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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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복 교수] 부활 한국(復活韓國)
    “감옥에 가지 않는 총장이 되게 기도해 주십시오”. 취임을 며칠 앞둔 某국립대학 교수님이 1년전 기독모임에서 한 인사말이다. 또 3년전 某기독대학이 前총장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는 일이 부산에서 발생하였다. 충격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심지어 이 나라의 시스템은 최근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을 탄핵, 구치소에 수감까지 하였다. 임기말 레임덕을 넘어,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이 수난을 경험하는 불행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뇌물에 대한 법리 개념의 시시비비를 넘어 관련 사태로 기업 CEO가 구속되는 등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나 큰 사회적 비용의 부담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이 나라의 병(病)인가? 사순절(四旬節) 기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셨듯이, 이 나라도 심한 열병을 앓고 있다. 진보와 보수,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이 너무 심하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안에 2개로 갈라진 성도, 목회자의 모습이 보인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각기 다르다. 설교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심지어 심한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SNS 문화가 또 하나의 열병을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 네 눈속에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마7:3-5)”. 온 국민이 한번 더 신중히 고민하며 행동에 옮기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생산할 뿐이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우리나라 2016년 회계 적절성에 대한 국제 경쟁력 평가는 61개국 중 최하위인 61위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IFRS(국제회계기준)을 도입, 회계 선진국 진입을 표방하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부끄럽고 창피하다. 나 스스로 분식회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도망치던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내 안에 감추어 져 있지는 않은지 먼저 돌아보며, 공동체의 비전과 정직을 함께 도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진정한 개혁은 그 어떤 큰 목소리의 주장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희생, 회개, 그리고 실천이 먼저 선행 될 때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아가서2:10-13)”. 곧 부활절이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장사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산 소망의 역사요, 능력의 역사이다. 온 국민이 부활 한국(復活韓國)을 향해 함께 달려갔으면 좋겠다. 분노와 지탄, 공격의 언어보다는 희망과 화합, 존중의 언어를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이 선포 되었으면 좋겠다. 비선실세(秘線實勢)의 존재가 얼마나 큰 아픔을 주었는지 교훈으로 삼되, 국민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려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이며 신뢰이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9가지 열매이다. 마르틴 루터와 칼뱅에 의해 종교개혁이 이루어진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의 부족한 것을 한번 더 돌아보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변화되어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도록 간구해 갔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17-04-10
  • 부활절, 새롭게 도약하자
    만물이 생동하는 봄, 우리는 또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됐다. 죽음의 권세를 박차고 일어나 생명의 불꽃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게 된다. 부활절의 의미가 늘 새로운 것은 비단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부활절을 계기로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나라 안팎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탄핵정국에서 이제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시대 위정자들은 우리 유권자들을 말로써 현혹하고, 나중에는 큰 상처를 안겨 주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죽음 가운데서 새 생명을 잉태해낸 부활의 역사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차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이 땅에서 부활의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배려였을 뿐 아니라 모두가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부활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소수의 남은 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인다. 부활은 영혼을 새롭게 하고, 육체를 새롭게 하고, 삶을 새롭게 하고, 역사를 새롭게 하며, 자연을 새롭게 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단어이다. 옛 것을 다시 형상화 시키는 것이 부활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거듭남을 입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것이 아닌 옛것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자. 부활의 의미를 무엇보다 제대로 정립해야하는 기독교가 진정한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 기독교가 서야 한다. 부활을 맞아 우리가 먼저 의식을 깨어 구태의연한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 부활의 참 의미를 되새기자.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위대한 미래를 건설할 것이다. 옛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도약하고자하는 우리들의 진정한 소망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건전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7-04-10
  • 대학 캠퍼스에 퍼지는 이단 세력들
    최근 모 대학 신문에서는 ‘당신의 동아리 안전합니까?’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특정 이단•사이비가 자기 대학 내에 파고들어, 대학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 침투 사례를 보면, 첫째는 운동(탁구 바둑 등) 동아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온 학생들을 유인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기독 동아리를 가장하여, 그 단체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단 사이비를 포교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동아리 전체를 장악하여, 운영권을 가지고, 기존의 기독 동아리를 제명하는 식으로 기독 동아리는 약화시키고,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네 번째 방법은 체육 동아리를 만들고, 그 동아리 구성원(이단•사이비 신봉자)들이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자기들의 포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학 본부 산하의 봉사팀에 들어와서, 다른 학생들을 포교하는 방법도 드러났다. 아니면, 아예 기독교 동아리에 침투해서 기독 동아리의 회장이 되고, 그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단•사이비는 순수한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도 침투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을 이루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건전하고 건강해야 할, 학생들의 캠퍼스까지 온갖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이단•사이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단•사이비가 이렇게 학교 동아리를 노릴 경우,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은 자발적인 모임임으로, 기쁘고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학생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될 뿐더러, 자칫하면 꿈과 비전을 품고 들어간 학교생활이 상처와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학교 당국과 미션스쿨의 교목실에서는 철저히 이단•사이비 동아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션스쿨이 아닌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건전한 동아리 활동에 대한 점검을 통하여, 선량한 학생들이 이단•사이비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잘못된 이단•사이비에 한 번 빠지면, 마치 마약과 같이, 평생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단•사이비의 특색은 기존 기독교와 종교를 부정하고, 특정 개인을 우상화/신격화하고, 새로운 성경공부가 있다고 유혹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한다. 우리 한국교회도 각 지역에 있는 대학교들과 공동전선을 펼쳐, 대학 내 이단•사이비의 발호(跋扈)를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단•사이비의 특색과 문제점, 단체들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또한 동아리 연합을 통해, 이단•사이비에 대한 교육도 시켜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7-04-10
  • [목회자 칼럼] 전쟁과 평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부부가 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저격되었다. 이 사건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배를 놓고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와 갈등이 첨예된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이 두 나라의 배후에는 범슬라브주의를 앞세우는 러시아와 범게르만주의를 앞세우는 독일의 제국주의가 있었고, 비스마르크 이후 유럽의 맹주로 군림하는 독일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과 프랑스제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3,000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었다. 그러나 이 비참한 전쟁의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유럽에서는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전 세계가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가면서 약 6억명이 목숨을 잃는 전무후무한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거기에는 항상 명분과 정당성이 강조되었다. 정치인들은 영토, 민족, 이념, 자국의 안전, 전략적 가치 등등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우면서 이 전쟁이 꼭 필요한 것처럼 선전을 했지만, 대부분이 해서는 안 되는 전쟁들이었다. 어거스틴이 게르만족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쟁을 “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이라고 칭한 이후 서양제국들은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이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대부분이 ‘의로운 전쟁’이 아닌 ‘불의한 전쟁’이었고, ‘거룩한 전쟁’이 아닌 ‘추악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피해자는 군인보다도 오히려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대개 전쟁이 발발할 때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본질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 그것은 호전적인 정치인들이고 평화의 가치를 모르는 극우세력들이다.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거짓말과 선동이 난무하고 언론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면서 일반국민들도 점차로 분별력을 잃어가게 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전쟁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남한과 북한은 지구상의 유일한 한민족이지만 이념으로 대립하면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적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어야할 민족이다. 이 두 가지의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진다. 북한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우리나라 안에도 호전적인 사람들이 많다. 북한을 철저한 적으로만 여길 뿐, 같이 공존해야할 평화의 대상자로 여기지 않는다. 특별히 기독교인들 중에는 일반인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북한정권을 마귀집단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귀집단일진대 이것은 전쟁과 타도의 대상이지 타협과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국민 모두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원칙에 서있어야 한다. 전쟁도 불사한다는 사고방식에서는 작은 군사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와 우리 자녀세대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길이다. 우리가 전쟁하지 않으려면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대화와 교류를 해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혜를 모아 교류의 채널을 확대해 가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군사적인 정치적인 사건을 빌미로 민간교류를 단절시키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사안과는 별도로 민간교류의 창구는 닫는 일이 없이 지속시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독일교회가 동서독 갈등의 화해자로 서면서 평화로운 통일의 주역이 된 것 같이, 한국교회도 한반도에 내재하는 무수한 갈등의 화해자로 서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17-04-10
  • 침례병원, 청산 가치가 130억 더 높아
    지난 3월30일 서울 회생법원에서 침례병원 조사위원인 한영회계법인의 보고가 있었다. 보고내용에는 계속 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596억)가 130억 더 높게 나와 더 이상 회생절차를 진행하는데 있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청자인 한국노조침례병원 지부장은 인수합병을 추진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재판부에서는 채무자에게 의견을 물어보았고, 채무자측인 병원 경영진은 차라리 파산을 하겠다고 하여 인수합병절차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회생 전문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재판부에서 채무자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그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채무자의 부동의가 합리적인 것이냐 혹은 합법적이 것이냐 등의 의구심이 있기 마련이라 통상적으로 의견을 들어보고 채권자의 일반 이익을 위해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것이 절차상 관례인데, 재판부가 채무자의 부동의를 이유로 절차 진행을 고심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회생을 통한 침례병원 인수합병은 채무자측의 반대로 절차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조사위원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침례병원의 부채 총액은 974억에 이르고 청산가치는 596억인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이대로 침례병원이 청산할 경우 담보채권과 조세채권을 제외하면 공익채권인 임금채권과 상거래 채권자들은 모두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7-04-10
  • CBS, 신천지 ‘굿판 보도’ 소송 승소
    신천지 이만희가 사후 신도들이 순종할 수 있도록 굿판을 벌였다는 취지의 보도를 CBS가 한 후 이를 신천지측이 30억원이라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법원은 지난 3월30일 CBS 손을 들어줬다. 서울남부지법은 CBS측의 명예훼손 등이 성립하려면 허위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신천지측에 있다고 전제하고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각 보도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2017년 3월 30일 판결했다. 법원은 “윤 모 씨는 창립 초기부터 신도였고 윤 모 지파장의 동생이어서 신천지측 내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윤 씨가 오빠의 천도제를 지내면서 무당으로부터 김OO와 유OO이 이만희를 위한 굿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으로, 허위의 사실을 꾸며내어 이야기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속인 이 모씨도 2011년~2012년 신원불상의 남자로부터 굿을 할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는데 그 굿이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와 관련한 것이라는 내용의 문의를 5~6차례나 받은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신천지측에서 실제로 이만희를 위한 굿을 하였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인다”며 CBS의 보도는 객관적 사실에 합치되므로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7-04-10
  • 쪽당회 형국에서 면한 부산 D교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부산 D교회는 이번 4월노회를 앞두고 당회가 고민하는 사안이 발생 할 조짐이다고 교회 한 관계자 항존직 인사가 전하고 있다, 내용인 즉 금년 년말이면 두분 남은 당회원 장로가 한분이 년말로 은퇴하게 되면 한 분 박에 남지 않아 결국 쪽당회가 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면하기 위해서는 이번 4월 노회에 장로 증원 청원을 급히 해 10명 증원은 접수시켰다. 결국 쪽당회로 가는 것을 면한 단안이었다. 교회가 담임목사가 자주 바뀔 때마다, 교인들은 줄어들고 당회는 파행으로 갈 수 있는 사정을 호소하는 교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 주었으면 한다는 호소였다. 교회안의 분쟁을 할 때마다 교인 10분의 1일 줄어든다는 어느 통계에서 교회 분쟁의 원인으로 당회원간의 갈등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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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7-04-10
  • 4월 노회가 임박 하자 총회 총대 열기가 번지고 있다
    통합과 고신 교단들은 저마다 총대로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심지어 시찰끼리 모여 회식이며 교통비 전달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선거법에 저촉이 되는 사안이라는 것. 특히 여성총대 1%미만으로, 총회 정책에 과연 성과를 낼 수가 있을 지가 의문이라는 어느 여성 목사는 “아마 통합 부산노회는 하늘에 별 따기 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편, 끼리끼리 모여 회식이며 단합을 모색하는 시찰도 들리곤 하지만 돈봉투는 삼가는 눈치라고 한다. 돈 주고 총대 얻어 총대로 간 들 거수기 노릇하는 총회 총대들 때문에 노회 여비며 교회 여비 축내는 것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나 노회도 최순실 같은 농단에 벗어나는 성숙한 노회와 총회가 되어야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는 개혁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어느 중진 목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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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7-04-10
  • 박근혜 전 대통령, 최태민의 악연이 가져온 최후의 종말
    역사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를 놓고 후대에서는 평가하고 교훈을 남겨준다. 박근혜라는 어린 소녀는 그야말로 온실에서 자라서 세상풍파를 경험하지 못한, 때 묻지 아니한 독재자의 딸이었다. 프랑스 유학시절 어머니를 잃고 학업을 마치지도 못한 채 귀국하여 홀아비로 있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옆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퍼스트레이디 수업도 받지 못한 순수 그 자체였다. 권력의 속성도 세속의 낭만도 젊음의 희로애락도 경험하지 않았던 처녀가 갑자기 밀려오는 영부인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혼돈의 연속인 나날이 지내야만 했다.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 허무함 속에 빠지게 하는 우울의 연속에 보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위로와 격려가 담긴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게 바로 최태민이 보낸 편지였다. 최태민은 마치 미래 예언자처럼 “박근혜 씨는 앞으로 아시아의 밝은 등불이 되고 여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면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자신의 꿈에 나타나 딸(박근혜)을 보살피고 도와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박근혜는 최태민의 고도의 술수에 넘어 가게 되었다. 최태민은 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구국봉사단’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구국만이 나라를 살린다 할 수 있다는 교묘한 감언이설로 박근혜에게 접근했다. 아버지 박정희도 최태민을 제거하기 위해 한번은 청와대에 직접 불려 어떤 인물인지를 심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딸이 하늘이 내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예언자라고 하도 성화하는 바람에 서울의 어느 구국 경로병원까지 답사까지 했지만 그냥 두고 있었다. 최태민은 박근혜에 접근하기위해 합동 종합이란 교단을 만들었다. 신학교도 다닌 적 없는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나타났고, 한때는 한국교회 기성 목사들이 줄줄이 군사훈련도 받는 등 최태민이라는 사이비 인물에게 협력했다. 월간조선의 지난 2014년 4월호에는 최태민은 최면술로 박근혜를 놀라게 했다고 기사를 실었다. 게재된 내용에 따르면 박근혜 앞에서 육영수 여사의 혼령을 불려와 마치 육영수 여사가 하는 말처럼 시늉을 내는 모습을 연출했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박근혜는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확인된 기사는 아니어도 최태민은 산에서 도를 닦다가 한때는 스님도 되었다가 또 천주교 영세도 받은 천주교 교인이 되었다. 종합 종교 도사로 머리 회전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태민에 홀린 박근혜는 그와의 인연으로 이상한 소문도 퍼졌다. 최근 전두환 씨의 자서전<전두환 회고록>에 따르면 “최 씨는 그때까지 박근혜 양을 등에 업고 많은 물의를 빚었고, 그로인해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혀 온 사실은 관계기관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씨는 “처벌을 전제로 수사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과 유족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을 우려해 10.26 직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전방 군부대에 격리조치를 취했다”고 그의 회고록에서 적었다. 박근혜 씨는 그 당시 구국봉사단 활동을 재개해달라고 직접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한 사실도 밝히고 있다. 여기에 하나 주목할 사실은 박근혜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자 서울 광나루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하러 갔다가 학생들로 하여금 저지당하고 그냥 돌아왔다. 허탈과 공허와 실의에 빠져 길 헤매는 잃은 한 마리 양이 돌아오는 것을 외면하고 막았던 죄는 한국교회가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최태민의 자녀 최순실이 늘 옆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연고가 오늘날의 비선실세로 활동하게 된 것이고, 탄핵정국과 구속수감까지 이어진 악연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사이비 이단의 탈을 쓴 채 교묘히 기독교로 침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의 결과가 결국 박근혜의 최후 종말을 가져 왔고 나라를 온통 혼란과 혼돈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박근혜는 죽고, 죽어야 살아갈 수가 있다. 결국 피가 물보다 진한 형제들에게 종국에는 돌아갈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번 탄핵정국에 비쳤던 촛불, 태극기 집회 때마다 찬송가를 틀어놓은 것에 대한 자기반성, 나부터 새롭게 되도록 반성하며 거듭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남은 과제이자 몫이 아닐까? 이 땅에 사이비 이단들이 설치고 다니는 이상 제2의 박근혜 농단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7-04-10
  • [기독교 교양 읽기 25] 한국교회, ‘이주민’에 더욱 관심 기울이길
    이주민과 ‘함께’! 20년 전 어느 날 성남의 한 양말공장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처우와 상습적인 성추행 등을 피해 도망쳐온 이주노동자 8명이 저자가 담임하던 교회로 피신해 왔다. 여성이 7명이었다. 그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민중목회를 하던 부부 목사가 당시 던졌던 물음은 이러했다.“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때 그들이 들은 대답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소리였다. 이들은 이 소리에 바로 응답하였다.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설립하고는 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특히 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전용쉼터를 한국 최초로 마련하였다.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대폭 늘어남으로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도 설립하였다. 그리고서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구조적인 문제, 나아가 한국인의 인식 문제 등에 대해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그동안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이 고통받은 구체적인 사례도 많이 제시해 놓았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이다. 우리 먼저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주민인권운동의 원칙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르게, 평등하게》 || 최정의팔, 한국염 목사는 둘 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면서 부부이다. 20여년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 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이주민 운동을 해왔다. 동연, 2016.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인 한국염과 최정의팔 부부 목사의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컴퓨터로 ‘인권’을 치다가 받침 ‘ㄴ’을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이권’이 된다. ‘함께’를 놓치면 인권이 이권이 되기 쉽다. 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도 이주민이었음을 기억해야김길구 최근 우리나라에 닥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이주 외국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히브리민족도 이주민 또는 떠돌이인 에일리언(alien)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나그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힘없는 자는 물론,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신약에도 ‘나그네 같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 길이요, 나그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신자들은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시민으로서 국내에 들어와 함께 사는 이주 외국인들에 대한 의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할 시점이라 봅니다.김길구 그렇죠. 신약시대에 베드로가 전도하였던 대상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디아스포라, 즉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김수성 얼마 전 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는 집단’ ‘잠재적 테러리스트’ ‘아이를 낳으러 팔려온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려야 합니다.김현호 이러한 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의 선민의식 때문 아닐까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신화,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왜곡된 선민의식 말입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성 또는 혐오증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더하여 피부 색깔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적 무의식도 잠재된 것 같습니다. 동화정책을 넘어 통합·조화로 나가야김길구 여기에 더하여 법이나 정부의 정책도 대체로 외국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들의 취업에 관한 법을 보면 몇 차례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때문이죠.김현호 결혼 이주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소개소를 통해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에 학교와 사회에서 편견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김수성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 중 가장 큰 문제는 ‘동화(同化)정책’ 일변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아직도 이주민에 대해 동화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이 책에서도 지적하다시피 ‘동화’가 아니라 ‘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이 역시 ‘불통’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저는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통합에 더하여 ‘조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톺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 책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많은 사례를 보면 알 것입니다. 김현호 저는 교회의 선교사업에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한 선교사업입니다.김수성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입장에서 볼 때 이주민에 대한 선교는 선교정책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합체에서 현지 언어 예배 추진하길김길구 이주민에 대한 교회의 선교정책은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약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보살핌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의 미래를 위한 선교정책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미래 한국의 성장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이를 위해서 지역별로 교회들이 협의하여 현지 언어별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A교회에서는 중국어 예배를, B교회에서는 베트남어 예배를, C교회에서는 필리핀어 예배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부기총 등 교회연합체에서 이를 추진하면 좋겠습니다.김수성 우리도 마더 데레사의 말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주위에 있는 이주민 한 사람씩만 사랑하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될 것입니다.김길구 신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강좌 개설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주자 선교나 이주자 복지와 관련한 학과 개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신학교가 나갈 방향 중의 하나로 설정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우리 아이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인데, 교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면 노인들만 사는 가정에 유학생 등을 위한 홈스테이 주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원하는 이를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으로 파송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방법이죠.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YMCA 등에서 제3세계 청년들을 초청하여 공부하도록 주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공부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이상을 내다본 투자입니다.김길구 미래를 위한 교회의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우리 교회가 이슬람 공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을 향한 선교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이들을 우호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다문화가구수는 27만 8,036가구이고, 결혼이민자·귀화자는 30만 4,516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만 9~24세 자녀 수가 8만 2,476명으로 24%나 증가했다. [위의 표 자료는 통계청의 ‘2015년 다문화인구 동태 통계’에서 발췌한 것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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