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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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봉사단, 집중호우 피해지역 구호활동 시작
    연일 기록적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충청과 전북,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당 100mm 이상의 장맛비가 퍼부으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충청과 전북, 경북에는 산사태위기경보가 가장 높은 '심각' 단계를 유지 중인 가운데, 그 밖의 경기 남부와 강원 남부, 남부 곳곳에도 산사태특보가 내려져 있다. 한국교회봉사단(총재 김삼환 목사, 이사장 오정현 목사, 대표단장 김태영 목사, 이하 한교봉)은 전체 150가구 중 수해피해 100여 가구 완전 수몰 13가구가 있는 경북 안동(위동)과 영양(입암)을 11일(목요일) 먼저 방문하여 수해피해 상황을 살피고 위동교회(정영례 목사)에서 피해마을 주민들에게 점심과 저녁식사 지원을 진행했다. 이번 수해현장 방문은 한국교회봉사단 부본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대전시민교회(김동국목사) 성도들이 함께 참여함으로 수해민들의 아픔을 함께 돌보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15일(월)에는 영양(입암) 지역에서 희망밥차 운영을 통하여 피해가 있는 각 지역의 교회들과 한국교회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을 시작으로 구호활동을 진행했다. 한교봉 단장 김태영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연환경을 우리가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하여 발생한 자연재해임을 우리가 다시 인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피해당한 지역을 돕기 위해 한국교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하루아침에 삶이 무너진 이재민과 피해 교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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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5
  • 제37회 고신전국 장로부부 하기수련회
    고신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장상환 장로) 주최 제37회 장로부부 하기수련회가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개최됐다. 첫날 개회예배에서는 회장 장상환 장로의 인도로 직전회장 허창범 장로의 대표기도와 총회장 김홍석 목사가 ‘기억하고, 다시 기대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총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옛날 일을 기억하고, 보여주고, 말해 줄 수 있는 장로님들이 되자”며 교회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일 때 한국교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석부회장 이연호 장로의 사회로 진행된 개회식에서는 회장 장상환 장로의 개회선언과 대회사로 문을 열었다. 장상환 장로는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의 대가 영원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겨 주님이 찾으시는 그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후 강원특별자치도 김진태 도지사의 환영사와 장로부총회장 박영호 장로의 격려사,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 유연수 목사를 비롯한 교단 산하 기관장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번 수련회에서는 주강사로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저녁집회)와 서울보은교회 손덕현 목사(새벽집회)가 은혜로운 말씀을 전했고, 특강으로는 조정환 목사(국제어린이전도협회 총재)가 ‘교회미래 이대로 좋은가?’, 김성진 목사(목회컨설팅연구소 소장)가 ‘한국교회의 희망, 담임목사 청빙 이렇게 하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또 OPEN 음악회(안민 장로, 정진희 권사)와 노회별 찬양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참석자들에게 영적재충전의 시간이 됐다. 마지막 날 폐회예배에서는 잠실중앙교회 최정훈 목사가 말씀을 전했으며, 노회별 찬양경연대회 및 동원상 시상과, 장로은퇴자 근속표창(30년, 25년, 20년) 후 회장 장상환 장로의 폐회선언으로 수련회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번수련회는 1411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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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5
  • 부산목사찬양대 ‘파노플리아 콰이어’ 창단
    부산목사찬양대 ‘파노플리아 콰이어’가 지난 7월 8일(월) 창단감사예배를 갖고 시작을 알렸다. 지난 8일(월) 오전 11시 부산서문교회(담임 박원주 목사)에서 열린 창단감사예배는 김영완 목사(단장, 하단교회)의 인도로 김병수 목사(운영위원장, 샘물교회)가 기도, 정영덕 목사(최연장 단원, 부산대교회 원로)가 성경봉독, 안용운 목사(고문, 온천교회 원로)가 ‘찬송의 제사, 입술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안용운 목사는 설교에서 “목사찬양대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전하며 이름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 파노플리아를 입는 찬양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박진생 목사(가덕중앙교회)가 축가, 박남규 목사(부산성시화운동본부 본부장)와 안민 장로(고문, 전 고신대 총장)가 축사를 전하고 이성구 목사(고문, 시온성교회 원로)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단장 김영완 목사는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사들이 함께 찬양할 뿐만 아니라 부산교회의 부흥과 연합을 위하여 기도하겠다. 또 찬양을 통해서 교회를 섬기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있으면 섬기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부산목사찬양대는 1993년 조직돼 약 20명의 단원이 1년간 준비해 창단연주회를 가진 후 해체 되었으나 이후 2018년, 2019년, 2023년, 2024년 부활절연합예배를 섬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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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1
  •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
    예장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박영호 장로) 주최 제50회 전국장로수련회가 3일부터 5일까지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첫날 개회예배에서는 회장 박영호 장로의 인도로 직전회장 황진웅 장로의 대표기도와 부총회장 김영걸 목사(포항동부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꿈이 있다. 바로 ‘부흥’이란 단어다. 한국교회 위기를 부흥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특강시간에는 증경총회장 이순창 목사(연신교회)가 ‘다시 말씀으로 다시 기본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순창 목사는 “지금의 위기 상황은 세상에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새로운 영적 기회다. 우리는 어둠의 위기에 매몰되어 스스로 침체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밝은 빛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며 기도하자"고 전했다. 저녁 수요예배 시간에는 손병렬 목사(포항중앙교회)가 영성집회에는 최동주 목사(석천제일교회)가 말씀을 전하면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둘째날에는 다양한 특강이 이어졌다.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와 박대준 목사(여의도제일교회), 김진오 사장(CBS), 임종환 교수(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김재원 아나운서(KBS), 장승천 목사(반석교회)의 특강과 은혜의 시간(권위영 목사), 영성집회(김하나 목사), 찬양콘서트가 은혜가운데 열렸다. 마지막 셋째날에는 폐회예배(말씀 류요한 목사)를 끝으로 제50회기 전국장로수련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금번 전국장로수련회는 약 3,500여명이 참석했으며, 8가지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예배’, ‘이웃 사랑 실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저 출산 고령화 정책 마련’, ‘남과 북이 복음으로 하나되기’, ‘생태환경의 보호를 위한 작은 행동 실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당사자들 간의 대화와 소통 촉구’, ‘사이비 종교 집단의 포교활동 강력히 대처’, ‘109회 총회가 성총회가 되도록 간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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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0
  • 이단 구원파 ‘IYF 월드캠프’ 반대 시위 나선 부산교계
    이단 구원파 ‘IYF 월드캠프’가 오는 7월 21일부터 2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예정된 가운데, 부산교계가 유치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 벡스코 앞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박남규 목사)와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강안실 목사), 부산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문동현 목사), 김천시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명섭 목사)는 8일 브니엘교회(김도명 목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YF 월드캠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들 기관들은 “기쁜소식선교회는 한국교회가 구원파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로, 다양한 국제 행사를 포교에 활용해 오고 있으며, 매년 여름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되는 ‘월드캠프’가 대표적인 행사”라며 “한국교회의 소극적 대응으로 인해, 구원파 ‘월드캠프’는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구원파 포교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만큼은 ‘월드캠프’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소 소장 탁지일 교수는 “최근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기쁜소식인천교회에서 발생한 여고생 사망사건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기독교 사학인 김천대학교를 구원파 박옥수가 인수한 일로 인해 기독교계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구원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통해 대학생들과 청년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날 함께 참석한 김천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명섭 목사는 “박옥수의 고향이 구미이고, (구미와)가까운 김천에는 IYF 김천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번 김천대 인수 문제로 김천이 IYF의 성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를 당부했다. 김 목사는 “김천대에 신학과가 설치될 예정인데, 그렇게 될 경우 구원파 교리의 합법적인 확산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현재 김천지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4일 김천지역 목사, 장로 연합기도회를 개최하고, 김천대 이사회의 독단적인 결정(박옥수 이사장 선임)을 철회 할 것을 주장했다. 또 김천시기독교총연합회 내 이단대책기구를 상설기구로 조직하고, 산하 교회에는 현수막을 자체 제작하여 (김천대 인수)반대여론을 확산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명섭 목사는 “대학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경제논리로 접근하고 있고, 김천대 동창회도 박옥수 이사장 선임을 환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고 예고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월드캠프가 열리는 벡스코로 이동해 대관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쳤다. 탁지일 교수와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성창민 목사, 대외협력단장 김성은 목사가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쳤으며, 시위 후 벡스코 사무실로 이동해 박옥수 구원파 IYF 월드캠프 행사 대관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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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송길원 목사, 신간 '뭐 하니? 멍하니!' 출간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가 신간 <뭐하니? 멍하니!>를 출간했다. 수련을 통한 알아차림이 명상이라면, ‘멍 때리기’는 뇌의 멈춤 혹은 비움을 통한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이 있으니 ‘멍상’은 명상이다. 저자는 이를 ‘영성 공간’이라 부른다. 저자는 한때 지독한 일중독 환자였다. 불면증과 두통이 이어졌다. 성취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해선 유튜버까지 가르치려 들었지만, 쉬고 잠드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멍 때리기를 만났고, 멍 때리기 예찬론자가 됐다. 멍하니는 매일매일 일에 쫓겨 사는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멍하니는 일에 치여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빠지기 쉬운 이들을 위한 ‘일상의 쉼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멍 때리기에는 ‘숲 멍’ ‘불 멍’ ‘물 멍’ ‘비 멍’ ‘바람 멍’ ‘잠언 멍’ ‘무덤 멍’ ‘웃음 멍’ ‘꿀잠으로 가는 멍 때리기’가 있다. 하지만 멍하니는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생각의 진공 상태를 만드는 멍 때리기는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생각을 하는 능동적 비움이자 창의성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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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서임중칼럼] 배신의 정치
    요즈음 뜬금없이 여의도 발 ‘배신의 정치’가 무더운 날씨보다 더 핫하게 국민의 일상을 달군다. 너나없이 모이면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가운데서 회자하는 말이다. 당권을 가지려는 후보들이야 무슨 말을 안 하겠는가만 그래도 후보들은 상대방 공략의 수단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드는 듯한 말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배신은 인간사에 더 없는 추한 용어다. 배신의 몰락은 역사가 정의한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배신의 정치 종말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어쩌면 국민의힘 당원들은 듣고 보노라면 이맛살 찌푸리게 하는 말일 것이다. 배신이라는 용어를 입에 올리는 것은 정치권의 막판 어법이다. 더더욱 한솥밥을 먹으면서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함께 한 밥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어야 할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런 말은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생각으로 삼켜야지 입으로 내뱉으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된다. 하기야 우리 정치사에서 20세기 최고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 같은 정제된 어법을 사용하는 지도자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여의도 1번지는 난장판이다. 국민은 정책대결을 원하고 품격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성경에서 배신의 정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다. 구약에서는 아히도벨이고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가 배신의 아이콘이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정책보좌관이었다. 그의 모략은 가히 신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뛰어난 모사(謀士)였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 반란의 주모자가 되어 다윗을 배신하고, 자신의 모략으로 압살롬을 세우려 하다가 실패하게 되므로 고향 성읍으로 돌아가 목매어 자살한 성경 최초의 고의적 자살의 주인공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하나로 재정책무를 맡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제자였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되어져가는 상황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의리를 버리고 은 30에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고 후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목매어 죽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판자 가룟 유다’로 기록되었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죄인이자 악마의 하수인,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배신 정치의 몰락을 역사에 거울처럼 남겼다. 대한민국의 배신 아이콘은 이완용이다. 조선왕조 말기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이완용은 친미파의 주동 인물이 되었다. 소련이 국제정세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러시아어를 익혀 친소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노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게 되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우리나라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때는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매국노라고 말한다. 배신(背信)이 무엇인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믿음과 의리를 저버림이다. 배신의 정치가 회자하는 여의도 1번지의 소위 선량(選良)들에게 묻고 싶었다. 국회의원 선서를 한 그 내용을 지키고 있는가? 예라고 답할 수 없다면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파편 같은 말이지만 “사심의 정치가 배신의 정치” “차별화와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 “배신의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 “배신 말아야 할 대상은 국민” 등 당권 후보들의 배신의 정의를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위한 사심(私心)의 수사(修辭)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나무 한 그루를 간과하지 않고 언제나 숲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성찰을 통해 배신 하지 않아야 할 대상을 생각한다. 국민은 그런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모세가 그랬다. 다윗과 사도바울이 그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본이 되었다. 혜안(慧眼)이 있어야 통관(通觀)이 되고 통감(通鑑)의 지혜를 갖게 된다. 조급하면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다 보면 낭패를 보기 쉽다. 어느 날 은퇴를 앞둔 후배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한 마디로 배신의 상처를 안고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성직을 내려놓으려 하는 아픈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 목사님 손을 내 손으로 감싸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하는 것 다 아시면서도 생애 마지막 만찬석까지 가셨는데 목사는 거기까지는 가야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나를 바라보는 목사님의 얼굴은 지칠 대로 지친 아픔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 목사를 지치게 하는가?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나는 잘 표출하지 않았던 나의 삶 한 부분을 들려주었다. 은퇴 10년이 된 오늘도 나는 뇌신경암과 투병하면서도 한 주도 쉼 없이 전국 방방곡곡 초교파적으로 말씀 사역을 하면서 포항중앙교회 원로 목사로 오늘을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와 중앙교회 성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여정에서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하고 슬프고 치욕적인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슬프고 아파서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배신이라는 단어를 내 입에 단 한 번도 올리지 않고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더 나아가 여전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분명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사도바울이 그토록 배신을 당하면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중심에는 포항중앙교회에 대한 나의 믿음과 의리를 지켜야 할 원로목사로서의 절체절명의 사명 때문이다. 네가 배신했다고 나도 배신하는 삶은 똑같은 배신의 몰락자가 된다. 어쩌면 화나고 속상한 아픔이 더 많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감사한 것 한 가지를 붙잡고 오늘을 살아간다. 그것이 믿음의 정도(正道)를 정행(正行)하는 것이다. 새로운 결단의 각오를 하고 일어서는 목사를 내 품에 안아주면서 눈도 젖고 마음도 젖어 들었다. 아름다움은 我에 접미사 ‘답다’의 합성어다. ‘나’다울 때 아름다운 것이다. 추하다는 것은 酉(닭유-술병을 뜻함)와 鬼(귀신귀-가면을 뜻함)의 합성어 醜(추할 추)다. 술병을 들고 가면을 쓰고 헛소리하면서 비틀거린다는 뜻이다.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국민은 아름다운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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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성서연구] 무엇을 나타낼 것인가
    사회생활은 남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과정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악수하고 인사하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명함입니다. 가능한 대로 명함에 많은 것을 적어 자신을 나타냅니다. 명함이 없는 저는 종종 명함을 원하는 이를 만나면 죄송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건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단순히 말하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마음도 섞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이런 마음은 옳은 것일까요? 모세는 나타낼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애굽의 궁궐에서 사십 년을 보냈으니, 자신을 소개할 만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학벌도 최고였을 것입니다. 여러 기관에서 일도 했을 것입니다. 군대 경력도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을 때, 그는 이런 내용을 백성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강에서 건져져서 공주의 아들이 된 신비롭기까지 한 일, 애굽 궁궐에서의 일을 말했다면 훨씬 더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만 했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것만 나타내셨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면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애굽 궁궐에서 배운 것 때문이라는 말씀 따위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친구처럼 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세가 특별한 것은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특별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모세로 보였던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이 광채가 났는데, 그 광채를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 광채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나타내려 합니다. 모세가 숨긴 것을 우리는 드러내려 합니다. 가문, 학벌, 재산, 지식, 경력, 지위 등으로 우리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나타내야 할 것은 그게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길 원했습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예수님의 생명을 보길 소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늘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졌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바울도 기꺼이 죽음의 고난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11절에 다음 말씀이 있습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믿음으로 살게 하는 복음의 직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 배어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가진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면, 어찌 복음을 가진 성도의 얼굴에 빛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7~8절입니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성도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 생명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새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진 인본주의자가 되곤 합니다. 이제 우리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주님의 광채만 나타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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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시사칼럼] 탄핵과 성경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현안은 “탄핵”입니다. 화제성에서나 대중성에서나 필적할만한 소재가 전무합니다. 다양성이라는 요건도 충족하였습니다. 비록 자진 사퇴하여 무산되고 말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향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야당대표를 수사하던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 해도 압권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움직임입니다. 지난 달 20일에 국회의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 대통령탄핵청원이 올라왔고, 공개된 지 사흘 만에 5만이 넘는 동의가 이어지며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뜨거운 7월을 들어서자마자 그 숫자가 100만을 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가치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여기서 탄핵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의사를 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탄핵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탄핵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탄핵제도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편추방제도, 키케로의 탄핵 연설), 근대적 의미의 탄핵은 14세기 말 영국의 에드워드 3세(1327-1377) 시대에 발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권영성, 헌법학원론(2002), 855). 주로 고위공직자들의 비행과 부정을 통제하기 위해 법제화된 이후 영국에서는 1805년 멜빌(Melville) 사건(하원 가결, 상원 부결)에 이르기까지 70여 건에 달하는 탄핵소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헌법 시행 이후 20건 가까이 탄핵소추가 이루어져서 유죄의 결정으로 파면 당한 공직자도 4명이나 있었고, 특히 1868년 앤드류 존슨과 1974년의 리처드 닉슨, 그리고 1998년의 빌 클린튼과 2019년과 2021년의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절차도 진행되었는데 국회에서 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 사퇴한 닉슨을 제외하고 세 명에 대한 탄핵안은 하원에서는 가결되었으나 상원에서 부결되는 전례를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5년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이 의정원(오늘날 국회)의 결의로 탄핵되어 면직되는 일이 있었고,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으며, 20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최종적으로 인용되어 대통령이 현직에서 또 다시 파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탄핵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구 간에 힘의 균형과 권력의 견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탄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박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공안검사 출신으로 보수 성향이면서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안창호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성경을 인용하여 교회를 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그는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 안전을 제고하여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다(이사야 32장 16절-17절 참조). 따라서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 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 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라는 표현과 함께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성경 말씀이다. 불법과 불의를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라 하여 성경 구절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보충의견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와 공의”(사 32:16-17)와 “공법과 정의”(암 5:24)라는 개념과 그 가치는 헌법에서도 성경에서도 동일하게 중요시하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유래를 따질 것 같으면 성경에서 헌법으로 흘러갔다고 해야 하고, 또한 포섭과 적용의 범위도 더 넓다고 해야 합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비록 현행법으로 다스리지 못해도 하나님의 법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가 법으로는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탄핵이 가능하다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 또한 사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의와 불순종으로 일관하던 그를 향해 다윗을 비롯한 신하들은 행동을 개시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탄핵하시고(삼상 15:23)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시지 않았습니까?(삼상 16:12) 그러므로 악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이 땅의 권세들이여, 설령 실정법의 심판을 모면한다 하더라도 절대자의 탄핵만은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돌이켜 공정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선과 정의를 이 땅 가운데 물 흐르듯 해주기를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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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은혜의말씀] 종말론적 삶 (고린도후서 6:1~2)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는 ①지금 ②여기 ③당신이다. 금은 세 가지가 있는데 소금, 황금, 지금이다. 소금은 간을 맞추고 맛을 내고, 황금은 변하지 않으며 비싸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금 중에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고, 바로 오늘 현실에 충실한 것이 가장 지혜롭다. 순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세월이 되고, 세월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인생이라는 시간여행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기억을 쌓아가면서 오래오래, 길게 지낸 사람은 그 시간이 추억이고, 행복이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과 아픈 기억을 남기면서 오랜 시간을 버틴 사람은, 그 시간이 상처가 되고 내면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사탄 마귀는 시간차 공격을 한다. 성도가 잠시 막간이라도 방심할 때는 어김없이 빈틈을 파고 든다. 호시탐탐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광명한 천사처럼 화장을 하고 분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환장을 하고 덤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다. 미루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현대적인 죄악이라고 한다. 게을러 터져서 미루다 보면 결국은 거짓말하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고 결국은 죄를 짓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에 보자는 사람 안 무섭고 다음에 잘 해준다는 사람 별 볼 일 없다고 한다. 성경의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에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칭찬 받은 이유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생은 풀과 꽃같이 시들고 마르고, 아침안개와 같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때를 분별하며 살아가라. 인생에서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당신 중에 여기이다. 바로 필드, 현장이 중요하다. 선교현장에 가면 거기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생한 성령의 역사가 있다. 기도의 현장, 사역의 현장을 확보하라, 확대하라, 확신하라. 모세의 호렙산, 세례 요한의 광야가 현장이다.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야 답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위치선정이 탁월하다.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지금 여기, 어려운 골짜기, 징글징글한 현실, 현장을 떠나지 마라. 현장이 혼란하고, 신통찮다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야 한다. 고약한 현장, 징글징글한 현장을 뚫고 나가면 그때 노하우가 생기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시험을 감당케 해주시고, 자신감이 붙게 된다. 살아계셔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신앙이 쌓이는 것이다. 죄인의 길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는 가지도 말고, 서지도 말고, 복 있는 자리를 찾아서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 축복의 자리를 지킴으로 복의 길목을 지키게 된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그 땅 가운데 그 사람을 들어 쓰신다. 오늘이라 일컫는 지금 하루를 은혜의 때, 절정의 날로 삼아서 베스티스트, 모스티스트한 삶을 이 땅에 건설하고 주인 닮은 정원을 조성하고 아름다운 신망애인 공동체를 만들어라. 세 번째는 당신이 소중하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 다 복을 받아도 내가 망한다면 의미가 없다. 우선순위에서 예수님이 첫 번째(Jesus first), 다른 이웃은 두 번째(Other second), 당신은 세 번째(You third)일 때 기쁨(Joy)이 찾아온다. 이 사람 말을 듣고 이리가고, 저 사람 말을 듣고 저리가고, 다른 사람들 말 때문에 내 마음을 어지럽힐 이유가 없다. 마음을 챙겨서, 마음을 다하여서 오직 주만 따라가리라.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시고, 나의 집안을 아시고, 나의 체질을 아시고, 내게 맞춤형, 주문제작형, 기능성 복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것처럼 주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당신이 딛고 서 있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바로 당신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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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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