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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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인물탐구] 나서기를 좋아하는 요한 (4)
    요한은 특별히 남들 안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열심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모든 제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앞장서서 사마리아 사람을 저주하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열심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열심이 너무 지나쳐 정도를 벗어나면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매우 해롭게 합니다. 옛날 사도 바울 당시 빌립보 교인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성도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교회를 섬기다 오히려 파벌이 생기고, 그래서 바울을 근심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절제할 줄 아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신앙의 미덕임을 알아야 합니다.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요한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불을 내려 태워 죽이자고 요청한 것은 그에게 잔혹한 일면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런 잔혹한 성품은 결코 주님의 백성들이 가져서는 안 될 악덕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으로 여겨지는 잔혹한 성품을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행위로는 이런 잔혹한 일을 행치 않지만, 행여 우리 중심에라도 이런 생각이 들어 있다면 당장에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생각이 행위로 실천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요한이 사마리아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자고 요청한 것은 그가 예수를 사랑의 주로 보지 않고 심판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은 마지막 재림 때에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심판 직전까지는 할 수 있는 한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주님입니다. 이런 주님의 성품을 요한은 망각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의 사랑의 성품을 본받고 그 사랑을 널리 선포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전한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저주나 심판을 선포하는 무서운 행동은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은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려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를 통해 예수께 높은 자리 하나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이렇게 요한은 희생과 섬김을 위해 오신 주님을 세상 통치자로 오해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직분을 이용하여 남의 위에 군림하려 하고 지배하려 하면 이는 참으로 잘못된 행실이요, 또한 우리 주님의 참 뜻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주님을 떠난 인간의 속성은 기회만 되면 군림하고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희생하는 섬김의 삶에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랑하고 섬김으로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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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은혜의 말씀] 너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고린도후서 3장1절-3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을 때, 아이들한테 편지를 받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편지라는 것은 늘 우리의 마음을 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25절에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와 같다고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편지가 우리의 마음을 상쾌하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이 말은 아름다운 의미가 들어 있지만, 오늘 전체적인 말씀의 배경은 사도바울이 자기를 변증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이 본문에서 얘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디서 추천장을 받아 왔느냐”, “네가 어떻게 사도냐”며 공격을 하니까 “내가 사람의 손으로 쓴 추천장이나 돌에 새긴 돌판에 쓴 글이 추천서가 아니고, 마음에 쓰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자체가, 내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복음 안에서 성장한 교회를 이루고 있는 너희들 존재 자체가 나를 보증하는 추천장이다. 그것이 오늘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 너희들이 바로 예수님의 편지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세 가지 증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갈증, 긍정, 열정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증이 있을 때, 타는 목마름이 있을 때 시원한 냉수 한잔이 우리를 후련하게 하고 십년 묵은 체증을 내려가게 하고 온 마음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고넬료와 같은 숨통을 틔우는 사람, 물꼬를 틔우는 사람, 비상구를 열어 재끼는 사람, 그런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편지라는 겁니다.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아래 언론의 조작이 판을 치고 가벼운 글들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고 고뇌하면서 신앙적으로 몸부림 치면서 적은 글들이, 편지가, 신앙고백들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하나님께 편지를 적었는데, “하나님 힘내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요즘 성도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아빠, 엄마가 힘들어 하니깐 하나님이 기도 접수하신다고 얼마나 바쁘실까? 그래서 하나님 힘내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아기다운 편지에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나 가정 속에서 항상 쓴물이 아니라 좋은 것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신앙의 일기를 쓰세요. 신앙의 기록을 남기세요. 좋은 것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인간 편지가 되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김 집사 보면 살맛이 느껴진다, 나 같았으면 못 살았을 텐데, 내가 정말 살맛이 난다”는 인간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냄새나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의 향기요.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한줄기 빛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어나 빛을 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시고, 썩어져가는 세상에 소금덩이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소금물을 들이키면 갈증을 유발하듯이 ‘내가 살아야 되겠다, 내가 더 힘을 내야 되겠다’ 남에게 갈증을 유발시키는 그런 존재감으로 매일매일의 삶이 그리스도의 편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빛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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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은혜의 말씀
    2017-02-03
  • [기성준 작가의 시골교회 이야기] 시골교회 이야기, 한반도 3배 거리인 3,210km를 다니다.
    2016년 한국교계 10대 뉴스에 ‘목회자 윤리 추락’이라는 뉴스가 선정되었다. 성범죄, 도박, 살인, 비리 등 목회자의 윤리문제가 불거지면서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성범죄가 직업군 가운데 목회자가 최고 많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이 시대의 ‘한국교회’와 ‘한국목사’를 검색하면 안타깝지만 암울한 빅데이터가 나온다. 한국교회가 스스로는 맑은 물이라고 착각하지만 흙탕물인 혼돈의 이 시대, 한국교회의 암울한 빅데이터가 검색되는 이 시대에 시골교회 이야기를 통해서 검색되지 않는 맑고 순결한 한국교회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20대에 대형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생명을 위한 사역이 아닌 그저 세상이 말하는 스펙을 위한 하나의 목표였다. 그런 삶을 살던 중에 김남준 목사님의 저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를 만나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필자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반성하며 눈물의 고백을 하였다. 그리고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 이렇게 묻고 싶었다. “목사님, 정말 그 길인가요?” 기성준 작가의 시골교회 이야기는 이렇게 출발한다. 필자의 부끄러운 삶을 뒤돌아보며 목사님들의 은혜로운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시작한 시골교회 이야기는 현재까지 한반도 3배 거리인 3,210km를 다녔다. 전라도 신안의 사치도를 시작으로, 전남 나주, 경남 의령, 전북 김제, 경기도 파주, 전남 여수 6군데의 교회를 다니며 인터뷰한 거리이다. 대략 한반도 길이인 1,178km의 3배의 거리를 다닌 셈이다. 앞으로 20군데 교회의 목사님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지구 한 바퀴거리인 40,000km를 다니는 것이 목표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그 이상의 거리를 다닐 것이다. 그리고 시골교회의 이야기가 끝나면 세계 선교지를 방문하고 싶다. 그땐 “선교사님 평안하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고 싶다. “하나님께서 다시 도시로 부르시면 어떻게 하지요?” 시골교회를 찾아 나서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거리도 멀고, 길도 험해서 고생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떤 목사님은 부름 받아 처음 방문하는 시골길에서 사모님과 함께 걱정거리가 가득했다. ‘이곳에서 어떻게 목회를 하나...’,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어둡고 험한 비포장된 시골길을 운전해 가면서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았다. 다른 한 목사님은 외국선교를 마치고 시골에 개척을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서 목회자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만 일어날 법한 따돌림 당하는 것을 한 마을에서 목회자 가정을 대상으로 따돌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인터뷰 중에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고백하셨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목사님들의 고민거리들을 다 해결해 주시고, 오히려 더 큰 은혜로 채워주셨다. ‘이곳에서 어떻게 목회를 하나’라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다시 도시로 부르시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요.”라는 고백으로 바꾸셨다. 또 걱정되었던 자녀들 교육문제도 도시보다 더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행복해하는 자녀들을 보며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셨다.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분노의 마음이 아닌 용서의 마음을 허락하셨다. 목사님은 “나 한 몸 천국 포기하고 저 사람들을 모두 천국을 보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라는 고백을 하시며 그들을 섬기시고 계신다. ▲ 의령마산교회 지영주 담임목사님과 함께 ▲ 전라도 신안 사치도에 위치한 사치시온산교회 예배 모습 시골교회 탐방이야기는 통일시대의 가이드가 될 것!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시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통일의 비전을 가지고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를 전공하였다. 대학생 때는 통일부장관상을 포함하여 정부기관의 상을 5회나 수상하였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독서능력이다. 그들이 필요한 독서능력을 돕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독서법부터 바꿔라>를 집필하였다. 독서의 능력은 당연히 성경을 읽는 능력을 키우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독서모임에서 청년들이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은 확신이다. 매년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청년들과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면서 성경을 읽는 청년들을 만났다. 당시 성경도 안 읽고 책도 안 읽는 필자의 모습이 하염없이 부끄러웠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도 독서를 하기 시작하였고, 매일 책 읽기와 성경 읽기를 실천하면서 책을 집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제는 책 읽기와 성경 읽기를 권장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고, 북한에도 책 읽기와 성경 읽기를 알릴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필자의 통일의 비전은 시골교회 이야기에도 당연히 이어진다. 시골교회 목사님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시대 속에서 핍박과 배척당하는 모습을 보며 통일 이후 북한선교활동에서 시골교회 사역과 같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생각은 시골교회의 사역이 분명 통일 이후 북한 선교의 가이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더 나아가 시골교회에서 만난 은혜의 이야기가 북한에도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껏 만난 시골교회 목사님들의 얼굴에는 미소와 웃음이 가득했다. 힘든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미소와 웃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 믿는다. 은혜로운 시골교회의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추천을 해도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을 보는 이들의 중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와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기성준 작가의 시골교회 이야기를 위해 중보를 부탁드린다. ▲ 하진형 기자(왼쪽)과 함께 ◇ 기성준 작가를 소개합니다. <독서법부터 바꿔라>를 집필한 기성준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시기에 교회(당시 장유제일교회)에서 떠나는 중국선교여행을 통해 통일의 비전을 발견했다. 선교여행을 통해 압록강을 탐방하면서 북한주민들과 북한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야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20대 초반에는 유스미션 선교팀과 함께 북한 금강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은혜로운 경험을 체험하였다. 이후 20대 후반에 <독서법부터 바꿔라> 책을 출간하여 작가로 데뷔하였다. 그가 쓴 저서는 Yes24서점과 알라딘서점에서 자기계발 Top100위안에 들었으며, 두 번째 책인 <글쓰기부터 바꿔라>는 Yes24서점 ‘삶을 바꾸는 글쓰기’에 선정되었다. 기성준 작가는 대한민국이 ‘독서 잘하는 민족 1위’와 ‘성경 잘 읽는 민족 1위’라는 비전을 품고 3년 동안 80여개의 도시를 다니며 연간 200회 이상의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 오피니언
    2017-02-03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아버지 고 탁명환 소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점에 불쑥 등장하곤 한다. 지난 해 말부터는 최태민 행적과 관련해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선친이 최태민을 조사하고 남긴 자료들이 최태민이 누구였는지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일차자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 아픈 기억이고 현실(現實)인데, 세상은 진실(眞實) 규명이라는 명분으로 최태민을 조사했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와 자료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물론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선친은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이단단체에 속한 한 괴한의 칼에 돌아가신 선친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마다, 선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에 무덤덤해지기까지는 아마도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김포공항을 갈 때 마다 멈춰서 생각에 잠기곤 하는 장소가 있다. 국내선 출국장 앞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유학을 떠나는 날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던 곳이다.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일 년 뒤에 아버지는 우리 가족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버지의 미소 띤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널찍한 품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체취도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아버지처럼 이단 강의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그곳에 가게 되면 (물론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이 미미하나) 잠시잠깐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하게 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곳이지만, 나에게는 선친과의 마지막 포옹의 애틋한 기억이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단 두 차례 꿈에서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두 번 모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번은 돌아가신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건강이 많이 힘들어, 설교를 하다가 몇 차례 쓰러지기도 했을 때였다. 두 번째는 지난 해 초였다. 이런저런 이단관련 문제로 마음이 힘들 때였다. 이 꿈 역시 생생하다. 아버지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말을 걸었는데도 대답이 없으셨다. 급한 마음에 얼른 뛰어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예전처럼 변함없이 따뜻했다. 그 손을 한참 바라보니, 내 손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 마디도 안 하시고, 그냥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내가 많이 힘들 때마다 꿈속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부족한 아들을 많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 같다. 인생의 힘든 순간이 다시 찾아오면, 아버지를 다시 만나 또 위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중년의 나는 아버지처럼 주름도 많다. 배도 나왔고, 머리숱도 적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 몇 해 더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연배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참 젊어서 하나님 품에 안기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버지를 따라 나도 이단연구를 한다고 버둥거리면서, 피해자의 눈을 통해 이단문제를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단 바로알기’는 ‘이단피해자 바로알기’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로 인해 등 떠밀려 시작한 이단연구는, 이제 우리 가족을 포함한 이단 피해자들의 가정을 지키고, 그 피해를 알리기 위한 절박한 싸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물러설 곳도, 물러설 수도 없다.
    •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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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성서연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승화를 위하여(요한복음 3장 16절)
    1989년에 제작된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를 아시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최고의 명문고교인 <웰튼아카데미>에 <존 키팅>이란 영어선생님이 새로 부임합니다. 키팅 선생님도 그 학교 출신이었지만,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중시하면서, 학생들을 엄격한 규율로 통제하고,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최고가 되도록 공부만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란 유명한 말을 가르칩니다. <카르페 디엠>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오늘을 즐기라>는 뜻입니다. 본래 <카르페 디엠>은 예수님보다 60여년 먼저 태어난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의 한 구절인데, 시인은 쾌락를 강조하는 에피쿠로스학파에 속해 있었기에 미래를 기대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이 공부벌레가 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도록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카르페 디엠은 주어진 시간을 즐기면서 열정적으로 살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혹시 미래를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카르페 디엠은 정말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을 즐겨야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런데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으로 등장했던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2014년에 자살했습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학생들에게 미래를 보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고 했는데, 영화 밖의 배우 로빈 윌리엄스에게도 미래가 없었습니다. 그는 우울증과 파킨슨병을 앓았고, 두 번의 이혼으로 인한 위자료 때문에 경제적으로 핍절했습니다. 그는 희극배우 출신이었지만, 마지막은 비극이었습니다. 그의 주검이 발견되었을 때 손목시계를 양말 속에 넣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는 째깍 째깍 하면서 흘러 오늘과 내일을 보여주는 시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대로 시계가 멈추길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도 많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에게도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궁극적 차원에서 말한다면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만족스럽다 해도, 죽음이 존재하는 한 참된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운 선진국 국민들에게도 슬픔과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에도 죽음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해결하여 우리에게 궁극적 미래를 열어줄 존재는 누구입니까? 그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을 여시고,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이 열림으로써 참 미래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영생으로 나아가는 입구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오늘을 즐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카르페 디엠은 미래가 없는 사람들의 퇴폐적인 쾌락추구가 아니라, 영생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기쁨을 즐기는 차원으로 승화됩니다. 우리들은 오늘을 즐기되 내일을 바라보면서 거룩한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심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하나님과 함께 할 하늘나라의 영생입니다. 그것을 내다보며 오늘 힘들더라도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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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서임중 칼럼] 세움과 무너뜨림
    어릴 때 형과 함께 시냇가에서 모래성 쌓기를 했다. 큰집, 작은 집 지으면서 내 집이 더 좋아, 형아 집이 더 좋아 하면서 모래성 쌓기를 하다가, 형이 내가 쌓은 집을 실수로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 순간 “왜 내가 쌓은 집을 무너뜨렸느냐”고 앙탈을 하면서 우니깐 형도 미안한 마음으로 달래다가 계속앙탈을 부리니 형은 발로 내가쌓은 집과 형이 쌓은 집을 휘휘 뭉개버리고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되잖아.” 하면서 일어서 먼저 가버린 추억이 있다. 그렇다.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앙탈을 부리면서 울었던 어린 시절이지만, 그 앙탈과 울음에는 내가 모르는 무의식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모래성 쌓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너뜨림은 ‘흩뜨리거나 헐어서 내려앉게 하다’라는 말이다. 영어에서 말하는 ‘break, destroy, collapse’라는 단어 뜻하는 것은, 지난 모든 것들을 여지없이 쓸모없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움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올려 바로 서게 하다’이다. 근본을 훼파하거나 파괴함이 아닌 근본으로 다시 돌리는 것이다. 은퇴 후 나는 전국교회를 방문하면서 말씀 사역을 한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생활을 했을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면서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 초청을 받으면서 1년 내내 말씀 사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대형교회이든, 산골 작은 교회이든 교회를 세운 역사가 있기 마련이고 그 세움의 역사는 눈물겹도록 감동스러운 헌신과 봉사와 희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상황도 종종 듣고 보면서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할 때의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는 비록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거할 곳은 하늘나라임을 확신하기에 주님의 재림을 그리움으로 기다리는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러기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위하여 기도하고, 넘어지면 손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더불어의 삶을 기쁨으로 노래했던 행복한 교회 생활이었다. 이것이 세움의 역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삭막한 장터같이 되어가는 느낌, 네가 없어야 내가 있다는 타락한 존재의미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슬픔을 보고, 듣고, 느껴진다. 그것은 사단의 목표가 되는 무너뜨림의 역사다. 로마서를 통하여 일깨워준 메시지처럼 한 사람 아담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죄와 사망이 우리 가운데 거하는가 하면, 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다시 세워지고 의와 생명으로 말미암아 광명한 빛으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기도 하고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세우는 것은 너무도 많은 것, 즉 눈물과 땀과 피와 수고의 대가로 세워지는데, 무너뜨림은 단순한 인간적 소욕 하나로 인하여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마귀로 틈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2절은 우리가 주목할 말씀이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은 χαταρτιαμός(카타르티아모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정치적으로는 연합, 의학적으로는 어긋난 관절, 골절된 수족을 다시 맞추는 것, 찢어진 그물을 깁는 것, 이전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경우에 사용된 단어다. 어근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의 구체적 행동이 봉사(διάκονια)로써 실제적 섬김을 말한다. 섬김의 자세는 하인, 종(διακονος)의 자세로 섬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이다. 이것이 교회 직분의 핵심이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세움이지 무너뜨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자들의 정사(正思)이며, 정언(正言)이며, 정행(正行)이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 교회인 것이다. 세우기 위하여 쏟은 수고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세움이라는 역사 때문에 공동체가 평행감축을 노래하면서 천국생활처럼 일상화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그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 무너짐에는 역사도 없고 기본가치도 없고 배려도 없고 복음의 핵심인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도 없는, 속된말로 표현하면 비인간적이다. 비인간적이란, 다른 말로 동물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그 무너짐의 중심언어에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진정한 개혁은 비판과 부정과 무너뜨림이 아니라 더 나음을 향한 세움의 몸부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스스로를 진단할 수 있는 체계와 능력을 상실했다. 믿음과 은혜라는 용어로 모든 것들을 용해시키는 신비로운 구조 속에서 교회의 본질이 무의식적으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내 것이 아니면 다 틀렸다는 타락한 의식구조에서 나타나는 비판과 정죄와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또 다른 개혁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이 더 큰 아픔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개혁은 구호에만 그쳤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교회, 곧 에클레시아의 현상은 결코 세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십자가 복음의 핵심인 용서와 사랑이 빠진 세움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지금 세우고 있는가? 무너뜨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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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함께 생각해 봅시다] 故 허순길 목사의 장례식을 보고
    영정 앞에 헌화, 바람직한가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불과해 지난 2월 12일 고 허순길 목사의 장례식이 복음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되었다. 고인은 저보다 조금 연하이지만 저와 함게 고려신학교 제15회 동기동창이다. 그 때문에 허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다음 날 오전에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갔다. 의례히 조화가 많이 세워져있을 것을 예상했는데 예상 밖에 조화가 한 개도 놓여있지 않았다. 분위기가 썰렁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빈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인의 영정(사진)도 없고 이름(명패)도 없고 국화(꽃)도 놓여있지 않았다. 부의함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고인의 유족도 빈소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나는 고인의 영정이 있는 곳에서도 그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바로 유족에게 인사(절)을 하거니와 거기서는 빈소의 분위기만 보고 곧 밖으로 나와서 유족에게 인사를 드렸다. 부의함은 없지만 준비한 부의금을 유족에게 전하니 고인의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으셨다. 조화도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것을 고인의 뜻이라고 설명하고 정중히 사양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테이블에 붙어있는 ‘알리는 글’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본 장례식장은 고 허순길 목사의 유언에 따라 부의금과 조화를 사양하오며 영정을 설치하지 않으며 유족에게 위로의 문안하는 것으로 상례를 대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고인은 사후에도 하나님보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날까 하여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장례식도 간소했다. 고인의 약력소개, 추모사, 조사 등의 순서는 일체 없었다. 고인이 생전에 부탁하기를 허 목사는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도록 장례식을 간소하게 거행하라고 하더란 것이다. 장지로 갈 때에도 가족들만 가서 하관하기로 하고 대형버스는 아예 준비하지도 않았다고 하며 조문객들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장의차는 리무진이 아니었고 응급구호차량인 밴이었다. 유족과 친지들은 각기 자기 차량으로 장지로 갔다. 고인의 묘는 평토장으로 하여 비석이 없으면 묘인지도 모를 정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 허순길 목사의 장례식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말만할 것이 아니라 그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헌화에 무슨 뜻이 있는가. 누구에게 바친단 말인가. 쓸데없는 허례허식 아닌가. 사진 앞에 서서 기도하는 그런 일도 하지 말아야한다. 유족이 빈소 안에 있는 경우 들어가자마자 바로 유족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 그것으로 조문이 충분하지 않은가.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이면 기도하면 더 좋겠고...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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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편지는 1998년 창단된 남성보컬선교찬양팀입니다. 이 팀의 멤버인 문지희, 박인규 집사는 노래하는순례자 찬양팀으로도 활동을 하다가 새로운 형태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찬양팀을 재창단해 보다 전문적인 남성보컬팀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문지희 집사는 1981년부터 노래하는순례자팀의 창단멤버이자 단장으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 <그리스도의 편지>팀까지 36년을 한결같이 복음에 대한 열정과 주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찬양사역을 이어왔기에 후배들의 모범이 되는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팀은 바뀌었지만 <노래하는 순례자>의 사역정신을 그대로 이어가서, 개척교회, 군부대, 농어촌 집회 등 힘들고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찬양과 간증으로 기쁨을 전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후진양성에도 늘 노력하는 팀으로서, 주요 집회 때마다 <Gospel Love>라는 이름으로 신인 사역자들을 동참시켜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각종 기독교방송 프로그램에의 진행을 맡아 전파선교사의 역할도 담당하는 부산, 경남지역의 문화선교에 많은 일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한편 <소나무 선교회>라는 선교팀을 조직하고, 홍보대사를 맡아 해외선교의 귀한 일을 담당하는데 주로 태국에 개척교회 설립, 학교후원, 현지인교회 후원을 하고 있으며 매년 태국을 찾아가서 찬양으로도 돕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03년부터 매년 이어온<사랑의 쌀 나누기>행사를 올해에는 1월 21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개최하며 많은 사역자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주고, 또 후원과 팀이 모아온 재정을 합쳐 쌀300~350포대를 지역사회에 나누어 주는 의미 있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성도이지만 그 사역하는 모습과 열정은 어느 목회자보다 더 뛰어나며, 화려한 무대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귀한 복음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결같이 사역을 담당하는 귀한 사명자들입니다. (집회문의 :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부산기독문화사역자 일정>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2월5일(주일) 오후1시30분 : 한사랑교회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은성교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2월5일(주일) 오전11시30분 : 초광교회 2월12일(주일) 오전11시 : 누리교회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이진용맘병원 3. 김인희 찬양사역자(010-2843-3872)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신흥교회 4. 이창주 찬양사역자(010-8516-2594)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사랑과은혜의교회 <김인희 1집 음반 '기쁨 안에' 발매 소식> 김인희는 클래식 보컬리스트임과 동시에 CCM 보컬로 새롭게 활동영역을 넓혀 전문 찬양사역자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이번 음반을 통해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의 목소리로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기쁨안에 모든 것 담아내신 주님을 노래하고 있다. 민호기 목사의 프로듀싱 아래 국내 최정상의 뮤지션 강수호, 이태윤, 임선호 등의 연주와 민호기, 이권희, 이윤경, 손상민 등 여러 명의 작곡가가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색채를 드러내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컨템포러리한 워십뮤직의 홍수 속에서 단비같이 촉촉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셔 줄 위로의 메세지와 그녀만의 목소리로 가슴 따뜻한 찬양의 향연이 펼쳐진다.
    • 문화
    2017-02-03
  • [인터뷰] 부산장신대 이사장 민영란 목사
    부산장신대학교 법인 이사회는 지난 1월19일 제123차 이사회에서 그동안 궐위 중이었던 이사장직에 민영란 목사(금곡성문교회)를 재신임했다. 이날 참석이사 12명(2명 불참)은 새 이사장에 민 목사를 만장일치(찬성 12표)로 가결했다. 민 목사는 앞으로 4년간 부산장신대학교 법인 이사회를 이끌어 가게 된다. 지난 26일 금곡성문교회에서 민 목사를 만나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동안 이사장 선출로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만장일치로 이사장에 선출되셨다. - 먼저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우리 이사님들의 결단에 나도 놀랐고,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리고 싶다. 작년 말 이사장 선출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고, 모두가 학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의견이 달랐던 것 뿐이다. 서로간 대화를 통해 오해도 풀었다. 이제 학교 발전을 위해 이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될 시점인 것 같다.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앞으로 4년간 이사장으로 봉사하게 된다. 많은 현안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사장이 생각하는 가장 큰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학생수급이 가장 큰 현안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구절벽시대에 학생 수급은 대학의 존폐여부가 달려있다. 그동안 부산장신대학은 학생수급에 있어 나름 선전해 왔다고 본다. 하지만 금년은 많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 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책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어떤 대책이 요구되나? - 금년까지 학부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신대원의 경우 1/3 정도가 미달 상황이다. 현재도 학생모집을 하고 있어, 최종적인 상황은 학생모집이 끝나봐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년과 달리 많이 힘들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학생수급이 안된다면)구조조정을 해야 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구조조정이 힘들다면)교직원의 임금이라도 줄여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학사일정을 총장과 교수들에게 맡겨왔다. 앞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사회가 나서야 한다. 학교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감독을 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총회 안에서 정책기획기구개혁위원회가 구성되어 신학교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부산장신대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총회정책기획기구개혁위원회가 구성되어 지난 2년간 연구해 왔다. 크게 총회본부, 회의안, 그리고 신학대학 통폐합 등이 연구되어 금년 총회에 보고될 예정이다. 나도 이 위원회에서 서기로 활동 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학대학 통폐합 문제는 쉽게 결론이 안 날 것이라고 본다. 크게 3가지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안다. 첫째 자연발생적인 통폐합, 둘째 광나루를 법인화하고, 나머지 지방 신학교를 캠퍼스화 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역별로 통폐합 하는 문제가 상정될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문제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어떤 결론에 도달 할 경우 반발이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이 있다. 부산장신대의 경쟁력은 어떠한가? -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 중 교육부가 평가하는 신학교 중에서는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표가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총회산하)지방 어떤 신학교와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고 자신한다. 지난 이사장 시절 도서관 건축을 공약했는데, 실행 되지 않았다. 도서관 건축은 물건너 가나? - 아니다. 이사회가 결의했고, 이번 임기 중에 꼭 추진하겠다. 그동안 구성원들 중에서 일부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현재 불경기 상황이고, 대학에 빚이 생길 경우 학사운영에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였다.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이해는 한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도서관 건립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나름 고민했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 임기 중에는 꼭 건축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 끝으로 부산과 경남지역 교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부산과 경남은 복음의 불모지다. 그만큼 부산장신대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의 훌륭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대학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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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이단 하나님의교회 부울경 지역 현황(1)
    교주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의 부인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하나님의교회(안상홍 증인회)가 급성장을 하고 있다. 이단 전문가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는 “앞으로 신천지보다 하나님의교회 문제로 한국교회가 골머리를 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교회가 신천지 문제에 매달려 있는 사이, 하나님의 교회는 그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하나님의교회 측은 자신들의 교세가 이미 2008년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전국에 약 400여 개의 성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단 전문가들은 100만 명 수준은 아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탁 교수는 “현재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의 신도수가 수백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단연 국내 최대 이단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주력 연령층이 30~40대라는 사실”이라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더욱 높게 예상했다. 하나님의교회의 급성장 비결은 다양한 봉사활동과 적극적인 홍보활동이다. 국내외 대형 국제행사에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여론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이들은 세월호사건 때도 팽목항에서 약 5개월간 식사 봉사를 해 왔고, 최근에는 영국여왕상(자원봉사 부분)까지 수상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교회는 예배형식 등이 일선교회와 큰 차이가 없어, 기존 성도들이 현혹당하기 쉽다. 본보는 개신교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고, 독자들에게 알권리와 한국교회 공익을 위해 부울경 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을 파악해 왔다. 먼저 첫 시간으로 ‘부산지역 하나님의교회’들를 고발하고, 다음호에는 ‘울산과 경남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을 알리고자 한다. 본보가 조사한 바로는 이외 하나님의교회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몇 개 더 있다. 부산시 하단동에 위치한 강촌 건물이 하나님의교회로 넘어갔고, 연산동 오마이랜드 찜질방 건물도 하나님의교회에 넘어갔다. 현재 이 건물들은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 하니님의교회 간판을 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등기부등본 상에는 ‘소유자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대표자 김주철’로 되어있다. 명백한 하나님의교회 측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교회 간판을 걸고 있지 않아 이번 보도에서는 제외한다. 그 외 몇 개 건물들이 제보에 의해 조사 중이다. 조사결과 확인될 경우 본보가 사진과 함께 보도할 것을 약속한다. 한편, 하나님의교회 건물이나 혹은 이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다면 본보 홈페이지(www.kcnp.com) 기사제보란이나 이메일(kcnp1@hanmail.net)로 제보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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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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