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전영헌 목사(N).jpg

개독.

어느새 이 단어는 낯익은 단어가 되어 버렸다.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을 잃어버린 순간 ‘기독’은 ‘개독’이 되어 버렸다. 14년전 브니엘고에 부임했을 당시 브니엘의 아이들은 브니엘고에 배정되는 순간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아이, 재수 없어!’ 첫째는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이고, 그 다음이 교통이 안 좋다는 이유이고, 마지막으로 소문이 안 좋다는 이유이다. 심지어 브니엘을 브니헬(hell)로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교에 부임한 이후 줄곧 나의 목표는 개독을 기독으로 다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개독이 다시 기독으로 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면 된다. 기독 교사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자연스레 개독은 기독으로 바뀔 것이다.

간혹 제자들 중 학생으로서 하면 안 될 일을 하다가 적발이 되어서 경찰에 잡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집에 연락할 가족이 없든지, 도저히 집에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제자들이 마지막에 보호자로 선택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렇게 경찰서를 드나들면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아웃사이더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이 목사의 편이 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건들거리는’ 녀석들이 나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고개만 까딱하던 녀석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거의 조폭의 ‘형님급 인사’로 허리를 숙였다.

사실 이들은 내가 수업을 할 때 가장 건들거리면서 방해만 하던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기 친구들을 도와주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스스로 들을 준비를 하고, 나와 눈 맞춤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학교 욕을 하거나, 교회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날 이후 J가 말했다.

“목사님 이제 개독교라고 안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 잘 나가 보겠습니다.”

물론 J는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3년 내내 잊을 만하면 주일 예배 때 나타나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가곤 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였다. J는 졸업할 때까지 보호감찰을 받으며 부모와 교사의 속을 참 많이 썩였다. 졸업도 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2,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포기하지 않고 잡아 주셔서 무사히 졸업을 했고, 군대를 다녀왔고 이제는 철이 들었다. 그는 군대에서 가끔씩 내게 전화를 했다.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시커먼 사내 녀석이, 그것도 까까머리 군인이 보고 싶다고 하니 몸에 닭살이 돋기는 했지만, 마음은 무척이나 흐뭇했다. 이처럼 더이상 개독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고비의 순간에 교회를 찾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은 삶이다’라는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전도와 학원의 복음화가 목적인 삶이 아니라, 개독에서 기독으로, 브니헬에서 브니엘로 부르는 아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하며 ‘몸으로’ 승부하고 있다.

한 제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싶다.

“교목 샘. 저 기억나세요? 고등학교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화가 나서 유리를 깨고, 팔에 유리를 꼽은 채 상담하러 갔더니 목사님께서 그걸 또 하나하나 빼 주셨던 거였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그렇다. 아이들은 어떤 말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를 기억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개독이 기독이 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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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칼럼]개독이 기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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