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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같아 보이나 다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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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얼핏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연히 다른 것이 적지 않다. 사람을 생각해 보자. 우리 눈에는 영국, 독일, 네델란드 사람들이 같아 보인다. 도저히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그들 세 나라는 언어와 풍속이 아주 다르다. 마찬가지로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 중국, 일본 이 삼개국 사람이 전혀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눈에는 구분이 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남북한〉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South Korea이냐 North Korea이냐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때 그 때 생각나는대로 “당신은 북한 사람인가? Are you north korean?”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 서양 사람이 얼마나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예사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남북한을 연구하고 공부하였다면 남북한은 비슷한 것이 아니고 엄청난 차이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 이다. 남북한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토요일 저녁마다 광화문 앞과 서울 시청 앞에서는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치는 촛불 시위대 100여만명과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라!”고 외치는 태극기 시위대 100여만명이 불과 500m 거리를 가운데 두고 열심히 외치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 만약 평양의 최고 중심거리에서, 최고 통치자가 거주하는 만수대 정문 가까운데서 평양 시민 100만명이 모여 “김정은 퇴진하라!”고 목청껏 외치면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한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그 결과를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남쪽에는 예의상으로도 참으로 지나친 행동이지만 광화문쪽 시위대에는 대통령 얼굴에 온갖 공격적이고 증오가 담긴 문구를 새긴 사진이나 그림 피켓을 들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짓밟기까지 한다.
그러나 북쪽은 어떠한가? 평양 모란봉 언덕에는 70년간 3대(三代)에 걸쳐 공산 독재를 이끌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父子)의 동상이 20m 높이로 세워져 있고 북한 2300만 주민들은 차례대로 쉴 새 없이 그 곳을 찾아 꽃다발을 바치면서 절 (숭배)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북한의 가정에는 통치자의 사진이 안 방 벽면에 액자로 만들어 걸려있으며 북한 사람들의 겉옷에는 통치자의 얼굴 사진 뺏지가 부착 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 남한(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리 만큼 넘쳐나고 있다. 경제력도 전 세계 220여 국가들 중에서 거의 10~12위권 톱 클래스(최상위) 권을 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 사람들의 눈에 남과 북은 너무도 비슷해 보이겠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이런 현상은 종교 또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오해나 착각이 수시로 일어난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군복무를 〈군종 장교 : 군목〉 로 수행하였다.
신학대학 재학 중 국방부의 〈군종 장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을 하고, 7년의 대학과 신학대학원 과정을 다 마친 후 입대하여 상무대 보병 학교에서 만 4개월 동안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이수하고서 육군 중위로 임관하였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로 배치를 받아 군종 장교로서의 임무를 시작하는데 목회자로서 첫 번째 직면해야 하는 문제가 〈신입 병사 · 新入兵士)들 「종교 선택 카드 작성」 문제 였다.
이 문제는 특이하면서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목회자로서는 참으로 우려스럽고 슬픈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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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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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4 : 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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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1. 앙시앵 레짐: 적의 계보학과 꼰대의 등장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 Lacan)의 상징계(the Symbolic)처럼 우리는 태어나면서 언어와 사회 질서, 혹은 체제(regime)에 속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인 것이다. 불교 문화권에 태어난 사람은 불교 문화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유교 문화를 상징계로 접한 사람은 유교의 이상을 자연스럽게 그의 가치관이나 사상에 반영할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팔레스틴 땅, 식민지 이스라엘과 주변 강대국의 문화와 영향은 예수의 말씀에 녹녹히 녹아있다. 예수의 비유가 그러하며 그의 날선 생명의 말씀이 그러하다.
이토록 레짐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본질적 상황이다. 그리고 이 레짐은 완결되지 않았고 완전하지도 않다. 보수는 기존 체제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그 체제를 변화시키려 한다. 여기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적의 개념을 상정하고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과 ‘누보 레짐(nouveau regime, 혁명 이후의 신체제)’이 체제수호와 변화의 변증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 앙시앵 레짐을 풍자한 그림
가상의 복제물이 실체를 가리고 대신한다고 말하는 장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는 ‘적의 계보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敵)은 최초 단계에서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음 단계에는 ‘쥐’(제발, 특정인을 연상하지 마시라!)의 형태, 그리고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마지막에는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난다.” 늑대는 울타리 밖에 선명한 적으로 존재하니, 비록 그 공포와 폭력의 서슬은 시퍼렇되, 전선이 분명한 만큼 대적하기도 단순하고 쉽다고 한다. 그러나 쥐는 야음을 틈타 은밀히 우리를 갉아먹는다. 지하벙커 같은 음습한 어둠을 좋아하며, 울타리를 아무리 견고하게 둘러쳐도 끈질기게 집안 깊숙이 들어온다. 따라서 우리들의 허술하고 지저분한 비위생성이야말로 쥐에겐 좋은 서식처가 된다.
쥐의 단계를 넘어선 적은 이제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부지불식간에 내 몸 안에 들어와 기생과 숙주의 관계로 진화한다. 숙주로 하여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게 하거나,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긴다. 따라서 내 몸속의 적은 나의 탐욕을 조장하여 나 자신을 살찌운다. 숙주인 나는 날로 허허로워 치열하게 탐욕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생충만 살찌울 뿐이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 적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대적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 적이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진다. 적이 나인지, 내가 적인지 헷갈린다. 적의 낯선 타자성이 사라지고 어느덧 내 안에 내재화된다. 심지어 적은 나로 하여금 나를 타자화하여 주체를 전복시킨다. 소외와 일탈이라는 비정상성이 일상화되어 정상성으로 둔갑한다. 일종의 착란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실 2017년 2월의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와 사람 모두 착란상태에 빠져있다.
상징계의 이러한 착란상태에 항상 라캉의 상상계(The Imaginary, 타자를 자신으로 오인하는 허구적인 주체의 단계)로 퇴보하며 상징계를 뒤덮는 꼰대가 등장한다. 꼰대는 기성세대나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로도 쓰였던 말인데, 프랑스 단어 ‘콩테(comte, 백작)’에서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백작, 공작, 후작 등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스스로를 콩테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이를 비웃던 백성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고 불렀던 것이다. 꼰대는 심리학적으로 ‘자기만 옳다고 느끼는 경향(sense of self rightness)’, ‘스스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sense of self entitlement)’을 말한다. 기본적인 상식과 통념을 부정하면서 전문가의 권위만을 내세운다. 자기만 옳고 똑똑하며, 돈과 명예까지 가졌으니 대접받아야 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이러한 꼰대는 널려있다. 나이, 성별과 무관하게 계급장을 내세우고, 대접받고 싶어 한다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꼰대인 굉꼰(굉장한 꼰대), 젊꼰(젊은 꼰대). 여꼰(여자 꼰대) 등. 따라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대화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고 여기면 꼰대가 되어간다는 위험신호라고 할 수 있다.¹ 그러나 문제는 이 꼰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로, 곧 레짐으로 확장될 때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분열증적 자본주의의 폭력 사회 체제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힐링(마음 치유)’을 넘어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날카롭게 들춰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분열증 자본주의와 디스토피아 들뢰즈/가타리(G. Deleuze/F. Gautari)는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3)에서 “초점은 장군이 아니라 하급 장교들, 하사관들, 내 안에 있는 병사, 심술궂은 자이며, 이들 각각은 나름대로 성향들, 극들, 갈등들, 힘의 관계를 갖고 있다 … 억압당하는 자가 억압의 체계 속에서 항상 능동적인 자리를 취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마조히즘이 아니라 바로 이 미시적 짜임이다.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독재자들의 무장, 대기 오염에 능동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좀-나무, 탈영토화-재영토화, 무리-군중, 사본-지도, 분자-그램분자, 소수-다수, 유목성-정주성, 전쟁 기계-국가 장치, 매끈한 판-홈이 팬 판’과 같은 무수한 이항 대립의 쌍을 변주하며, 사유의 방식, 기능, 양태들에 대해 설명하는(여기에는 무수한 자의적 개념이 춤추고 있다. 가령 리좀, 동물-되기, 소수-되기, 영토화와 탈영토화, 포획, 탈주선, 지층과 지층화, 기관 없는 신체, 얼굴성, 추상기계, 배치, 매끈한 공간과 홈이 팬 공간, 공리계의 접합접속 등등) 들뢰즈&가타리는 ‘차이의 철학’, 혹은 ‘욕망의 미시정치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 생물학과 언어학과 음악학과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로지르며 다양체가 의식과 무의식, 자연과 역사,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어떻게 뛰어 넘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에서 분열증 자체이다. 주기적으로 위기는 돌아오고 증식하고 소멸하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환투기와 주식 투매의 미친 바람이 불고, 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순간 휘몰아쳤다가 자양분을 빨아먹고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자본의 유동적 흐름은 포식자처럼 취약한 외환시장과 주식 거래를 삼켜버린 뒤 소화할 수 없는 뼈들만 뱉어낸다. 전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라는 정글에 방목된 사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토끼들을 사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자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두에 인용했듯이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면 되는 것인가?
들뢰즈/가타리는 이렇게 말한다. “점유하고, 거주하며, 보존하는 영토에서 끊임없이 달아나라!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무리로 달아나라! 무리로 달아나야만 하나의 도주로가 아니라 천 개의 도주로를 만들 수 있다. 하나는 붙잡히지만 천 개는 붙잡히지 않는다. 경로를 따르지 말고 그것을 자주 이탈하라! 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그들이 알 수 없게 하라! 정주민들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머리둘 곳 없는 방랑자 예수와 그와 함께한 세리와 죄인들의 모습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따라서 『천 개의 고원』은 화폐와 노동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계’의 포획에서 도망가도록 부추긴다. 국가-기계는 수많은 금기의 거미줄을 만든다. 제도들과 정책, 법과 치안의 그물로 국민을 포획하고 국가라는 지층에 편입시킨다. 따라서 조세와 병역 의무를 지우는 국가의 다양한 포획 장치로부터, 자본주의의 기계들(이를테면 정부, 한국은행, 군대, 나아가 학교, 종교단체 등)로부터 도망가라. 그때 구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한(마태 2:3)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므로, 디스토피아는 ‘어두운 미래 또는 현실’이 된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취업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해법이 보이지 않는 교육·부동산 문제 등을 배경으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와 담론에서 디스토피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어려웠지만 앞날에 대해선 낙관적이었던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역동감 있는 문화 콘텐츠와 상반되는 문화적 흐름이었는데, 이는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에 더 급진적 디스토피아로 전락했다.
디스토피아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체제 디스토피아, 인간 디스토피아, 문명디스토피아’가 그것이다. 체제 디스토피아는 ‘개선이 거의 불가능한 억압적인 체제’와 관련된다. 국가와 거대자본은 물론이고, 실생활에서 고통을 느끼는 모든 분야가 그 대상이 된다. 인간 디스토피아는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인한 디스토피아이다. 미시적이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문명 디스토피아는 현대 문명의 비관적인 전망과 연관되어 있다.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새 전염병, 외계인의 습격 등이 단골 소재가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개신교는 물론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 디스토피아’의 최전성기가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과 이후 해경·청와대·경찰·검찰·정치권 등 각 체제가 보여준 모습은 ‘체제 디스토피아의 완결판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김기춘-황교안-우병우 라인은 그 마지막 보루이다. 또한 ‘인간 디스토피아’는 그 정점을 찍었다. 청문회에 등장한 기득권층 인사와 고위 관료 등의 일그러진 모습을 통해 더 이상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긍정 할 수 있는 인간 유토피아를 상실했다. 다만, ‘문명 디스토피아’를 통해 다중들이 조용히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과 시의 세상을 누보 레짐으로 열 것이다.
3. 누보 레짐: 음악과 시의 시대로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음악의 음들에 관해 고대 영지주의자들은 “음악의 음들은 저마다 우주, 혹은 천문학적 공간 속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어떤 것과 상응한다.”라고 말한다. 가령 레는 ‘레지나 아스트리스(별들의 여왕인 달)’, 미는 ‘믹스투스 오르비스(선과 악이 섞여 있는 장소인 지구)’, 파는 ‘파툼(운명)’, 솔은 ‘솔라리스(태앙)’, 라는 ‘락테우스 오르비스(은하수)’, 시는 ‘시데루에스 오르비스(별이 총총한 하늘)’, 도는 ‘도미누스(신)’. 따라서 ‘달-지구-운명-태양-은하수-하늘-신’의 단계로 상승하는 음계를 통해 영적 지식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달과 지구에 국한된 인간의 운명은 태양과 은하수, 하늘에 속한 신의 레짐으로 귀속될 때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시 해설집 『홀림 떨림 울림』 (나남, 2013)에서 이영광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시는 먼저 읽는 이에게서 생각이란 걸 빼앗아 갔다가는, 천천히 되돌려주는 것 같다. 그 찌릿찌릿한 수용과정은 ‘홀림-떨림-울림’으로 진행된다.” 시도 그렇지만, 2017년은 타자의 아픔에 홀려 가슴이 떨리고, 몸 전체에 큰 울림으로 남아 울림이 홀림이 되어 더 큰 떨림이 되기를 바란다. 이영광 시인도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고, … 어떤 종교는 고통 그것도 허망이라고 가르치지만, 모든 시는 허망을 고통이라 느끼는 곳에서부터 말을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결국 타자의 아픔에 홀려, 자신을 그 고통 가운데 내어주었고, 그 숭고한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떨림을 주었고, 이제 시대를 넘어 큰 울림으로 변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홀림은 계이름 ‘레’로부터 시작하여 ‘도’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목하, 음악과 시의 시대가 이 앙시앵 레짐의 시대, 곧 적의 계보학과 꼰대들의 시대에 새 희망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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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 5가지에 관해 북키닷컴 개발자인 이준행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나이를 먼저 묻지 마라. 한국 사회에서 버젓이 나이를 묻는 것은 상대방과 위아래를 겨루자는 의미이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음을 상대에게 주지시키고,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둘째, 함부로 호구조사를 하거나 삶에 참견하지 마라. 차라리 좋아하는 음식이나 동물을 물어보라. 셋째, 자랑을 늘어놓지 마라. 당신의 인생 자랑은 ‘노잼’이다. 당신이 살아온 시절에 대한 자랑은 당신에게만 유효하다. 당신의 인맥 자랑은 당신에게 잘 보이라는 알량한 호소임을 상대방은 너무나도 잘 알아챈다. 어느 것으로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넷째, ‘딸 같아서 조언하는데’ 같은 수사는 붙이지 마라.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는 이야기도 먼저 꺼내지 마라. 당신이 걸어온 길이 매력적이라면 상대가 알아서 물어올 것이다. 다섯째,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나이나 지위가 없어도 타인에게 대우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섯째, 스스로가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라. 나이로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꼰대성이란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쉽게 꺼내는 내 안의 괴물과도 같다. 그 괴물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꼰대 탈출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상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늘 경계하라. 그러면 당신은 꼰대가 아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이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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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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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칼럼] 분노조절 장애와 로직에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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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로에현상과 일중심형을 비슷한 인격으로 구분한다. 일중심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일중심이다 보면, 결과론적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그 과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본인은 이들을 일중독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독에는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설교자 가운데도 모든 것을 열매 위주로 설교하시는 분들도 봐왔다. 안타깝다. 결국 우리는 한 영화의 ‘뭣이 중헌디?’ 유행어처럼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지면상 내 감정부터 쓴다.)
앞 칼럼11에서 로직에러(Logic Err, 로에) 현상의 대한 용어를 정의한 바와 같이, 우리는 컴퓨터, 스마트폰, 그 외 사회 조직 등이 수와 관련된 Logic의 체계가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뇌는 여기에 고착화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그래서 부부, 가정생활도 이러한 개념 속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범위 내에 관계가 형성되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목사가 성도의 삶을 눈치 보며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라고 말한다. ‘뭣이 중한가?’ 이것을 놓치게 되면 결국 인본주의적 중심으로 합리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본질, 법, ruler, 말씀, 진리, 율법,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런 단어들의 공통점 즉 우리에게 주는 핵심은 인간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중독, 즉 과의존 된 또 다른 기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다. 중독과 여가는 한 끗 차이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본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여기서 우리 삶의 향방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결정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새법을 주셨다. 용납하고 용서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법을 주셨다. 이것은 일 중심형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영혼 중심의 삶을 뜻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logic적인 삶의 방식에만 매여 - 본인은 합리적인 사고 방식도 이에 포함한다. - 예배와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살피며 보이는 것만 쫓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보는 안목이 있을 때, 성령의 간섭으로 인해 이 모든 타락한 문화를 대적할 능력이 생김을 확신한다.
에베소서 6장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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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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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총회 기소위원회, 정치부 상설화 어불성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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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소 위원은 범죄 예상 아닌 범죄 발현 후 치리회가 선정해야
- 총회의 기소 위원 정치부 상설화 결의 위헌적 결의로 시행 불가
[질의] 합동 제101회 총회가 총회 기소위원회와 정치부의 상설화를 결의하여 기소위원회는 해당 회기에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자를 기소하게 하고, 정치부는 총회를 파회한 후에도 계속 존속하여 총회가 위탁하지도 않은 새로운 차기 총회의 업무를 심의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교회 헌법과 상충되는 것이므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총회 결의로는 시행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법리적 답변을 바랍니다. (P목사)
[답] 질의자의 질의 내용 안에 답이 정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보다 더 상세히 정리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본건에 대한 사실 관계
합동 제101회 총회가 총회 기소위원회와 총회 정치부를 상설화한다고 하면서 기소위원은 총회를 파한 후 새로운 사건을 기소케 하고, 정치부는 총회를 파한 후에도 계속 존속하여 정치적인 안건이 접수되는 대로 심의케 한다는 잠꼬대 같은 기상천외한 불법 결의를 하여 합동 교단에 먹칠을 하고 있다.
그 실상의 내역은 2016년 10월 11일자 기독신문 제2076호 4면에 “제101회 총회 헌의 안 처리 결과 기구 개편 및 신설”이라는 머리기사의 소제목으로 “총회 기소위원회(상시) 신설의 건”의 내용으로 “해당 회기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자에 한하여 권징 조례 제2장 제7조에 의거 기소 위원을 두어 기소토록 하되 해 기소 위원이 기소한 건은 본 총회가 원고로 기소한 것으로 하며 기소 위원 선정은 매회 때마다 총회 파회 전 임원회가 3인을 선임하여 본 회의 허락을 받는다.”라는 보도에 이어 2016년 12월 13일자 기독신문 제2084호 2면에 “제101회기 총회 특별위원 명단, 총회 상설 기소위원회 : 서○○, 이○○, 김○○”이라고 기소 위원의 명단을 보도하였으니 이미 시행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2016년 10월 4일자 기독신문 제2075호 2면에는 “정치부 상설화하고 실행위원회 역할 강화”라는 머리기사 내용으로 “제101회 총회의 … 가장 주목할 만한 결의는 정치부 상설화와 총회 실행 위원회 역할 강화다.”라고 보도하였다. 이는 총회 정치권의 일부가 불법을 자행하면서 마치 혁신 개혁이나 하는 것처럼 의시대면서 총회를 불법 탈법으로 난장판을 만들려 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2. 총회는 비상설체 조직
정치 제12장 제7조(개폐회 의식)에 “총회가 기도로 개회하고 폐회하되 폐회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회장이 선언하기를 「교회가 나에게 위탁한 권세로 지금 총회는 파(罷)함이 가한 줄로 알며 이 총회 같이 조직한 총회가 다시 아무 날 아무 곳에서 회집함을 요하노라.」 한 후에 기도함과 감사함과 축도로 산회(散會)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지금 총회는 파함이 가한 줄로 알며 이 총회 같이 조직한 총회가 다시 … 회집함을 요하노라”라는 파회 선언의 의미는 총회야 말로 비상설체 조직으로서 파회를 선언함과 동시에 총회도 없어지고 총대권도 종결되었으니 차기 총회가 회집될 때까지 파회된 총회의 모든 조직이 절대로 상설 존재할 수 없으므로 총회 파회 후의 새로운 모든 사건과 안건에 대하여 차기 총회 외에는 어느 누구도 어떤 사건도 처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101회 총회가 어떤 미지의 범죄 사건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듯 교회 헌법이 금하고 있는 기소 위원을 상설 조직화하기로 결의하여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기소 위원이 즉시 기소하여 총회의 원고 노릇을 하게 했다. 거기에다 총회 파회 후에 접수된 일반 행정 서류는 정치부를 상설 조직화하기로 결의하여 정치부에 초헌법적 특권을 부여하여 심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설 기소 위원이 기소한 사건이나 상설 정치부가 심의한 그 일반 행정 안건들은 “위원회 심사의 원칙”에 의하여 예비 심의에 불과하고 차기 총회의 본 심에서 종결하는 것이 법리이거늘 비상설체인 총회 조직을 상설화로 결의하여 시행하려는 것은 헌법을 짓밟고 헌법과 상충되는 내용을 치리회의 결의로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부당만부당한 불법 범죄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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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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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 살린다] “신앙의 집에 시간을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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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수작이다. 소설에서 처음에 아이들은 모모를 중심으로 마을 공터에 모여서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그저 상상의 나래만으로도 배를 만들고, 파도를 헤치며 행복하게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시간을 도둑질해가는 회색 신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마수에 넘어간 부모들은 너도나도 공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탁아시설에 맡겨버린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시설 속에 갇히고, 어른들은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며 매일 기계처럼 살아간다. 잘 먹고 잘 사는 가정을 만들자고 시간을 아끼며 아등바등 살았건만, 정작 가정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적어지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시간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44년 전에 나온 이 소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녀노소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교회도 다음세대를 만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 168시간 중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단 1시간뿐이다. 교회에서 아이들은 예배 30분, 성경공부 30분을 바쁘게 마치고는 서둘러 학원과 집으로 향한다. 이러한 시간적 환경은 아이들에게 신앙의 가치관을 전혀 심어줄 수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중요한 과목일수록 수업 시간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을 신앙교육에 투자한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교회가 아이들의 신앙을 품고 자라게 하는 신앙의 집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일단 아이들이 오래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도 신앙의 집을 짓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민교회에서는 올해부터 가정예배 드리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 구성원간에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가정은 부모님이 밤 10시에 퇴근해서 청소년 자녀와의 고군분투한 가정예배현장의 인증샷을 찍어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각자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그 금쪽같은 시간을 신앙교육에 투자하는 것도 참 힘든 세상이 되었다.
올해 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부모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은 한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의 52.8%가 선택한 1등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응답이었다. 용돈이나 선물이라고 응답한 아이들 보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한다고 응답한 아이들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우리는 때로 시간이 부족하면 그 적은 시간이라도 질을 높여서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함께함의 질은 함께함의 양에서 비롯된다.”는 한 상담전문가의 말이 떠오른다. 함께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면 함께함의 질도 역시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먼저 함께함의 양을 확보해야 한다. 교회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뛰어 놀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절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서의 예배시간을 점검해서 아이들이 오기 편한 시간대인지, 예배 마치고 식탁공동체를 가질 수 있는지, 오후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여유 있게 제공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
이해인님은 ‘사랑과 시간’이라는 수필에서 ‘시간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곧 ‘사랑이 없다’는 말이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사랑을 채워 보자. 올 한해 교회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북적이는 행복한 모습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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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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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해방정국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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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사태’로 촉발된 ‘탄핵정국’은 결국 대한민국사회에 촛불세력과 맞불세력, 탄핵찬성세력과 탄핵반대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반갑지 않은 부산물을 낳았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한쪽은 범상치 않은 정치적 내상(內傷)을 입을 터이고, 원치 않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로 말미암아 더 큰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교회는 어느 한 편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분열과 대립이 더 이상 격화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작금의 상황이 7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마치 해방정국의 재림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1945년 해방 후 이 땅은 찬탁과 반탁, 남북협상, 한국문제의 유엔이관, 단정수립여부를 두고 이승만과 한민당을 지지하는 세력, 김구와 한독당을 지지하는 세력, 김규식 등의 중도파,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열강의 틈바구니와 시대의 격류(激流) 속에서 중지를 모으고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민족과 사회가 다중으로 분열된 대가를 우리는 결국 몇 차례의 내전과 같은 상황들과 마침내 6.25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치러야 했던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3차 산업혁명』을,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다가오는 시대의 특징으로 에너지 혁명, 사물인터넷(IoT)의 혁신,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넘어선 대체현실(alternative reality), 나노 혁명(nano revolution)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의 역량을 총집결해서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좌우논쟁으로 해방정국의 속편을 닮은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으니, ‘개탄(慨歎)’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남겨둔 말 같습니다. 하루 빨리 정쟁을 종식하고 마음을 합하여 21세기 신(新) 성장 플랫폼(platform)을 구축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대립과 분열을 봉합하고 화해와 화합을 이루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루시 스톤(Lucy Stone)이 시작한 미국 여성참정권 운동은 또 다른 여성 지도자들과의 반목과 대립으로 말미암아 그 결실이 이루어질 때까지 반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때로는 친구가 가장 큰 적일 수도 있다는(親敵, frenemy) 아이러니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사회적 장벽으로 우리는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남녀와 세대와 빈부와 이념의 차이 등으로 인해 양산된 그 모든 차별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서로 다를 뿐이지, 서로 틀린 것이 아닙니다. 누군들 나라가 평화롭고 번성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각자 생각하는 방식과 표현하는 수단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절대적인 급선무는 상호 이해와 존중과 관용의 정신입니다. 또한 사랑입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지체들이 한 몸 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습니다. 비가시적인 담벼락을 쪼갤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신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까닭입니다. 그것도 보통 사랑입니까? 미워하고 저주하고 모욕하는 원수를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그런 사랑입니다(눅 6:27-29). 이를 통해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하나 됨의 역사가 먼저는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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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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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재활중점 요양병원, 온천사랑의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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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이상이면 고령사회, 20%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고령인구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곧 고령사회에 진입, 2030년 경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4%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요양병원들이 생겼고, 그 가운데 방만한 운영과 환자보다는 이익을 위한 운영을 하는 병원들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요양병원은 인생의 말로에서 결정하는 곳, 수용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양병원은 특성상 장기입원, 장기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이 치료받고 충분한 요양을 한 후 퇴원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개선을 위해 많은 요양병원들이 노력하고 있다. 부산 동래 온천장 소재의 의료법인강혜의료재단 온천사랑의요양병원(이사장 이강호 목사. 병원장 조광현 장로)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병원’을 목표로 지난 1월 개원했다.
▲ 온천사랑의요양병원
△환자 중심, 쾌적한 병원
온천사랑의요양병원은 로비부터 복도, 병실까지 병원이라기보다 리조트에서 느낄 법한 쾌적함을 준다. 요양병원으로는 크다고 할 수 있는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건평 4,200평, 주차수용 150대)로 400병상을 갖추고 재활치료와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부산 온천장 중심지에 세워진 만큼 온천을 이용한 수(水)치료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샤워실 등을 뒀다. 특히 수치료실은 편백나무로 꾸며진 족욕시스템, 산소샤워실, 원적외선실을 두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 병원로비
▲ 족욕탕
병원은 재활전문치료센터를 개설해 중추신경계질환(뇌졸증, 척수손상), 교통사고, 산업재해, 골절 및 관절 수술 후 전문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특수장비를 두고 체계적인 치료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리고 고령화시대에 맞는 만성노인질환, 치매, 심장 및 호흡기 질환 등 장기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에게 전문가를 구성해 맞춤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각 층마다 금정산이 보이는 쉼터, 야외테라스, 하늘공원 등 편의시설을 갖춰 요양환자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 병원개원과 함께 설립예배를 가진 온천푸른초장교회가 지하1층에 위치하고 있어 환자들이 언제든지 예배와 기도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했다. 또 예배당 한 켠에 다락방을 만들어 선교사들이 방문했을 때 숙박을 제공한다.
쾌적하고 쉼이 있는 병원이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병원 건물 외부 전후에 전국 최초로 나선형 안전 피난 미끄럼틀 소방시스템과 비상계단에는 안전바를 설치했다.
▲ 재활치료센터
▲ 하늘공원
▲ 하늘공원
▲ 금강공원 전경의 쉼터
조광현 병원장(가야성안교회 장로)은 “요양병원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부분, 시설적인 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열악한 환경은 건강에 더 안 좋다. 그래서 환기시설을 통해 쾌적한 분위기에 현대식 휴식공간을 마련했고, 무엇보다 안전에 특히 신경 썼다. 피난 미끄럼 탈출 장치는 위급상황 시 15층에서 2분 만에 내려올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보호자가 안고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험에 시험을 거듭한 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이 복음의 현장으로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 병원은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병원은 복음을 전하며 몸의 치료뿐 아니라 마음을 보듬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 예배를 드린다. 환자들도 거동이 불편하지 않으면 지하1층 예배당을 찾는다.
▲ 조광현 원장
조 병원장은 “우리는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최고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다. 의료진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개원한지 두 달 정도 됐다. 조금씩 좋은 입소문이 나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 하루 일과는 예배로 시작한다. 이사장인 이강호 목사님은 항상 병원은 돈벌이가 아니라, 섬기는 자세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안식처고, 천국으로 향하는 건널목이 되도록 운영해야한다고 강조하신다. 요양병원에서 회복되어 퇴원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여기고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1000명을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병원 교회 내에 걸어 놨다”고 말했다.
▲ 병원 내 지하1층에 위치한 온천푸른초장교회
조광현 병원장은 인제대 부산백병원 흉부심장혈관외과 교수로 재직했다. 부산백병원장과 대한 흉부외과 학회장을 역임했고 지난 2014년 8월 정년퇴임했다. 퇴임 후를 고민하는 가운데 사회적 이슈인 노인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 이강호 목사의 제안이 있었고 이 목사의 병원을 운영하는 기독교적 경영철학이 조 원장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 병원장을 맡게 됐다.
“심장수술을 5천명 가까이 했다. 부산에서는 기록을 세웠다고 할 수 있지만 퇴임 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여러 제안들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질환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도 노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노인병에 대해 공부했다. 앞으로 맞게 될 고령사회에서 노인병 전문가가 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병을 공부하고 노인병학 인정의 자격을 취득했다”는 조 원장은 “그때 이강호 목사님이 기독교적 운영 마인드가 저와 맞았다. 이제 시작한 병원이다. 크리스천, 넌크리스천 환자들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병원으로, 이곳에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를 위한 준비
조광현 원장은 운영에 있어서 ‘4가지의 만족’을 강조한다. 첫째는 신앙공동체, 두 번째는 병원 운영진, 직원, 환자들이 해피(Happy)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지역의 모범이 되는 병원, 네 번째는 보금자리같은 병원, 다섯 번째로는 의료진의 노력이다. “병원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분쟁이 있다. 신앙공동체라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으로 도우면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3분야(운영자, 직원, 환자)의 사람들이 즐거워야 한다. 특히 직원복지가 잘 이뤄져야 한다. 요양병원을 두고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한다. 직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하도록 복지를 증진시키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다른 병원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병원이 되길 바란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요양병원이라는 생각보다 집 같이 안락함을 주는 보금자리로 느껴지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그를 위해 우리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의사들의 노력이다. 노인에 대해 잘알야하는 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신앙적인 면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노인은 우리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노인에 대한 준비는 곧 나에 대한 준비로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미래가 쓸쓸하지 않으려면 노인들의 쓸쓸함이 없어야 한다”며 “지금 우리 세대가 모범이 돼야 한다. 개척자 마인드를 가지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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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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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예수님을 생각하라(히12장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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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을 보고 듣고 관심을 가지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마음이 가는 그 곳에 우리의 인격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을 바라보면 롤모델이 되어서 좋은 사람이 만들어 지는 것이고 나쁜 사람을 보고 나쁜 생각을 하면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흉보면서 배우고 우리 속에 각인 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 자녀들의 모습 속에 비쳐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본대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 주변에 롤모델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믿음의 영웅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많은 증거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배우고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아계십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짓누르고 얽매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는 자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경주하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분 앞에 나의 무거운 죄와 어두운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것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인생은 달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통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고 거룩한 영광스런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셔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죄인 취급을 받으사 갖은 모욕과 핍박과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으나 그 모든 것을 끝까지 참으셨고 감당하셨습니다. 심지어 죄 아래 죽을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입고 살아날 것을 내다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킨 예수님은 죽은 듯 했으나 삼일 뒤 살아나셨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우편에 앉으사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너무나 거룩하신 그 분이 나약하고 죄 많은 우리를 위해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죽음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통과 고난과 아픔을 어찌 예수님의 고난과 비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아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 주신 우리를 향한 그 희생, 그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황과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교정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은 새롭게 되어 힘을 얻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완전하게 하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닮아가는 우리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은 근실히 징계한다고 했습니다. 징계에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기르기 위한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징계인 것입니다. 천번 만번 근실히 연단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의롭게 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와도 이 또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고 우리를 얽매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우리를 위해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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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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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를 지향한다] ‘공간사역’ 현장, ‘드림스퀘어’를 통한 청년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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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2017년 캠페인 ‘작은 교회가 희망입니다’ 코너에서는 크게 두 가지 형식의 기획기사가 준비돼 있다. 첫째는 기성준 작가의 ‘시골교회 이야기’다. 작가가 시골교회에서 만난 은혜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의 순수성 회복과 희망을 노래하고, 나아가 통일시대 북한선교활동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코너다.
두 번째는 작은교회를 지향하면서 특색 있는 사역을 하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코너다. 최근에는 일반목회가 아닌, 특수사역과 이색적인 사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1인 창조기업 특강 중인 이정석 목사
청년사역을 향한 부르심..
부산의 중심가 서면에서 ‘드림스퀘어’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석 목사. 그는 20대부터 교회사역과 함께 문화사역과 예배사역을 해 왔다. 그의 다양한 활동은 부산의 대규모 연합행사에도 힘이 됐다. Again1907 연합찬양팀 인도, BFGF 사무차장, 예수청년연합 사무국장,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사무국장, 해운대성령대집회 사무국장 등 부산에서 개최하는 대형 행사에도 봉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던 중 청년을 향한 선교사로의 부르심을 받았다. ‘드림스퀘어’를 통한 공간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드림스퀘어가 위치한 서면은 지정학적으로 부산에서 가장 중심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여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전략이나 사역은 거의 전무하다. 이정석 목사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청년사역의 접촉점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드림스퀘어’다.
공간사역이란....?
공간사역이란 기본적으로 강연홀, 세미나실, 회의실, 모임장소 등의 공간을 시간당 비용을 받고, 대여해주는 철저한 비즈니스 사역이다. 드림스퀘어가 있는 서면은 학원(공무원학원, 경찰학원 등)과 번화가가 인접해 있어 모임에 대한 수요가 많은 곳이다. 이정석 목사는 “공간사역은 누구나 와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카페, 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이 스터디와 회의를 할 수 있는 회의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인 창업, 꿈, 비전과 관련한 각종 세미나들을 열 수 있는 세미나실과 각종 문화행사나 북콘서트, 특강들을 열 수 있는 강연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며 사전 신청을 통해 예약하고, 사용료만 결제를 하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용도의 공간을 대여해 사용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독서모임
▲ 미니콘서트
비즈니스가 곧 선교현장
그동안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서면 중심가에서 3년 동안 유지해 온 비결에 대해 이 목사는 “서면은 상업지역입니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웬만한 수입모델 없이는 존재가 힘든 곳이죠. 고객의 필요를 채워주는 비즈니스를 통해 재정적인 자립을 추구하고, 그를 통해 안정적인 선교사역을 펼쳐나가되, 비즈니스 현장이 선교의 현장이 되는 전략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드림스퀘어에서는 세계 꿈여행 발대식, 작가초청 북콘서트, 한국코치협회 모임, 대학생코치양성과정, 대통령직속 청년인재양성코스인 더청춘 부산 발대식 및 정기모임, BJR(부산대학생일자리사업단)정기모임, 1인창조기업 강연콘서트, 중학교 진로코칭 등 다양한 행사로 인해 수 많은 젊은이들을 접촉하고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9년째 부산경남의 기독청년리더를 양성해온 CLA(크리스찬리더십아카데미)와 크리스찬재정학교, 크리스찬코칭세미나 등 기독청년들의 훈련과 교제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
▲ 꿈발대식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로...
드림스퀘어는 공간은 주일에는 ‘다음세대 교회’의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여러 통로로 접촉되어진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있으며, 청년사역의 전초기지로 잘 활용되고 있다.
이정석 목사는 “이 사역이 시대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의 부르심에 충실했고, 그 부르심에 대한 전략적인 사역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모든 사역자가 일반적인 교회의 담임목회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자 자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을 추구하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상적인 교회에 대해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를 꿈꿉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의 존재이유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남기신 사명을 분명히 깨닫고, 그렇게 지체가 되어 서로를 섬기며 누리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교회로 생명을 흘러 보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전했다.
‘드림스퀘어’를 통한 공간사역, 그리고 ‘다음세대 교회’를 통해 미래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훌륭한 청년들이 양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작은교회 사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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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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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연합과 야합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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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부산, 제주는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교회연합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기독교 교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교회연합의 필요성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을 수 있지만, 반면 차별화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광주와 제주 그리고 불교의 땅에서의 고립적 상황에 처한 부산에서는 연합활동의 불가피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들 지역들에서는 거의 모든 교단들이 연합에 참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편 연합활동이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으로 변질되는 것을 민감하게 경계해야 한다. 지역교계와 주변사회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연합활동이 아니라, 특정 정파와 개인 중심의 불균형하고 불공평한 연합활동은 크고 작은 균열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연합’과 ‘야합’ 사이가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것을 한국교회의 교파주의역사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단대처에 있어서 연합적 대처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개인이나 개교회 차원의 이단대처는 고립적이고 수세적일 수 있지만, 연합적 이단대처 활동은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다. 만약 여기에 주변사회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교회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단대처 전략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이단대처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최근 교회의 연합활동이 오히려 이단대처 현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이단문제를 명분으로 정치적인 이합집산과 내홍을 오랜 기간 겪고 있다. 심지어 이단전력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인물이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를 하고, 이단시비에 연관된 인물이 한교연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했다는 비판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기관이 이단대처의 중심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불건전한 개인과 단체들이 신분을 세탁하고 면죄부를 받는 장소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은 연합기관의 공신력을 조롱하며, 자신들의 활동과 존재이유를 합리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주변사회도 이러한 연합기관의 파행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교회의 시급한 당면과제인 이단, 이슬람, 각종 비성경적 문화에 대해 교회가 목소리를 높이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대자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것이 오늘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교회의 연합적 이단대처는 교회역사의 오랜 전통이다. 이방인 선교와 관련된 교회의 첫 위기를 예루살렘과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극복했고, 이단과 관련한 초대교회의 문제를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신학적 변증과 대처의 길을 찾았다. 이러한 연합적 이단대처는 중세교회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특히 교파주의를 운명적 특징으로 하는 한국교회에서 연합적 이단대처는 필수불가결한 과제이다.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의 모습이 절실하다. 이단대처 현장은 반드시 교단정치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한다. 이단대처는 ‘정적제거와 교권장악을 위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정결하게 수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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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