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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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상하게 연도 만들어주시고, 썰매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신앙도 모범을 보여주셨고, 장로로서 40년 동안 잘 섬기시면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후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길 간절히 바라셨던 분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99년 12월 소천하셨습니다. 소천하신 후에 짐을 정리하다가 누우셨던 머리맡에 말씀충만, 기도충만, 성령충만, 능력충만, 믿음충만이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귀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였습니다. 그 글귀를 기억하며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8절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의 말씀이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시는 유언과 같은 당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하고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제자들에게 최후의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그 최후의 당부는 모든 성도들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최후의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증인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리라.’ 당부하십니다. 요 21장에서 요한의 앞날을 궁금해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22절에서 대답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을 이 땅에 살려둔다고 해도 그것은 베드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가정법 문장입니다. 종말 때까지 요한을 살려두시겠다고 단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23절은 기가 막힌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답을 마치신 뒤에 제자들 사이에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소문이 퍼집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애들이나 막 신앙에 입문한 초신자들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모셨던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3절 뒷부분에서 사도 요한은 그 헛소문을 정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 21장에서 보면 제자들의 수준이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는 참된 교회의 개척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에서 ‘되리라’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미래형이면서 명령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면서 반드시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좇아서 구체적으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법률 용어로서 증인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반드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 반드시 출석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구인을 당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반드시 진실만을 증언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에 대하여 듣고 그분의 역사를 우리 삶으로 체험한 산증인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증인으로 출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과 주님의 증인 된 우리의 차이는 세상의 증인은 말로만 증언하면 그만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증언은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자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들은 것이 분명하고 본 것이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저버리고 위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될지언정 ‘증인’임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던 연약한 제자들이 그들이 보고 들은 진실들만을 전하는 참된 주님의 증인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각 교회들마다 전도축제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행사로만 여깁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서 헛소문이나 듣고 전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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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내 증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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