시로 예정돼 있다. 빈소는 마산의료원 장례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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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4
  • 부산 노숙인센터 건립 두고 갈등
    지난 9월 부산시 동구의회 의원들이 부산시가 추진하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업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가운데 이번에는 시민, 사회단체가 동구의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해 노숙인센터 건립을 두고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노숙인무료급식단체협의회와 부신시민연대 등 4개 단체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동구의회 의원들의 결의문 내용에는 일부 지역주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내용만 있고, 노숙인이나 쪽방거주인이나 홀로어르신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이나 배려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자도 들어 있지 않다”면서 “‘누구나 기피하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라는 표현은 반인권적인 편견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을 양산하는게 아니라 노숙을 벗어나게 하고 잠재적인 노숙인을 예방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노숙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대책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할 구의원들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부산진역 인근 동구 좌천동 부산교통공사와 코레일 소유 철도용지 1275㎡를 사들여 노숙인 지원 전문시설 희망드립종합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구청, 구의회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부산시는 주민들과 구의회를 계속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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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4
  • [좌담] 경남(법통)노회 100년사(1916-2016) 출판기념 좌담회
    금년이 경남(법통)노회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경남(법통)노회에서는 노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00주년 기념교회 설립, 기념음악회, 2회에 걸쳐 기념역사세미나, 그리고 경남(법통)노회 100년사(1916-2016)를 발간했다. 지난 제66회 총회 둘째날(2016.9.21) 저녁 경남(법통)노회 설립 10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고, 제185회 경남(법통)노회 정기노회(2016.10.10.) 첫 날 저녁 설립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특히 노회설립 100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경남(법통)노회 100년사(1916-2016)’를 발간했다. 집필에 참여한 편찬 위원들(위원 6명)을 모시고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 시 : 2016년 10월 6일 오후 5:00장 소 : 사림교회당대담자 : 허창수 목사(동성교회), 김종문 목사(목은교회), 변성규 목사(신촌교회), 성인수 목사(한길교회),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 양재한 장로(한빛교회) 사 회 : 신상준 기자 신상준 기자(이하 신) : 먼저 경남(법통)노회 100년사를 편찬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첫 질문으로 위원회는 언제 구성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활동, 그리고 각각 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맡아 수고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위원장을 맡아 수고하신 허창수 목사님부터 한 말씀 해 주시죠. 허창수 목사(위원장) : 먼저 경남노회가 1916년 9월 20일 설립된 이후 지난 10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경남(법통)노회는 제161회 정기노회(2003.10)에서 ‘기독교문화연구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경남노회에 전입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기독교문화연구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노회록을 찾는 일을 시작하여 영인본 일부(제1회부터 40회)를 찾았고, 그리고 촬요와 많은 자료들을 찾았습니다. 찾은 노회록과 자료정리를 하다가 1916년 9월 20일이 경남노회 설립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남(법통)노회가 한국교회사에 매우 중요한 역사가 있는 노회이며 불의와 싸운 노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자료를 정리하여 ‘경남(법통)노회 역사자료집’을 편찬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이 경남(법통)노회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노회 앞에 알리고 경남노회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로 제안하였고 노회가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2013년 10월 정기노회에서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의 편찬을 ‘기독교문화연구위원회’에 맡겨주었습니다. 기독교문화연구위원회는 ‘100년사 편찬위원’ 6인(허창수 목사, 김종문 목사, 변성규 목사, 임명곤 장로(나중에 성인수 목사), 양재한 장로, 강종환 장로)에게 ‘경남(법통)노회 100년사’를 편찬하도록 맡겼습니다. 그때부터 편찬위원들은 자료를 수집하고, 수시로 모여 수집한 자료에 대한 토론도 하며 ‘100년사’ 편찬하는 일에 합심하였습니다. 저는 위원장으로서 편찬위원들을 독려하며 100년사에 대한 화보와 부록 부분을 맡아 진행하였습니다. ‘한국장로회총회록’과 ‘경남(법통)노회록’을 중심으로 경남노회의 전체 통계와 자료들을 정리하였으며, 역대 경남노회장들의 사진을 수집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기관별 종합자료와 노회의 각종 행사 사진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경남(법통)노회 100년사’를 편찬하여 한국교회에 내 놓을 수가 있게 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편찬위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행복했습니다. 신 : 특정 교회역사가에게 전체작업을 일임하지 않고, 노회를 잘 아는 목사, 장로님들이 편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변성규 목사 : 경남(법통)노회의 역사에 대하여 연구가에 따라 편견과 오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어, 이 책을 역사학자에게 의뢰하기보다 직접 편찬하기로 한 것입니다. 또 경남(법통)노회는 고소 반고소로 말미암아 총회가 나누어진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손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노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사업 몇 가지를 준비해 오던 중 100년사 출판을 위해 기독교문화연구위원회를 중심으로 실력 있고 관심 있는 분들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목사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로님 중에서도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님과 오랫동안 법원에 근무하셔서 법을 잘 아는 분이 함께 하게 되어 정말 멋진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것입니다. 신 : 경남(법통)노회 100년사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경남노회의 시대별 큰 사업(사건, 사고 등)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양재한 장로 : 저희 위원회가 구성되고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것은 3년전부터 인 것 같습니다. 처음 2년은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수집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어떤 순서로 기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우리 위원 중에는 교회사를 전공한 학자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2015년 가을 정기노회를 마친 후 100년의 역사를 기술하려면 어떤 체계로 기술하여야 할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전체를 5장으로 구분하여, 첫째 장에 개신교의 전래, 경남 부산지역의 복음전래와 경남노회가 조직된 1916년까지 역사를 기술하고, 둘째 장에는 1916년 경남노회가 조직된 후 일제하에서의 경남노회, 즉 3·1만세운동, 신사참배거부운동, 일제말기의 경남노회의 역사를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세 번째 장에는 1945년 해방이후 고신총회의 조직, 승동측과의 합동과 고신측의 환원을 다루고, 네 번째 장에서는 고소와 반고소측과의 갈등과 합동과정을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장에서는 현재 경남(법통)노회 역사, 즉 경남(법통)노회 현대사를 기술하기로 하였습니다.이를 바탕으로 6분의 위원들에게 장별로 집필책임을 맡겨 초고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현대사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 장을 정리하였습니다. 초고 취합 후 전체 정리작업을 제가 맡았습니다. 6분의 편찬자가 각자 기술을 하였으므로 통일성 등에 대해 상당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고등신학연구원의 김재현 교수에게 의뢰하여 보정작업의 과정을 거쳐 통일성의 문제를 보완하였습니다.집필진 모두가 교회사 전문가가 아니라 의욕만 앞서 실수한 부분이 없는지 독지들과 교회사 전문가들의 반응을 긴장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 :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신사참배, 교단분열과 분리 환원, 고소 등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성인수 목사 : 저는 100년사 편찬위원회에 뒤늦게 합류한 편입니다. 고소 반고소와의 갈등부분에서 제4장을 맡은 편찬위원들이 객관적 기술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셨고, 제가 맡은 분야는 기존 자료가 많아 다른 분들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해방 후의 한국 장로교회 재건을 시작으로 경남(법통)노회의 역사적 정통성과 고신총회의 조직, 그리고 합동과 환원까지 비교적 풍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00년사 발간을 위해 지난 5월에 노회 세미나를 가졌는데, 이 때 이상규 교수님이 제가 맡은 부분을 주제 발표하셨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사실 많은 부분 이 교수님의 글을 참조하면서 썼습니다. 아까 질문에서 이 주제가 민감할 수 있다는 말이 저에게는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장로교 통합총회에서 신사참배의 과오를 참회하고 사죄문을 선포했다고 들었는데, 참 다행스런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민감할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부분에서 교파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고 서로 합리화 하고 서로 정죄하다보니 분열의 골이 메워지지 않고 형제교단으로서 하나 되지 못하였습니다. 신사참배나 교단분열 이야기만 나오면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 같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꼭 명절날 형제들이 모여 식사하다가 정치이야기 나오니까 서로 여당 야당 갈라져서 싸우다가 의가 상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번 경남(법통)노회 100년사 출판을 계기로 이 주제가 더 이상 민감한 내용이 아니라 공론화되어서 서로의 아픔을 치료해주고 분열의 어색함을 바꾸어주는 화해와 용서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신 : 최근 부산노회(한상동기념사업회)에서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에 대해 역사왜곡이라고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으로 봅니다. 강종환 장로 : 그 분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송상석 목사가 일제의 고등계 형사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두 기간을 지적합니다. 한 기간은 통영과 고성에서 일제의 고등계 형사였다는 주장인데 22세 전후에 짧게 일제의 경찰로 근무한 것은 맞습니다만 연령이나 경력으로 고등계 형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복음을 알기 전이었습니다. 경찰을 그만두고 원량초등학교에 교사로 있으면서 복음을 받아 추도교회에서 전도활동을 한 것은 경남노회록과 추도교회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1940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황해경찰서에서 악질적인 고등계 형사로 근무했다는 주장인데 송상석 목사는 1934년 평양노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았고, 목사가 되기 전부터 절제운동에 앞장 선 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을 고등계 형사로 근무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신사참배반대운동에 앞장섰다는 자료도 가지고 있습니다.또 하나는 송상석 목사가 신사참배반대로 투옥된 적이 있다는 것이 허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문사 발행 ‘기독교대백과사전’ 9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왜곡은 특정 의도를 갖고 증거도 없이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남(법통)노회 100년사’는 모두 근거를 갖고 기록했으며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별도의 공식자료집 3책, 비공식 자료집 32책을 만들었습니다. ‘노회사’가 아니고 송상석 목사의 개인 전기였다면 고신교회의 지나간 더 많은 일들을 다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양재한 장로 : 이 좌담회를 통해 한상동기념회에서 문제로 제기한 두 가지 중 하나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경남(법통)노회에 소속된 6분의 편찬자가 3년간 집필에 참여한 수고의 결과물입니다. 동 기념회에서 “실제 원고 작성자는 따로 있다는 점이 확신된다. 그렇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중대한 사건이 아닌가?” 이 부분은 정말 사실을 왜곡하였으므로 정중한 사과를 요구합니다.또 하나는,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하여 '경남(법통)노회 100년사'가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노회사’이기 때문에 다루지 못한 내용을 포함하여 그 내용을 지상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다만 ‘한상동기념사업회’란 이름에 숨어서 실명을 밝히지 않고 고신교단의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님에 대한 패륜적 행위를 하는 작금의 모습은 심히 안타깝습니다.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에는 경남(법통)노회 100년의 역사를 바르게 기술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누가 쓴 글인지 모르지만 ‘능멸’, ‘농락’과 같은 용어선택은 지극히 상식에 벗어나 있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신 :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느끼신 감정, 고소와 반고소 갈등,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특별한 교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종문 목사 : 지난 100년간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 기독교역사에 기록될만한 부흥을 이루어냈지만, 장로교 단일총회가 160개 혹은 200여개의 총회로 분열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적인 감정으로 자르고 밀어내고 일반 법정에 고소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신총회의 고소 반고소의 아픔도 진리문제이기 전에 정치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본질을 벗어난 정치적 야욕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남(법통)노회 100년사 편찬에 수종들면서 제 자신부터 말씀을 따라 교회를 섬기려고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화평에 힘써야 하나 진리에 더 충실해야 하고 편협하지 않으면서 교회를 사랑해야 후대가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신 : 장시간 수고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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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담/대담
    2016-10-13
  • [기독교 교양 읽기 19] 종교개혁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 앞에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듬해 6월,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가 보낸 파문을 경고하는 교서를 비텐베르크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림으로써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루터보다 102년 앞선 1415년 7월 6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던 얀 후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어 체코의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종교개혁의 씨앗은 유럽 곳곳에서 서서히 열매를 맺었다.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가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교황제도에 대해 성서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하는 등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522년부터 본격적으로 종교개혁 투쟁에 나섰다. 츠빙글리는 1531년 가톨릭 진영과의 카펠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전사하였다.이들 선배가 목숨을 바쳐가며 전개한 종교개혁은 장 칼뱅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의 깃발을 역사 속에 우뚝 세웠다. 16세기 당시의 상황은 프랑스의 위그노 탄압 등 아직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오직 성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홀로서기는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있게 만들었다.이 책은 대학원생들과 이들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 체코,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도시들을 방문한 기록이다. 후스, 루터, 츠빙글리, 칼뱅이 머무르며 말씀을 전파하고 몸으로 저항했던 그곳을 살펴본다. 내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한다.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기독교계는 내년에 맞이할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 교회에 위기감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우리 모두 무릎 꿇고 겸손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인가, ‘종교혁명’인가?김길구 :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부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얀 후스로부터 따지면 600여년 전부터 시작된 ‘종교개혁(reformation)’은 오히려 ‘종교혁명(revolution)’이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에 관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혁명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김현호 :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개인적이긴 하지만, 철학이나 사회학 쪽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종교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분이 여럿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문제점만을 고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자 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김수성 : 후대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당시 사회에 몰아쳤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보지 않고, 루터에게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종교개혁을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본다면, 루터의 주장과 행동은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는 한정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일어났던 독일의 농민전쟁에 대해 취한 입장도 그러하고.김길구 :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하면 우선 1517년의 루터(Martin Luther)를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4명의 선각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개혁의 흐름은 얀 후스로부터 1750년경까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방대한 운동입니다. 후스 외에도 루터에 의한 독일 루터교회, 칼뱅주의로 일컬어지는 개혁주의운동, 독특한 영국의 성공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내부에서 일어난 제2차 종교개혁과 재세례파 등 급진 종교개혁은 물론, 여기에 맞선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운동까지도 포함됩니다.김현호 : 체코의 얀 후스(Jan Hus)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이끌다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후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영국의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1370년대에 이미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영국이 교황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 종교개혁은 단순히 가톨릭교회의 변화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그림은 Diebold Schilling(1485)의 ‘얀 후스의 화형 모습’. [출처: en.wikipedia.org]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김길구 : 츠빙글리의 경우는 시의회와 손잡고 기독교적 공화정을 만들려고 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재세례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단순히 ‘종교개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성 : 실제로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선각자들은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도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기도 하고, 죽은 후에 시체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잃지는 않은 분들도, 항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 운동을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혁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론할 때 당시 가톨릭교회 내의 자정운동 노력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분위기와 시대적 환경 등, 시대적 여건이 절묘하게 들어맞은 부분도 있습니다. 김현호 : 종교개혁을 기독교문화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은 가톨릭교회의 독점적 문화였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성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였죠. 가장 대표적으로 만인제사장설을 들 수 있습니다.김수성 : 종교개혁을 추구한 분들이 역점을 두고 주장했던 것 중 하나가 ‘오직 성서’였습니다. 즉, 성서에 기준해야 함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서를 자기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조치였습니다.김길구 : ‘오직 성경’을 비롯하여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등과 함께 만인제사장, 성만찬 등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했던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핵심적 요소의 본래적 의미는 자유 평등 민주 등 근대정신의 기독교적 고백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즉, 교황이나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입니다.김현호 : 종교개혁에 있어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했지만, 이들 성서가 인쇄되어 대량 보급되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라틴어 성서는 대부분 필사본이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구하기조차 어려웠었죠.김수성 : 1999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국의 ‘라이프’지가 학자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무엇인가를 설문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꼽았던 사건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었습니다. 활자인쇄술은 근대사회로의 변혁을 가져온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회개, 청빈, 희생의 정신 되살려야김현호 : 현시점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회개와 개혁, 청빈과 순종, 희생과 성결을 추구한 그 정신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청교도정신으로 대표되는 칼뱅의 개혁교회 전통이 장로교회로 이어져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교회도 장로교회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일까요? 이제 개혁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개혁하지 못한 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입니다.김현호 : 이 책은 신학교 대학원생들이 종교개혁지를 순례한 기록입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종교개혁지 순례가 봇물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김수성 : 대학원생들의 필수과목 중 하나로 ‘종교개혁지 순례’를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과 교회의 지원이 당연히 있어야겠죠. 공부할 때부터 현장에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졸업 후 목회할 때 그 정신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 종교개혁은 반동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권을 중심으로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구세계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는 삶의 모든 부문에 폭발성을 가졌으나,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을 교회 안에만 국한하여 개인의 신앙에서 사회적 성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기독교의 위기를 자초하였습니다.다음에는 김기현 목사의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복있는사람, 2016 개정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개혁 이야기》 / 사토 마사루 / 바다출판사《역사를 바꾼 종교개혁가들》 / 이동희 / 넥서스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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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3
  • [시사칼럼] 춘천 어느 책방 이야기
    새가족부 집사님께서 과일 접시 한복판에 녹차꽃 한 송이를 두셨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꽃인데 정말 예뻤습니다. 게다가 흰색 꽃잎 하나마다 저마다의 풍미가 있다지요? 쓴맛의 고(苦)와 단맛의 감(甘), 신맛의 산(酸), 짠맛의 함(?), 떫은맛의 삽(澁), 그러고 보니 이 꽃잎 한 송이에 우리네 인생의 진면목까지 다 담겨 있는 셈입니다. 녹차꽃에 홀려서인지 녹차를 한 잔 끓였습니다. 녹차 향기가 가을 향기와 뒤섞여 묘한 운치를 자아냅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그랬는데, 가을꽃 녹차 내음 속에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것에 비견할만한 인생의 낙이 또 없지 싶습니다. 올봄방학 때 속초로 가족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저에게는 괴벽(怪癖)이 하나 있습니다. 책방을 찾는 일입니다. 사실 21세기 여행지에서 책방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가난한 고학생들에게는 착한 도서관이기도 했던 서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춘천에서 서점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체인점도 아니고 백화점 서적 코너도 아니니 그냥 동네서점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그게 미안할 정도로 근사한 책방을 길가에서 그냥 찾았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진열된 책들을 보고는 더 놀랐습니다. 대형 서점이나 신간 안내 책자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니 참 좋은 책들이 즐비한 게 아닙니까? NHK에서 취재하고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가 쓴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서울: 동아시아, 2015) 등이 그 때 구입했던 책들입니다. 차로 몇 시간 거린데도 묘한 예감(?) 탓인지 계산하면서 회원 가입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서점이 신문에 났습니다. 10월 8일자 C일보는 주말 섹션에 <손님 줄어드는데도 매장 키운 속초의 60년 된 책방, 3대째 내려오는 D 서점>이라는 제목의 취재 기사를 실었습니다. 1956년 할아버지가 처음 시작한 서점을 맡기로 한 막내 손자 김영건 씨는 망설이던 끝에 “해 보자, 대신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어보자!”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점 기능에 충실한 서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래된 서점이 관광지 역할을 하면서도 책은 못 파는 경우가 많잖아요. 손님들이 우리 서점 와서 모르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면 그게 바로 매출로 이어질 거란 생각에 공간도 개방적으로 꾸몄죠.” 장소를 이전하고 주차장과 실내 공간을 늘렸습니다. 동네책방수난기가 난무하는 시대를 그렇게 역주행했습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책을 읽다가 사 가기 시작합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는 사람들이 생겼는가 하면, 매달 독서 모임이 열리고, 급기야는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들리는 여행 코스가 되었답니다. 가끔 이렇게 기분 좋은 승리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설가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면서 느꼈던 묘한 쾌감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소소한 일상 가운데 깨달은 인생의 진리 같은 것 말입니다. “서점은 서점다워야 한다.” 서점뿐이겠습니까?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목사가 목사다워야 한다.’ 가을은 서점에게만큼 교회에도 중요한 계절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서점만큼이나 개신교도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까? 춘천 책방은 시류 앞에 기죽지 않고 다른 것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서점으로서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부흥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교회도 기죽지 않고 다른 것 쳐다보지 않고 오직 교회로서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면, 부흥의 역사를 새롭게 써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녹차 향기 가득한 이 가을에 나머지 책방들도 함께 그리고 교회도 근본으로 돌아가(ad fontes)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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