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 3가지 테마룸의 나라사랑, 인간사랑, 하늘사랑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정신 고스란히 담아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가 이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성지로 거듭난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완공되면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발길이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2014년 4월 착공식을 갖고 시작된 손양원기념관이 완공됐다. 오는 10월 20일(화) 개관식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손양원기념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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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성지
 경남 함안군 손양원 목사의 생가 터(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29-1) 위에 기념관 및 복원된 생가가 우뚝 들어섰다. 3,655㎡(1,100평)의 대지 위에 30㎡(8평)의 복원된 생가와 약 727㎡(220평)의 대지 위에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푸른 숲을 뒤에 둔 기념관은 마치 여느 예술관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손양원기념관의 설계자인 이은석 교수(경희대, 코마건축사사무소)는 손양원 목사를 지칭하는 ‘사랑의 원자탄’을 그대로 표현했다. 원자탄을 형상화해 둥근 모양의 건물에 땅에는 물이 있고, 지붕이 없는 건물 위로 낮에는 해와 밤에는 달이 비추는 빛이 늘 어우러지는 평화를 상징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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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 화이트룸
 고난의 길을 표현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처음 만나는 곳이 화이트룸, ‘나라사랑’이다. 손양원 목사의 애국심을 표현한 곳으로 박시영 목사(기념관건립본부장)는 “경남 함안지역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의 주도자였던 손종일 장로는 손양원 목사의 부친으로,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나라사랑의 의와 아들 손양원 목사의 신앙적인 의가 마주친 곳”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됐던 손양원 목사를 기리기 위해 감옥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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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 스톤룸
 다음 만나게 되는 곳은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헌신한 손양원 목사를 기린 스톤룸, ‘인간사랑’이다. 손양원 목사는 경남지역 순회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부산 상애원의 한센병 환우들을 섬겼다. 침이 한센병에 효과 있다는 말에 호주선교사 맥켄지 선교사가 입으로 직접 피고름을 빨아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맥켄지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손양원 목사 역시 이후 직접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며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해방 후 출옥성도로서 환호 받는 길을 마다하고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 환우들에게 돌아갔다. 손양원 목사에게 병이 전염될까 환자들의 접근을 막았을 때도 손 목사는 “차라리 나도 전염이 되어 더 가까이에서 저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이웃을 향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정신을 기렸다.
 스톤룸은 백범 김구 선생과 절친한 사이였던 손양원 목사를 표현했다. 김구 선생은 이화여고 교장으로 손양원 목사를 초빙하려 했으나 목회자인 손 목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을 그대로 본 떠 밀랍인형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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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사랑’ 레드룸
 스톤룸을 나와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곳은 십자가의 사랑을 표현한 레드룸, ‘하늘사랑’이다. 이곳은 온통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방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용서의 정신을 기렸다. 1948년 10월 이른 바 ‘여순반란사건’으로 손 목사의 두 아들인 손동인, 손동신 형제가 순교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구명운동해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용서를 보인 손양원 목사를 소개하는 수묵화 영상이 레드룸 벽면에 상영된다. 2~3분 가량의 영상을 통해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적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2층 구조로, 구름다리로 지나갈 수 있다.
 
삶의 집약체 ‘생가’ 복원
 3가지의 대표적인 테마룸 외에도 1층에는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유명 화가인 최미경 작가(전주대 교수)가 그린 7m 규모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단일 기념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림으로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장례식, 마지막 심판 날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손양원 목사의 세 부자에게 면류관이 내려오는 모습,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이 작품이 전시된 상설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또 2층에는 생가이야기로 손양원 목사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소개했다. 독립운동으로 나라사랑을 가르친 아버지 손종일 장로, 경남성경학교 교사로 애국심과 굳건한 믿음을 가르친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에게 세례를 준 호주선교사 맥크레이 선교사, 상애원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섬긴 맥켄지 선교사를 조명했다. 특히 호주선교사 맥크레이(맹호은) 선교사는 손양원 목사에게 세례를 주고,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학교에서 중퇴한 손 목사를 일본 동경 쓰가모중학교에서 수학하도록 도운 이가 맥크레이 선교사다.  기념관 밖을 나오면 손양원 목사의 생가를 복원해 놨다. 
 (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만열 교수는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오늘날 혈연, 지연, 학연과 이념으로 분열되고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이곳이 용서와 화해, 평화를 상징하는 귀한 성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이 이곳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로 널리 꽃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념관건립본부장 박시영 목사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신앙은 물론 원수까지도 용서한 그의 사랑은 이 시대에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유산으로 삼아야 하며, 믿음의 후대까지 이어가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 기념관이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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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손양원기념관’ 드디어 모습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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