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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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천지 본부건물 이전 예정 부지 다른 곳에 매각
    신천지 안드레지파가 본부건물 건축을 위해 이전 할 예정이었던 연산동 이마트 옆 부지(연제구 연산동 822-123)가 결국 다른 곳에 최종 매각됐다. 이 부지의 주인이었던 (주)대한모터스는 최근 신천지 안드레지파 측에 ‘계약 무효 통지’를 보내고, 제3자에게 이 땅을 매각했다. 대한모터스가 신천지 측에 ‘계약 무효 통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매매계약 당시 ‘구청에서 건축을 불허 할 경우 이 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신천지 측이 연제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지만, 소송과 상관없이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는 변호사의 법률 자문을 대한모터스 측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천지가 제기한 행정소송도 소송의 실익이 없기 때문에 곧 ‘소송취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교계 내에서는 “크게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며 조심스런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신천지 안드레지파 측이 다른 곳의 땅이나 건물 매매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소 권남궤 실장은 “이미 신천지 측이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한쪽에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싸워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부지를 찾아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실체가 있어 신천지 측과 싸움을 진행했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신천지 실체를 알리며 반대운동을 펼쳐 왔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천지 측이 더 은밀하게 본부이전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또다시 교계와 신천지 간의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게 신천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하지만 고무적인 사실은 부산교계가 이번 안드레지파 본부건물 이전 문제로 처음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언론, 법률, 행정팀 등 조직적으로 신천지 측에 대응해 왔다는 것, 그 결과가 좋았다는 점에서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대책위원회 모 관계자는 “함께 힘을 모으면 이단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라고 소개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계가 이단 문제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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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30
  • 이단상담소, “상담하면 돌아온다. 회심률 93%”
    ▲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사이비상담실에서 최근 신천지 미혹장소를 추가로 공개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안용운 목사) 이단사이비상담실(권남궤 실장)은 2015년 이단사이비상담실 사역보고를 통해 총 81명이 신천지에서 회심해 돌아왔다고 보고했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47명으로 가장 많았고, 울산 14명, 대구 10명, 창원 3명, 서울 3명 순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회심상담 대상자 87명 중 81명이 회심을 해, 93%의 높은 회심률을 기록했다. 권남궤 실장은 “상담까지 오는 것이 힘들지만, 일단 상담을 받으면, 10명 중 9명은 회심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높은 회심률에도 불구하고, 전문상담사 부족으로 신천지와의 싸움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권 실장은 “해마다 신천지 신학원을 졸업하는 부산지역 인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한다. 우리는 겨우 2명이서 신천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열악한 현 상황을 토로하면서, 각 교회마다 전문상담사를 양성하지 않으면 결국 신천지와의 영적싸움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 실장은 “2016년도에 이단상담사 과정(10주)을 두 차례 정도 진행 할 예정이다. 각 교회가 이단문제와 관련한 전문상담사를 둔다면 신천지 활동이 위축될 것이고, 더 많은 영혼들이 교회와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사이비상담실에서는 최근 신천지 미혹장소(위장교회, 센터, 복음방, 모임방)를 추가로 공개했다. 미혹장소는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실(www.busw.kr)이나 본보 홈페이지(www.kcnp.com)에 들어오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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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8
  • [박영규 관장] 장기려 장로가 추구한 삶
    이번 12월 25일이면 장기려 장로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기가 된다. 그래선지 최근 작은 예수로 살다간 그의 삶이 매스컴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은 못 그린다. (好畵未見龍)’는 말처럼, 자칫 후세 사람들이 고인을 설화 속 위인으로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듯하다. 얼마 전 이상규 교수님이 본란에 기고한 “장기려 박사는 월담을 권했는가?”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며칠 전, 모처럼 청십자 옛 멤버들과 자리를 함께해서 수다를 떨었다. 오가는 얘기라야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그저 사소한 옛날 추억담이었다. 다만,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이다. 문득, 함께했던 지난 세월의 편린이 떠오른다. 결혼식 때 일이다. 중직자 자녀가 아닌 일개 청년의 결혼식이라 그런지, 청소하기 힘들다는 모 실세 권사님의 억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식장에서 하게 되었다. 그러자 청십자 식구들이 난리였는데, 장기려 선생님을 모시고 있던 간호사도 거들었다. “박사님이 평소 박 선생님 주례하고 싶어 하셨는데, 핑계김에 잘됐네요…” 하지만 담임목사가 엄연히 있는데 장로가 주례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불민한 신앙이지만 그래도 기복신앙에 길들여진 터라 머뭇거리자, 장기려 선생님은 “아냐, 그렇다고 똑같이 그러면 평화가 깨지는 거야” 그러면서 당시 부산에서 제일 좋다는 광복동 ‘새부산예식장’ 사장을 잘 아신다며 융숭한 결혼식을 준비해 주셨다. 게다가 주례를 못하니 대신 기도를 하시겠다는 거다. 천하의 장기려 박사가 직원 결혼식에서 기도순서를 맡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주님의 평화를 누려서 이 사회에 본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던 기도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장기려 장로는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그건 그의 삶 자체를 보고 남들이 하는 헌사이고, 사실 그가 강조한 것은 평화였다. 1979년, 필자가 대학 시절 주도했던 모임에서 장기려 장로는 ‘진정한 평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적이 있다. 그는 분열의 주된 원인은 “인간이 평화의 주이신 하나님을 거역한 까닭”이라고 했다. 즉, 사람이 자기 설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한 까닭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깨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평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의 근본 치유책은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평화의 주를 믿고 순종하는 것”인데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영적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전이며 그들의 가정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는 가족 공동체여서 사회에 사랑과 평화를 제공하는 사회적 단위를 이루게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와 사회에 자유와 평화를 전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율법주의자들과 싸웠듯이 불의나 비진리와 맞서고, 악마의 유혹과 시험을 쳐부수고 승리하는 삶이 곧 진정한 평화의 길”이라고 역설하였다. 당시 유신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비춰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진리에 기초한 자유로운 말씀이었다. 이렇듯 그는 평화에 대한 열망이 컸다. 아마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별도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평화의 사도 장기려 장로는 1979년 8월 31일, ‘막사이사이상’ 수상소감에서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나의 평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의 온 힘을 평화운동에 기울이겠습니다.” 
    • 오피니언
    • 정론
    2015-12-22
  • [시내산] 성탄절의 역사와 문화
    우리는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 즉 예수님이 태어난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성경에도 탄생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어떤 기록에서도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탄생 축일은 없었다. 이런 연유로 초기 기독교에서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 등이 탄생기념일로 지켜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기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 자리 잡게 되자 예수의 탄생일을 국가적 축일로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동짓날부터 태양이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 온 국민이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축일로 기념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가 태양에 비유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날이 예수의 탄생 축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후 서기 350년 로마의 주교 율리우스 1세가 공식적으로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선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었기에 성탄절은 축제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교적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성탄절에 습합되어 있는 이교도의 축제성은 프로테스탄트의 등장과 함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축제의 진행 가운데 등장하는 폭음, 댄스, 도박, 대소동 등이 악으로 연결되는 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퓨리탄들은 <크리스마스는 주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바쿠스 신의 축제이다. 이교도는 이를 보고 예수는 탐식한 향락주의자, 음주가, 악마의 친구라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한 때 스코틀랜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완전히 금지한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간략한 성탄절에 얽힌 역사를 떠올리면서, 우리는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새롭게 다져야 할 시점에 놓여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 땅의 성탄절도 예수의 탄생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상업성과 인본주의에 오염된 인간의 절기로 변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성탄절의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역사 속에서 부단히 세속화되어 온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문화의 진정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담 이후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을 받았기에 문화를 생성·발전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땅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에, 모든 문화는 현재 세계 내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죄에 의해 부패되어져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일반은총으로 인해 이 땅의 문화 중 일정 부분은 부패와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영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주가 바라는 온전함에는 이를 수가 없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주체가 되지 않으면, 문화의 궁극적 주인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참된 문화를 키워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들이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이 땅의 문화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문화로 그 토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문화의 창조적 변혁을 부단히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성탄절의 시작과 같은 이교문화에 습합된 경우는, 이교문화를 초극하고 새로운 하나의 기독교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이교문화 속에서 배제시켜나가야 할 부분들에 대한 엄정한 분리와 청산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전쟁과 같은 피흘림이 수반될 때도 있다. 문화의 변혁은 그만큼 힘든 과정이다. 변혁만으로 기독교 문화가 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혁된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이교문화의 유혹과 오염을 막아나가는 문화적 전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성탄절 문화 속에서 청산해야 할 이교적 요소와 지켜나가야 할 성탄절의 본질적 요소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때이다.
    • 오피니언
    2015-12-22
  • 故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년 기념
    가족이 본 장기려 박사> 장여구 교수(손자, 인제대서울백병원) 저의 조부님이 운명(1995년 12월 25일)하신지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부산 고신대학교복음병원에서 20주기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그날 행사에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셨고,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저희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가족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가족이 바라본 장기려 박사’라는 글을 부탁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이 아닌, 가족들이 옆에서 지켜봐 온 할아버님의 모습을 담아야 겠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날 추억을 되새기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당신이 가족들에게 남긴 신앙유산 등을 기억하면서 할아버님에 대한 애뜻한 그리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1995년 봄부터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습니다. 감기로 시작한 증상이 결국에는 폐렴으로 진행되어 노환에 당뇨병 등의 지병으로 인해 병을 이겨내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증손자인 저의 아들이 태어날 때 마침 서울에 계셔서 기뻐해 주셨고, 백일에는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병상에서도 증손자를 보시고는 아주 기뻐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할아버님은 종종 북한의 식구들을 꿈속에서 만나신 것 같습니다. 증조부모님들의 장례식 장면의 꿈을 꾸시고, 또 간혹 북에 남기고 온 자식들을 꿈속에서 만나신거 같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북한에 있는 할머님과 고모의 편지와 육성 테이프가 왔을 때,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것에 겉으로는 화를 내시면서도 편지를 읽고 몰래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있는 아내를 상봉할 수 있었던 기회에서도 다른 가족들이 다 같이 만날 수 있을 때(통일이 되는 그날에) 같이 만나시겠다면서 특혜를 거부하신 것은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 이면에는 할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만약 내가 지금 평양을 방문하면 북한의 식구들과 다시 헤어질 자신이 없고, 그동안의 미안함 때문에 거기에서 살겠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정치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가족 모두가 힘든 상황이 되니 방문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 것을 보면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주변의 환경도 고려하는 생각이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할아버님은 언젠가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 “내가 남쪽에서 남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고 도우면서 살면 어느 누군가가 북쪽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돌봐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평소 가족에 대한 생각을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으시지만 마음속 깊게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그런 봉사활동이 곧 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신념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님은 어릴 적 (고조)할머니의 기도 속에 생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우리 금강석(아호)이가 잘 자라서 이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여지는 일꾼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로 이 기도 내용은 고조모님이 조부님에게, 또 조부님이 저에게, 부모님이 저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안의 기도문이 되어 있습니다. 평양에서 다니시던 산정현교회 분들과 같이 서울과 부산의 산정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계속 하시면서 항상 믿음, 소망, 사랑을 강조 하셨고,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성경구절을,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지난 밤에 보호하사’ 찬송을 즐겨 하셨는데 찬송은 북에 계신 할머님이 좋아하신 찬송이고, 성경 구절을 볼 때 할머님에 대한 생각이 극진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병원일과 집안 일 등 모든 일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시고 결론을 내리시면서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득이 되는 것이 우선으로 생각하셨습니다. 병상에 계시면서 내가 죽거든 묘비에 다른 문구는 쓰지 말고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고 써 달라고 하신 것으로 볼 때 그 어떤 명예보다도 항상 주님을 위해 사신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할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에게 유산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물질적인 유산은 없으나, 정신적인 큰 유산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봉사 정신입니다. 지금 제가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산하 블루크로스 의료 봉사단을 섬기고 있습니다. 1997년 설립된 장기려기념사업회는 그 동안 이건오 부이사장님을 중심으로 중국,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등지의 해외 의료 봉사와 국내 노숙자와 영등포 쪽방촌 무료 진료, 등촌동 복지관에서 무료 진료를 해 오던 것을 2008년부터 제가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현재 블루크로스는 약 800명이 넘는 회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 병원들과 큰 규모의 봉사단체들도 외면한 현지 수술 캠프를 2010년부터 매년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헤브론 병원(국내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 병원)에서 열어 경제적으로 힘든 갑상선 종양과 유방 종양 환자 및 외과 환자들을 수술하여, 현재 약 160명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봉사해 왔습니다. 또한 매년 시행하는 해외 의료 봉사는 그 영역을 넓혀 이동 진료 외에도 현지 아동들을 위한 구강 위생 교육(치약 칫솔 나누기 운동), 학교 보건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현지 학교에 응급 구급함 설치 운동, 사랑의 운동화 나누기 운동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국내에서는 약 600명의 블루크로스 청소년단이 폐 의약품 수거 캠페인을 벌여 환경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심폐 소생술 무료 교육을 실시하여 보다 안전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블루크로스를 통해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은 환자는 국내와 국외를 합쳐 약 2만 3천 명 정도가 됩니다. 이런 블루크로스 활동은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의 작은 노력이 모여 큰 성과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항상 수술 캠프에 참여해 주시는 김상효 교수님을 비롯한 블루크로스 회원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성산 장기려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아 만들어진 블루크로스 봉사단 (www.bluecross.or.kr)에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리고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자가 본 장기려 박사> 양덕호 장로(부산산정현교회) 장기려 박사님은 6.25 북한이 저지른 민족상잔으로 가족이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북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전쟁 중 남한 땅, 부산에 오셨습니다. 당시 이산가족과 굶주림에 아우성 쳤던 그곳에 질병으로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해줄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의사가 되면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을 돕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모든 것을 다해 환자들을 보살폈습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선생님의 신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기까지 사랑해주신 사랑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제 나이 22살 때 부산의과대학 3학년 학생으로, 선생님은 부산대학병원 원장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 부친이 충남 공주에서 의사셨기에 저도 의사의 길을 걷기 위해 부산의과대학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장기려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셨는지 저를 부르셔서 오후 5시에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같이 병원 화장실을 청소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선생님과 병원 화장실을 청소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타지에서 학업 중인 저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하숙비를 보내주셨습니다. 철침대에서 잠을 자고 하숙집의 따뜻한 밥을 먹는데, 선생님은 작은 사택에서 보리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제가 모셔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당시 도둑이 많아서 도둑이 들어오면 선생님을 보호하고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심장질환이 있으셔서 혹여 있을지 모르는 위급상황에 대비해 같이 지냈습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날아 온 잿가루에 검게 된 고무신을 씻고, 당뇨가 계신 선생님을 위해 요강을 씻고, 수술 후 오시면 몸을 닦아드리면서 아버지처럼 모셨습니다. 저는 두 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제 취미이자 특기는 성악과 테니스였습니다. 학생시절 노래와 테니스 실력이 뛰어나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역시 노래와 테니스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모시고 부산 광복동 음악감상실에 함께 간 적도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양을 좋아하셨습니다. 항상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매주 주일 오후 2시면 외과의사들과 함께 성경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혹 의사들이 졸더라도 왜 졸고 있냐며 나무라지 않으시고 매주 성실히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끔 자다가 깨어서 보면 침대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꿈에 아버지가 보였어. 아버지가 세상 떠나신 것 같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하며 사셨습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맹장염에 걸렸을 때 당시 평양의과대 외과과장으로 계셨던 선생님께서 치료하셔서, 금강산에 2차례 휴양을 다녀오고 주일 예배도 허락을 받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평양에 계실 때는 공산주의 아래서 기독의사로 사셨고, 남한에 오셔서는 자유민주주의 아래서 기독의사로 사셨습니다. 어디에 있든 성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평양 산정현교회를 부산에 재건, 부산산정현교회 장로로 섬기셨습니다. 저도 모태신앙이었기에 선생님을 따라 부산산정현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탐심을 버려라, 돈은 만악의 악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은 한창때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반대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일관된 선생님의 삶은 말씀을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은사였던 백인제 교수님을 위해 제자로서 자리를 지켜야한다며 부산백병원을 섬겼습니다. 또 명예교수로 계시면서 수당을 차곡차곡 모아 은퇴하실 때 병원 장학재단에 1억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제가 가톨릭대 박사과정 중에 있을 때도 선생님께서는 등록금을 다시 돌려주시면서 연구에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제자들의 학비를 다시 돌려주며 연구에 뒷받침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늘 말씀하신대로 탐심이 없는 분이였습니다.과거 선생님께서는 럭키그룹(현,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씨 치료를 담당하면서 성실하게 돌보아 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 감동받은 구인회 씨는 당시 양재원 럭키비닐 사장을 통해 320만원을 연구비로 전달하였습니다. 또 장기려 선생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광복동에서 좋은 양복 한 벌 하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좋은 원단의 외제 천이 아닌, 뻣뻣한 국내산 저질의 천으로 양복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형편을 생각해 결정하셨습니다. 이북에 사모님과 자녀들을 두고 와서 38선으로 가려져 만나지도 못하고 기도만 하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이산가족 상봉할 기회가 있어 사모님을 만나시길 권유했지만 선생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나 혼자 만나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산가족 모두가 함께 만나는 날, 즉 통일이 되어 모두가 함께 만나야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자신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넓은 견해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의사로서 열심히 연구하시며 국내 처음으로 대량간절제수술을 성공시킨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성실한 의사였습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인생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마치 제 옆에 살아계신 것 같아 긴장이 됩니다. 제 생각엔 100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큰 인물이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께서 관련된 단체가 15곳이었습니다. 영세민들의 의료복지 혜택을 위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드셨고, 청십자사회복지회, 청십자병원, 만성간질환자들을 위한 부산장미회 등을 만드시며 맡으신 직책도 많았고, 하시는 일도 많았고, 그로인해 여러 차례 상도 받으시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실 땐 항상 두 손을 모으시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누가 제게 장기려 스피릿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진실, 협동, 희생. 이것을 몸소 실천하며 평생을 다해 본을 보이신 분입니다. 이러한 장기려 선생님의 정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제2의 제3의 장기려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사진제공 한국고등신학연구원>
    • 인물
    • 좌담/대담
    2015-12-22
  • [목회자칼럼] “서울에서 감사, 일산에서 그리움”
    어제 오전, 제경숙 집사로부터 모친(강정순 집사, 86세)의 소천소식을 듣고 오후 3시경 여러 성도들과 문상 길에 올랐다. 서울을 거쳐서 일산으로 가는 여정이어서 우리는 먼저 최근에 뇌출혈로 쓰려져 마산삼성병원에서 치료받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긴 김민진 집사(강복수)를 문병갔다. 최근에 메르스 사태로 큰 홍역을 치룬 병원인지라 면회시간은 저녁 8시까지! 서울이 가까이 올수록 어찌나 차량들로 막히던지 조마조마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7시 40분경에 도착했다. 친정 어머니(권사)께서 딸을 돌보고 계셨다. 머리에 수술부위가 길게 보이는데 먼 길을 찾아 문병 온 우리들을 바라보는 김 집사의 얼굴! 그처럼 환한 미소의 얼굴은 사고 이전에도 볼 수 없었던 그런 모습에 아,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하고 기쁘고 기쁜지. 현대의학의 도움도 많지만 그동안 딸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나오는 우리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란 확신이 들었고 우리 모두의 입술에선 감사가 절로 나왔다. 머지않아 사고 이전의 상태로 정상회복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김 집사와 현재 암으로 투병 중에 있는 지체들을 생각하며 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렘17장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사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늦은 밤9시경에 일산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고인께서는 이십여년전 마산에 사실 때에 권현+제경숙, 두 자녀 영민+현진 온 가족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서울로 이사 가시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왔다. 딸만 다섯이고 다섯 사위들을 친아들처럼 사랑했고 다섯 사위들도 장모님을 어머니처럼 공경하며 사랑했다. 특히 둘째 따님인 제 집사(경남대유아교육과 교수)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귀감이다. 고인께서는 우리 가족에게도 어머니 같으셨다. 허물 많은 목사임에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해 주시던지 서울로 이사 가신 후에도 우리 마산재건교회를 그토록 그리워 하셨다. 몇 개월 전에 새 성전에서 함께 예배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내려 오셔서 기쁨의 시간을 가진바 있다. 고인의 영정사진은 본교회의 제4기 베델성서대학 졸업식(1년반 과정, 1998년)때 찍은 학사모를 쓰고 밝게 웃는 졸업사진이어서 더욱 고인을 그립게 만든다. 빈소에서 조문 후에 유족들을 끌어안고 기도를 드릴 때에 고인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하루의 심방길, 서울의 문병에서 감사가 많았고 일산의 문상에서 고인과의 생전의 사귐과 그리움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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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목회자칼럼
    2015-12-22
  • [이단피해] “어릴 때부터 영적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A씨는 3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딸이 신천지인 것 같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전화를 받고 A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님께 이 사실을 말했다. 그런데 딸이 신천지라는 사실이 청년부 전체에 알려지게 됐고, A씨는 성도들로부터 비난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신천지라는 사실이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거리만 됐다. 딸이 신천지인 것이 밝혀진 후 A씨는 상담소를 알아보는 중 그 사실을 안 딸은 난생처음 가출을 했다. 몇 개월 만에 행색이 초라한 노숙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또 다시 가출을 한 딸은 2년 후 집으로 돌아왔다. A씨는 “동생이 군대를 가자 혼자 남은 엄마를 생각해서 집으로 온 것 같다. 이제는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다. 아마 신천지에서 훈련이 된 후에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던 딸은 반복된 휴학으로 재적처리가 될 지경이 됐고, 학교에도 신천지인 것이 알려진 터라 학교가기를 거부했다. 지금은 A씨의 지인을 통해 사이버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A씨는 “딸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자신이 엄마와 동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때 알아들었어야 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A씨는 성도가 이제 영적전쟁을 위해 성경으로 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말씀을, 이단의 실체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1인 시위를 했을 때 부산 시내 곳곳에 신천지 센터가 있는 것을 알았다. 교회가 각성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말씀으로 영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우리가 주일에 학원은 쉽게 보내지만 교회는 안 그렇다. 또 짧은 공과시간은 소용없다. 교회 안 교육기관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모르니까 빠지게 된다. 얼마 전 이단이라는 박옥수 성경세미나가 있었다. 성도들은 성경세미나라고 그곳을 찾아 간다. 교회 직분자들도 찾아간다”면서 교회가 더 이상 쉬쉬하고 감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성도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소수라고 착각하고 있다. 엄청난 수의 그들이 돌아왔을 때, 교회는 무방비상태다. 준비하고 대책을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회심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회복이 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회심만 하고 회복되지 않으면 또 다른 이단에 빠진다. 변질된 교리를 바로 잡고, 평생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회복된 그들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서 목회자도 무너지는 이 때 교회가 파수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단
    • 신천지회심자
    2015-12-22
  • [교회법률상식] 지역노회가 사라져 가고 있다
    -지역노회가 무지역노회화 되는 것 전적인 총회의 책임-지역 노회 경내의 타 노회 교회 해 지역노회로 이적해야 [질의] 우리 노회는 얼마 동안 노회 내부의 정치적인 분란으로 다툼을 하다가 지역도 나누지 않고 노회분립청원을 하여 총회가 노회를 분립해 주었습니다. 총회가 지역도 없이 끼리끼리 노회를 분립해 주는 것도 합법인지요? 목사님의 헌법적인 답변을 바랍니다. (합동 K목사) [답] 질의자가 합동 교단의 목사이므로 합동측 헌법으로 답한다. 1. 노회 조직의 요건 정치 제10장 제2조(노회 조직)에 “노회는 일정한 지방 안에 모든 목사와 각 당회에서 총대로 세례교인 200명 미만이면 1인, 200명 이상 500명 미만이면 2인, 500명 이상 1000명 미만이면 3인, 10000명 이상은 4인씩 파송하는 장로로 조직한다. 단, 21당회 이상을 요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본 규정에서 하나의 노회를 조직하기 위한 절대적 요건은 ① 일정한 지역 ② 법이 정한 목사 ③ 지역 내의 각 지교회가 파송한 총대장로 ④ 21당회 됨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다. 2. 노회 분립 절차 노회 분립 절차 역시 기존 노회가 분립노회와 전통노회의 ① 일정한 지역 경계를 나누어 정하고 ② 각 지역 안에 있는 목사와 ③ 각 지역 안에 있는 총대 장로로 조직하되 ④ 양 노회 각각 21당회 이상이 되어야 하고 ⑤ 양 노회간 재산 분할과 양 노회 중 정통노회를 정하고 분립노회의 명칭(가칭)이 결정 합의되면 총회에 분립 청원한다. 총회는 분립 청원 서류를 검토하여 전통노회와 분립노회가 다 같이 정치 제10장 제2조(노회 조직)의 규정대로 위의 ①-⑤항의 요건이 갖추어진 것을 확인한 후 총회가 노회 분립 허락을 결의하고 노회분립위원을 선정 파송하면 노회분립위원회는 분립청원서 내용대로 전통노회는 그대로 두고 분립노회만 제1회 노회로 조직해 준다. 그리고 전통노회는 스스로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노회 분립으로 인하여 결원된 임원을 보선하고 노회분립으로 인하여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개정하고 시찰회와 상비부를 조정한다. 3. 지역노회가 무지역노회화 되는 것 총회의 책임. 근간에 총회 산하의 노회 중 일부 지역노회가 얼마동안 정치적인 갈등으로 분쟁을 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지역은 종전 그대로 두고 서로 마음에 맞는 교회들끼리 헤쳐모여 식으로 총회에 노회 분립청원을 하면 총회가 받아 분립을 허락한 결과로 한 지역 안에 지역 경계도 없이 2개의 노회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실례로 수원에 있는 S노회와 대구에 있는 S노회와 부산에 있는 N노회 등으로 기억된다. 이상과 같은 결과는 전적으로 총회의 책임이다. 그 이유는 노회가 노회 분립 요건을 갖추지도 못한 노회분립청원서를 총회에 제출하거나 위헌적인 불법 긴급동의안을 받아 지역 경계가 정해졌는지 양 지역의 조직교회가 몇 개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분쟁하는 노회를 나누어 노회 분란을 해결해 주자는 식으로 노회분립위원회를 조직하여 내보내면 노회분립위원회는 거액의 돈을 받으면서(한국기독신문 제746호 참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조직교회의 수가 모자라면 꾸어주는 식으로 짜 맞추어서 불법으로 노회를 분립하여 주는 것이 현실이다(한국기독신문 제758호 참조). 이와 같이 총회가 분립하여 준 한 지역에 지역경계도 없이 두 노회로 존재하는 노회도 과연 지역노회인지 총회는 반드시 답해야 한다. 이북 피난 노회가 전국적으로 여러 교회가 섞여 있는 노회처럼 한 지역에 두 노회의 교회가 섞여 있는 노회도 위헌적인 무지역노회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각 지역노회 역시도 교회가 타 노회 지역으로 이전을 하면 이전 허락 결의만 하고 해 지역 노회로 이명을 해 주지 않는가하면 해 노회 역시도 자기 노회 지역에 타 노회에서 교회당을 이전하고도 종전 노회에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므로 전국 노회가 무지역노회화 되어가고 있음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전국 노회들이 타 지역노회의 교회가 자기 지역 노회 경내에 하나도 없는 노회는 거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따라서 전국 노회가 무지역노회화 되고 있다는 말이다. 4. 후속 조치 총회는 혹 노회의 분쟁이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한 지역에 두 개의 노회를 분립하는 것은 위헌적인 처사이므로 자제해야 한다. 또한 전국 노회를 실사하여 지역노회에 타 지역노회의 교회들은 해 지역노회로 이적조치 할 것을 지시하고 해 교회와 해 노회들은 총회의 지시를 따라 지역노회 경내에 타 노회의 교회가 하나도 없도록 정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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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5-12-22
  • [성공칼럼] 숫자 세는 순간
    구약성경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악하게 여겨서 그 벌로 이스라엘 백성 칠 만 명이 죽게 된다. 그럼 숫자를 센다는 것이 왜 하나님께 이토록 악한 일인가? 숫자를 센다는 것은 숫자를 의존한다는 것이며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잃어버리는 행위이며 마귀의 시험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악하게 보시는 것이다. 부부사이나 부모, 자녀사이나 많은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되고, 가족으로 행복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사랑과 감사가 가득하기 위해서는 서로 동등해야 한다. 소유나 지위 등의 숫자 때문에 누구는 위고 누구는 아래면 거기에는 이미 진정한 사랑과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부부와 부모와 자녀는 구별이 있으며, 자녀는 부모를 받들고 존경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위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서로간은 동등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과 신뢰가 넘치는 부부는 존중하되 친구 같은 관계이며, 부모와 자녀는 존경과 서로 친구 같은 친밀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계 안에는 숫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숫자를 택할 것인가? 한국의 부모와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학원을 가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긴장 속에서 수년을 보낸다. 좋은 성적을 위해 즐거움을 마다하고 보약을 먹이고 온갖 투자를 한다. 그런데 수능을 보았는데 평소의 실력보다 훨씬 점수가 적게 나왔다면 숫자가 엉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당신이 낮은 점수를 받은 수능생의 부모라면 어떻게 반응했는가? 부모의 목표가 사랑과 선(善)이면 이 낮은 점수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목표였다면 낮은 점수를 받은 자녀에게 화를 내며 “그동안 너에게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이것밖에 받지 못했느냐!”하며 무시하고 비난을 할 것이다. 이렇게 숫자가 우선이면 사랑도, 이해도, 자녀도, 자신의 기쁨도, 선함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의 부활을 말하며, 늙음이란 예전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을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것을 벗어나서 내면적인 것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나이를 말한다. 그런데 새로운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숫자로 힘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너보다 몇 살이나 많은데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는가?” 또는 “내가 너에게 잘해준 것이 몇 번인데.. ”내가 너와 함께 산 세월이 얼마인데...”라고 주장한다. 숫자를 말한다는 것은 과거의 옷을 걸치고 새로운 내면의 세계는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또 과거를 갖고 현재를 지배하고 군림하겠다는 것이다. 숫자란 그동안에 노력하고 선을 행하고 사랑한 것에 대한 열매인데 이제는 이 숫자를 근거로 상대방을 서운해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면 그동안의 사랑과 선을 헛된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왕의 명령으로 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는 그동안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얼마나 거대한 것을 이루어냈는지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다윗이 얼마나 자기 백성을 사랑했으며, 백성에게 선을 행했으며, 자신으로 인해서 백성이 자유롭고 힘 있게 살았다는 증표이다. 그러나 숫자를 세는 순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이며, 내 능력이며, 내 말을 들어야 하며, 나에게 잘해야 하는 것으로, 악한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다윗왕은 숫자를 세는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 모든 힘으로 솔로몬 성전을 준비하는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짜 영적인 세계는 늙어서 아무것도 없을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육체의 시대가 끝나고 더 깊은 세계인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지금부터 “옛날에 내가 ~ 을 했다.”라는 과거의 숫자를 세는 일을 중단하고 숫자를 만들어냈던 예전처럼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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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2
  • [가정칼럼] 미혼모 딸의 ‘황금 결혼식’삶과 믿음
    “아빠, 저 임신했어요.” 19세의 딸, 고등학교 졸업식도 치르기 전이다. 6개월째란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임신을 시킨(?) 녀석은 군에 입대하고 없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생명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둘의 사랑을 확인했다. 결혼 의사도 분명했다. 그렇게 해서 딸의 부모는 내게 주례를 부탁해 왔다.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상담을 맡았던 커플 중 하나도 ‘리틀 맘(mom), 리틀 팝(pop)’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다 ‘사고’를 쳤다. 둘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점포 점원으로 고달픈 생활이 시작됐다. 죄 없는 아이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착각해 산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이의 미성년 부모도 사회로부터 ‘성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떳떳하게 아빠·엄마 자리를 부여해줘야 했다. 멀리 진주까지 가서 주례를 섰다. 그때 나누었던 주례사 한마디. “온실 속 화초로 자라려 하지 말고 들녘에서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 남을 이롭게 하는 약초로 피어나렴.” 그리고 두 번째 리틀 맘, 리틀 팝. 무슨 말을 할까? 되레 딸 아이의 아빠에게 부탁했다. 편지 형태로 하고 싶은 말을 써 보면 어떠냐고? 아빠가 준비한 말을 보내왔다. “나의 사랑하는 딸 ○○아! 먼저 결혼을 축하한다. ○○이는 아빠를 놀라게 하는 특기가 있는 것 같구나! 처음에는 아빠도 많이 힘들었는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은 갑자기 아들 둘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이 너는 축복을 창조해 가는 사람이 되어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가정, 서로 존중해 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기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아! 얼마 전, ○○이가 배 속에 있는 아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당’이라고 이름을 지으라고 했더니 ‘아빠! 당이 무슨 뜻이야’라고 묻길래 ‘네 남편 성이 황씨니까 성을 붙여보면 뜻을 알 수 있다고 했지!’ ‘그러면 이름이 황당!’ 하고 ○○이가 깔깔대고 웃더구나. 내 심정이 그런 마음이었지. 너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너의 모습이 든든하게 보이는구나! ◇◇아! 성경에 나오는 야베스가 처음에는 수고의 사람, 고통의 사람, 고난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통해 축복의 사람, 존귀한 사람,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축복의 지경을 넓혀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 딸을 너에게 맡긴다.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어라. 그리고 항상 가정을 먼저 생각하고 아름답게 잘 가꾸기 바란다. ◇◇이 너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너는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는 축복의 통로다. 아! 마지막, 내 사위 키가 나보다 조금 더 커서 다행이다. 다시 한번 ◇◇이와 ○○이의 혼인을 축하한다.” ‘황당’이 ‘황금’으로 변하는 순간, 함께했던 가족과 친척·하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주례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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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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