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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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신학교육의 문제점, '현장 중심의 교육 부재'!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넘버즈 271호>를 통해 '목회자의 신학교육 인식'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신학교육의 문제점(담임목사), ‘현장 중심의 교육 부재’! 우리 연구소에서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목회자의 신학교육 인식 조사’를 실시하여 이번 넘버즈를 통해 발표한다. 본 조사는 신학교육에 대한 목회자들의 다양한 인식을 분석하여 한국교회와 신학교육기관, 각 교단이 무엇을 보완/개선해야 할지 점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신학교육의 문제점(1+2순위)에 대해 담임목사는 부목사 대비 ‘현장 중심의 교육 부재’를, 부목사는 담임목사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 부족’을 선택한 비율이 높게 나타나 두 집단 간 인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담임목사 정규 신학교육 만족도, 5점 만점에 3.5점으로 낮아! 목회자들에게 정규 신학교육 만족도를 물어보니, 담임목사의 경우 정규 신학교육 만족도가 5점 만점에 3.5점으로 비교적 낮게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부목사의 경우도 3.7점으로 높지 않은 만족도를 보였다. 현 목회자에게 필요한 신학교육, ‘예배/설교 연구’와 ‘성경연구’! 현재 목회자에게 필요한 신학교육이 무엇인지를 물은 결과(1+2순위), ‘예배/설교 연구’(42%)와 ‘성경연구’(40%)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소그룹/양육’, ‘상담/목양’, ‘인문학 연구’ 등의 순이었다. ‘소그룹/양육’이 3위로 ‘성경연구’에 이어 높게 랭크된 점이 주목된다. 목회자 대부분, 평신도의 신학교육 이수 ‘긍정적’으로 평가! 평신도의 신학교육에 관해 목회자들은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대부분의 목회자(80%)는 ‘바람직하다’는 긍정적 인식을 보였고, ‘현 교회 시무기간’이 짧을수록(5년 미만 87%, 5~9년 81%, 10년 이상 69%) 긍정 평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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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5
  • 새해에 새로운 희망과 설렘을 더해 줄 찬양 앨범 추천
    인피니스가 2025년을 맞아 새해에 어울리는 찬양 앨범 5개를 추천했다. 인피니스는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지나고 새로운 희망의 2025년이 밝았다. 그 어느 때보다 희망이 필요한,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해에 우리에게 힘을 더해줄 찬양 앨범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마데테스워십 (Mathetes Worship) - Timeless Song Vol.1 (싱글)(음원) 스웨덴의 시인인 칼 보베르(Carl Boberg)는 아름다운 스칸디나비아의 풍광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이 시를 스웨덴 민요에 붙여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가 탄생했다. 사회는 놀랍도록 혼란스럽고, 삶은 팍팍하고 힘겨운 일들이 많지만 주님 지으신 세계를 통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볼 때 내 영혼이 찬양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증인 (Follower)’으로 큰 사랑을 받은 마데테스워십(Mathetes Worship) 버전으로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함께 찬송해 보자. “우리의 최고의 가치는 ‘복음’이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한다”는 마데테스워십은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8시 30분에 노원에 있는 패스커뮤니티교회에서 정기예배를 갖고 있다. Planetshakers - #LETSGO (CD+DVD) 새로운 해를 강력하고 다이내믹한 찬양 앨범으로 시작해보자!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워십의 대명사 플래닛쉐이커스(Planetshaker)의 앨범, 제목마저 ‘#LETSGO’로 시작할 때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앨범이다. 일렉트릭한 사운드, 기타와 건반의 리프 사운드, 에너지 넘치는 드럼 사운드, 예배자들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모든 것들이 이 앨범 안에 가득 들어 있다. 부산 호산나교회에서 젊은이예배와 찬양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신 목사는 “Planetshakers는 음악적인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그들의 기본 정신을 늘 노래에 담아내려 노력한다. 예배 팀마다 나름의 철학이 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그들은 예배를 통해 예배자들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또한 ‘Let’s go’다.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예배자들을 독려한다. 이 놀라운 잔치에 동참하자고 도전한다. 예배를 통해 예배자들을 깨우고 일으켜 온 열방이 함께 주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기본 정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앨범 추천의 말을 전했다. 3:16 Worship - 찬양해 할렐루야 (싱글)(음원) 3:16 Worship(삼일육워십)의 2024년 네번째 앨범이자 세번째 싱글인 ‘찬양해 할렐루야’도 새해에 들어 보기를 추천한다. 하루하루 힘든 현실 속에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힘을 내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도 많아진 게 현실이다. 소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직적’인 찬양보다 서로를 위로하는 ‘수평적’인 찬양들이 예배 중에도 많이 불린다. 이 곡을 만든 3:16 Worship의 리더 한윤정은 “하나님은 분명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온전히 높임 받으시기 위해’ 존재하신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곡을 쓴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격과 감사로 살아가면서 온전한 평안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새해를 시작하기를 소망해 본다. 한재윤 - 다짐 (EP)(음원) 얼라이브교회의 담임교역자이자 예배팀 로드웨이브(Lord Wave)의 리더인 한재윤 전도사가 내놓은 ‘다짐’도 추천한다. 이 앨범에서 한재윤 전도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길 가운데 겪게 되었던 광야의 시간을 노래한다. 그는 앨범에 수록된 ‘다짐’이란 곡에서 “가끔 힘들기도 하겠지, 때론 눈물질 때 있겠지, 하지만 나 이 길 걸어가는 이유는 나의 욕심이 아니어라, 오래 전 나를 위해 준비된 그 아름다운 소망을 향해 내 마음과 열정 나의 모든 것 다해 나 이 길을 걸어가리라”라고 ‘다짐’한다. 올 한해 우리는 광야의 시간일지, 영광의 길일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또 새해를 시작하며 여러 ‘다짐’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부디 그 다짐대로 생명의 풍성함을 얻어 포기하지 않고 주의 부르심을 따라 걸어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Passion - Roar (CD) 마지막 추천 앨범으로 워십음악의 대표 브랜드 Passion(패션)이 들려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예배자들의 강렬한 함성이 담겨있는 ‘로어(Roar)’를 선택했다. 애틀랜타 벤츠 스타디움에서 약 65,000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녹음한 이 앨범은 패션의 메인 워십리더인 크리스찬 스텐필, 션 커런 등과 항상 새로운 크라우더, 그리고 힐송 유나이티드까지 함께 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워십팀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염민규 간사는 “아이들과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함께 보았다. 배신한 ‘에드먼드’를 대신해 죽임을 당하는 순한 어린양과 같은 사자(LION) ‘아슬란’은 사실 나니아의 통치자다. 마녀는 깨닫지 못한 죽음 뒤의 승리, 그리고 사자 ‘아슬란의 포효(ROAR)’를 기억한다. 이 패션의 ‘ROAR’라는 앨범을 듣다 보면 포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찬양 속에 승리의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시다!”라고 추천의 글을 남겼다.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도 자신을 큰 소리로 경배하고 따르는 이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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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4
  • 부산기독교지도자협의회 신년감사예배
    부산기독교자도자협의회(대표회장 박선제 목사) 2025년 신년감사예배가 13일 오전 11시 프라임호텔에서 개최됐다. 1부 예배에서는 수석상임회장 박은수 목사의 사회로 재정위원장 이충협 장로의 대표기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가 ‘지도자의 복’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오 목사는 “지도자는 미래를 살려야 한다. 우리(지도자)를 통해 다음세대가 복을 받고 대한민국이 발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기 계신 지도자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2부 신년하례식은 이사장 오순곤 장로의 사회로 대표회장 박선제 목사의 신년인사가 있었다. 박 목사는 “지금 우리 현실은 정치도 경제도 사회 기강도 심지어 종교계도 한마디로 엉망”이라며 “2025년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지도자의 시대적 사명을 잘 수행하자”고 강조했다. 이후 축사시간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축하 및 축전을 보내왔고, 격려사 시간에는 나라사랑기도회 박근필 목사를 비롯한 부산지역 기독교 기관장들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신년감사예배에는 부산지역 기독교지도자 7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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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3
  • [서임중칼럼] 아직도 사용할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나라 안팎은 혼돈 그 자체다. 무안공항 사고로 올해는 새해맞이 행사도 대부분 취소되고 179명의 귀한 생명의 사망뉴스 보도를 통해 새해벽두부터 아프고 슬픈 소식에 마음이 우울하다. 그렇게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핵폭탄이 헌법재판소에서 언제 어떻게 터질 것인가에 온 국민은 좌불안석인데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밤낮없이 찬반 시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태민안의 보루가 되어야 할 여의도 1번지는 어느 하루도 삼류정치의 쌈박질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프다.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이 늙어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쉬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025년도 그렇게 하루하루 열리고 닫힌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말씀 사역자로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송구영신 예배로 시작한 2025년 새해 첫날은 감림산기도원에서 신년 축복 성회로 시작되었다. 대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을 보면서 울컥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새해 첫날에 기도원에 올라와 기도하는 성도들의 젖은 눈을 보면서 내 마음이 젖었다. 성도들의 목이 터지라고 부르짖는 기도 소리에 거룩한 소름이 돋았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기에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을 그림처럼 그려 보여 주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2025년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고 선포했다. 젊은 청년이 조용히 다가와 “목사님 저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돼요?” 한다. 23세의 손자 같은 청년이다. 조용히 내 품에 안아주니 품에 안겨 헉헉거리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목사님 대한민국이 아파요.” 순간 천둥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귀도 마음도 가슴도 먹먹했다. 그 언젠가 TV 연속극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할말을 잃은 나는 “그래, 기도하자.”라는 한마디 밖에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니 지금도 내 영혼은 그 청년의 젖은 목소리에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몇 년 전 시골교회 목사님이 부흥회 강사 초청을 하셨다. 일정이 나오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전화로 내게 들려주는 한마디에 내 마음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우리 교회 78세 할머니가 서목사님 방송 설교를 듣고 제게 찾아와 ‘죽기 전에 그분 설교를 직접 한번 듣고 천국 갔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도 좋으니 허락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리저리 일정 조정하여 주일 1일 집회를 약속하고 갔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13명이 예배를 드렸다. 강사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연로하신 성도님들의 눈은 주님을 바라보는 혈루증 여인을 느끼게 했다. 많이 울었다. 그 1일 집회만큼 은혜와 감동을 마음에 담은 집회는 없다고 지금도 고백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을 더 먹겠다고 하였더니 아내는 국자에 국을 떠 국그릇에 보충해 주었다. 그런데 국자는 신혼 시절에 샀던 것으로 손잡이가 휘어져 있는 것이었고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닳아 있었다. “여보, 인제 그만 사용하고 새것으로 바꾸지.”라는 무심코 하는 말에 아내는 “아직은 더 쓸 수 있잖아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 순간 뭔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고 손잡이가 휘어진 국자를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비단 국자뿐이 아니다. 성도님들이 선물로 주신 좋은 것들도 많지만 목사관에는 신구 문화가 공존되어 있는 살림살이들이다. 버리자니 사연도 있거니와 아깝고, 사용하자니 불편한 것들이 어디 국자 하나뿐이겠는가? 손잡이가 부러진 국자를 보면서 인생도 목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계륵’(鷄肋)의 교훈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깨우침을 다시금 생각했다. ‘鷄肋’이란 말은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진서(晉書) 유령전(劉伶傳)과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晉)나라 초기에 죽림칠현 가운데 ‘유령’(劉伶)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만취가 되어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이 점잖게 한마디 건넸다. “보시다시피 계륵(鷄肋, 닭갈비란 뜻)처럼 빈약한 몸이라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방이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에서 계륵이 상용되었다. 他山之石이란 다른 산의 거친 쓸모없는 돌이라도 옥(玉)을 가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서 이 말은 쓸모없는 것이라도 쓰기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돌(石)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玉)을 군자에 비유할 때 군자도 소인에 의하여 수양과 학덕(學德)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를 때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강자에게 굽실거리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졸부의 삶을 엮어 갈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쓸모없어 보이는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지닐 때 그 삶을 더욱 넓고 깊고 고고(高高)해지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부러진 국자 같은 상황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이를 소중히 사용할 수 있는 넉넉함이 우리의 삶에 있을 때 그 삶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내 나이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한해 60여 교회 초청을 받아 말씀 사역을 한다. 불편한 잠자리와 음식, 교통수단 어느 것 하나 여의찮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 방지일 목사님이 101세의 고령에 포항중앙교회 주일설교를 인도하신 후 안수기도 해 주실 때 “서목사님은 녹슬어 못 쓰는 목사가 아니고 닳아서 못 쓰는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의 응답이 오늘 나의 삶이 되고 있다. 부러지고 닳아버린 국자 같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늘도 하나님이 나를 향해 “아직은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감사함으로 다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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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성서연구]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반갑게 인사하면서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정치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지, 그 뒤를 이어 나온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권한 대행인 총리의 탄핵, 그리고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여 체포하려는 시도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집중되어 경호처와 대치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로 나가는 것은 정말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야당 지도자는 여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남북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되어 있고,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침체 국면을 벗지 못하고,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과 맞서야 하는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마음이 가벼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소망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본문은 창조 전의 상태를 말씀합니다. 첫째, 혼돈입니다. 카오스, 즉 무질서의 상태였습니다. 둘째, 공허였습니다. 존재하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였습니다. 셋째, 흑암이었습니다. 캄캄한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중첩된 절망의 상황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 모든 것을 놀랍게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돈에 질서를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주는 코스모스입니다. 코스모스에는 ‘질서’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정교한 질서의 메카니즘입니다. 일 년 사시가, 계절의 변화, 밤과 낮의 뒤바뀜, 파종하여 추수하기까지의 자연의 응답이 정교합니다. 산천초목이 정확히 때를 알고 반응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공허를 채우셔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창조 세계는 가득 채워진 충만의 세계입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어디에나 놀랍고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르지 않는 샘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공허한 세상을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우셨으나, 부족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6절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흑암에 빛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첫 창조가 빛입니다. 빛이 존재하는 순간, 어둠은 사라졌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을 만나기 전에 마니교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의 악을 몰아내기 원했으나, 마니교 지도자인 파우스트는 빛이 있으면 어둠이 당연히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실망하여 마니교를 떠나 회의론에 빠졌습니다. 그 후 그는 주님 안에서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빛이 밝혀지는 순간, 어둠은 사라진다는 일원론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의 빛이 영혼에 밝혀지는 순간,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는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통해 빛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혼돈도 물러가고, 공허도 채워지고, 흑암도 빛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지금 우리 상황을 타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다면, 우리의 혼돈과 공허와 어둠은 물러갈 것입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더욱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길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 운동과 같은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근원적인 역사의 차원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한국교회가 질서를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길 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그 앞에 무릎 꿇길 원합니다. 우리의 공허와 부족을 성령께서 채우시길 원합니다. 예배당의 빈 공허함을 성도들로 채워주시길 빕니다. 우리 안의 어둠이 물러가고 기쁨과 감사의 빛으로 충만하길 원합니다. 주여, 주의 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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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시사칼럼] 새해에는 카나리아처럼
    어떤 신년 조찬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짧은 인사말 속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습니다. ‘카나리아’라는 새에 관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무척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광부들이 작업할 때면 이 카나리아를 데리고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공기나 호흡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카나리아가 어떤 새인지 찾아보았더니 미국의 워너브라더스사가 자랑하는 캐릭터인 ‘트위티(Tweety)’의 실제 모델이었습니다. 크기는 15cm 내외로 수명은 12~15년 정도이며, 사람 손에 길러진 지가 400년이 넘는답니다. 분당 호흡수가 60~80회요(사람은 12~20회) 심장 박동수는 분당 300회에서 많게는 1,000회까지라(사람은 60~100회), 폐에서 기체 교환이 매우 빠르게 일어나므로 인해 호흡 효율이 100%(사람은 30%) 가까운 생명체입니다. 대기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금방 반응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광부들이 애지중지했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카나리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오염되고 혼탁한지 알게 해 주는 척도(尺度) 역할을 감당하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이미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3, 14)고 하셨습니다.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뿌려져서 그곳 혹은 그것의 부패와 변질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뜻이겠지요. 온통 캄캄한 어둠뿐인 어딘가 혹은 무언가를 비추어서 그곳 혹은 그것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존재라는 의미겠지요.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때로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역시 세상을 대해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현실은 어떨까요? 예수께서는 이어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자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인의 비유’(누가복음 10장)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피를 흘리며 길가에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모습입니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는 제사장도 있었고 레위인도 등장합니다. 지도자만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의한 권력자였던 헤롯이 아무리 악독한 일을 자행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용감하게 외치는 자가 없었습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참된 경건이 실종되었어도 자복하고 통회하며 회개를 부르짖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거룩해야 하는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어 놓은 자들에 당당하게 맞서서 그 불의한 권세에 도전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더 이상 말씀 듣기를 사모하거나 말씀의 권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학문과 특히 발달한 과학은 성경의 가치를 폄하하고 경시하는 경향과 풍조를 양산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중하게 열정을 쏟아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건이 사라지는 오늘날 교회가 맞이한 가장 두려운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나요? 각종 우상이 오직 하나님만 송축하고 경배하는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무속이 판을 치고 사이비 신앙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세상입니다. 거짓의 영들이 횡행하며 거짓 선지자 같은 무리들이 미쳐 날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사이비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의와 공법 대신 불의와 무법이 강물 같이 흐르고 공정과 상식 대신 불공정과 몰상식이 폭포수 같이 밀려와도 대항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 않습니까? 옛날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갔을 때 카나리아가 울지 않으면 뛰쳐나와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가스가 발생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가 울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숱한 영혼들이 영적 생명을 잃지 않겠습니까? 만일 교회가 피리를 불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낭떠러지를 향해 그대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새해에는 정말 그리스도인라면 신령한 카나리아가 되어 세상을 깨우는 노래를 부릅시다. 신령한 카나리아가 되어 수많은 영혼이 깨어나도록 실컷 울어줍시다. 그래서 사람들의 진짜 목숨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정말 예뻐하고 사랑하는 그런 성도의 모습을 되찾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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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은혜의말씀] 자족하는 마음 (빌립보서 4:10~14)
    성경에 나오는 한 시대에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역설적인 삶을 산 경우가 많다. 다윗이 10년을 피난생활하며 지은 시편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것저것 없는 것 천지인데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만족한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옥중 서신에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면서도 크게 기뻐하였다. 처자식도 없고 집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궁핍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고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어떤 괴로움도 감당 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고 초청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여 예수님께 동생 마리아가 자기 일을 돕도록 하라고 예수님께 요청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였다. 마리아는 좋은 편, 말씀 듣는 것을 선택하여 칭찬받았지만 마르다는 일을 많이 하고도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다. 여러 가지를 하면서 분주, 복잡한 가운데 원망하는 것보다 한 가지만이라도 족해야 한다(눅10:39~42). 마음을 여러 가지로 갈라치기 하지 말고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라. 삶의 우선순위를 잘 택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이 더하여진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6:33~34). 우선순위를 놓치고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급하다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삶이 엉망진창이 되고 교통정리가 안 된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지나간 과거를 곱씹지 마라. 한 날의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도 족한 줄로 알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요,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요셉은 어릴 때 엄마가 죽고 열 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지만 배신감에 치를 떨고 대인기피증, 피해망상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 주인이 볼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 애굽의 바로왕은 요셉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을 보았다. 모두에게 버림받았지만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은총을 받아서 용모가 아름답게 되고 예수님을 가장 닮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으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한이 맺히지 않고 흥이 일어났다. 고통의 때를 지난 후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스트레스, 내면의 상처, 트라우마 이런 것들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어려울 때, 힘들 때 말씀의 인도를 받아 잘 지나가면 이후의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때가 차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노후대책은 밑 빠진 독, 터진 웅덩이를 파서 물질을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요셉이 7년 대기근을 잘 지난 것이 아니라 7년 대풍년 때 흥청망청 하지 않아서 대기근의 고비를 잘 넘긴 것이다. 받은 선물 가지고 속상해 하지 말고 선물을 주신 이를 기억하라. 없는 것 때문에 열등감, 패배감에 빠지지 말고, 있는 것 때문에 자만하며 시건방을 떨지 마라.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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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자녀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다음세대를 양육한다는 것이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매년 연말마다 교사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의 교사는 그만둘 수라도 있죠. 가정의 부모들은 그만둘 수도 없는 육아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오늘은 그런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지금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실 거예요. “우리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쑥 좀 안 크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제가 밥을 차리겠습니다!” “오늘 피곤하시죠? 제가 아침을 차려놨습니다.” “오늘은 양식이 좋으시죠? 얼른 일어나 드세요.” 이런 날이 오길 바라는 부모들이 있어요. “아휴! 저게 언제 커서 사람 노릇을 하려고 저러나?” “언제까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나?” “언제까지 내가 돌봐줘야 하나?” “언제쯤이면, ‘어머니! 월급 받아 왔습니다. 빨간 내복입니다.’ 이런 날은 언제 오나?” 이런 분들이 계실 거예요. 아이들 키우는 이 시간이 마치 아무 의미 없고 그냥 힘들기만한 시간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기억을 한번 되짚어보세요. 애들이 어렸을 때 어떻게 생각했나요? 우리가 “이거 여기서 안 크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 너무 예쁜데! 요거 지나면 어떡하지?” 그랬던 마음이 있지 않았습니까? 너무 예뻐서 “이거 크면 안 되는데!” “요거 커서 시집 장가 가버리면 이거 아쉬워서 어떡하나?” 하는 날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지금 애들 옛날 사진 보세요. “야! 이렇게 예뻤는데! 내가 왜 그때는 얘를 그렇게 예뻐하지 못하고 키우기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가?” 후회가 되시잖아요? 여러분, 그 시간이 너무 힘들고, 잠 못 자고, 나 못 먹고 아이 먹여야 하고, 나 못 쉬고 아이 챙기던 그 시간들이 그때는 마치 불필요한 시간 같고, 불행같이 여겨졌지만,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정말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시간이었고, 또 내가 이 아이들 때문에 성숙해지고, 내가 부모가 되어 가면서 하나님 마음을 알아갔던 그 시간들 아니었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고난이라는 시간이 그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잘못 행했대요. 왜요?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그냥 나만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땐 어렸으니까요. “하나님! 저 힘들어요. 하나님! 저 지금 귀찮아요. 하나님! 저 죽겠어요. 그런데 왜 자꾸 말씀을 주세요?” 그 말씀을 내가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어요. 그런데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내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더 새로워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었단 말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무엇을 깨달았나요? 이어지는 6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시편 119:68)  그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선한 것 같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힘든 말씀을 주시나?” “왜 이렇게 벅찬 말씀을 주시나?” 그런데 이제 고난 가운데 내가 그 터널을 지나며 내가 성숙해지고, 내가 치유되고, 내가 회복되고 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는 분이구나! 주의 말씀이 내게 얼마나 양약이 되는지를 깨닫고 나니까 이제는 더 원하게 되는 거예요.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님! 더 주세요! 더 주세요! 더 주세요!” 여러분, 말씀을 더 원하고, 말씀을 더 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는 찾아왔는데 지금 애타게 기도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시간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시간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깨닫고, 그분을 찬양하는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시간을 지내고 있는 분들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것을 한번 고민해 보시길 바래요. “이 고난의 시기, 이 아픔의 시기에 과연 하나님은 내게 어떤 고백을 찾으실까?” 이 시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찾으시는 고백, 이 고난의 때에 내가 드릴 고백은 무엇인지를 여러분, 꼭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지나서 내가 다시 도전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재도전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재도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과연 다시 도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릴 과제가 무엇인지를 꼭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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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1-10
  • [다음세대칼럼] 다음세대를 세우라
    역사학자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를 로마라고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3개 대륙에 걸쳐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이나 통치체제, 도로와 사회기반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1,000여년을 흥왕하던 로마가 어느 시점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멸망했다. 역사학자들의 오랜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이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을 찾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가 로마 멸망 원인을 ‘인구감소’라고 하였다. 로마가 제국이 되어 당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로마인들은 안락한 삶을 살았다.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아서 육아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고, 쾌락에 빠져들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차 노동력이 줄어들게 되었고, 노예들로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나갈 사람이 줄어들자 당시 야만족이었던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국가가 강력하게 출산정책을 썼다. 결혼을 의무화하고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그리고 38세 이상 독신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게다가 3자녀 이상의 가정에 큰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저출산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로마인의 비율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야만인이었던 게르만족에게 정복당하게 되어 멸망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나라가 이런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 실제로 통계청 발표를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2023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9200명)보다 1만9200명(7.7%↓) 감소했다.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8년 연속으로 줄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2015년(0.7%)을 제외하고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인 것으로, 2013년 43만6000명을 넘던 출생아 수는 감소세를 지속해 10년만에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다. 2022년 0.78명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으나, 1년 만에 0.06명 감소해 ‘바닥의 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구절벽은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노년 세대가 급증하게 될 것이고, 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져서 노령화가 가속될 것이다. 결국, 각종 경고가 말해주듯 나라가 소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 같아서 보통 걱정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상황은 이것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가 지난 10년 동안 20%가 감소했는데, 교회의 다음 세대는 35%가 감소했다는 통계를 접한 적이 있다. 무려 15%나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5년 뒤인 2050년에 21세 이하의 연령층은 총인구가 1485만 명에서 932만 명으로 오늘과 비교해서 37%가 감소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21세 이하 교인은 318만 명에서 111만 명으로 무려 65%가 감소할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25년 뒤에 교회 내의 21세 이하의 교인은 무려 2/3가 줄어들 것이다. 요즘 필자는 25년 뒤의 한국교회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우선 대부분의 교회가 노인들만 남게 될 것이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가 열 교회 중에 두 세개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교회당이 텅 빈 채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문 닫는 교회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될 것이고, 교회 건물이 팔려서 다른 용도로 쓰이는 교회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도 여전히 오늘처럼 좋은 교회로 든든히 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분명하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교회학교가 감소하지 않게 지켜내고, 가정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교육환경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자녀들은 한 주 168시간 동안 세상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SNS나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과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과 무관한 세상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어 있다. 단지 1시간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다. 1/168의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갈 수 있나? 우리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집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게 해주어야 한다. 가정예배, 베갯머리교육, 밥상머리교육, 자녀와 대화 등으로 말씀을 듣게 해 주어야 한다. 신명기 6장은 자녀들이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메주자(문설주)라는 것을 달아놓아서 자녀들이 집에서 나갈 때 말씀을 읽고 나가게 했다. 그리고 손과 머리에 테필린이라는 것을 부착하게 해서 어디에 있든지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부모들이 말씀 교육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면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보충해 준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당한다고, 신앙교육을 위해 과외하는 부모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회의 소망은 다음 세대이다. 이 악하고 패역한 세상 속에서 우리 자녀들과 교회의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양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여라도 우리 다음 세대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말씀으로 잘 세워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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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신앙교육나침반] 십계명 복음놀이로 온세대 믿음의 가정을 일으켜세우다!
    2025년 1월에는 향기나무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이 열립니다. 본 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교회와 다양한 사역 현장에서 [향기나무 복음놀이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온세대 믿음의 가정을 복음의 능력으로 일으켜세웁니다. 올해 첫 번째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의 주제는 “열마디 사랑의 외침,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 믿음의 가정에 꼭 필요한 생명의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의 대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구원받은 백성의 언약관계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를 맺은 자기 백성에게 사랑의 열마디 말씀, 곧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사랑의 관계맺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길 갈망하시며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1-10계명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열마디 외침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백성아! 너희는 십계명을 지킴으로 나와 사랑하자!” 두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의 사명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보여줍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자녀의 인생 설명서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받을 아무 자격이 없는 나를 구원하셨다는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동시에,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됩니다. 2025년에 다음의 교회를 주목해주십시오. 이 교회에는 믿음의 가정을 복음의 능력으로 일으켜세울 수 있는 ‘온세대 복음놀이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습니다. 가음정교회(고신), 고성중앙교회(합동), 구미상모교회(합동), 군산성광교회(기장), 대구대일교회(고신), 동래제일교회(고신), 더향상교회(고신), 바이탈교회(합신), 부산명성교회(백석), 부산중앙교회(합동), 부산효광교회(고신), 삼척소명교회(합동), 새언약교회(고신), 서울중앙교회(고신), 서도교회(고신), 서울한신교회(기장), 수원고색평강교회(백석), 시냇가에심은교회(고신), 양산교회(고신), 양양중앙교회(합동), 여량교회(합동), 연지교회(고신), 오색교회(합동), 울산성산교회(고신), 은평시민교회(고신), 은항교회(고신), 정선중앙교회(합동), 지구촌교회(합신), 푸른숲성산교회(기장), 흥덕향상교회(고신), 향상교회(고신), 해운대제일교회(합동) 담임목사님, 사모님, 부목사님, 전도사님,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등 다양한 직분,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소망을 품고 본 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다음세대 가정을 품자! 지키자! 보존하자!”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한국교회를 넘어 전 세계 교회의 열망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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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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