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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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감도는 여전히 꼴찌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원장 신승민 목사, 이하 기사연)가 지난 6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사회문제 인식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기독교인 1058명, 비기독교인 1094명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다.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종교 호감도에서는 여전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불교(52.9%) 천주교(48.5%) 원불교(17.9%) 개신교(14.3%) 천도교(10.1%) 이슬람(5.9%) 샤머니즘(4%) 순으로 호감을 느낀다고 응답해 주요 4대 종교중 꼴찌를 기록했다. 호감도가 낮은 이유는 지나친 전도(31.8%) 부패(25.9%) 차별과 혐오 발언(13.3%) 독선(10.9%) 비합리성(7.9%) 사회적 책임 결여(6.5%) 비민주성(2.4%)으로 조사됐다.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좋은 교회’의 특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봉사와 구제’(42.5%) ‘경건한 예배와 말씀’(12.8%) ‘서로 돌봄’(9.2%)이라고 응답했다. 기독교인의 ‘탈교회적’ 성향도 두드러졌다. ‘종교 단체에 소속하지 않아도 종교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개신교인 절반 이상(58.9%)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기독교인 10명 중 3명(30.9%)은 출석하는 교회가 없는 ‘가나안 성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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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5-01-10
  • 막말 퍼레이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전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가운데, 일부 이단성 논란에 휩싸인 인사들의 막말이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씨는 지난 12월 29일 긴급 생방송을 통해 “이번에 발생한 무안공항 사고는 주사파, 종북좌파 등 이런 문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영적으로 보면 사탄이 오늘 비행기 사고를 일으켰는데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주요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다락방 류광수 씨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가르켜 “나라가 미쳐서 항공기 추락과 같은 재앙이 일어났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의 이 같은 발언이 세상에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이제는 크게 놀랍지도 않다”며 다만 이 사람들이 발언들이 한국교회의 호감도를 추락시킬 것 같아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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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5-01-10
  • 무안 여객기 참사에 통합 교단 교인 7명 희생
    예장통합 총회 사회봉사부(부장 김선우)가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해 지역노회에 확인한 결과 순천남노회 소속 교인 2명, 전남노회 소속 교인 4명, 광주노회 소속 교인 1명이 이번 여객기 사고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순천남노회 교인 2명은 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한 은퇴장로 부부인 것으로 전해졌다. 총회 사회봉사부는 여객기 참사 긴급구호금 500만원으로 지역 목포노회를 통해 유가족과 자원봉사자 물품을 지원했고, 추후 유가족을 위한 위로와 애도 기도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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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5-01-1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좌파 공산주의자가 된 이재복 목사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 중인 민주노총 조직국장이 북한 공작금 수수혐의 등으로 재판받는 모 목사와 10여 차례 통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 모 목사는 북한공작원 리광진과 접촉했는데, 2015년 4월 쿠알라룸프르에서 미화 1만8900달러의 공작금을 받았고, 또 다른 B목사와 함께 북한 공작원과 회합, 통신하고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선전한 혐의로 체포된 인물이라고 한다. 문제는 목사들 가운데서도 3대 세습 독재정권을 찬양하고 공작금을 수수하는 등 간첩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B목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되어 2017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앞의 모 목사는 북한 공작금 관련 기소가 늦어져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2023. 1. 25). 이와 같은 기독교계의 공산주의자는 일제하에서부터 있어 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 난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도 적지 않았다. 남로당을 지지하거나 남로당원으로 활동한 경우가 그것이다. 해방 이후 남로당의 파괴 공작은 엄청났다. 1946년의 대구 철도의 10월 항쟁, 1947년 3월 제주도4.3사건, 1948년 8월의 여수14연대 반란사건 등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 사건을 주도했던 박헌영은 신변위협 때문에 황해도 해주로 가서 은거하였고, 지령으로 이런 사건을 조종했다. 이 조종을 받아 남한에서 이 사건을 수행한 이가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李載馥, 1903-1949)이었다. 그런데 그는, 민경배 교수에 의하면,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출신의 목사였다. 그는 이재봉(李再鳳)이라는 이름으로 평양신학교를 34회로 졸업한 목사였다. 장준하의 아버지 장석인, 마산 재건교회 지도자 주상수, 반공목사 박병훈과 동기였다. 박윤식에 의하면, 이재복은 경북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 597번지에서 이유업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하던 중 도일하여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공부했다. 도시샤라는 교명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든 결사체’라는 뜻인데, 이 학교의 교훈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Veritas liberabit vos)였다. 정대위 윤성범 김태묵 서남동 등 많은 한국인 신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공부했고, 시인 윤동주나 정지용도 이 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재복의 수학 기간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 공부한 한국인들과 교우했을 것이다. 1943년에는 평양 출신 공지길을 만나 혼인했다. 공지길은 평양 숭의여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가 교토에서 산파 공부를 하던 중 이재복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체류하던 이재복은 해방을 앞두고 귀국하여 영천읍내의 영천교회(지금의 영천제일교회)에서 8개월 간(1945. 2.15-10.14) 목회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후 좌익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인민당에 입당하였고, 경북도인민위원회 보안부장을 거쳐 군사부장에 오르게 된다. 박헌영(1900~1956)의 신임을 받은 것이다. 대구 10.1폭동 이후에는 주동자로 지목되어 지하로 잠적했고, 이후 제주4.3 사건, 여수 14연대(반란)사건까지 주도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49년 12월 18일 새벽 3시경 김창룡 대위 이하 3명에 의해 서울 성동구 신당동 377번지에서 체포되었다. 이곳은 그의 세 번째 부인 집이었다. 당시 남로당 간부들은 자신들의 은신처 확보를 위해 본 부인 외에도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또 이재복은 박영근(朴永根), 오일서(吳一緖), 이근민(李根民), 이일도(李一道) 등과 같은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가명이나 은폐가 이재복의 굴절된 삶의 방식을 반영한다. 여기서도 좌파 혹은 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거짓, 기만, 은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가정을 파괴하거나 가족관계까지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김창룡은 그에게 전향할 것을 요구했으나 “대한민국 국민을 이렇게 많이 죽였는데, 살아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겠느냐”며 끝내 전향을 거부하였고, 1949년 5월 26일 서울 인근 수색에서 총살당했다. 김창룡은 이재복이 전직 목사인 점을 감안하여 “마지막 가는 길에 기독교를 위해 헌신하라. 남한의 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당신이 남로당 명단을 넘겨주는 것이다”라고 설득하자 일주일간 버티던 그는 500여 명의 남로당 명단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의 명단 제공에 의해 군 내부의 공산당원 제거로 6.25 전쟁 초기에 군부 내의 봉기가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남침한 김일성의 군대가 서울을 점령하고 삼일동안 서울에 체류한 것은 봉기를 기대한 것이었으나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삼일이 남한과 유엔군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호기가 된 것이다. 봉기의 불발로 격분한 김일성은 결국 박헌영을 언더우드와 접선한 미제 간첩으로 몰아 총살한 것이다. 이때가 1956년 7월 19일이었다. 이때 감리교의 현순(玄楯) 목사 딸 현 엘리스는 박헌영의 애인으로 북한 외무성에 근무했으나 박헌영과 함께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이재복이 좌익 공산주의자가 되었을까? 그의 내면에 기독교와 공산주의, 양자의 충돌이 없었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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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5-01-10
  • [목회자칼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시골에 땅을 샀습니다. 한 평에 150만원을 주고 사서 조그마한 공장을 짓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너무 기대하고 신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땅이 한 평에 100만원도 안 하는 땅인데 나는 150만원이나 주고 땅을 샀던 것입니다. 옆집에서 저에게 하는 말이 “아이고 도시 양반. 속아서 땅을 샀구먼?” 그때 저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작은 회사이지만 이 땅이 저희 회사에 정말 필요한 땅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잘 샀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땅을 살 때 사용가치로 보았지, 교환가치로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땅에서 회사의 일이 너무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와 글을 읽는 여러분은 교환가치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이 땅을 교환가치로만 볼 때는 비싼 땅이지만, 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필요한 땅, 사용하기에 너무 좋은 땅인 것이죠. 아니, 한 평에 200만원을 달라고 해도 저였다면 오케이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환가치로 나의 인생을 보면 나이가 들었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집 한 채밖에, 아니 집 한 채도 없는 인생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무릎뼈가 닳고 허리가 아플 지경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의 인생은 과연 몇 점일까?’하고 허무함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가치로 인생을 볼 때는 ‘얼마나 멋지고 최선을 다한 인생인가? 얼마나 열심히 사용했으면 더 쓰이지 못할 만큼 사용한, 멋진 노인의 인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을, 교회 어르신들을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가요? 저희 교회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근면성이 얼마나 사용가치 있는가?’, 지금도 창조적인 생각으로 ‘놀면 뭐하나’, ‘쉬엄쉬엄 일할 수 있는 것,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일거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해주니 고맙지’. 이와 같은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반면 저희 교회 청년들에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내 값어치가 한 달 200만원 밖에 안되나요?’,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250만원이라니? 회사 다닐 맛이 안 나요’. 젊은이들에게는 이 부분에서 갈등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교환가치의 관점으로만 인생을 볼 때,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는지요. 나의 갈등은 인생을 사용가치로 볼 때 나오는가요? 교환가치로 볼 때 나오는가요? 여기에는 객관적인 생각과 주관적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치관도 객관적 가치관, 주관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꼭 가치 평가를 일반적인 평가로, 일반적인 잣대로,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요? 몇 년 전에 기억에 남는 폐업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배를 드려달라고 요청을 하신 장로님, 권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목사님, 이제까지 많은 개업 예배를 드려 오셨지만 폐업 예배를 드리러 오신 적은 없으시죠? 저희가 35년간 세탁업을 했는데 이제 힘도 없고 해서 폐업을 하고자 합니다. 오셔서 예배 인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고 말고요.”라고 답하고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바깥에 손님이 옷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잠깐 인사를 주고받으시는데, “이제 폐업하신다면서요?” “네. 그동안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네. 이제 저희들이 불편해서 어떡하죠?”라며 대화를 나누는 정다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정말 이 노부부는 건강하게, 재미있게 사용가치를 잘 사용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저 기억이 제게 오랫동안 남아있습니다. 우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가치관 때문에 불행합니까? 아니면 사용가치 때문에 행복합니까?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네” 하고 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사용가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닐까요? 늦게 선교에 눈을 떴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선교에 열정을 쏟고 계신 집사님, 맡은 교회 식당 봉사를 그 연약한 중에도 웃으면서 감당하시는 권사님, 말없이 뒤에서 기도하면서 격려해주시는 여전도회 집사님.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2025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는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자녀에게 너무 고맙고, 나의 가족에게 너무 사랑하고, 우리 교인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절 지금까지 사용가치로 봐주시고 사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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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2025-01-10
  • [교회법 특강] 교회법(法)은 세상 법(法)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에게 익숙한 ‘교회정치’ ‘교회질서’라는 말은 흔히 ‘교회법’으로도 불린다. 한국교회 초창기는 ‘규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법이라는 말이 권위와 순종을 전제하기에 민주주의 시대에는 맞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교회는 법과 질서보다 은혜와 사랑이 지배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회, 노회, 총회와 같은 치리회의 권위를 변호하기 위할 뿐, 세상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런 용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를 구시대 유물이라며 이 시대에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상의 법은 역사나 문화의 요청에 따라 개념이 변천하지만, 교회의 법은 시대 변천에 상관없이 성경에 일치해야 한다. ‘교회법’이란 무엇일까? ‘교회’와 ‘법’이라는 말의 합성어다. 많은 사람이 이 합성을 모순이라고 여겼다. 독일의 법학자이자 교회법학자인 루돌프 쇰(1841-1917)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이 어울리지 않는 합성을 비판한 이유는 교회의 본질은 영적이나, 법의 본질은 세상적이기에 법은 근본적으로 교회의 본질과 상충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가 영적으로 부패하면서 교회 안에 법과 질서가 서서히 들어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의 법과 질서는 성경적이지 않고 교회가 부패함으로 나중에 도입된 것이며 현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법’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오해이다. ‘교회법’이라고 할 때 ‘법’은 법 이전에 ‘권리’를 가리킨다. 신자는 누구나 교회에서 법적 관계, 법적 질서에서 권리를 보장받는다. 이 ‘법’(권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義)라는 ‘특별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교회의 모든 법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義)의 은혜를 받은 의인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 은혜로 회복된 의와 화평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로마서 5장 1절이 이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신칭의의 은혜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또 이웃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신자의 권리는 그의 범죄에 의해서도 박탈당할 수 없다. 하나님은 질서를 통해 화평을 이루시는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이 점에서 세상 법과 교회법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상의 법과 질서도 ‘의’(정의)를 말하지만 정죄와 형벌을 목표로 한다. 반면 교회의 법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화평을 누리게 하는 목표를 가진다. 교회법은 법이나 규정, 시벌(施罰)을 넘어 회개와 용서, 화평이 그 목표다. 교회법의 목적은 목사가 설교하는 화평의 복음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당회는 결코 이혼을 권할 수 없다. 도리어 화평과 희생과 자기부인을 권해야 한다. 모든 교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종 목적은 화평이다. 시벌의 목적도 회개하여 용서받고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물론 이웃과 화평할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범죄한 자를 고소(고발)할 때에 먼저 '권고'에서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목적 때문이다. 교회에 있는 모든 직분의 봉사 역시 바로 이 목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를 입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목사의 설교와 성례 시행, 나아가 장로의 다스림과 심방, 집사의 구제가 모두 이 목적을 위해 있으며, 노회의 시찰(視察) 역시 회중이 누려야 할 화평의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법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선사받은 화평의 권리를 보장하는 목적을 위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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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변종문 목사] 칼빈주의 오대 강령: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의 선언
    칼빈주의 오대 강령(TULIP)은 1618-1619년 도르트 총회에서 아르미니안주의에 반박하며 확립된 교리로서, 이는 구원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며, 인간이 타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구원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선언한다. 첫째,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은 인간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본성이 완전히 부패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을 받을 능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적 상태는 완전한 무능력에 놓여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선함을 선택할 자유조차 없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임을 깨닫게 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로마서 3:10-11). 둘째,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자신의 주권적 뜻에 따라 구원받을 자들을 조건 없이 선택하셨음을 강조한다. 이 선택은 인간의 공로나 선행과 무관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뜻에 근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서 1:4). 셋째,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인류를 위한 잠재적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위한 실제적이고 확실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그들에게만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15).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는 하나님의 은혜가 선택받은 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회개와 믿음으로 반드시 끌어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령은 인간의 저항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도록 역사하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절대성을 드러낸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요한복음 6:37). 다섯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완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택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영원히 구원을 보장받는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 칼빈주의 오대 강령은 각 항목이 논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완전한 구원 교리로 작동한다. 전적 타락은 인간의 무능력을 강조하며,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 속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주권성과 확실성을 보여준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성취됨을 선언하고, 성도의 견인은 구원의 영원한 안전성을 보장한다. 이 다섯 강령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선언한다. 이는 성도들에게 소망과 확신을 제공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높이는 교리로 작용한다. 칼빈주의 오대 강령은 단순히 신학적 논리를 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의 핵심으로서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준다.
    • 오피니언
    • 정론
    2025-01-10
  • JMS 정명석, 17년 형 확정
    JMS 정명석이 대법원에서 17년 형을 확정받았다. 9일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준강간, 준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또 15년간 전자장치 부착명령과 함께 정보공개, 고지명령과 취업제한 각 10년의 조치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증거능력, 준강간죄, 무고죄 등의 성립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대법원은 종교적 세뇌로 인한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하는 등 원심을 수긍하고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앞서 JMS 정명석은 1심에서 징역 23년 형을 선고 받았고, 2심에서는 감형을 받아 17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성폭행 피해자인 메이플씨는 9일 서초구 한국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의가 진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메이플씨는 “현재 남아 있는 JMS 관련 수사나 재판들이 지연되고 있는데, 피해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신속히 진행될 수 있길 바란다”며 “관련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또 정씨가 마지막 재판에서 처벌을 받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명석은 성범죄 혐의로 추가 고소사건에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져 있다. 피해 여신도들은 현재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정명석은 과거 20대 여신도를 성폭행 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복역하고, 지난 2018년에 출소했으나 결국 같은 혐의로 다시 징역형을 받게 됐다. 정씨의 나이(80세)를 감안하면 사실상 남은 여생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상황이다.
    • 뉴스
    • 뉴스종합
    2025-01-10
  • 한국YWCA, 박은실 신임 사무총장 취임
    창립 103주년을 맞은 한국YWCA연합회(회장 조은영)는 2025년 1월 7일(화) 오후 2시 한국YWCA 회관 4층에서 신년예배 및 사무총장 취임식을 진행했다. 이번에 취임한 박은실 (사)한국YWCA연합회 제24대 사무총장은 1993년 한국YWCA연합회 간사를 시작으로 지난 20여 년간 Y아카데미 교육기획 및 실행, 정책과 프로그램 총괄 부장을 거쳐 중점운동국, 정책기획국, 기획조정국의 국장을 지냈다. 2022년 한국YWCA 창립 100주년 비전과 가치를 선언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전문 분야인 교육과 정책 외에도 프로그램 전략 기획 및 행정에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박은실 사무총장은 한국YWCA의 세 법인인 (사)한국YWCA연합회, (사)한국YWCA연합회후원회, 사회복지법인 YWCA복지사업단의 상임이사로서 활동하게 된다. 한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육행정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은실 사무총장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 겸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박은실 신임 사무총장은 취임사에서 먼저 “한국YWCA는 자원하는 마음, 연대하는 용기, 환대하는 기쁨, 그리고 파종하는 인내의 네 가지 보물을 간직한 곳” 으로 “ 정의, 평화, 생명을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여성들의 역사” 임을 밝히며 “기후와 핵을 포함한 여러 생명위기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YWCA , AI와 디지털 기반 사회, 초고령 사회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난제들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 공론의 장을 여는’ YWCA , 지역에서 시민들의 삶에 가장 필요한 운동들을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YWCA ’, 지역의 청년들이 세계 청년들과 ‘연결’되고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YWCA , 모두를 위한 ‘성평등 가치’를 일상의 삶에서 풀어내는 YWCA, 아픔과 기쁨이 있는 자리에서 ‘함께 예배하는’ YWCA가 되도록 하겠다” 는 포부를 밝혔으며 “우리 YWCA 보물들의 소중한 결실들을 더 널리 시민들과 나누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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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종합
    2025-01-09
  • [신년사] 성경 말씀으로 회복을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룻기서는 전체가 4장 85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것을 잃고 절망 중에 있던 룻을 나오미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또 보아스를 통해 삶을 회복시키시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경영 하실 뿐 아니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방 여인 한 사람도 세밀한 손길로 돌봐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은총은 ‘돌아옴으로’ 인생의 축복과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좋은 소식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셔서 베들레헴에 풍년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풍년이 왔다는 소식만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슬픔과 어두움의 자리에 있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기독교는 일어나는 종교입니다.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그렇게 일어나서 나오미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갑니까? 시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5-16) 하나님은 지금도 돌아오는 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립니다. 돌아오는 자에게 구원의 가락지를 끼워 주시고 돌아오는 자가 헤세드의 은총을 받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는 자’였습니다. 뭇 심령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자가 위대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옴이 회복의 출발입니다. 교회와 목사의 으뜸 사명은 ‘탕자의 귀향’을 돕는 사역입니다. 회복은 ‘언약의 말씀으로’ 나오미는 하나님께 돌아올 뿐 아니라 언약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그 언약은 조상들과 맺은 것이 아니라 오늘 나와 맺은 언약(신5:3)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 앞에 앉아야 됩니다. 성경은 글이 아니라 길이요 지식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1) 성경은 영혼의 양식 육신의 건강 상태는 밥맛을 보면 알듯이 영혼의 건강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영적 곡기(예배, 말씀, 기도)를 끊으면 영혼이 메말라 갑니다. 2)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책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책도 윤리 책도 아닙니다. 교훈서나 처세술도 아닙니다. 죄에 대하여 가르치고 그 죄로부터 구원받는 길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딤후 2:15-17) 3) 성경은 지혜의 책 세계적으로 영감 있는 탁월한 문학, 음악, 그림, 조각, 명작은 거의 성경에서 힌트를 얻고 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의 보고요 아이디어 뱅크입니다. 4) 성경은 검 엡6:17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양심, 교만, 탐욕적인 삶, 잘못된 습관을 끊는 수술용 칼 입니다. 5) 성경은 베스트 인생을 만들어 주는 책 지금은 헌신보다 권리를 주장하고, 순종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겸손, 긍휼, 온유, 너그러움, 진실하게 살면 값진 인생이 되고 ‘사람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사람을 사람답게 세우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내 곁에서 내 삶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을 대할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 듣고 보고 계십니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없고, 의지할 것 없던 이 가정이 하나님께 돌아 올 때에 하나님은 베들레헴 최고의 유력자 보아스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기쁨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야 할 이 가정을 하나님은 베들레헴 최고의 복된 가정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회복이 뭡니까?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눈물이 담겨 있는 성경 말씀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 신앙의 회복입니다. 모압여인 룻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한없는 긍휼을 베푸시고 그녀를 품어 주셨습니다. 올해 온 가족과 이웃이 헤세드 하나님과 성경 말씀 앞으로 돌아와서 영육, 가정, 삶, 모든 일상이 회복되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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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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