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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부산노회 회관 시공사 결정 임박 3개 건설사로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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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회회관 신축 시공사을 선정하는 노회회관건립위원회<위원장 한재엽목사>는 지난 3l일 모임을 갗고 7개 건설사가 참여한 시공사 가운데 3개 건설사로 압축하고 나머지 3개 시공사에 대한 수주금액을 다시 받아 15일 결정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확인 했다, 그리고 위원 중 진장명장로는 노회장인 관계로 사임하고 대신 구덕교회 김종윤장로을 위원으로 넣었다. 회관 신축에 따른 제반 비용은 시공하는 것 이외 부가세 약 2억 원과 내부 시설등 제반 비용이 만만 치않을 것으로 간주되어 가장 저가 입찰에 임할 경우 부실 우려에도 염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위원들의 고심이 깊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15일 최종 결정에 내정가격을 써넣은 상태로 개봉하여 결정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회장 진장명장로는 위원회가 결정을 해도 임원회가 다시 검토하여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경우 노회장이 최종 계약을 체결한다고 하여 제2의 관문이 남아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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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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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언론의 ‘종교편향’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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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리축제와 관련하여 일반언론들의 종교편향성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부산에서 발행하는 A 일간지 신문은 트리축제가 너무 종교색이 짙다는 보도를 했고, B 방송도 광복동 트리축제와 해운대구 트리축제를 비교하면서 종교색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교계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4월 초파일 부산역에서 대규모 종교행사를 하는 불교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이 없으면서, 유독 트리축제를 갖고 종교색을 지적하는 일반언론의 보도형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교계 모 인사는 “주최가 당연이 개신교인데, 어떻게 전혀 종교색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라며 일반 언론의 ‘억지 보도’라고 평가 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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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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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시화운동본부, 새 본부장에 허원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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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시화운동본부 법인 이사회가 새 본부장에 산성교회 허원구 목사를 사실상 내정했다. 오는 15일 성시화운동본부 정기총회에서 인준을 받을 경우 새 본부장으로 확정된다.
허원구 목사는 그동안 성시화운동본부 부본부장 직을 맡아 초창기부터 성시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다만 정필도-최홍준-안용운 목사로 이어오면서 성시화운동이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안정적으로 잘 정착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감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성시화 내부에서는 “성시화운동본부는 초창기와 달리 이미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와도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 본부장 안용운 목사는 성시화운동본부 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현 이사장 최홍준 목사는 정필도 목사처럼 고문에 추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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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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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공개서한에 할 말 많은 병원집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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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영안 이사장이 복음병원 구성원들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최근 발생한 리베이트 사건 문제와 해당 의사들의 직위해제문제, 그리고 트루빔과 인사문제 등에 대한 이사장 개인 의견을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의사들과 병원 집행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몇일 전 병원 교수협의회가 ‘강영안 이사장님께 드리는 공개서한’을 재단 사무국에 접수시켰다. 교수협은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한 사건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와 자성을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직위해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속병원의 경영상 충격과 여파를 고려해 달라는 청원은 했지만, 징계처분을 하지 말아 달라는 청원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불법 리베이트가 드러난 이후 신속히 대처하여야 할 최종 책임이 있는 이사장님은 적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태의 위중함을 간과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며 의과대학과 병원의 교수들 및 모든 구성원들을 향한 날카로운 질책만이 이사장의 책무인지를 묻고 있다.
지난 12월 1일에는 병원장이 ‘현장과 소통을 위한 경영소식지’를 통해 병원 집행부의 입장을 밝혔다. 임 학 원장은 이번 리베이트 사태에 대해 깊이 사과를 하면서 이사장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병원의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이사장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병원집행부의 불가피한 사정과 오해를 밝히는 내용이다. 임 원장은 “(직위해제로 인해)진료공백, 전공의 수련 및 교육 공백, 이에 따른 일부 과의 기능 마비, 관련 진료과에 미치는 파급 효과 등을 예견할 수 있다”며 병원에 큰 충격이 될 것 이라며 월 20억 이상 적자를 예상했다. 또 방사선치료기 트루빔을 왜 가동하지 않는지 여부와 직원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원장의 입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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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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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으로 ‘소풍’ 가셨던 영원한 사도 장성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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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6일 故 장성만 목사가 하늘나라로 간 지 꼭 1년이 된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교계인사와 장 목사가 심혈을 기울인 21세기포럼 관계자 및 박성기 목사 등 지인 50여명이 지난 11월 29일 동서대학교 민석 도서관 6층 강당에서 서거 1주기 회고예배와 간담회를 마련해 장 목사의 회고담을 나누는 뜻 깊은 자리를 가졌다.
△故 장성만 목사을 회고하며...
부산교계뿐 아니라 한국교회 거목이었고 괄목할만한 믿음의 유산을 남긴 장성만 목사가 우리 곁을 떠난지 1년이 됐다. (사)21세기포럼을 위해 자신의 사제 10억 원과 부산교계 뜻있는 홍순모, 이성만, 양한석 ,김임권, 강판영 장로 등이 주축으로 20억 원의 거금을 출연하여 재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해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와 문화와 교육에서 헌신한 이들을 선정해 문화대상으로 시상하며 격려하면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이 선한 사마리아운동은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장 목사는 기독문화대상이 10년이 되는 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산교계의 큰 별
흔히들 사학계의 메카로 일컫는 부산은 故 김길창 목사가 남성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 경성대학교 등을 설립했고, 故 정태성 장로는 성지중·고교와 성창기업을 일구고 부산외국어대학교를 설립했었다. 장성만 목사는 맨주먹으로 외국에 가서 강의와 호소로 모금했고, 그 땀과 눈물이 베인 숱한 인고의 결정체인 경남정보대학과 부산디지털대학교, 2만 3천명이고, 졸업생 동문이 19만 명이 넘는 동서대학교를 불과 40여년 만에 이루어 놓았다.
현재 동서학원이 있는 산 언덕은 이전에는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처럼 찬 공기와 얼음 같은 바람이 불던 곳이었다. 냉정이라는 지역이 골고다 언덕과 흡사한 불모지를 복음의 횃불이 녹아 상아탑으로 수놓은 꿈의 동산으로 만들었다.
그가 남긴 32권의 저서를 통해 역경을 넘어, 심은 대로 거둔다는 평소 근면과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다. 왕성한 문필의 기력과 대학교회 강당에서 외쳤던 복음의 사도로서 부산에 다음세대을 향하여 꿈과 비전을 심어줘 복음화율이 가장 저조하다는 부산 교계에 복음과 연합된 화합하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룬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본보에 ‘장성만 칼럼’으로 10년간 연재했다.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당대의 문필가이자 설교자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강원용 목사는 설교와 웅변은 잘해도 글은 별로로 모두 잘하기는 드문데, 장 목사만은 글과 스피치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으로 평판이 높다. 또 대학교회에서 설교하며 받은 사례비 전부를 교회 파이프오르간 구입에 써달라고 전달해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시구를 적어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쳐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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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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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상소건, 소원건은 경유인 필요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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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책에 상소건과 소원건은 부전지가 필요치 않다고 되어 있고, 얼마 전 노회 목사 장로 세미나에서도 그렇게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101회 총회 재판국의 보고 내용에 보면 “하급 치리회 경유 미비” 등의 이유를 붙여 기각 처리하였는데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에 대한 법리적 해석과 답변을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합동 K목사)
[답] 질의자가 제시한 바와 같이 합동 총회의 기관지인 기독신문에 보도된 “제101회 총회 헌의안 처리 결과” 내용 중에 “재판국 보고”를 보니 질의 내용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판결문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 내용을 열거하면, “① 서평양노회 김충주 씨 외 1인의 서평양노회 서화석 씨에 대한 상소의 건 : 당회 경유 미비로 기각 ② 서광주노회 광주새한교회 박성철 씨의 서광주노회 김종인 씨 외 1인에 대한 고소장(소원장) : 절차 미비, 하급 치리회 경유 미비 부전지 미비로 기각 ③ 경평노회 전동운 씨의 경평노회 영동중앙교회 이순희 씨 외 9인에 대한 상소건 : 경유 미비로 기각” 등이다.
어찌 총회 재판국이 하급 치리회 경유인 미비를 운운하면서 상소인과 소원인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소장과 소원장에는 하급 치리회의 경유인이 필요치 않은 것이 현행 헌법이요, 지극히 상식에 속한 사안이다(교회 법률상식 pp.139-141 참조).
본 사건의 연유는 몇 년 전 총회 사무국 직원 중에 필자에게 전화 상담을 해온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질의에 답을 한 후 “총회사무국이 왜 상소건과 소원건에 경유인을 요구하느냐?”고 반문을 한바 “우리 사무국은 옛날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는 답이었다. 그래서 총회뿐 아니라 노회나 대회에서도 상소건과 소원건은 경유인이 필요치 않고 경유인을 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경유인이 없다는 이유로 서류 접수를 거부해서는 안 되고 접수하는 것이 현행 헌법이라고 자문을 한 바 있다.
모르기는 해도 그 후부터는 사무국에서 경유인을 받아 제출한 상소장과 소원장이나(전례대로?) 경유인이 없는 상소장과 소원장(헌법대로?) 모두를 접수하여 총회로 보낸 것으로 짐작되고 총회 재판국은 종전과 같이 경유인 유무를 확인하여 경유인이 있는 상소장과 소원장은 재판을 하고 경유인이 없는 상소장과 소원장은 기각 처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교회 헌법 어디에도 상소장과 소원장에 경유인이 없는 서류는 접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고 총회 규칙에도 없다. 다만 각 노회 규칙에 “노회에 제출하는 서류는 정기노회 개회 ○○일 전까지 당회장과 시찰장 경유인을 받아 노회 서기에게 제출한다.”는 자체규정에 의하여 노회에 제출하는 모든 서류에 한하여 경유인을 필요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노회가 총회에 제출하는 헌의서, 청원서 등도 경유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욱이 “상소인은 하회 판결 후 10일 이내에 상소 통지서와 상소 이유 설명서를 본회 서기(서기가 부재 혹 시무불능 시에는 회장에게 제출한다.)에게 제출할 것이요(권징조례 제96조)”라고 했고, 소원인은 “소원에 대한 통지서와 이유서는 하회 결정 후 10일 내로 작성하여 그 회 서기에게 제출할 것이요(권징조례 제85조)”라고 하였으니 하급 치리회에 10일 이내에 경유인을 받는 것은 사무 일정상 절대 불가한 일이다. “10일 이내”라는 기간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서기 부재 시에는 회장에게 직접 제출하게 한 것이다. 회장이 직접 접수하는 서류는 모든 서류 중 유일하게 본 건뿐이다.
다만 본회 서기가 상소 및 소원 통지서를 거부할 때에 한해서 상소 및 소원 통지서 대신 부전지를 붙여서 상회 서기에게 상회 개회 익일 이내로(권징조례 제97조, 동 제87조) 총회 서기에게 제출한다.
혹 정치 제12장 제4조에 “총회는 … 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출하는 … 상고를 … 접수하여 처리하고”를 경유인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는 마음에서 첨언한다. 여기의 합법적 서류란 하급 치리회 경유인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소건은 ① 권징조례 제96조에 명시한 “하회 판결 후 10일 이내에 본회 서기에게 상소 통지서의 제출” 여부, ② 동 제97조 상(上)에 명시한 “상회 정기회 개회 익일 이내에 상회 서기에게 상소장 제출” 여부, ③ 동 제97조 하(下)에 명시한 “상회 정기회 개회 익일에 총회에 출석” 여부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원건은 ① 권징조례 제85조에 명시한 “하회 결정 후 10일 이내에 본회 서기에게 소원 통지서 제출” 여부 ② 동 제87조에 명시한 “상회 서기에게 소원장 제출” 여부 ③ 통상적 소원은 그 회의 회원이면 소원할 수 있으나, 하회의 결정을 상회 결정 시까지 중지시키기 위하여 3분의 1 이상의 연명으로 하는 소원은 반드시 사건 결정 시에 참석했던 회원이어야 한다(권징조례 제84조, 제8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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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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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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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무엇일까? 위에 있는 권세를 알기 위해서는 아래에 있는 권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23절에 예수님과 유대인들과의 대화가 나온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위로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빛과 선함이 가득하고 아래로 갈수록 신의 사랑과 진리는 없고 거짓과 악이 가득한 어두운 곳이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주님사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래에 있는 권세들이란 지옥에서 나오는 것으로 걱정하고 분노하며 소유와 지배욕에 매여서 거짓과 악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처럼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강한 요구로 세우기는 하셨지만 왕은 반드시 율법에 순종할 것을 명하셨다. 율법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말한다. 이렇듯 성경은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더 위에 있는 권세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정치, 권력자들이 로마서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세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세상의 힘을 갖고 자기를 높이며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거짓과 악을 행한다면 이것은 아래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권세(건강, 기술, 지위, 돈 등의 능력)를 주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권세로 거짓과 악을 제거하고 자유와 행복과 웃음이 가득한, 사랑과 선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이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돈과 권력 등의 힘을 얻기 위해 시작을 한다. 그 때는 ‘나는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서 이 땅에 어렵고 힘든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겠다.’는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정작 지위와 힘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이익과 돈, 인기, 권력을 위해 거짓과 악을 옹호한다면 이것은 아래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이든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과 선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다른 것도 소중하지만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을 월등하게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또 세상의 권세를 얻기 위한 시작이나 과정이나 결과 등 모든 것 속에 사랑과 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돈 벌기를 원하고 많이 벌기를 원하지만 거짓과 악을 옹호하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또는 정치 이념도 중요하고 함께 있는 관계나 조직도 중요하고, 종교도, 가족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자신의 전문지식과 힘을 선을 행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 진리를 아는 것, 많이 배웠다는 것, 많이 가진 것, 지위가 높다는 것은 아직 과정이며 이 모든 힘으로 사랑과 선을 행하는 데까지 가야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다. 한 예로, 뉴욕의 도심에서 동영상 실험을 했다. 한 겨울에 반팔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검은 비닐을 뒤집어쓰고 도와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두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한 명도 그 아이를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두 시간 후에 노숙자 한명이 나타나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하며 돈을 주고 밥을 사먹으라고 했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그 노숙자만이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우리들은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이 자신을 위로 혹은 아래로 이끌게 될 것이다. 세상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늘 위에 있는 권세들인 사랑과 진리와 선을 선택하여 위를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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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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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깨어짐의 축복 (시 5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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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예배드리기를 바라십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곳에 함께 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세상 가운데 살아가노라면 하나님 없이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세상적인 관심거리와 재미를 쫓고 성공과 부에 눈멀어 우리의 마음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메말라지고 강퍅해 집니다. 좀 잘 나간다 싶으면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 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가 좋은 게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복 받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잘해서 잘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일상의 편하고 바쁜 삶에 젖어듭니다. 우리의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너리즘, 형식화, 제도화되어 습관처럼 늘 하듯이 의무감에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배를 싫어하시고 받으시지 않습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겸손히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잘 나간다고 복 받은 것인 양 스스로 교만에 빠진다면 정말 복 받은 것일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주지는 않습니다. 버릇이 없어지고 감사도 모르고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난에 약한 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겐 시험과 환난과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게 하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고찰해 보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성숙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꺾어지고 깨어지고 크나 큰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건방 떨고 세상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인간은 좀 편하고 잘 나가면 하나님을 금세 잊고 교만에 빠지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깨어짐으로 내 삶을 다시 리셋하시고 리모델링해 가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깨어짐으로써 우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복 받은 것이지 않을까요?
깨어짐의 완성, 흙이 철저히 깨어졌을 때 장인이 빚어서 도자기를 만들어 가듯이 깨어짐의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때는 끔찍하고 힘이 들지만 세월이 지나보면 그때가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깨어짐을 통해 강퍅하고 교만해진 우리의 마음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처절히 깨달아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눈물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권력이나 재력과는 상관이 없는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시대 최고 엘리트인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아니라 고기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부 환경이나 재력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 봐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강퍅하고 교만한 우리의 마음을 깨어짐을 통해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이 험한 세상, 지는 것 같지만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손에 붙들려서 험한 세상을 감당하는 깨어짐으로 완성 되어지는 이 아름다운 비밀을 터득해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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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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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탐구] 과거의 모든 인생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요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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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부친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즉 요한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정을 버린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정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가정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가 되는 데 있어 가정이, 가족이 걸림돌이 된다면, 그래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면 성도는 마땅히 가정을 택하기 보다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선택함이 옳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 된 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요한이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과거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완전하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그릇된 인생을 포기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거나, 아니면 제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여전히 과거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둘 다를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가 되느냐, 세상의 종이 되느냐의 기로에서 양 편을 다 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고 참되며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 곧 배와 부친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는 즉각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지못해 주의 제자가 된다거나, 아니면 주의 제자가 되는 것을 미루고 망설이는 태도는 결코 제자로서 합당하지 못합니다. 실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즉각적인 '아멘' 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요한은 주님의 제자가 된 이후 일평생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해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의 결단력은 순간적 감정이나 기분에 사로잡힌 인간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령에 이끌려 제자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노년에 주의 복음을 전하다 밧모 섬에 유배되는 순간까지도 충성을 변치 않았습니다. 비록 스승 되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그의 곁에 계시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한번 주님의 제자가 된 자는 결코 그 신앙의 절개와 의리를 변치 말아야 합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렇게 의리 있고 신의 있는 신앙의 주인공들이 다 되심으로 합당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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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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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살아 숨 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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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픈 미래의 작가가 있었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 손이 떨리고 글씨가 이상하다.오랜만에 연필을 잡아서인가? 3월 30일 새벽에 코피가 심하게 나고 토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왔다. 그러다 저녁 쯤, 백혈병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 무균실이라는데 들어가 머리를 밀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 봄바람, 봄꽃, 봄의 풍경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맞는 골수가 없다 한다. 엄마를 믿고 용기를 내자. 옆 침대의 아이가 죽었다. 천국서 행복하게 잘 살길... 피오줌이 나온다. 누가 날 좀 살려줬으면... 바다에 가보고 싶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어. 파란 하늘, 맑은 공기... 이런 걸 느끼기만 해도 큰 행복이란 걸...”
이정표. 13세, 서울 등촌초등학교 6학년, 그는 끝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일기만을 남겨 놓고 떠났다. 1년 9개월 병마와 힘겹게 싸워야 했던 정표, 숨을 거두기 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정표야 사랑한다. 너 너무 멋졌어, 최고였어, 잘 했다.”
인생의 저주란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할 줄 모르는 메마름이라 한다. 정작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기적이고 그 기적과 함께 사는 나야말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불평, 불만에 갇혀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신앙의 반대는 불신앙이 아니라 불평이라고 한다.
정신의학자 루이스 캐디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허무주의의 수렁으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자기 연민으로,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 속으로, 그리고 우울로, 마침내는 죽음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과 나무 그리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탄생하는 어린 생명의 기적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존경과 찬미는 무엇인가? 또한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육체의 고마움에 대해선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은 ‘지구에서의 아름다운 휴가’를 즐기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감사야말로 삶의 원천이 된다. 감사는 평범한 식탁을 생명의 잔칫상으로 만드는가 하면 마음의 분노를 쉬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준다. 감사하는 순간 하늘의 소망이 열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된다.
지금 지글러는 이렇게 말한다.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 보지 못했다.”
① 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하다.
②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감사를 찾아낸다.
③ 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산다.
④ 감사를 계속하다 보면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한다.
⑤ 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랫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된다.
⑥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뀐다. 모든 관계에 평화가 깃든다.
⑦ 감사하는 순간 축복이 임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된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주님! 주님은 나에게 너무가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13살의 나이에 행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던 정표가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정표야 고맙구나, 넌 참 행복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어. 이제 널 대신해서 이 행복 널리 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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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