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16(금)
 

서임중 목사.jpg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란 용어가 있는데 선진국이 발전도상국에 원조를 하거나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한 물품이 현지의 수요를 웃돌아 도리어 선진국으로 역수출되어 해당 산업과 경쟁하게 되는 일을 부메랑 효과라 한다.

 직장에서 남편이 화가 나서 집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낸다. 아내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억울한 아들은 강아지를 발로 찼다. 강아지도 화가 나서 닭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강아지가 덤벼들자 닭은 놀라서 장독 위로 뛰어오르다가 그만 장독을 넘어뜨려 버렸다. 그 결과로 장독 속에 소중하게 담아 두었던 고추장이 다 밖으로 쏟아졌다. 결국 남편의 분노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피해는 남편에게까지 다시 돌아왔다. 신경질 부메랑 효과 이야기다. 

 이솝이야기의 하나다. 생쥐가 사자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생쥐는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사자는 생쥐를 살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가 덫에 걸렸을 때 생쥐가 그물을 갉아서 풀어주었다. 생명과 사랑의 부메랑효과다.

 사무엘하 16장에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울면서 피난길을 가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답잖은 신하 시므이의 저주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왕을 향해 ‘사악한 자여’ ‘피흘린 자여’ 하면서 악담하고 저주를 하면서 지근에 따라오는 것이다. 600 여명의 따르는 자들이 있었지만 시므이 한사람을 통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었다. 이러할 때 한 사람, 아비새가 등장한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렇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 아비새가 나선 것이다. 어느 공동체이든 위기 때는 두 사람이 등장 한다. 한 사람은 ‘시므이’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은 ‘아비새’ 같은 사람이다. 시므이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뿌리 채 흔들린다. 아비새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이 되어 간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정치현장이나 목회현장이나 다를 바 없다. 아비새가 나서서 시므이를 단칼에 목을 베겠다고 했을 때 다윗이 한 말은 축복을 부르는 부메랑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자기 입으로 시므이를 저주하지 않았다. 이 일로 다윗은 축복을 받게되고 시므이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다윗을 통해 축복의 부메랑을, 시므이를 통해 저주의 부메랑을 생각한다.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흔히 겪는다. 시므이처럼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의요 선이다. 그것은 저주를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다윗처럼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향해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며 인격이며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축복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부부가 길을 가다가 아내가 다리가 아파지면서 남편에게 업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등에 업었다. 아내가 미안하여 “무겁지?”라고 말하자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무겁지. 돌대가리지, 철면피지, 강심장이지 당신은 무거울 수밖에 없어” 조금 가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좀 전에 내가 업어주었으니 나도 조금만 업어주라.” 아내는 남편을 업었다. 남편이 조금 미안해하면서 “생각보다 가볍지?”라고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가벼울 수밖에요. 머리에 든 것이 없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지, 속은 비었지, 양심도 없지 가벼울 수밖에요” 말의 부메랑효과다. “여보 무겁지?” 하면 “아니야 솜털처럼 가벼워, 천사를 업은 것 같어, 날마다 업고 걸었으면 좋겠다.” “여보, 생각보다 가볍지?” 하면 “응, 정말 그러네. 당신 너무 허약한 거 아니야, 괜스레 내가 잘못 섬긴 것 같아 미안하네, 보약 한재 지을까 여보?” 이 얼마나 사랑과 축복의 부메랑 대화인가.

 누가복음 6:38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태복음 7:12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그러나 마태복음 27:25절은 무서운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가져왔다. 성경은 온통 부메랑효과의 기록이다. 섬기면 섬김 받는 것, 사랑하면 사랑받는 것, 축복하면 축복 받는 것, 저주하면 저주 받는 것, 미워하면 미움 받는 것, 모두가 부메랑 효과다. 남의 말 나쁘게 하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입 돋음에 오른다. 불평 잘하고 원망 잘 하는 사람은 그 생활이 항상 불평과 원망의 울타리로 둘러쳐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을 범사가 감사로 충만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귀의 궤계는 저주의 부메랑효과다.

 은퇴 전 나의 목회 현장은 ‘마카리오스’가 인사 용어였다. ‘평행감축’이 인사말이었다. 어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랑과 감사로 웃음꽃이 피었다. 교회가 축복받는 이유는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부메랑효과 때문이다. 교회가 카오스현상이 되는 것은 믿음 없는 마음의 원망 불평 비판 정죄의 부메랑효과다 잠언 6:2절에서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민수기 14:28절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말씀처럼 축복과 저주는 내 입의 말을 통해 불러 오는 부메랑효과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축복하면 축복이 온다. 저주하면 저주가 온다. 사순절 절정의 기간인 고난주간에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생각하면서 깊은 묵상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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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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