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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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딸 살해, 시신 11개월 방치한 친부가 현직 목사
    여중생 딸을 빗자루 등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뒤 11개월가량 시신을 집에 방치한 범인이 친부로 밝혀지면서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다. 특히 이 엽기적인 참극을 벌인 친부 이모씨(47)가 현직 목사이자 모 교단 신학대 교수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부천소사경찰서는 이씨가 지난해 3월 17일, 가출한 딸 이양을 빗자루와 빨래 건조대 막대로 5시간 동안 폭행한 사실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딸이 사망한지 보름가량 뒤인 3월 31일에 가출신고를 했다. 경찰은 사망한 이양의 친구와의 면담과정에서 “작년 3월 15일쯤 이양을 만났을 때 종아리와 손에 멍 자국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2016년 2월 2일 이씨의 집에서 이불에 덮여 있는 이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이양은 반백골화 상태였다. 이씨는 딸의 시신을 장기간 집에 방치한 이유와 관련해 “기도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딸의 시신이 전혀 관리되지 않았고 방향제와 양초, 습기제거제 등을 발견했다면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판과 형량을 낮추기 위한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 이씨는 최근까지 모 신학대학교의 겸임교수로 재직했으며, 부천시 소사구의 개척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유학 중 암 투병을 하던 부인과 사별 후 귀국해 백씨와 재혼 했다. 경찰은 이씨와 계모인 백씨 뿐 아니라 백씨의 동생(이양의 새 이모) 또한 폭행에 가담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교회 재정 횡령, 성범죄, 칼부림, 도박사건 등 목회자들의 도를 넘는 행위들이 연신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으로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적대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목회자의 윤리의식에 대한 지적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목회자의 인성과 영성, 인격보다 목사의 학위나 학벌이 자격조건으로 내세워져 영성과 윤리의식 없는 목사를 양산하고 말았으며, 지나치게 많은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병폐를 다시 한 번 다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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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4
  • 통합 부산노회 장로원로회 제24회 정기총회
    지난 2일(화) 땅끝교회(김운성 목사)에서 예장통합 부산노회 장로원로회 제24회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이종흔 장로(땅끝교회)가 신임회장으로 선출됐다. 총회에 앞서 가진 예배는 부회장 이종흔 장로의 인도로 부회장 정경식 장로가 기도하고 서기 노일성 장로가 성경봉독 했으며, 김운성 목사가 ‘갈렙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어진 회무처리에서는 각종 보고 후 임원개선이 진행됐다. 신임회장 이종흔 장로는 “회원 장로님들의 노후 삶의 질에 향상을 도모하고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시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24회기 임원명단이다. △회장 : 이종흔(땅끝) △수석부회장 : 정경식(대연) △부회장 : 정선기(산성), 노일성(항서), 서영태(김해감천), 김시영(부산영락) △총무 : 이홍자(부산진) △부총무 : 유인상(문현중앙) △서기 : 이무준(감만) △부서기 : 강대용(송도영광) △회록서기 : 장종철(장유대성) △부회록서기 : 이병현(김해) △회계 : 최동영(대성) △부회계 : 안해연(청학중앙) △감사 : 최명성(대지), 신이건(은성) △고문 : 김동수, 배준기, 박태신, 박만택, 정종택, 조원경, 강병국, 박우배, 이강준, 박재을, 이규정, 이상화, 이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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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 [대담]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신상준 부장(이하 신) : 부기총 집행부와 증경회장님들의 갈등이 교계 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성구 목사(이하 이) : 먼저 현 상황이 초래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작년 말 증경회장님들과 만나 해결했던 부분입니다. 두 번을 만났습니다. 한번은 노블리아뷔페에서, 다른 한번은 이비스 호텔에서 였습니다. 이때 허심탄회하게 다 이야기 했고, 오해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한국기독신문에 좌담회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작년 논의를 하면서 증경회장님들도 나중에 ‘임시총회를 할 이유가 없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말이 다른게 안타깝습니다. 신 : 그럼 이야기가 끝난 부분을 다시 증경회장님들이 거론한다는 말입니까? 이 : 그렇습니다. 그러니 집행부가 기가 찰 노릇이지요. 다른 실무 임원들에게 물어보시면 아실겁니다. 증경회장님들이 하신 말 ‘임시총회를 열 필요가 없네’라는 말을 분명 들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신 : 증경회장님들은 갈등의 원인이 ‘대표회장이 총회에서 결의된 임시총회를 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회장님은 생각이 다른것 같습니다. 이 : 그렇습니다. 갈등의 원인은 그 분들이 말하는 ‘임시총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표면상으로는 임시총회가 갈등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임시총회를 통해 그 분들이 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기총을 걱정한다면 그 분들의 말씀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무엇이 부기총을 위하는 길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신 : 대표회장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갈등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 이 문제는 작년 총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총회에서 정관 심의 과정에서 제가 목사 상임회장을 5명으로 늘려 달라고 한 적 있습니다. 그리고 총회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님들이 ‘목사를 5명으로 하면, 장로도 5명으로 해 달라’고 청원하면서 였습니다. 그 내용은 임원회에서 전혀 논의도 없었고, 갑자기 총회에서 거론됐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총회 석상에서 갑론을박했고, 결국 정관개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총회 이후 상황을 파악해보니, 총회 전 목사상임회장을 5명으로 한다는 소문이 돌자, 장로도 5명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인을 세울 생각이셨던 것 같았구요. 문제는 이 분이 은퇴하신 분입니다. 당연히 현역 시무 장로님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논란이 컸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문제발생 원인은 은퇴하신 분들이 실무임원회까지 점거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신 : 그래도 임시총회는 총회가 결의한 사항입니다. 약속대로 한 달 안에 열었어야 하는게 법 아닙니까? 이 :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총회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6월 말 경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이었지만, 안식년을 할 수 없어서 교회가 한 달 동안 유럽 종교개혁지 탐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습니다. 공부했던 영국을 돌아보고, 유럽 선교지 탐방을 하고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때가 9월 말이나 10월 초가 됐을 것입니다. 이때 임시총회를 열도록 요청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일부러 안 열었습니다. 아니,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내용이 장로상임회장 5명, 그것도 은퇴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정관개정위원들이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관 38조 1항에 보면 ‘단, 실무임원은 시무 목사 장로로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정관개정위가 이 조항을 ‘삭제’하자는 안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실무임원진에 은퇴한 분들을 넣겠다는 의도입니다. 이 안이 임시총회에 올라왔다면, 아마 전국적으로 웃음거리가 됐을 겁니다. 어느 연합단체에 은퇴하신분들이 실무임원으로 활동하십니까? 부기총을 일부 증경회장들의 놀이터로 만들 생각이신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통과 되지도 않을 정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신 : 말씀대로 내어 놓아서 통과 안 될 것이라면, 임시총회를 개최해도 손해 볼 것 없지 않습니까? 이 :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통과 돼서는 안 될 정관’이라고 말 하는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만에 하나 그 분들의 노력으로 그 안이 통과 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실무임원 안에 은퇴하신 분들이 들어오고, 부기총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연합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계의 무관심과 냉대를 받을 것입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습니다. 부기총의 정관에는 각 노회와 지방회가 파송한 총대를 중심으로 연합운동이 펼쳐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제 겨우 몇 개 노회와 지방회가 총대를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분들에게 실무임원의 길을 열어 놓는다는 것은, 노회나 지방회를 무시하거나, 부기총에 동참하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어떤 노회나 지방회도 은퇴한 분을 대의원으로 파송하지는 않습니다. 저 분들의 정관개정은 진정 부기총을 위하는 길이 아니고 특정인을 배려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무임원들은 거부해 왔습니다. 신 : 뒤에 내용을 다시 개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 이 문제가 시간을 끈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들은 개정안을 몇 번 수정해 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세 번 정도 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수정안은 상당히 시간이 흐른 뒤 가지고 왔습니다. 그 분들 안에서도 개정 내용에 명확한 대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듯 합니다. 신 : 그럼 임시총회는 안 할 생각입니까? 이 : 제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우리 임원들의 생각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절차를 밟아 보았습니다. 총회는 실무임원회가 결의해서 소집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식으로 이 일을 실무임원회 안건으로 상정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 반려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실무임원회가 총회 소집을 반려한다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증경회장님들이 이유를 밝혀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원회를 개최했지만, 결과는 ‘그냥 반려하자. 그런 것 답할 필요도 없다’는게 실무임원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오히려 제가 ‘그냥 이렇게 보내면 반발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무시하는 것 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했더니, 임원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에 일일이 대꾸하지 말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제가 욕을 들을 것을 뻔히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너무 필요 없는 일을, 그리고 다른 정치적인 뜻을 가지고 일을 해 오시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부기총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부산의 진정한 대표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을 더 세워줘야 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의 입지를 더 좁히고 있습니다.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부 젊은 목사들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부기총 일에 동참 좀 해 달라고 부탁하니까 ‘은퇴하신 분들이 부기총을 좌지우지 하는 한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상임회장들도 이 문제를 해결 안하면 자기들은 (대표회장을)못 하겠다고 말들을 합니다. 신 : 그럼 임시총회를 개최 못하는 이유가 그것 하나뿐입니까?이 :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만약 개최를 한다면 총회가 아니라, 싸움터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모 (시무)장로님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임시총회를)열기만 하면,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며 임시총회를 벼르고 있습니다. 싸움날 일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개최하겠습니까? 부기총 내분을 밖으로 알려, 지금까지 쌓아올린 부기총의 위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신 : 그럼 목사님이 양보 할 수 없습니까? 일부에서는 목사 상임회장을 꼭 5명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그냥 이전처럼 한 분만 세우면, 장로 상임회장도 5명 세울 명분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이 : 목사 상임회장 5인을 세우는 것은 그동안 부기총 대표회장의 선임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명을 세우면 교단 안배와 경제적 부담 절감 등으로 많은 인재들이 등용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임회장과 대표회장의 기간인 2년 동안 약 3,000여 만원의 경제적 부담이 있습니다. 그 외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후원금이 1천 만원 정도 됩니다. 목사와 그 교회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특히 교회와 교단의 회의와 행사보다 부기총의 일이 우선시 되는 관계로 교회 안팎으로 많은 경제적, 심적 부담을 안기고 있기 때문에 부산교계의 지도자들이 기피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목사상임회장 5인의 개정안은 앞으로 상임회장과 대표회장 선임에 있어서 서로의 경제적 및 심적 부담을 서로 나누어서 향후 부기총의 대표회장 선임에 대한 준비에 있어서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차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 : 좀 예민한 질문을 해 봅니다. 요즘도 상임회장이나, 실무임원을 하려면 증경회장님들에게 대접(?)이 필요합니까? 과거에는 관행으로 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이 : 물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전임 회장님들도 식사대접하고, 교통비 주면서 그분들 기분 맞춰 줬고, 그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직접 요구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분들 뜻대로 맞춰주지 않으면 대표회장이나, 상임회장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신 : 그럼 목사님도 그런 대접을 했습니까? 그리고 그런 대접을 안하면 부기총에서 활동하기 힘든지 궁금합니다. 이 : 저도 식사 대접을 한 적 있습니다. 상임회장 후보가 되면 그때부터 밥 사라는 요구가 들어 옵니다. 그걸 거부하는 것은 부기총 상임회장 안하겠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모든 증경회장님들이 그런 건 아닙니다. 그 분들 중에서는 오히려 이런 요구를 하시는 분들과 거리를 두는 분도 상당히 많으십니다. 오늘 제가 한 말들이 그런분들에게는 오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격려해주시고, 힘을 주시는 회장님도 분명 계십니다. 실무임원진들을 힘들게 하시는 분들은 극히 일부 몇 분 임을 밝혀드립니다. 신 : 어른들을 예우차원에서 밥을 살 수 있지는 않습니까? 평소 어른들을 너무 소외시킨 것 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 : 부기총은 모이면 회의비가 일체 없습니다. 몇 년째 차비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증경회장님들이 모이면 최소한 교통비는 드립니다. 우리 안에서 어른들을 소외시켰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대우를 해 드릴려고 상당히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상처를 주시는 분들도 증경회장님들입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요구를 하시고,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실무임원들을 흔드십니다. 어른들이 먼저 후배들을 불러 밥을 사주면서 이런저런 충고를 해 주신다면, 과연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음에는 우리가 더 신경써 모실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무조건 ‘차비 준비해 와라’는 식입니다. 그 분들이 보시기에 우리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도 60세가 넘은 나이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전혀 숙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 : 그래도 부기총을 38회기 동안 잘 지탱해 온 공이 있는 분들 아닙니까? 이 : 물론입니다. 공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분들이 한발 뒤에서 부기총을 위해 기도하고 임원들을 격려 해 주셨다면, 지금의 부기총이 좀 더 발전할 수도 있었고, 그 분들도 더 존경받는 위치에 계셨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 내어주십니다. 하지만 일부 증경회장님들은 교시협, 구군연합회 등을 만들어 오히려 부기총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기구들은 지금 유명무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것도 자식을 위한 일인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 : 앞으로 부기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부산교계 안에서는 반쪽짜리 대표기관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진정한 대표기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 : 정관에도 있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기총이 공교회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노회와 지방회가 파송하는 대의원들로 구성되어 총회를 하고, 회비도 노회와 지방회로부터 거둬 들여야 합니다. 지금 개인이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연합체가 아닌, 개인연합체로 오해받고 있습니다. 지금 5개 정도의 노회와 지방회에서 대의원들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전체 약 31개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점이 안타깝습니다. 신 :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면 부기총이 바뀌어야 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기총 내부의 정관도 그런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꿀 수 없습니까? 이 : 다음 총회에서 임원회 이름으로 제대로 된 개정안을 내려고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희생도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 : 역사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 :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땅을 기증할 부산진교회가 제직회를 통과했고, 현재 공동의회가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회원들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부산진교회가 부산진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당회장인 이종윤 목사님의 의지도 상당한 것 같습니다. 이 목사님은 기독교사상 편집인도 하셨던 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아는 분입니다. 그래서 부산진교회 당회가 어쩌면 무리한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부산진교회 성도 개개인의 의견도 소중하기 때문에 부기총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 : 들리는 말로는 행정규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말도 있던데요? 이 : 정공단이 있습니다. 유적지, 문화재 같은 그런 곳입니다. 높이 같은 제한이 있지만, 크게 상관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높이 올릴 경우 부산진교회가 가릴 수 있어 그런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계에 신중을 기할까 합니다. 신 : 역사박물관을 거기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 : 이유가 있습니다. 시장님도 동의를 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서병수 시장님이 기독교역사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초량교회까지 가 볼 정도로 역사관 건립에 의지가 있으십니다. 지금 부산진교회 역사관 건립 예정 부지는 주변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교회인 부산진교회가 있고, 옆에 일신기독병원과 부산지방 최초의 신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 건물도 있습니다. 그 건물은 부산시기념물 제55호로 등록돼 있습니다. 신 : 금년 중 공사에 착공 할 수 있습니까? 이 : 부산진교회가 허락만 해 주신다면 착공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신 : 바쁘신 가운데 시간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 부기총 문제로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좀 더 발전하려는 성장통으로 생각하시고, 부기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솔직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속에 있는 솔직한 생각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오늘 제가 한 말들이 모든 증경회장님들을 대상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 증경회장님들이 부기총보다 개인을 더 생각하시는 것 같아 안타까워 드린 말씀입니다. 부기총이 한차례 진통을 겪고 더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더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오랫동안 변화하기 힘들 것입니다. 부기총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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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담/대담
    2016-02-03
  • [시사칼럼] 붕어빵 아이들
    지난 1월 25일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전주의 한 거리에서 간암에 걸린 엄마를 대신해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오빠를 곁에서 보살피면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중학교 여학생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시민들의 온정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SNS에 올린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확인 결과 붕어빵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연은 좀 달랐습니다. 간염이나 우울증 증세 등으로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부모를 둔 네 가정의 아이들을 교회가 돌보면서 자활할 수 있도록 붕어빵 포장마차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아동 학대’를 이유로 당국에 민원을 내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단속요원들이 철거 계고장까지 발부했다가 또 다른 시민들의 항의로 일단 철거는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이자 세계적인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그의 책 『다른 자본주의(Confronting Capitalism)』(더난, 2015)에서 자본주의가 직면한 14가지 문제를 적시했습니다.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쓰면,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소득불평등, 파괴의 씨앗’, ‘수렁에 빠진 노동자들’, ‘자동화에 일자리를 빼앗기다’, ‘이익은 기업이 비용은 사회가!’ 등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붕어빵 아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왜 이 아이들과 그 가정들은 그토록 가난해야 합니까?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답 하나는, 가난이 이 아이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 자체에 모순이나 결함이 있는 걸까요? 코틀러 교수는 바로 이러한 모색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는 가능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를 꿈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하는 일종의 대안들이 바로 ‘온정적(Compassionate) 자본주의’, ‘포용적(Inclusive) 자본주의’, ‘인도적(Humane) 자본주의’, ‘건강한(Healthy) 자본주의’, 그리고 ‘깨어 있는(Conscious) 자본주의’ 들입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2016)의 저자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2015)라는 책에서 오늘날 인류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를 향하고 있다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헬라나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말을 인용하면서, 울창한 삼림에 널려있는 나무 조각을 이용해 펠릿(pellet)이라는 연료를 개발하거나 친환경 스토브를 만들고, 나아가 CLT(cross laminated timber)라 불리는 고강도 목재를 개량해서 고층 빌딩을 건설하며, 농가의 버려진 집들이나 자가소비하고 남은 작물을 재활용하고 공유하는 일본 산촌(山村)의 현장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산(里山) 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와 같이 자본주의가 그 기능을 상실할 경우 보완해 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동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가야 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전주의 붕어빵 아이들을 돌봐준 것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식의 온정적 자본주의도 아니요,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 식의 ‘이산(里山) 자본주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기업 무를 자를 두며,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교회가 불쌍한 아이들을 품었습니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오히려 세상은 교회의 아동 학대를 말하고 교회의 착취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항상 세상의 피난처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의 모습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교회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그만큼 썩어버렸기 때문일까요? 붕어빵 속에 진짜 붕어 없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진짜 그리스도가 없다고들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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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 [시내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일본에 대한 우리의 반일감정은 쉽게 풀릴 수가 없다. 그 동안 외교상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많은 부분이 해소되긴 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일 간의 오랜 숙제가 되어왔다. 이 과제가 한일 외무장관의 협상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지난 해 12월 28일에 있었다. 그 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계속되어 온 한일 간의 불편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분명 빠른 시간 안에 타결해 나가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타결 결과와 과정을 두고 보면, 너무나 실망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선 누구를 위한 타결인지, 그리고 제대로 된 타결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외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삼 50년 전,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있었던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떠올리기도 한다. 수많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인 협상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타결 결과를 문서도 아닌 구두로 발표하면서, 일본정부의 책임과 총리의 사죄,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 재정의 투입 등을 내세워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타결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를 수용해야 할 당사자들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김복동 할머니는 “협상하기 전에 우리 의사를 들어봐야 하는데 정부가 한 마디도 없었다. 정부가 타결됐다고 하는데 뭐를 타결했다는 말이냐”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베 총리가 나서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돈이 필요 없다.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게 우리들의 원이다. 우리는 타결이 안 됐다” 피해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러한 격한 반응은 협상타결의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협상의 주체는 형식상 정부 실무자이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피해 할머니들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협상 전에 피해할머니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한 후 정부입장도 전하면서 최소한 사전조율의 과정을 거쳤어야만 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의 주체이며 당사자는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아직도 신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만일 정부가 ‘선(先)타결 후(後)설득’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정말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후에 당사자인 할머니들을 찾아가 결과를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사람을 제대로 사람대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함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봉사해야 할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덧내고 있다는 것은 여성인권의 또 다른 유린이며, 박탈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여성인권의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펼쳐나가고자 하는 정의는 약자들이 보호받는 공의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는 인정하고 법이 정한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지만, 국가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고, 약자를 지켜주지 못할 때, 그 권력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어 갈 수 있도록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의를 보고 방관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국가 권력에 적당히 야합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일에 얼마나 무디어져 왔는지를 이제 다시 한번 성찰할 때이다.
    • 오피니언
    2016-02-03
  • [강규철 장로] 다음세대를 살립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당면과제중의 하나는 주일학교의 부흥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회가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와의 관계에는 무관심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흔히 인구 대비 기독교인의 비율이 2~5% 미만이면 미전도 종족지역이라고 합니다. 현재 많은 교회가 미전도 종족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물질로 지원하고 온 교회가 그를 위하여 기도로 후원합니다. 그런데 기독학생의 비율이 5%도 되지 않는 학교에는 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으냐고 질문하는 교회 지도자는 없습니까? 부산에는 기독교 건학이념을 가진 학교가 20개입니다. 그런데 교목이 있는 학교는 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교육을 포기한 학교가 그만큼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음세대 육성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교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근간이 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변명이 있겠지요. 재정이 부족하다든가, 마땅한 청소년 사역자가 없다든가, 혹은 오늘날 공교육에서 기독교 편향적인 교육을 금지한다든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이사장이나 학교장의 잘못된 시각과 무관심에 있다고 봅니다. 이는 교목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재정은 교목을 교양과목인 종교교사(기독교 윤리 전공)로 채용하면 해결되고 현재 신학을 전공하는 사역자들 중에는 얼마든지 뛰어난 청소년사역자들이 있으며 사학의 건학이념은 보존시켜야 하는 권리가 학교에 있습니다. 현재 교목이 활동하고 있는 학교에서 인기투표를 한다면 아마 교목이 최다득표를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교목은 학생들과 마음으로 만나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교목실은 학생들의 사랑방이고 놀이터입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담임이나 부모한테도 말 못하는 고민을 교목한테는 다 털어놓고 상담하는 경우를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교목이 친근한 보호자이며 상담자이고 자상한 형님이자 종교에 상관없이 의지할 수 있는 목사님입니다. 이들이 재학 중에도 교목의 영향으로 교회를 찾아가지만 졸업하고 난 뒤에 군에 가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이들은 목사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브니엘고에서는 한 해 동안 세례를 받는 학생이 100명 가까이 됩니다. 물론 일반교회에서 받습니다. 이는 한 학년 학생 인원 대비 30%가 넘는 숫자이며 입학할 때의 기독교인의 비율이 4~5% 밖에 되지 않음을 감안하면 기독교학교와 교목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학교에 할 수 있는 선교차원의 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먼저 교목이 없는 기독교학교에 젊고 유능한 청소년 사역자를 교목으로 파송하는 것입니다. 주중에 학교에서 교목으로 활동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섬기면 됩니다. 이는 학교라는 선교지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하므로 사역자 본인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학교는 교목으로 인한 교사정원의 마이너스가 없고 교회는 당당하게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할 수 있게 되니 서로가 윈윈 할 수 있습니다.현재 각 학교에는 상담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 담당 사역자가 상담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활동비도 제법 상당합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 상담학을 부전공으로 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현재 부산교육계에는 장로, 권사, 신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교장신우회가 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심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교회의 후원자들과 연결하여 도움을 준다면 이들은 잠재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다음세대를 걱정하며 육성하고 싶다면 우선 기독교학교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지에 지원 하듯이 교회 주변의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또한 교육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사들, 특히 교장들과의 유기적인 모임을 통해 체계적인 활동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정론
    2016-02-03
  • [목회자칼럼] 내 안에 숨어있는 5가지 적(敵)
    ①욕망 ②의심 ③불평 ④교만 ⑤두려움 겸손할 줄 모르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우상숭배와 불평과 교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싫어하실 뿐 아니라 교만하면 내가 망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인간에게 <교만으로 나아가도록>끝없이 부추긴다. 그리고 인간은 이 부추김에 가장 취약하다.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장 12절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만>은 인간을 패망으로 이끌어간다. 우선 성경 안에서 그 실례(實例)를 찾아보자. 이집트의 바로(왕)를 생각해보자.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자신이 소중한 인간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소중한 인간>이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학대한다. 인간으로서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노동으로 몰고 간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한 사람이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재임하면서 애굽을 7년 대흉년으로부터 구해낼 뿐 아니라 애굽 국민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그 아름도운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아니한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背恩忘德』(배은망덕)이라는 것을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주 잘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신다. 교만한 마음을 반성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自由)를 허용하라고 충고하고 권면한다. 이 충고는 인간 모세의 충고가 아니고 실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는 번번이 약속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기만한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에 차례로 내리게 된다. ‘열 가지 재앙’이라 했으니 바로(왕)가 하나님의 명령(권면/충고)을 열 번이나 무시하고 비웃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약속한 바’를 열 번이나 번복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이 차례대로 내리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던가? 피·개구리·이·파리·악질·독종·우박·메뚜기·흑암 그리고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이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에 대하여 출애굽기 12:29~30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 이었더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거듭 겪으면서 이집트 나라는 초토화 되었다.그러고도 바로(왕)는 겸손 할 줄 모른다. 여전히 교만하다. 그는 이집트군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출애굽하여 이미 상당한 거리로 벗어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걸어서 건너갔다. 하나님께서 홍해물의 위, 아래를 막으시면서 강바닥에 길을 내어 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다. 겸손할 줄 모르고 끝까지 교만에 갇혀 있던 바로(왕)와 이집트 정예 군대는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다가 홍해에서 몰살당하였다. 통치자 한 사람의 끝없는 교만 때문에 이집트 전 국민들 집집마다 장남이 죽어 나가고 모든 가축의 초태생(初胎生)이 죽어 나갔다. 집집마다 시신을 치우고 장례를 치루느라고 애굽의 땅과 하늘에는 ‘통곡 소리’가 뒤 덮였다. 교만의 폐단은 이렇게 무섭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너무 교양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 될려고 하지 말고 〈원초적이고 순전한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자신이 너무 고상하고 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점점 교만해질 위험성이 크다. 그리되면 무어보다 ‘은혜’를 못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은혜를 못 받으면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늘로서 내려오는 은혜(heavenly grace)이다. 주일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신자는 은혜를 못 받으면 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참으로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더러 겸손하게 살라고 하신다(미가6:8, 벧전5:5). 때로는 고난을 경험시켜가면서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시 119: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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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⑫ 기억과 망각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6:4-9) 1. 추억의 소환과 기억의 귀환: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서’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핵심은 추억의 소환이자, 기억의 귀환이다. 지난 2015년 말 개봉된 영화 <히말라야> 역시 죽은 후배와의 추억을 소환하여 그의 시신을 가지러 히말라야의 그 험준한 산을 오른 것이며, 영화 <대호>도 기억의 귀환에 다름 아니다. 호랑이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새끼시절 자기를 살려주었던 포수를 기억하고, 포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환에 그 모든 기억을 끝내기 위해 망각의 길로 호랑이와 함께 떠난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는 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가 나무를 나무로, 꽃을 꽃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나무와 꽃에 대한 원초적 기억인 산과 바다의 이데아(idea)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지식을 얻는 학습 과정은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이데아가 밝혀지기 때문이고 지식은 순수한 영혼이 과거에 보았던 것을 우리 몸이 기억해내는 것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기억 이론인 상기론(anamnesis)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성이 추억을 소환하며 기억의 귀환을 당연시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진리 개념인 알레테이아(a-letheia) 역시 마찬가지이다. 망각(lethe)하지 않는 것,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진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의 어머니는 어느 겨울날 추위에 떨고 있는 마르셀에게 따뜻한 차와 ‘마들렌’이라는 조그만 케이크 하나를 권한다. 마르셀은 마들렌 한 조각을 차에 담갔다가 차를 마셨는데, 마들렌 부스러기가 섞인 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일찍이 느껴 보지 못한 ‘매혹적인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차에 섞인 마들렌 부스러기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느꼈던 감각이, 어린 시절 아침 인사를 하러 레오니 숙모에게 갔을 때 숙모가 따뜻한 보리수꽃차에 마들렌 한 조각을 담가 준 일과 그 당시 콩브레(Combray; 소설의 공간적 배경)에서의 기억들을 연이어 떠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마르셀의 고백이다. “이윽고, 침울했던 그 날 하루와 내일도 서글플 것이라는 예측으로 심란해있던 나는 기계적으로 마들렌 한 조각이 녹아들고 있던 차를 한 숟가락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던 그 한 모금의 차가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내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곤 소스라쳐 놀랐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 매혹적인 쾌감은 사랑이 작용할 때처럼 귀중한 정수로 나를 채우면서, 즉시 나를 인생의 변전 따위에 무관심하도록 만들었고, 인생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했으며, 인생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초라하고 우발적이며 죽어야만 할 존재라고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프루스트는 이러한 회상을 ‘무의지적 기억(memoire involontaire)’이라고 불렀다. 마르셀을 매혹적인 쾌감에 빠뜨린 것은 무엇일까? 프루스트는 그 답을 3,000쪽이나 되는 방대한 장편소설(7부작)로 제시하고 있다. 곧, 소설이 진행되면서 부단히 반복되는 이러한 회상들을 통해 마르셀은 결국 잃었던 정체성을 회복하고 허무에 빠졌던 자기 자신을 구하게 된다. 자신을 열등한 존재, 우발적이고 죽게 마련인 존재라고 느끼고 결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가 다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게 된다. 희망이 생긴 것이고, 결국 그의 삶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 위안부 소녀상 따라서 기억은 이 시대의 화두인 동시에 영원한 실존적 화두가 된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기억의 귀환(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것)이 이러할진대 사회적 기억은 어떨까?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전직 대통령들의 기념관 등)¹를 세우고, 기록보관소를 만들고(세월호 관련 저 엄청난 SNS상의 담론들을 보라) 기억의 조형물(위안부 소녀상처럼)들을 세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이러한 기억의 연구(사회적 기억)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고(나치 치하 아래에서 유대인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전개된 홀로코스트의 영향과 제3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의 민주화 영향, 그리고 1990년 전후 세계적 탈냉전이 1945년 이전 식민주의나 1945년 이후 냉전하의 사회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 치열한 ‘과거청산’ 논쟁과 함께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기억 연구는 5·18민주화 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운동이다. 여기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동학농민혁명 등도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기억담론(나아가 기억혁명)은 공식적인 역사가 민중의 경험을 다루지 못할수록 강력하게 요청되며, 이후 체계화된 기억은 다시 역사 영역으로 편입이 된다.² 2. “망각은 추방으로 이끌고, 기억은 구원의 비밀로 인도한다” ▲ 야드바셈 나치 정권에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는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Yad Vashem, 이름을 기억하라) 홀로코스트 기념비에는 ‘망각은 추방으로 이끌고, 기억은 구원의 비밀로 인도한다(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야드 바셈은 “나의 집, 나의 울 안에 그들의 송덕비를 세워주리라. 어떤 아들 딸이 그보다 나은 이름을 남기랴! 나 그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주리라”는 이사야 56:5절 말씀에서 인용되었다. 이스라엘 안의 이방인들(특히 이사야 본문에 의하면 ‘고자’로 배척받는 이들로 이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들, 추방당한 사람들, 배제당한 사람들, 분배의 몫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슬픔과 고통의 원인을 국가적 횡포가 막아 더 큰 아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어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들보다 더 나은 이름을 주며 ‘기억’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명이자 하나님의 기억의 귀환이다. 나아가 그리스도교 예배의 모든 절차는 기억의 귀환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반복적 상기는 공통된 기억의 반복이며 이를 통해 신앙적 전통이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의 귀환은 신앙의 본질적 토대가 된다. 또한 대표적인 그리스도교의 성례인 성찬에서 포도주와 떡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은 그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일진대, 그렇다면 기억은 단순히 의지적인 머릿속 작용만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되는 대상 사이를 연결시킨다. ‘참여적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랑했던 이들의 고통과 고난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억해야하는 것이다. 용산 참사, 밀양과 강정 마을, 세월호,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의 과도한 물대포 살수 등 최근의 사건들도 잊혀져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기억의 길이는 가슴으로 느낀 아픔의 길이와 비례하건만, 아직도 아픔은 기억으로 소환되어 망각의 강으로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다. 3. 애도와 우울증: 망각의 강으로 사람은 아픈 상처를 잊지 못하면 삶을 새롭게 시작하지 못한다(그러나 망각과 동시에 ‘앞서의 이야기와 같이’ 기억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도 못한다). 오직 인권과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을 하다 갖은 고초를 겪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만이 계속되는 삶을 위해 망각을 불러내야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트라우마(外傷, trauma, 전쟁, 성폭력, 재난, 사고와 같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외적인 사건의 영향으로 이 사건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정신적 충격) 증후는 사건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 다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억을 통제하려면 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망각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함으로 기억을 통제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집행할 아무런 권한도 의무도 없다. 오늘 한국 사회의 문제는 역사적 외상에 있어 국가의 과도한 망각 집착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상처와 고통에 대한 망각은 어떻게 가능할까?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 모두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지만 몇 가지의 차이가 발견하며 이렇게 말한다. “애도의 경우 빈곤해지는 것은 세상이지만, 우울증의 경우 자아가 빈곤해진다.” 애도(Trauer, 슬픔)의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어서 아무리 격심하다 해도 치료를 요하진 않는다. 충분히 슬퍼하고 나면 아픔은 가라앉고 다시 일상이 열린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지면 상실로 인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외부 세계에 대한 반응 능력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자애심, 곧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슬픔은 세상을 텅 비게 하고, 우울증은 내 안을 텅비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슬픔과 우울증의 원인을 밝혀, 자신이든 타자든 합당한 결과를 수용하거나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나갈 때, 슬픔은 위로받고, 우울증은 사라질 것이다. 그때 망각은 자연스레 따라와 지나가버린다. 4. 망각 인간의 내면적인 삶과 관련된 트라우마와는 달리 인간의 외면적인 삶과 관련되어 국가 혹은 정치 권력이 개입해서 망각하는 행위가 있다. 역사적 사면(赦免, Amnesty)이 바로 그것이다. 1946년 9월 19일 처칠 영국 수상의 취리히 연설은 이제까지 적대적이었던 국가들 사이의 과거를 잊고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쓰자는 ‘망각의 신성한 행위’를 호소한다. 하나님은 역사적 사면을 우리 인간 전체를 향하여 펼쳐 보이셨다. ‘기억의 귀환인 동시에 죄에 대한 망각 대선언’인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할지라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이시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43:25)”,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49:14-15).”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는 기억의 회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온 이들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으며 선조들의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고난을 후손이 기억하고자 한다. 따라서 유월절 식탁에서 자녀들은 쓴나물을 먹으며 부모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왜 우리가 이 쓴 나물을 먹어야 합니까?” 부모는 이렇게 답한다. “조상들의 고난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기 위해서!” 각주)-----------------1) 문자적인 의미로는 기억(記憶)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며 기념(紀念)은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념은 과거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재현하지만 그 속에 기억이라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행위가 없으면 그것은 단지 형식적 제의와 축제에 불과할 것이다. 2) 그러나 이러한 기억혁명이 항상 인권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국가주의적 기억을 해체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억의 전환은 주로 민주화 국면(또는 ‘민주정부 10년’ 기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반기억 혁명’의 맥락에서 국가주의적 기억을 새롭게 부활시키려는 새로운 기억의 터를 조성하려고 한다(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나 박정희 기념도서관 등).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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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 [교회회계] 교회회계 : 결론/마무리
    필자는 5년째 교회에서 회계업무를 맡아 왔다. 또 대학에서 15년 넘게 회계학을 강의하였다. 교회회계는 돈의 흐름을 결산ㆍ보고한다는 점에서 기업회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사용하는 복식부기를 교회에도 적용하려는 시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식부기는 현금주의 개념에 따라 수입ㆍ지출의 표시와 예산이 잘 집행되어졌는가를 검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자산ㆍ부채의 관리는 물론 교회 재산가치에 미치는 흐름을 장부에 반영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그동안 12회에 걸쳐 복식부기 시스템에 기초한 교회회계의 방법과 절차에 대해 설명하여 왔다. 본회는 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복식부기 교회회계의 원리(accounting cycle)는 다음 6단계로 구분해 적용하라! 교회가 복식부기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①먼저 회계장부에 표시될 거래를 식별하여 기존의 수입ㆍ지출 내용을 자산, 부채, 자본(순자산), 수익, 비용으로 분류 변경한다. ② 식별된 내용은 분개(journal)를 통해 회계장부에 기록한다. T자계정을 만들어 차변(Debit)에는 자산?비용의 증가, 대변(Credit)에는 부채ㆍ자본ㆍ수익의 증가를 표시하고, 감소시에는 그 반대로 표시한다. ③또 날짜별로 표시된 분개내용은 계정별로 집계하여 전기(posting)해 총계정원장을 작성한다. ④그리고 기말시점에 발생주의 기준에 따라 추가적인 수정분개 작업을 한다. 즉 유형자산을 감가상각하는 회계처리 등을 한다. ⑤수정분개후에는 복식부기의 핵심인 재무상태표와 운영성과표를 작성한다. 재무상태표에는 자산과 부채, 순자산을 표시하고, 운영성과표는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하는 형식으로 표시한다. ⑥마지막으로 총계정원장에 표시된 각 계정을 마감하고, 다음 회계연도를 준비한다. 2. 자금수지계산서를 운용성과표로 대체해 작성하고, 수익ㆍ비용의 영향을 구분해 표시하라 복식부기 도입시는 수입ㆍ지출을 중심으로 표시하던 기존의 자금수지계산서를 운용성과표로 대체해 작성한다. 즉 수익?비용을 경상항목과 자본항목으로 구분하여 운용성과표를 작성하되, 수입ㆍ지출의 발생 원인과 경제적 효과가 당해연도에 귀속되면 경상지출과 경상수입으로, 차기이후에 영향을 미치면 자본지출과 자본수입으로 각각 구분하여 표시한다. 즉 사례비는 지출효과가 당해에 귀속되므로 경상지출로 하고, 건물구입을 위한 지출은 장기간 영향을 미치므로 자본지출로 한다. 그리고 기말에는 발생주의 개념에 따라 추가적으로 수정분개를 한다. 감가상각비와 손상차손, 공정가치의 적용이 그 예이다. 운영성과표는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하여 표시하고, 그 잔액을 재무상태표의 순자산 항목에 반영한다. 3. 경제적 효익이 장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산ㆍ부채로 관리, 재무상태표에 표시하라. 재무상태표는 교회의 자산ㆍ부채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표시한 것으로, 교회재정의 재무적 건정성과 투명성 확보, 효율적 재산관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즉 교회에서 발생한 수입ㆍ지출항목은 운용성과표에 표시하되, 그 발생원인과 경제적 효과가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은 반드시 자산과 부채로 구분해 표시하여야 한다. 또한 자산중 퇴직급여기금과 같이 사용이 제한된 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과 구분하여 표시한다. 그리고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잔액으로 교회 설립시 기본금을 포함, 각종적립금과 차기이월잉여금으로 표시할 수 있다. 4. 회계감사와 내부통제제도를 구축하고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라. 회계감사(auditing)는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맞추어 적정하게 표시되었는가를 검증하기위한 위한 것으로, 매년말 감사를 선임해 진행한다. 감사내용은 (1)장부상의 현금예금과 통장잔액이 일치하고, (2)재무제표와 회계장부의 표시가 적정한가, (3)재정의 수입지출이 적정히 집행되었는가, (4)영수증과 감사증거 자료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감사결과는 적정의견, 한정의견, 부적정의견, 의견거절 4개로 분류해 감사의견을 표시한다. 또한 내부통제제도(internal control system)란 회계적 오류나 부정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절차로서, 두 사람 이상이 상호 견제속에 업무를 분담하고 필요한 매뉴얼에 따라 진행할 때 교회 사역이 더욱 원활하게 움직여 갈수 있다. 작년 12월에 종교인 과세문제와 관련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교회회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아져 있다. 또한 2013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교회회계와 재무처리기준”을 발표해 예산규모가 10억원 이상인 교회에게 복식부기를 적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10억원이 아닌 5억원의 수준으로 낮추어 교회가 가능한 한 복식부기를 모두 적용했으면 한다. 또 그런 의미에서 본 칼럼을 통해 구체적인 복식부기 적용방법을 실무적 관점에서 설명하여 왔다. 물론 규모가 작은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에게 복식부기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교회회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대에 와 있음은 분명하다. 교회지도자의 교회회계에 대한 바른 인식과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단 또는 도시 성시화 차원에서 복식부기와 교회회계 발전을 위해 일조해 갈 것을 다짐해 본다. <문의 sblee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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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 [은혜의 말씀]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장 15~17절)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마지막으로 심방하십니다. 실패한 베드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린 베드로, 물고기 잡으러 도망간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밥부터 챙겨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먹이는 것입니다. 친해지기 전에는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급하고 바쁘다고 일부터 해버리면 충돌과 상처가 일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친해지고 난 뒤에 일을 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이 무슨 말 일까요? 아직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에 불가한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집중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인격적으로 배은망덕하고 실패한 사람이고, 사업적으로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은 빈털터리 인생이 베드로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집중해 나가는 것이 요한복음 21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철저히 일대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아직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고 옆에 눈치코치 영향을 받는 삶이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사랑에 실패를 하면 안 됩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되고 나중사랑을 우리가 감당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이 뭐냐?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그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한테 배반을 당하고 실망을 할 때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이제는 주님의 일을 하고 사명자의 길을 가라. 베드로 네 양이 아니고 예수님의 양을 지금 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은 첫째, 네 것 아니고 하나님의 것. 둘째, 철딱서니 없는 말썽꾸러기 같은 그런 미숙한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결론이 21절 22절에 "너는 나를 따르라." 베드로야 너는 한눈팔지 말고 딴 짓하지 말고 시선 집중해서 중심을 잡고 나를 따르라. 헛된 마음 버리고 쓸데없는 자랑하지 말고 사명자의 길을 가라. 사명자가 사명을 가지면 죽어도 좋아. 네 양떼가 아니고 주님의 어린양을 붙들고 먹이고 돌봐라. 하나님은 쓰임 받고 주의 일을 할 동안에는 힘도 건강도 지혜도 믿음도 물질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름 받아 변화된 베드로가 사도행전 넘어가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사람의 말을 들을까, 하나님의 말을 들을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변화된 베드로가 설교 할 때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여 돌아옵니다. 그런 많은 상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오직 베드로 한 사람에게 집중해 가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주님 한 분에게 집중해서 세월이 갈수록 성숙의 변화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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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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