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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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국격(國格)”이란 말이 회자되는데, 사실 이 말은 그 유래도 불분명하거니와 2011년에 들어서야 표준어로 지정될 정도로 본래 익숙하여 자주 쓰던 용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사용빈도가 증가한 듯합니다. 최근 국내의 M경제지 사설에는 “국격”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칼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격 떨어뜨리는 디올백 · 기내식 특검 모두 부적절하다”(6. 6). 누가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일까요? 과다한 기내식 비용을 지출한 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아니면 선물의 정도를 상회하는 명품 가방을 받고서도 아무런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영부인의 뇌물수수 의혹을 덮어주는 대통령”입니까?(야당 대변인, 2. 23) 영부인의 단독외교를 주장하다가 혼란을 자초한 전 대통령입니까?(J일보, 6. 3) 대통령의 해외순방취소가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입니까(야당 원내대표, 2. 16), 아니면 이번에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해외순방을 감행하는 행동입니까?(윤 모, 배 모 여당 의원, 2. 23) 지금부터 30여 년 전 바로 이맘 때(1993. 6. 7)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켐핀스키호텔(Kempinski Frankfurt)은 갑자기 찾아드는 한국인들로 특수를 누렸습니다. 삼성의 후계자 이건희 회장이 전 계열사의 임·역원들을 모두 소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신경영(新經營)선언’을 했는데, 그 핵심을 한 마디로 알려주는 말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 그리고 2년 후 중국 베이징에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기업경쟁력은 이류, 행정력은 삼류, 그리고 정치력은 사류”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평하기를 이류에 불과하다던 삼성이라는 기업은 뼈를 깎는 혁신을 이루어 냈습니다. 1995년 당시 통화가 잘 안 된다는 불만이 폭주하던 휴대폰 15만 대를 시가 500억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퍼포먼스까지 감행하더니, 2002년 휴대폰 4,500만 대를 팔아 일약 3조원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류에 불과하다던 정치는 어떻습니까? 혁신은커녕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국격을 갉아먹는 적폐(積弊)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며칠 전 이제는 범세계적인 팝그룹이 된 비티에스(방탄소년단, B. T. S.)의 일원이자 맏형인 김석진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는 소식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역시 복무 중인 구성원들이 휴가를 얻어 축하해주러 왔고, 팬덤(fandom)들도 다양한 플래카드와 현수막과 풍선 등을 내걸고 축하했지만 현장에 나타난 이들은 적었습니다. 앞서 소속사에서 “전역일은 다수의 장병이 함께 하는 날이니 별도의 행사가 없으며, 혼잡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팬 여러분께서는 현장 방문을 삼가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사에서 팬들까지, 교양과 배려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비티에스는 종종 전설의 비틀즈를 소환합니다. 빌보드 음악순위에서 최근 10년 간 가장 많은 1위곡을 냈고(6곡), 둘은 발표한 솔로 곡마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여당의 혁신위원장을 포함하여 이들의 군역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얼마나 비등했습니까? 심지어 특례 조항의 신설 취지로 병역법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당하게 군대에 입대했고, 최선을 다해 병역을 마쳤거나(특급전사)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조교) 중입니다. 무엇이 국격을 떨어뜨리고 끌어올립니까? 전술한 사례들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를 합쳐서 ‘공정(公正)’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면 같은 절차나 같은 실제가 똑같은 원칙과 잣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사안이라면 남의 경우를 다룰 때나 나의 경우를 다룰 때 똑같은 원리와 과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정(公正)’입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괄목상대한 경제력이나 문화력에 견줄만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바로 이 ‘공정’이라는 면에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엠지(MZ)세대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 대단한 케이팝 가수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원입대하여 여타 젊은이들과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실천함으로써 공정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격까지 한껏 높여주었습니다. 주께서도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는 또한 지극히 기독교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른 기준의 도량형이나 저울추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레 19:35-36; 신 25:13-15) 바울 사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로마시민권의 특례까지도 포기하고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하늘 보좌까지 기꺼이 버리시고 사람과 똑같이 되신 주님은 어떠합니까? 우리라도 부디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 되지 말고,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국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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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위드애] 천국과 지옥
    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 함께 등산을 했습니다. 푸르른 신록의 숲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아내가 “천국이 이것보다 더 좋을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있는데, 우리는 살아서도 천국, 죽어서도 천국, 영원한 천국을 살고 있으니, 지금 이것도 천국을 누리는 것이고, 죽어서는 더 좋은 천국을 누리겠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천국 같았던 기쁨도 몇 시간이 지나자 육체의 상황에 따라 변했습니다. 하산길에 아내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무릎이 아프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내는 “지옥이 이것보다 더 괴로울까?”라고 말을 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함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도와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동행했습니다. 나의 무릎이 아프지 않다고 아픈 아내를 뒤로 내버려 두고 빨리 내려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이 제 아내이고, 제 아들과 딸의 엄마이고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가족이 아닌 무심한 등산객들은 저와 제 아내를 추월하여 앞서서 내려갔습니다.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도 빨리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요. 육체의 상태에 따라서 똑같은 환경이지만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장애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지옥처럼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안타까워하며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니까요. 뇌출혈로 편마비 상태가 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르신의 가족이 여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대 노부부가 휠체어를 밀면서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부만 왔으면 너무 힘들어서 여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사위와 딸이 함께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센 젊은 사위가 장인어른을 도우며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가족은 천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동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동행하는 삶이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파하며 함께 울기도 하시고, 우리의 지옥 같은 삶이 천국 같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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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애(with 愛)
    2024-06-14
  • [은혜의말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삼상 15: 17-23)
    “리더(leader-지도자)는 리더(Reader-읽는 자)여야 한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 말을 신앙적인 언어로 바꾸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 왕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겸손한 마음입니다.(17절) 사울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작게 여길 때 – 겸손할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사울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9절을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좋은 것을 남겼다고 했지만, 사실은 값지고 좋은 ‘전리품’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승리는 내가 한 것이라는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2>12절을 보면,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흔적이 아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죠. 하나님이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는데, 사울은 자기가 이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겸손을 잃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잃게 됩니다. 겸손은 자아를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나의 나 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2. 순종의 제사입니다.(22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말씀이 일치하는 삶이 있는 순종의 예배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어떤 제물을 가져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순종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혀 순종할 마음 없이 거저 습관적인 종교생활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종교적 형식만 갖추고 의식적으로 예배할 때, 그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고백이 일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입니다.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듣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진정한 회개입니다.(30절) 사무엘이 책망할 때, 사울은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21절) 변명으로 일관할 뿐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왕을 버렸다고 할 때’ 30절을 보면, ‘자기가 범죄 하였지만 지금은 자기의 죄를 사하고, 자기와 함께 제사하러 올라가 달라고 간청하지요.’ ‘자기 체면’ 때문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사무엘을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백성들 앞에서 나를 ‘왕 대접’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 멋진 변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참된 회개는 범한 모든 죄를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겔18: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마음을 다하여 죄를 고백하며 그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을 향해 회개의 문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진정한 회개의 문을 활짝 여시고 죄에서 돌이켜, 진실한 믿음의 길로 달려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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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유니폼으로 하나 되어 다가가는 교사
    다음세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목회자와 교사들이 다음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아이들에게 먼저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신체적인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아이들은 지금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사 유니폼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매주일 분홍색 자켓을 입고 교회에 갑니다. 다음세대들을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이 저를 보고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목사님인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제 각오가 좀 되십니까? 담임목사가 이런 복장으로 교회에 간다면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겠구나!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일 아침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입기 좋은, 우리에게 좋은 복장을 입고 갑니다. 내가 옷장을 보면서 “이번 주에 뭐 입고 가지” 이렇게 골라가요. 그러면 나는 좋지만, 애들이 감동할 포인트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분홍 목사가 왜 분홍색으로 매주일 입고 교회에 가겠습니까? 왜 나이 50 넘은 목사가 이러고 다닙니까? 아이들에게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걸 애들이 알아줍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주는 겁니다.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는 거예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 교사들. 우리 아동부 교사들은 다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다닙니다. 혹시라도 못 입고 오신 교사들은 부서 교사들에 준비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복장부터가 준비된 겁니다. “얘들아, 난 널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희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뛰놀며 하나님나라를 같이 만들어 갈 거야. 나는 헌신할 거야.”라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그러시거든요. “목사님! 애들은요. 예쁜 선생님, 젊은 선생님만 좋아합니다.” 그러시거든요.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정확히 말씀드릴까요? 아이들은 예쁘고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예뻐 ‘보이고’, 젊어 ‘보이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니폼은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이걸 다같이 입으면 다같이 젊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면 교사들도 애들인지 어른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저희 성민교회에도 아이들 아빠보다 10살 많은 분들이 교사를 합니다. 그런데 같이 놀아요. 왜? 유니폼이 주는 힘이에요. 애들 할머니 뻘 교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놀고 같이 예배하고 같이 활동합니다. 어떻게요? 이게 유니폼의 힘이에요. 여러분, 저희 어린이부 활동한 사진을 보면 참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 재밌냐면 분홍 목사가 잘 안 보입니다. 이런 사진 흔치 않습니다. 보통은 사진을 찍으면 제가 워낙 튀는 분홍색 옷을 입으니까 저만 보여요. 보통은. 그런데 저희 교회 어린이부 사진에서는 제가 잘 안 보여요. 왜 그럴까요? 다 분홍이니까요. 선생님들이 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아이들을 만나니까 제가 가려집니다. 제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먼저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이게 저희 성민교회 어린이부의 힘이고 저력입니다. 저는 그래서 저희 교회 학교를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복장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 어린이부 교사들의 복장을 보면 다 분홍 목사입니다. 이게 저희 교회의 특징입니다. 분홍 목사님처럼 사랑하고, 분홍 목사님처럼 말씀에 목숨 걸고, 분홍 목사님처럼 애들 끌어안고, 기도하겠다고 마음먹은 교사들이 지금 저렇게 분홍 옷을 입고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유치부는 무슨 색을 입을까요? 유치부는 어린이부보다 훨씬 더 진한 색을 입습니다. 보통은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이것 저것 묻히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먹다가도 자꾸 묻히고 물감이나 교구도 쓰다가 막 떨어지고 묻혀서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부 교사들은 무슨 색을 입을까요? 청소년부는 교사들이 유채식 옷을 입으면 청소년들이 도망갑니다. 그래서 무채색으로 입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까만 옷에 까만 모자, 까만 마스크까지 온통 새까맣게 입고 오니까 교사들은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밝은 회색으로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니폼을 입을 때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교사들의 직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들 똑같은 복장을 하기 때문에 나이도 세대도 직분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서 교사들 가운데는 장로님도 계세요.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다 섞여 있어요.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부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다 같은 교사가 되는 겁니다. 저희는 장로님이 평교사를 하시고, 서리 집사가 부장을 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장로님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해 주시고, 아이들 사주시는 일에 적극적이십니다. 그럼 담임교사가 맞습니다. 그리고 서리 집사님은 행정을 잘합니다. 그럼 부장으로 섬기는 겁니다. 직분대로 가지 않습니다. 기능대로 기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유니폼을 맞춰입고 하나되어 아이들을 만나고 기쁨으로 섬기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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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6-14
  • [다음세대칼럼]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른 시간일 수 있는 아침 7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예요?” 전화기 너머로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을 깨웠습니다. “큰 일 났어. 정은이가 죽었대. 조금 전에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됐다고...” 저는 믿기기 않는 소식을 직접 확인이라도 해야 할 듯이 달려갔습니다. 5개월 전에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소동을 벌였던 정은이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지난 봄 이후 정은이는 둥지에서 기본적인 생활과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해왔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끔 감정의 기복이나 컨디션의 난조로 보이기도 했고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여 염려를 하기는 했지만 더 자해나 자살충동은 느끼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왔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퇴소를 열흘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잘 생활하겠다며 다짐했었는데..... 믿기 힘든 소식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전날 정은이는 집 근처 병원치료 후 다음날 등교를 위해 외박을 허락받아 집에서 있는데 밤 11시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잠시 나간 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정은이의 엄마와 오빠가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고 아침에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급하게 현장에 가서 정은이 시신을 확인한 후 둥지로 연락을 했지만 충격으로 제대로 대화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아파트 CCTV 등을 조사한 결과 정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진 가운데 혼자 아파트 출입문에 들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센터장님! 정은이는 17년 동안 힘든 시간을 살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을 둥지에서 지내면서 많이 웃고 밝아지고 좋은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찍은 사진도 제일 많구요. 정은이의 마지막 가는 길도 꼭 챙겨주세요” 정은이 어머니는 따따이에게 장례식을 부탁했고, 저는 둥지 아이들과 정은이의 장례를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정은이를 기억하는 많은 친구들과 둥지의 가족들이 정은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정은이가 밝게 인사하면서 저쪽에서 들어올 것만 같은데 마음 아프게 그 곳은 정은이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충격 속에 3일간 장례를 치르고 2019년 7월 7일 오전 7시 정은이의 시신을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봉안하였습니다. 17년의 짧은 생애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 보내다가 둥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처음 입소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자살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1월 잠정 집계한 자살 사망자는 1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3% 급증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은 어떨까요. 매년 2600여명 전도의 기독교인들이 자살로 사망한다고 추정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죄로 여겨 교회 안에서 자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이 때문에 예방과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살예방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산에서 작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OECD 국가 4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고 합니다. 더욱이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부산이 1위로 가장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청소년자살문제는 계속 높아지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살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런 제목으로 생명존중세미나가 6월 19일 수요일 오후4시 동래제일교회(미남역)에서 열립니다. “저 내버려 두세요. 내 맘대로 할거예요”라는 반항은 “저 좀 관심가져주세요”라는 애교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사느냐 죽느냐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괜찮니?”라고 물을 수 있는 어른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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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신앙교육나침반] 한국 교회, 기독 가정, 기독 학교는 지금 복음놀이리부트 열풍!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독 가정은 특별히 부모와 자녀의 신앙 전승이 단절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0세부터 100세까지 경험하는 복음의 파워를 담고 있는 [복음놀이리부트]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부모를 통해 복음이 강력하게 전수되도록 돕습니다. 복음이 담긴 찬양과 놀이는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을 공유할 수 있는 생명가득한 시간이 됩니다. 대구에 중학생 이상 성도 1,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3040세대를 지키기위한 3040위원회가 있습니다. 3040위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신앙전수 프로그램인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대안으로 찾고, 당회가 결의하여 다섯명의 복음놀이코디네이터를 세웠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한달에 두번,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진행하였고, 드디어 6월 첫째주일에 전반기 마지막 6회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향기나무복음놀이터 대한민국 2호점 대구대일교회입니다. 대구대일교회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교회가 3040세대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복음놀이리부트50] 이 책을 대안으로 찾으시고, 교회의 온세대 신앙전승 프로그램으로 세우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은혜샘물교회는 5월 셋째주일에 95가정 315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복음놀이리부트50]을 활용한 [가정예배 리부트]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유아자녀를 둔 가정부터 청소년자녀를 둔 가정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복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온 세대가 두시간동안 흐트러짐없이 복음에 집중하며 함께 복음을 놀이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버지들에게 복음의 갑옷을 입힌후 함께 기도하는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은 복음의 옷을 입은채 자녀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구화학교는 청각장애, 지적장애 유초중 과정이 있는 사립 특수학교입니다. 구화학교는 특별히 기독교세계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며 복음도 함께 전하는 미션 스쿨입니다. 고 이종수 장로님의 헌신으로 세워졌고 올해 개교 58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 중급자격의 전문 코디네이터가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곽소정 코디네이터입니다. 구화학교는 올해부터 월1회 <가스펠 데이>를 정해 복음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아이들이 복음을 즐거워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놀이는 그 어떤 장벽도 없이 그대로 흡수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 다소니 미니스트리의 아동과 청소년 50여명의 친구들은 올 여름 캄보디아에 선교를 하기 전에 [복음놀이리부트]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온 몸으로 복음놀이를 경험한 후에, 이를 캄보디아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가서 복음놀이사역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가 다른민족에게 단순히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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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6-14
  • 기독교사학 김천대, 구원파 손에 넘어가
    기독교 사학인 김천대가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김천대 법인이사회는 강신경(1929~2019) 목사의 딸인 강성애 이사장과 윤옥현 총장 등 이사 전원이 사임했으며 IYF 설립자 박옥수씨 등 8명이 새 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의했다. 이사장 선임의 건은 오는 17일 다룰 예정이다. 그동안 김천대는 학생수급과 재정난을 겪고 왔다. 학교측은 어려운 재정난 때문에 기쁜소식선교회에 학교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등에 따르면 학교 측과 IYF가 합의한 사항은 기독교 설립이념 계승을 비롯해 고용 승계, 2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 교직원의 급여 삭감 복구, 대학이 정상화되면 대학 경영에 참여 등으로 알려졌다. 김천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국민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선 교직원들 전체가 언제 학교가 폐교될지 몰라 늘 해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IYF에 경영권을 넘기면서 재정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교직원들이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됐으니 되레 고마운 사항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IYF 이단 시비는 기독교계 안에서의 논쟁에 불과하다”며 “또 교육부 승인 하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법적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천대는 예장통합 소속인 강신경 목사가 설립한 학교 중 하나로 기독교 정신에 따라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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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여고생 사망사고 은폐 시도한 교회는 구원파 교회
    인천의 모 교회에서 여고생이 온 몸에 멍이 든 채 학대치사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문제의 교회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구원파 계열의 박옥수가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로 드러났다. 현재 이 사건으로 교회 50대 신도와 박옥수씨의 딸이자 그라시아스 합창단장인 박모씨와 40대 여성단원 등 총 3명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기쁜소식선교회피해자모임측은 “17살 여학생이 교단 설립자 박 모 목사의 딸 박 모 합창단장과 단원들에 의해 학대를 당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며 “학생이 이 단체에서 같은 신도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전대미문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구원파 단체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편, 박옥수씨와 구원파 계열은 한국교회 주요교단인 예장통합과 합동, 기독교대한 감리회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장통합측은 제77회(1992년) 총회에서 박옥수씨 등 구원파 계열에 대해 “믿음의 한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림이 없으며, 구원의 확신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롬 9:6)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또한 (구원파는)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면 지옥 간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명백한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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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6-14
  • 한국교회여 더 늦기 전에 미리 준비 해 둘 것은
    지난 5월 28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에 이렇게 한국의 현재를 예측하고 있다. 아주 보기 드문 미래의 관측을 예언하는 글이었다. 2024년 한 해에 한국 정치 지형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선거 두 개가 있다고 하면서 하나는 국회의원 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라고 말했다. 이를 전제하면서 4.10 총선은 현 집권 세력이 참패했고, 11.5 미국선거는 한국에 결국 이롭지 않은 분위기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안팎으로 고난의 행군이 예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들어 온다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파수꾼이 아니라 공짜도 아니며 모든 대외 관계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의 관계로 변한다는 것을 뜻하면서 종래의 우방 관계, 자유진영의 우방관계가 아닌 독자적인 안보와 국가 보위를 독자적으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어 우리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1980년대 부흥의 물결이 코로나 팬데믹라는 전염병의 재앙으로 2024년초 부터는 차츰 식어져 가면서 교인과 교회들이 10%~20%까지 감소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여 향후 미래 2030년대부터는 아예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노인 교인들이 반수 이상 가득 차지하여 교회 운영 예산은 그야말로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척 교회에서부터 농,어촌 교회까지 차츰 문을 닫는 현상이 빈번할 것으로 미래 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8일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2년 대비 2052년 시도별 인구는 경기도와 세종시만 늘어나고 나머지 15개 시도는 모두 줄어 들 것으로 예측했다. 부산 인구는 이 기간에 330만명에서 245만 명으로 감소해 감소율이 25.8%에 달하여 전국 17개 시도 중에 최고로 높다. 그리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국적으로 1886만 명에 달하게 된다. 결국 부산이 34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크게 감소한다고 했다. 교회도 예외 아닌 것은 어린이집이며 유치원 아이들이 없어 폐쇄 수준에 들어가고 노인 고령자 교인만 교회를 반 수 이상 출석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니 노인 유치원과 노인 돌보미 또는 재가요양센터와 같은 복지관 운영에 관심을 가져야 교회 노인들을 붙들 수가 있다. 노인 유치원에서부터 장년 경로대학에 이르기까지 노인교회에 대한 복지 전환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본보에 기고한 황수섭 목사(갈보리교회, 전 고신대 복음병원 교목)는 각 교회들 마다 노인 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그들이 과연 난청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잘 듣고 “아멘”이라고 할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은 대부분 노인 교인들은 난청으로 설교를 잘 듣지 못하는 경향이 많아 교회들마다 이어폰이며 어른들의 난청에 대한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고 염려 겸 대책을 세워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개인의 경우도 세상에서 늙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늙음이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라면 그날을 위해 늙음을 공부해 둘 필요가 있듯이 개인이나 기관•단체, 특히 한국교회는 앞으로 오는 먼 훗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대책을 위해 차근 차근 준비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하면 노후 생활 대책이 미리부터 재산 정리를 하여 자식들에게 물려 줄 필요없이 모기질 등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가 국가로부터 나와야 하늘 나라에 갈 때 까지 평안히 살 수가 있다. 교회도 앞으로 10년~20년 안팎으로 미래에 대해 미리부터 노인교인 공동체 관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아마도 유럽 나라들의 교회마냥 교회 안에 노인들만 빼곡히 모여 예배드릴 날이 올지 모른다. 한국교회 중 이를 등한시하는 교회는 후회한들 이미 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정신분석가인 에릭슨은 인생의 단계적 과정을 건강하게 적응하며 지나온 노인은 타인과 융화하는 인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건강한 적응에 실패한 노인은 외로움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건강한 적응이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에 부딪히면서 긍정적으로 단련되는 힘을 말하고 있다. 21세기 교회도 사회 변화에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 지난 60년~70년의 인생을 가지고 그 이후 남은 10~20년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지는 않듯이 교회도 과거 풍요했던 70~80년처럼 운영하면 교회는 자연 도태되고 말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안에 저출산이며 고령화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선두로 달리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교회도 사회 변화에 빨리 적응하여 대책을 세워 나가는 교회는 살아 남고 아니면 교회 역시 조용히 문을 닫는 날이 올 것이다. 요즘도 개척교회 가 많은 부산, 울산, 경남의 경우 작은 개척 교회끼리 합치거나 문을 닫는 숫자가 노회 할 때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 노인도 교회공동체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를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 변화는 개인의 경우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노년을 살아갈까? 젊었을 때부터 몸으로 실천하는 연습과 시행을 실습해야 하듯이 교회도 많은 교역자들이 해마다 밀물같이 쏟아져 나오는 신학교 졸업생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청빙할 것인지 미리부터 교단과 노회 지방회 차원에서 면밀히 분석하여 대책안을 내어 놓아야 한다. ‘노인’교회라면 어떤 모습으로 떠오를까? 퇴보되는 느낌이 들까 이런 생각이 들 무렵부터 이미 노인교회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노년 교회의 앞으로 모습은 어떻게 다가올까? 생각한다면 이미 노인 교회 문턱 앞으로 다가 온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징조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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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목회자칼럼]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
    새로운 한국교회의 부흥과 위대한 복음의 역사를 노래하거나 말할 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 “백두에서 한라까지”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작은 1907년 평양을 기점으로 전국의 교회로 확산된 평양대부흥운동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에 연합집회로 모였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가 나타났다. 당시 런던타임즈는 “마치 밖으로부터 뭔가 물밀듯 밀려드는 강력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한 듯했다.”고 보도했다. 선교사, 지도자, 성도들의 변화와 헌신으로 부흥의 불길과 성령의 파도는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에 경건하고 건전한 부흥 운동의 모델이 되었고, 나아가 한국교회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흥을 말할 때 그 역사의 현장과 시작점이 된 평양과 1907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지나간 한국교회는 위기의 상황을 넘어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증가했고, 예배 의식은 약화 되었고, 순종과 헌신과 봉사의 열정은 식어졌다. 세상과 국가 공동체는 할 수만 있으면 쾌락과 방종 그리고 타락과 무신론의 문화를 파종하기에 여념이 없다. 황금만능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삶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잠식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현실에 안주한 의식은 다음세대를 점점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어른 세대는 복음화율이 20%, 젊은 세대는 10%, 청소년 세대는 미전도종족인 3~5%, 유치원은 1~2%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산에 소재한 1830여 교회 중, 주일 예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상당수다. 청년회가 없는 교회가 절반을 상회하고,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교단을 초월해서 신학교는 정원미달이 고정화되고, 젊은 신학생보다는 중년의 신학생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저출산의 문제는 세상보다 교회 안에서 더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출산율이 0.74:1이라면 교회 청년들은 0.62:1이다. 이슬람은 자녀가 알라의 축복이라고 교육함으로 한 가정에서 약 8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있다. 이슬람은 자녀 출산을 통해 2050년까지 지구 인구의 절반을 무슬림화 하겠다는 계획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패감과 좌절 그리고 절망과 탄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할까?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의 자리로 함께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은 정말로 위대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했고, 엘리야는 비가 없던 땅에 비를 오게 했고, 바울은 성경과 교회를 남겼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9월 8일 해운대성령대집회는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웃교회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교회 차례다. 그러므로 부산에 성령의 파도와 바람과 물결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함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만 있었으면 멸망하지 않았다. 도시 전체와 의인 10명이 대등의 관계에 있었다. 하나님은 오늘, 부산과 한국교회를 살릴 의인을 찾으신다. 그 찾으시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모두가 홍보대사, 후원자, 함께 백사장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개교회의 사역은 그다음 주에 해도 된다. 해운대성령대집회는 10년만에 이루어지는 연합집회이며 공동체적 기도의 현장이다. 이를 통해 반드시 부산과 한국교회에 성령의 역사, 부흥의 바람, 부산대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부흥의 표현과 성령 임재의 역사성이 바뀌기를 바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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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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