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열두번 세 번 사건이 발생한지 1년도 넘었습니다. 기독교보에 이를 언급한 시론도 썼습니다. 정근두목사님의 반론을 읽고 그에 대해 재반론도 썼습니다. 총회장에게 드리는 질의서에 동참도 했습니다. 이제 두 번째 관전평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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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호 목사(광주은광교회)

 (1편에 이어)

결론은 버킹돈

 

이번 열두번 세 번 사건의 결론은 25억원입니다!! 이로써 그동안 교계에 알려진 자조적인 불문율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사고치고 버틸수록 돈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회수 작은 것 열두 번, 큰 것 세 번, 기간 1년, 금액 25억입니다. 여기에 교세도 고려되었습니다. 교세, 기간, 횟수 등을 가지고 금액이 산정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치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기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 기준표를 활용해서 화해조정도 빨리 진행할 수 있습니다. 총회 산하 교회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목사 살리기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참 합의안에는 경지에 달한 유머 스킬도 보이더군요. 딱딱한 일을 하면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다니 과연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합의안은 총회재판국의 선고와 같은 법적인 효력이 있음을 상호 인정한다.” 이 부분 읽다가 저 혼자서 빵 터져버렸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에 재판국은 재판 하나마나한 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재판 다시 해라고 하면 다시 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 정치권이 간절히 원하는 그런 재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위치에 위원회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 힘없는 재판국과 동급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위원회!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실력과 유머를 갖추고 있으니 면직을 역전시켜 25억으로 만든 거죠. 그리고 역시 결론은 버킹돈입니다!

 

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드디어 고신이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글의 제목처럼 되었습니다. “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제목을 조금 바꿔도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고신 드디어 기록을 세우다!”

 

뉴노멀의 시대에 뉴노멀을 만든 겁니다. 이제 고신 목사들의 행동반경은 파격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뉴노멀에 의하면 예닐곱번 정도의 목사와 여성의 밀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독신 여성의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한 두번까지는 봐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현직 총회장들과 교단의 지도자들이 교단 목사님들에게 드리는 코로나 시대의 선물입니다. 와우, 후배들이 그 덕을 톡톡히 보겠습니다! 그래도 위험은 있습니다. 과정의 공정을 외치면서 감동을 준 대통령도 부도내는 세상이니 고신도 부도의 우려는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생명은 거룩이라면서 방침을 갑자기 휙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눈치껏 자유를 누려야 할 겁니다. 자기가 성골이나 진골 등에 속해 있는지도 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게 타 교단 목사로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가끔 만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그 교단만 회개하면 한국교회는 깨끗해져.” 이제는 우리가 그 교단을 추월해버렸습니다. 그 친구 만나면 이렇게 말해줄 참입니다. “김목사, 미안하다. 너그한테 배웠는데 우리가 너그 추월했다! 이해해라. 청출어람 청어람 아이가.”

 

빈이형 교회가 왜 이래?

 

권력자들은 사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법관 탄핵을 외칩니다. 그들이 이번에 고신을 보았다면 부러워하고 존경할 겁니다. 앞으로 정치는 목사들에게 배워야겠다고 고개 숙일 겁니다. 총회장이 판결 선고 보류하는 것도 배웠고 시간 끌어서 재판부원 바꿔서 재판 다시 시키는 것도 보면서 탄복했을 겁니다. 후임 총회장들에게도 좋은 모본이 생겼습니다. 이러는 동안 세상 정치와 공통적인 원칙도 보여줬습니다. “우리 편이 정의”라는 것 말입니다.

 

고신 신앙의 핵심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고 합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의미는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번에 그 허구성이 드러났으니까요. 나훈아씨의 질문이 자꾸 떠오릅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저는 칼빈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빈이 형, 교회가 왜 이래?”

 

고신의 설립자이신 한상동목사님은 초량교회에서 빈손으로 훌쩍 떠나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동이 형님, 고신이 왜 이래요?” 신학생들을 형님이라고 부르시던 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아이고, 형님들, 다 알면서 왜 그래?” 네, 다 알기에 마음이 서글픕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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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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