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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복 교수] 거룩한 스승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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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스승”이란?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31회 전국교수선교대회 주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육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다. 또 교육부 스스로가 각종의 정부지원사업을 무기로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이란 무엇이고, 교육부가 추구하는 방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필자는 현직 교수의 한 사람으로 교수가 변하지 않고는 대학이 절대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즉 개혁의 주체는 교수이고, 또 교수가 변화되어 참된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 대학교육에 있어 지향해야 할 참된 교수의 상은 무엇일까? 필자는 기독교수의 한사람으로 그 가치를 성경과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찾고 싶다. 기독교수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의 모델,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에 참 사랑을 가르쳐 주셨음은 물론, 제자들의 발을 씻겨 본을 보이시며 너희도 이같이 행하라 하시며 교육의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3:15).
많은 대학이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높은 장벽의 취업 현실 속에 학생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전공 성적과 외국어 스펙 만들기에 집중,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돌아 볼 틈이 없다. 경쟁구조는 날로 더 심해져 가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컨닝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3년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새롭게 교육을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무산시키고 말았다. 도망치는 선장의 모습을 보고 내 자신 속에도 그러한 부분이 없었는지, 또 무엇보다도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그 잘못이 교육에 있었음을 통감하고 회복의 길을 찾았어야 했는데, 결국 본질은 외면하고 정치적 책임공방에 관심이 집중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봐야만 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또 그를 위해서는 모든 교육자가 먼저 학생들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바로서고, 가슴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위해 구현해 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전국교수선교대회가 3일 남았다. 지난 한학기도 동안도 열심히 달려 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부족한 점 투성이다. 또 누구를 위한 교육이었나? 혹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계수단을 위한 일상적인 교육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면 회개하고 반성할 점이 너무나 많다. 이번 선교대회는 신앙생활을 통해 받은 은혜와 사랑을 확인하고, 또 우리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전달하고 봉사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즉 기독교수로서의 성경적 가치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스승 상을 회복, 모든 교육의 영역에서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임재를 실천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번 부산대학교 대회는 그 동안의 대회가 기독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만큼, 복음이 지역거점 국립대학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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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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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교회가 지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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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 일명 김영란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공기관, 사립학교, 언론사 임직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사회의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지만 한편에서는 내수 위축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4일 100주년기념교회에서 ‘김영란법,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손봉호 명예교수, 백종국 교수, 이상민 대표변호사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김영란법을 있는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손봉호 교수는 한국교회가 나서 김영란법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면서 “교회 스스로가 부패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사회도 바뀔 수 있다. 기독교의 정의는 약한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데 있다. 기독교가 속죄하는 방법으로 약한 사람의 고통, 부패를 줄이는 모든 것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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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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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장신대 문서위조 교수 고발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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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장신대학교(이사장 민영란 목사, 총장 김용관 목사)는 지난 5월 창원지검에 천 모 교수에 대한 문서위조 건으로 정식 고발장을 냈다. 따라서 창원지검에 접수된 이 사건은 김해중부경찰서에 접수 되어 해당 고소인과 피고소인에 대해 조사를 받아 온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사회는 인사소위에서 자체조사를 하고 있다. 이사장에게 왜 사회 사법당국에 고발장을 접수시켰는지 물었으나 일체 함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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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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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병원 구조조정과 자구회생을 위해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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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역사를 가진 왈레스기념침례병원이 동구 초량동에서 지금의 금정구 남산동으로 병원을 옮기고 난 후부터 병원 부채와 경영악화로 고전해왔다. 최근 새 이사장 홍석훈 목사가 취임한 후 자체에서 직원 200여 명을 구조조정하면서 자생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교단 총회와 미국 선교부로부터 자구노력을 하는 가운데, 서울에 있는 선교부 땅(약 200억 원 추산) 매각으로 긴급수혈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부산교계가 병원이 회생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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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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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기독연합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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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 애국운동에 나서는 나라사랑기독인연합이 지난 7월 1일(금)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출범했다. 나사연 창립 멤버로는 고문에 심영식 장로, 공동상임의장에 권영해 장로(전 국방부장관), 류광수 목사(다락방 창설) 등이 참여하는데 공동의장에는 정은주 목사, 김동권 목사(합동 증경총회장)으로 최근 이단사이비로 시시비비를 받던 인사들과 합류했다. 정파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며 동성애와 이슬람 정책 반대운동에 앞장서는 범교단적인 기구가 탄샘됨으로 기존 기독교 세력과 견인차 역할로 교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특별히 이 기구에는 이단 시비에 말려있는 다락방 류광수 목사가 전면에 나섰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상임고문으로 이상훈(전 국방장관), 정원식(전 국무총리),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로 한기총, 한교연, 나기연으로 연합체들이 제각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띄운다. 왜 이럴까. 말세에는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난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아니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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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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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총 이단사이비 행사에 성명서 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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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수) 호산나교회 소예배실에서 부기총 전체 임원회를 소집했다. 박성호 대표회장 공식 첫 번째 회의로 이날 39회 전체 임원 조직 추인을 결정하고 사업계획 및 예산안도 승인했다. 특히 최근 부산에서 열린 2016년 월드캠프(박옥수)를 국제청소년연합과 국제신문 공동으로 주최하고 부산시가 후원하는 대학생 상대로 한 행사에 대해 부기총이 여기에 참가히지 않도록 적절한 성명서를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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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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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총회 총대 임기와 파회 후 위원회 활동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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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총대 임기는 서기 호명 시부터 총회 파회 시까지
■ 위원회의 활동은 총대 자격 아닌 사건처결 우선주의로
[질의] 헌법 정치 제12장 제2조에 의거, 각 노회에서 파송하는 총대들의 임기가 ① 총회가 개회 이후 파회까지인지와 ② 총회 파회 후 상비부원이나 특별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것은 총대 임기의 연장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하여 헌법에 근거한 유권 해석을 요청 드립니다. 본 질의에 대한 유권 해석은 법원에 제출할 준비서면의 첨부 서류이니 목사님의 서명 날인을 특별히 부탁드립니다.(장로회 합동 교단 ○○○목사)
[답] 질의자가 장로교회의 합동 교단 목사이므로 합동 총회 헌법으로 답한다.
1. 총회 총대의 임기에 대하여
교회 헌법 정치 제12장 제6조(총회의 회집)에 “총대는 서기가 천서를 접수 호명한 후부터 회원권이 있다.”는 규정에 의하여 “총회 총대로 총회 회원권이 발생하는 시기”는 직전 총회장이 총회를 개회하기 직전에, 직전 총회의 서기가 호명함과 동시에 총회 총대로서 총회 회원권이 발생하며 그 임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정치 제12장 제7조(폐회 의식)에 총회가 폐회하기로 결의한 후에는 총회장이 “교회가 나에게 위탁한 권세로 지금 총회는 파함이 가한 줄로 알며 이 총회 같이 다시 아무 날 아무 곳에서 회집함을 요하노라.”라고 파회를 선언한 후 “기도함과 감사함과 축도로 산회한다.”고 폐회 의식을 규정하였다.
즉 총회는 당회나 노회나 대회의 폐회의식에서 “폐회를 선언”함과는 달리 “파회를 선언”함으로 산회와 동시에 총회가 없어진다. 따라서 파회 선언과 함께 총회 총대의 임기도 종료되며 상비부도 임원회도 역시 없어진다.
다만 총회장은 총회 후 공백 기간에 대외적인 면에서 상징적으로 존재하며, 대내적인 업무는 법이 정한바 총회가 위탁한 사안만 수행할 수 있고, 차기 총회를 소집하고 개회하여 신 임원을 선거할 때까지 사회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즉 총회 총대의 임기는 직전 총회의 서기가 총대를 호명할 때부터 총회장이 파회를 선언할 때까지라는 말이다.
2. 총회 파회 후 위원회의 활동 근거에 대하여
총회의 모든 상비부와 특별위원회와 임원회 등이 총회를 파회한 후에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권징 제134조 2항에 상비부의 하나인 재판국의 활동에 관하여 “재판국은 위탁 받은 사건만 심리 판결한다.”는 규정에 준거하여 총회가 파하기 전에 총회가 위탁한 사안만을 처리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원회나 상비부나 특별위원회가 총회를 파한 후에도 업무를 수행하는 법적 근거는 총대의 임기가 연장되는 특권에 의하여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임원회나 상비부나 특별위원회에 총회가 위탁하여 처리케 한 사안을 처리하는 위원회의 위원 자격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실례를 들어보면, 총회 규칙 제9조(정기위원) 2(임무)에 “절차위원”이나 “천서검사위원” 등은 직전 총회의 총대의 자격으로나 임원회의 자격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요 총회의 규칙에 “절차위원은 직전 총회의 회장과 서기, 천서검사위원은 직전총회의 서기, 부서기, 회록서기”라고 규정한 규칙에 의하여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공천위원”은 직전 총회의 총대도 아니요 노회장도 아닌 새로 선임된 각 노회의 노회장들로 위원이 구성되어 활동한다. 만일 총회 파회 후 상비부원이나 특별위원이나 임원들의 활동을 총대 임기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면 공천부원들도 직전 노회장들이 되어야 마땅한데 신임 노회장들이 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겠는가?
즉 임원회나 상비부 등등의 위원회에 총회가 위탁한 업무가 없으면 어떤 부서이든 차기 총회가 조직될 때까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3. 결론
총회 총대의 임기는 서기가 호명할 때부터 총회장이 파회를 선언할 때까지로 총회가 진행되는 기간뿐이요, 총회를 파회함과 동시에 총회 총대의 임기는 종료된다.
그러나 직전 총회의 임원회나 상비부나 특별위원회가 총회를 파회한 후에도 계속 활동하는 이유는 결코 직전 총회의 회원권인 총대 임기가 연장되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헌법과 총회 규칙이 규정한 바에 따라 총회가 각 위원회에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업무를 위탁받은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장로회 정치의 회원권 우선주의가 아닌 사건처결 우선주의의 관례(교회 법률 상식 pp.94~95참조)에 의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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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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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탐구] 신앙의 위인 야고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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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야고보는 그의 동생 요한과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성격은 오히려 주를 위해 봉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신 이후에 많은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초대교회를 박해할 때 첫 공격의 대상자로 야고보를 지목한 데서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뢰의 아들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물론 야고보 외에 여러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지만 그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체험이었습니다.
그 후 초대교회가 형성되었을 때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요 21:1-2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핵심적인 위치에서 주님을 보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탄압 때 체포되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행 12:1-2 “그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원래 명칭은 살렘이었으며 여부스 사람들의 거주지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후 전쟁을 통해 차지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기고 경모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곳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사역 장소였습니다.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오므리 왕조 때부터 이교적 영향을 받아 오다가 아합왕에 이르러 바알 숭배로 인하여 야훼 종교는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오므리 왕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주전 721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사마리아에는 잡다한 이방인들이 정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종교 생활과 사회생활이 이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급한 성격을 소유했던 야고보의 형제들은 사마리아 촌사람들이 주님과 그의 일행들을 배척하자 강한 분노의 감정을 터뜨렸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에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 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거부한 사마리아인들에게 혹한 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감정을 절제할 줄을 몰랐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주의 일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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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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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위로 혹은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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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삶이 주어져 있다. 삶이란 몸, 가족, 사람, 일, 물건, 사건, 환경, 자연 등 현재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이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지혜와 힘과 자유와 기쁨 등 온갖 선물이 들어있다.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위를 향할 것인지, 아래를 향할 것인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만나든 현재의 삶을 거부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받아들여 밝은 생각과 밝은 행동으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현재의 삶을 거부하여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걱정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자신과 상대방에게 표현하면서 삶을 망가뜨리며 아래를 향해서 사는 사람이다. 세 번째 사람은 위를 향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면서도 늘 마음에 자신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다.
삶은 늘 낯설고 내 예상을 뛰어넘어서 찾아올 때가 많다.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몇 주일 전 잘 아는 분이 냉장고를 가지고 온다고 전화가 왔다. 지금 사용하는 냉장고가 망가져서 아내가 좋은 냉장고 있으면 구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그런데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몇 명과 함께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사다리차를 부르고 이십 만원을 드렸다. 그리고는 그분들이 간 다음에 냉장고를 살펴보니 10년이나 된데다 홈바는 고장 났으며 용량이 기존보다 너무 적었다. 여름수련회를 하기 위해 큰 용량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당황스러웠으며 난감했다. 이 순간 우리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논을 했다. 얼핏 드는 마음은 ‘어떻게 이런 냉장고를 갖다 줄 수 있는가? 돈은 돈대로 들고 사용도 못하고’하며 서운해 할 수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 분이 우리를 위해주는 마음은 고맙고 내가 준 돈으로 그분들이 좋아하면 족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힘들지만 새 냉장고를 사기로 결정하고 더 큰 용량의 냉장고를 구입했다. 우리부부는 예상 못한 상황에서 우리의 삶이 아래로 향하지 않고 위로 향하게 한 것에 매우 기뻤다.
삶이란 예상 밖 사건의 연속인 것 같다. 또 며칠 전 지인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아서 복잡한 거리에서 주차할 공간도 없는데 도로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1시간 이상 기다리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서 욕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갈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여유 있게 기다리면서 상대방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면 내 삶은 위를 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삶이 내 생각대로 잘 되어간다. 하는 일마다 성공적이며 행복한 일의 연속이다. 만족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쭉 나가면 평생을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것 같다. 돈도 모이고 건물도 몇 채나 되고 자녀들도 잘 자라고 자녀들까지 평생 먹고 살 재물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 만족하고 사회와 사람들에게 사랑과 선을 행하지 않으면 이 삶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 삶인 것이다. 그 마음에 사랑이 없고 선을 행하려는 마음 없이 그 속에 자기를 위한 사랑과 세상의 부를 추구하는 마음만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재물과 힘과 지식을 사회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 방법을 찾고 행동으로 옮길 때 자신의 삶이 위를 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과 저 세상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이 땅에서 아래면 저 세상에서도 아래일 것이며, 이 땅에서 위를 향하면 저 세상에서의 삶은 천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매 순간의 삶을 위를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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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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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스데반 집사 (사도행전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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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평신도 순교자 스데반 집사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교회에서 피택을 받은 집사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피 흘리고 순교를 한분이 스데반 집사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 복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온 형제들, 회중들 가운데서 성령 충만, 믿음 충만, 지혜 충만해서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 오직 믿음, 오직 지혜 이 3가지가 다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 성경은 형제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집사 이렇게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 8절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 스데반 집사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성령이 나타나시는데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거침없이 막힘없이 향기롭게 힘차게 한 사람의 인격이라는 채널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그대로 나타나는 겁니다. 성령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축복의 통로로 나타납니다.
스데반 집사의 사역의 결론은 죽음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목숨을 잃어버린 겁니다. 일곱 집사들이 성경에 나타날 때는 전부 다 전도하는데 복음 전하는 데만 나타났습니다. 6장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요 성령으로 말함은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구약성경을 관통을 하면서 일목요연하고 능통하게 설교를 한 사람, 복음을 제시한 사람이 스데반 집사입니다.
6장 15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7장에 가서보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이 사도행전 7장 59~60절에 보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며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손톱만큼도 원망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중보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위대한 것은 복음전하다가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로 스데반 집사를 쳐 죽이고 옷을 바울 앞에 갖다 놓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악독한 사울이 스데반 집사 순교의 피 흘림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죽음, 그 피 흘림이 헛되지 않아서 사도 바울이라는 초대교회 최강 리더십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 이름 뜻이 면류관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우리가 직분을 사모한다는 것은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됩니다. 손해 볼 각오가 되어있어야 됩니다.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됩니다. 스데반 집사 순교의 피를 통하여 사울이 바울이 되고 그의 사역을 통해서 기독교가 열방으로 퍼져나가서 세계적인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한 사람 쓰임 받는 일꾼 주님 나라에 향기로운 영향력을 미치는 주의 일군으로 감당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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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