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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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붓다는 자신을 신이라 하지 않았다
    정성민의 인간 붓다와 신 예수 - 기독교 시각으로 본 초기 불교 가르침 -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인도에서 신학과 철학, 비교종교 등을 두루 섭렵한 저자가 2년 전 출간한 방대한 걸작 〈예수와 석가의 대화: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본 석가모니〉에 이어 올 1월 노작 《인간 붓다와 신 예수》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하여 창시한 동양을 대표하는 불교는 당시 인도의 힌두교의 신, 우주적인 영의로서의 브라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립 해탈의 길을 연 무신론적 종교개혁으로 호응을 받았으나 그의 이상적이며 완벽한 도덕주의는 사후에 진행된 붓다의 신격화 작업과 자력에서 타력신앙의 유신론적 경향을 띠며 변화하는 과정들을 추적한다. 붓다는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근대 계몽주의 사상의 원조요, 현대 철학과 교육의 원형으로 현대 무신론의 진정한 시조라는 것이다. ◇ 저자소개 ∥ 정성민 현재 미국 그레이스미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드류대학교 신학석사, 동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 석‧박사(종교철학), 인도 마드라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과정(비교종교)을 수료한 후 서울신학대학교 겸임교수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와 호서대학교 신학대학원 초청 강사, 인도 마드라스신학대학교 방문 교수를 역임하였다. ◇ 저서∥《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의 대화》와 《예수와 석가의 대화》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예수와 석가의 대화 -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본 석가모니》 / 정성민 지음 / CLC / 2022 《붓다와 희생양 - 르네자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 / 정일권 지음 / SFC / 2013 기독교인문학 〈52〉 붓다는 자신을 신이라 하지 않았다 -기독교 시각에서 본 불교 이야기-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 “붓다의 세계관은 신(神)을 전면 부정한다. 그럼으로써 반기독교적 입장에 서게 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는 영혼의 존재를 믿고, 각 영혼이 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죽음은 개인적 삶의 끝이 아니라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비교종교학의 고전이 될 책 김길구 1월에 두란노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얼마 전 한 스님의 초청으로 절을 찾은 적이 있는데, 스님의 말씀이 성탄절과 석탄일에 서로 축하의 현수막도 걸어주며 교류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개신교 목사님과는 왠지 어색하다며 그 이유를 묻던 기억이 납니다. ‘참된 앎과 믿음을 위하여’란 부제처럼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사상의 뿌리를 알고 소통하는 것은 서로에게 믿음의 근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김현호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은 이 책이 ‘비교종교학의 고전’이 될 것이라는 감수평을 남겼습니다. 2022년에 《예수와 석가의 대화》라는 582쪽의 대작으로 주목을 끌더니, 이번에는 3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의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낯선 불교에 관한 흥미진진한 얘기는 감수평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타종교와의 합리적인 대화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기대도 갖게 됩니다. 붓다는 누구인가? 류지원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 정리부터 해야겠어요. 붓다는 원래 ‘깨달은 자’란 산스크리어 붓다(佛陀)의 음역으로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뜻합니다. 그의 일대기는 잘 아시니까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로 네팔 남부 인도 국경 근처인 히말라야산 기슭에 있는 작은 나라 사카국의 왕자였는데 고달픈 인생의 문제, 곧 생로병사와 정신적인 고통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29세에 출가, 수행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불교를 창시하여 그의 사상을 널리 포교하다 향년 80세로 열반한 동양 최고의 종교지도자입니다. 김현호 이 책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설파한 근본 가르침은 지금처럼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초월적 성격의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한 성향을 배척한 초기 불교를 중심으로, 붓다는 순수한 인간이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철학자요, 유신론을 거부한 무신론적 철학자요,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브라만교의 부패와 신과 윤회를 앞세워 동물 희생 제사와 고행을 강조하는 종교의 부정적 행태에 분노한 혁신적인 종교개혁자였으며, ‘신’의 존재나 ‘우주’ 그리고 ‘사후세계’ 같은 문제에는 별로 관심 없이 인간이 지닌 고통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실제적인 방법을 찾는데 고민했던 현세적인 종교지도자로 도덕적이며, 거룩한 생활을 실천한 불교의 창시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류지원 붓다의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의 ‘불교는 붓다를 신격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거절함으로써 불교의 종교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다소 역설적인 불교의 독특한 종교성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핵심교리 톺아보기 김현호 붓다의 깨달음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열반(涅槃) 즉 인생사의 모든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마음의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길을 사성제(四聖諦)로 요약하였는데요 현세에서의 삶은 곧 고통이라고 보는 고제(苦諦), 괴로움의 원인은 끝없는 애집(愛執)에 있다는 집제(集諦), 모든 욕망을 벗어나서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경지를 이상이라고 풀이하는 멸제(滅諦), 그리고 번뇌와 업을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길을 도제(道諦)라고 합니다. 류지원 사성제가 붓다의 우주와 인생의 원리라면 삼법인은 세 가지 진리의 진리로 모든 존재는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사물은 실체가 없고, 인간 내면에 있다고 믿어지는 자아, 곧 영혼이 없으며,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사물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집착을 버린 자는 정신적 고통에서 해탈하여 평안함을 누린다는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김현호 이러한 원리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팔정도가 있습니다.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로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와 올바른 행위 그리고 올바른 생활과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과 올바른 집중으로 수행을 위하여 붓다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삶으로 실천하며 명상을 통해 열반에 이를 수 있는 특별한 지식 즉 명지를 깨우치는 측면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김길구 불교에서 중시하는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명지를 얻는 것으로, 바로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正思惟)하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수행자는 붓다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이를 동의해야 하는데, 그 핵심교리가 불교의 연기론에 바탕을 둔 무아론 입니다. 만물은 인연에 의하여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므로 이를 통제하는 신의 존재나 그 안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아(영혼)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 붓다의 세계관은 무신론, 무아론 그리고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내세관에 뿌리를 둡니다. 기독교와의 대화 류지원 시간이 없어 불교의 변천사는 생략해야겠어요. 축약해서 그 역사를 변증법적 시각으로 보면 불교의 토대가 된 인도의 전통 힌두교 신앙이 정(正)이라면, 붓다가 시작한 브라만교의 허구와 부당성에 반기를 든 이상적이며 혁신적인 종교개혁을 반(反)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사후부터 진행된 이상과 현세적인 측면을 가미하여 민중들의 요구를 절충한 좀 더 세련된 종교?가 오늘의 불교가 합(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김현호 저자는 사상적으로 예수와 붓다의 닮은 점을 몇 가지로 얘기합니다. 마음 속의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다. 이 땅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삶이다. 예수와 붓다가 지향하는 삶은 무욕과 무소유다 예수와 붓다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가르쳤고, 몸소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류지원 그렇다면 예수와 붓다의 대화 가능성은 있을까요? 저자는 이를 일축합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와 소승불교의 교리적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대화가 되려면 예수와 붓다가 신적인 차원이어야 하는데 그 전제부터 틀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기 붓다와 사후 후대의 신격화된 붓다의 사상과도 상호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같은 논리로 교리적 대화 역시 예수를 보통사람으로 전락시킨다는 이유에서죠.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서로의 입장과 사상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밖에 없는 지구상에서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 곧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김현호 이 책 말미에 가면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타종교와 무신론자와의 소통방법, 그리고 기독교 복음의 유일성에 대한 과제 등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길구 서구사회는 물론 미국에서 조차 쇠퇴를 거듭, 기독교가 위기감을 느끼는 가운데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추세입니다. 사람과의 무한 경쟁에 이어 AI와도 같은 기계와도 싸워야 하는 극심한 경쟁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은 명상, 요가, 탬플스테이 등 안식을 찾고 ‘멍때리기’가 유행합니다. 과연 기독교가 이 시대의 참된 안식을 줄 수 있을지 반문해 봅니다. 다음 호에는 일본문화기행 편으로 저명한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길을 따라》란 가이드 북을 내신 권요섭 목사와 함께 그의 문학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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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성서연구] 무리를 둘러보시고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높은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면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는데, 이는 유대 지도자들이 볼 때 아무 일도 하면 안 되는 안식일에 추수라는 일을 하는 죄로 보였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를 비난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제자를 옹호하셨습니다. 이런 긴장이 이미 흐르는 가운데,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과 이들이 다시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마침 회당에는 오른손이 마른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참했습니다. 장애는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되었고, 성전에서도 차별받아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 가장 바깥은 이방인의 뜰, 그 안이 유대인 여성의 뜰, 그 안이 유대인 남성의 뜰이었습니다. 더 들어가면 제단이 있는 본래의 성전 뜰이고,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었습니다. 장애인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기에, 사도행전 3장의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장애인도 여성의 뜰에 들어가는 입구인 미문 앞에서 구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른손이 말랐다는 것은 그가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의미했고, 그는 가난했을 것이며, 회당에는 왔지만, 아무도 그를 중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시당하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지 엿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되며, 이것도 일이라 여겼습니다. 간병하는 사람은 안식일에는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도 치료라는 일을 하는 죄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정말 이상한 법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발할 증거를 찾기 위해 엿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악한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의 안타까운 생각도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그는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오실 때부터 자신의 병을 고치실 것을 기대하면서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척을 지고는 유대 사회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를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은 잠시 갈등했을 것입니다. 일어나 한가운데 서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게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기로 결단했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한가운데 섰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손 마른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그가 순종하자,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손을 내밀라>고 하기 전에 <무리를 둘러보셨다>는 것입니다. 회당에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를 둘러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없는 메시지였습니다. <아무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나를 가로막아도, 아무리 케케묵은 안식일 규정이 나를 가로막아도, 이로 인해 내가 미움을 받고 죽더라도, 나의 사랑을 멈출 자는 아무도 없다. 난 손 마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 보느냐? 너희도 은혜가 필요하지 않느냐? 왜 보고만 있느냐? 너희도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너희도 마비된 너희 인생을 내 앞에 가져오라. 내가 너희도 고치고, 은혜를 베풀 것이다>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당 안의 다른 무리들도 인생이 마비된 사람들이요, 그들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절실했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 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마비된 인생이 펴지는 복을 얻을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의 주인공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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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소강석칼럼] “18년째 이어온 보은행사 이야기”
    지난 화요일은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TV조선 ‘뉴스 퍼레이드’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태생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저녁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 새벽기도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피곤하다가도 저녁만 되면 눈이 반짝반짝 뜨이고 머리 회전이 팍팍 돌아가는 걸 느끼죠. 그런데 그날은 일찍 일어나서 분명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차 안에서도 졸려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죠. 생방송이란 편집을 하지 않고 즉문즉답을 적절하게 잘 해야 하는 것인데, 저는 현장에 강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스튜디오로 들어갔습니다. 물이라도 몇 모금 마시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막상 인터뷰에 응하려고 하니까 목이 많이 잠겨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후회를 하였습니다. “물도 좀 마시고, 목소리도 고르게 발성연습도 하고 들어갈 걸 잘못했구나….” 그런데 끝나고 나올 때 앵커께서 “저도 기독교인입니다. 목사님, 아주 적절하게 잘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수십 건의 문자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내용이 “목사님, 너무 잘 하셨어요. 다큐 50분짜리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요. 목이 잠겨서 몹시 불편했고, 워딩도 100% 만족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꾸밈없이 순수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도 목사다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런 문자가 왔습니다. 이튿날까지 200통이 넘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TV조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플 퍼레이드 시간에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 목회자를 불러 인터뷰를 한 것이 방송사로서는 큰 결단을 해야 했으리라고 봅니다. 돌아오면서 전날 있었던 평개원 간사들의 모임에 대한 피드백 문자가 몇 개 떠올랐습니다. 이분들은 매일 교회에 출근을 하셔서 몸과 시간과 물질로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어찌 이분들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김종대 장로님이었습니다. 이분은 18년째 참전용사 초청행사 준비위원장으로 수고해 오셨습니다. 수년 전 장로님께서는 후두암으로 성대를 잃으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전문 닥터들이 생존하는 것도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굳센 믿음과 강한 신념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후두를 제거하면 음식 삼키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밥을 점심까지 씹어서 삼켰다고 합니다. 또 점심을 저녁까지 씹어서 삼키고, 저녁식사도 주무시기 전까지 씹고 또 씹어서 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살아야 합니다.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역을 돕고 6.25 참전용사 행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라면서 그는 성대를 잃은 후에도 이메일로 부지런히 미국과 소통을 해서 지금까지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겨오셨습니다. 올해는 텍사스 주의 달라스에서 행사를 합니다. 왜 그곳으로 가게 되었냐면, 그 지역에서 우리 교회 초청을 받은 참전용사들이 너무 감동을 받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도 후원을 하였는데요. 그래서 그곳에서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래서 그날 인터뷰를 하고 난 후 장로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장로님은 후두를 잃어 전화로 통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께 “장로님 덕분에 인터뷰를 잘하고 왔습니다. 장로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할 때마다 생명보다 귀중한 게 사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또 한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강종직 장로님이었습니다. 지난 주 장로회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한 게 아니라 장로님들의 말을 다 경청했습니다. 대부분 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좀 약간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때 강종직 장로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입이 있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도 안 돼요. 우리 목사님은 전적으로 우리와 다른 분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목사님께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처럼 강직한 발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장내가 아주 엄숙하고 숙연해진 것입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는 18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이라면, 보훈은 한 국가의 품격이죠. 우리 교회는 적어도 보은을 넘어 보훈의 정신을 함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니 18년 동안 이어온 보훈행사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교회죠.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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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시사칼럼]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국격(國格)”이란 말이 회자되는데, 사실 이 말은 그 유래도 불분명하거니와 2011년에 들어서야 표준어로 지정될 정도로 본래 익숙하여 자주 쓰던 용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사용빈도가 증가한 듯합니다. 최근 국내의 M경제지 사설에는 “국격”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칼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격 떨어뜨리는 디올백 · 기내식 특검 모두 부적절하다”(6. 6). 누가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일까요? 과다한 기내식 비용을 지출한 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아니면 선물의 정도를 상회하는 명품 가방을 받고서도 아무런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영부인의 뇌물수수 의혹을 덮어주는 대통령”입니까?(야당 대변인, 2. 23) 영부인의 단독외교를 주장하다가 혼란을 자초한 전 대통령입니까?(J일보, 6. 3) 대통령의 해외순방취소가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입니까(야당 원내대표, 2. 16), 아니면 이번에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해외순방을 감행하는 행동입니까?(윤 모, 배 모 여당 의원, 2. 23) 지금부터 30여 년 전 바로 이맘 때(1993. 6. 7)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켐핀스키호텔(Kempinski Frankfurt)은 갑자기 찾아드는 한국인들로 특수를 누렸습니다. 삼성의 후계자 이건희 회장이 전 계열사의 임·역원들을 모두 소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신경영(新經營)선언’을 했는데, 그 핵심을 한 마디로 알려주는 말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 그리고 2년 후 중국 베이징에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기업경쟁력은 이류, 행정력은 삼류, 그리고 정치력은 사류”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평하기를 이류에 불과하다던 삼성이라는 기업은 뼈를 깎는 혁신을 이루어 냈습니다. 1995년 당시 통화가 잘 안 된다는 불만이 폭주하던 휴대폰 15만 대를 시가 500억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퍼포먼스까지 감행하더니, 2002년 휴대폰 4,500만 대를 팔아 일약 3조원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류에 불과하다던 정치는 어떻습니까? 혁신은커녕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국격을 갉아먹는 적폐(積弊)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며칠 전 이제는 범세계적인 팝그룹이 된 비티에스(방탄소년단, B. T. S.)의 일원이자 맏형인 김석진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는 소식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역시 복무 중인 구성원들이 휴가를 얻어 축하해주러 왔고, 팬덤(fandom)들도 다양한 플래카드와 현수막과 풍선 등을 내걸고 축하했지만 현장에 나타난 이들은 적었습니다. 앞서 소속사에서 “전역일은 다수의 장병이 함께 하는 날이니 별도의 행사가 없으며, 혼잡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팬 여러분께서는 현장 방문을 삼가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사에서 팬들까지, 교양과 배려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비티에스는 종종 전설의 비틀즈를 소환합니다. 빌보드 음악순위에서 최근 10년 간 가장 많은 1위곡을 냈고(6곡), 둘은 발표한 솔로 곡마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여당의 혁신위원장을 포함하여 이들의 군역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얼마나 비등했습니까? 심지어 특례 조항의 신설 취지로 병역법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당하게 군대에 입대했고, 최선을 다해 병역을 마쳤거나(특급전사)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조교) 중입니다. 무엇이 국격을 떨어뜨리고 끌어올립니까? 전술한 사례들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를 합쳐서 ‘공정(公正)’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면 같은 절차나 같은 실제가 똑같은 원칙과 잣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사안이라면 남의 경우를 다룰 때나 나의 경우를 다룰 때 똑같은 원리와 과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정(公正)’입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괄목상대한 경제력이나 문화력에 견줄만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바로 이 ‘공정’이라는 면에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엠지(MZ)세대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 대단한 케이팝 가수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원입대하여 여타 젊은이들과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실천함으로써 공정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격까지 한껏 높여주었습니다. 주께서도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는 또한 지극히 기독교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른 기준의 도량형이나 저울추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레 19:35-36; 신 25:13-15) 바울 사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로마시민권의 특례까지도 포기하고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하늘 보좌까지 기꺼이 버리시고 사람과 똑같이 되신 주님은 어떠합니까? 우리라도 부디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 되지 말고,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국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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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위드애] 천국과 지옥
    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 함께 등산을 했습니다. 푸르른 신록의 숲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아내가 “천국이 이것보다 더 좋을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있는데, 우리는 살아서도 천국, 죽어서도 천국, 영원한 천국을 살고 있으니, 지금 이것도 천국을 누리는 것이고, 죽어서는 더 좋은 천국을 누리겠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천국 같았던 기쁨도 몇 시간이 지나자 육체의 상황에 따라 변했습니다. 하산길에 아내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무릎이 아프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내는 “지옥이 이것보다 더 괴로울까?”라고 말을 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함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도와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동행했습니다. 나의 무릎이 아프지 않다고 아픈 아내를 뒤로 내버려 두고 빨리 내려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이 제 아내이고, 제 아들과 딸의 엄마이고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가족이 아닌 무심한 등산객들은 저와 제 아내를 추월하여 앞서서 내려갔습니다.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도 빨리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요. 육체의 상태에 따라서 똑같은 환경이지만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장애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지옥처럼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안타까워하며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니까요. 뇌출혈로 편마비 상태가 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르신의 가족이 여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대 노부부가 휠체어를 밀면서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부만 왔으면 너무 힘들어서 여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사위와 딸이 함께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센 젊은 사위가 장인어른을 도우며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가족은 천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동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동행하는 삶이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파하며 함께 울기도 하시고, 우리의 지옥 같은 삶이 천국 같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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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애(with 愛)
    2024-06-14
  • [은혜의말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삼상 15: 17-23)
    “리더(leader-지도자)는 리더(Reader-읽는 자)여야 한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 말을 신앙적인 언어로 바꾸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 왕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겸손한 마음입니다.(17절) 사울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작게 여길 때 &#8211; 겸손할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사울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9절을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좋은 것을 남겼다고 했지만, 사실은 값지고 좋은 ‘전리품’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승리는 내가 한 것이라는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2>12절을 보면,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흔적이 아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죠. 하나님이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는데, 사울은 자기가 이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겸손을 잃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잃게 됩니다. 겸손은 자아를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나의 나 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2. 순종의 제사입니다.(22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말씀이 일치하는 삶이 있는 순종의 예배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어떤 제물을 가져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순종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혀 순종할 마음 없이 거저 습관적인 종교생활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종교적 형식만 갖추고 의식적으로 예배할 때, 그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고백이 일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입니다.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듣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진정한 회개입니다.(30절) 사무엘이 책망할 때, 사울은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21절) 변명으로 일관할 뿐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왕을 버렸다고 할 때’ 30절을 보면, ‘자기가 범죄 하였지만 지금은 자기의 죄를 사하고, 자기와 함께 제사하러 올라가 달라고 간청하지요.’ ‘자기 체면’ 때문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사무엘을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백성들 앞에서 나를 ‘왕 대접’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 멋진 변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참된 회개는 범한 모든 죄를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겔18: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마음을 다하여 죄를 고백하며 그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을 향해 회개의 문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진정한 회개의 문을 활짝 여시고 죄에서 돌이켜, 진실한 믿음의 길로 달려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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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유니폼으로 하나 되어 다가가는 교사
    다음세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목회자와 교사들이 다음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아이들에게 먼저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신체적인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아이들은 지금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사 유니폼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매주일 분홍색 자켓을 입고 교회에 갑니다. 다음세대들을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이 저를 보고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목사님인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제 각오가 좀 되십니까? 담임목사가 이런 복장으로 교회에 간다면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겠구나!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일 아침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입기 좋은, 우리에게 좋은 복장을 입고 갑니다. 내가 옷장을 보면서 “이번 주에 뭐 입고 가지” 이렇게 골라가요. 그러면 나는 좋지만, 애들이 감동할 포인트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분홍 목사가 왜 분홍색으로 매주일 입고 교회에 가겠습니까? 왜 나이 50 넘은 목사가 이러고 다닙니까? 아이들에게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걸 애들이 알아줍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주는 겁니다.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는 거예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 교사들. 우리 아동부 교사들은 다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다닙니다. 혹시라도 못 입고 오신 교사들은 부서 교사들에 준비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복장부터가 준비된 겁니다. “얘들아, 난 널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희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뛰놀며 하나님나라를 같이 만들어 갈 거야. 나는 헌신할 거야.”라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그러시거든요. “목사님! 애들은요. 예쁜 선생님, 젊은 선생님만 좋아합니다.” 그러시거든요.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정확히 말씀드릴까요? 아이들은 예쁘고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예뻐 ‘보이고’, 젊어 ‘보이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니폼은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이걸 다같이 입으면 다같이 젊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면 교사들도 애들인지 어른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저희 성민교회에도 아이들 아빠보다 10살 많은 분들이 교사를 합니다. 그런데 같이 놀아요. 왜? 유니폼이 주는 힘이에요. 애들 할머니 뻘 교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놀고 같이 예배하고 같이 활동합니다. 어떻게요? 이게 유니폼의 힘이에요. 여러분, 저희 어린이부 활동한 사진을 보면 참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 재밌냐면 분홍 목사가 잘 안 보입니다. 이런 사진 흔치 않습니다. 보통은 사진을 찍으면 제가 워낙 튀는 분홍색 옷을 입으니까 저만 보여요. 보통은. 그런데 저희 교회 어린이부 사진에서는 제가 잘 안 보여요. 왜 그럴까요? 다 분홍이니까요. 선생님들이 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아이들을 만나니까 제가 가려집니다. 제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먼저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이게 저희 성민교회 어린이부의 힘이고 저력입니다. 저는 그래서 저희 교회 학교를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복장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 어린이부 교사들의 복장을 보면 다 분홍 목사입니다. 이게 저희 교회의 특징입니다. 분홍 목사님처럼 사랑하고, 분홍 목사님처럼 말씀에 목숨 걸고, 분홍 목사님처럼 애들 끌어안고, 기도하겠다고 마음먹은 교사들이 지금 저렇게 분홍 옷을 입고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유치부는 무슨 색을 입을까요? 유치부는 어린이부보다 훨씬 더 진한 색을 입습니다. 보통은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이것 저것 묻히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먹다가도 자꾸 묻히고 물감이나 교구도 쓰다가 막 떨어지고 묻혀서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부 교사들은 무슨 색을 입을까요? 청소년부는 교사들이 유채식 옷을 입으면 청소년들이 도망갑니다. 그래서 무채색으로 입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까만 옷에 까만 모자, 까만 마스크까지 온통 새까맣게 입고 오니까 교사들은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밝은 회색으로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니폼을 입을 때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교사들의 직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들 똑같은 복장을 하기 때문에 나이도 세대도 직분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서 교사들 가운데는 장로님도 계세요.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다 섞여 있어요.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부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다 같은 교사가 되는 겁니다. 저희는 장로님이 평교사를 하시고, 서리 집사가 부장을 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장로님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해 주시고, 아이들 사주시는 일에 적극적이십니다. 그럼 담임교사가 맞습니다. 그리고 서리 집사님은 행정을 잘합니다. 그럼 부장으로 섬기는 겁니다. 직분대로 가지 않습니다. 기능대로 기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유니폼을 맞춰입고 하나되어 아이들을 만나고 기쁨으로 섬기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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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6-14
  • [다음세대칼럼]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른 시간일 수 있는 아침 7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예요?” 전화기 너머로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을 깨웠습니다. “큰 일 났어. 정은이가 죽었대. 조금 전에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됐다고...” 저는 믿기기 않는 소식을 직접 확인이라도 해야 할 듯이 달려갔습니다. 5개월 전에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소동을 벌였던 정은이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지난 봄 이후 정은이는 둥지에서 기본적인 생활과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해왔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끔 감정의 기복이나 컨디션의 난조로 보이기도 했고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여 염려를 하기는 했지만 더 자해나 자살충동은 느끼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왔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퇴소를 열흘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잘 생활하겠다며 다짐했었는데..... 믿기 힘든 소식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전날 정은이는 집 근처 병원치료 후 다음날 등교를 위해 외박을 허락받아 집에서 있는데 밤 11시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잠시 나간 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정은이의 엄마와 오빠가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고 아침에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급하게 현장에 가서 정은이 시신을 확인한 후 둥지로 연락을 했지만 충격으로 제대로 대화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아파트 CCTV 등을 조사한 결과 정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진 가운데 혼자 아파트 출입문에 들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센터장님! 정은이는 17년 동안 힘든 시간을 살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을 둥지에서 지내면서 많이 웃고 밝아지고 좋은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찍은 사진도 제일 많구요. 정은이의 마지막 가는 길도 꼭 챙겨주세요” 정은이 어머니는 따따이에게 장례식을 부탁했고, 저는 둥지 아이들과 정은이의 장례를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정은이를 기억하는 많은 친구들과 둥지의 가족들이 정은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정은이가 밝게 인사하면서 저쪽에서 들어올 것만 같은데 마음 아프게 그 곳은 정은이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충격 속에 3일간 장례를 치르고 2019년 7월 7일 오전 7시 정은이의 시신을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봉안하였습니다. 17년의 짧은 생애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 보내다가 둥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처음 입소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자살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1월 잠정 집계한 자살 사망자는 1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3% 급증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은 어떨까요. 매년 2600여명 전도의 기독교인들이 자살로 사망한다고 추정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죄로 여겨 교회 안에서 자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이 때문에 예방과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살예방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산에서 작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OECD 국가 4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고 합니다. 더욱이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부산이 1위로 가장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청소년자살문제는 계속 높아지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살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런 제목으로 생명존중세미나가 6월 19일 수요일 오후4시 동래제일교회(미남역)에서 열립니다. “저 내버려 두세요. 내 맘대로 할거예요”라는 반항은 “저 좀 관심가져주세요”라는 애교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사느냐 죽느냐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괜찮니?”라고 물을 수 있는 어른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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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4-06-14
  • [신앙교육나침반] 한국 교회, 기독 가정, 기독 학교는 지금 복음놀이리부트 열풍!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독 가정은 특별히 부모와 자녀의 신앙 전승이 단절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0세부터 100세까지 경험하는 복음의 파워를 담고 있는 [복음놀이리부트]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부모를 통해 복음이 강력하게 전수되도록 돕습니다. 복음이 담긴 찬양과 놀이는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을 공유할 수 있는 생명가득한 시간이 됩니다. 대구에 중학생 이상 성도 1,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3040세대를 지키기위한 3040위원회가 있습니다. 3040위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신앙전수 프로그램인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대안으로 찾고, 당회가 결의하여 다섯명의 복음놀이코디네이터를 세웠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한달에 두번,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진행하였고, 드디어 6월 첫째주일에 전반기 마지막 6회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향기나무복음놀이터 대한민국 2호점 대구대일교회입니다. 대구대일교회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교회가 3040세대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복음놀이리부트50] 이 책을 대안으로 찾으시고, 교회의 온세대 신앙전승 프로그램으로 세우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은혜샘물교회는 5월 셋째주일에 95가정 315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복음놀이리부트50]을 활용한 [가정예배 리부트]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유아자녀를 둔 가정부터 청소년자녀를 둔 가정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복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온 세대가 두시간동안 흐트러짐없이 복음에 집중하며 함께 복음을 놀이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버지들에게 복음의 갑옷을 입힌후 함께 기도하는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은 복음의 옷을 입은채 자녀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구화학교는 청각장애, 지적장애 유초중 과정이 있는 사립 특수학교입니다. 구화학교는 특별히 기독교세계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며 복음도 함께 전하는 미션 스쿨입니다. 고 이종수 장로님의 헌신으로 세워졌고 올해 개교 58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 중급자격의 전문 코디네이터가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곽소정 코디네이터입니다. 구화학교는 올해부터 월1회 <가스펠 데이>를 정해 복음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아이들이 복음을 즐거워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놀이는 그 어떤 장벽도 없이 그대로 흡수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 다소니 미니스트리의 아동과 청소년 50여명의 친구들은 올 여름 캄보디아에 선교를 하기 전에 [복음놀이리부트]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온 몸으로 복음놀이를 경험한 후에, 이를 캄보디아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가서 복음놀이사역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가 다른민족에게 단순히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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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기독교사학 김천대, 구원파 손에 넘어가
    기독교 사학인 김천대가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김천대 법인이사회는 강신경(1929~2019) 목사의 딸인 강성애 이사장과 윤옥현 총장 등 이사 전원이 사임했으며 IYF 설립자 박옥수씨 등 8명이 새 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의했다. 이사장 선임의 건은 오는 17일 다룰 예정이다. 그동안 김천대는 학생수급과 재정난을 겪고 왔다. 학교측은 어려운 재정난 때문에 기쁜소식선교회에 학교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등에 따르면 학교 측과 IYF가 합의한 사항은 기독교 설립이념 계승을 비롯해 고용 승계, 2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 교직원의 급여 삭감 복구, 대학이 정상화되면 대학 경영에 참여 등으로 알려졌다. 김천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국민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선 교직원들 전체가 언제 학교가 폐교될지 몰라 늘 해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IYF에 경영권을 넘기면서 재정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교직원들이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됐으니 되레 고마운 사항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IYF 이단 시비는 기독교계 안에서의 논쟁에 불과하다”며 “또 교육부 승인 하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법적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천대는 예장통합 소속인 강신경 목사가 설립한 학교 중 하나로 기독교 정신에 따라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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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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