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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로교회, 종교개혁 특강 및 김태영 목사 출판감사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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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주일) 오후 7시 백양로교회 희년행사위원회와 부산동노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주관으로 백양로교회 당에서 종교개혁 특강 및 김태영 목사의 신간저서 <교회되게 교회답게> 출판감사예배를 개최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김동엽 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 목민교회)가 ‘종교개혁의 의의(意義)’(왕하22:8~13)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한국교회가 지탄받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신앙의 절대적 본질은 오직 성경”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은 복음적인 회복,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예배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신동작 목사(제3대 백앙로교회 담임, 전 부산장신대 총장)의 축도 후 2부 출판기념회가 진행됐다.
이날 <교회되게 교회답게> 출판기념회는 천영호 장로(백양로교회, 한국기독공보 사장)의 사회로 김운성 목사(땅끝교회), 홍성호 목사(순천제일교회), 김재영 목사(광주성안교회), 박희종 목사(대구대봉교회)가 서평을 맡았으며, 박한규 장로(학장제일교회, 부산동노회장), 윤재인 장로(전국남선교회 회장), 박인자 장로(전국여전도회 회장), 안옥섭 장로(전국장로회 수석부회장)이 축사했다. 또 오규훈 목사(영남신대 총장)과 김용관 목사(부산장신대 총장)이 격려사를 전했다.
저자인 김태영 목사는 “교회는 주님의 피흘려 세우신 ‘주님의 몸’이다. 필연적으로 교회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명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며 “남은 여생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 왕국이 아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제자를 세우는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박위근 목사(염천교회 원로목사)의 권면과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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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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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3] 부산을 방문한 첫 서양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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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앞바다와 오륙도가 훤히 보이는 연구실 창문 넘어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한척의 배가 길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 배일까? 무엇을 싣고 가는 것일까? 그 선박에는 누가타고 있을까? 이런 저런 의문과 함께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갔을 부산 앞 바다를 보며, 잊혀진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이양선(異樣船)이 지나갔을 그 뱃길을 따라 이곳 부산을 방문한 첫 유럽인은 누구였을까? 오늘은 이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이탈라아인으로 일본에서 선교사로 일했던 안토니오 쁘레네스띠노(Antonio Prenestino)는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유럽인은 1578년 이전 조선에 온 포르투갈 상인들이라고 말한다. 포르투갈 상선 산 세바스치안(San Sebastian)호의 선장 도밍고스 몬떼이로(Domingos Monteirro)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태풍에 휘말려 조선해안의 한 곶(串)에 닿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을 조선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기록으로 볼 때 실제로 조선을 방문한 첫 인물은 이보다 약 15년 후인 1593년 조선을 방문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1551-1611) 신부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세스페데스가 조선으로 오게 되는 것은 그 연원을 따진다면 일본에서 선교활동 하던 예수회 신부들로부터 시작된다. 프란시스코 데 자비에르(Francisco de Xavier), 꼬스매 데 또레스(Cosme de Torres),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a'ndez) 등 예수교신부가 1549년 일본에 도착하여 ‘전교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이미 조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소식은 1549년 7월에는 리스본에, 그해 9월에는 로마에까지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체류하던 천주교 신부들은 조선 선교를 의도했는데, 실제로 실현된 것은 40여년 뒤였다. 1592년(임진년) 4월 13일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했다.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은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이어진 전쟁인데, 왜군은 개전 초반에 한성을 포함한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였으나 개전 1년 여만에 창원 이남으로 패퇴하였으며 결국 조선군과 의병의 강렬한 저항, 명나라의 조선 지원, 조선 수군의 대 활약에 의해 7년 만에 패배하여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을 계기로 조선은 천주교와 접촉하는 기회가 되었고, 조선이 서양에 알려지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임진왜란 때 약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는데, 이 중 약 2천여 명은 천주교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주둔지가 진해 인근 웅천(熊川)이었다. 천주교도로서 아우구스띠누스라는 세례명을 가졌던 왜장 고시니 유끼나가(小西行長)는 조선출정 천주교도들을 위해 예수회의 코메즈(Pierre Comez)에게 신부파견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에 의해 내한한 신부가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였다. 종국 신부로 내한하게 된 것이다. 스페인 신부였던 그가 조선의 남해안에 도착한 날이 1593년 12월 27일이었고, 웅천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인 28일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일본의 고위층과도 폭넓은 교분을 나누었다. 그는 약 1년간 체류하면서 부산을 방문하였고, 경상도 일대의 해안지방에 머물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4통의 서간문을 남겼는데, 이 편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에 의해 발굴되어 당시의 정황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세스페데스는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가 고꾸라(小倉)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등 몇 마디를 남기고 1611년 12월 어느 일요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천주교, 그리고 천주교 신부와 접촉하게 되었지만 그 이상의 접촉이나 발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선의 상황은 극동으로 진출했던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서구사회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또 조선에서도 서양에 대하여 그리고 서양 기독교에 대해 점차 눈을 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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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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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기 사순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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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재의 수요일로부터 사순절 기간이 시작됐다. 금년 부활절인 4월16일 하루 전인 4월15일까지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참회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한국교회는 경건한 삶을 독려하고, 고난의 의미를 되새긴다.
특히 금년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사드배치로 인한 주변국의 견제, 북핵위협, 국가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나라가 혼란스럽다. 이런 어려운 시기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사순절 기간에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일이다. 통곡하며 가슴을 치며 회개의 소리를 높이고, 거룩한 탄식의 소리가 교회 지도자 사이에서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을 이 나라 위정자들이나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지 못한 우리들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았더라면 지금의 위기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고, 사회의 약자의 편에서 경종을 울려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와 구별된 삶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번 사순절을 계기로 철저한 회개를 통해 다시한번 한국교회가 말씀과 본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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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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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병원에 기도와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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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레스 선교사가 중국 선교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6.25 동란 중 세운 침례병원이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초량동에서 남산동으로 무리하게 병원을 이전하고 이로인한 부채로 인해 사실상 병원 적자 상황을 오랬동안 지속해 왔다. 현재 병원은 3월24일까지 휴원상태이며,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달 21일에는 의사가 없어 응급의료센터까지 폐쇄한 상태다. 26개 진료과에 40명이 넘었던 의사 수가 최근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침례병원이 응급실을 운영하려면 24시간 상주하는 전문의 2명을 비롯해 최소 4명의 의사가 근무해야 하지만 현재는 2명밖에 상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 퇴직자 52명이 부산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제출해, 재판결과에 따라 병원이 파산 수순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침례병원살리기대책위원회가 총회에 비상총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총회는 특별한 대책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고, 병원측도 회생마련안으로 임대아파트인 ‘뉴스테이’ 사업을 검토했지만, 이 마저도 부산시의 난색으로 무산됐다. 현재의 병원 부지를 건설사에 넘겨 뉴스테이를 짓고, 병원은 접근성이 용이한 곳으로 이전을 추진했지만, 사실상 용도변경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제는 경영주체인 침례교단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할 경우 병원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교계도 침례병원에 대한 기도와 관심을 갖고, 교계차원의 대책마련 방안도 강구해야 될 것이다.
부산에는 과거 금성과 건국 등 기독교 사학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넘어간 사례가 있다. 지역교계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대응을 했더라면, 기독교사학이 쉽게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침례병원도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역교계가 나서야 한다. 비록 침례병원의 운영주체가 침례교단이지만 지금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 온 선교병원을 지금에 와서 모른체 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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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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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목사] 가벼운 스님이 떠나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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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늘 공평하여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골고루 주었다. 간혹 배분이 잘못되어 조금 더 낫거나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힘 좋고 튼튼한 사람에게 냉철한 머리까지 준다거나, 기발하고 뛰어난 머리에 건강한 신체까지 준다는 건 좀처럼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재주가 열 두 가지면 굶어죽는다"라고 했을까?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일개 서민이 '선택된 사람' 인양 행동한다면, 그렇게 큰 피해가 없지만 위쪽, 즉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개 서민이 천지를 모르고 설친다면 그냥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한 바퀴 빙글 돌리고 무시해 버리면 되지만,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그 피해가 예삿일이 아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세상을 바꿀 사람은 나뿐이며 나부터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이 위험한 생각, 공평하게 나누어준 하늘에 도전하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은 수년간 그야말로 '욕봤다'. 아비가 제 자식을 교정하기도 어렵고 아랫사람이 어른의 생각을 바뀌게 한다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모든 친구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물며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 맞는다고 우기는 일들을 우리는 요즘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너무 쉽게, 자주 본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좋은 말이 있다. 나 하나 변하는 것이야 좋은 책을 몇 권 본다거나 좋은 스승이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어느 날 문득 득도해서도 가능하지만 자기를 뺀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건 솔직히 말해 불가능하다.
약삭빠르고 싹싹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마음속이 쉴 틈이 없다. 무슨 일이든 만들어 꾸며 보려는 욕심으로 마음을 가만 두질 못한다. 성급하고 조급해서 양은그릇처럼 잘 달구어지기도 하고 잘 식어 버리기도 하는 사람은 진득하게 살지 못한다. 어수선하게 일을 벌여 놓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밤낮으로 쫓기면서 자신을 돌이켜 볼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영악할 수는 있어도 어질 수는 없다.
약삭빠른 현대인은 자신을 이길 생각은 않고 남을 이길 생각만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벗을 잃었고 이해상관으로 얽힌 동료만 있을 뿐이며, 항상 서로 경계하면서 다투어 상대를 이길 생각만 골똘히 한다. 그리고 염치를 모르며 겸허할 줄 모르고 우쭐대면서 자기선전을 하여 씨름판의 천하장사가 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사람들이 뻔뻔스러우니까 세상은 점점 추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남을 탓할 때가 많다. 잘못은 내게 있는데, 내가 오해받을 일을 했는데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화를 낼 때가 많다. 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 실수인 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과 유치한 자기체면 때문에 먼저 다가가 서 사과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먼저 숙이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면, 내가 먼저 사과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나는 그리 못하는 것일까? 지금은 그의 잘못이 크다 해도, 내가 먼저 큰 사람이 되어 마음을 먼저 열기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낯이 붉어지며 미안해 할 텐데…. 그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왜 내가 먼저 못하는 것일까? 스님이 절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절더러 떠나라고 할 것인가? 가벼운 스님이 떠나면 되듯이 나를 뺀 모든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변하자. 순리대로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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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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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3.1운동 98주년을 맞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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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회는 130년의 짧은 역사에서 많은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세계교회에 모범이 될 만한 일들과 아울러 또한 다양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선교초창기 한국교회는 교회사에 길이 남을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되었다. 그 하나는 평양대부흥운동이다. 1907년 평양 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은 회개를 통한 성결운동과 아울러 말씀과 기도, 전도운동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20년밖에 안 되는 어린 개신교회가 한국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이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방 등 암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령운동은 자칫 역사를 외면하고 사회현실에서 도피하는 신앙운동으로 흘러가기가 쉬웠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런 길로 가지 않았다. 이미 1907년에 기독교지도자 안창호와 이승훈 등은 신민회를 만들어 항일운동을 벌렸고,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교회당이 만세운동의 전초기지로 사용되는 등 한국교회는 3.1운동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했고, 많은 교회당이 파괴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과 3.1운동은 무슨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져서 일어난 운동이 아니었다. 이 3.1 운동에 앞장선 사람 중에는 길선주 목사와 같이 평양대부흥운동의 주류에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을 통해서 진정한 성령운동은 하나님나라 운동이요, 역사와 민족의 문제에 책임 있게 행동하는 신앙운동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1운동에서 실패한 이후, 교회는 사회와 역사의식을 가진 많은 지도자들을 잃어버렸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값을 치러야 하는가를 직시했다. 그러면서 사회현실에서 물러서서 개인구원과 인격성장, 영적체험과 내세에 집중하게 되었고, 신앙생활은 주로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신앙이 정치와의 무관함을 선포하면서 일제통치에 순종적인 집단이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는 불의한 일제의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교단 지도자들은 나선일체의 민족말살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교인들에게 황국시민이 될 것을 가르쳤고, 일본이 일으키는 전쟁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일제는 더 나아가서는 애국심을 앞세워서 신사참배까지 수용하게 하므로 교회신앙의 본질까지 훼손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광복이후 70년간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와 철저한 이원론적인 신앙 아래서 모든 역량을 개인구원, 교회성장에만 집중시켜 커다란 부흥을 경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고립된 게토와 같았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온갖 불법과 불의 그리고 인권유린에 침묵했다. 반공과 국가안보를 기치로 내걸면, 권력자의 어떤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일제 말기처럼 교단지도자들은 독재 권력의 왜곡된 통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면서, 그들의 정치적 도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열린사회가 되면서 우리 국민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사회비판의식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기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개신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매우 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은 여전히 유아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교계지도자들의 정치적인 발언은 너무 현실과는 동떨어진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그런 것들이 통하는 교회를 도리어 의아해 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이전보다 사회적인 신뢰를 상실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복음전도에도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 3.1절 98주년을 맞이하면서 과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소중한 전통을 다시 회복하자. 우리는 ‘again 1907!’만 외쳐서는 안 된다. 그것과 아울러 ‘again 1919!’를 외쳐야 한다. 여기에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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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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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24] “사회는 포용성과 시민상식 가진 목사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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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삶의 현장에서!”
모두 4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목회도 패러다임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패러다임은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한 것 같다. 삶의 현장에 적합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패러다임이라기보다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노인들과 소외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인 산골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목사가 지역주민들의 노동 현장에 뛰어들고, 당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목회자로서 깨달은 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3부와 4부에서는 신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1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1부는 어느 정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면, 3부와 4부는 내용 자체가 가볍지 않다. 사용한 단어도 까다롭고 사변적이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어렵다. 다 읽고 나니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제목인 ‘목사 사용설명서’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고, 몇몇 미디어에서 이를 취재하여 기사화하면서 저자와 시무하는 교회가 많이 알려졌다. ‘사용설명서’ 중 마지막에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교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가려는 목회자의 심경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목사 사용설명서》 || 김선주 목사는 충청북도 영동의 물한계곡교회에 시무하고 있다. 그는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어 마을공동체와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목회자이다. 대장간,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아, 잡꿀. 세상 모든 꽃들이 제 향기를 섞어 하나로 만든 꿀. 나는 퍼뜩 ‘잡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하나의 전문성을 가진 순혈적 인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할줄 알고, 다 소통하는 인간. 만능 엔터테이너.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수,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아,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꿀맛이었구나.” [34쪽]글쓴이는 꿀을 뜨면서 잡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스스로도 ‘잡놈’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의도적으로(?) 거친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속물이다’로부터 ‘영성, 싸구려 유행상품’ ‘집단강간체제와 목사의 이력’ ‘도끼날처럼 시퍼런 가을하늘’ 등.
#말로만이 아닌 ‘당장의 축복’이 중요김길구 : 옆에 있던 분이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이 책 제목을 보더니 당장 “이건 너무했다”고 합디다. 목사가 물건도 아닌데 ‘사용설명서’라니, 이런 반응이었죠. 김현호 : 심정을 이해할만합니다. 그러나 저자인 김선주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경우, 대부분 교인이 노인인데다 이들은 목사를 ‘특별한 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죠. 이에 비해 저자는 현장에서 이들을 돕고 함께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터로 뛰어들죠. 교인들이 자꾸 부담스러워 하자,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제목인데, 언론에 보도되면서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김수성 : 제목 자체로만 본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다른 분들이 쓴 것인데, ‘○○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붙인 책이 몇 권 있습디다. 한마디로 유행어처럼 퍼진 것이죠.김길구 저자는 교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목회자는 현장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스로 이야기하듯 ‘목사는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김현호 : 김 목사의 목회철학인 것 같습니다. 목사는 교회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독려하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목회는 지역적이지만 세계사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지역을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김수성 : 그는 ‘축복’도 관념의 언어로 끝나서는 안 되고 ‘당장의 축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에 홀로 사는 할머니 교인집의 고장난 연탄보일러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택의 연탄불을 빼내 겨우 마무리하자 날이 밝았다는 이야기는 ‘당장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김현호 : 그의 목회철학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손이 필요할 때 일꾼이 되고, 추위에 떠는 교인의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지금 목마른 사람에게 당장 물 한 모금을 주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목마름을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축복을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물한계곡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배포하여 화제가 된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내용. 목사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연세 높은 교인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이다. 목회란 보편적이면서도 상대적임을 보여준다.
#시골교회-도시교회 이분화는 잘못김길구 :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교회의 지역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할 당위성은 몇 차례 거론했습니다만, 도시교회에도 이런 인식이 더욱 시급한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그 문제점을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의 지역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운대구에 있는 교회와 강서구에 있는 교회가 동일할 수 없듯이, 전국의 5만 3,000여개의 개교회가 각각 고유한 교회공동체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즉, 목사가 교회성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존중받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김수성 :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시골교회와 도시교회로 이분화하는 데 대한 반발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는 성공한 사람, 시골교회 목사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의미이죠. 목사 청빙을 할 때 세속적인 기준에 우선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김길구 : 시골교회 또는 작은 교회 목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 같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골사람에게나 도시사람에게나 복음의 중요성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는 이를 구분하고, 그러한 잘못은 교회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부터 이러한 잘못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늘날의 목사직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 들어 언론에 목사직에 대한 불편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사를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기준에 빗대보면, 목사직이 올바른 자질을 갖춘 목회자로 바로설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목사직의 위치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영성 훈련도 인터넷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소비만능사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좀 더 내실을 기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목사직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야김길구 : 목사직을 수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는 물론 교인들이 목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직 역시 주어진 상황, 지역성이라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보편성에 더하여 지역성이 가미되어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김현호 : 오늘날 목사직은 선포 중심에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는 수행(遂行) 중심의 목회자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가끔 배타적 특권의식을 가진 성직자를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사회와 교회는 포용성과 시민 상식을 발휘하는 공공성의 목사직을 바라고 있습니다. 각 교단에서도 이에 유념하여 기독교의 질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김길구 : 이 책은 열 번째로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라는 항목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목사 사용설명서’로 붙였습니다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는 교회와 신앙, 그리고 사회에 관한 에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다음에는 최정의팔, 학국염 목사가 함께 쓴 《다르게, 평등하게》(동연, 2016)를 읽고, 다문화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목사의 길》 / 윌리엄 스틸 / 복있는사람
《목사란 무엇인가》 / 조석민 외 / 대장간
《목회 영성의 흐름, 주일과 주일 사이》 / 유진 피터슨 / 좋은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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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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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잠시 눈을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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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일간지에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야>라는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하버드 대학(심리학)과 MIT 경영대학원(Sloan)을 졸업하고 공인재무분석사(CFA)가 되어 20년 넘게 월스트리트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신순규 씨가 시작한 ‘야나선교회’ 이야기였습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You Are Not Alone)’의 영문 앞 글자를 딴 이 선교회는 매년 2월 한국의 보육원 아이들을 초청해서 2주 반 정도 미국 서부와 동부 서너 도시를 돌며 구글과 페이스북 본사,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을 방문하는 <플라잉 해피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자전적 에세이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2015)에서 그는 말합니다. “가끔 눈을 감아보세요. 마음으로 듣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대중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 사로잡히기 쉬운 환경 때문에 봐야 할 것을 정작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에 시각장애인 출신 첫 헌법연구관이 나왔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200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시력을 잃었지만 굴하지 않고 학업에 정진하여 법조인의 꿈을 이룬 김병욱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판사의 꽃이라 불리는 헌법재판소 재판연구원으로 임용된 그가 밝힌 포부입니다. “눈 건강 악화로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되어가며 겪은 경험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에 대한 헌법적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와 다양한 가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반영할 수 있는 헌법연구관보가 되겠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인생스토리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다짐하는 그 소명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과 벽면 손잡이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어찌 헌법재판소뿐이겠습니까?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꿈을 얻고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겠습니까?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찾아와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질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경건의 모양으로는 누구보다도 뛰어났을지 모르지만(딤후 3:5) 공의와 사랑을 저버린 상태였던(눅 11:42)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보시기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막 8:18) 영적시각장애에 빠져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히 11:1), 이들은 외형에 집착하고 시류(時流)에 휩쓸린 나머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롬 12:2) 일을 소홀했거나 그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만이 아니라 앞을 분간하지 못하는 양떼와 같은 백성들까지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비극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혼돈하고(토후) 공허한(보후) 땅에서(창 1:2),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빌 2:15)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란 더욱 힘이 듭니다. 이럴 땐 차라리 잠시 눈을 감아 봅시다. TV나 SNS, 또한 썰전이나 종편일랑은 잠시 멀리하고,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면모를 되찾아봅시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은 하나님 말씀의 묵상입니다. 이런 상황을 향해 말씀은 무엇이라 기록하고 있는가? 이런 우리를 향해 말씀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만이 어둔 길 걸어가는 우리 발걸음에 등불입니다(시 119:105). 말씀을 통해 우리들의 영안(靈眼)을 열어주소서, 날이 갈수록 사무치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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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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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 살린다] “신앙의 집에 공간을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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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자란 모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회 곳곳에 내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또래 아이들은 오래된 본당 첨탑 꼭대기서부터 식당과 여러 부속실까지 교회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주일이나 평일을 가릴 것 없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모여 행사를 준비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교회 곳곳에서 만남과 모임을 가졌다. 그렇게 교회의 모든 장소가 우리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많은 교회들이 교육관이나 문화관을 짓고 다음세대들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주었지만 이는 도리어 다음세대들의 공간을 한정짓는 느낌을 준다. 요즘 아이들은 주일에 와서 정해진 공간에서만 정적으로 앉아 있다가 한 시간의 교육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마법처럼 사라져버린다. 교회가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회 안에서 머물 곳을 좀 더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전 공간이 아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미국에서 ‘교사의 교사’라는 별명을 가진 파커 팔머(parker palmer)는 “가르침이란 진리가 실천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공간’이란 물리적인 환경과 가르침의 분위기를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가르침의 내용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환경, 분위기보다 내용을 빠짐없이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교육에 있어서는 내용보다 먼저 가르침의 공간을 잘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환대’란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를 지나다 지친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과 같은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세대를 위한 ‘환대의 공간’은 무엇일까? 먼저는 교회공동체가 전체적으로 관심과 배려를 갖는 것이다. 필자가 소속된 성민교회는 올 연초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넓은 실내 놀이터인 ‘천사의 뜰’을 개장하였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다음세대들이 그곳에서 뛰어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엔돌핀이 솟는다. 또한 본당 앞에는 다음세대들의 사진과 이름, 장래 희망을 게시하여 모든 교인들이 실질적인 관심을 가지게 했다. 또한 청소년들을 위한 탁구장도 준비되어 있는데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아이들이 관심과 사랑, 환영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상징이 된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이들을 지역사회 공동체 전체가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명의 건강한 신앙인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기독교교육학자인 토마스 그룸(Thomas groome)은 한 명의 건강한 신앙인을 키우려면 신앙공동체와 가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다음세대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기꺼이 마련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가정이 신앙교육의 공간이 되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신앙인의 공간은 결국 가정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믿음 안에 서서 신앙의 가르침을 나눌 때 건강한 신앙인이 배출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 호에서 다루도록 할 것이다.
올해는 교회 전체를 다음세대들이 사랑받고 환영받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어디서 아이들과 마주치든지 반갑게 웃으며 두 팔 벌려 맞이해주자. 그래서 교회의 공간을 차디찬 벽돌건물이 아니라 따스한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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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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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총회 기소위원회, 정치부 상설화 어불성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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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회된 총회의 상설 업무는 월권 범죄 행위
제101회 총회가 파한 후에 접수된 각종 재판 건과 행정 건을 심의하는 권한은 오직 제102회 총회의 권리요 의무인 업무이다. 그러므로 제101회 총회의 기소 위원이나 정치부는 제102회 총회의 모든 안건을 어떤 방법으로도 다룰 수가 없는 것이 현행 헌법이다.
따라서 제101회 총회가 정치부를 상설화하려함은 다른 모든 부서의 업무는 제102회 총회의 회원이 정상적으로 수행함에 반하여 정치부는 파회를 선언하여 해산되고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101회 총회의 정치부였던 자들을 불러 모아 가당치도 않게 제102회 총회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함은 월권이요 불법 범죄 행위이다. 오직 제102회 총회의 안건은 제102회 총회 회원들만으로 처리해야지 제101회 총회의 총대였던 자들로는 절대로 심의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① 제102회 총회가 개회되지도 않았고 제102회 총회의 본 총회가 서류 심의를 위탁하지도 않았으며 ② 제101회 총회 정치부원 중에 제102회 총대가 되지 못한 자가 있을 경우는 총회회원도 아닌 자가 총회 안건을 심의한 것이 되고 ③ 제102회 총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제101회 총회에서 정치부였던 자가 전도부에 공천이 되었다면 전도부원이 정치부의 안건을 심의한 것이 되고 ④ 더욱 중요한 것은 총회의 결의가 위헌적 결의이기 때문이다.
본건은 2015년에 활동한 “합동 총회기구 혁신위원회”(기독신문 2015.6.24일 2면, 한국기독신문 제751호 8면)의 위험천만한 발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2015년의 기구 혁신위원회”의 작품이라면 그들이야말로 합동 교단의 지도자로서 법리적인 면에서는 수준 미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기야 이미 총회 상비부인 총회 재판국은 원래 상설 재판국임에도 불구하고 상설 재판을 하기로 결의한다고 하면서 상설 재판국 설치(권징 조례 제134조에 총회 재판국은 상설 재판국임)라는 엉터리 용어를 붙여서 결의하고(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제92회 P.71, 동 제93회 P.57, 동 제94회 P.81) 권징 조례 제142조에 총회 “재판국의 비용은 총회가 지불한다.”는 헌법 규정을 짓밟고 상소 건이나 소원 건을 총회의 위탁(권징 조례 제134조 2항)도 받지 않고 급행료 4백만 원만 지불하면 차기 총회가 해야 할 재판을 서슴없이 해주는 범죄를 일삼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4. 권징 조례 제7조에 규정한 “기소”의 의미
권징 조례 제7조의 규정은 “누가 범죄 하였다는 말만 있고 소송하는 원고가 없으면 재판할 필요가 없다. 단, 권징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치리회가 원고로 기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기소의 의미는 결코 기소인을 총회 재판국이나 노회와 당회처럼 상설체로 항상 존재케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누가 범죄 하였다는 확증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소하는 자가 없어서 그 사건이 묻혀 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치리회가 기소 위원을 선정하여 원고가 되게 하고 재판을 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재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범죄 사건이 확증된 후에 기소위원이 요구되는 것이지 상설 재판국인 총회 재판국국처럼 재판할 사건이 없는데도 기소 위원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회 재판국은 고소장, 상소장, 소원장이 접수되기 전에는 절대로 설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법리이다. 그런데 제101회 총회가 기소 위원을 상설화하기로 결의한 법적 근거로 “권징 조례 제2장 제7조”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법리의 이해가 부족한 무지의 소치이다.
5. 총회의 심각한 불법 결의의 사례
그동안 합동 총회는 총회 헌법에 정면으로 상충되는 총회 결의 및 규칙을 정해 놓고 “총회의 결의는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큰 소리를 내면서 장로교회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총회는 물론 산하의 각 치리회까지 쑥대밭을 만들어 왔다. 이에 대한 실례를 몇 가지만 들어 본다. ① 위임 목사만 노회장과 총회 총대가 될 수 있다는 결의 ② 총회 임원 중 부임원은 박수로써 원 임원으로 받는 일 ③ 임원 후보 등록제 및 후보자를 불과 몇 인의 소수로 제한하는 일 ④ 상비부장을 상비부가 아닌 총회가 선정하는 일 ⑤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는 일 등은 민주 청치인 장로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회원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범죄의 원흉이다. 또한 ⑥ 총회 재판국에게 헌법에 어긋난 급행료를 받게 하고 차기 총회가 재판해야 할 사건까지 탈취하여 대행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총회의 상설재판 결의 ⑦ 본건의 기소 위원과 정치부의 상설화 결의 등 그 외에 비일비재 하다.
6. 결론
본건 제101회 총회의 결의와 관련하여 “총회의 규칙은 총회 헌법을 우선하지 못하고 총회의 결의는 총회의 규칙과 헌법을 우선하지 못하고 하회의 규칙과 결의는 상회의 규칙과 결의와 헌법을 우선하지 못한다.”는 “상위법 우선의 원칙”과 권징 조례 제76의 규정에 의하여 총회는 상회가 없으므로 차기총회에서 헌법에 위반된 본건 결의를 헌법대로 변경해야 하고 제101회 총회에서도 본건 상설화 결의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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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