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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총 ‘대한민국을 빛낸 장로교인들(가칭)’ 인명열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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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한장총은 '대한민국을 빛낸 장로교인들(가칭) 인명 열전' 발간위원회 워크숍을 가졌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채영남 목사, 이하 한 장총)는 지난 20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 한 장총 회의실에서 ‘대한민국을 빛낸 장로교인들(가칭) 인명 열전’ 발간위원 워크숍을 개최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크게 공헌한 장로교인들을 조명하고 한국교회의 나갈 길을 제시하는 사업이다.
이날 개회예배 설교에서 채영남 목사는 “한국교회 선교 130년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바, 역사적인 정리가 필요할 때”라고 전제하며 한국기독인들의 역사적인 공헌이 제대로 평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채 목사는 국가에 공헌한 기독인들을 역사적으로 평가해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후세에 교육자료로 삼을 정도의 책 발간을 역설했다.
워크숍 강사인 임희국 교수(장신대)는 “한국장로교 인물열전 발간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면서 “한국장로교회의 뿌리를 찾아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며, 분열된 장로교회의 상호 연합을 통해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작업이 돼야 한다. 한국교회의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의미를 뒀다.
임 교수는 인물선전의 기준에 대해 성경적 인물,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 이미 역사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 선정돼야하며 현재 살아있는 인물은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회의를 통해 발간위원 조직을 보강했다. 발행인은 채영남 목사이다. 발간위원장은 오치용 목사(한장총 부회장)이며, 위원에는 변창배 목사(통합 사무총장 서리), 김창수 목사(합동 총무), 구자우 목사(고신 사무총장), 이재천 목사(기장 총무), 박혁 목사(합신 총무), 이재형 목사(한장총 총무), 황연식 목사(호헌 총무)이다.
또 집필위원에는 임희국 교수(장신대), 이상규 교수(고신대), 김형석 교수(전 총신대)가 맡았으며, 주집필자가 보조집필자를 추천하기로 했다.
감수위원에는 이형기 교수(전 장신대), 오덕교 총장(울란바토르대), 박용규 교수(총신대)를 위촉키로 했다.
한장총은 ‘제9회 장로교의 날’이 개최되는 9월 1일까지 발간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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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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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리교회, 고신대 ‘열두광주리 프로젝트’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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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리교회(담임목사 이찬수)가 지난 19일(주일) 외국인유학생을 후원하는 고신대학교 ‘열두광주리 프로젝트’에 동참하며 2천만 원을 후원했다.
이찬수 목사는 “외국인유학생을 지원하는 열두광주리 프로젝트를 통해 고신대학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세계선교와 하나님 나라 복음 확장에 앞장서기를 소원한다”고 전했다.
전광식 총장은 “이 귀한 사역에 매년 함께 동역해 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외국인 유학생들이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성을 갖춘 신실한 사역자로 훈련되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분당우리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가정을 회복시키는 교회, 젊은이를 깨우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를 소망하며 지역과 이웃을 향한 아름다운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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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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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복음병원, 제1회 핑크하트 캠페인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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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학교복음병원(병원장 임학)은 지난 17일 장기려기념암센터 대강당에서 유헬스케어센터 개소 기념 ‘제1회 핑크하트 캠페인’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입원‧외래 환자 100여명이 참석해 캠페인식 강의로 진행돼 ▲암과 맞춤형 운동 처방 ▲유방암과 심혈관 질환: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생활습관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디바이스 기기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도 겸했다.
운동부족, 비만, 고지방, 고열량 식사, 당분이 많은 음식, 가공식품, 밀가루 가공음식 등이 고혈압과 당뇨병을 증가시키는 주범인 만큼 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은 만성질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다. 고신대복음병원은 암치료의 명성과 노하우로 건강관련 기기의 개발과 활용을 통해 만성병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조경임 유헬스케어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은 “진료실에서 수많은 고혈압 환자를 접하면서 극소수이지만 철저하게 운동하고 식단을 바꿔 고혈압 약을 먹지 않게 된 사람도 있다”며 “최근의 추세는 생활습관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또다른 치료의 형태”라고 말했다. 고신대병원은 개인별 만성 질환 위험군과 질환군을 대상으로 건강증진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WHO건강도시 부산을 위한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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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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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한국후지제록스와 클래스 셀링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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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학교(총장 장제국)가 한국후지제록스와 지난 10일 뉴밀레니엄관 글로벌룸에서 클래스 셀링(Class Selling) 협약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동서대 장제국 총장과 한국후지제록스 우에노 야스아키 대표이사 등 양측관계자들과 클래스 셀링 참여 학생 12명이 참석했다.
동서대와 한국후지제록스 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클래스 셀링에서는 광고PR전공 학생들이 팀을 이뤄 대학의 입시홍보 전략을 수립하고 대학의 각종 문서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하게 된다. 기존 입시 홍보 방법, 문서, 책자, 인터넷 게시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문서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 입학에서 졸업까지 문서 활용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본 후 후지제록스만의 차별화된 문서관리 컨설팅과 아웃소싱 서비스 사업에 활용하게 한다.
산학협력선도대학(LINC·링크) 육성사업을 통해 이뤄진 '클래스 셀링'은 대학에서 산학 프로젝트를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해 학생들의 취업과 기업지원 성과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업에서 일정 비용을 부담해 수업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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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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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공동의회서 신임 장로 7인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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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가 지난 19일 공동의회를 열고 새로운 장로 7명을 선출했다. 2012년 11월 28일 이후 4년여 만에 신임 장로를 선출했다.
이날 공동의회에 참석한 교인 1만 4,424명 중 1만 3,802명(95.7%)이 장로 선출에 찬성했다. 반대 40명, 기권 575명이었다.
사랑의교회는 그동안 갱신위원회 측과의 갈등으로 당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 갱신위 측 당회원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 3분의 2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이제정 판사)는 갱신위가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를 상대로 낸 ‘교인총회 안건 상정 등 금지가처분’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월 26일 열린 임시당회가 정족수를 충족했고, 교회 대표자로서 오정현 목사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사랑의교회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이탈(갱신위) 교인들의 조직적인 방해 행위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가함으로써 교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날 공동의회에서는 2015년도 결산 및 감사, 2017년도 예산안, 소망관(영동프라자) 매각 등도 통과시켰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조사제1부(김우석 주임검사)는 3월 16일 오정현 목사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고발 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갱신위는 지난 2015년 법원의 회계장부 공개명령으로 46박스에 달하는 교회 장부를 열람하고 오 목사가 교회 재정을 횡령했다며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갱신위 측은 정식 재판청구 의사를 밝히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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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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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제21회 정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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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부산, 울산, 포항, 대구 등 17개 노회소속 장로회로 구성된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회장 진장명 장로)가 지난 2월 24일 포항평강교회(이호국 목사)에서 제21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신임회장으로 강양훈 장로(포항평강교회)를 추대했다.
총회에 앞서 가진 예배는 수석부회장 강양훈 장로의 사회로 직전회장 강경구 장로(내당교회)의 기도 후 이호국 목사가 ‘머슴으로 섬기는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전국장로회연합회장 배혜수 장로가 격려사 및 공로패를 전달했으며, 영남지역노회협의회 회장 정장현 목사와 포항노회노회장 한중석 장로가 축사했다.
이어진 정기총회에서 신임원을 선출하는 등 올해 사역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다음은 신임원 명단이다.
△회장 : 강양훈 △수석부회장 : 신용부 △부회장 : 박한규, 류재돈, 위한규, 이용만 △총무 : 강신웅 △부총무 : 이상길, 안병주 △서기 : 김상문 △부서기 : 박진태 △회의록서기 : 박영배 △부회의록서기 : 김춘수 △회계 : 이성형 △부회계 : 서정호 △감사 : 진병호 김창한 최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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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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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광주노회·부산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제15회 자매결연 기념행사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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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광주노회와 부산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제15회 자매결연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부산노회연합회(회장 김기복 장로, 평강교회)가 광주노회연합회(회장 염창환 장로, 송정재일교회)를 초청해, 광주노회연합회 회원들이 부산을 방문하게 됐다.
이날 참석한 회원 60여 명은 오전 11시 경건회 가진 후 다대포, 아미산, 송도해수욕장, 태종대, 해운대 등 부산일대를 관광하며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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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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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5 - 권력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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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새로운 다중을 창조한다.”(질 들뢰즈) 질 들뢰즈에 의하면 걸작의 참된 의미는 대중의 주어진 감수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다중)을 창조하는 것, 대중이 듣기 원하는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하고, 현실 안에 잠재된 어떤 힘을 드러내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문제의 해법에만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고 한다. 옳지 않은 문제에 옳지 않는 답도 문제지만, 옳지 않은 문제에 옳은 대답은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이론과 실천은 두 다리와 같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면 왼발이 따라가고, 왼발이 앞으로 나가면 오른발이 따라간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대중이 한발 나가니, 헌법기관이 한발 따라온다. 그렇다면 헌법기관이 한발 나아가면 정치가 한발 따라갈까? 목하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중을 창조하는 걸작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리고 걸작을 창조하는 새로운 지식인이 필요하다.
1. 지식인: 자퀴즈!
20세기 ‘지식인들의 지식인’이었던 장 폴 싸르트르(J. P. Sartre)는 지식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계몽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을 첨가하면 참다운 지식인은 세 종류가 된다. 첫째, ‘참견하는 지식인’은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쌓아올린 명성, 곧 상징자본을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지식인이다. 가령,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한복판에서 에밀 졸라(É. F. Zola)가 소설 쓰기를 제쳐두고 “자퀴즈!”(J’accuse!) 곧 “나는 고발한다.”라고 외치고 나섰을 때, 반드레퓌스 우익세력이 한목소리로 작가가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드느냐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 순간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탄생했다. 둘째, ‘계몽적 지식인’은 소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스스로 철학자라고 불렀던 지식인들, 곧 (프랑스로 한정하여) 볼테르,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로 만들었다. 중세의 타락한 가톨릭 교회 권력에 맞서 미몽의 세상에 빛을 끌어들였던 참 계몽적 지식인들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유기적 지식인’은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말했던 바, ‘사회 계급의 신경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다.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야말로 그람시적 지식인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지식인은 당대 피억압자를 대신해 그들의 대표자, 대변자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지식인, 곧 대중 위에서 대중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지식인은 죽었다. 대중이 스스로 지식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이러한 지식인이 퇴장한 것일까? 아니면, 침묵 속에 짓눌려 익사당한 것일까?¹ 지금 대한민국은 후자에서 전자로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그 지식과 대중은 정치적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의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대통령의 국정농단)이기도 하며,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대통령 탄핵)이기도 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생활 주변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스티븐 룩스(S. Lukes)는 『3차원적 권력론』 (나남, 1992)에서 “권력은 1, 2, 3차원으로 분류되는데, ‘직접적인 힘으로 제압하는 권력’인 1차원적 권력과 ‘법이라는 간접적 힘’으로 통치하는 2차원적 권력, 그리고 ‘설득과 영향력으로 부지불식간에 작용’하는 3차원적 권력”이 있다고 한다.
가령,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담임목사가 자장면을 시켜 먹자고 하면 부목사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담임목사가 가진 힘을 1차적 권력이라고 한다. 따라서 1차원적 권력은 권력의 일반적인 정의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공권력 행사, 사회적 강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력 행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행태적(behavioral)’권력이라고도 한다. 2차원적 권력이란 ‘구조적(structural)’ 권력으로, 어떠한 문제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표면 위로 올릴 수 있는 혹은 올리지 않는 권력을 뜻한다. 교회 내적 문제에 관하여 당회가 막강한 권력으로 사안을 결정하여 좌지우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구조적 강자가 소수자의 의견을 아예 제도적, 혹은 원천적으로 막아서 그들의 의견이 수면위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권력을 뜻한다. 3차원적 권력은 ‘구성적(constitutive)’ 권력으로,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권력을 말한다. 그러나 보통 언론이나 매체의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조선일보가 노조에 대해 ‘귀족노조’식으로 폄하하여 기사를 쓴다면(교회적으로는 여론을 형성하는 대형교회가 담론을 형성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노조를 ‘귀족노조’로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구성적 권력의 힘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국민 여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괴벨스는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는 국가 보조금을 풀어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급여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7시 라디오 뉴스에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총리 관저를 르포(reportage)하도록 했다. 나치스 지지 군중대회도 실황으로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러한 괴벨스의 정치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성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라는 것이었다. 반면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괴벨스에서 링컨으로 넘어가고 있다.
1, 2차원적 권력이 구체적으로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폭력이다. 대한민국은 촛불혁명과 헌법제판소의 일련의 절차를 통하여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비폭력과 민주적 혁명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권력과 폭력의 고고학은 어떨까?
3. 폭력의 고고학: “잔혹함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며, 사랑이 없는 잔혹함은 맹목적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
관용(tolerance)이란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을 존중하고 승인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이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관용의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관용은 모든 것을 관대하게 대하는 중립적 관찰자의 태도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그 존재 안에서도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태도이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류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통찰에 근거한다. 그러나 관용에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 관용의 정신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민음사, 2006)에서 전체주의 정치체제를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비유로 통렬하게 비판한 칼 포퍼(K. R. Popper)는 이것을 ‘관용의 역설(paradox of tolerance)’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 제약 없는 관용은 반드시 관용의 소멸을 불러온다. 우리가 관용을 위협하는 자들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그리고 불관용의 습격에서 관용적인 사회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관용적인 사회와 관용 정신 그 자체가 파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천명해야 한다.” 열린사회(the open society)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이다. 반면 닫힌사회(the closed society)는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적 종족 사회로서 국가가 시민생활 전체를 규명하며 개인의 판단이나 책임은 무시되는 사회이다. 지금 지금 대한민국은 열린사회 안에 작은 닫힌사회가 있다. 이 닫힌사회 속에 갇힌 어르신들을 사랑해야 할까? 아니면 이러한 관용의 역설에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천명해야 할까? 폭력의 고고학을 소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에 관한 고고학’의 첫째 이론가인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 (1920)에서 “폭력에는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이 있다.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명과 딸 일곱명을 두었는데, 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니오베는 불경죄를 저질렀는데, 자신이 레토(Leto) 여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던 것이다. 레토에게는 아들 아폴론과 딸 아르테미스 한명씩밖에 없었다. 따라서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으로 하여금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는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반면, 벤야민이 든 신적 폭력의 사례는 구약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이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으나,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반기의 명분이었으나, 사실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 당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더라(민수기 16:32-35).”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라고 말한다. 곧,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인 것이다. 벤야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하였다. ‘신화적 폭력이 생명체를 희생시킴으로 자족하지만, 신적 폭력은 생명체를 위해, 생명체를 구현하기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약간의 신학적 무리수가 있긴 하지만, ‘레토(신)-니오베(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모세)-인간(고라)의 관계’에 ‘신이 폭력으로 편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신화적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폭력이 되지만, 신적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한쪽을 편들어 주는 것이다(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한쪽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여기서 벤야민이 쓰는 ‘폭력’의 의미란 무엇인가? 독일어 ‘Gewalt’는 ‘힘ㆍ폭력ㆍ권력ㆍ권능ㆍ무력’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벤야민이 다루는 폭력은 ‘윤리적 상황’과 관련된 폭력을 뜻한다. 가령, 화산폭발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으로서의 폭력은 고찰대상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폭력이 윤리적 현상으로 파악된다면, 그때 폭력은 법과 정의와 관련된다. 곧, 벤야민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법적 폭력’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폭력은 이성의 한계에서, 법은 이성의 정당한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폭력은 정치의 근원이자 토대이고, 법은 정치의 종점”이라고 한다. 곧, 세상의 폭력을 제어하는 것이 법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궁극적이고 내재적인 목적이 폭력 내지 권력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에 준거하는 것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한다. 전자가 경계를 설정한다면 후자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제거한다. 전자가 협박적이라면 후자는 충격적이고, 전자가 피의 냄새를 풍긴다면 후자는 피의 냄새가 없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두 번째 이론가인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법의 힘』 (1994)에서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이 텍스트에서 발견하는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은 … (하나의) 유혹이다. 어떤 유혹 말인가? 대학살을 신적 폭력의 해석 불가능한 발현의 하나로 사고하려는 유혹”이라고 비판 한다. 사실 데리다와 달리 벤야민은 파쇼의 시대를 살았다. 따라서 ‘신적 폭력으로서 메시아를 요청’하는 벤야민을 데리다는 이해하기는 하나, 이러한 벤야민의 폭력론은 좌파와 우파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근친성’ 속에서 저술된 것이며, 그런 만큼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베냐민의 신적 폭력, 곧 피도 흘리지 않고 한꺼번에 내리치며 휩쓸어버리는 신의 폭력이 ‘최종 해결’이라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대학살은 벤야민의 ‘신적 폭력’의 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모세를 나치로, 고라를 유대인으로 본다면 데리다의 비판은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세 번째 이론가인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 Agamben)은 『호모 사케르』(1995)에서 “신적 폭력을 ‘최종 해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데리다의 주장은 정말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오해이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네 번째 이론가인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 Zizek)은 아감벤과 같이 데리다의 ‘오해’를 비판하고, 베냐민의 ‘신적 폭력’을 옹호한다.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서 “신적 폭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벤야민의 신적 폭력의 구체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Jacobins, Jacobin Club) 공포정치², 그리고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붉은 군대의 ‘테러리즘’을 거론한다. 아무튼,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신적 폭력이라는 이름의 ‘순수한 혁명적 폭력’을 변호한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신적 폭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 폭력이며 이러한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고라를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본다는 말일 것이다.) 체 게바라도 “진정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 이끌린다.”고 했다. 곧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는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I. Kant)의 명제를 비틀어 지젝은 “잔혹함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며, 사랑이 없는 잔혹함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 진정한 혁명은 잔혹, 곧 폭력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지젝의 결론이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부활의 기쁨이 없다는 기독교 신학의 정수를 역설적으로 폭력의 역사를 통해 메시아의 신적 폭력의 그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을 국가로 확장하면 성 어거스틴(A. Augustinus)의 ‘정당한 전쟁론’(just war theory)을 살펴볼 수가 있다. 어거스틴은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되나 살해인 경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실천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이러한 살인에 대한 부분적 허용이 ‘정당한 전쟁론’으로 발전했는데, 그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8개의 기본원칙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를 침해하는 경우, 둘째 전쟁의 악함이 현저하다고 도덕적으로 판단될 때, 셋째 폭력의 사용을 위한 정당성이 인정될 때, 넷째 국가의 영적인 상태가 심각히 위협을 받을 때, 다섯째 신앙생활에서 복음적 기준의 해석들이 위협을 받을 때, 여섯째 불의한 사회적 변화에 더 이상 수동적 태도만으로 일관할 수 없을 때, 일곱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성서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적절했을 때, 여덟째 평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라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인가? 폭력의 고고학은 미래 권력을 향하여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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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사실 ‘지식인의 고향’, ‘지식인의 태반’이었던 대학이 대기업과 대자본의 하청업체가 되어 버렸다. 대학은 ‘죽은 지식인들의 묘지’가 되어 버렸고, 앞으로도 더 극심해질 이러한 세상에 싸르트르적 지식인의 ‘불온한 기운’이 부활해야 할 것이다. 계몽적 지식인이 권력에 맞서 미몽의 세상에 빛을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수많은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불의에 대한 저항’의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2) 자코뱅파는 프랑스 혁명기에 생긴 정당 중 하나로 프랑스 혁명을 주도하였다. 파리의 자코뱅 수도원을 본거지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중심이 되어 급진적인 혁명을 추진하였다. 국민 공회에서 왼쪽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좌익’의 어원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했으며, 따라서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라 할 수 있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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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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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4] 이사벨라 비숍의 눈에 비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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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부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우리의 눈이 아닌 외부자의 분에 비친 부산의 모습이 궁금하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선을 찾는 이국인들이 점증하면서 부산은 타자의 앵글을 통해 서방에 소개되었고, ‘금지된 나라’(terra incognito)에 대한 진기한 기록은 서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런 기록이 여행객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굴꾼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기록들이 조선 선교를 꿈꾸는 복음의 전령들에게도 가뭄에 비 오듯 소중한 정보였다. 이런 기록 중의 하나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의 조선과 부산 방문기였다.
1831년 영국 요크셔의 버러 브릿지에서 영국국교회 곧 성공회 목사 에드워드 버드(Edward Bird)의 딸로 태어난 이사벨라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을 시작하면서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고, 그의 미국 여행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전문적인 여행가로 일생을 살게 된다. 예리한 통찰력과 상당한 문필력은 그의 비장의 무기였다. 존 비숍박사와 결혼했으나 5년 후 사별하게 되어 가정사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금지된 열정은 그 이후 30년간 계속된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하와이, 일본,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쿠르디스탄 등을 방문하고 조선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는 앞서간 자의 자취를 따르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지의 개척자였다. 그가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 4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했고,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11개월에 달했다. 고종과 명성왕후를 만났고, 서울을 비롯한 조선 반도를 여행하며 부산을 방문했다. 그가 남긴 조선 방문기가 여전히 고전적인 지리지로 읽혀지고 있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7)이다. 이 책은 헐바트(Homer Hulbert)의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와 그리피스(Griffis)의 『은자의 나라 조선』(Hermit Kingdom)과 함께 조선 말기 조선에 대한 3대 외국인 기록으로 꼽힌다. 이 당시 이국인의 눈에 비친 부산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비숍은 부산을 방문하고, 일본인 거류지는 그처럼 깨끗하지만 조선인 거류지는 더럽고 불결하다고 했다. 감리교선교사 아펜젤러도 처음 부산을 방문했을 때, 토담과 흙과 짚으로 엮은 지붕만 보고 마을을 보지 못했다며, “집이라고는 마치 큰 벌집같이 보였다”고 1885년 4월 2일자 일기에서 쓴 일이 있다. 그가 나가사키항을 거쳐 부산에 처음 왔는데, 부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부산이 처참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조선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좁고 더러운 거리에는 진흙을 발라 창문도 없이 울타리를 세운 오두막집, 밀짚지붕, 그리고 깊은 처마, 마당으로부터 2피트 높이의 굴뚝이 솟아있었고 가장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폐기물들이 어지럽게 버려진 개천이 있었다. 더러운 개와 반라이거나 전라인 채 눈에 보이지 않는 때 많은 어린 아이들이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진흙 속에 뒹굴거나, 햇빛을 바라보며 헐떡거리거나 눈을 껌뻑거리기도 하며 심한 악취에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부산진에 체류하던 호주선교사들도 만났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조선의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여선교사들을 보면서 애정 어린 격려를 했고 그들의 봉사가 부산과 조선을 보다 개화된 나라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결한 거리, 질퍽거리는 습기 찬 도로, 남루한 복장, 가난에 찌든” 부산의 조선인들에 대한 묘사가 부산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현실의 기술일 뿐이었다. 이런 현실에서도 개의치 않고 복음전도자로 일했던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비숍의 기록은 영국은 물론 호주와 미국, 뉴질랜드로 전파되었고 조선과 부산을 헤아리는 작은 안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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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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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헌 목사] 학교를 포기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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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더 이상 공교육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면서 기독교학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석, 박사 과정 모두 기독교학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나는 기독교대안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가정의 자녀들을 잘 양육해서 세상의 변혁자로 살게 하는 것이 내 꿈이요 비전이었다. 기존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새로운 모델의 학교를 꿈꾸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10년 전부터 나는 공교육 현장의 목사 선생으로 살고 있다. 만 9년의 학교 생활을 통해 학교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대안은 어디까지나 대안이지 주류는 여전히 공교육 현장인 학교라는 것이다. 기존의 학교를 포기해서는 교육의 물줄기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해 있는 학교에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다닐만한 학교, 재미있는 학교’를 만드는데 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억지로 왔던 학교에서 다닐만한 학교로, 나아가서는 정말 잘 온 학교로 바뀌어가는 아이들의 생각의 변화를 보면서 ‘아직 희망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미션의 기능을 생각할 때는 더 그렇다. 교회가 지역 학교들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학교는 매력적인 전도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학교 인근에 있는 이삭교회에 교육목사로 9년을 섬겼었다.(2008.3-2016.12) 내가 속했던 교회가 브니엘고등학교에 들이는 공은 엄청나다. 금정구청의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하여 매년 4-5천만원의 돈을 들여 지역 홀로어르신들의 사랑의 도시락 반찬 나눔 운동을 기획해서 우리 학교 120명의 학생들이 매주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를 통해 매주 금요일 오후 교회에 봉사활동을 오는 학생들이 교회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갖게 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장학금 지원, 그리고 교회 소그룹(사랑방)에서 학생들을 1:1 결연하여 어려운 학생들의 용돈을 지원하여 돕는방법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교를 돕고 섬기고 있다. 이를 통해 학교는 지역 교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전도의 문을 열어 주었고, 이삭교회는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이 친근하게 찾는 곳이 되었다.
이것은 미션 스쿨인 우리 학교와 교회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들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교회 인근의 학교와 교회가 오랜 시간 연계하여 교회가 학교를 돕는 시간이 쌓여서 학교가 교회를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고, 나아가서는 전도의 문이 닫혀 있다고 하는 학교의 문도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지역에 미션 스쿨들이 의외로 많다. 지역교회들이 미션스쿨들을 입양 개념으로 결연하여 지속적으로 장학금 지원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어간다면 미션 스쿨의 특성상 학교 전도의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종교교육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라 할지라도 미션 스쿨들은 건학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학원선교라는 숙제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지역교회가 먼저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문을 두드린다면 얼마든지 교회와 학교가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지역교회들이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청소년 집회를 다니다보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청소년들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청소년들이 있다. 문제는 그 청소년들을 안을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한데, 나는 교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여전히 학교의 청소년들을 교회로 불러들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선교사님들의 순교와 눈물로 세워진 수많은 미션 스쿨들이 오래 전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학교만의 힘으로, 소수의 교사의 힘으로, 목사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같이 움직여줘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학교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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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