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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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자의 삶을 사는 박차희 권사
    - 40년 공직생활동안 복음전파- 여성최초 청백 봉사상 수상- 사하시니어클럽에서 새로운 도전... 일자리 창출 부산시 1등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몸소 실천하는 이가 있다. 40년 공직생활에서도, 공직에서 은퇴 한 후 삶에서도 오직 복음 전파를 위해 살아가는 박차희 권사(거제교회)를 만나보았다. ㆍ크리스천 향기를 드러내는 공무원박차희 권사는 공무원 출신이다. 지난 2013년 12월 연제구청 자치행정국장으로 은퇴하기까지 4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해 왔다. 3급 고위 공직자로 은퇴했지만, 대부분의 공직생활을 연제구청에서 일을 해 왔다. 이유는 단 하나, 섬기는 거제교회와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나 성도들의 민원 해결에 누구보다 앞장 서 왔다. 연제구 소속 상당수 교회들이 구청의 행정적인 지원과 민원 해결에 박 권사의 도움을 받아 왔다. 주민복지국장 시절에는 지역 교회 5곳의 어린이집 창설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준 바 있다. 박차희 권사는 “시청에서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시청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여를 안한다. 큰 밑그림만 그리기 때문이다. 반면 구청은 주민과 직접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대면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용이하다. 그래서 교회와 가까운 연제구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박 권사는 가는 곳마다 스스로 ‘예수쟁이’임을 드러낸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1977년 동래구청에서 일을 할 때는 부산시 최초로 기독신우회를 창단했다. 부산시청 기독신우회가 다음 해(1978년)에 창단 됐을 정도. 이때 신우회 창단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 박 권사다. 이후에도 가는 곳마다 신우회를 창단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에 집중해 왔다. 연제구청에서도 그러했고, 은퇴 후 현재 일하고 있는 사하시니어클럽도 목회자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 구청의 우상숭배하는 모습에도 단호했다. 국장시절 연제구청에서 새해 첫날 고사를 지내는 관습도 박 권사의 노력으로 폐지됐다. 구청장에게 끊임없이 우상숭배이며 잘못된 관행이라며 개선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연제구청 이위준 구청장이 “박 국장, 이제 우상숭배 안 할께요”라고 손을 들 정도. 내부 공무원들과 지역 유지들의 눈치 속에서도 구청장이 이같은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박 권사의 기도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ㆍ여성최초 청백 봉사상 수상박차희 권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전도자 스스로가 깨끗하고, 모범적이며 헌신하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박 권사는 “내 삶이 엉망인데 어떻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영혼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이 하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 안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박 권사는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백 봉사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1977년 제정된 청백 봉사상은 청렴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공정하게 행정발전에 기여하고 주민에 헌신하는 전국의 5급 이하 지방공무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제18회 청백 봉사상 대상에 박 권사가 수상했다. 이전까지 여성공무원은 수상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공무원 입장에서는 박 권사가 개척자인 셈이다. 또 동래구청이 자체 제정한 동래구청 청백리 상 초대 수상자도 박 권사의 몫이었다. ‘복음’을 담을 그릇은 깨끗해야 한다는 박 권사의 소신이 결국 세상에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ㆍ새로운 도전...2014년 4월 박차희 권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60세 이상 장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을 하는 시니어클럽 관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박 권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절 인도하셨어요. 처음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기도하면서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며 하나님께서 장년층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박 권사가 관장으로 부임하게 된 사하시니어클럽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부임 전 190여개 일자리가 현재는 500여개 일자리로 늘어났다. 2년 만에 2.5배가 늘어난 것이다. 해마다 지역교회와 더불어 김장나눔행사도 갖고 있다. 첫해 1천 세대, 지난해 2천세대로 늘어났고, 금년에는 3천세대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권사는 “노인 일자리 창출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근 교회와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사업설명회를 하고, 아파트 각 가정마다 전단지를 배부하며 사업을 확대해 왔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우리 직원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사하시니어클럽은 청춘카페, 은빛나눔일터(공동작업장), 카안심플러스사업단(주차장+세차), 웰빙새싹사업단(각종 채소류 각 학교 공급), 근조기배달사업단 등을 출범했다. 부산지역 시니어클럽 중 가장 많은 사업단과 인원수를 자랑하고 있다. 박 권사는 “저의 관심은 오직 복음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로 불러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하시니어클럽을 위해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며 끝 인사를 했다.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아온 박차희 권사. 그녀의 전도자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옥수석 담임목사가 본 박차희 권사 박차희 권사님은 우리나라의 공직자로서 훌륭하고도 자랑스러운 이력을 가진 분으로 살아오셨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나라의 전도자로서 더욱 아름답고 충성된 삶을 살아오신 모범된 그리스도인이십니다.권사님은 공직자로 계시는 동안 직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로 늘 섬기는 삶을 사셨고,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꼭 예배당으로 인도하여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전도사역을 쉬지 않고 살아오셨습니다. ‘매 주일마다 한 사람을 전도하겠다’ 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오직 전도사역에 매진하셨으며, 월요일이 되면 ‘다음 주일에는 누구를 데리고 올까?’ 하고 기도하면서 생각하는 분이셨습니다. 한번은 토요일 저녁이 되어도 인도할 사람이 없어 밤 9시까지 거리에서 전도를 하셨다고 합니다.총동원 전도주일이 되면 최다수 전도상은 항상 도맡아 받으셨으며, 매년 성탄절에 수여하는 최우수 전도상도 항상 받으셨습니다. 2년 전부터는 연제구장애인협회 이영숙 회장님을 전도하시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고, 30여명의 장애인들을 전도하여 장애인 부서를 만들어 매 주일마다 점심식사 후에 그들을 모아서 성경공부와 특강 등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박차희 권사님은 스스로 복음을 체험하시면서 복음과 함께 살아가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간증을 통하여 남들에게 전파하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오직 전진 매진하시는 이 시대의 충성스러운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6-07-21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17 : 감정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섬세하게 직조된 기쁨과 슬픔은 신성한 영혼을 위한 안성맞춤의 옷, 모든 비탄과 갈망 아래로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중 일부 1. 서로 잡아먹는 비굴한 울혈(鬱血)사회와 감정의 윤리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울혈(鬱血)사회’이다. 국민이 화병에 걸린 사회라는 것이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아니 나는) 쉽게 화를 내고, 남 탓을 일삼지 않는가? 나아가 신문 사회면(아니 1면)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르는 증오범죄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화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윤평중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성과 부당한 대우”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사, 2014)에서 우리 시대 가장 급진적이고 예외적인 지식인인 박노자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를 ‘전례 없는 더러운 시대’,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적 연대 의식은 증발하고, 저마다 자신과 몇 안 되는 피붙이들의 잇속만 추구하고,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제 ‘인간이 사라져가는 곳’이며,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유신 때보다 더한 ‘공포를 먹고 사는 사회’라고 본다. 박노자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1/2』(한겨레출판사, 2001/2006)에서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뿌리 깊은 전근대성도 질타하고 있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라는 교집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폭력을 가르치는 군사문화, 굴종과 타협을 강요하는 대학 사회의 현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의 선 밖으로 내몰고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 등은 박노자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따라서 박노자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제도적·사회적 폭력에 대해 울부짖고 있다.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말한 고 신영복 교수의 말은 지식과 감정과 실천의 문제를 잘 요약한다. 감정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칸트(I. Kant)의 냉철한 이성과는 달리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자고 이성을 주장했던 스피노자(B. de Spinoza)는 ‘이성의 윤리학’이 아니라,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했다.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말이다. “우리들의 정신이 큰 변화를 받아서 때로는 한층 큰 완전성으로, 때로는 한층 작은 완전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정념(passiones)은 우리에게 기쁨(laetitia)과 슬픔(tristitia)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 즉 우리는 타자를 만났을 때 기쁨과 슬픔 둘 중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자신이 더 완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반대로 자신이 불완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전자를 기쁨의 감정이라 하고 후자를 슬픔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슬픔과 기쁨이라는 상이한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면, 슬픔을 주는 관계를 단절하고, 기쁨을 주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 인간의 행복한 삶일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감정의 윤리학이 기쁨의 윤리학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 낙타, 사자, 어린아이 2. 르상티망의 낙타와 저항하는 사자 스피노자는 분노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분노(indignatio)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다.” 좀 더 명료하게 말한다면, “우리와 유사한 대상에게 불행을 준 사람에 대해 분노한다.”라는 것이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y)의『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라. 그리고 그 돈의 도움으로 나중에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이나 바퀴벌레의 목숨, 아니 그만도 못한 목숨이야. 남의 목숨을 좀먹고 있거든.” 『죄와 벌』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분노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소냐라는 창녀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분노는 타당한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한 인간을 단죄할 수 있는 권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라는 냉혹한 사회 구조를 보고 그것을 향한 비판적 실천으로 나가지 못한 시대적 한계도 포함한다.니체(F. W. Nietzsche)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에 대한 약자의 격정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불렀다. 사전적 의미로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한, 분노,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진정한 선이나 삶의 가치를 모르는 불쌍한 인간’이라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인류는 원래 도덕적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행위의 기준은 고귀와 비천이라는 미적 가치관뿐이었다. 강자에 대한 반감이 이러한 가치관을 전도시켜 이른바 도덕적 선악의 관념이 생긴다. 그리고 그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심리가 바로 르상티망”이라고 한다. 기독교 도덕관의 핵심은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약자의 르상티망을 엿볼 수 있다. 풍요의 신(이집트 태양신 라와 가나안 풍요의 신 바알과 바벨론의 신 마르둑까지)으로 상징되는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의 신과 로마제국의 힘과 권력과 같이 맞설 수 없는 강자에게 학대당한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한 채 르상티망에 빠져 있는 것이 기독교 도덕관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예수는 약자들에게 강자를 악인으로 간주하고 강자를 정의를 모르는 자라고 불쌍히 여김으로써 정신적 우위에 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것이 예수가 약자에게 베푼 도덕관의 정체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기독교)의 도덕관은 르상티망을 바꿔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기독교인들은 근원적인 원한과 분노에서 도망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극복은 무엇인가?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 과정을 ‘의무와 복종을 상징하는 낙타의 단계’, ‘부정과 자유의 정신을 뜻하는 사자의 단계’, ‘망각과 창조를 의미하는 어린아이’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 낙타의 정신은 금욕과 복종이다. 낙타는 전통과 명령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져야만 그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렇게 낙타처럼 노예의 근성을 쫓아 무거운 짐을 지고 들어가는 길은 사막이다. 영성의 길이 아닌 노예의 길이 사막인 것이다. 낙타처럼 살면 삶이 사막화된다. 겁이 많은 낙타는 두려움 때문에 복종한다. 이렇게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살면 스스로의 욕망이 좌절되고 자존심이 상처를 입어서 그 정신이 르상티망이 되는 것이다. 무서움 때문에 무릎을 꿇고는 살지만 그 속에는 원한의 감정이 쌓여 간다. 이 르상티망이 자신에게는 죄의식으로, 타인을 향해서는 공격적인 분노로 나타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고 덮어씌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것으로 자기 방어를 삼는다. 니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타의 정신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니체의 사자의 정신 단계에 이르면, 정신은 용감하고 자유로워진다. 인습을 비판하고 불의에 저항한다. 니체는 “황량한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이곳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따라서 사자는 전통의 질서에 저항하며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옛 주인 되는 용과 대결한다. 사자는 “사물의 모든 가치는 나에게서 찬란하게 빛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자는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또한 무엇을 획득하려고 무릎을 꿇는 법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자가 아무리 자유를 쟁취해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자는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삶을 긍정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부정의 정신이 긍정의 정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분노에서 죄의식으로 넘어갔다면, 니체의 사자의 단계는 자본주의에 저항한 맑스(K. Marx)의 모습을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투영한 것이다. 그러나 맑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3. 자긍심의 아이 스피노자는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에 관해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라고 정의한다. 즉 되돌아본 자신의 모습이 긍정적일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아름답고 매력적인지를 확인할 때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낙타 같은 사람들만 많으면 비겁한 세상, 혹은 정신병동이 된다. 그래서 사자의 정신 단계로 변화되어야 하지만 사자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는 못한다. 자유와 창의적인 존재들은 있지만 조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에 의하면 아이의 정신 단계가 되면 인생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저항하고 투쟁에 주력하는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자는 비판하고 부정하지만 아이는 자기와 세계를 긍정한다. 이러한 아이의 단계는 순수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순수이고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다.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움직임이며, 거룩한 긍정이다.” 아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몸을 그대로 본다, 아이는 르상티망을 망각한다. 아이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언제나 새로운 시작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발명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좇아서 자발적으로 놀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이러한 아이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고,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4.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니체가 바라본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 더 이상 서로 잡아 먹기 위해 싸우는 세상이 아닌, 비굴한 울혈사회가 아닌 기쁨의 세상, 기쁨의 윤리학, 나아가 기쁨의 신앙은 도대체 가능할까? 앞서 언급한 박노자는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제시한다. “노조의 지원을 받는 좌익 정당들이 국회 의석을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나라, 공산당의 기관지까지도 국고 보조금을 받아 발간하는 다양성의 나라, 입사 때 여성이나 장애인이 ‘정상적인 남성’보다 더 유리한 평등의 나라, 노동운동가들이 감옥에 잡혀가지 않는 나라, 학생들이 교수를 만날 때 노르웨이처럼 동등한 인간으로서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는 나라,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각종 원조를 제공하는 일이 덴마크처럼 지성계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가 될 수 있는 나라, 여성들이 손님의 냉면을 잘라주는 ‘음식집 아줌마’ 정도의 역할밖에 맡지 못하는 나라가 아닌’ 그런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박노자는 자본의 한계를 직시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집권만을 위한 정당 운동이 아닌 폐허를 딛고 일어나, ‘인간으로 다시 거듭나고 뜻을 되찾기 위한 실존적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에서 발까지가 엄청 먼 여행이 될지라도,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의 힘’만 있다면 못 이룰 것도 없는 것이다 “새로운 참사가 계속 일어나도 아무런 투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결국 역사 앞에서 커다란 죄를 짓는 일일 것”이라는 말에 (최근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메르스, 개성공단 폐쇄, 노후원전 재가동과 신규원전 건설, 생화학 세균무기 쥬피터 프로젝트 실시, 사드 설치 참사 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헤게모니 이론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는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고 했다. 합리성이 아닌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딱 맞는 말이다. 그람시는 “소수의 혁명 보다는 다수의 조금의 혁명이 더 혁명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람시의 다음의 말에서 우리는 낙관을 발견한다.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에 나는 조용히 다시 내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즉 사람은 그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07-21
  • [시사칼럼]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여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이 있으니 바로 복날입니다. 어느덧 초복을 지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중복·말복에다가 8.15 광복과 9.28 서울 수복을 합쳐서 오복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깁니다. 보신탕 더 잡숫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고구려 벽화에 개 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중국 명나라 시대 편찬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책은 개를 쓰임에 따라 사냥개(전견, 田犬), 집 지키는 개(폐견, 吠犬), 잡아먹는 개(食犬) 세 가지로 나누고, 식용개는 구(拘)라는 단어를 많이 써 사냥이나 집 지키는 견(犬)과 구별했습니다. 보신탕 대용으로 먹는 삼계탕도 역사가 만만치 않습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이야기에 벌써 닭이 나오지 않습니까? 추어탕은 고려 말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전부터 서민들의 음식으로 각광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절기상으로는 초복이었던 한 주간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많은 주간이기도 했습니다. 1509년 7월 10일, 종교개혁가 존 칼빈(John Calvin)이 태어났습니다. 1789년 7월 14일, 구체제(Ancien regime)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prise de la Bastille) 습격 사건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7월의 이 한 주간을 가슴 아픈 사건으로 얼룩진 주간으로 기억하게 생겼습니다. 7월 14일 밤 프랑스 니스(Nice)라는 도시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일축제가 열려 해변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트럭 한 대가 나타나 축제 현장을 그대로 돌진해서 무방비로 있던 사람들을 덮쳐, 아이들 포함한 84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태입니다(17일 현재). 7월 15일 밤 터키에서는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불과 하루 사이에 265명이 사망하고 144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대부분이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칠 수는 있지만, 무더위 속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가 없겠습니다. 일찍이 성(聖)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 또한 이런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여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종교의 이름으로 박해와 살육이 자행되고, 교권은 타락했으며, 교회는 날로 세속화되어 가던 시절입니다. 한 사람의 절규에 찬 기도였지만, 당시 교회와 세상에 주는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참극들을 바라보면서, 어째서 이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납니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라고 하셨고,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에 빛이라”(요 9:5)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혼탁합니다. 테러와 전쟁과 억압과 분노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이 그 누가 있겠습니까? 그저 주님 앞에 기도할 뿐입니다.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주님, 이 캄캄하고 혼탁한 세상에 평화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대신 평화의 광채를, 죽음의 음침한 기운 대신 생명의 광선을 내려주소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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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신천지 회심자] “14,4000과 육의 영생을 소망하는 친구들, 마음이 아프다”
    Y양은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다.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평범한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Y양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중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을 따라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 4개월간 일주일에 2번 정도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갔다. 점점 이상하다고 느낀 Y양이 가기 싫다고 말하자 “오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겁을 줬다. 그때 우연히 한 상담사를 알게 된 Y양은 이 사실을 상담사에게 털어놨고 그곳이 대순진리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담사 덕분에 대순진리교에서 나올 수 있게 된 Y양은 그 상담사가 마치 자신을 구하러온 천사처럼 느껴졌다. 이후 상담사와 만나며 자연스럽게 성경공부를 하게 됐고, 상담사가 소개해준 센터에 들어가 6개월 과정으로 말씀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곳이 신천지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Y양은 ‘드디어 진짜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Y양은 신천지에서 말하는 144000에 들고 싶어 최선을 다했고, 몸은 힘들지만 행복감을 느꼈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자원해서 찬양인도와 대표기도를 맡았고 궁금한 것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물어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어느 날 Y양의 부모님은 딸이 신천지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부모님의 권유로 상담실을 찾게 됐다. 신천지에서는 상담실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부모님을 이길 수 없었던 Y양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다 반박하고 이기겠다”며 스스로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자기 전에는 항상 신천지의 하나님께 “제발 사단의 소굴에서 지켜주시고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상담 첫날, Y양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기죽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담을 받을수록 점점 신천지의 오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실상이 바뀐 것들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상담소는 돈 한 푼 받지 않았고 거짓말이 아닌 사실을 증명했는데, 신천지에서는 그 반대라고 가르쳐줬었다. Y양은 왜 신천지에서 상담소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상담실에 가면 신천지의 모든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Y양은 서면을 지나다 신천지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신천지센터 동기를 본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 Y양은 기분이 이상하고 무서웠다. 만약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면, 자신도 거기에 서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Y양은 기적적으로 신천지에서 나왔지만 144000명과 육의 영생을 소망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친구들이 신천지를 나올 수만 있다면 Y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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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인터뷰] 고신대학교 신학과 이상규 교수
    Q. 이번에 초기 기독교 역사를 담은 책 ‘초기 기독교와 로마사회:로마 제국 하에서의 기독교’를 출간했다.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A. 기독교 역사 가운데 초기 3세기, 첫 300년 동안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책이다. 기독교가 생긴 후 로마 제국 하에서 기독교가 어떠했는지는 제일 중요하고 재밌는 문제다. 로마 제국과의 대립, 정치적 탄압, 문화적 갈등 그리고 다신교적 상황에서 기독교는 유일신으로 어떻게 정체성을 드러냈는지에 중점을 뒀다. 지금까지 초기 3세기 역사를 주로 교회사적, 신학적으로 주로 접근했다면, 이 책은 로마 사회사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은 어떤 신분이었는지, 당시에 중요했던 신분구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사회사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 외 초기 3세기의 종교적 갈등문제, 기독교 교리형성, 기독론 등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애착이 가는 책이다. Q. 기독교 초기 3세기의 로마 제국의 종교적 상황은 어땠는가?A. 당시 로마 제국은 어느 특정 종교가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종교다원사회였다. 종교의 자유는 로마 황제와 신들을 숭배하고 받아들일 때 주어졌고 여러 신들에 대한 예배나 숭배 등을 거부하면 종교탄압을 받았다. 이미 종교다원주의사회로 다른 신이 생긴다는 것에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기독교는 유일신이기 때문이 처음부터 탄압을 받았다. 초기 기독교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오늘 우리도 다종교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치적인 탄압은 없지만 인습, 도덕,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독교 정체성을 지켜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는 탄압을 받았지만 물리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했고, 책에도 썼지만 초기 기독교는 칼로 대응하지 않고 펜을 선택했다. 펜을 선택했다는 것은 변증활동을 했다는 것인데, 기독교란 이런 것이라고 제시했다. Q. 책에서 초기 기독 교회의 이단에 대해 다뤘다. A. 초기 기독교는 양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외부로는 박해, 내부로는 이단의 출현이다. 그래서 양면적이다. 당시 기독교는 왜 신앙의 박해를 받아야 하는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에 대한 신앙적으로 변호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이단들이 기독교에 대해 잘못 가르치면서 바른 신앙을 해명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을 변증가라고 한다. 변증가들이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교회 내부의 이단들에 대응하면서 이것이 나중에 기독교 교리로 발전해간다. 이단들이 잘못 설명한 기독교 정신에 대해 체계적으로 말하다 보니 기독교 교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단의 출현으로 초기 기독교는 바른 정경관을 제시하게 됐고,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 교리의 정통성을 말하게 됐다. 그래서 이단의 출현은 기독교 성경의 집성, 신앙고백의 확립, 교회의 제도화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의 이단들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분열되면서 공동의 대응을 못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이단들이 이런 것들을 이용해 활동하면서 상당히 위협이 되고 있다. 현대 이단들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 교회적인 연합이 필요하다. Q. ‘한국교회 위기’, ‘교회가 자정능력을 잃었다’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A. 초기 교회는 교리적으로는 오늘만큼 제도화되거나 체계화되지 않았지만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는 기본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땅에 두발을 디디고 살지만 천국 시민이라는 의식으로 세상의 물질과 명예, 권력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교회가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마치 영원히 사는 것처럼 물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이런 것들이 결국 교회의 부패, 종교지도자들의 부패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초대 교회가 지향했던 이 땅의 나그네라는 정신, 나그네성을 회복하는 것이 초대교회가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Q. 교회가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A. 역사에 대한 무지는 굉장히 큰 문제다. 역사에 대한 무지는 단지 과거를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독단주의나 주관주의에 빠지기 쉽다. 과거에 대한 이해는 현실에 대한 이해, 독단에 빠지지 않고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한다. 역사란 사례를 가지고 가르치는 설교다.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인간은 타락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역사를 보면 인간이 타락한 것을 볼 수 있다.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인 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성도들이 성경도 알지만 역사를 안다면 신앙생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기독교 역사학자로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A. 대체적으로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업앤다운(Up & Down), 부흥했다가 퇴락하는 굴곡이 많았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고, 1980년 후반부터 쇠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정기간 이런 현상이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교회 내적인 것 뿐 아니라 국가정책과 사회현상, 현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한국교회가 긍정적인 갱신보다는 갱신이 필요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어두운 전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Q. 앞으로의 계획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A.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 종교개혁에 대한 논물을 저술하고 있다. 그리고 고신 교회의 역사에 대한 책이 곧 나온다. 2017년 은퇴를 앞두고 있어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를 모아 분류하여 정리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접근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분석하고 로마 제국 하에 기독교가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관한 것들이 많지 않아 새로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 일이 한국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 인물
    • 인터뷰
    2016-07-21
  • “우리교회만의 맞춤찬양집을 만들어 보세요
    ▲ 맞춤찬양CCMBOOK 대표 하만종 집사 교회마다 즐겨 부르는 찬양이 조금씩은 다르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예배에서 자주 부르는 찬양도 다르다. 그래서 기존의 찬양곡 등을 자체적으로 편집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저작권 침해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워십과 CCM 등 교회가 원하는 곡으로 찬양집을 만드는 곳이 있다. 맞춤찬양CCMBOOK이 그곳이다. 맞춤찬양CCMBOOK은 ‘우리교회 맞춤 찬양집’을 제작, 저작권 관련 행정 절차를 대행하면서 교회가 겪는 불편함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맞춤찬양CCMBOOK 대표 하만종 집사(창원소명교회)는 “국내 10여개 찬양곡 관련 저작권관리 단체 및 수백명의 개인들과 저작권 계약을 맺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합법적인 제작으로 많은 사역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맞춤찬양집은 구역예배용, 셀모임용, 미션스쿨 채플용 등 모임의 성격에 맞게 또 교회의 특성에 맞게 제작하고 있다. 초창기 가정교회에서 주로 많이 사용했던 맞춤찬양집은 교회이름이 새겨진 찬양집에 교회소개와 곡순서 등 교회의 특색을 살리면서 교인들의 반응도 좋아 교회시상용이나 새신자 선물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 한국어와 외국어로도 제작돼 국내 뿐 아니라 두바이, 상하이, 도쿄, 벤쿠버 등 해외 한인교회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만종 집사는 학창시절부터 문서사역에 참여하면서 인쇄소에 대해 잘 알게 됐고, 출판에도 관심을 가지게 돼 자연스럽게 기독교 음악 출판업에 몸을 담게 됐다. CCM러브에서 음악 스트리밍과 악보 등을 제작했던 하만종 집사가 오프라인 사업으로 ‘맞춤찬양CCMBOOK’을 시작했을 때 그의 경력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일관성 있게 악보집을 만들 수 있었다. 90년대 뜨거웠던 CCM의 열기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사그라들자 기독교 문화콘텐츠 시장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만종 집사는 지금의 사역을 끝까지 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창시절 문서선교에 대한 훈련을 받으면서 문서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교회 내 SFC 사무실이 있었는데, 간사님들과 어울리면서 출판과 편집하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됐다. 그 때 주보와 회보를 제작하고 편집하면서 직접 손으로 쓰기도 하고, 인쇄소를 다녔다. 그때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 속에서도 역사하는 힘이 있었다. 지금 기독교 음악 콘텐츠 시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열악해졌다.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이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졌다기보다 내가 할 수 있고 즐겁고 좋으니까 계속 하게 된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끝까지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큰 교회, 작은 교회 구분 하지 않고,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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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동서대 원자력장학생 3명 선정
    ▲ (왼쪽 부터)신철원, 박예인 학생 동서대학교(총장 장제국)가 방사선학과 3학년 박예인, 신철원 학생과 대학원 방사선전공 편도영 학생이 원자력장학생에 선정돼 각각 5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특히 방사선학과 학부학생들은 3년 연속 선정됐다.원자력장학생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미래 원자력 기술 분야를 선도할 인력의 전문화 및 역량강화를 위한 인력 양성을 목표로 시행하고 있다.선정된 연구주제는 ▲박예인-산란선이 방사선 영상 화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신철원-당뇨발의 괴사성이 병변 진단용 근적외선 단층촬영 의료영상 알고리즘 연구 ▲편도영-독립성분 분석 기반 동적 양전자 방출 단층 영상의 신호원 분리기법 연구다.학생들은 내년 5월말까지 각자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결과를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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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고신대복음병원 ‘폐의약품 분리수거’ 캠페인
    고신대복음병원(병원장 임학)이 지난 16일 오후 2시 고신대학교 간호대학(장기려관)에서 ‘폐의약품 분리수거의 올바른 방법과 효과적인 캠페인’을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고신대학교와 고신대복음병원이 후원하고 블루크로스청소년의료봉사단의 주최로 실시된 이번 교육은 임학 고신대학교 의무부총장, 장여구 서울백병원 교수 등이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했으며 이지현 교수(고신간호대 학장), 이순화 약사(고신대복음병원 약제과장), 김대중 국장(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등이 교육을 맡았다.이번 교육은 블루크로스청소년단 장지인(블루크로스 대학부회장, 중앙대의대3)과 지예린(블루크로스 중고등부회장, 이화여고3)학생의 진행으로 장기려박사 바로알기, 블루크로스청소년봉사단 활동방법과 사례발표, 의약품 안전교육, 효과적인 캠페인을 위한 교육, 동아리대표와 부대표의 임명장 수여,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머물던 복음병원의 옥탑방 견학 순으로 이어졌다.장기려박사기념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은 작년 5월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 학교에 블루크로스 동아리를 만들고 등교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 학부모와 교사들의 참여아래 폐의약품 분리수거 캠페인을 실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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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수정교회, 고신대 무척산기도원 인수 컨소시움 참여 후 무척산에서 기도회 개최
    고신대학교(총장 전광식) 무척산기도원 인수 컨소시움에 참여한 부산노회 수정교회(담임목사 이희영)가 지난 9일(토) 무척산기도원에서 당회원과 피택자(장로, 집사) 기도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6일(월)에는 남전도회 주관으로 25명의 성도들이 기도원에서 기도회를 가진 후 무척산 등반 행사를 가진 바 있다. 함께한 성도들을 간증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또 중·고등부 교사와 학생들도 하기 수련회를 앞두고 16일(토)에 무척산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회를 가졌다. 고신대학교는 지난 6월, 무척산기도원을 인수하고 경건훈련원으로 개원하며 기도운동의 강화와 학생수련, 한국교회의 영적 훈련의 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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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이단 IYF 월드캠프에 교계는 침묵만
    이단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국제청소년연합) 월드문화캠프가 지난 7월3일 해운대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총 14일 동안 개최했지만 지역교계의 대응은 전무했다. 금년 대회는 50여 개국 청소년 4천여 명이 참석했고, 27개국 장차관 30여 명과 23개국 대학 총장 및 부총장 60여 명이 이번 행사를 찾았다. 개막식에는 시민 5만여 명과 지상파와 지역 방송국 등 전파를 탔다. 마치 부산의 여름철 대표 행사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박옥수 실체를 알리는 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성호 목사)는 월드캠프 개막식 후 지휘서신을 통해 월드캠프 실체를 알리는 등 뒷북 행정을 펼쳤고, 나머지 연합기관등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행사에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해동 의장, 박현욱 수영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등이 행사에 얼굴을 비추거나 축전을 보냈고, 토마스 야이보니 전 베냉공화국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했다. 지역 교계의 대응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단 IYF 월드문화캠프는 더 이상 손을 쓰기 힘든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자칫 박옥수의 입지만 강화시켜 부산이 구원파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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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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