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8(목)
 

최현범 목사.jpg

독일인들이 즐겨하는 격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정리는 삶의 반이다.” (Ordnung ist das halbe Leben) 여기 오르드눙(Ordnung)이라는 말은 규칙, 질서, 정리정돈 등을 뜻하는 말이다. 독일에 살다보면 왜 이들이 이 말을 자주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 단어에서 나온 ‘오르드너’라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바인더인데, 대부분의 가정이 이것을 서너 개 갖고 여기에 영수증을 비롯해서 온갖 서류들을 차곡차곡 정돈해놓는다. 보통은 3공 링 바인더인데 그 구멍 간격이 전국적으로 꼭 같다. 애들용이나 어른용이나 모든 문구류의 규격이 꼭 같고,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정리하는 방식이 꼭 같아, 어려서부터 배운 정리하는 법을 평생 사용하게 된다. 사회의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고 반듯하고 이것이 그들에게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독일인들의 질서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아마도 도로위일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운전을 했지만, 기본적인 교통법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하고 다녔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이 교통법규들을 조목조목 잘 인지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우는 사거리를 지날 때에 어느 도로가 우선인지 잘 알 수 없기에 조심해서 좌우를 살피게 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어느 도로나 우선순위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우선도로 표지판을 유의해야 하고, 그것이 없는 곳에서는 우측도로에 우선권이 있다. 보통 우리 생각에는 직진도로나 큰 도로가 우선일 것 같은데 독일에서는 아무리 작은 도로라도 우측에서 나오는 차량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이런 규칙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자칫 사고를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교통규칙들을 잘 지키기에 자신에게 우선순위가 있으면 상대방이 으레 서겠거니 생각하면서 좌우를 보지 않고 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 사거리에서 아무도 없다 해도 빨간 불이면 정차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보행자 역시 빨간불에서는 건너지 않는다. 영국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 사람들이 빨간불에도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너가는 모습이 특이해보였다. 유럽인들 속에 팽배한 개인주의로 인해 이번 코로나 방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독일이 나름 선방하고 또 어떤 나라보다도 쓰레기 분리를 잘 실행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정리정돈을 중시하고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반듯한 사회를 보통은 동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좀 차갑고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법과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적응이 쉽지 않은 사회이다. 독일에 오랫동안 살다가 직장 때문에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된 한 교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생활에 익숙했던 그는 처음에는 파리의 무질서함이 너무나 적응이 안 되어 힘들었다. 특히 교통규칙이 독일처럼 엄격하지 않고 잘 안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차를 갖고 나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이제는 프랑스의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이 도리어 편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과거 독일을 생각해보니 숨이 막혀왔다. 그 법과 규칙에 꽉 매여 있는 갑갑한 사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고, 이제 다시 돌아가라면 죽어도 못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리와 질서의 나라의 명암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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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정리와 질서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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