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김문훈 목사.jpg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므로 가장 모범적인 기도이며 예수님의 교훈이 농축되어 있는 말씀이다.

주기도문은 생일이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나 전쟁터에서나 잔칫집에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회복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하늘에 계신”은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가 바다 끝에 자리를 펼지라도 주께서 거기 함께 계시며 내가 어디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나를 굽어보신다. 보름달은 부산에서도 보이고 서울에서도 보인다. 인공위성이 하늘에 떠 있으면 GPS기능으로 온 땅을 커버할 수가 있다. 이 땅에 계신 육신의 아버지는 소통이 안될 수도 있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다. 핸드폰은 통화중일 때도 있지만 헤븐폰은 걸면 걸린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 온 땅을 비추이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아니고 나를 가까이 지켜 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은 주님과 나와의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라는 말은 울, 울타리가 되시고 보호막이 되시는 분이시다. 우리나라 말 중에 “우리”라는 말이 참 좋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있듯이 너와 나 사이는 남이 아닌 가까운 사이를 말한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공동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아버지여”는 관계의 회복을 말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원점은 아버지이다. 부부, 부자, 부녀관계... 눅15장, 탕자의 비유에는 탕자의 엄마, 이모, 누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고대 사회의 상속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 아버지는 상속권을 물려줄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아버님이 누구시니?”는 중요하다. 왕대밭에 왕대나고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상속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여”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예수 이름에 권세가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신다. 어느 교회의 평생 구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가정을 행복하게, 교회를 건강하게, 세상을 아름답게, 인격을 향기롭게”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공이 아니고 성결이다.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이 기도는 거룩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룩을 회복하면 주께서도 나를 마음껏 들어쓰신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나라가 회복되어야 된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정권의 힘이 무섭다. 대통령이 바뀌면 다 바뀐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이 1만5천명이라고 한다. 왕이 덕이 있으면 백성들이 태평성대하고 왕이 복이 없으면 흉년이나 홍수나 염병이나 대재앙이 임한다. 생사화복,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구국기도를 해야 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실 때가 가장 안전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가 내 고집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심을 살피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기도는 내가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뜻을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정으로 살지말고 뜻으로 살아야 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회복해야 된다.

“오늘”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우리 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내일 일을 알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이 구원의 날이고 지금이 은혜의 때이다. 시간을 회복해야 된다. 하루를 천년 같이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다. 하루 삼시세끼면 필요충분완전하다. 욕심을 내어서 만나를 많이 거두어 들이면 썩었다. 영광의 주께서는 날마다 때마다 나의 필요를 아시고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이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는 빠삐용신앙이다. 빠지지도 말고 삐지지도 말고 용서하는 것이다. 분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요셉처럼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다. 감정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분노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과 용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는 주를 믿는 자는 시험을 감당하고 환난을 벗어나고 피할길을 열어 주신다. 시험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시험에 퐁당 빠지는 것이 아니고 건짐 받고, 구원받는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죄악이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시다.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는 것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회자칼럼] 기도와 회복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