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서임중 목사.jpg

 포항중앙교회에서 시무하던 어느 날 예배당 마당에서 앞에 가는 두 분의 집사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봉사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안 그래?” “아이고, 목소리 좀 낮추어라 남들 듣는다.” 내용인즉 재활용센터에서 물건을 샀는데 봉사하시는 집사님이 불친절하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재활용센터를 들여다보고 그분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과 거의 몇 달 동안을 주목해 봤다. 분명한 것 한 가지가 확인되었다. 재활용센터에서 봉사하시는 그 집사님은 언제나 밝고 친절하고 감사함이 일상생활에 배어있었지만 불평했던 그분은 항상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불평이나 감사는 환경 상황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근원임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잠언 4:23절의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은 지고한 생활 교훈이다.

 이메일 편지 한 통 받았다. 추수감사주일에 감사헌금을 얼마 할 것인가로 인하여 두 내외가 한참 논쟁을 벌이다가 자기가 이겼다는 내용이다. 내용인즉 원로목사님이 시무하실 때 가르쳐 주신대로 분수에 맞게 최선을 다하여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봉헌정신이라고 아내에게 설명하고 올해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 가정 범사가 너무도 은혜로 한해를 지나오게 되었으니 십일조 한 번 더 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했더니 아내가 목사님 말씀 하시는 대로 다 할 것 같으면 천국 가기도 전에 천사된다고 좀 지나친 농담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말다툼이 되었고 나중에는 손을 잡고 회개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가르친 奉獻의 의미를 깨달아 실천하는 것이 고마워 눈시울이 젖었다.

 왜 사람들은 감사함으로 충만한 삶의 조건을 감사함으로 누리지 못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 첫째는 교만이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마치 그것이 자기 자신이 다 이룬 듯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는 불만이다. 불만은 만족함이 없는 마음의 표출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감사함이 없는 결과다. 셋째는 무지(無知)다.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는 것,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르는 것이다. 그 삶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내용의 대표적인 사건이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열 명의 나병환자의 치유 사건이다. 이 사건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감사함이 없었던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지난날의 처절했던 상황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생활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전형적인 감사함이 없는 대표적인 일이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로마서 1: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디모데전서 4:4절을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렇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기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엔돌핀이 생겨서 T 임파구가 생성되는데, 그것이 암 덩어리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기분이 좋은 것이 무엇인가?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기분(氣分), 즉 온 몸의 기운이 분산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건강으로 축복으로 이어진다. 기가 막혔다는 말은 그 반대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는 예수님 믿고 인생을 바꾸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늘 불평불만으로 얼굴이 한 번도 웃음이 없었다. 사람이 미웠다. 특히 잘난 사람들이 미웠다. 그러니 늘 긴장관계의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예수님 믿은 후는 모든 것이 좋았다. 밥 먹을 때마다 “건국 이후에 가장 맛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잘 생겼다. 얼굴 참 좋다. 미소가 좋다. 이름이 좋다”면서 어찌하든 칭찬할 것 찾아 축복한다.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여지고 느껴진다. 나를 힘들게 하고 모해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도 도무지 밉지 않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은 늘 바보라고 한다. 바보가 되니 불만도 모르고 불평도 모르고 그저 감사한 것뿐이다. 먹는 것마다 맛이 있고, 하는 일 마다 행복하다. 도대체 불평할 이유를 찾으려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오늘까지 남의 말 나쁘게 해본 기억도 없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내 입으로 불평하고 불만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행복하고 모든 것이 좋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함을 생활에서 연출한다.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실천한다. 은혜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렇기 때문에”의 감사의 삶을 노래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살전5:18)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한다.(롬1:21, 고후8:2) 감사는 축복을 심는 씨앗이다.(신16:15)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최고의 행동이다.(고후9:1)

 나는 요즈음 육신의 작은 아픔 하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마음은 더욱 평안하고 행복하다. 입만 열면 감사가 노래된다. 고희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만 생각난다. 누구 못지않은 아픔을 마음에 담고 숨을 쉴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도무지 그 어떤 상황도 불평 없이 그 누구도 미움 없이 여전히 감사함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는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천국이라고 찬송한다.

 나의 저서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에서 쓴 글이 많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인용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불평하는 사람은 행복을 얻지 못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가을이 온 듯 했는데 겨울을 느낀다.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따뜻한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더 따뜻한 옷(?)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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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감사의 근원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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