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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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비전 연제종합사회복지관 장학금 전달
    월드비전 연제종합사회복지관(관장 김순이)은 지난 23일(화) '월드비전 연제종합사회복지관 장학금전달식'을 통해 450명에게 장학금과 생활장려금을 전달했다. 연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이날 전달식에는 이위준 연제구청장, 동래교육지원청 오병헌 교육장, 손준구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동부중앙교회 공종호 목사가 참석해 아동, 청소년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나누고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이번 전달식에서는 아동교육지원 1억7000여만원, 청소년교육지원 2억3000여만원, 교복비지원 700만원(38명), 대학입학장학금지원 700만원(8명), 노인생활지원금 650만원(24명)을 전달했다.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장학금전달식은 월드비전 연제종합사회복지관이 새 학기를 시작하고 새 학년으로 진학하는 자녀들과 부모님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새 힘을 주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2-26
  • [파워]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 진장명 장로
    예장통합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제20회 정기총회가 지난 26일(금) 부산 항서교회(나재천 목사)에서 개최됐다. 신임회장으로 자동승계하는 진장명 장로(항서교회)는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한 연합체로 장로들의 품위를 향상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의 임기는 1년이다. 또한 내년 12월 장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지역 노회뿐 아니라 총회에서도 다양하게 활동했던 진장명 장로에게서 새로운 직무를 시작하는 각오와 그동안의 소회에 대해 들었다. Q.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A.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부산노회에서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경선이 있을 때마다 단합과 화합차원에서 양보했다. 부산노회에서도 연합회 회장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작년에 제가 수석부회장이 됐다.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을 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에 또 능력주실 것이라 믿고 열심히 헌신하겠다는 생각뿐이다. Q.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그리고 장로님께서 임기동안 어떤 것에 중점을 둘 계획인지도 말씀 부탁드린다.A. 전국장로회의 회원이 많다. 지역도 넓다보니 전국장로회를 5개 지역으로 나눴다. 서울은 2개 지역, 중부이북지역, 호남지역, 영남지역으로 나눈다. 그 중 영남지역에 속한 17개 노회의 장로들의 연합체다. 총회에서 그리고 지노회에서 다 할 수 없는 연합사업들을 한다. 거기에 장로들의 모임인 만큼 친교와 장로들의 품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수련회 등을 하고 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로연합체가 정치성을 띄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성을 배제해야 한다. 순수하게 연합해서 지교회에서 하기 어려운 복음사업을 위해 그것이 잘 될 수 있도록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보통 이런 연합체에서 정치를 하고 총회 정치까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이 되면 안 된다. 순수한 장로들의 연합, 친교하고 장로들의 품위를 향상시키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리고 지노회에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다. 제가 남선교회 부울경협의회 회장을 하면서 지노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부담이 줄었다. 정치성을 배제하면 얼마든지 잘 될 수 있다. 정치가 끼면 화합이 어렵다. 서로 화합하면서 장로의 본분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Q. 말씀하신 장로의 본분이란 무엇인가?A. 장로의 본분은 지교회의 목사님과 동역하는 것이다. 목사님과 협력해서 교회를 안정되게 하고 교회가 교회답게 하는 것이 장로라고 생각한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지교회가 안정이 안 되면 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교회 목사님과 동역하고 그것으로 선을 이루는 것이 장로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Q. 교계에서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안다.A. 교단(통합) 노회와 총회를 위해 활동했다. 부산노회 남선교회 회장, 전국 남선교회연합회 회장, 남선교회 부울경협의회 회장, 부산노회 장로회 회장, 전국장로회 부회장, 부산노회 부노회장 등을 했다. 통합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회계, 총회 정치부 실행위원회 회계로 있었고, 치유와화해의생명공동체운동10년위원회 회계를 맡고 있다. 또 지난 2010년부터 부산성서신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내년에 은퇴를 한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A. 총회 선거관리위원회 회계를 할 때, 예전에는 후보들로부터 운영관리에 있어서 협력을 받아온 것 같았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회에서 주는 선거관리비용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타파하려고 했다. 실제로 타파했다. 오직 총회에서 지정된 선거관리헌금을 가지고 선거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부산성서신학원 이사장을 맡게 됐을 때 성서신학원을 폐쇄하려고 했던 시기였는데, 폐쇄를 막았다. 지금은 졸업생도 많고 잘 운영되고 있다. 이사장이 되자마자 이사장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내려놓았다. 이사장이 학사운영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오직 후원만 하고 모든 운영은 원장에게 맡겼다. 물론 좋은 교수들을 초빙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모든 일은 자기가 맡은 일에 따라 직분에 따라 하면 된다. 이제 시작하는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도 마찬가지다. 영남지역의 각 노회에서 좋은 인물들을 추천 받아 임원을 구성했다. 각자의 직무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추천받았고 그들을 모았을 때 회를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았다. Q. 장로님께서 교회 중심으로 살 수 있던 것 뒤에는 가족의 기도가 있었다고 들었다. ▲ 진장명 장로 가족 사진 A. 저는 거제도 어촌 출신이다. 믿음의 시작도 아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 때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가 목사님 딸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겠다고 한 약속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믿음 생활이 쉽지 않았다. 믿음이 심기지 않아 중년이 될 때까지 저도 아내도 힘들었다. 동아대 법대를 다닐 때 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그러면서 세속에 완전히 물들어갔고, 가정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때 아내가 열심히 새벽기도를 나갔다. 새벽기도를 위해 이사를 할 정도였다. 아내의 눈물의 기도가 지금의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안정적으로 해나가게 됐고, 그 은혜로 장로로 피택이 됐다. 항서교회를 오래전부터 다녔었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교회만 나가다 보니 당연히 늦게 안수집사가 됐다. 장모님과 아내 덕분에 변할 수 있었고, 교회 중심으로 살게 됐다. 그 후 좋은 분들을 만나 신앙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아내는 동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작년에 정년퇴임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줬고, 지금은 두 아들이 미국과 중국에서 박사가 됐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굳건히 지켜서 대대로 신앙이 상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Q. 내년이 은퇴다. 은퇴 후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A.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의 임기도 내년 2월까지고, 내년 12월에는 장로 은퇴를 한다. 여기까지가 내 임기로, 남은 시간동안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항서)교회에서 세운 해외 선교센터가 있다. 은퇴 후에는 해외선교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실 특별한 계획이나 욕심은 없다. 하나님께서 은퇴한 사람에 대해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항서교회는 올해 111주년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에서 약 10년 동안 선임장로로 아무 탈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앞으로도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밖에 없다. Q. 끝으로 영남지역장로회연합회 회원들과 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린다.A. 연합회 회장을 하는 동안 특별히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전임자들이 해 오신 것처럼만 하려고 한다. 경기가 어려워 밖에서의 협력을 받기도 어려운 시기다. 전임자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고, 억지로 과하게 무엇인가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화합하는 일은 한 사람만 한다고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동참 해주시고 또 격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6-02-25
  • [김양현 목사] 버니 신드롬(Bernie Syndrome)에 대한 단상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열풍이 심상치 않다. 그의 이름이 미국 정치의 핵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연일 그의 이름을 외치고, feel the bern(버니를 느끼라)이라는 구호가 회자된다. 그는 누구이길래 이렇게 뜨거운가? 버니 샌더스는 현재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강력한 상대자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과 함께 경합을 벌이고 있다. 작년 미국 대선 후보로 등록할 즈음 그의 지지율은 겨우 4%였다. 현재 그는 5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힐러리 클린턴과 경합세를 보이고 있다. 1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기엔 기적에 가깝다. 그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일까? 버니는 1941년 브룩클린에서 유대계 폴란드 이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브룩클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을 졸업했다. 시카고 대학 재학 당시 흑인 인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는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이 될 때까지 4차례의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그의 지지율은 고작 2% 안팎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었다. 이후 그는 무소속으로 1981년 작은 도시 벌링턴의 시장이 되었고 시민들은 그를 4선의 시장으로 지지했다. 이후 버몬트 주 하원의원으로 8선, 유일한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두 번째 회기를 보내고 있다.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버니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것은 2010년 상원에서 진행한 8시간 35분의 연설이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퇴장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연설을 감행했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버니가 8시간이 넘는 연설을 하면서 외친 주요 내용은 미국의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 월가의 부도덕과 탐욕을 지적했다. 미국 인구의 1%가 1억3천만 명의 재산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부도덕이며, 부자들에 대한 감세는 옳지 않다는 것을 외치고 있다. 월가의 수익에 대하여 정당한 세금만 매겨도, 고질적인 문제인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 대학생들의 수업료 해결, 가난한 이주민들의 주거 문제 해결, 최저생계비 해결이 가능하다고 외치고 있다. 물론 정확한 데이터와 논리로 주장하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있다. 버니 신드롬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우선 일관성이다. 버니는 어느 날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이 아니다. 정치에 처음 발을 내딛은 4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30여 년 간의 정치적 발언을 담은 영상을 보면 그가 동일한 메시지를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소신에 따른 발언을 해 왔다. 40여 년 간의 광야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고 그 광야의 시련이 그를 연단시켰다. 모세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또 하나는 그의 정치적 스탠스다.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섰다. 가난한 자, 이주민, 유색인,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정치를 해 왔다. 그는 정치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의 의정활동은 지역구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그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선지자들이 외쳤던 정의와 공의,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버니 신드롬을 통해 나는 교회를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는 버니와 같은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교회가 부흥하던 시절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던 때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졌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대로, 빵을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옷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그들의 편에 설 때 사람들은 교회로 다가왔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살아내셨던 삶에 다름 아니다. 오늘 교회가 버니 신드롬을 읽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들이 왜 그에게 열광하는지 깨닫는 지점에 교회가 할 일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詩를 읽고 또한 時를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16-02-25
  • [시내산] 아버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자녀! 그래서 자기 자신은 비록 어렵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사랑하는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땀 흘려 애지중지 모아둔 재산, 알토랑 같은 재산. 자식 위해서라면 초개와 같이 내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이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책망하기 보다는 말없이 묵묵히 속마음 알 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들이 우리사회에 많이 있어 따뜻하고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요즘 들리는 소식이 예전 같지가 않다. 배 아파 낳은 자식 도저히 키울 능력 없어 고아원에 맡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울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고 들었지만 저항할 아무 힘이 없는 자녀를 죽여 제 살덩이 같은 자식을 이곳저곳 마치 짐승 버리듯 버렸다는 믿기지 않는 뉴스를 보며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는 자식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사람이다! 아무리 살기가 힘들고 자녀 때문에 속을 썩는다 해도 참고 또 참으며 그 자녀가 올바르게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처신하며 자식을 키웠어도 아버지답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이런 못된 짓까지 하였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진정 아버지의 책임이 무엇인지 몰라서 저지른 악행일까? 아니면 악령에 미혹되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짐승으로 보여 저지른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긴 시간을 고뇌하였다. 지나간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너그럽고 인자한 분이셨다! 자식을 자신이상으로 사랑한 분이셨다! 자녀들을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노심초사하며 잘 키우려고 애쓰셨다. 밤이 되면 주무시기 전에 자녀들의 방부터 살피셨다. 더운지 추운지. 더울 땐 바람이 잘 통하게 만들고 추우면 아궁이에 불을 때 따뜻이 잘 수 있게 하셨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새벽부터 논밭을 일구시고 허리가 휘는 농사일 하면서도 자녀들 앞에서 힘들다 하지 않던 아버지! 그래서 우리들은 아버지 곁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고 행복했다. 이웃마을 품앗이라도 나가시면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학교가 폐하는 데로 들판을 달렸고 아버지를 만나 응석을 부려도 허허 웃으시던 분이셨다! 날 저문 들녘에서 잠이라도 들라치면 잠 깰라 걱정하며 피곤도 잊으신 채 어린자식 등에 업고 먼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자식들이 이 시대의 아버지일건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조부모와 자식 삼대가 같이 살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지극히 사랑했던 가부장적 시대가 무너지고 핵가족으로 변해버린 이 시대는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웃집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는 사회 참견하면 남의일 참견 말라 달려드는 세상이니 이웃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 철없는 아이에게 화풀이하고 사랑을 받고 또 받아도 부족할 어린아이에게 분풀이 매질하고 습관적으로 폭행하는 아버지가 적지 않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부모라면 내가 낳은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으로 길러야 할 것이다! 자식이 미운 짓을 해도 참고 또 인내하며 가르치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눈물로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못 생기고 가시 달린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식을 해할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위대하다! 자녀들의 기둥이며 삶의 터전이다 자녀들이 숨 쉬고 살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이 바로 아버지의 넓은 가슴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오피니언
    2016-02-25
  • [기독교 교양 읽기 ⑫] “그들을 죽인 후에도 바다는 더욱 침묵 지켜"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예수회 창설 회원 중 한 사람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1549년 일본에 도착해 2년 동안 교회를 개척하였다. 채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기독교인의 수는 30만 명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에 의해 포교가 금지되었고, 17세기 들어서는 일본 막부(幕府)와 지방 관리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기독교인을 색출하였다. 이때 사용한 방법이 예수나 성모 초상을 새긴 동판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미에(踏繪)’다. 기꺼이 밟거나 침을 뱉고 지나감으로써 배교(背敎)한 사람은 살려주었으나, 그렇지 않은 자는 갖가지 악랄한 고문과 함께 처형하였다. 특히 체포된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처형하기보다는 신도들의 고문이나 처형을 옆에서 지켜보게 함으로써, 배교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즉, 배교하면 고문 받는 신도들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거는 것이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후미에판’ 앞에 선 선교사에게 주의 음성이 들린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한 가톨릭 선교사가 배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침묵》 | 저자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로서,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원제 沈默. 홍성사, 2003(개정판). 13,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올해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침묵》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日, 총포에 더 관심있어 가톨릭 허용김길구 :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에서 일어났던 가톨릭 신자와 선교사들의 순교와 배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오늘에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60여 개국의 2억 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아직도 국가의 압제 밑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김현호 : 저번에 읽었던 《제자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죠. 존 스토트 목사는 타문화권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특성으로 인해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복음은 그 사회에 변화를 던지므로 도전에 직면합니다.김수성 :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가톨릭을 박해한 배경이 무엇인지가 우선 궁금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이었던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軍旗)를 사용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김길구 : 우리 천주교가 아래로부터의 선교(전교)였다면, 일본은 ‘위로부터’였습니다. 포르투갈로 부터 전래된 두 정의 철포(화승총으로 개량)와 화약제조법이 전투의 양상을 바꿔 일본 전국 통일의 초석이 되었듯이 앞선 문물 교류로 인한 막대한 이익, 강력한 불교 세력의 견제, 규슈지방 다이묘들의 가톨릭 포용정책,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역사의 아이러니인 하나님 호칭의 오역으로 불교의 한 종파로 오해한 점 등이 초기 선교의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 후 그런 요인이 해소된 것이죠.김현호 :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듯이, 당시 일본에서는 가톨릭과 신교 간의 선교 대립,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무역 갈등 등 기독교인 간의 분열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열상으로 인해 일본 권부의 신뢰감을 잃게 된 것도 기독교 박해의 한 원인 아닐까요?김수성 : 당시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선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한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치하에 박해가 본격화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한편으로 보면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가 교토시대와 결별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기존 불교 세력의 불만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였던 고시니는 도쿠가와의 집권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장수이기도 합니다. ▲ 일본 막부는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동네사람 모두가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성화가 새겨진 동판이나 목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를 ‘후미에’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보여줘김현호 : 17세기 들어서는 정말 갖가지 고문이 자행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선교사를 배교시키기 위해 옆에서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는 기꺼이 ‘후미에’를 한 신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관념이 아니라, 자기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신자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현장에서.김길구 :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런 고난과 죽음에도 ‘침묵’을 지키는 하나님. 그러나 후기에 나와 있듯이, 소설과 달리 실제로는 선교사들이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의 ‘현존’은 나치 치하의 본회퍼 같은 현대 신학자들의 고민이기도 했지요.김수성 : 작가는 일본에서 가톨릭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농민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평생 굶주리고 비참하게 살아왔던 그들에게 선교사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나 죽음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었죠. 선교사가 숨어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신도가 바다에서 순교합니다. “지금 일본 신도의 순교는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입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세월호 침몰과 아직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김수성 :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그들이 나를 살렸네》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본에 유독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구 기독교가 하나님의 부성(父性)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는 일본인들에게 모성(母性)도 가진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본의 어떤 속담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네 가지는 불, 지진, 벼락, 그리고 아버지이다.’김현호 : 결국 이 책은 인간애를 통한 이웃사랑이 궁극적인 신의 모습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참사랑은 타자를 위해 배교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지점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김길구 : 한편, 이 소설과 달리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의 순교는 훌륭한 신앙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을 앞두고 이 책을 보면서 양화진에 안치된 초기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이 더욱 고결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일본화한 그리스도인 지금도 존재해김현호 :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교자가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만 해도 3,792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에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대로 복음화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김수성 : 작가도 배교한 선교사들의 입을 빌려 강조하듯이,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는 ‘늪’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종교는 물론이고 모든 문화를 ‘일본화시키는 늪’이라고 할까요.김길구 :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된 내용입니다만, 필립 얀시에 따르면, 19세기 일본 정부가 나가사키에 가톨릭성당 한 곳을 허용했을 때 숨어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240년 동안 비밀리에 모여왔던 ‘가쿠레 기리시탄(隱れ 切支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전례서 없이 존속해온 결과, 그들의 신앙은 가톨릭, 불교, 애니미즘, 신도(神道)의 기괴한 혼합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결사체가 있다고 합니다.김현호 :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관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죠. 일본 권부가 선교사를 배교시키는데 힘을 쏟는 이유는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이미 일부 지역의 농민들이 몰래 받들고 있는 하나님은 가톨릭교의 하나님과 비슷해도 사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었다고.김길구 : 이 소설은 신학교 다닐 때 필독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몰입하도록 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이런 문학적 성취가 세월과 종파를 초월해 꾸준히 읽게 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김현호 : ‘내가 죽으면 관 속에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의 소설책을 넣어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작가가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합니다.김길구 : 다음에는 김기석 목사가 쓴 《흔들리며 걷는 길》(포이에마, 2014)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민음사《예수양 주기철》 / 김인수 / 홍성사《십자가》 / 김응국 /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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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시사칼럼] 2월 혁명
    부산 출신 임영준 시인은 2월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제 / 한 꺼풀 벗고 / 당당히 나서 볼까 / 핑곗김에 둘렀던 / 장막도 걷어야지 // 햇살 마중 나가던 / 새순의 속삭임이 / 불을 지폈다” 얼어붙었던 겨울 땅을 뚫고 새순이 돋는 것을 보고 시인은 ‘2월 혁명’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2월의 속성인지-역사 속에서도 2월은 혁명의 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848년 2월 22일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공화정을 세웠고, 1917년 2월 22일 러시아에서도 파업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1919년 2월 8일,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일본의 수도 동경 한복판에 한국인 유학생 수백 명이 모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를 쟁취한 세계 모든 나라 앞에 독립을 성취할 것을 선언한다!” 3.1 운동보다 한 달 앞선 2.8 독립선언입니다. 일본 경찰들이 들이닥쳐 일단 강제 해산을 당했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2월 12일 오전 YMCA 강당에 50여 명의 학생들이 다시 모여 독립 운동을 협의하다가 주동자들이 검거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2월 한 달 내내 학생들의 독립 운동이 간헐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광수에 의하여 국내외에 알려졌으며, 결과적으로 2.8 독립 운동은 다음 달에 벌어진 3.1 독립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97년 전 적들의 심장 한복판에서 일어난 2월 독립 운동은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 선포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학생운동의 본산이나 다름없던 YMCA를 거점으로 독립 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 또한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1928년 1월 28일 이용도는 협성신학교 제14회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목회 초창기 그는 ‘이성적인 전도인이요 문화적인 교역자’였다고 합니다. 결국 어느 날 뜻한 바 있어 그는 이른바 ‘신앙 혁명’에 들어갑니다. 박재봉이라는 청년과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가 10일 간 불식불음(不食不飮)의 금식기도를 드리고 하산했습니다. 이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산기슭이나 시냇가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기도했고,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이나 언제든지 때를 가리지 않고 엎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 3시쯤 되어 성전에 나갔다가 성령의 감동이 그의 영혼을 감쌌다고 합니다. “아버지여 나의 혼을 빼어버리소서. 예수님께 미치기 전에는 주를 온전히 따를 수 없사옵고 또한 마귀와 싸워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그날 밤 마귀와 사투를 벌이고 동리 밖까지 마귀를 쫓아내고 할렐루야를 부르며 돌아왔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살았던 젊은 목회자 이용도는 그렇게 내적인 신앙혁명을 이루기 위해 고투를 벌였고, 마침내 울분을 품고 살았던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도전을 던지면서 영적인 회개와 쇄신을 부르짖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 세상에 오셔서 얼어붙은 땅을 깨고 굳어버린 마음들을 녹이셨습니다. 전쟁과 공포와 학대와 차별이 횡행하던 세상에 오셔서 평화와 위로와 연합과 통일의 혁명을 이루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들은 언제 어디서든 동토의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힘들고 난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용도처럼 필요하다면 신앙의 내적 혁명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해야 할 때가 바로 이 때가 아니겠습니까? 기독청년들처럼 필요하다면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기도라도 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2월입니다. 새순 같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조국의 산하에 교회마다 곳곳에 불꽃처럼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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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목회자칼럼] 나의 마음에 울림을 준 기도
    WEC국제선교회(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는 영국의 C. T. Studd에 의해 1913년에 창립된 선교단체인데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다. Studd는 귀족출신, 캠브리지대학의 수재, 유명 크리켓 운동선수로서 졸업 후 출세의 길이 확실히 보장된 청년이었다. 어느 날 대학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했고 선교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많은 유산, 직책, 명예 등 출세가 보장되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사의 길로 나서려 할 때에 이런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교수가 스터드에게 말한다. “여보게, 그것은 자네에게 너무 지나친 헌신이 아닌가?”, 그 말에 스터드 청년의 대답은? “교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 분을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수 없습니다.” 그 이후 그의 고귀한 믿음은 고귀한 삶으로 표현되었다. 많은 유산을 상속 받을 그였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10년 동안 사역하다가 건강 악화로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선교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리고 50살이 넘어선 어느 날 어느 문에 새겨진 “식인종은 선교사를 원한다”는 글귀를 보고 이번에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선교현장에서 헌신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우리 가족이 영국에 살 때에 나는 런던 근처에 위치한 WEC국제본부를 여러 차례 방문한바 있다. 귀족이 살던 고풍이 찬란한 성과 수만평의 넓은 대지는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이 팍 트였다. 기다란 복도에는 선교지에서 사역하다 순교한 WEC선교사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몇 주 전 주일오전예배에 뜻밖에 한국WEC국제선교회대표 박경남, 조경아 선교사 부부가 참석했다. 두분 모두가 의사출신으로 언젠가 선교사로 강한 부름을 받고 위험천만한 아프카니스탄에서 5년 가까이 사역하다가 2011년부터 대표로 섬기는 분들이다. 국제WEC는 80여 개국, 2200여 명의 선교사가 있고, 한국WEC는 60여 개국, 460여 명의 선교사가 소속돼 있다. 몇 주 전에 나는 믿음의 친구인 한철호 선교사(선교한국-미션 파트너스 대표)로부터 박 선교사 부부가 7주간 안식월을 갖는데 거처할 처소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교회 집사의 조용하고 아늑한 별장을 연결시켜주었다. 그곳에서 안식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런데 사전에 연락도 없이 먼 거리를 마다않고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다. 마산재건교회는 설립70주년을 맞이하여 2016년 표어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요21장, 계2장)로 정했다. 주일예배의 설교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1)”(요21장)로 주님께서 베드로의 잃어버린, 식어진 처음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는 사건이었고, 다음 주일설교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2)”(요계2장)로 주님께서 에베소교회의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강한 권고의 말씀이었다. 예배 후에 담임목양실에서 박 선교사 부부와 교회 성도 몇 명과 함께 기쁨의 교제시간을 가졌다. 교제 후에 나는 사모인 조경아 선교사께 기도를 부탁드렸다. 기도 가운데 조 선교사의 이런 기도가 나의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주님, 매일의 삶을 시작할 때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그런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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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가정칼럼] 세상을 투명하게 살아라
    큰아들이 고등학교 일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를 위해 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들이 식당 입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제 엄마는 먼저 들어가라는 눈치였다. “아빠,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여기서 이야기할래? 무슨 얘긴데?” 아들의 얼굴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아빠! 저를 용서하실 수 있겠어요?” “무엇이든 용서 못할 게 없지!”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범하게 대답했지만 무슨 사고를 쳤나 내심 걱정스러웠다. “아빠! 저, 음란 사이트에 세 번 들어가 봤어요.” 아들의 고백은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이 한 번쯤 빠져드는 고민이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심각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성적 호기심이 큰 청소년 시절에 흔히 있는 문제이므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죄책감을 덜어줄까 생각하는데,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아들의 고백을 들으며 내 속으로는 뜨끔했다. 아들은 세 번 봤다고 했지만 나는 그 이상 보았을 것이다. 그런 고백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아빠는 너보다 더 많이 봤지만 이야기하지 못했구나. 우리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자. 앞으로 안 보면 될 거 아냐.” 이렇게 말했다면 아들이 나를 멋지고 화끈한 아빠로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솔직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나는 내 자존심과 체면을 차리느라 훈계조로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이제 그것으로 끝내라.” 아들은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나는 당황한 나머지 내가 원치 않는 답이 튀어나왔다. 평소에 무엇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해놓고 정작 나는 아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탈의 즐거움을 맛보느라 하지 말라는 짓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 몰래 친구들과 술집에도 가보고, 친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집단폭력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창피함을 무릎 쓰고 솔직하게 고백한 아들을 보면서 나는 세상살이에 대해 한 수 배운 느낌이었다. 뿌듯하면서도 한편 으로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부모 자식 간의 기강이 유지되던 시대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지도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스승으로 여기며 따라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아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다. 그날 나는 아들에게서‘용기도 힘’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용기는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진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법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당연히‘거짓말하지 말라’는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거짓말이 더 많고 심각하다. 거짓말이 많은 사회일수록 거짓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강도가 높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감화가 자식에게는 두고두고 교육적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위압적 가르침보다‘우리 모두 투명하게 살자’고 말한다. 시간에 투명하고, 장소에 투명하고, 생각에 투명하자는 것이다. 가족에게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항상 알려서 시간과 장소에 투명한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함으로써 생각에 투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생각에 투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 투명하기 위한 노력은 결국 인격함양이라는 자기계발의 단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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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은혜의 말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장 13~17절)
    하나님 앞에서 반듯한 사람, 하나님과 통하고 가깝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그리고 신앙생활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의롭다고 합니다. 복음이 무엇일까요?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다이나마이트, 헬라어로는 두나미스, 능력. 복음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시기 때문에 만남과 만짐과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쳐서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는 순간 의인의 반열로 올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과 함께 의인의 반열에 딱 서기 때문에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사람 때문에 요동치지 않고 주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반열에 서면 어떻게 될까요? 베드로전서 3장 12절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신다. 창세기 5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기에 온 세상이 물심판을 당할 때 노아 한 가정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합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서는 의인 한 명이 없어서 예루살렘이 무너집니다. 출애굽 할 때 가나안을 정탐하러 간 12지파 대표 12명 중 10명은 암담한 현실만 바라보았기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간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 때문에 속상해 하지만 하나님은 의인을 향해서 집중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25절에 의인의 자손은 버림을 당하거나 빌어먹는 법이 없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지 않습니까? 시편 12편에 의인의 성장이 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한다. 믿음의 사람은 세월이 흘러가면 거목이 되고 그로 인해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 집니다. 하박국 2장 4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악인이 잘되고 승리하는 것이 맞습니까 했을 때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 말씀 하십니다. 환난과 고통의 때에도 의인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눈에는 안 보이고 손에는 안 잡혀도 오직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신앙인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 때문에 상처 받거나 흔들리지 말고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때문에 흥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저 말로만 외치는 믿음이 아니고 기도와 찬송 중에 믿음이 담대해 지도록 믿음이 굳세어 지도록 믿음 찬 삶을 가지고 오직 믿음으로 감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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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성공칼럼] 내적인 교회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이 땅에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이 땅의 생명이며 천국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교회가 위기라는 것은 참 무서운 말이다. 이 땅의 교회란 주님을 시인하여 주님사랑이 근원과 목적과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인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셋 중에 한 가지라도 없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며 생명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님을 시인하고 사랑하는 것이 없거나 혹은 주님을 사랑한다면서 말씀을 경멸하고 무시한다면 또는 말씀을 사랑한다면서 거짓말하고 쾌락을 추구하고 악을 행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겉과 속이 있다. 겉은 그릇이고 속이 진짜인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은 겉에 속하고 진리대로 사는 것이 생명이다. 그리고 회개는 깨닫고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그릇에 해당되고 실제로 깨달은 대로 사는 것이 생명인 것이다. 또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생명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교회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건물은 천국의 통로가 되지 못하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노후 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보여주는 속 모습이 진짜 교회인 것이다. 사람들의 속 모습은 어떤가? 주님을 사랑하는가? 사람을 사랑하는가? 진리대로 살고 있는가?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과 사람에게도 사랑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진짜 교회의 내면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왜 위기일까? 그 원인을 찾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말씀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말씀을 들으면 행동으로 옮겨야하는데 말씀을 듣는데만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매일 새벽예배 때 말씀을 듣고, 수요일, 주일 아침과 오후 또 방송 혹은 주중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더 많게는 매일 큐티를 하면서 말씀을 듣고 행동하려고 하면 또 듣게 되고, 공부할 때마다 깨닫고 새로 행동할 것들이 생겨나서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은 멀리하게 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지 않거나 말씀을 공부하는 것에 몰입하거나 심지어는 말씀을 수단삼아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하면 결국에는 말씀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뱃살이 많이 나왔다고 하자. T.V나 인터넷 혹은 책에서 뱃살을 쉽게 빼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하자. 뱃살이란 꾸준히 노력하지 않고는 빠지지 않기에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게 된다.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뱃살 빼는 방법을 누가 말하면 “그 방법 나도 알아”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려워”하면서 그 방법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육체에 대한 진리를 무시해서 진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사장이 비서나 직원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을 했다하자. 그런데 명을 들을 때마다 “예”하고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심한 벌을 받든지 쫓겨나게 된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일 수 없어 은혜를 베푸시고 유예기간을 두신다. 성경은 마지막 날 심판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심판이란 내가 진리를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리대로 살았는가에 대한 저울을 달아보시는 것이라 생각된다.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다.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살지 않으면 진리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 그러다가 싸움을 하기도 한다. 내 진리가 옳다고 서로 주장하다가 서로 원수가 되게 되어 사랑과 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위기의 한국 교회와 교회 속에 있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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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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