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전체기사보기

  • [부고]김형근 목사 부친상
    순복음금정교회 김형근 목사의 부친 고 김용웅 목사가 22일 토요일 새벽 향년 81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입관예배는 24일(월) 오전 11:30분이며, 발인예배는 25일(화) 오전 7시다. 장례식 후 최자실 오산리 금식 기도원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빈소는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이다.
    • 뉴스
    • 뉴스종합
    2025-03-22
  • [성서연구] 가버나움에 오시다
    어렸을 때 부르던 어린이 찬송가 중에 갈릴리를 소재로 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가사 일부가 생각납니다. <갈릴리야 갈릴리야 너의 이름 아름답다 소리 높여 노래하자 아름다운 갈릴리> 어린 동심에 갈릴리 마을들로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에 신이 났었습니다. 갈릴리에는 익숙한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나사렛, 막달라, 벳새다 등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의 자리는 나사렛과 함께 가버나움이 다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이고,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 직전에 이사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하신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9장 1절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라고 했습니다. <본 동네>라고 할 정도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동네였습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예수님의 도시, Tte Town of Jesus>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군인이 주둔할 정도로 요충지였고(로마군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기사 참조), 세관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물동량이 많았습니다.(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두로와 시돈으로 이어주는 요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이후에 그곳은 <위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이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인데, 구약의 나훔 선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나훔이 위로이므로, 위로의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의 위로는 거짓이었습니다. 경제활동을 잘 하는 사람,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 로마 군인, 성공한 일부 사람에게는 권력과 돈이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 위로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했고, 백부장도 사랑하는 종의 중풍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취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이 진정으로 위로의 마을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참 위로였습니다. 본래 성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위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가버나움에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 지붕을 뜯고 달아내려진 중풍병자, 열병으로 고생하던 베드로의 장모,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것과 진배없던 세리 레위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는데, 그가 바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5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다렸고, 환영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자마자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8장 41절입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가버나움은 오늘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도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버나움에도 예수님으로 인한 이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가 욕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가버나움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한 가버나움이 되길 소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5-03-21
  • [소강석칼럼] 빛의 연대기
    저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고 희망의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십수 년 전, 죽전 신도시에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건축하고 부흥의 최정점을 맞았을 때 저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개교회 성장을 넘어서 공교회를 세우는 공적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계속해서 개교회 성장 지상주의로 갔다면 지금쯤 더 큰 예배당을 짓고 숫자적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교회와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영전, 사상전, 문화전의 최전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 한국교회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반기독교 법안이 올라올 때마다 정계와 교계의 깨어있는 소수의 분들과 함께 대처하고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한 개인이나 개교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한국 교계의 분열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대정부, 대사회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계속 분열하면서 각자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그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된다면 ‘빛의 연대기’라는 창작 칸타타를 제작하여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소망을 담아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로 가득했던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의 선교사들,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빛을 지켰던 믿음의 선진들의 고난과 희생, 폐허 위에서 조국 근대화와 부흥을 이뤄낸 한국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부흥의 대서사, 그리고 뼈아픈 분열과 상처... 다시, 연합과 부흥을 꿈꾸는 희망의 대서사시가 빛의 선율처럼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합니다. 남아공의 만델라가 종신 징역살이를 하고 있을 때, 1988년에 영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80명이 모여서 만델라의 석방을 기원하는 음악회를 하였을 때, 그 음악회의 영향으로 그 이듬해 봄에 만델라가 석방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은쟁반에 담긴 옥구슬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합니다. 그래서 영국 의회는 극한으로 가다가도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얼마나 극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까?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 기념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용서, 화해의 하모니가 되고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교총 주관으로 4월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릴 예정인데,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와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이루는 감동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를 연출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가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고 신음하고 있는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빛의 파동을 일으키기를 소망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25-03-21
  • [시사칼럼] 평화의 나라를 꿈꾸며
    벌써 한 세대 이전이 되어버린 1985년에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가 나왔습니다. “사랑 없는 마음에 사랑을 주러 왔던 너 너의 작은 가슴 그러나 큰 마음, 정이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너 너의 작은 손으로 그러나 큰 슬픔, 내가 헤매어 찾던 나라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낙원 네가 가 버린 갈 수 없는 나라”(‘갈 수 없는 나라’ 중에서). 조해일이 쓴 동명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 가수이자 주인공인 배수빈이 작품 속에서 부른 노래의 가사 일부를 바꾸고 해바라기라는 팀이 곡을 붙여서 발표한 노래라고 합니다. 소설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그렸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결국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말이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절망할 순 없었다. 무언가 우리에게 구원의 여지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무언가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평화의 나라를 꿈꿉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팀으로 불리던 비틀즈(The Beatles)의 리더였고 그룹 해체 후에는 독자적인 활동들을 펼쳐갔던 존 레넌(John Lennon, 1940-1980)은 1971년 의미심장한 노래 하나를 발표합니다. ‘이매진’이었습니다. 후반부에 이런 노랫말이 등장합니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 life in peace,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마 나를 몽상가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도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그가 모든 이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소망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광신도였던 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타임지는 “When the Music Died(음악이 죽은 날).”이라 썼지만 혹자는 “The Dream is Over(꿈은 끝났다).”라고 했지요. 그는 과연 좌절하고 만 몽상가였을까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로 이 순간 우리 사는 이 세상에 기이한 몽상가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 모습을 목격합니다. 우리도 꿈을 꿉니다. 결코 헛되지 않을 꿈을 말입니다.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나라를 향한 꿈입니다. 우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부질없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꿈은 결코 망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사랑하고 부르려고 하는 나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꿈꾸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노래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래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세상도 우리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리고 영원한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이사야는 몇 차례나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 노래에는 살상용 무기를 평화의 농기구로 바꿔달라는 염원이 담겼습니다(사 2:4). 그리고는 이리와 어린양이 표범과 어린염소가 송아지와 사자가 곰과 암소가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나라를 꿈꿨습니다(사 11:6-9).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첫 번째 노래에 담긴 꿈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앗수르의 발흥으로 무참하게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의 왕’(사 9:6)을 예언하고 ‘고난의 종’(사 42, 49, 50, 53장)을 노래하며 마침내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사 65, 66장)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반복은 평화의 나라를 향한 이사야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언젠가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도래하리라, 우리 사는 날 동안 그렇지 못해도 그날이 오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같은 꿈을 꿉니다. 부디 주 안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5-03-21
  • [은혜의말씀] 샘물의 축복 (이사야 58:11)
    삶에는 흐름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흐름이 있다. 말이 통해야 행복하고 돈이 통해야 경제가 살고 뜻이 통해야 원팀이 되고 피가 통해야 건강하다. 혈행이 고른 것이 건강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흘러가는 대세가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시대가 요청하는 흐름이 있다. 백세를 사신 방지일 목사님은 병들어 늙고 녹슬어 죽지 않고 주의 일을 하다가 닳아서 죽으리라 하였다. 예수님의 계보를 보면 주님이 오시기까지 수많은 방해가 있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죽는 위기도 있었고, 많은 고비들을 지나며 때가 차매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끊어질 듯 하나 끊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위태위태하게 조마조마하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물은 기다렸다가 다 채운 후에 흘러 넘어간다. 물은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간다. 역사는 반복된다. 사사시대에는 일곱 번의 사이클이 반복 된다. 축복을 받고, 교만하고, 죄를 짓고, 심판 받고, 회개하고, 회복되고, 다시 또 축복 받고, 범죄하고, 계속 반복된다. 위기의 시대에 그 땅에 14명의 사사가 나타나서 구원역사를 이루었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삼손,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기드온! 사도바울의 사역을 보면 사방으로 우겨 싸여도 새털처럼 자유롭게 살았고, 온 이태를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도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루살렘으로 갈 때 누가 막으리요? 누가 끊으리요?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환난과 핍박, 온갖 방해와 공작이 있어도 도도히 흘러간다. 거침없이,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가는 물줄기 같다. 이사야는 패망하고 포로 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했다. 물이 귀하고 메마른 사막 천지인 이스라엘 땅에서 샘은 축복이다. 사막 지역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수이다. 물 댄 동산, 잠근 동산은 물이 넉넉하게 풍요로운 것이다. 샘물 같은 은혜는 은혜(카리스)의 단비가 내려와서 카리스마를 이룬다. 은혜의 이른 비 늦은 비가 내려와 큰 못, 저수지를 이룬 것이 은택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 은혜를 입은 자가 장땡이다. 성령님은 불처럼 바람처럼 생수처럼 임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왔다.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이 되고, 강 좌우에 과실나무가 심히 많아지고, 이 물이 바다에 이르니 바다의 물이 되살아났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고기가 심히 많아졌다(겔47:1~12). 눈물 테라피가 있다.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금식하며 통곡하며 부르짖는 구국기도는 나라를 살린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때이다. 역사가 어두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을 일으키신다.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주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도우시며 영광의 주께서 풍성케 인도하신다. 영적 전투에서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나아가라.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5-03-21
  • [위드애] 4월 20일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이제 곧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이날을 ‘장애철폐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익숙한 용어인 ‘장애인의 날’로 지칭하겠다. ‘장애인의 날’은 4월 20일이다. 이날만 되면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대중매체에서는 장애인과 관련한 기사와 영상을 내보내고, 장애관련기관들은 이와 관련한 행사를 진행한다. 다른 날들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특별할 것도 없고, 매년 비슷한 내용이라 색다른 것도 드물다. 그럼에도 이런 행사들이 필요하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 누군가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장애인을 대하는 생각과 말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어느 때부터 교단차원에서든, 교단차원이 아니든, 개교회가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장애인주일’을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교회들을 보면 목사이면서 장애당사자로서 미소가 띈다. 그런데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이거나 부활주일과 겹치는 일이 종종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장애인의 날’은 주일이면서 부활주일이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교회는 장애인주일 보다는 부활주일에 예배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물론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이 그 어떤 절기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목사인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에 어떤 이들과 함께 하셨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주일은 일 년마다 돌아오는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라, 매 주일이 부활주일이 아닌가? 아니,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부활절이 아닌지. 그래서 매일의 삶이 감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2025년 4월 20일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기보다 장애인주일로 지켜보는 건 어떨까? 교회 여건과 분위기 때문에 그것이 어렵다면, 부활주일과 장애인주일을 함께 지키는 건 어떨까? 오전에는 부활주일, 오후에는 장애인주일 이렇게 말고, 말 그대로 함께.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교회에서는 요원할 일일까? 내가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의 바람이 요원할 수도 있고,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한 번쯤 희망을 가져본다. 이 글을 보고 4월 20일을 부활주일이 아닌 장애인주일로 예배를 드렸다는 교회가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렵다면, 4월 어느 한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정하여 교회들이 꼭 지켜주기를 소망해 본다.
    • 오피니언
    • 칼럼
    • 위드애(with 愛)
    2025-03-21
  • [교회건축칼럼] 지속성장을 위한 플랫폼 교회
    1. 유럽 교회 공동화 현상의 원인(공간과 기능적 측면) 우리나라 교회 성장은 19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부흥기를 맞이했다.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교회는 시대를 앞서갔으며 여러 상황이 풍요보다는 결핍의 시대였고 나눔보다는 경쟁 지향적 시대였다. 교회의 환경도 결핍의 충족과 꿈의 도전과 실현에 기도와 간구로 신앙은 큰 기대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와 같은 현상을 교회공간과 기능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본당 위주의 교회로 건축되었다. 지역사회의 유기적 연합이나 문화공간으로서의 교회와 같은 외부적 환경과의 접촉은 거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교회의 기능은 대부분 예배공간, 사무 행정, 소규모 교육실과 식당이 전부였다. 이와 같은 교회의 형태는 2000년대를 맞이하여 더이상 지속성장을 견인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고 성도들의 지적 수준과 욕구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유럽 교회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다. 유럽의 교회는 대부분 본당 위주로 형성되어있다. 예배 드리고 흩어지는 공간이며 성도 간의 코이노니아와 같은 소통과 나눔의 공간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교회의 기능 분포를 보면 예배공간이 80%, 사무 공간 및 행정 기능이 6%, 기타 교육 기도 공간이 14%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유형은 교회의 지속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형태이다. 결국 교회가 예배처소로서의 기능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주민과의 교회가 소통하거나 지역 근린센터와 같은 기능, 성도 간의 다양한 나눔과 세대간의 연합과 같은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공동화의 사회적, 신학적, 이념적, 정치적 이슈를 떠나 기능과 용도와 이용의 측면에서 보면 공동화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교회 역시 1980년대 공간의 분포와 용도는 유럽의 교회와 비슷하다. 그런 유형의 교회들은 이미 성장이 멈춘 교회들이다. 미국의 경우 이런 유형의 교회들을 이미 박물관 교회로 명목상 유적지와같은 교회로 남아있다. 2. 플랫폼 교회의 의미 플랫폼(platform)은 역에서 승객이 열차를 타고 내리기 쉽도록 철로면보다 높여서 설치한 승강장을 의미한다. 이곳은 많은 승객이 열차를 바꿔 타거나 방향에 대해 정보를 얻고 목적지를 정확히 설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적 과정에서 플랫폼은 디지털 공간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로 상호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반이다. 모든 길은 플랫폼으로 통한다. 초현대 사회에서 성장과 비즈니스 모델로 조직과 공동체, 개인 모두에게 핵심적 가치가 되었다. 플랫폼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교회와 주민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다양한 소통과 정보를 공유하여 상담과 치유, 문화적 거점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교회이다. 동시에 성도와 세대간 단절과 왜곡되어진 시선들을 통합하고 방향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유기체이기도 하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교회의 형태는 극심하게 변화되었고 성도가 교회를 인식하는 가치로 상호 조화보다 연결이 잘 안 되어가는 혼란한 시점에 있다. 플랫폼 교회가 단순히 여러 기능을 공유하는 기능적 측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복음의 새로운 시도로 탈교회화되는 소위 가나안 성도(거꾸로 안나가 성도)를 깨우는 시도가 필요하다. 교회의 시설과 공간은 성도들만의 편협한 사고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더 혁신적 시도를 해야 생존할 수 있고 지속성장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회 교육공간(유치부, 중고등부, 청년부실)을 주일만 사용하고 평일에는 거의 90% 교회와 공동화되어있다. 이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평일에 더 활성화하려는 시도와 전략적 아이디어가 부족한 실정이다. 유치부실은 키즈랜드, 키즈 카페로 평일 지역사회에 개방하면 중고등부실이나 청년부실을 책상만 설치하여 지역사회 청소년, 대학생의 스터디 카페로 바로 전용화될 수 있다. 이동식 주방이나 커피 머신, 인터넷 인프라만 설치하면 교회를 청소년들의 인기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소그룹실들은 특정한 날에 지역사회 주민의 법률, 세무, 건강 등 상담센터로 활용하여 지역 사회와 공유하여 연합될 수 있다. 교회 마당은 마을 장터, 바자회장, 야외 카페테라스와 같은 마을 마당으로 바꿀 수 있다. 지붕층은 스카이라운지, 생태공원, 작은 공연장, 야외 기도 부스와 같은 쾌적하고 감상적인 공간으로 지역 주민이 가보고 싶은 곳으로 변화된다. 소예배실은 지역 예식장, 공연장, 열린음악회 공간을 통해 인기있을 문화센터의 장소로 기능한다. 식당은 본당 다음으로 큰 공간이지만 주일 하루 사용한다. 왜냐하면, 하루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식당을 청소년 탁구장, 바자회장, 문화센터 홀, 실버센터로 바꿀 수 있다. 주방의 배식구에 덧문을 설치하면 주방이 보이지 않게 되어 식당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형된다. 이를 통해 식당 공간을 평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다목적 광장으로 바꿀 수 있다. 플랫폼 교회는 기능적 기능 및 용도의 성격을 교회 내부의 관점에서 외부 지역사회의 관점으로 바꾸면 많은 내용을 네트워크 할 수 있다. 유튜브 스튜디오는 다양한 정보를 콘텐츠 하여 소통에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 오피니언
    • 칼럼
    • 교회건축칼럼
    2025-03-21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이승만의 반공주의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초대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토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 통치체제를 확립한 인물로서, 그가 남긴 한 가지 중요한 업적은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생동안 반공주의자로 살았고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로 살았다. 이승만의 건국 사상 혹은 건국이념은 반공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국제평화주의, 사회균등주의 등으로 표현되어 왔는데, 따지고 보면 이런 사상은 기독교 사상이자 기독교적 가치에 기초한 것이었다. 1899년 한성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승만은 1905년 초 세례를 받았고 일생동안 기독교 신자로 살았다. 1919년의 만세운동으로 임시정부가 조직되고 수반으로 추대되었을 이때 벌써 기독교 건국론을 피력한 바 있는데,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그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설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살았고, 그것은 바로 반공주의의 실현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간 남한을 통치하면서 반공주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고수함으로서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교육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가 지향했던 이른바 기독교 건국론은 용공주의와는 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반공사상은 해방 공간에서 갑자기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유영익 박사가 지적하는 바처럼 그는 청년기부터 제정 러시아에 대한 공로증(恐露症) 혹은 혐로(嫌露)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반러시아 의식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되고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반공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주의 사상이 처음 표현된 것은 1923년이었다. 그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발간되던 「태평양 잡지」 1923년 3월호에 “공산당의 당 부당(當不當)”이란 제목의 논설을 게재했는데,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이 논설에서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합당한 점과 부당한 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이 선전하는 인민평등주의는 조선의 신분제도인 상반(常班)의 철폐와 반상제도의 연장선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노예제도를 없애는 것으로 보아 이를 합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재산을 공유하자거나, 자본가를 없애자는 주장이나, 지식계급을 없이 하자거나, 종교단체를 혁파하자는 주장이나, 정부나 군사를 없애자는 등 5가지 주장은 현실성 없는 부당한 허위 선전이라고 보았다. 사유재산제도가 불평등을 조장한다고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노동 의지는 감소될 것이며 결국 모두가 가난하게 되는 피해를 보게 된다고 본 것이다. 이때는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불리는 소련 공산당 정권이 등장하지 불과 6년이 지난 때였다.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거짓된 유토피아 사상에 열광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본질과 모순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란 “원래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역해가며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체계”로 판단했고, 이런 이념을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확신을 피력한 것이 위에서 지적한 “공산당의 당부당”이라는 논설이다. 이런 글을 발표한 배경에는 공산주의의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는데, 이승만이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1921년 초 상하이에 부임했을 때 당시까지 임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가 한인공산당 중앙위원장인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 1873-1935)였다. 함경도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볼셰비키에 가담한 바 있고, 임시정부 국무총리직을 이용하여 사회주의운동 확산하고자 했다. 사실상 그는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반공주의자인 이승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임정 개혁안을 둘러싸고 이승만과 격한 논쟁을 벌였던 이동휘는 결국 임정을 탈퇴하였다. 이 무렵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한인들이 점점 많아졌다. 사실상 이승만을 탄핵하려는 이들은 이런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반감은 심화되었고,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자신이 인식한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 그것이 추구하는 실상을 제시하고 맹목적으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을 계몽하러 한 것이다. 반공, 반공주의, 반공사상은 이승만이 끼친 가장 큰 이념적 계몽이었다. (계속)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5-03-21
  • [다음세대칼럼] 학교생활의 생필품
    우리의 일상생활에 ‘생필품’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생활 필수품을 말한다. 우리에게 물, 전기, 쌀, 소금, 설탕, 기름, 돈 등은 생활 필수품이다. 이것이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요즘에 와서 이런 것보다 ‘핸드폰’이 얼마나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많은 사람들은 잘 때도 핸드폰을 손에 꼭 붙들고 살아간다. 스마트폰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는 듯이 말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카피처럼 ‘스마트폰은 휴대폰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은 생필품입니다.’ 이렇게 바뀔지 모르겠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핸드폰 없이도 살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많이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것 없다고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핸드폰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이다. 핸드폰은 꼭 필요한 물품은 아니다. 이제 3월이면 학생들이 개학을 한다. 학교 생활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품은 무엇인가?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경의 서신서에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수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로마서 12장 9절에서 13절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그러니까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본문이다. 얼핏 보면 약 12가지 정도의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정리하면 세 가지 정도로 그룹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랑, 믿음, 그리고 소망이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필품이 없으면 우리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듯이, 이런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없으면 우리의 생활은 정상적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먼저, 학교생활의 생필품과 같은 것은 사랑이다. 로마서 12장 9절과 10절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사랑할 것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사랑하라’가 아니다. 어떤 사랑을 감당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참된 사랑을 말한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거짓이 없어야 하는 것 곧 위선적이지 않은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악을 미워해야 하고, 선에 속하기를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에 속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곧 서로 형제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일, 서로를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일이다. 우리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야 하는 일은 ‘진실한 사랑’이다. 감추려고 하거나 거짓 사랑은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 그 행 한대로,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친형제 사랑하듯 대하고,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듯이 모두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 학교생활의 생필품은 믿음이다. 로마서 12장 11절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고 기록한다. 방학을 맞이하여 각종 수련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개학을 앞둔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도 이 믿음과 은혜를 버리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11절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한다. 믿음은 주를 섬기는 일이다. 주를 섬기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열정을 다해 온 영을 다해 주님을 섬기라’라는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교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서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을 믿고 오직 그를 신뢰하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회 생활의 필수는 소망이다. 바울은 학교생활에서 힘써야 할 것을 ‘소망’에 집중시킨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현재성’이 있는 신앙이다. ‘오늘, 여기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로 승리하는 그런 살아있는 참 종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최종 종착점은 여기가 아니다. 죄 많은 이곳, 멸망 받을 이곳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사도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12절과 13절 말씀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기록한다. 소망을 가진 자는 환란 중에 참고, 기도에 힘쓰고, 이웃 성도를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소망이 있는 삶인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손 대접하기를 애쓰시는 모습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3월에 개학하는 모든 다음 세대에게 당부한다. 사도 바울이 소개한 생필품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소유하고 승리하는 학교생활이 되길 기대한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5-03-21
  • [기독교인문학]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
    김성민의 《죽음사회 너머》 - 거룩한 노년을 위한 생사학 - 죽음은 인간이 대처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불편해한다. 그래서 회피하고 부정하며 금기시한다. 저자는 죽음을 부추기는 위험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회피할수록 역설적으로 생명이 감춰지고 죽음의 문화가 확산된다며 죽음을 피하지 말고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내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가꾼다는 뜻이고,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므로 준비된 죽음으로 존엄성을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할 것을 권면한다. 대학원에서 생사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생사교육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결론은 ‘죽음은 결국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한 토양’이라는 것.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하고픈 이들에게 드리는 기독교 생사학 매뉴얼. ◇ 저자소개 ∥ 김 성 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 미국 미시오 신학교(구 비블리컬 신학교)에서 선교적 교회론으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이민목회를 하였고, 귀국하여 나들목교회와 광주소명교회에서 사역했다. 현재는 한림대학교 대학원에서 생사학 박사 과정에 있으며 생사교육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안식》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 복있는 사람 / 2007 《나이듦의 신학》 / 폴 스티븐스 / CUP / 2018 《죽음과 부활의 신학》 / 김균진 / 새물결플러스 / 2015 《현대생사학 개론》 / 찰스 A 외 / 박문사 / 2018 기독교인문학 〈57〉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 - 죽음을 기억하라! - 죽음을 직면하라 “이제 죽음을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불편한 대상을 피할수록 진실은 멀어진다. 우리는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죽음을 모른 채 생명을 제대로 누릴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인 부활을 소망할 수 없다.” '죽음'은 금기어? 김길구 며칠 전 휴대폰에 부고가 떴어요. 작년에 뵈었던 박만교수가 안타깝게도 소천하셨다는 거예요. 66세의 아까운 나이에… 순간 은퇴 후의 취미생활을 위해 배우고 있다며 연구실 한편에 세워둔 클래식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치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며왔어요. 이처럼 죽음은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는데 늘 잊고 살아요. 박만교수의 마지막 저서가 되겠네요. 고인을 추모하면서 《인생의 질문 신앙의 답변》 중에 죽음에 관한 얘기 중 생각나는 대목이 있다면? 류지원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를 인용한 대목인데, 죽음은 보편적이지만 서구 기독교 문명 속에서 죽음에 임하는 태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변해왔단 거예요. 중세 초기에는 공동체의 품에서 ‘우리의 죽음’으로 함께 했다면 중세 말기에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로 ‘나의 죽음’으로 바뀌더니, 바로크 시대에는 ‘멀고도 가까운 죽음’으로 점차 객관화하고, 낭만주의 시대로 와서는 ‘타인의 죽음’으로 타자화하더니, 현대사회에 와서는 죽음이 ‘아주 낯설고 두려운 것’으로 최대한 숨기고 금기시해야 할 ‘반대물’로 전화해 왔다는 거지요. 죽음학, 생사학의 발자취 김현호 저자는 ‘생사교육문화연구소’ 소장인 김정민 목사입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생사학(生死學)은 처음에는 죽음학(Tanatology)으로 시작했는데 1903년 메치니코프가 노인학을 연구하면서 처음 사용했다고 해요. 그러다 1963년에 미네스타 대학교에서 최초의 정규과목을 개설한 후 여러 대학으로 확산되었는데, 아시아에서는 죽음에 대한 기피 때문인지 생사(生死學), 또는 사생학으로 재정의하여, 한국에는 1997년 한림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죽음교육 과정을 개설하였고, 2004년에 ‘생사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요. 류지원 우리는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기대하고 살지만 OECD 자살률 1위에서 보듯이 노인들의 질병, 빈곤, 돌봄문제를 비롯한 연명치료, 존엄사, 고독사 등 주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프로그램은 필요합니다. 급속한 노령화를 맞고 있는 교회는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지배아래 있는 인간 김길구 불편한 진실은 우리 모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만,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거룩한 노년을 위한 기독교 생사학’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은 기독교적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고 할 수 있어요. 김현호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죠.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너무 우쭐대지 마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의미인데, 생명이며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는 죽음이 종착지가 아닌 영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기에 사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아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류지원 그렇죠.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과 이 죽음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극복되었으며 사후 다른 차원의 몸으로 창조주 앞에서 죽음이 지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부정과 긍정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지요. 늙어 간다는 것 김길구 나이듦에 대하여 얘기해 보죠. 폴 스티븐스는 모세의 서사에서 살아온 날을 ‘세는 것’(시90:12)을 ‘시간의 성화’라고 했어요. 비록 우리의 신체는 날로 노쇠해 가지만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값지고 의미 있게 잘살아왔다는 자존감 속에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시편 92편) 삶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지요? 김현호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고, 초기노인은 65-74세, 중기노인은 75-85세, 후기노인을 85세 이상으로 분류하지만,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65세 이상이면 가능한 노인 일자리 200여 명의 평균 연령이 75세가 약간 넘었고, 최고령자는 92세였다고 해요. 노인들의 빈곤 문제도 문제이지만, 대가와 무관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일자리는 꼭 필요합니다. 류지원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기대하며 흔히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병원에 입원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이 바람이겠지만, 통계를 보면 평균수명 84세, 건강나이 평균 약 67세로 약 17년 동안 각종 질병으로 골골거리며 살다 죽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에 맞는 영양과 운동 그리고 마음의 평안이 필요합니다. 김현호 더 치명적인 것은 치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2년도 통계를 보면 치매 환자가 거의 100만 명을 돌파했군요. 중앙치매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도 기준 전국 추정 65세 이상 노인 인구 총 857만여 명 중 치매환자는 약 88만 명으로 유병률은 10.33% 노인 10명당 1명은 치매에 걸리고, 점점 증가하다가 80세 이상이 63%였다니 안타깝군요. 자살에 대하여 김길구 자살한 사람이 2023년 통계를 보니 13,978명으로 10만 명당 27.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월 1,000여 명이 사망한 거예요.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로 분류한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의 동인이 심리적 조건보다는 사회적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가톨릭보다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요. 1983년 가톨릭에서는 자살을 가리켜 ‘교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절망에 빠진 사람의 표지’라고 하여, 목회적 차원에서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 장례를 허용한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김현호 자살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해요. 책에는 빅터 프랭클의 명저 《죽음의 수용소에서》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죽음의 극한 상황에 직면한 자신을 포함한 수용자들을 관찰한 결과보고서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비결은 ① 고통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과 ② 니체의 말처럼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③ 외적인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인간에게는 어떠한 상황 속에도 자신의 태도와 선택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류지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logos+therapy의 합성어인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통해 내면적 충족을 이루게 하는 심리기법을 고안하였는데,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는 일이나 예술활동 같은 창조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상은 전후 세대에 큰 호응을 얻었고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저서는 철학적·심리학적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길구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결산’입니다. 저자는 인생여정의 마무리는 네 가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제언합니다. 첫째로 나의 유산과 서사 남기기, 둘째로 화해하기, 셋째로 나의 존엄지키기, 마지막으로 나만의 장례식 계획하기입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죽음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이다”란 말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03-2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