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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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본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이름은 몰라도, 적어도 소설 『침묵』(1966)이나 영화 <사일런스>(2017)는 알 것입니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가 죽어가는 일본 농부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후미에를 밟고 배교하면서 이렇게 되뇝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해 분명히 배교했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를 하는 거야!”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입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이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침묵했던 신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의 말, 아니 신의 시선은 동판에 새겨진 예수의 얼굴뿐만이 아닙니다. 엔도는 동물들의 눈에서도 예수의 눈, 하나님의 시선을 발견합니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정은문고, 2018)는 엔도의 진지한 듯 유쾌하고, 무심한 듯 애정이 가득한 동물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엔도는 동물은 친구고, 때론 친구 이상의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개, 고양이, 원숭이, 너구리, 구관조, 송사리, 물벼룩까지 많은 동물과 곤충이 나옵니다. 이렇게 동물의 눈을 통해 “인생을 슬픈 눈초리로 바라보는 하나의 존재를 의식”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식물도 마음이 있다!”라고 외칩니다. 1장 ‘개는 인생’의 짝꿍에서 엔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는 인간의 슬픔을 달래준다. 양친의 사이가 차츰 나빠져 이제껏 즐거웠던 가정이 저물녘 갑작스레 해가 기운 것처럼 어두웠다. 소년이던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저 당혹스러워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면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마음의 고통을 상담할 수는 없었다. 말한들 또래 아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학교를 가고 오는 길, 항상 내 곁을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던 검둥이. 어‘집에 가고 싶지 않아!’ 검둥이한테만은 나의 슬픔을 털어놨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요.’”

 

이렇게 엔도의 동물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마리 개와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그 개는 엔도가 어렸을 때 중국 다롄에서 기른 만주견 ‘검둥이’입니다. 엔도는 부모한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느릿느릿한 엔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민이나 슬픔을 자주 검둥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아직 집에 돌아가기 싫어”, “학교는 재미없어” 같은! 그러면 검둥이는 엔도를 잠자코 바라봅니다. 눈물이 맺힌 듯한 눈을 하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세상은 참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따라서 엔도는 어린 시절, 부모나 형제 말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상대는 개라고 고백합니다. 특히 엔도에게 첫 이별을 알려준 이도 검둥이였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작별 인사도 변변히 못 한 채 검둥이와 헤어진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은 엔도 슈사쿠 문학의 중요한 원점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깊은강』의 누마다의 이야기죠?). 엔도 슈사쿠의 첫 마음이자 첫 이별인 검둥이입니다. 엔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검둥이만은 내 외로움을 알아줬어”

 

물론 이런 외로움과 이별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엔도 특유의 유머도 책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엔도는 기르던 개가 새끼 고양이를 잘 보살피자, “저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길지도 몰라. 그러면 ‘야멍’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바탕 돈을 벌어야지. 놀면서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야.”라고 우리를 웃깁니다. 판다의 교미를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방송을 보고 “판다의 사생활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자!”라고 술자리에서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만주견 ‘검둥이’로부터 시작해 개, 고양이, 원숭이, 너구리, 구관조에 이르기까지, 엔도가 키우거나 만나왔던 여러 동물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일생을 통해 사랑하고 교감했던 여러 동물의 눈에서 예수의 눈, 하나님의 시선을 발견한 엔도입니다. 따라서 엔도는 다음 생에는 ‘사슴’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엔도가 인도에 갔다가 세계 제일이라고 자칭하는 점술가로부터 “당신의 전생은 비둘기, 다음 생에는 사슴으로 태어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훗날 나라 공원에서 사슴이 된 자신을 만난다면 사슴 전병을 많이 던져주세요.”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동물들의 눈에서 예수의 시선을 발견하는 나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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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 목사] 동물의 눈에서 예수의 눈, 하나님의 시선을 발견한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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