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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60년 전 부산교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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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당시 부산의 인구는 28만 명이었는데, 한국전쟁으로 피난민이 밀려오면서 급속도로 증가해 전쟁이 끝난 1954년에는 84만 명이 되었고, 1960년에는 116만 명이 되었으며 1964년에는 140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전쟁 후 많은 피난민들이 서울이나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돌아갈 곳이 없던 이북 출신들은 다수 부산에 정착했다. 그 시기의 부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은 국제시장에서 볼 수 있다. 이북에서 집과 교회와 농토를 그대로 두고 떠나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 그들의 모습을 영화 〈국제시장〉은 잘 그려준다.
전쟁 직전 영도교회(현 제일영도교회) 한명동 목사는 교회에서 먼 거리 구역을 나누어 제2, 3, 4영도교회 설립 정책을 채택했는데, 한명동 목사도 부산남교회를 개척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네 교회가 분립되어 교회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 분립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고, 많은 사람들이 영도에 정착, 교회를 찾아오면서 그 자리가 다 채워졌다. 분립된 교회들도 빠르게 성장해, 제2영도교회는 2년 만에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60년 전, 1960년대 중반만해도 한국은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대도시에는 전기가 공급되었지만 전기가 정전을 반복했고, 대부분의 농어촌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못했다. 북한은 수풍수력 발전소를 통해 전기가 생산되었고, 중공업이 발달해 1960년대 말까지 경제적인 수준이 남한보다 앞서 있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 3년 동안 온 나라가 처참한 전쟁으로 회복불능 상태가 되었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회기반 시설도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사회였다. 부정선거로 1960년에 4.19 학생혁명이 일어났고, 민주당 정권이 채 안정되기 전에 5.16 군사 쿠데타(1961)로 박정희 장군이 집권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해 온 나라가 가난을 탈피하고자 하였다. 당시는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 임업, 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좋은 일자리가 없었던 때, 혁명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거절당하고, 독일과 경제교류를 시작했다. 1962년 독일에 광부를 모집할 때 다수가 학력을 속이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지원해 광부 5천 명을 뽑는데 약 4만 명이 지원하였고, 2천 명의 간호사를 뽑는데 2만 명이 지원할 정도였다. 그 시대에 산업화는 도시화를, 도시화는 교회성장을 이끌었다.
1964년에 서울에 구로공단이 조성되었고, 부산은 고무신과 섬유공장이 크게 번창하면서 농촌의 청년들이 도시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오랫동안 찌들린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추진되고, 사람들은 ‘잘 살아보세’를 부르며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했고,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지만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노동강도가 점차 가혹해지면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내세운 전태일의 분신사건도 1972년에 일어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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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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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60년 전 부산교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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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60년 전 부산교회와 교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자가 발굴되었다. 1965년 대한예수교전국평신도회 경남연합회(회장 김용옥)에서 부산의 각 교회를 전수조사하여 처음으로 발간한 《부산기독교 명감》이다. 이 책은 46판 양장 173면으로 구성되었는데, 60년 전 부산교회와 교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온천제일교회를 시무하던 교회사가 이찬영 목사가 ‘부산의 기독교’를 개괄하여 정리했는데, 부산의 위치, 부산의 천주교와 기독교 전래, 초기 설립 교회들, 그리고 부산기독교계의 특징을 미온적, 평화적, 소교회주의를 들었다. 둘째, ‘(부산의) 기독교 현황’을 한 페이지의 표에 담았다. 책의 서두에 부산의 인구 현황, 인구와 주택 현황, 각 교회 현황, 종교단체 현황을
실었다. 셋째, 각 교단별로 예장통합측, 예장합동측, 예장고신측으로 구분하여 노회 임원, 상비부 및 시찰 조직, 연합회 명단을 실었다. 각 교단에 각 교회의 명부를 교회명, 주소, 담임목회자를 포함하여 구별하고, 각 교회의 이름, 주소, 목사. 장로, 장립집사, 청년회장 등 중요한 사항을 포함하였다. 그 외에도, 기독교계 학교, 구제기관, 각 기구 현황 등을 포함하고, 교회
별 교인 전화번호부, 광고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꼭 60년, 당시의 부산의 교회와 교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네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60년 전 부산 교계와 오늘
명감에 의하면 1963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부산의 인구는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등 6개 구에 91개 동, 1,351,630명이었다. 초등학교 79개, 중학교 46개, 고등학교 40개, 전문학교 1, 대학교 10개였는데, 미인가 공민학교가 72개나 되었다.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던 청소년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민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는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당시는 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을 주로 공부를 하면서 중등학교 과정을 마친 경우도 많았다. 초장동교회는 지역 특성상 1970년대까지 공민학교를 운영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토착화 신학’ 논쟁을 벌일 정도가 될 정도로 신학적인 성숙을 추구하던 시기였지만, 한국신학대학을 제외하고는 정규대학으로 인가받기 전이었다. 60년 전 부산에는 장로교 통합측, 합동측, 고신측 외에도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재건장로회, 독립장로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성결교회는 교단 분리 이후 중립측도 두 교회가 되었는데 수정동성결교회는 중립측에 속하였다. 1963년에 대한성경장로회는 독립교단이 되었다. 해방 후 부산에 입국해 고신교회와 협력하던 마두원 선교사는 성경장로회를 창립하면서 고신측과 멀어졌다. 당시 부산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22교회, 침례교회가 9교회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장성만 목사가 제일그리스도교회를 시무하였는데,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지원으로 경남공업전문대학를 설립하였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동서대학교로 성장하였다. 설립자 장성만 목사는 정계에 진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구세군이 세 교회였고, 안식교가 일곱 교회, 안상홍의 ‘새안식교’는 이 시기에 출석 수가 100명이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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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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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절대적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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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소란스럽고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 그래서 남을 탓하거나, 밖에서 답을 찾거나, 돌려막기를 해서는 노답이다. 변화무쌍하고 돌발변수가 많고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다.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도무지 요동치지 않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다.
교통사고가 날 때는 전방주시 태만, 안전거리 미확보, 휴대폰을 본다거나 무엇인가 엉뚱한 데에 혼이 빠져 있을 때 사고가 난다. 애정결핍, 정서불안, 주의산만 할 때는 외로운 늑대가 되고 사회 부적응 환자가 되고 고독사에 이르고 만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 청년처럼 덤볐다가는 다치기가 쉽다. 인생은 천천히 평온하게, 서서평해야 된다.
안정감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울지도 않는 천하장사 같은 사람은 없다. 어린아이들은 철이 없고 미숙하나 산전수전 겪어가면서 산수를 배운다. 예수님처럼 키와 지혜가 자라나매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워져 가시더라. 건강한 사람은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잡힌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식탐이 없으니 과식하지 않고, 일 욕심이 없으니 과로하지 않고, 성공 욕심을 부리며 과속하지 않는다. 서두르면 사고가 나고, 성급하면 후회하게 되고, 조급하면 실수하기 쉽다. 밸런스, 균형이 건강이고 지혜이고 아름다움이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반듯한 사람이 잘생긴 사람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이웃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라.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미덕이 있고,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다.
아굴의 기도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매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사도바울은 가난한 데나 부한 데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이 남다른 요셉은 허리가 잘 돌아갔다. 적응능력이 뛰어났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지만, 머슴살이를 할 때나 감옥살이를 할 때나 총리로서 대국을 다스릴 때도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형통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이후에 대권을 이어받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였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매 이 땅에 오셨다.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주 말씀이 선포되고 지금은 모세의 때와 같이 언약이 성취되고 지금은 다윗의 때와 같이 예배가 회복되네”라는 찬양의 가사가 있다.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바로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평안을 주신다.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잔잔하게 하시고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기이한 복을 주시니 그를 찬송할지로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고 무슨 일을 당해도 시험 들지 않는 절대 안정감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성경의 구원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오랜 시간 다듬고 만들어 가신다. 그 와중에 별일을 다 겪지만 늘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면 절대로 안 망하고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 요동하지 않는 절대 안정감을 누릴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속 실력, 내공은 주님이 다듬으시는 중에 쌓인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며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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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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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 들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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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악법 소지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꺼리고, 원하지 않는 법안이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공정’이 2026년 1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여성·남성 외에 수많은 제3의 성’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2%에 달했고, 찬성은 22.0%에 불과했다. 또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 변경’에 반대가 74.4%, 찬성은 17.6%였으며,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가 69%, 찬성은 25.9% 수준이었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반대가 59.4%로, 찬성(23.3%)을 크게 앞섰다.
국민들의 생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22대 국회 들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연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진보당 손솔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공동발의: 전종덕, 이주희, 정혜경, 윤종오, 용혜인, 김재원, 서왕진, 김준형, 최혁진)과, 2월 5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생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공동발의: 김선민, 김준형, 서왕진, 김재원, 이해민, 정혜경, 최혁진, 이주희, 용혜인, 신장식, 백선희, 손솔)이 있다.
두 법안을 비교해 보면, 성격 면에서 정춘생안(이하 정안)은 국가인권위원회 법안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손솔안(이하 손안)은 강력한 권리 구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제 강도에서도 정안이 중간 정도라면, 손안은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또한 정안에는 집단소송이 없으나, 손안에는 집단소송까지 포함되어 있다. 입증 책임에 있어서도 정안은 일반적이지만, 손안은 가해자 측에 입증 부담을 지우고 있다.
노동 규제에서도 정안은 기본적인 고용 차별 수준이라면, 손안은 노동시장 구조까지 개입하는 강력한 형태이다. 국가 개입 측면에서도 정안은 제한적이지만, 손안은 국가가 원고 역할을 수행하고 사법적 권한까지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 부담 측면에서는 정안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손안은 매우 크기 때문에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가 있다. 헌법 제20조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제21조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제19조에는 ‘양심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주장하는 바는, 이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마저 차별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혐오·편견을 조장하는 행위’,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괴롭힘’과 같은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다. 종교 활동 가운데 설교나 교리에서는 ‘동성애 문제’, ‘전통적 가족관’, ‘성별 분리 문제’, ‘종교에 따른 교리적 표현’ 등이 마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과 활동을 모두 뭉뚱그려 ‘차별’이나 ‘혐오’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인권을 빙자한 동성애 독재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종교기관을 준공공기관처럼 규제할 수 있으며, 손해배상, 형사처벌,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 최소 배상액까지 규정하여 사실상 ‘입틀막’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물론 비판·학문·언론의 자유까지 모두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어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대다수 국민의 자유권을 빼앗는 것이 과연 참된 자유인가?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과잉금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 사회에는 동성애자도 있지만, 이성애자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해 판단하거나 비판하거나, 종교적·양심적 입장에서 표현하는 행위까지 모두 ‘혐오 표현’으로 뒤집어씌우고 차별로 간주하려는가?
이는 법의 목적 정당성에도 부합하지 않고, 수단의 적합성에도 맞지 않으며, 최소 침해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고, 법익(法益) 균형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특권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서로 돕는 국가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상의 과제’로 여기는 의원들이 있다면, 그들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세비를 받을 자격 또한 없다.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거나 공동발의한 모든 의원들은 속히 이러한 악법을 스스로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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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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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션윈예술단 부산과 대구에서 공연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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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로 의심받고 있는 파룬궁(설립자 이홍지) 션윈예술단이 부산과 대구에서 공연을 준비중이라 주의가 요구된다.
션윈예술단은 2월 14일부터 15일 부산 드림시어터,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공연을 준비중이다.
예장합신 교단은 지난 2018년 총회에서 ▲창시자 이홍지가 자신의 본질이 삼위일체자로 주장 ▲모든 중생의 구원자는 이홍지 자신이라고 주장 ▲사람의 수명을 2년 연장해 주었다거나 죽은자를 살려냈다고 주장 ▲파룬궁을 수련해야만 천국에 간다는 주장 등의 문제로 ‘사이비 종교’로 결의한 바 있다.
한국교회총연합도 2025년 4월 11일 각 교단에 발송한 공문을 통해 션윈예술단의 공연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관람 주의를 권고했다. 한교총은 “션윈예술단의 공연이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종교적 세계관을 예술로 포장해 전달하는 선전 활동”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위장 포교 시도에 대해 교계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함을 촉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교총의 주장대로 션윈예술단의 공연은 중국 전통문화를 복원 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 공연 내용은 특정 종교 교리를 예술 형식으로 포장되어 있다. 공연에는 날개 달린 창세주의 등장, 신격화된 인물의 개입, 종말론적 집단 구원 장면 등 종교적 상징이 반복적으로 삽입되어 있으며, 이는 파룬궁의 교리와 세계관을 무대 위에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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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