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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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선거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당선인을 제외하고 누가 이번 대통령선거전에서 많은 득을 보았을까요? 이제 새로운 정권에서 부상하는 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19세기 중반 절정을 이룬 정치 풍조였는데, “전리품은 승자가 독식한다(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는 슬로건으로 유명했습니다(한국행정학회, “엽관주의”).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된 현대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는 원칙인데도, 현실적으로는 정권이 바뀌면 여전히 정무직을 비롯한 핵심적인 임명직에는 같은 정당 인사들을 대거 중용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大選) 결과 실질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게 생긴 사람들은 정치와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이른바 ‘C 스승’과 ‘K 법사’ 같은 이들일 지 모릅니다. 대선 이전에도 각종 방송에서 이들의 존재를 어느 후보자와 관련해서 언급했었는데, 관련 영상(Utube)의 조회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했습니다(MBC, JTBC, YTN). 그러니 이제 이들을 찾는 발걸음이 얼마나 많아졌겠습니까?

 

 2012년 2월 19일 한 방송사(JTBC)에서 “권력과 풍수”라는 제목의 시사물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진행자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소는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한 손석우가 정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고향에 있던 선친의 묘를 용인으로 이장했습니다. 얼마 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언론까지 이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1995년 11월 김 전 대통령은 전남 하의도에 있던 부모의 묘소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한 장소로 이장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지관(地官)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등장하고, 게다가 이장 후 2년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으니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잠시만 검색을 해도 부모 묘소를 이장한 알만한 이름의 정치인들 목록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국가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어서, 마침내 ‘더 킹(The King)’(1997)이나 ‘명당’(1998) 같은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의 영화에서 출세지향자들이 역술인을 찾아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를 묻고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장면은 500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후자의 영화에서는 아예 이런 대사가 등장하기도 했지요. “사람은 변하지만 땅은 영원한 법.. 이제 그 운은 내가 가져야겠소.” 흥선대원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누적관객수가 200만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계가 잠깐 역술인이나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져서 나온 결과물들이 아닙니다. 더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 ‘관상’(2013)은 말 그대로 관상(觀相)을 주제로 한 영화인데 천만 가까운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곡성’(2016)이란 영화는 한국 토속신앙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서 세계적인 화제몰이를 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영화와 같은 매체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 전반에 아직도 풍수지리사상, 관상을 비롯한 각종 역술, 태생적인 한국의 토속신앙 등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찰도 찾고 무속인도 찾습니다. 물론 후보자들 중에는 개신교 신자도 있고 가톨릭 · 불교 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교회와 사찰을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종교단체들을 순례하는 까닭은 한 표가 아쉽기 때문입니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하늘에서 내리는 동아줄이라도 붙잡겠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권력의지가 그들의 신앙입니다. 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종교라도 좋고 누구와 손잡아도 좋다는, 일종의 변형된 기복주의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한 만18세 이상의 다음세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교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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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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