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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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의말씀]2026 이륙하라
    어느새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내 인생만 고달프고 우리 집구석만 어렵고,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침묵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세상에 살다 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다. 사람은 때로 오판을 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끝이 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도 한치의 틀림 없이 정확무오하다.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삼중축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누리게 된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힘차게 날갯짓하며 오히려 맞바람과 골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시고 나만 힘드냐고 불평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간의 주관자 되시며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엘리야도 그 일생을 보면 실상은 매우 어려웠다. 선지자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악한 왕 아합의 때에, 도무지 농사가 안되는 오랜 가뭄까지 힘겨웠던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슬아슬 조마조마 위태위태한 시대에 사역을 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불로 응답을 해주셨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 일컫는 대표적인 선지자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다사다난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며 때로는 벼랑 끝, 절벽 끝에 선 듯 한계점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때 건너가라. 한계를 뛰어넘어 도약하라. 임계점을 훌쩍 넘어가면 된다. 성령의 불을 받아 식어버린 가슴을 뜨겁게 데우고 시동을 걸고 탄력을 받아 독수리의 날개 침 같이 힘있게 날아오르면 된다.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철새들을 보라. 서울-부산 거리 정도는 쉬지도 않고 날아간다고 한다. 바람을 타고 V자 대형을 유지하며 온 힘을 다해 날아간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힘껏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야 한다. 바람이 불어야 연이 떠오르듯이 무슨 일을 만나도 자빠진 김에 쉬어가고 문제를 디딤돌 삼아서 벌떡 일어서면 된다. 성령의 불을 받아 이열치열 힘을 내면 된다. 저온에서 증식하는 암처럼 사탄마귀가 틈타도록 가슴이 식어버리면 안 된다. 엔진이 식고 시동이 꺼지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한번 휘청거리면 회복하기가 힘들고 한번 큰 상처를 받으면 가슴이 식어버린다. 가슴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에 은혜 위에 은혜를 구하며 몸부림쳐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 가슴에 불꽃이 일어나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탄력을 받아 더욱 달려가야 한다. 잠자는 영성을 깨우고 야성을 깨워라. 살다 보면 무사안일, 편의주의에 빠지기 쉽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뛰어들어라. 소극적인 것이 비극적이라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감동케 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차원이 다른 역대급 사역을 펼치라.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당장 눈앞의 일에만 파묻혀 죽네 사네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날아오르라. 자빠진 김에 쉬어가고 힘든 만큼 도약하는 2026년, 이륙해서 고공비행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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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다음세대칼럼]두 교회, 다음 세대는 어떤 교회를 기억할 것인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로 본 교회의 선택 오늘날 교회는 수적으로 많지만, 다음세대가 체감하는 교회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어떤 교회는 여전히 생명력 있게 성장하며 다음 세대를 품는 반면, 어떤 교회는 존재하지만,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는 이러한 교회의 현실을 두 종류의 교회로 분명하게 나눈다. 생산적인 교회와 비생산적인 교회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타국으로 떠나는 주인을 통해 자신의 승천 이후 교회의 시대를 바라보신다. 그리고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맡기신 사명과 기회, 책임을 의미한다. 다음 세대가 떠나는 교회, 비생산적인 교회 비생산적인 교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교회는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는다. 이는 다음세대의 언어로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시도를 거부하며, 실패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회다. 첫째, 사명을 멈춘 교회다. 복음 전도와 다음세대 양육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삶과 동떨어진다. 둘째, 변명으로 가득 찬 교회다. “요즘 애들이 문제다”, “시대가 변했다”라는 말은 결국 교회의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일 수 있다. 셋째, 에너지를 소모하는 교회다. 내부 갈등, 말다툼, 형식적 논쟁에 에너지를 쏟는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상상력과 투자 여력을 잃는다. 넷째, 불신앙의 교회다. 하나님보다 실패를 더 두려워하는 교회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도전을 시작하지 못한다. 다섯째, 현상 유지에 머무는 교회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그대로 하자”는 태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다음 세대의 삶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음 세대에게 매력 없는 공동체, 머물 이유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 생산적인 교회 반면 예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생산적인 교회는 결과보다 태도, 규모보다 방향을 중시한다. 첫째, 작은 일에 충성하는 교회다. 다음 세대 한 사람, 한 영혼을 향한 꾸준한 관심과 돌봄을 소중히 여긴다. 둘째, 기회를 즉시 붙드는 교회다. 변화의 신호를 위기가 아닌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 보이지 않아도 충성하는 교회다.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한다. 넷째, 보상을 계산하지 않는 교회다. 숫자나 성과가 아닌,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 세대 사역을 지속한다. 다섯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회다. 다음 세대 사역은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긴 호흡의 믿음이 필요함을 아는 교회다. 여섯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교회다. 이는 교회의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쁨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초대다. 올해에는 우리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달란트 비유의 결론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교회가 건물이나 프로그램보다 사람을 남기기를 원하신다. 특히 오늘의 교회는 다음세대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다음 세대는 말보다 삶으로 증명되는 신앙, 형식보다 진짜 관계, 규모보다 진정성 있는 공동체를 기억한다. 생산적인 교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세대를 향한 책임을 감당한다. 마태복음 25장의 메시지는 오늘의 교회에 도전한다. 다음 세대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통해 실망하게 할 것인가, 착하고 충성된 교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가 되어 마침내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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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하나님께 맡기는 2026 자녀교육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늘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지금 이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부모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항상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맡김(Trust)’입니다. 이 ‘맡김’의 원리가 자녀교육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 자녀 인생의 ‘진짜 주인’이십니다 많은 부모님이 자녀의 인생을 자신이 설계하고 완공해야 할 ‘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경영하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는 경영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잠시 위탁받아 기르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모든 과정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듯, 우리 아이의 성격, 재능, 심지어 우리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 있습니다. 자녀를 내 소유로 생각하면 불안하지만,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 아이 인생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부모는 비로소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추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아이를 통해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라는 무거운 짐을 부모의 연약한 어깨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옮겨 드리는 것이 자녀교육의 첫걸음입니다. 2. ‘맡김’은 방관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그럼 부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방관’과 ‘맡김’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맡김은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땀흘려 일하지만 그 결과물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맡기듯, 부모는 아이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따뜻한 밥을 해 먹이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내 뜻대로 바뀌지 않을 때,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맡김’의 실천입니다. “나는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불안한 강요는 아이의 영혼을 숨 막히게 하지만, 부모의 신뢰 섞인 기도는 아이의 영혼을 춤추게 합니다. 부모의 성실함과 하나님의 지혜가 만날 때, 자녀의 인생에는 부모의 계산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경영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3.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한 팀’이 되게 합니다 세상의 자녀교육은 부모와 자녀를 ‘감독과 선수’ 혹은 ‘관리자와 노동자’의 관계로 만듭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수직적이고 긴장된 관계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면, 부모와 자녀는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경영자 아래 있는 ‘동역자’이자 ‘한 팀’이 됩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는 부모의 권위가 아니라 부모 뒤에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자녀 또한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한국 부모의 열정과 자녀의 가능성이 ‘하나님께 맡김’이라는 영적인 원리 안에서 결합될 때,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다그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손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동반자가 됩니다. 이러한 신뢰의 관계 속에서 자녀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올 한 해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기 전 먼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잠언 16장 3절의 말씀을 소리 내어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이의 학업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 아이의 성품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 아이의 진로와 만남의 복을 주님께 맡깁니다.”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부모인 우리는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에 집중합시다. 우리가 주님께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랍고 완벽한 방법으로 우리 아이의 인생을 경영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그 깊은 평안과 행복이 2026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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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교회건축칼럼]시대성의 반영과 굴절로서 교회건축
    과거 풍요와 기술적 혁신의 아이콘이였던 뉴턴적 세계관의 기계론적 사고와 인과관계의 원리는 20세기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로서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겨져왔던 과학적 이론들은 이러한 이론과 반대되는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 동안만 잠정적인 진리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을 ‘잠정적 진리’라 하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하거나 개발하여 온 모든 이론이나 법칙들은 이 잠정적 진리에 속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그것을 넘어서는 법칙이 존재할 가능성이 이미 예견되고 있다. 양자물리학도 기존의 과학진리체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있다. 현대교회건축도 지금까지 정형의 공간만을 추구해왔다. 정형의 공간이란 지구중력에 순응하는 안정적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복잡성의 시대속에 살고있다. 소위 기계론적사고처럼 인과관계로만 우리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나비날개이론처럼 서울에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내일 뉴욕에 거대한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전혀 비현실적 사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후학자 로렌츠는 기상을 결정짓는 습도, 바람의 방향, 온도등의 인자를 프로그래밍하여 슈퍼컴퓨터에 입력했는데 이 인자의 작은 원인의 결과값이 쓰나미나 허리케인같은 폭팔적 변화로 귀결되어짐을 발견했다. 입력과 출력의 정형식 시스템에 의한 구조가 인과관계를 벗어난 사실을 발견하고 그는 이것을 나비이론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처럼 인간이성에 의한 인과응보의 사유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예측불허의 복잡성을 동반한다. 강남은 왜 아파트값이 전국에서 제일 비싼가 이것은 단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띤다. 그것은 교육여건, 문화인프라, 교통, 정보의 편리성, 쇼핑과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교회건축은 시대성의 반영이 이루어져야되며 동시에 시대성의 굴절(파동이 매질의 경계에서 속도차이로 인해 방향을 바꾸는 형상)로서 이루어져야된다. 시대적 고립자, 지극히 열악한 환경과 소외된 사람들, 치유가 절실히 필요한사람, 중독자, 노숙자, 이념적 갈등과 같이 굴절되어버린 것에 대해 방향을 전환시켜야하는 소명에 건축이 어떤 기여를 할까. 건축과 공간에서 정형적 패러다임을 비정형패러다임으로의 변환장치가 대두되어지고있다. 건축의 사고에서 이것을 해체주의적 경향이라 불린다. 교회가 꼭 정형화되고 안정적조형을 구축해야만 교회답다는 생각을 한다면 교회는 그이상의 메세지를 낼 수 없고 시대의 복잡성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뉴욕한인장로교회는 리모델링건축으로 완성되었는데 교회형태는 정형의틀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표현되었다. 또 2000년 교회는 로마의 상징적 교회가 되었는데 외부의 형태는 비정형적 구조체의 중첩에 의해 건축되어졌다. 2000년 교회는 국제공모로 진행되었는데 제출된 4개의 응모만이 전부 정형을 거부하고 기계론적 사유를 배척하는 비정형적 교회형태로 제안되었다. 우리에게 또다른 교회건축의 패러다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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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목회자칼럼]웃음과 미소로 행복을
    잘 웃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자주 웃어야 한다. 웃으면 면역기능이 높아지고, 심장박동수가 2배로 늘어나며, 폐 속의 나쁜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빨리 바뀐다. 또 암과 세균을 처리하는 NK세포, 감마 인터페론, T세포, B세포 등이 증가한다. 스트레스는 면역체계를 무너뜨리지만, 웃음은 면역 체계를 증강시킨다. 웃음은 내장활동도 활성화시킨다. 배꼽 빠지게 웃는 웃음은 소화기능 향상과 무익한 균을 죽이는 치료 수단이 된다. 10분 동안 배꼽을 잡고 웃으면 30분 동안 힘차게 노를 젓는 것과 같은 내면의 운동효과가 있다. 슈바이처는 “우리 몸에는 완벽한 약국 하나가 있다. 그 약국에 만병통치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웃음”이라고 했다. 우리 몸은 최고의 명약을 가지고 있다. 미국 루이빌 대학의 클리포드컨 교수는 “일부러 웃는 웃음도 자연스러운 웃음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얼굴 근육과 내면의 주름이 펴지기에 10분을 크게 웃으면 2시간의 잠이 보상으로 주 어진다. 노먼 커즌즈는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약이며 깊숙한 내면의 마사지”라고 했다. 버드란트 러셀이 ‘웃음은 세상의 약국에서 구할 수 없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웃음은 전적으로 감성적인 뇌의 활동에 의한 것이다. 건강한 뇌와 몸을 가진 사람은 많이 웃는다. 뇌에 웃음회로가 있기 때문이다.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과 몸속에 있는 650개의 근육 가운데 203개를 움직이는 최고의 뇌 운동이다. 뇌는 우스운 소리만 들어도 웃을 준비를 한다. 인간의 뇌에는 모르핀에 버금가는 진통제, 마취제, 흥분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엔도르핀이다. 이들은 상호 분자구조나 효과적인 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통증과 아픔을 견디게 하는 엔도르핀이 웃을 때 가장 많이 생성된다. 5분간 웃을 때 5백만 원 상당의 엔도르핀이 나온다. 박장대소를 하거나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으면 통증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아픔은 결코 기분 나쁜 통증이 아니다. 아주 기분이 좋은 통증이며 매일 맛보고 싶은 통증이다. 실컷 웃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물이 날 만큼 웃고 나면 아픔, 걱정, 슬픔이 사라진다. 삶의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마음의 상태가 달라진 것이다. 분노의 기저인 공포 좌절 절망 공포 고뇌는 암의 발생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웃음의 기저인 긍정 의욕, 희망, 환희 감격 애정은 치유, 건강, 활력을 증진시킨다. 노먼 커즌즈에 의하면, 지구상에 의학적으로 증명된 질병은 26가지다. 우리들이 가진 인체에는 이러한 질병들에 대한 자연치유적인 메카니즘이 있다. 이 메카니즘이 가장 활력적으로 작용할 때가 바로 웃을 때라는 것이다. ‘일소일소 일노일로, 소문만복래’처럼 행복의 기준 중에 하나가 웃음이다. “웃음이 넘친다”라는 말은 곧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웃음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람은 평생 50만 번 이상 웃는다. 하루 동안 성인은 8번, 어린이는 400번 정도 웃는다. 성인이 될수록 웃음은 줄어들고 행복은 감소한다. 웃음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지구상 에서 유일하게 무리를 지어 웃는 동물이다. 나의 웃음이 타인을, 타인의 웃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1988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차크 프리트 박사는 우리 몸속에 있는 웃음보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웃음과 함께 유익한 호르몬 21가지를 방출한다. 따라서 웃음은 행복을 만드는 최고의 명약이며, 아름다운 얼굴을 만드는 최고의 화장품이다. 힘차게 웃으면서 하 루를 시작하면 활기차고 행복한 하루가 펼쳐진다. 행복하기에 웃은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지는 것이다. 웃음이 행복의 명약이라면 미소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2026년, 힘든 세상에서 웃음으로 건강하고 미소로 행복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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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로저 윌리암스와 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우리 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17세기 존 로크(1632-1704)가 종교의 자유를 말한 첫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앞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관용을 요구한 바 있고, 17세기에도 존 로크보다 앞서 종교의 자유를 말한 이가 있었다. 그가 청교도 지도자였던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 1603-1683)였다. 우리 시대 그가 주목을 받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말할 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신교(信敎)의 자유를 말한다. 신앙의 자유라는 말인데 어떤 종교를 선택하던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행위의 자유인데, 내가 믿는바 종교적 요구를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전도나 선교, 주일학교 교육 등은 종교행위의 자유에 속한다. 이런 종교의 자유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제시하고 실행했던 인물이 로저 윌리암스였다. 1603년 12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로저 윌리암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영국 국교회 목사로 활동하려고 했으나, 당시 교회 제도와 체제가 본래적 교회로부터에 이탈했다고 보아 청교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청교도, 특히 분리파 청교도들의 교회가 보다 순수한 교회라고 여겼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또 자신의 양심을 따라 믿고 말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631년 영국을 떠나 뉴 잉글랜드로 향했고,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로 이주했다. 이곳은 청교도들이 성경적인 공동체를 세우기위해 건설한 식민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식민지 당국이 종교적 정통성을 강요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갈등을 빚었다.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교회들은비록 영국을 떠나왔으나 여전히 영국국교회와 완전하게 단절되지 못한 상태였고 그것이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사실 로저 윌리암스는 완고하리만큼 분리주의적 성향이 깊은 인물이었기에 배타적 성향이 없지 않았다. 그는 본래 분리파 청교도였으나 침례교도로 전행했다. 그는 매사추세츠 식민지에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와 국가가 상호협력하여 하나의 기독교 사회를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으나, 윌리암스는 교회와 국가가 한 몸처럼 엮이는 구조는 신앙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믿었고, 국가의 역할을 선명하게 제한했다. 어떤 종교, 어떤 예배, 어떤 교파에 속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았다. 두 번째는 토지문제에 의의를 제기했다. 영국인들이 왕의 특허권을 근거로 원주민의 땅을 무상으로 차지했는데, 윌리엄스는 원주민들에게 정당한 대가 없이 땅을 빼앗은 것은 불의라고 보았다. 그는 원주민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주장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치-경제적인 문제가 포함된 민감한 문제였다. 이런 문제로 매사추세츠 정부는 1635년 10월 로저 윌리암스를 추방했다. 추방된 로저 위리암스는 원주민공동체와 교류하며 도움을 입었고, 원주민들에게 정당하게 땅을 매입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했는데, 이곳이 바로 프로비던스(Providence)였다. 자신처럼 양심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기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가 세워졌다고 믿었다. 프로비던스는 후에 주변 지역과 함께 묶여 로드 아일랜드주로 발전했다. 그런데 프로비던스에서는 시민권(국가)과 종교는 엄격하게 분리되었고, 어떤 신앙, 어떤 종파에 속하든 속하지 않던 시민권을 누릴 수 있었고, 공공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런 ‘종교의 자유’는 당시 어떤 유럽 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었다. 로저 윌리암스가 말한 종교의 자유란 다음의 몇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강제의 부재였다. 아무리 옳은 진리라고 할지라도 이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둘째,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다. 신학이니 사상이나 이념을 달리해도 그 개인의 양심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셋째,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의 분리를 주장했다. 많은 이들은 국가가 교회를 도와주는 보호막이라고 여겼으나 윌리엄스는 국가가 교회를 도와줄 때 거기에는 언제나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보았다. 또 교회가 국가의 도움에 길들여지면 예언자적 선포를 불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교회가 국가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둘 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로저 윌리암스는 존 로크 보다 앞서 근대적 의미의 종교의 자유를 말하고 실행했던 선구자였다. 그의 사상은 존 로크와 같은 철학자에게,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 주역들이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가 도로를 만들 때 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첫 사람이었다. 17세기에 벌써 그런 주장을 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에서 일 년에 1억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처 죽고,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Road kill) 동물의 수가 연간 3억6천5백마리에 달한다는 추정치를 볼 때 로저 윌리암스는 앞을 내다보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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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부산CBS 제33대 안성용 본부장 취임
    부산CBS 제33대 안성용 본부장 취임감사예배 및 2026 시무예배가 6일 오전 부산CBS홀에서 개최됐다. 1부 예배에서는 임경학 목사(남산은혜교회)의 사회로 박도순 목사(기쁜교회)의 대표기도와 강동현 목사(양문교회)의 ‘우리는 하나’라는 말씀, 안용운 목사(온천교회 원로)의 축도가 있었다. 2부 취임식에서는 최상림 목사(부산CBS 사목)의 사회로 내빈소개와 안성용 본부장의 취임사, 부산성시화운동본부 권종오 목사의 축사, 송승진 목사(동원교회), 신관우 이사장(부산CBS운영이사회)의 격려사가 있었다. 안성용 본부장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앞으로 나갈 것"이라며 "부산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평화를 전하고 실천해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부산 지역 교회와 성도들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발전하는 부산CBS가 되기 위해 여기 계신 분들부터 잘 섬기겠다"고 밝혔다. 안성용 본부장은 경기 성남서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기자로 CBS를 입사했다. 2018년 보도국 정치부장, 2020년 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2024년 보도국장을 역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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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7
  • 기장교회, 성탄예배 통해 고신대학교에 2천만 원 발전기금 전달
    기장교회(담임목사 권재완)는 12월 25일(목) 성탄절을 맞아 드린 예배를 통해 고신대학교의 발전을 위한 발전기금을 전달하며, 다음 세대를 향한 신앙의 사명과 나눔의 의미를 실천했다. 이날 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이정기 고신대학교 총장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예레미야 29장 11~14절을 본문으로 「성탄 – 미래와 희망」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이 총장은 성탄의 의미를 “하나님의 사랑이 확정된 사건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미래와 희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전했다. 이 총장은 “죄 가운데 빠져 고통 가운데 있던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비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당하셨다”며, “성탄의 믿음이 성도의 인생을 사로잡고, 평생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이 성탄의 기쁨과 믿음이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해져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 “해함이 없고 번성하게 하시며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다음 세대와 공동체의 미래에 희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예배 후에는 성탄헌금 전액을 고신대학교 발전기금으로 전달하는 전달식이 진행됐다. 기장교회는 “하나님께 드린 성탄의 감사가 다음 세대를 세우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며, 기독교 인재 양성을 위한 뜻깊은 나눔을 실천했다. 예배의 마무리 기도에서 권재완 담임목사는 “고신 교단의 기독교 인재 양성기관인 고신대학교를 축복해 주시고, 이 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사람을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번 발전기금 전달은 성탄의 의미를 예배와 나눔으로 함께 실천한 사례로, 교회와 대학이 연대하여 다음 세대의 미래와 희망을 세워가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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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7
  • 동서대, 올해 정시모집 경쟁률 대폭 상승
    동서대(총장 장제국)가 올해 정시모집 마감 결과 지난해보다 대폭 상승하였다. 31일 마감한 정시모집 결과 262명 모집에 1,782명이 지원하여 6.8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해는 482명 1,347명이 지원하여 2.79대1 경쟁률을 보였다. 가군은 경영학부, 광고홍보학과, 간호학과, 보건행정학과가 9대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특히 운동처방학과 5명 모집에 105명이 지원해 21대1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나군은 사회복지학과 6명 모집에 53명이 지원해 8.83대1, 다군은 자유전공학부 3명 모집에 45명이 지원해 15대1, 디지털금융학과 3명 모집에 27명 지원해 9대1의 경쟁률을 나타났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우리대학이 추진해 온 미래지향적 교육혁신을 신뢰하고 지원해 준 수험생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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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7
  • 목회자들의 새해소망 1위는 ‘새로운 도전’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새해 소망’을 물은 결과, ‘새로운 도전’이 27%로 2023년에 이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성숙한 신앙’(21%), ‘육체적 건강’(14%) 등의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육체적 건강’을 꼽은 비율이 2023년 11%에서 올해 14%로 상승한 것. 이는 지속 가능한 목회를 위해 자기 관리와 건강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목회데이터연구소측은 “2026년 목회자들은 개인의 영적•육체적 회복과 새로운 사역적 돌파구 마련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는 총 555명의 목회자들이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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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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