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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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통일 된 후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졌다. 옛 서독지역도 10%를 상회하였으나 옛 동독지역은 20%에 육박하면서 서독 쪽의 2배나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통일되고 나서 보니 동독에 쓸 만한 공장이 별로 없었고 그것이 서독 기업에 인수되어 제대로 돌아가고 또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2류 독일인이라는 폄하에다가 높은 실업률에 내몰리면서 동독사람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그런 가운데 과거 동독 공산당(SED) 멤버들을 중심으로 민사당(PDS)이라는 정당이 창당되었다. 이 당은 스탈린전제주의로부터는 탈피했으나, 반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앞세웠다. 그런 민사당이 통일이 된지 불과 3년 뒤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놀라운 지지율을 얻었다. 특히 베를린을 둘러싼 브란덴부르그주에서는 21%를 득표하여 콜 수상의 기민련(CDU)를 물리치고 제 2당이 되었다. 그러면서 제 1당인 사민당(SPD)과 함께 연립주정부를 구성하니 어찌 보면 옛 사회주의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처럼 민사당은 동독 전 지역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반자본주의정당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사당은 점차로 변화되면서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친근로자적인 정당이 되면서 서독의 거대정당인 사민당보다 좌측에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훗날 민사당은 사민당내에서 탈당한 사람들이 만든 정당과 합당하여 좌파당(Die Linke)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정당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 당은 동독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메르켈의 3기 집권 시(2013~17년) 두 거대정당 즉 기독연합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했을 때에, 이 좌파당은 제 1 야당이 되어 그 존재감을 부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지지율이 좀 떨어졌지만, 가장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국민정당으로 독일 정치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남북이 통일된 후 옛 북한 노동당의 멤버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북한 지역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독일의 통일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다. 남한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독일이 참 대단하다 여겨진다. 지금 누가 독일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국가라고 생각하겠는가? 통일독일은 삼권분립의 자유 민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잘 실현되면서 언론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나 독일은 다른 여타의 유럽제국과 달리 이념으로 분단된 두 나라가 합쳐서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과정을 겪은 나라이다. 그 과정에서 옛 동독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는 사회주의 이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고, 그러기에 민사당과 같은 정당이 일어나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정치현실이 충분히 큰 갈등과 분란을 야기할 상황이었지만, 독일 사회는 그것을 포용하고 수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민사당은 이념의 색깔이 옅어진 채 마침내 독일 사회가 용인하는 국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 사회와 국민들이 그만큼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관용과 인내의 사회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민들이 진영논리와 고착된 담론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 토론문화가 위축되어 있었다면 동서독의 진정한 통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독일사회의 성숙한 모습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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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관용과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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